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初品中 三十七品義 第三十一卷第十九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31. 초품 중 삼십칠품(三十七品)의 뜻을 풀이함 12

 

定根者 菩薩善取定相 能生種種禪定. 了了知定門 善知入定 善知住定 善知出定。

於定不著不味 不作依止。善知所緣 善知壞緣 自在遊戲諸禪定 亦知無緣定。

不隨他語 不專隨禪定行 自在出入無㝵 是名爲定根。

정근(定根)이라 함은 보살이 선정의 정상(定相)을 잘 취하여 능히 갖가지 선정을 내고,

분명하게 선정의 문호를 알며, 선정에 들고 선정에 머물고 선정에서 나오기를 잘 알며,

선정에 맛들여서 집착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으며,

업이 갈무리된 所緣(소연)을 잘 알고,

갈무리된 업이 무너지는 壞緣(괴연)에 대해서 훌륭하게 알며,

모든 선정에 자재하게 노닐며, 또한 인연이 없는 無緣(무연)선정도 잘 알며,

남의 말을 따르지 않고, 선정만을 따르지도 않아서 행함에 자재롭고 출입에 걸림이 없는 이러한 것을 정근(定根)이라 하며,

 

慧根者 菩薩爲盡苦 聖智慧成就。是智慧爲離諸法 爲涅槃。

以智慧 觀一切三界無常 爲三衰 三毒火所燒。

觀已 於三界中 智慧亦不著一切三界 轉爲空 無相 無作解脫門。

一心爲求佛法 如救頭然。

혜근(慧根)이라 함은 보살이 괴로움을 다하기 위하여 성스러운 지혜를 성취하는 것이니,  지혜로써법을 여의고 열반을 이루나니,

 지혜로써 일체의 삼계는 무상한 것이며 3(三衰, 탐진치)와 3(三毒, 탐진치) 불에 탄다고 관찰하며

이렇게 관하고는 삼계 안에서 지혜에도 집착하지 않으며일체의 삼계를 도리어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 해탈문으로 삼아, 일심으로 불법을 구하기를 마치 여구두연(如救頭然)=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하며, 

 

여구두연(如救頭然), 아무리 자식이 걱정이 되어도 머리에 붙은 불을 끄는 것 보다는 더 급할 수가 없고, 천하 없는 일도 머리에 불 끄는 일보다 더 급한 일은 없는 것이다.-박주영혜천 

 

是菩薩智慧無能壞者 於三界無所依 於隨意五欲中心常離之。

慧根力故 積聚無量功德 於諸法實相利入無疑無難。

於世閒無憂 於涅槃無喜 得自在智慧故 名爲慧根。

이러한 보살의 지혜는 아무도 무너뜨릴 수 없으며, 삼계에서 의지하는 바가 없으니,

뜻이 오욕(五欲)을 따를지라도 마음은 항상 오욕(五欲)을 떠나 있으며,

이 혜근의 힘 때문에 무량한 공덕을 쌓아 모으며,

제법의 실상에 예리하게 들어가 장애 없고 어려움 없으며,

세간에 머물되 근심하지 않으며, 열반에 머물되 기뻐하지 않나니,

이러한 자재로운 지혜를 얻는 까닭에 혜근(慧根)이라 하느니라.

 

菩薩得是五根 善知衆生諸根相, 知染欲衆生根 知離欲衆生根,

知瞋恚衆生根 亦知離瞋恚衆生根, 知愚癡衆生根 亦知離愚癡衆生根,

知欲墮惡道衆生根 知欲生人中衆生根 知欲生天上衆生根,

보살이 이러한 5(五) 얻게 되면 중생들의 모든 근기의 모습을  아나니, 

욕망에 물든 중생에게 뿌리내린 업= 根機(근기)를 알고, 욕망을 여읜 중생의 근기를 알며,

성내는 중생의 근기를 알며, 성냄을 여읜 중생의 근기를 알며, 

어리석은 중생의 근기를 알고, 어리석음을 여읜 중생의 근기를 알며, 

악도(惡道) 떨어지고자 하는 중생의 근기를 알며, 

인간세상에 나고자 하는 중생의 근기를 알며, 

천상에 나고자 하는 중생의 근기를 알며, 

 

知鈍衆生根 知利衆生根, 知上中下衆生根, 知罪衆生根 知無罪衆生根,

어리서고 둔한 중생에게 뿌리내린 업, 鈍根(둔근)의 중생을 알며,

영리한 이근의 중생을 알며, 상ㆍ중ㆍ하의 중생들의 근기를 알며, 

죄지은 중생의 근기를 알며,  없는 중생의 근기를 알며, 

 

知逆順衆生根, 知常生欲界色界無色界衆生根, 知厚善根 薄善根衆生根,

거슬리고 순종하는 중생의 근기를 알며,

욕계ㆍ색계ㆍ무색계에 항상 태어날 중생의 근기를 알며, 

선근이 두터운 중생과 얕은 중생의 근기를 알며, 

 

知正定 邪定 不定衆生根, 知輕躁衆生根 知持重衆生根, 知慳貪衆生根 知能捨衆生根,

바르게 집중하거나 삿되게 집중하거나 집중하지 못하는 중생의 근기를 알며,

진중하지 못하고 가벼이 날뛰는 輕躁(경조)한 중생의 근기를 알며, 

의젓하고 예의바른 持重(지중) 중생의 근기를 알며, 간탐하는 중생의 근기를 알며, 

능히 버리는 중생의 근기를 알며, 

 

知恭敬衆生根 知不恭敬衆生根, 知淨戒 不淨戒衆生根, 知瞋恚 忍辱衆生根,

공경하는 중생의 근기를 알며공경하지 않는 중생의 근기를 알며,

계행이 깨끗하거나 깨끗하지 못한 중생의 근기를 알며, 

성내거나 인욕하는 중생의 근기를 알며,

 

知精進 懈怠衆生根, 知亂心 攝心 愚癡 智慧衆生根, 知無畏 有畏衆生根,

정진하거나 게으름 피우는 중생의 근기를 알며,

마음이 산란하거나 섭수된 중생의 근기를 알며,

우치하거나 지혜로운 중생의 근기를 알며,

두려움이 있거나 두려움이 없는 중생의 근기를 알며,

 

知增上慢 不增上慢衆生根, 知正道 邪道衆生根, 知守根 不守根衆生根,

知求聲聞衆生根 知求辟支佛衆生根 知求佛道衆生根。

잘난 체하거나 잘난 체하지 않는 중생의 근기를 알며,

바른 도와 삿된 도의 중생의 근기를 알며,

감관을 지키거나 감관을 지키지 않는 중생의 근기를 알며,

성문을 구하는 중생의 근기를 알며,

벽지불을 구하는 중생의 근기를 알며, 불도를 구하는 중생의 근기를 아나니,

 

於知衆生根中 得自在方便力故 名爲知根。

중생에게 뿌리내리게 되는 업(業)의 모습= 根機(근기)를 알게 됨에 따라 걸림 없고 막힘없는 방편의 힘을 얻을 수 있게 되는까닭에 이를 일컬어 근기를 아는 지근(知根)이라 하며, 

 

菩薩行是五根增長 能破煩惱 度衆生 得無生法忍 是名五力。

復次 天魔 外道不能沮壞 是名爲力。

보살이 이러한 5근(五根)을 증장시킬 수 있도록 행하여, 능히 번뇌를 깨뜨릴 수 있게 되고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나니, 이러함을 다섯 가지 힘= 五力(오력)이라 하며,

또한 천마(天魔)를 비롯한 외도(外道)들이 능히 방해하거나 부수지 못하나니, 이러함을 힘(力)이라 하느니라.

 

七覺分者 菩薩於一切法 不憶不念 是名念覺分。

一切法中 求索善法 不善法 無記法 不可得 是名擇法覺分。

7각분(七覺分)이라 함은 보살이 일체법에 대하여 기억하거나 생각하지 않는 것을 염각분(念覺分)이라 하며, 

일체법 가운데 착한 선법ㆍ나쁜 악법ㆍ무기의 법을 구하여 얻고자 하지 않 것을 택법각분(擇法覺分)이라 하며, 

 

不入三界 破壞諸界相 是名精進覺分.

삼계에 들지 않고서 모든 계의 모습을 파괴하는 것을 (생사고해의 윤회에 들어가지 않는 것을) 정진각분(精進覺分)이라 하며, 

於一切作法 不生著樂 憂喜相壞故 是名喜覺分。

일체의 만들어진 법에 대하여 즐기어 집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아 근심과 기쁨의 모습이 무너진 까닭에 희각분(壽覺分)이라 하며, 

於一切法中除心 緣不可得故 是名除覺分。

일체법 가운데 마음에 갈무리된 연(緣) 제외하고는 찾을  없으므로 제각분(除覺分)이라 하며, 

知一切法常定相 不亂不定 是名定覺分。

일체법은 항상 안정된 모습이어서 어지러운 것도 흩어진 것도 아니라고 아는 것을 정각분(定覺分)이라 하며, 

於一切法不著不依止 亦不見是捨心 是名捨覺分。

일체법에 대해 집착하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않으며 또한 이러한 버리고자 하는 마음= 捨心(사심)조차 보지 않는다면 이를 사각분(捨覺分)이라 하나니, 

菩薩 觀七覺分空如是。

보살이 7각분(七覺分)의 공함을 관찰함은 이와 같으니라.

 

問曰, 此七覺分 何以略說?

묻나니, 어찌하여 이 7각분(七覺分)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입니까?

 

答曰, 七覺分中 念 慧 精進 定 上已廣說。三覺今當說。

菩薩行喜覺分 觀是喜非實。何以故, 是喜 從因緣生 作法 有法 無常法 可著法。

若生著 是無常相 變壞則生憂 凡夫人以顚倒故 心著。

답하나니, 칠각분(七覺分) 가운데서 생각(念) 지혜(知慧) 정진(精進) 정(定)은 앞에서 이미 자세히 말하였으니, 나머지  각분을 이제 설명하리라.

보살은  희각분(喜覺分)을 행할 때에  기쁨=喜(희)가 진실하지 않음을 관찰하나니,

왜냐하면  희(喜)는 인연으로부터 생겨난 작법(作法)이고, 존재의 법인 有法(유법)이며, 무상(無常)한 법이며, 집착하게 하는 법이기 때문이라. 

만약 집착하게 되면 이는 무상한 모습이고, 변하여 마침내 무너져 버리게 되니 곧 근심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나, 

범부들은 마음이 뒤바뀌어 전도되었기 때문에 마음으로 집착하는 것이나, 

 

若知諸法實空 是時心悔 我則受虛誑。

如人闇中 飢渴所逼 食不淨物, 晝日觀知 乃覺其非。

若如是觀 於實智慧中生喜 是爲眞喜。

만약 제법이 실제로 공한 것임을 알게 되면 이 때에 뉘우치며 이렇게 생각하나니, 

‘나는 허망한 것에 속임을 당하고 있었구나. 마치 어떤 사람이 암흑 속에서 굶주림과 목마름에 시달리면, 더러운 것이라도 먹게 되지만 밝은 대낮에 살펴서 알게 되면 깨달아 먹지 않는 것과 같구나.’

만약 이와 같이 관찰한다면 진실한 지혜 가운데에서 기쁨이 우러나오게 되나니, 이러한 것이 참기쁨= 眞喜(진희)이니, 

 

得是眞喜 先除身麤 次除心麤 然後除一切法相 得快樂遍身心中 是爲除覺分。

이러한 眞喜(진희)를 얻게 되면, 먼저는 몸의 거칢= 身麤(신추)를 제거하고, 다음에는 마음의 거칢= 心麤(심추)를 제거하며, 그러한 후에는 일체법(一切法)에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는 삿된 견해를 없애는 법상(法相)을 없애어 쾌락이 몸과 마음에 두루함을 얻게 되나니, 이것이 제각분(除覺分)이며, 

 

旣得喜 除捨諸觀行 所謂無常觀 苦觀 空無我觀 生滅觀 不生不滅觀 有觀無觀 非有非無觀 如是等戲論盡捨。

何以故, 無相 無緣 無作 無戲論, 常寂滅是實法相。

이미 희각분과 제각분을 얻었다면 모든 관행(觀行) 버리나니, 이른바 무상관(無常觀)ㆍ고관(苦觀)ㆍ공관(空觀)ㆍ무아관(無我觀)ㆍ생멸관(生滅觀)ㆍ불생불멸관(不生不滅觀)ㆍ유관(有觀)ㆍ무관(無觀)ㆍ비유비무관(非有非無觀) 등의 이러한 희론을 모두 버리나니, 

왜냐하면 모습 없는 무상(無相), 반연이 없는 무연(無緣), 지음이 없는 무작(無作), 희론 없는 무희론(無戲論)이며, 항상 적멸한 것이 참된 법의 모습 실법상(實法相)이기 때문이니라.

 

若不行捨 便有諸諍。若以“有”爲實 則以“無”爲虛, 若以“無”爲實 則以“有”爲虛,

若以“非有非無”爲實 則以“有無”爲虛。於實愛著 於虛恚憎 生憂喜處 云何不捨?

得如是 喜 除 捨 七覺分 則具足滿。

만약에 버림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문득 모든 다툼이 있게 되나니,

만약 있음의 유(有, 유위有爲)를 진실이라 한다면 무(無, 무위無爲)를 헛되다 할 것이며,

무(無, 무위無爲)를 진실이라 한다면 유(有, 유위有爲)를 헛되다 할 것이며,

비유(非有)ㆍ비무(非無)를 진실이라 한다면 유무(有無) 모두를 헛되다 할 것이며,

진실에 애착하여 헛된 것에는 성을 내어 근심과 기쁨의 영역을 일으키게 되거늘 어찌 버리지 않으리.

이와 같이 하여 희각분(喜覺分)과 제각분(除覺分) 사각분(捨覺分)을 얻게 되면 7각분(七覺分)을 두루 갖추어 만족하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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