大智度論釋初品中 八念義第三十六之 餘卷二十二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36. 초품 중 팔념의 뜻을 풀이함② 1
念法者 如佛演說 行者應念, “是法巧出 得今世果 無熱惱 不待時 能到善處 通達無㝵"
염법(念法, dharmānusmṛti)이라 함은, 부처님께서 연설하신 바와 같이, 수행자는 마땅히 생각하기를 “이 법은 교묘하고 특출한 교출(巧出)한 것이라, 금세에서 과보를 얻으며, 들끓는 번뇌인 열뇌(熱惱)도 없으며, 때를 기다리지 않고 능히 좋은 곳= 선처(善處)에 이르게 되며, 통달하여 걸림이 없는 통달무애(通達無礙)한 것"이라고 해야 하며,
“巧出”者 二諦不相違故 所謂世諦 第一義諦是, 智者不能壞 愚者不起諍故。
是法亦離二邊 所謂若受五欲樂 若受苦行. 復離二邊, 若常 若斷 若我 若無我 若有 若無。
如是等二邊不著 是名“巧出”。諸外道輩自貴其法 毀賤他法故 不能巧出。
교출(巧出)이라 함은, 두 가지 진리인 이제(二諦)가 서로 위배되지 않기 때문이니,
이른바 세제(世諦, 세속제)와 제일의제(第一義諦, paramārthasatya)가 그것이다.
이것은 지혜로운 이도 파괴할 수 없고 어리석은 이도 다툼을 일으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며,
이 법은 또한 두 가지 치우침인 이변(二邊)을 여의나니,
이른바 5욕(五欲)의 즐거움을 받거나 고행(苦行)을 받는 것이 그것이며,
다시 이변(二邊)을 여의나니, 항상함의 상(常, 상견)과 단절됨의 단(斷, 단멸견), 나 아(我)와 무아(無我)와, 존재함의 유(有, 유위)와 존재하지 않음의 무(無, 무위) 등의 이러한 이변(二邊)에 집착하지 않으니,
이러함을 교묘하고 특출한 교출(巧出)이라 하며,
모든 외도의 무리들은 자기의 법(가르침)만을 귀히 여기고 다른 이의 법은 헐뜯고 천히 여기는 까닭에 교출(巧出)하지 못하다 하며,
“得今世果”者 離愛因緣世閒種種苦 離邪見因緣種種論議鬪諍 身心得安樂。如佛說;
금세에서 과보를 얻는 것이란, 애욕의 인연인 세간의 갖가지 괴로움을 여의고, 삿된 소견의 인연인 갖가지 논의(論議)와 다툼을 여의어 몸과 마음에 안락함을 얻는 것이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라.
持戒者安樂 身心不熱惱, 臥安覺亦安 名聲亦遠聞。
계율을 받아 지키는 이는 편안하고 즐거우며, 몸과 마음에는 들끓는 괴로움이 없고
누워도 편안하고 깨어나도 편안하며, 그 명성 또한 멀리까지 들리리라.
復次 此佛法中因緣展轉生果 所謂持戒淸淨故心不悔 心不悔故生法歡喜 法歡喜故身心快樂 身心快樂故能攝心 攝心故如實知 如實知故得厭 得厭故離欲 離欲故得解脫 得解脫果報得涅槃是名“得今世果”。
또한 이러한 불법 가운데에서 인연(因緣)이 구르고 펼쳐져서 그 결과를 내나니,
이른바 계율을 지님이 청정하기 때문에 마음으로 뉘우치지 않으며,
마음으로 뉘우치지 않기 때문에 법에 대한 기쁨= 법환희(法歡喜)가 생기며,
법환희(法歡喜)가 생긴 때문에 몸과 마음이 즐겁고 쾌적하며,
몸과 마음이 즐겁고 쾌적하기 때문에 능히 마음을 감싸들이어 가다듬을 수 있으며,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기 때문에 여실히 알게 되며,
여실히 알기 때문에 (세간을) 싫어하게 되고,
(세간을) 싫어하게 되기 때문에 탐욕을 여의며,
탐욕을 여의었기 때문에 해탈을 얻으며,
해탈이라는 과보를 얻었기 때문에 열반을 얻게 되나니,
이것을 금세에 과보를 얻는 것이라고 하며,
外道法空行苦 無所得。如閻浮阿羅漢得道時自說;
외도의 법(가르침)에는 부질없이 괴로운 고행(苦行)만을 하고 얻는 것은 없나니,
마치 염부(閻浮, Jambuka)제의 아라한이 도를 얻었을 때에 스스로 말한 것과 같으니,
我昔作外道 五十有五年, 但食乾牛屎 裸形臥棘上。
나는 예전에 외도로 살면서 55년 동안이나
다만 마른 쇠똥만을 먹었으며, 벌거숭이로 가시평상 위에 누워 있었네.
“我受如是辛苦 竟無所得, 不如今得見佛聞法 出家三日 所作事辦 得阿羅漢" 以是故 知佛法得今世果。
“나는 이와 같은 모진 고통을 받으면서도 끝내는 얻은 것이 없었으며, 지금과 같지 못했으나,
내가 부처님을 뵙고 법을 듣고 출가한지 3일만에 할 일을 다 마치고 아라한이 되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법에서는 금세에서 과보를 받는 것임을 아는 것이다.
問曰; 若佛法得今世果 何以故 佛諸弟子有無所得者?
묻나니, 만약 부처님의 법(가르침)에서는 지금 세상에서 과보를 얻게 되는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에서 얻지 못하는 이도 있는 것입니까?
答曰; 行者能如佛所說 次第修行 無不得報, 如病人隨良醫教 將和治法 病無不差。
若不隨佛教 不次第行 破戒亂心 故無所得 非法不良也!
답하나니, 수행하자가 능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차례대로 수행한다면 그 과보를 얻지 못함이 없는 것이, 마치 병든 사람이 용한 의사의 가르침대로 치료하는 법을 따른다면 그 병이 낫지 않는 일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만약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며, 또한 차례대로 행하지도 않는다면 계율을 깨뜨리고 마음이 산란하여 지기 때문에 얻는 것이 없을 뿐이요, 법(가르침)이 바르지 않은 것이 아니다.
復次 諸未得道者 今世雖不得涅槃 後世得受福樂 漸次當得涅槃 終不虛也。
如佛所說, “其有出家爲涅槃者 若遲若疾 皆當得涅槃。”
또한 아직 도를 얻지 못한 이들은 이 세상에서 비록 열반을 얻지 못한다 하여도 다음 세상에서 복과 즐거움을 받게 되고 점차로 열반을 얻게 되리니, 끝내 헛되지 않을 것이니, 마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그 누구라도 출가하여 열반을 닦는다면 더디거나 빠르거나 간에 모두 열반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느니라.
如是等能得今世果。
이와 같이 능히 금세에서 과보를 얻게 되는 것이다.
“無熱惱”者 熱惱有二種, 身惱 心惱。身惱者 繫縛牢獄 拷掠 刑戮等。心惱者 婬欲 瞋恚 慳貪 嫉妒因緣故 生憂愁 怖畏等。此佛法中 持戒淸淨故 身無是繫縛牢獄 拷掠 刑戮等惱, 心離五欲 除五蓋 得實道故 無是婬欲 瞋恚 慳貪 嫉妒 邪疑等惱。無惱故無熱。
들끓는 극한 번뇌(괴로움)= 열뇌(熱惱)가 없다는 것이란, 열뇌(熱惱)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곧 몸의 괴로움인 신뇌(身惱)와 마음의 괴로움인 심뇌(心惱)이라.
신뇌(身惱)란 포박을 당하거나 옥살이를 하거나 고문(拷問)과 형벌 등을 받는 것이며,
심뇌(心惱)란 음욕과 성냄과 간탐과 질투 등의 인연 때문에 근심ㆍ걱정ㆍ두려움 등을 내는 것이다.
이러함에 대하여 불법에서는 계율을 지님이 청정하기 때문에 몸에는 이러한 포박이나 옥살이ㆍ고문ㆍ형벌 등의 괴로움이 없고, 마음에서도 오욕을 여의고 오개(五蓋)를 제거하여 진실한 도를 얻기 때문에 이러한 음욕이나 성냄ㆍ간탐ㆍ질투ㆍ삿된 의심 등의 괴로움이 없나니, 괴로움이 없기 때문에 들끓는 열(熱)을 받을 일이 없으며,
復次 無漏禪定生喜樂 遍身受故 諸熱則除, 譬如人大熱悶 得入淸涼池中 冷然淸了 無復熱惱。
또한 무루(無漏)의 선정에서는 기쁨과 즐거움이 생겨 온몸에 두루 느끼기 때문에 모든 들끓는 열이 곧 제거되나니,
비유하자면 마치 사람이 몹시 열기를 받아서 답답할 때에 맑고 시원한 못 안에 들어가면 몸이 시원해지고 맑아지면서 다시는 열기로 인한 괴로움이 없는 것과 같으며,
復次 諸煩惱若屬見 若屬愛 是名熱, 佛法中無此故 名“無熱惱”。
또한 모든 번뇌는 삿된 소견에 속하고 애욕에 속하는 것이라, 이러함으로 뜨겁게 열을 받게 되는 것이니, 불법 중에서는 이런 것이 없기 때문에 들끓는 괴로움이 없는 무열뇌(無熱惱)라고 하는 것이다.
“不待時”者 佛法不待時而行 亦不待時與果。外道法 日未出時受法 日出時不受法, 或有日出時受 日未出不受, 有晝受夜不受 有夜受晝不受。佛法中無受待時 隨修八聖道時 便得涅槃。譬如火得薪便然, 無漏智慧生時 便能燒諸煩惱 不待時也。
때를 기다리지 않는 불대시(不待時)라 함은, 불법에서는 때를 기다리지 않고서도 (선업을) 행하며, 또한 때를 기다리지 않고서도 과를 주나니,
외도의 법에서는 해가 나오지 않을 때에 법(가르침)을 받으나, 해가 나온 뒤에는 법을 받지 않기도 하며,
혹은 해가 나온 때에 받거나, 해가 나오지 않은 때에는 받지 않기도 하며,
혹은 낮에 받고 밤에는 받지 않기도 하고, 혹은 밤에 받고 낮에는 받지 않기도 하지만,
부처님 법에서는 가르침을 받음에 때를 기다림이 없으니,
8성도(八聖道)를 닦으면 그에 따라 곧 열반을 얻게 되는 것이 마치 불이 땔나무를 만나면 곧 잘 타오르는 것처럼 무루의 지혜가 생겼을 때에는 곧 모든 번뇌를 능히 태워서, 때(時)를 기다리지 않는 것이니라.
問曰; 如佛說 有時藥 時衣 時食, 若人善根未熟 待時當得 何以言無時?
묻나니,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때(時)에 맞추어 먹는 약= 시약(時藥)과 때에 맞추어 입는 옷= 시의(時衣)와 때를 맞추어 먹는 음식= 시식(時食)이 있는 것과 같은데, 만약 사람의 선근(善根)이 아직 익지 않았다면 때를 기다려 얻어야 할 것이거늘 어찌하여 때(時)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까?
答曰; 此“時”者 隨世俗法 爲佛法久住故 結時戒, 若爲修道得涅槃 及諸禪定 智慧微妙法 不待時也。諸外道法皆待時節 佛法但待因緣具足。若雖持戒 禪定 而智慧未成就 不能成道, 若持戒 禪定 智慧皆成就 便得果 不復待時。
답하나니, 이 때(時)라는 것은 세속의 법을 따른 것으로, 부처님 법에 오래오래 머무르기 위해서는 때에 맞추는 계율= 시계(時戒)를 제정하기도 하나, 만약 도를 닦아 열반과 모든 선정과 지혜와 미묘(微妙)한 법을 얻기 위해서라면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이니,
모든 외도의 법에서는 모두가 시절을 기다리지만, 불법에서는 다만 인연이 두루 갖추어지기를 기다릴 뿐이다.
만약 비록 계율을 지니고 선정을 닦는다 하여도 지혜가 아직 성취되지 못하였다면 도를 이루지 못한 것이고,
만약 지계와 선정과 지혜가 모두 성취되었다면 곧 결과를 얻게 될 것이므로 다시 더 이상 때를 기다리지 않는 것이다.
미묘(微妙)= “이루 말할 수 없이 맑고 깨끗한”이란 뜻으로 미(微)는 “미진(微塵)을 뜻하는 것입니다.-마하반야바라밀다경
復次 久久得果名爲時 卽得不名時。譬如好染一入便成, 心淨人亦如是 聞法卽染 得法眼淨 是名“不待時”。
또한 오래오래 걸려서 결과를 얻는 것을 때(時)라고 하며, 즉시 얻어지는 것을 때(時)라 하지는 않으니,
비유하자면 마치 물을 잘 들이는 좋은 염색은 한 번을 넣어도 금방 물이 드는 것과 같으니,
마음이 깨끗한 사람도 그와 같아서 법을 들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물이 들면서 법의 눈= 법안(法眼)이 깨끗하게 되나니, 이러함을 바로 때(時)를 기다리지 않는것이라 하며,
“能到善處”者 是三十七無漏道法 能將人到涅槃, 譬如入恒河 必得至大海。
諸餘外道法 非一切智人所說 邪見雜故 將至惡處, 或時將至天上 還墮受苦 皆無常故 不名善處。
능히 좋은 곳= 선처(善處)에 이른다 함이란, 이러한 서른일곱 가지의 무루도법(無漏道法, 37조도법助道法, saptatriṁśad anāsravā bodhipākṣikadharmāḥ)이 사람을 열반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라.
비유하자면, 마치 항하(恒河)로 들게 되면 틀림없이 큰 바다에 이르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그 밖의 모든 다른 외도들의 법은 일체지(一切智)를 갖춘 사람이 말한 것이 아닌 것으로, 삿된 소견이 섞여 있기 때문에 나쁜 곳= 악처(惡處)에 이르게 되나니, 혹은 천상에 이르기도 하나 혹은 다시 되돌아 와서 고통을 받게 되나니, 이러함은 모두가 무상하기 때문에 (천상을) 좋은 곳= 선처(善處)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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