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初品中 三三昧義 第三十二卷 第二十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32. 초품 중 세 가지 삼매[三三昧]의 뜻을 풀이함 2

 

問曰, 若足等身分 與有分異 是有咎, 今足等身分 與有分身法不異 故無咎!

묻나니, 만약 발을 비롯한 몸의 각 부분과 어떤 한 부분이 다른 것이라면 허물이 되겠지만, 지금 발을 비롯한 몸의 각 부분이 어떤 한 부분, 즉 몸이란 법과 다르지 않다고 하는 것은 허물이 없는 것입니다.

 

答曰, 若足等身分 與有分不異 頭卽是足。何以故, 二事是身不異故。

又身分多 有分一 不應多作一 一作多。

답하나니, 만약 발을 비롯한 몸의 각 부분이 어떤 한 부분과 다르지 않다면 머리가 곧 발이어야 할 것이라. 왜냐하면 이 둘  모두가 몸이기 때문에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며, 

더욱 몸의 전체의 부분은 많으나, 어떤 한 부분은 하나이니, 많음이 하나가 될 수 없고, 하나가 많음이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며,  
 

復次 因無故果無 非果無故因無。身分與有分不異 應果無故因無。

何以故?因果一故。

또한 원인이 없어지므로써 결과가 없어지는 것이요, 결과가 없어지므로써 원인이 없어지는 것인데, 이제 몸의 각 부분과 몸의 한 부분이 다르지 않다면 응당 결과가 없어지므로써 원인이 없어지는 것이 될 것이라.

왜냐하면 원인과 결과는 하나이기 때문이니라.

 

若一 若異中 求身不可得, 身無故 何處有男女? 若有男女 爲卽是身?

爲異身? 身則無可得。

만약 하나(같음)와 다름 가운데서 몸을 구하여도 얻을 수 없다면, 몸은 없는 것이 되거늘 어떻게 남녀의 모습이 있을 수 있으며?

만약 남녀가 있다면 즉 이 몸 그대로인가? 아니면 이 몸과는 다른 것인가? 몸이란 곧 얻을 수 없는 것이라. 

 

若在餘法 餘法非色故 無男女之別。但二世因緣和合 以顚倒心故 謂爲男女。

만약 다른 법에 있는 것이라면, 다른 법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색경色境이 아닌 까닭에) 남녀의 차별이 없는 것이나, 다만 과거와 현재의 이세(二世) 인연이 화합과 전도된 마음으로써 남녀라고 말할 뿐이니라.

如說, 게송에서 설함과 같으니, 

 

俯仰屈申立去來 視瞻言語中無實, 風依識故有所作 是識滅相念念無。

구부렸다 폈다 하는 것을 통하여 과거와 미래를 이루나,

우러러보고 이야기하는 가운데에는 실체가 없나니,

식(識)에 의지하여 바람이 작용을 하는 것이라,

이 식(識)의 사라지는 모습인 생각생각이란 실상이 없으며,

 

彼此男女有我心 無智慧故妄見有, 骨鎖相連皮肉覆 機關動作如木人。

너와 나, 남자와 여자는 '나'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니,

지혜가 없으므로 허망하게 있다고 여기나니, 

뼈마디가 서로 이어진 곳에 살가죽이 덮이었고,

신체 기관이 움직여 온갖 행위 짓는 것이 마치 꼭두각시와 같도다.

 

內雖無實外似人 譬如洋金投水中, 亦如野火焚竹林 因緣合故有聲出。

비록 진실함이 없으나 겉은 사람과 같으니,

마치 금을 녹여 물속에 부어 넣는 것과 같고

들불이 일어나 대나무 숲을 태우는 것과 같아서,

인연이 화합한 까닭에 소리가 나는 것일 뿐이라. 

 

如是等諸相 如先所說 此中應廣說 是名無相門。

이러한 갖가지의 제법의 실상은 앞에서 이미 말하였거니와 여기에서 다시 자세히 말하나니, 이를 모습 없음의 문= 無相門(무상문)이라 하며, (인연의 10가지 모습인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이라는 오진(五塵)과 남(男) 여(女) 생(生) 주(住) 멸(滅)이라는 현상과 작용(法)멀리 여의어 무상(無相)을 통해 열반문에 이르는 것이니라.)

 

無作者 旣知無相 都無所作 是名無作門。

짓는 이가 없는= 無作(무작)이란, 모습 없는 無相(무상)과 짓는 바가 없는 無所作(무소작) 모두를 알게 되는 것을 무작문(無作門)이라 하느니라.

 

問曰, 是三種 以智慧觀空 觀無相 觀無作, 是智慧 何以故名三昧?

묻나니,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의 세 가지는 지혜로써 공(空)을 관찰하고, 모습 없는 無相(무상)을 관찰하고, 짓는 바가 없는 無所作(무소작)을 관찰하는 것인데 이 지혜를 어찌하여 삼매(三昧)라 하는 것입니까?

 

答曰, 是三種智慧 若不住定中 則是狂慧 多墮邪疑 無所能作,

若住定中 則能破諸煩惱 得諸法實相。

답하나니,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의 세 가지 지혜가 선정에 머무르지 않으면 이는 미친 지혜로서, 대부분 삿된 의혹에 빠져서 능히 할 수 있는 것이 없게 되나,

만약 선정에 머무르면 모든 번뇌를 깨뜨리고 제법의 실상을 깨달아 얻게 되며, 

 

復次 是道異一切世閒 與世閒相違。諸聖人 在定中得實相說 非是狂心語。

또한 다시 이러함은 온갖 세간과 다르고 세간과 서로 맞지 않거니와 모든 성현들이 선정에 머물러 실상을 얻고서 말씀하신 것은 미친 마음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니라.

 

復次 諸禪定中無此三法 不名爲三昧。何以故, 還退失墮生死故。如佛說;

또한 다시 모든 선정(禪定) 가운데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의 세 가지 법이 없으면 삼매라 하지 못하나니,

왜냐하면 수행에서 물러나게 되어 생사에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라.

마치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能持淨戒名比丘 能觀空名行定人, 一心常懃精進者 是名眞實行道人。

능히 청정한 계율을 지키면 비구라 부르고,

능히 공을 관(空)하면 선정을 닦는 이라 하며, 

일심으로 항상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는 이는,

이를 일러 진실을 행하는 도인이라 하며, 

 

於諸樂中第一者 斷諸渴愛滅狂法, 捨五衆身及道法 是爲常樂得涅槃。

渴愛갈애= 번뇌에 얽매인 사람이 목마르게 오욕에 집착하는 것

온작 즐거움 중에서 으뜸가는 것이란,

모든 갈애(渴愛)를 끊고 미친 법을 없애는 것이니

5중(오온)의 몸과 도법(道法)까지 버리면,

이를 일러 항상하고 즐거운 열반을 얻었다고 함이라.

 

以是故 三解脫門 佛說名爲三昧。

이러한 까닭에 세 가지 해탈문을 부처님께서는 삼매(三昧)라 하신 것이니라.

 

問曰, 今何以故 名解脫門?

묻나니, 이제 무슨 까닭으로 해탈을 통해 열반문에 이르게 되는, 해탈문(解脫門)이라 하는 것입니까?

 

答曰, 行是法時得解脫 到無餘涅槃 以是故名解脫門。

無餘涅槃 是眞解脫 於身心苦得脫, 有餘涅槃爲作門。

此三法雖非涅槃 涅槃因故 名爲涅槃。世閒有因中說果 果中說因。

답하나니, 이 법을 행할 때에 해탈을 얻어서

무여열반(無餘涅槃, nirupadhiśeṣanīrvaṇa. 무여멸열반無餘滅涅槃)에 이르게 되나니, 이러한 까닭에 해탈문(解脫門)이라 하는 것이며, 

무여열반(無餘涅槃)이야말로 참해탈이니, 몸과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는 반면 유여열반(有餘涅槃)은 열반무위성(涅槃無爲城)의  문호(門戶)가 되며,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의 세 가지 법은 비록 열반은 아니지만, 열반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열반이라 하며, 세간에서 원인에서 결과를 말할 때도 있고, 결과에서 원인을 말하기도 하는 것이니라.

 

是空 無相 無作 是定性 是定相應心心數法 隨行 身業 口業 此中起心不相應諸行和合 皆名爲三昧。

譬如王來 必有大臣 營從, 三昧如王 智慧如大臣 餘法如營從。

이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은 정(定)의 성품이요,

이 정(定)에 상응하는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심수법(心數法)을 따라 몸의 신업(身業)과 입의 구업(口業)에서 일어나는 마음에 상응하지 않는 모든 행의 화합을 모두 삼매(三昧)라 하나니, 

비유하자면, 왕이 가면 대신들과 관리들이 반드시 함께 하는 것과 같으니, 삼매(三昧)는 왕과 같으며, 지혜는 대신과 같으며, 다른 법은 괸리들과 같으니라.

 

餘法名雖不說 必應有。何以故, 定力不獨生 不能獨有所作故。

是諸法 共生 共住 共滅 共成事 互相利益。

그 밖의 다른 법에 대한 이름은 말하지는 않았으나 반드시 있어야 하나니, 왜냐하면 선정의 힘= 定力(정력)은 홀로 생겨 날 수 없고, 혼자서는 작용할 수 없기 때문이라.

이렇게 제법은 함께 생기고, 함께 머무르고, 함께 일을 이루어서 서로 이익이 되나니,

 

是空三昧二行, 一者 觀五受衆 一相異相無故 “空”, 二者 觀我 我所法不可得故“無我”。

이러한 공삼매(空三昧)에는 두 가지의 행이 있으니,

첫째는 고수(苦受) 낙수(樂受) 희수(喜受) 우수(憂受) 사수(捨受)의 오수중(五受衆)이 같은 모습도 다른 모습도 없는 것임을 관찰하는 까닭에 공(空)이요,

둘째는 나와 내 것의 법이란 얻을 수 없는 것임을 관찰하기 때문에 무아(無我)이니라.

 

無相三昧四行, 觀涅槃種種苦盡故名爲“盡”, 三毒等諸煩惱火滅故名爲“滅”,

一切法中第一故名爲“妙”, 離世閒故名爲“出”。

무상삼매(無相三昧)의 네 가지 행으로 열반이란 

갖가지의 괴로움이 다한 것임을 관찰하기 때문에 '다함= 盡(진)'이라 하고,

3독 등의 모든 번뇌의 불길이 사라졌으므로 '사라짐= 滅(멸)'이라 하고,

제법 가운데서 으뜸이기 때문에 '묘함= 妙(묘)라 하고,

세간을 여의었기 때문에 '벗어남= 出(출)이라 하며, 

 

無作三昧二行, 觀五受衆因緣生故“無常”, 身心惱故“苦”。

觀五受衆因四行, 煩惱 有漏業和合 能生苦果故 名爲“集”,

以六因生苦果故 名爲“因”, 四緣生苦果故 名爲“緣”,

不多不少等因緣生果故 名爲“生”。

觀五不受衆四行, 是八聖道分 能到涅槃故“道”, 不顚倒故“正”,

一切聖人去處故“迹”, 愛見煩惱不遮故必“到”。

무작삼매(無作三昧)의 두 가지 행으로 고수(苦受) 낙수(樂受) 희수(喜受) 우수(憂受) 사수(捨受)의 오수중(五受衆)이 인연 따라 생겼기 때문에 '무상(無常)'하다고 관찰하고,

몸과 마음이 번거롭기 때문에 '고(苦)'라고 관찰하고,

5수중(五受衆, 오수음)을 원인으로 네 가지 행을 지어가나니, 번뇌와 유루의 업이 화합함으로 인하여 능히 괴로운 결과를 내기 때문에 '집(集)'이라 하고,

능작인(能作因), 구유인(俱有因), 동류인(同類因), 상응인(相應因), 변행인(遍行因), 이숙인(異熟因) 또는 무장인(無障因) 자종인(自種因) 공생인(共生因) 상응인(相應因) 변인(遍因) 보인(報因)의 여섯 가지 원인= 六因(육인)으로 괴로운 결과를 내기 때문에 '인(因)'이라 하고,

인연(因緣) 차제연(次第緣) 연연(緣緣) 증상연(增上緣)의 네 가지 인연=四緣(사연)이 괴로운 결과를 내기 때문에 '연(緣)'이라 하고,

많지도 적지도 않은 인연들이 결과를 내기 때문에 '생(生)'이라 하며, 

고수(苦受) 낙수(樂受) 희수(喜受) 우수(憂受) 사수(捨受)를 받아들이지 않는 오불수중(五不受衆)을 관찰함에 네 가지의 행이 있으니, 

이 8성도분은 능히 열반에 이르기 때문에 '도(道)'이고,

전도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름= 正(정)'이며,

일체의 성인들의 가는 곳이기 때문에 '발자취= 迹(적)'이며,

애견(愛見)의 번뇌가 가로막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도(到)'라고 하는 것이니,

 

是三解脫門 在九地中, 四禪 未到地 禪中閒 三無色 無漏性故。

이러한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 세 가지 해탈문은 구차제정(九次第定) 가운데 있나니, 곧 사선(四禪)ㆍ아비발치지에 이르지 못한 미도지(未到地)ㆍ선중간(禪中間)ㆍ삼무색정(三無色定)이 그것으로, 무루(無漏)의 성품이기 때문이며,

 

或有說者, 三解脫門一向無漏, 三三昧 或有漏或無漏。以是故 三昧 解脫有二名。

혹 어떤 이가 말하기를 '삼해탈문(三解脫門)은 오로지 무루이고, 삼삼매(三三昧)는 혹은 유루이기도 하고 혹은 무루이기도 한것이라 하나니, 이러한 까닭에 삼매와 해탈이라는 두 명칭이 있다'고 하나니, 

 

如是說者 在十一地 六地 三無色 欲界及有頂地。若有漏者 繫在十一地, 無漏者 不繫。

이와 같이 설하는 것은 11지(地)에도 있는 것이니, 곧 육지(六地)와 삼무색정(三無色定)과 욕계와 유정지(有頂地, Akaniṣṭha. ‘정점에 있는 경지’, 곧 4선의 마지막에 도달하는 경지, 색구경천色究境天)이 그것이며, 

만약에 유루라면 얽매여서 11지에 있는 것이고, 무루라면 얽매이지 않는 것이며,

 

喜根 樂根 捨根相應。初學在欲界中 成就在色 無色界中。

如是等 成就 不成就 修 不修 如'阿毘曇'中廣說。

희근(喜根)ㆍ낙근(樂根)ㆍ사근(捨根)에 상응하는 초학자는 욕계에 속하고,

성취한 이는 색계와 무색계에 속하나니,

이와 같이 성취함과 성취하지 못함과 닦음과 닦지 않음 등은 아비담(논장)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 같으며, 

 

復次 有二種空義 觀一切法空 所謂衆生空 法空。

다시 공(空)에 대하여 주 가지의 정의(定義)가 있어 일체법의 공(空)함을 관찰하는 것이니, 이른바 중생의 공함=衆生空(중생공)과 법의 공함= 法空(법공)이며, 

 

衆生空 如上說。法空者 諸法自相空。如佛告須菩提, '色 色相空 受 想 行 識 識相空'

중생의 공함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거니와

법공(法空)이란 모든 법의 스스로의 모습= 自相(자상)이 공하다는 것으로,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에게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색(색온)과 색(색온)의 모습은 공(空)한 것이며, 수상행식(受想行識)과 수상행식(受想行識)의 실상이 공(空)한 것이니라.'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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