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初品中 羼提波羅蜜 法忍義 第二十五 卷第十五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경량 엮음 참조

25. 초품 중 찬제바라밀(提波羅蜜)의 법인(法忍)의 뜻을 풀이함 2

 

如說 佛苦行六年 魔王來言, '利貴人 汝千分生中 正有一分活耳! 速起還國 布施修福 可得今世後世 人中天上之樂, 道不可得 汝唐勤苦。汝若不受軟言 守迷不起 我當將大軍衆 來擊破汝!'

전하는 말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6년간 고행하시는데, 마왕이 와서 말하기를, '찰리(刹利, kṣatriya 찰제리刹帝利) 귀인이여, 그대의 목숨은 이제 천분의 일밖에 남지 않았으니, 속히 일어나 네 나라로 돌아가서 보시하고 복을 닦으면 금생과 후생에서 인간과 하늘의 즐거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그대는 도는 얻을 수 없으리니, 공연한 헛수고를 하고 있구나. 그대가 만약 내가 부드럽게 말하여 주는 것을 듣지 않고, 미혹하게 않아서 일어나지 않는다면, 내가 당연히 큰 마군의 무리를 이끌고 와서 그대를 쳐부수리라!' 하니, 

 

菩薩言, '我今當破汝 大力內軍 何況外軍?'

魔言, '何等是我內軍?'

보살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지금 그대의 큰 힘을 지닌 내군(內軍, 육입)을 무찔렀거늘 하물며 밖의 군사(육경)이겠는가?'

마군이 말하기를, '어떠한 것이 나의 내군(육입)인가?'

 

答曰, 欲是汝初軍 憂愁爲第二 飢渴第三軍 渴愛爲第四。

그러자 보살이 답하기를, 욕망은 너의 첫 번째 군사요, 근심은 두 번째요, 주림과 갈증은 세 번째 군사요, 갈애는 네 번째 군사이다.

 

睡眠第五軍 怖畏爲第六 疑悔第七軍 瞋恚爲第八 利養虛稱九 自高蔑人十。

졸음은 다섯 번째 군사요, 두려움과 무서움은 여섯 번째요

의심과 뉘우침은 일곱 번째 군사요, 성내어 노함은 여덟 번째요, 
사리사욕을 챙기며 헛된 명예를 얻으려 드는 것은 아홉 번째요,
스스로 교만하여 남을 업신여김은 열 번째이니라.
 

如是等軍衆 厭沒出家人 我以禪智力 破汝此諸軍 得成佛道已 度脫一切人。

이와 같은 마군의 무리가 출가한 사람을 홀려서 (수행을 싫어함에) 빠뜨리니,

나는 선정과 지혜의 힘으로, 너의 모든 군사들을 무찌르고,

불도를 이룬 뒤에는, 모든 사람들을 제도하리라.

 

菩薩於此 諸軍雖未能破 著忍辱鎧 捉智慧劍 執禪定楯 遮諸煩惱箭 是名內忍。

보살은 여기에서 모든 군사들을 다 굴복시키지는 못하였으나, 인욕의 갑옷을 입고, 지혜의 검을 잡고, 선정의 방패를 들고서, 번뇌의 화살을 막았으니, 이러한 것을 안의 인욕=內忍(내인)이라 하며, 

 

復次 菩薩 於諸煩惱中 應當修忍 不應斷結。何以故, 若斷結者 所失甚多 墮阿羅漢道中 與根敗無異。是故 遮而不斷 以修忍辱 不隨結使。

또한, 보살은 모든 번뇌에 대하여 인욕을 닦되 번뇌=諸結(제결)을 끊지는 않았으니,

왜냐하면 만약 번뇌를 끊게 되면 잃는 바가 매우 많으니, 즉 아라한의 도에 떨어져서 근(根)이 무너진 자들과 다름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막기만 하고 끊어내지 않는 것이니, 인욕을 닦으면 번뇌=結使(결사)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니라.

 

問曰, 云何結使 未斷而能不隨?

묻나니, 어찌하여 번뇌를 끊지 않고서도 능히 따르지 않게 되는 것입니까?

 

答曰, 正思惟故 雖有煩惱 而能不隨。

답하나니, 바르게 사유하는 까닭에 비록 번뇌가 있으나 능히 따르지 않게 되는 것이며, 

 

復次 思惟觀空 無常相故 雖有妙好五欲 不生諸結。

譬如 國王有一大臣 自覆藏罪 人所不知。

王言, '取無脂肥羊來 汝若不得者 當與汝罪'

大臣有智 繫一大羊 以草穀好養, 日三以狼而畏怖之 羊雖得養 肥而無脂。牽羊與王 王遣人殺之 肥而無脂。

王問, '云何得爾?'  答以上事。

菩薩 亦如是 見無常 苦 空狼 令諸結使脂消 諸功德肉肥。

또한, 바르게 사유하여 공하고 무상한 특징=相(상)을 관찰하기 때문에 비록 매우 좋은 오욕(五欲)이 있으나, 모든 번뇌=諸結(제결)를 일으키지 않나니,

비유하자면 어떤 국왕의 한 대신이 자신의 죄를 숨기고 덮어서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한 것과 같으니,

왕이 말하기를, '기름기 없는 염소고기를 가져오라. 네가 만약 그것을 가져오지 못하면 너에게 벌을 내리리라.'하니, 

대신은 지혜가 많았으므로, 큰 염소 한 마리를 매어두고 풀과 곡식으로 잘 양육하는 한편 날마다 세 차례씩 이리를 몰아다가 겁을 주어 두렵고 무섭게 하였다. 이에 염소는 비록 좋은 음식은 얻었으나 기름지지 않았으므로, 염소를 끌어다가 왕에게 바치니, 왕은 사람을 시켜 잡았는데, 과연 살은 쪘으나 기름기가 없었다.

이에 왕이 묻기를, '어떻게 그리 할 수 있었는가?' 그러자 대신은 위의 사실을 자세히 대답하였다 

보살도 그와 같이, 무상(無常)과 고(苦), 공(空)을 이리로 봄으로써 모든 번뇌의 기름이 사라지고 공덕의 살이 찌는 것이다.

 

復次 菩薩功德 福報無量故 其心柔軟 諸結使薄 易修忍辱。

譬如 師子王 在林中吼 有人見之 叩頭求哀 則放令去, 虎豹小物 不能爾也。

何以故, 師子王貴獸 有智分別故, 虎豹賤虫 不知分別故。

又如壞軍 得値大將則活 値遇小兵則死。

또한, 보살의 공덕과 복된 과보가 무량하므로, 그 마음이 부드럽고, 모든 번뇌의 매듭이 엷어져서 인욕을 닦기가 쉬우니, 비유하자면, 마치 사자왕이 숲속에서 포효하는데 어떤 사람이 보고 머리를 숙여 애걸하면 놓아 주어 가게 하거니와 범이나 이리는 그렇지 못하나니, 왜냐하면 사자는 귀한 짐승이어서 지혜로운 분별이 있거니와 범이나 이리는 미천한 짐승이라 분별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무너지게 된 군대는 대장을 만나면 즉시 살아 날 수 있거니와 졸병을 만나면 죽게 되는 것과 같으며,

 

復次 菩薩智慧力 觀瞋恚 有種種諸惡, 觀忍辱 有種種功德, 是故能忍結使。

또한 보살은 지혜의 힘으로 성냄에는 갖가지 죄악이 있음을 관찰하고, 인욕에는 갖가지의 공덕이 있음을 관찰하므로 번뇌=結使(결사)를 능히 인내할 수 있으며,

 

復次 菩薩心有智力 能斷結使 爲衆生故 久住世閒, 知結使是賊 是故 忍而不隨。

菩薩繫此結賊 不令縱逸 而行功德, 譬如有賊 以因緣故 不殺 堅閉一處 而自修事業。

또한, 보살은 마음에 지혜의 힘이 있으므로 능히 번뇌의 매듭을 끊을 수 있으나,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세상에 머무르는 것으로, 번뇌=結使(결사)가 곧 도적임을 잘 알며, 그러므로 인내할 뿐 (번뇌를) 따르지는 않는 것이라.

보살은 이 결사의 도적을 결박하여 풀려나지 못하게 하고서 공덕을 행하나니,

비유하자면, 도적일지라도 인연 때문에 죽이지 않고 한 곳에 가두어 놓고, 스스로는 사업(事業)을 닦는 것과 같으며,

 

復次 菩薩實知 諸法相故 不以諸結使爲惡 不以功德爲妙, 是故 於結不瞋 功德不愛。以此智力故 能修忍辱。如偈說;

또한, 보살은 실로 제법의 실상을 알기 때문에 모든 번뇌를 삿되다 하지 않으며, 공덕을 묘하다 하지도 않으며, 번뇌에 대하여 성내지도 않고 공덕에 대하여 애착하지도 않음으라.

이러한 지혜의 힘으로 능히 인욕을 닦나니, 게송에서 말하는 바와 같으니라.

 

菩薩斷除諸不善 乃至極微滅無餘, 大功德福無有量 所造事業無不辦。

보살은 착하지 않은 모든 불선(不善)을 끊어 버리어, 아주 미세한 티끌도 남기지 않나니

큰 공덕의 복은 한량이 없고, 하고자 하는 일들 힘들지 않게 이루지 못함이 없으며,

 

菩薩大智慧力故 於諸結使不能惱, 是故能知諸法相 生死涅槃一無二。

보살은 큰 지혜의 힘을 지닌 때문에, 모든 번뇌의 매듭에 시달리지 않나니

이러한 까닭에 제법의 실상을 능히 알고, 생사와 열반이 하나요, 둘이 아님을 아는 것이며, 

 

생사(生死)는 실마리()이요 열반은 갈무리()이기 때문입니다.-마하반야바라밀다경

 

如是種種因緣 雖未得道 於諸煩惱法中能忍 是名法忍。

이와 같은 갖가지 인연 때문에 비록 도를 얻지는 못하였으나, 모든 번뇌의 법에 대하여 능히 인욕하나니, 이를 법인(法忍)이라 하느니라.

 

復次菩薩 於一切法 知一相無二。一切法可識相 故言一。眼識識色 乃至 意識識法 是可識相法 故言一。

또한 보살은 일체법은 한 모습=一相(일상)이어서 둘이 아님을 알며, 일체법은 분별할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에 하나라고 하나니, 눈의 의식=眼識(안식)으로 색을 알고, 나아가 뜻의 意識(의식)으로 일체법을 인식하여 알며, 이렇게 분별하여 아는 모습의 법=識相法(식상법)이기 때문에 하나라고 하느니라.

 

復次 一切法可知相 故言一。苦法智 苦比智 知苦諦, 集法智 集比智 知集諦, 滅法智 滅比智 知滅諦, 道法智 道比智 知道諦。及善世智 亦知苦集滅道 虛空 非智緣滅 是可知相法 故言一。

또한, 일체법은 알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에 하나라 하나니, 고법지(苦法智)ㆍ고비지(苦比智)를 통하여 고제(苦諦)를 알게 되며, 집법지(集法智) ㆍ집비지(集比智)를 통하여 집제(集諦)를 알게 되며, 멸법지(滅法智)ㆍ멸비지(滅比智)를 통하여 멸제(滅諦)를 알게 되며, 도법지(道法智)ㆍ도비지(道比智)를 통하여 도제(道諦)를 알게 되며,

또한 세속의 선한 지혜=善世智(선세지)를 통하여 고집멸도(苦集滅道)를 알 수 있으며, 허공과 非智緣滅(비지연멸)을 알 수 있으므로 이를 일체법을 아는 모습=可知相法(가지상법)이라 하며, 그러한 때문에 하나라고 말하는 것이다.

 

復次 一切法可緣相 故言一。眼識 及眼識相應法緣色, 耳識 鼻識 舌識 身識亦如是, 意識 及意識相應法 亦緣眼 亦緣色 亦緣眼識 乃至緣意 緣法 緣意識。一切法可緣相 故言一。

또한 일체법은 반연할 수 있는 상(相)이기 때문에 하나라 하나니, 안식(眼識)과 안식(眼識)에 상응하는 법은 색(色)을 반연하고, 이식(耳識)과 비식(鼻識), 설식(舌識)과 신식(身識) 역시도 이와 같으며,

의식(意識)과 의식(意識)에 상응하는 법은 또한 눈을 반연하고 색을 반연하고 안식(眼識)을 반연하며, 나아가 뜻(意)을 반연하고, 법을 반연하고, 의식(意識)을 반연하나니,

곧 일체법은 반연할 수 있는 모습=可緣相(가연상)이기에 하나라 하는 것이다.

 

復次 有人言, 一切法各皆一 一復有一名爲二 三一名爲三 如是乃至千萬 皆是一而假名爲千萬。

또한 어떤 사람은, '일체법은 각각 나름의 하나이며, 하나에 다시 하나가 더 있는 것을 둘이라 하고, 하나가 셋으로 된 것을 셋이라 하며, 마찬가지로 천만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하나이건만 거짓으로 천만이라 하는 것이다.'말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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