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初品中 ‘舍利弗因緣’第十六 卷第十一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임 경량 엮음 참조
16. 초품 중 '사리불의 인연'을 풀이함 2
二師 與二百五十弟子 俱到佛所。佛遙見 二人與弟子俱來 告諸比丘, '汝等 見此二人 在諸梵志前者不?'
諸比丘言, '已見'
佛言, '是二人者 是我弟子中 智慧第一 神足第一弟子'
두 범지(아난과 대목건련)이 250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 오니, 부처님께서는 두 사람이 제자들과 함께 오는 것을 멀리서 보시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저 모든 범지들의 앞에 있는 두 사람을 보았느냐?'
비구들이 대답하여, '이미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두 사람은 나의 제자 가운데서 지혜 제일이며, 신통 제일의 제자가 되리라.'
大衆俱來 以漸近佛 旣到稽首 在一面立 俱白佛言, '世尊, 我等於佛法中 欲出家受戒'
佛言, '善來比丘' 卽時鬚髮自落 法服著身 衣鉢具足 受成就戒。鬚 수염 수
대중들과 함께한 그들이 점점 부처님께 가까이 이르러, 이윽고 부처님 곁에 이르게 되자, 稽首(계수)=머리를 숙여 절하고 한쪽에 서서 다 같이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불법 가운데 출가하여 계를 받고자 하옵니다.'
부처님께서 '훌륭하구나, 비구여'라고 말씀하시니,
즉시 머리칼과 수염이 저절로 깎여 떨어지고, 법복이 몸에 입혀지고 의발이 갖추어져, 계(戒)를 성취하고, 정(定)을 성취하고, 혜(慧)를 성취하고자 하는=成就戒(성취계)를 받아 지니게 되었다.
過半月後 佛爲長爪 梵志說法時 舍利弗得阿羅漢道。
所以半月後 得道者 是人當作 逐佛轉法輪師 應在學地 現前自入諸法 種種具知 是故半月後 得阿羅漢道。
반 달이 지난 뒤에 부처님께서 장조범지(長爪梵志, brahmacārin Dīrghanakha, 사리불의 외삼촌)에게 설법하실 때에 사리불은 아라한의 도를 얻었으니, 이렇게 반 달 뒤에 도를 얻게 된 까닭은 장차 이 사람은 부처님을 따라 법륜을 굴릴 스승이 될 것이기에 배우는 이의 경지=學地(학지, 유학有學-배움이 남은 경지)에서 앞에 나타나는 제법(諸法)에 스스로 들어가서 갖가지로 갖추어 알아야 하므로, 반 달 뒤에 아라한의 도를 얻게 되었다.
長爪梵志(장조범지)=손톱이 긴 바라문, 논의제일 ‘마하 구치라’는 사리불 존자의 외삼촌으로 경을 통달할 때까지 손톱을 깎지 않겟노라고 서원을 세우고 경을 읽어서, 손톱이 긴 장조범지(長爪梵志)라 하였다. 출가하여 능수능란하게 변재가 뛰어나 어떠한 어려운 질문에도 잘 대답했으므로 문답제일이라 불리웠다.
阿羅漢(아라한, Arhat). 줄여서 나한(羅漢),
초기불교 이래의 여래10호(如來十號) 또는 불10호(佛十號) 가운데 하나.
부파불교의 성문4과(聲聞四果) 가운데 최고의 계위인 아라한과 또는 아라한과의 성자.
부파불교의 성문4과(聲聞四果)의 세분된 형태인 4향4과(四向四果) 가운데 최고의 계위인 아라한향과 아라한과를 통칭하거나, 또는 아라한향이나 아라한과의 성자를 말한다.
아라가(阿羅呵) 또는 아라하(阿羅呵), 의역하여 살적(殺賊) · 불생(不生) · 응수공양(應受供養) 또는 응공(應供)이라고도 하며, 더 배워야 할 것 또는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는 유학(有學)의 성자에 대비하여, 성도(聖道)를 모두 성취했기에 더 배워야 할 것 또는 더 알아야 할 것이 없다는 뜻에서 무학(無學) 또는 무학인(無學人)이라고도 한다.
'대지도론' 등에서 아라한을 부처의 다른 명칭으로 해설하고 있는 것에서 보듯이, 아라한은 넓은 뜻에서는 대승불교의 보살 수행계위와 부파불교의 4향4과의 수행계위에서 최고의 계위의 성자를 가리키며, 좁은 뜻에서는 부파불교의 4향4과의 수행계위에서 최고의 계위의 성자를 가리킨다. 불교 경전과 논서들에서의 아라한의 의미는 이러한 문맥에 따라 달리 해석하여야 한다.-위키
如是等 種種功德甚多 是故 舍利弗 雖是阿羅漢 佛以是 般若波羅蜜甚深法 爲舍利弗說。
이러한 등의 여러 공덕으로 갖추어야 할 믿음과 지혜가 참으로 많은 까닭에, 사리불이 비록 아라한을 성취하였지만, 부처님께서는 반야바라밀의 매우 깊은 법을 사리불을 위하여 말씀하신 것이니라.
問曰, 若爾者 何以 初少爲舍利弗說 後多爲須菩提說? 若以智慧第一故 應爲多說, 復何以 爲須菩提說?
묻나니, 만약 그러시다면 어찌하여 처음에 사리불에게 조금만 말씀하시고, 후에 수보리에게는 많이 말씀하신 것입니까? 만일 지혜가 제일이기 때문이라면 응당 그에게 많이 말씀하셨어야 하거늘 어찌하여 다시 수보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答曰, 舍利弗 佛弟子中 智慧第一, 須菩提 於弟子中 得無諍三昧 最第一。
無諍三昧相 常觀衆生 不令心惱 多行憐愍。諸菩薩者 弘大誓願 以度衆生 憐愍相同 是故命說。
답하나니, 사리불 존자는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지혜가 제일이요, 수보리 존자는 제자들 가운데서 무쟁삼매(無諍三昧, araṇā-vihāriṇāṃagryaḥ)를 얻은 것으로 으뜸이라.
무쟁삼매의 특징은 항상 중생을 관찰하여 마음에 번뇌를 내지 않으며, 가엾이 여기는=憐愍(연민)의 행을 많이 하는 것이요, 보살들은 큰 서원을 세워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나니, 곧 가엾이 여기는 상(相)이 같으므로 수보리 존자에게 명하여 설하라 하신 것이니라.
행(行)의 뜻에 여러 가지가 있으나, 이 경(經)에서는 대부분이 “자세히 살피다.”라는 뜻으로 쓰입니다.-마하반야바라밀다경
무쟁삼매(無諍三昧, araṇā-vihāriṇāṃagryaḥ)=무쟁(無諍)은 양변을 떠난(離二邊) 중도(中道)를 지향한다. 이 법은 융합하고, 소통하고, 수용하며, 평등한 법으로 높고 낮음과, 좋고 나쁨과, 옳고 그름에 치우치지 않는다. 한쪽 세력에 따라 이것만이 옳고 다른 것을 그르다고 고집하지 않는 것이다.
다툼 없는 법은 눈이 생기고(成眼), 지혜가 생겨(成智), 자재하게 선정을 이루고(自在成定), 지혜로 나아가고(趣智), 깨달음으로 나아가고(趣覺), 열반으로 나아간다(趣於涅槃). 이 법은 육체적 괴로움도 없고(無苦), 정신적 번민도 없고(無煩), 번뇌의 더움도 없고(無熱), 근심걱정도 없는(無憂慽) 바른 행(正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툼 없음(無諍)의 공덕을 닦아야 한-아미산
復次 是須菩提 好行空三昧 如佛在忉利天 夏安居受歲已 還下閻浮提。
爾時 須菩提 於石窟中住 自思惟, ‘佛從忉利天來下 我當至佛所耶? 不至佛所耶?'
又念言, ‘佛常說, 若人以智慧眼 觀佛法身 則爲見佛中最'
또한 수보리 존자는 공삼매(空三昧) 행하기를 좋아하였으니, 마치 부처님께서 도리천(忉利天, 삼십삼천, 육욕천의 두 번째 천)에서 하안거(夏安居)를 보내시고 법랍(法臘 나이,歲)을 하나 더하신 뒤 염부제에 내려오신 때였었다.
이때 수보리가 석굴 속에 있으면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부처님께서 도리천으로부터 내려오셨으니, 내가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야 하는가? 가지 말아야 하는가?’
또한 생각하기를, 부처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만약 어떤 사람이 지혜의 눈으로 부처님의 법신(法身)을 관찰한다면, 그것이 부처님을 뵙는 가운데서 가장 으뜸이니라" 하셨음이라....
공삼매(空三昧)=불교 용어로서의 공(空)에는 허공 · 공간을 의미하는 공(空, ākāśa)이 있는데 지수화풍 공식의 6대에서의 공이 이 경우이다. 또한, 어떤 것의 실제 내용을 얻을 수 없으므로 공하다고 할 때의 공함(空, śūnyatā)을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어 일체개공에서의 공이 이 경우이다. 공삼매(空三昧, śūnyatā-samādhi, samādhi of emptiness)에서의 공은 후자의 경우이다.
공삼매는 일체 모든 현상[일체제법]이 다 공함[śūnyatā]을 보는 것을 말한다. 이는 불교의 4성제 가운데 고제(苦諦) 즉 '일체가 다 고다'라는 진리의 네 가지 모습[행상(行相)] 가운데에서 공, 무아늬 모습을 보는 것과 상응하는 삼매이다. 이 삼매를 통해 모든 현상이 인연으로 일어나며, 나와 나의것 둘이 모두 공함을 본다.-위키
도리천(忉利天, Trāyastriṃśa) 삼십삼천. 욕망으로 이루어진 세계인 6욕천 가운데 두 번째 천으로 수메루산 위에 있다고 한다.
法臘법랍=출가하여 승려가 된 해부터 세는 나이
是時 以佛從忉利天下故 閻浮提中 四部衆集 諸天見人 人亦見天。
座中有佛 及轉輪聖王 諸天大衆 衆會莊嚴 先未曾有!
이때 부처님께서 도리천에서 내려오신 까닭에 염부제 안의 사부대중들이 모였으니, 여러 하늘의 무리가 사람들을 보게 되고, 사람들 또한 하늘 무리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좌중(座中)에 부처님께서 계시고, 전륜성왕과 하늘의 대중들이 무리를 이루어, 그 모임을 장엄하여, 일찍이 볼 수 없었던 광경을 이루었다.
須菩提心念, ‘今此大衆 雖復殊特 勢不久停 磨滅之法 皆歸無常'
因此無常觀之初門 悉知諸法 空無有實, 作是觀時 卽得道證。
이에 수보리 존자가 생각하기를, ‘지금 이 대중이 비록 아무리 뛰어나게 수승하다고 하나, 그 형세가 오래 머물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제법이 닳아 없어지는 것으로써, 모두가 무상(無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이와 같이 무상관의 초문(初門)을 관찰함에 의하여, 수보리 존자는 제법(諸法)은 공하여 있지 않는 것임을 모두 알게 되었으며, 이러한 관찰을 행하여 곧 도를 증득하게 되었다.
悉知諸法(실지제법)= '모든 중생이 인연의 변화에 의해서 잠시 인연의 현상과 작용 속에 있게 된 것”임을 소상하게 밝힐 수 있게 되었다는 뜻.-마하반야바라밀다경
爾時 一切衆人 皆欲求先見佛 禮敬供養。
有華色比丘尼 欲除女名之惡 便化爲轉輪聖王 及七寶千子 衆人見之 皆避坐起去。
그때, 일체 대중들 모두는 자기가 먼저 부처님을 뵙고 예배하고 공양하고자 하였는데,
화색(華色, Utpalavarṇā)이라는 비구니가 있어, 여자라는 불편함=惡(악)을 버리기 위하여, 곧 전륜성왕과 칠보로 장엄한 천 명의 태자로 스스로의 오온을 변화시키니, 대중들이 보고는, 모두 일어나 자리를 피하여 떠나버렸다.
화색(華色, Utpalavarṇā)비구=연화색(蓮華色 Utpalavarṇā) 제바달다에게 주먹으로 맞아 죽게 된 비구니로 기구한 사연을 지닌 인도 제일의 미녀.-마하반야바라밀다경.
化王到佛所已 還復本身 爲比丘尼 最初禮佛。
是時 佛告比丘尼, '非汝初禮 須菩提 最初禮我。所以者何, 須菩提觀諸法空 是爲見佛法身 得眞供養 供養中最, 非以致敬生身爲供養也' 以是故 言須菩提 常行空三昧 與般若波羅蜜 空相相應。以是故 佛命令 說般若波羅蜜。
(화색 비구니의) 변화한 전륜성왕이 부처님 계신 곳에 가서는 본래의 몸으로 돌아가, 비구니로서는 최초로 부처님께 예를 올렸다
이에 부처님께서 비구니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처음 예를 올린 것이 아니라, 수보리가 최초에 예배하였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는 모든 법이 공함을 관찰하였으니, 이는 부처의 법신을 본 것이며 참 공양을 얻은 것이라. 이는 공양 가운데 으뜸이으로, 生身(생신)에 예경하는 공양은 그에 미치치 못하는 것이니라.'
이러한 까닭에 '수보리 존자는 항상 공삼매를 관찰하여 반야바라밀다의 공한 모습과 어우러져 相應(상응)한다'고 하며,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수보리 존자에게 반야바라밀다를 설하게 하신 것이니라.
復次 佛以衆生信敬 阿羅漢諸漏已盡 命之爲說 衆得淨信故。
諸菩薩漏未盡 若以爲證 諸人不信。以是故 與舍利弗 須菩提 共說般若波羅蜜。
또한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이 아라한은 모든 누(漏, 유루有漏)가 이미 멸하여, 다하였음을 믿고 공경하는 까닭에 그에게 명하여 설하게 하셨으니, 대중들이 청정한 믿음을 얻게 되기 때문이라.
여러 보살들은 누(漏, 유루有漏)가 아직 다하지 않았거니와, 만약 그 보살들이 여러 중생들에게 설하여 증명하고자 한다면 사람들이 믿지 않을 까닭에 사리불과 수보리로 하여금 함께 반야바라밀을 설하게 하신 것이니라.
問曰, 何以名 舍利弗? 爲是父母所作字? 爲是依行功德立名?
묻나디, 어찌하여 사리불이라 부르는 것입니까? 부모가 지어 주신 이름입니까? 수행의 공덕에 의하여 얻어진 이름입니까?
答曰, 是父母 所作名字。於閻浮提中 第一安樂 有摩伽陁國, 是中有大城名王舍 王名頻婆娑羅。
답하나니, 이는 부모가 지어 준 이름이라. 염부제에서 제일 안락한 곳에 마가타국(摩伽陀國, Magadha)이 있었으며, 그 안에 왕사(王舍, 라자가하Rājagṛha 왕사성王舍城)라고 하는 큰 성이 있었으니, 왕의 이름은 빈바사라(頻婆娑羅, Bimbisāra)이며,
有婆羅門 論議師, 名摩陁羅 王以其人 善能論故 賜封一邑 去城不遠。
是摩陁羅 遂有居家 婦生一女 眼似舍利鳥眼 卽名此女爲舍利。
次生一男 膝骨麤大 名拘郗羅。
拘郗羅 秦言大膝也, 是婆羅門 旣有居家 畜養男女 所學經書 皆已廢忘 又不業新。
마타라(摩陀羅, Māṭhala, 사리불의 조부祖父)라는 바라문출신의 논사가 있었는데, 왕은 그 사람이 토론에 능하다 하여 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 읍을 식읍(食邑)으로 내렸으니,
마타라 바라문은 줄곧 집에 기거하였는데, 아내가 딸을 하나 낳았으니, 눈이 사리(舍利)새를 닮았으므로 그 딸을 사리(舍利 Śārī)라 불렀으며,
둘째로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무릎의 뼈가 굵고 커서 구치라(拘郗羅, Mahākauṣṭhila)라 하였으니, 秦진나라 말로는 큰 무릎=大膝(대슬)이라.
이 마타라 바라문은 줄곧 집에 있으면서 아들딸과 함께 가축을 길렀으며, 배웠던 경서들을 모두 폐지하여 잊게 되었으나, 다시 새로운 것을 익히혀 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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