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修而無修方便 닦되 닦음이 없는 방편.
善巧通達一切法하시며 正念勤修涅槃道하사 樂於解脫離不平하시니 此寂滅人方便力이로다
善巧通達一切法(선교통달일체법)하시며, 선교방편으로 일체법에 통달하고
[善巧= 巧, 공교로울 교여서 머리 굴리고, 재주 있는 것으로 이해하기 쉬운데, 본래의 善巧는 아주 익숙하고 자연스러워서 호흡과 같이 되는 것으로, 모든 행위ㆍ일체수행이 그렇게 됐을 때 修而無修 또는 無修而修.]
正念勤修涅槃道(정념근수열반도)하사. 正念= 중도정념으로 열반의 도 힘써 닦아 [正命 = 중도정명, 바른생활 직업]
樂於解脫離不平(낙어해탈이불평)하시니, 즐거이 해탈에서 평등치 못함을 여의면
[해탈을 즐겨 해서 不平= 평등하지 못한 것을 다 떠났으니]
此는 寂滅人方便力(차적멸인방편력)이로다. 이것이 적멸인의 방편력이로다
[寂滅人= 적멸한 사람, 적멸한 자리= 여여부동한 자리에 있는, → 우리 모두가 본래 적멸한데, 그 적멸한 것을 제대로 見知(견지) 한 사람. 寂滅人= 본래 우리 모두가 적멸한데, 그 적멸한 것을 제대로 견지 한 사람]
①廻向方便 회향하는 방편을 찬탄하다
有能勸向佛菩提하며 趣入法界一切智하며 善化衆生入於諦하시니 此住佛心方便力이로다
有能勸向佛菩提(유능권향불보리)하며, 어떤 이가 능히 불보리= 부처님의 깨달음에 향하기를 권하고
趣入法界一切智(취입법계일체지)하며, 법계의 일체지혜에 나아가며
善化衆生(선화중생)하여 入於諦(입어제)하시니, 중생을 잘 교화하여 진리에 들게 한다면
[교화하는 차원은 여러 가지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대접할 수가 있고, 옷을 줄 수가 있는 것에서부터 온갖 차원의 중생교화가 있는데 궁극에 가서는 깨달음ㆍ진리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此는 住佛心方便力(차주불심방편력)이로다. 이것이 불심에 머문 방편력이로다
[入於諦= 진리에 들어가게 했으니 此는 住佛心方便力= 불심에 머문 사람의 方便力이로다]
②證知方便 증득해서 아는 방편
佛所說法皆隨入하시며 廣大智慧無所礙하시며 一切處行悉已臻하시니 此自在修方便力이로다
[불교에는 방편이라는 말을 참 많이 쓰고, 어찌 보면 전부가 다 방편이라고도 말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현묘한 이치를 드러내는 화엄경이더라도 그 이치 자체는 아니니까, 말하자면 내용물을 담는 그릇으로 그것 또한 방편입니다. 화엄경뿐만 아니라 고준한 조사스님들의 법어도 역시 그것은 말씀이고, 문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방편입니다. 그러나 그 방편은 방편대로의 큰 덕을 가졌다 하는 내용 중에서 證知方便.
이런 과목은 과거에 화엄경을 연구하신 조사스님들이 붙인 과목이고, 화엄경 경전자체에는 이런 과목이 없지만 우리가 화엄경을 이해하는 데에 다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인용 한 것입니다.]
佛所說法皆隨入(불소설법개수입)하시며 부처님 설허신 법 다 좇아 들어가고
[부처님이 화엄경을 설했으면 화엄경에서, 법화경을 설했으면 법화경에서, 금강경을 설했으면 금강경에서 그 의미를 참구 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설법한 그 내용에 다 따라 들어간다. → 부처님이 설하신 화엄경, 법화경, 금강경을 읽으면서 그 의미를 참구 하는 것]
廣大智慧無所碍(광대지혜무소애)하시며, 광대한 지혜에 걸림이 없으며
[부처님 설법을 이해하는 데에 지혜가 필요하지요.]
一切處行에 悉已臻(일체처행실이진)하시니, 일체처= 모든 곳ㆍ모든 행위, 행에 이미 모두 이르렀다면 [臻 이를 진]
此自在修方便力(차자재수방편력)이로다. 이것이 자재한 수행의 방편력이로다
여기서는 寂用方便이라 그랬습니다. 되고 그렇지요. 그 의미를 가만히 살펴보면 다 이해가 되는 내용입니다.
③寂用方便 寂= 본체자리, 그 본체의 한 작용으로써의 用. 또는 照用(照=체ㆍ用=작용) 또는 黙照(묵조), 黙=체, 照= 작용
恒住涅槃如虛空하시며 隨心化現靡不周하시니 此依無相而爲相이라 到難到者方便力이로다
恒住涅槃如虛空(항주열반여허공)하시며, 항상 열반에 머물러 허공과 같으며
隨心化現靡不周(수심화현미불주)하시니, 마음따라 화현하여 미치지 않는 곳 없으면
[마음을 따라서 교화하여 나투는 것이 두루하지 아니함이 없다.
허공이 저렇게 텅 비었지만 모든 존재를 다 수용하고ㆍ용납하듯이, 항상 적멸하고 적정한 자리에 머물어도 마음을 따라서 변화하여 나투는데 두루하지 아니함이 없다. → 부처님의 교화 방편을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此依無相이나 而爲相(차의무상이위상)이라. 이것이 무상으로 상을 삼음이요
[寂用方便의 표현이 여기에 딱 맞아 떨어집니다. 無相을 의지했지만, 상이 된다. 근본은 무상입니다. 상 없음을 근본으로 하지만, 상없음을 근본으로 하면서 그 상 없는 자리에서 상을 나타내는 것. 지금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모든 상은 사실은 무상을 근본으로 한 依無相= 무상을 의지해서 다시 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익숙한 말로 이것을 眞空妙有(진공묘유) 眞空에서 妙有로, 또 遮(차)에서 照(조)로, 부정에서 긍정으로 했을 때 비로소 제대로 된 그 현상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이지요. 무상의 의미를 모르고 눈에 보이는 일차적인 假觀(가관)으로 본다면, 거기는 온갖 장애와 걸리는 것 투성입니다.]
到難到者(도난도자) 方便力이로다. 難到=이르기 어려운 데 이른 이= 부처님의 방편력이로다
④ 時劫方便
晝夜日月及年劫과 世界始終成壞相을 如是憶念悉了知하시니 此時數智方便力이로다
晝夜日月及年劫(주야일월급년겁)과, 밤낮과 날과 달과 해와 겁과 [주ㆍ야ㆍ일ㆍ월ㆍ년ㆍ겁. 그리고 그런 시간을 통해서]
世界始終成壞相(세계시종성괴상)을, 세계의 시종과 성괴의 모습
[成ㆍ住ㆍ壞ㆍ空. 과정, 모든 사물은 생주이멸, 계절은 춘하추동, 우리 인간은 생로병사가 있듯이 그런 과정을 전부 거쳐 가는 것을 如是憶念悉了知하시니, 불교에서 시절인연이라 하는데, 무엇이든지 시절인연에 적용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자연현상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사람 살아가는 일. 심지어 수행하는 일까지도 시절인연에 다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時劫方便이라 했는데요. 이러한 시절인연에 대한 사실들을 잘 기억해서 환히안다 = 悉了知]
如是憶念悉了知(여시억념실료지)하시니, 이러한 것을 기억하여 분명히 안다면
此時數智方便力(차시수지방편력)이로다 이것이 시수 지혜의 방편력이로다 [
[시절인연을 제대로 관찰해서 자기 살림살이ㆍ자기 삶으로 수용할 줄 아는 사람의 方便力이다]
[맹자에 어떤 사람이 논에 나가 보니까 심어놓은 벼가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는데도 별로 자란 것 같지 않아서, 논에 들어가서 빨리 자라라고 그 싹을 쑥 쑥 뽑아 놨더니 그 이튿날 와 보니까 벼가 전부 하얗게 말라 죽었더라는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그래 송나라 사람이 그랬다 해서 無若宋人然(무약송인연) 송나라 사람처럼 하지 말라. 모든 것은 시절인연이 있다는 뜻입니다]
[짧게는 晝夜ㆍ日月이 그렇고, 年ㆍ劫이 그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생로병사를 하고, 계절은 춘하추동으로 흘러가고, 世界는 始 終이 있는 가운데는 성주괴공이 있다]
⑤ 難思方便
一切衆生有生滅과 色與非色想非想의 所有名字悉了知하시니 此住難思方便力이로다
一切衆生有生滅(일체중생유생멸)과 모든 중생이 지닌 생멸과
色與非色想非想(색여비색상비상)의, 색, 비색과 상, 비상과
[九類衆生(9류 중생)= 태 란 습 화 색과 비색, 상과 비상 유색 무상, 유상]
所有名字를 悉了知(소유명자실요지)하시니, 지닌 이름을 분명히 다 안다면
此住難思(차주난사) 方便力이로다. 이것이 난사에 머문 방편력이로다
⑥ 廻向方便
過去現在未來世의 所有言說皆能了하사대 而知三世悉平等하시니 此無比解方便力이로다
過去現在未來世(과거현재미래세)의 과거 현재 미래세상과
所有言을 說皆能了(소유언설개능료)하사대, 쓰는 말들을 다 알 수 있고
[과거ㆍ현재ㆍ미래세의 모든 언어를 전부 안다. 러시아 말, 미국 말, 아프리카 말을 아는 정도가 아니라 과거ㆍ현재ㆍ미래세의 모든 언어들을 전부 다 명료히 안다.]
而知三世悉平等(이지삼세실평등)하시니, 삼세가 다 평등한 줄을 안다면
此無比解(차무비해) 方便力이로다. 이것이 무비해의 방편력이로다
[화엄경은 원만교기 때문에 원만한 것을 다 각도로 표현하고자 하는 10신 법문이다.
법문 제목도 열 제목으로, 게송도 열 게송입니다.]
九, 大悲濟衆德 大悲로써 중생들을 제도하는 덕.
(1) 光明徧照
爾時에 光明이 過一億世界하야 徧照東方十億世 界하고 南西北方과 四維 上下도 亦復如是하시니 彼一一世界中에 皆有百 億閻浮提와 乃至百億色 究竟天이라 其中所有가 悉皆明現하니
[光明은 부처님의 깨달음의 지혜를 상징하는 것이고, 불교란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 그 자체이고, 그것을 간단하게 우리에게 각인시키는 방법이 바로 초파일 등 다는 것이고, 인등을 켜는 것이고, 부처님 앞에 촛불 켜는 것입니다. 즉 불교의 본질은 깨달음에 있고 그 깨달음은 바로 지혜다. 그 깨달음의 지혜를 등불로 상징하여 늘 잊어버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爾時에 光明이 過一億世界(과일억세계)하야, 1억 세계를 지나서
遍照東方十億世界(변조동방십억세계)하고, 동방으로 10억 세계를 두루 비추고
南西北方(남서북방)과 四維上下(사유상하)도 亦復如是(역부여시)하시니,
남 서 북 방과 사유상하도 역시 이와 같이 하시니
彼一一世界中(피일일세계중)에, 저 낱낱 세계가운데 皆有百億閻浮提(개유백억염부제)와, 다 100억 염부제가 있고
乃至百億色究竟天(내지백억색구경천)이라. 내지 100억 색구경천도 있다.
其中所有(기중소유)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세계가 悉皆明現(실개명현)하니라. 환하게 다 나타났다.
(2) 世尊坐座 부처님이 자리에 앉으시다.
彼一一閻浮提中에 悉見如來가 坐蓮華藏師子之座어시든 十佛刹微塵數菩薩의 所共圍遶라
悉以佛神力故로 十方各有一大菩薩이 一一各與十佛刹微塵數諸菩薩로 俱하야 來詣佛所하시니
其大菩薩 은 謂文殊師利等이며 所從來國은 謂金色世界等이며 本所事佛은 謂不動智如來等이니라
彼一一閻浮提中(피일일염부제중)에, 저 낱낱의 염부제 안을 모두 보니
悉見如來(실견여래)가 坐蓮華藏師子之座(좌연화장사자지좌)어시든, 여래께서 연화장 사자좌에 앉으시어
十佛刹微塵數菩薩(십불찰미진수보살)의 所共圍遶(소공위요)라. 10불찰 미진 수 보살로 에워싸여 계셨으니.
悉以佛神力故(실이불신력고)로, 모두가 부처님 위신력 때문이었다.
十方各有一大菩薩(시방각유일대보살)이, 시방에 각각 있는 한 대보살이
一一各與十佛刹微塵數諸菩薩로 俱하야, 저마다 각각 10 불찰미진수의 보살들을 거느리고
來詣佛所(내예불소)하시니, 부처님 처소에 나아갔으니 其大菩薩은, 그 큰 보살은
謂文殊師利等(위문수사리등)이며, 이른바 문수사리 등이며
所從來國(소종래국)은, 떠나온 바 국토는 謂金色世界等(위금색세계등)이며, 이른바 금색세계 등이며
本所事佛(본소사불)은 謂不動智如來等(위부동지여래등)이니라.
본래 섬기는 부처님들은 이른바 부동지여래 등이시었다.
[文殊師利. 金色世界. 不動智. 이 세 낱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면 화엄경의 종지를 정말 이해하는 것이 되는, 그야말로 화엄경의 강령을 잡게 됩니다]
(3) 文殊菩薩의 偈頌
爾時에 一切處文殊師利菩薩이 各於佛所에 同時發聲하사 說此頌言하사
그때 모든 곳의 문수사리보살이 각자 부처님 처소에서 동시에 한 목소리로 이러한 게송을 설하사.
① 修行圓滿
1廣大苦行皆修習하사대 日夜精勤無厭怠하사 已度難度師子吼로 普化衆生是其行이로다
1.廣大苦行皆修習(광대고행개수습)하사대, 광대한 고행 모두 닦아 익히고
日夜精勤無厭怠(일야정근무염태)하사, 밤낮으로 정근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已度難度師子吼(이도난도사자후)로, 제도키 어려움을 제도한 사자후로
普化衆生是其行(보화중생시기행)이로다. 널리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 그 행이요
[普化衆生是其行 그 행은 廣大苦行, 廣大苦行皆修習한 그 행입니다.
是其行= 廣大苦行= 일단 수행, 고행을 해야 된다. 부처님도 수행을해서 깨달았고, 우리도 또한 수행하지 아니하면 안된다]
② 敎化三毒
2衆生流轉愛欲海하야 無明網覆大憂迫일새 至仁勇猛悉斷除하시니 誓亦當然是其行이로다
3世間放逸着五欲하야 不實分別受衆苦일새 奉行佛敎常攝心하사 誓度於斯是其行이로다
4衆生着我入生死하야 求其邊際不可得일새 普事如來獲妙法하사 爲彼宣說是其行이로다
5衆生無怙病所纏으로 常淪惡趣起三毒하야 大火猛焰恒燒熱일새 淨心度彼是其行이로다
6衆生迷惑失正道하야 常行邪徑入闇宅일새 爲彼大然正法燈하사 永作照明是其行이로다
7衆生漂溺諸有海하야 憂難無涯不可處일새 爲彼興造大法船하사 皆令得度是其行이로다
8衆生無知不見本하야 迷惑癡狂險難中일새 佛哀愍彼建法橋하사 正念令昇是其行이로다
9見諸衆生在險道하야 老病死苦常逼迫하고 修諸方便無限量하사 誓當悉度是其行이로다
2. 衆生流轉愛欲海(중생류전애욕해)하야, 중생이 애욕의 바다에 흘러 돌며
[중생들은 애욕의 바다에 流轉하지요. 극히 고생스럽다고 하면서도 그 일이 무슨 일이 됐던지 간에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포교당 운영도, 주지 살이도, 부전 살이도 그렇고, 힘든다ㆍ힘든다 하면서도 그 일을 계속하지요. 결국 그것은 愛欲, 애착입니다. 愛欲하면 갈애도 포함됩니다만, 흔히 그냥 일반적으로 애착이라고 하면 제일 쉽습니다. 너 나할 것 없이 그것이 좋은 일이 됐든지, 나쁜 일이 됐든지 거의 애착이라고 표현하면 십중팔구 다 맞습니다.]
無明網覆하야 大憂迫(무명망부대우박)일새. 무명의 그물에 씌워 큰 근심에 시달리니
[중생이 애욕의 바다에 流轉하는, 그것은 결국 따지고 보면 “번뇌무명이다” 그것이 우리를 뒤덮고 있어서 우리를 근심스럽게 하고 핍박한다.]
至仁勇猛으로써 悉斷除(지인용맹실단제)하시니, 어질고 용맹함으로 잘라 없애리라
[至仁= 지극히 어지신 이=부처님. 도교, 유교적인 표현입니다.]
誓亦當然(서역당연) 是其行이로다. 서원함도 당연히 그 행이며
[衆生無遍誓願度(중생무변서원도) 煩惱無盡誓願斷(번뇌무진서원단). 그것이 廣大苦行이었다는 말입니다. 그 서원이 또한 당연히 그 행이더라.]
3.世間은 放逸하고 着五欲(세간방일착오욕)하야, 세간이 방일하고 오욕에 집착하며
不實分別受衆苦(불실분별수중고)일새. 실답게 분별치 못하고 온갖 고통 받으니
奉行佛敎常攝心(봉행불교상섭심)하사, 부처님 가르침 봉행하여 늘 마음을 거두어서
[세상 사람들은 방일해서 오욕에 집착해 있다. 그리고 그 오욕에 집착해 있으면서도, 그 경계들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온갖 고통을 받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느냐? 奉行佛敎常攝心. 불교가 마음 관리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奉行佛敎常攝心 항상 마음을 거둬들여서 한 마음 관리 잘하면 그냥 그것이 불교입니다. 攝心이라는 말 속에 모든 마음에 대한 의미가 다 있습니다.]
[달마스님의 觀心一法이 總攝諸行(관심일법총섭제행)="관심선". 초기 선은 간화선도, 묵조선도 아닌 관심선 이었습니다. 마음을 하나 관찰하는 그것이 모든 수행을 다 포섭하고 있다. 모든 수행은 6바라밀을 말하는 것이지요. 6바라밀 내지 주문을 외운다든지ㆍ경을 읽는다든지ㆍ좌선을 한다든지ㆍ화두를 든다든지 일체 것이 마음을 하나 관찰하는 속에 다 포섭이 된다.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내가 거기에서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좋을 수도ㆍ나쁠 수도 있고, 행복일 수도ㆍ불행일 수도 있고, 천당일 수도ㆍ극락일 수도 있습니다.]
誓度於斯(서도어사)에 是其行이로다. 제도하리라 서원함도 바로 그 행이며
[誓=맹서로써ㆍ서원으로써 度=제도하니, 건너가니, 이룬다. 성취한다. 그것을 내 공부로 완성시켜 가는 것. 건널 度는 의미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고해를 건넌다 하면 고해를 다 벗어나는 것이고, 지혜를 건넌다 하면 지혜를 완성하는 것이고, 그래서 度를 완성이라고 번역을 많이 합니다]
4. 衆生着我入生死(중생착아입생사)하야, 중생이 '나'에 집착하고 入生死= 생사에 들어가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 我가 제일 우선이지요. 아 가 있고, 그 다음에 我所가 있고 = 나의 것이 있고 그리고 그 외에 온갖 것이 다 벌어집니다. '아' 가 근본이 되어 거기에 집착하면서부터 8만4천 집착이 다 벌어지는 것입니다]
求其邊際不可得(구기변제불가득)일새. 그 끝을 구해도 찾을 수 없으니
[불교에 몸담고 그만한 세월 보냈다면, 수행이 어느 정도 됐다고 여길 수도 있는 것이고, 도도 어느 정도 깨달았다고 착각할 수도 있고 또 그런 착각은 괜찮습니다만, 求其邊際不可得, 깊이 따져보면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라고 하는 문제에 얽매어서 끝도 없습니다.]
普事如來獲妙法(보사여래획묘법)하사, 두루 여래를 섬기며 묘법을 얻도록
爲彼宣說(위피선설)하니 是其行이로다.그들에게 말해주는 것이 그 행이며
[아 에 집착해서 끝없이 아견 속에 헤매고 있는 그들을 위해서, 법을 宣說하시니 바로 이것이 그 행이더라.]
5.衆生無怙하며 病所纏(중생무호병소전)으로, 중생이 병들어 의지할(믿을) 데 없고
常淪惡趣起三毒(상륜악취기삼독)하야, 항상 악도에 빠져 삼독을 일으키며
大火猛焰이 恒燒熱(대화맹염항소열)일새. 맹렬한 화염에 늘 타고 있으니
[마음에 평정을 유지할 때는 언제 무슨 삼독의 불이 있더냐? 이렇게 생각이 들지만, 어느 순간, 어떤 상황에 닥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삼독의 불이 활활 타올라 때 감당 못하는, 大火가 猛焰이고 恒燒熱 항상 뜨겁게 타고 있습니다.]
淨心度彼(정심도피) 是其行이로다. 청정한 마음으로 그들을 제도함이 그 행= 廣大苦行이며
중생이 의지함이 없어ㆍ믿을 데가 없어서, 그리고 그러한 병이 얽힌 바로써 항상 악취에 빠져서 삼독을 일으켜요. 탐 진 치 삼독뿐만 아니라 온갖 독을 다 일으키지요.
6.衆生迷惑失正道(중생미혹실정도)하야, 중생이 미혹하여 바른 길을 잃어버리고
常行邪徑入闇宅(상행사경입암택)일새. 늘 삿된 길을 걸어 깜깜한 집에 들어가니
[지혜의 반대로 어리석음을 이야기 할때 어두울 闇을 씁니다.]
爲彼大然正法燈(위피대연정법등)하사, 그들을 위해 정법의 등을 크게 밝혀
[그러할 然연이 아니라 然= 불탈, 밝힌다. 불화 있는 연(燃)과 같은 뜻으로 씁니다.]
永作照明(영작조명) 是其行이로다. 영원한 빛이 되는 것이 바로 그 행= 廣大苦行이며
중생들이 미혹해서 정도를 잃어버려요. 바른 길을 잃어버려서
[불명. 우리나라에서 이름 짓는데 중요한 것이 뜻보다도 음이 더 중요합니다. 그 전에 어느 절에 가서 “보살님은 이름이 뭡니까? 물어보는데, 어떤 보살님이 “뜻은 참 좋은데...” 하고, 이름 밝히기를 아주 꺼려해요. 알고보니, 묘할 妙ㆍ지혜 智ㆍ행할 行. 妙智行(묘지행)입니다. 뜻 참~ 좋지요?]
7.衆生漂溺諸有海(중생표익제유해)하야, 중생이 미혹의 바다에 빠져 [溺 빠질 닉 / 涯 물가 애]
[漂溺= 떠다니면서 빠졌다ㆍ나왔다ㆍ빠졌다ㆍ나왔다 하는 것입니다. 有海= 모든 존재의 바다.]
憂難無涯不可處(우난무애불가처)일새. 근심과 고난이 끝이 없어 견디지 못하니
爲彼興造大法船(위피흥조대법선)하사, 그들을 위해 대법의 배를 만들어 [大法= 큰 진리의 배를 興造= 만들어서]
皆令得度(개령득도) 是其行이로다. 다 건너게 하는 것이 그 행= 廣大苦行이며
8.衆生이 無知하여 不見本(중생무지불견본)하야, 중생이 무지하여 근본을 보지 못하고
[無知= 근본을 보지 못하는 것. 본래의 모습ㆍ본래의 나를 보지 못하는 것]
[不見本의 本이 자기본심인데, 자기본심을 모르면 험난한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것이, 마치 연야달다가 어느 순간 자기 머리가 없다고 착각해서 내 머리 못 봤느냐고 온 시중을 돌아다니는 것처럼.. 자기근본 자리 모르면 아무리 명예가 높고, 부귀영화를 누린다하더라도 迷惑이요 癡狂이고, 險難中에서 헤매는 것에 불과하다. 세속적인 가치와는 삶의 질이 전혀 다른 것이지요.]
迷惑癡狂險難中(미혹치광험난중)일새. 미혹하고 어리석어 험난한 가운데 있거늘
佛哀愍彼建法橋(불애민피건법교)하사, 부처님 불쌍히 여기사 建法橋= 법의 다리 놓으셨으니
正念令昇(정념령승) 是其行이로다. 바른 생각으로 건너게 함이 그 행이며
[8정도의 正念= 중도입니다. 치우치지 아니한 생각ㆍ견해. 8정도는 무조건 중도로 이해를 해야 되는데, 중도로 설명 하는 것 중에 제일 극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것이 正命입니다. 정명은 생존방법인데, 이것을 중도로 이해 못하는 사람들은 도적질 하지 말고, 베풀기만 하고, 착한 일하고 살생 같은 것은 절대 하지 말고, 무조건 살리는 직업만 갖고, 이렇게 설명하면, 도덕적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중도는 도덕하고는 관계없는, 도덕적인 관념을 초월한 것이 중도입니다.
사형 집행하는 망난이도 있어야 되는 바른 직업이고, 백정도 정명입니다. 그것도 그 사람으로서는 정당한 직업으로 이해해야 되는 것이 중도입니다. 도덕적으로 보면 안 맞지요. 8정도를 그런 차원으로 이해를 해야 되는데, 이것저것 도덕적인 기준을 세워놓고 거기에서 피해 가려고 해도 피할 수 없이 여기저기에 다 걸려서, 안 피해 가지는 것이지요.]
9.見諸衆生在險道(견제중생재험도)하야, 보건대 중생들이 험한 길에 처하여
老病死苦가 常逼迫(노병사고상핍박)하고, 노·병·사의 고통으로 늘 핍박 받으니
[生老病死. 生을 넣지만, 사실 태어날 때는 고통인지 뭔지 압니까? 老病死가 진짜 고통이지요.]
修諸方便無限量(수제방편무한량)하사, 모든 방편을 무한량으로 닦아
誓當悉度(서당실도) 是其行이로다. 마땅히 다 제도하리라 서원함이 그 행= 廣大苦行이며
[煩惱無盡誓願斷(번뇌무진서원단) 法門無量誓願學(법문무량서원학) 佛道無上誓願成(불도무상서원성) 사홍서원이 다 적용되는 내용이지만, 그 중에서도 煩惱無盡誓願斷이 제일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냐? 廣大苦行이라고 했으니까요.]
⑦ 慈悲와 智慧
10聞法信解無疑惑하며 了性空寂不驚怖하고 隨形六道徧十方하사 普敎群迷是其行이로다
10. 聞法信解無疑惑(문법신해무의혹)하며, 법을 듣고 신해하여 의혹이 없고
了性空寂不驚怖(요성공적불경포)하고, 성품의 공적함을 알아 놀라지 않으며
[그 성품은 공적한 것ㆍ텅 빈 것ㆍ본성은 텅 빈 것이다. 罪無自性從心起(죄무자성종심기) 죄라고 하는 것은 自性이 없다. 그저 한 생각 일으킴에 따라 죄가 일어나는, 그 도리 알면 그것이 理懺입니다. 理懺으로써는 아주 완벽한 것이고, 그런 理懺이 없이 事懺만 아무리 하루에 100만 배를 하더라도 그것은 부족한 것으로, 말하자면 치우친ㆍ편협한 그런 참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꼭 理懺과 事懺을 병행을 해야 진정한 참회라는 것입니다.]
隨形六道遍十方(수형육도변시방)하사, 형상 따라 육도에서 시방을 두루 다니며
普敎群迷(보교군미) 是其行이로다. 群迷= 미혹한 중생들을 普敎= 널리 가르치는 것이 그 행= 廣大苦行이로다
十, 因果圓滿德
(1) 光明徧照
爾時에 光明이 過十億世界하야 徧照東方百億世界와 千億世界와 百千億世界와 那由他億世界와
百那由他億世界와 千那由他億世界와 百千那由他億世界와 如是無數無量無邊無等과
不可數不可稱不可思不可量不可說인 盡法界虛空界의 所有世界하고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시니 彼一一世界中에 皆有百億閻浮提와 乃至百億色究竟天이라
其中所有가 悉皆明現하니
[滿德은 화엄경의 宗旨(종지)입니다. 원만함을 나타내기 때문에 법문도 원만한 숫자인 滿數(만수)열로 맞추는 것입니다.]
爾時에 光明이 過十億世界하야, 그때 광명이 십억 세계를 지나 遍照東方百億世界와 동방으로 100억 세계,
千億世界와 百千億世界와 那由他(나유타)億世界와 百那由他億世界와 千那由他億世界와 百千那由他億世界와 如是,
천억 세계, 백천억 세계와 나유타억세계, 백나유타억세계와 천나유타억세계, 백천나유타억세계를 두루 비추고, 그러한
無數無量無邊無等과 不可數ㆍ不可稱ㆍ不可思ㆍ不可量ㆍ不可說인 盡法界虛空界(진법계허공계)의 所有世界하고,
무수무량하고 무변무등하며 불가수, 불가칭, 불가사, 불가량, 불가설진한 법계 허공계에 있는 세계들의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시니, 남서북방과 사유상하도 遍照= 역시 그와 같이 비추니
彼一一世界中에, 그 낱낱의 세계 안에 있는
皆有百億閻浮提(개유백억염부제)와 乃至百億色究竟天(내지백억색구경천)이라.
백억의 염부제로부터 백억의 색구경천에 이르기까지
其中所有가 悉皆明現하니, 그 안에 있는 것들이 悉皆明現= 모두 환히 나타났는데
(2) 世尊坐座
彼一一閻浮提中에 悉見如來가 坐蓮華藏師子之座어시든 十佛刹微塵數菩薩의 所共圍遶라
悉以佛神力故로 十方各有一大菩薩이 一一各與十佛刹微塵數諸菩薩로 俱하야 來詣佛所하시니
其大菩薩은 謂文殊師利等이며 所從來國은 謂金色世界等이며 本所事佛은 謂不動智如來等이니라
彼一一閻浮提中에 悉見如來가, 그 낱낱의 염부제 안을 모두 보니 여래께서
坐蓮華藏師子之座어시든, 연화장 사자좌에 앉으시어
十佛刹微塵數菩薩의 所共圍遶라, 10 불찰미진수의 보살들로 에워쌓여 계셨으니
悉以佛神力故로, 모두가 부처님의 위신력 때문이었다.
十方各有一大菩薩이, 시방에 각각 있는 한 큰 보살이
一一各與十佛刹微塵數諸菩薩로 俱하야, 저마다 각각 10 불찰미진수의 보살들을 거느리고
來詣佛所하시니, 부처님 처소에 나아갔으니 其大菩薩은, 그 큰 보살들은
謂文殊師利等이며 이른바 문수사리 등이요 所從來國은 謂金色世界等이며, 떠나온 국토들은 이른바 금색세계 등이며
本所事佛은 謂不動智如來等이니라. 본래 섬기는 부처님들은 이른바 부동지여래 등이시었다.
(3) 文殊菩薩의 偈頌
爾時에 一切處文殊師利菩薩이 各於佛所에 同時發聲하사 說此頌言하사대
그때 모든 곳의 문수사리보살이 각자 부처님 처소에서동시에 한 목소리로 이러한 게송을 설했습니다.
① 佛因果徧周
1一念普觀無量劫호니 無去無來亦無住라 如是了知三世事하사 超諸方便成十力이로다
2十方無比善名稱이 永離諸難常歡喜하사 普詣一切國土中하야 廣爲宣揚如是法이로다
3爲利衆生供養佛일새 如其意獲相似果하시고 於一切法悉順知하사 徧十方中現神力이로다
4從初供養意柔忍하며 入深禪定觀法性하고 普勸衆生發道心이실새 以此速成無上果로다
一念普觀無量劫 無去無來亦無住 如是了知三世事하니 超諸方便成十力이로다. 이 게송 모르는 분 없지요?
1.一念普觀無量劫(일념보관무량겁)호니, 한 생각에 한량없는 겁을 널리 보면
[한 순간, 일반적으로, 1찰라에 900생멸하는 一念입니다. 1찰라 = 1초의 120분의 1. 이렇게도 표현을 합니다. 그것이 꼭 한결 같지는 않고 책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1초의 120분의 1 중에 또 다시 900분의 1. 900생멸하는 그 짧은 순간이 一念입니다. 그 짧은 순간에 무량겁을 환하게 꿰뚫어 본다. 그 짧은 한 순간 없이는 무량겁도, 과거의 수 100년ㆍ수 1000년이 없고, 미래의 수 100년ㆍ수 1000년도 없습니다. 一念이라고 하는 그 짧은 한 순간 빼버리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無去無來亦無住(무거무래역무주)라. 감도 없고 옴도 없고 머묾도 없나니
[시간성을 시절인연이라 해서 불교에서 언급한 것이 많고 또 모든 것, 모든 존재ㆍ모든 수행에서 시간성을 뺄 수 없이 중요하지만, 그 시간의 본질을 관찰해보면 無去無來亦無住라는 것입니다.]
如是了知三世事(여시요지삼세사)하사, 이렇듯 삼세의 일을 분명히 알아서
超諸方便成十力(초제방편성십력)이로다. 모든 방편 뛰어 넘으면 십력을 이루리라
[成十力. 十力은 부처님을 뜻하는 것으로 한 순간에 바로 부처다. 初發心時便成正覺(초발심시변성정각)입니다. 한 생각 일으킨 그 자리가 바로 正覺을 이룬 자리다.
길고 긴 인생이라지만,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그 길고 긴 시간이 한 순간, 一念에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3아승지 겁을 논하고, 십신ㆍ십주ㆍ십행ㆍ십회향ㆍ십지ㆍ등각ㆍ묘각, 52계위를 논하고, 또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친견하는데 몇 100년 걸리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이 시간에 대한 본질을 깨달은 수준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동안의 불교 상식만으로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一念卽時無量劫(일념즉시무량겁) 법성게의 도리 그대로입니다. 그것 알면 바로 부처다. 超諸方便 成十力. 온갖 6바라밀ㆍ10바라밀 모든 방편을 다 뛰어넘어서 十力을 이룬다ㆍ부처가 된다.]
2.十方無比善名稱(시방무비선명칭)이, 시방에 비할 데 없는 名稱= 좋은 이름이
永離諸難常歡喜(영리제난상환희)하사, 온갖 고난 永離= 길이 여의어 늘 기쁘며
普詣一切國土中(보예일체국토중)하야, 일체의 국토에 널리 나아가
廣爲宣揚如是法(광위선양여시법)이로다. 널리 이러한 법을 선양하도다
3. 爲利衆生供養佛(위리중생공양불)일새. 중생의 이익을 위해 부처님께 공양하고
如其意獲相似果(여기의획상사과)하시고, 그 뜻과 같이 상응한 과보를 얻으며
[相似果= 보살의 결과입니다. 묘각까지는 안 되고 거의 등각에 가까운, 비슷한. 似= 닮았다는 뜻입니다. 중생을 이익하게 하기 위해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그런 정신이라면 그야말로 그대로 보살의 果다.] [似 같을 사, 닮을 사]
於一切法悉順知(어일체법실순지)하사, 일체법에 다 수순하여 안다면
徧十方中現神力(변시방중현신력)이로다. 시방에 두루 위신력을 나타내리라
4. 從初供養意柔忍(종초공양의유인)하며, 처음부터 부처님께 공양하는 뜻이 부드럽고
[柔和善順(유화선순) 처음 절에 들어와서 배운 말! 뜻이 柔忍해서 柔和善順 부드럽고 화목하고 착하게 순하는 마음자세]
入深禪定觀法性(입심선정관법성)하고, 깊은 선정에 들어 법성을 관찰하며
[선정에 들면 모든 존재의 공성을 관찰하고, 實相을 관찰하는 겁니다. 명예의 實相ㆍ돈의 實相ㆍ우리 육신의 實相. 일체의 實相을 관찰하는 것이 入深禪定觀法性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안 돼서 문제가 많지요.]
普勸衆生發道心(보권중생발도심)이실새. 널리 중생에게 도심을 내도록 권한다면
[發道心= 道에 대한 마음을 발하게 한다. 道心= 보리심이고, 또 그것은 지혜요 자비입니다.]
以此速成無上果(이차속성무상과)로다. 그로써 위없는 불과= 無上果를 속히 이루리라
②勸讚隨行 따라 행하기를 권한다.
5十方求法情無異하고 爲修功德令滿足하며 有無二相悉滅除하면 此人於佛爲眞見이니라
6普往十方諸國土하야 廣說妙法興義利호대 住於實際不動搖하면 此人功德同於佛이니라
7如來所轉妙法輪이여 一切皆是菩提分이니 若能聞已悟法性하면 如是之人常見佛이니라
8不見十力空如幻이면 雖見非見如盲覩니 分別取相不見佛이요 畢竟離着乃能見이니라
9衆生隨業種種別을 十方內外難盡見이니 佛身無礙徧十方을 不可盡見亦如是니라
10譬如空中無量刹이 無來無去徧十方호대 生成滅壞無所依하야 佛徧虛空亦如是니라
5.十方求法情無異(시방구법정무이)하고 시방으로 법 구함에 마음 변치 않고
[十方求法情無異 시방으로 법을 구하는 그 뜻이 어디를 가도ㆍ시간이 아무리 흘러가도, 또 대상이 어떻든 간에 그 뜻은 다르지 않다, 情. 그 마음ㆍ그 뜻ㆍ그 열정이 변함이 없어야 된다는 것]
爲修功德令滿足(위수공덕영만족)하며, 공덕을 닦아 만족히 하며
[十方求法情無異, 情= 마음ㆍ뜻ㆍ열정이 변함이 없어서 공덕을 닦는 것이 만족하게 해야돼요. 우리가 이런 공부하는 것이 나 자신을 위한 진정으로 유효한 공덕을 닦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어디서 봉사활동을 하고, 남을 위해서 보살행하는 그것도 좋은 공덕이고요. 그 보다 더 우선하는 것이 내 자신 공부를 위한 공덕, 나에 필요한 공덕이 사실은 우선이지요.]
有無二相悉滅除(유무이상실멸제)하면, 있고 없는 두 모양을 다 멸해 없애면
此人於佛爲眞見(차인어불위진견)이니라. 이 사람은 부처님을 眞見= 중도정견= 참되게 보리라
[세상은 전부 상대로 이뤄져 있는데, 有 無 상대적인 것을 滅除= 다 수용한다. 치우치지 않는다.= 중도이면 정견이 된다. 쉽게 표현하면 배가 강을 내려가면서 오른쪽 언덕이나 왼쪽 언덕에 정착하면 내려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양쪽 언덕이 없으면 물이 존재 할 수가 없고 또 배가 갈 수가 없어서 중도라는 것이 필요로 해야 되니까 양면을 다 수용해야 됩니다.]
6.普往十方諸國土(보왕시방제국토)하야, 시방 모든 국토를 두루 다니며
廣說妙法興義利(광설묘법흥의리)호대, 묘법을 널리 설해 義利= 진리가 흥하게 하고
[義= 옳은 것, 진리. 利를 일으켜서 → 妙法을 통해 발라야 되고, 이익이 있어야 되는.]
住於實際不動搖(주어실제부동요)하면, 실제=중도=그 당체의 자리에 머물러 不動搖= 동요치 않는다면
[實際에 머물러서 동요하지 아니하면, → 법성게의 窮坐實際中道床(궁좌실제중도상)의 진리, 바로 그 자리에 머문다.
實際=中道床=실리= 당체자리. 이 대목에 중도라는 말은 없어도 중도에 대한 것을 상당히 많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此人功德同於佛(차인공덕동어불)이니라. 이 사람의 공덕은 부처님과 같으리라 → 舊來不動名爲佛(구래부동명위불).
[此人功德同於佛 이 사람의 공덕이 부처님과 같으니까 舊來不動名爲佛이 되는 겁니다.]
7.如來所轉妙法輪(여래소전묘법륜)이여, 여래가 굴리시는 미묘한 법륜은
一切皆是菩提分(일체개시보리분)이니, 모두가 다 보리의 지분이라
[부처님은 어떤 방편의 말씀을 하시더라도 전부 깨달음을 위한 菩提分. 이것은 七覺分(칠각분)해서 37조도품에 여러 가지로 설명이 되어 질 수도 있으나 간단하게 이해하면 菩提分은 깨달음을 위한 것입니다. 깨달음을 위한 부분들. 그런 내용입니다. 如來所轉妙法輪= 부처님이 굴리신 법륜은, 전부 佛ㆍ敎, 깨달은 사람의 가르침이고, 또 깨달음을 위한 가르침이고, 중생들을 깨닫게 하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一切가 皆是菩提分입니다.
佛ㆍ敎를 냉정하게 한마디로 정의하면 如來所轉妙法輪. 바로 이 구절입니다. 모든 佛ㆍ敎는 一切皆是菩提分이다. 깨닫게 하기 위한 방편이고 깨닫게 하기 위한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菩提分은 七覺分해서 37조도품에서 설명이 되어 집니다. 간단하게 菩提分은 깨달음을 위한 부분들]
若能聞已悟法性(약능문이오법성)하면,만약 듣고서 법성을 깨달을 수 있다면
[법성= 法性圓融無二相(법성원융무이상)의 도리= 無二相. 법성게가 이 속에 많이 포함됩니다]
悟法性하면 如是之人은 常見佛(여시지인상견불)이니라. 이러한 사람은 항상 부처님을 보리라
8. 不見十力空如幻(불견십력공여환)이면, 십력이 공하여=텅비어 환영 같음을 보지 못하면
[不見十力空如幻, 十力을 보지 못해서 텅 비어 환과 같으면, 부처님을 모른다는 뜻]
雖見非見如盲覩(수견비견여맹도)니, 비록 보아도 본 것이 아닌 맹인과 같아서
그 정신이 환과 같이 되면ㆍ텅 비어서 환과 같이 되면, 소승교 같은 데서는 그것이 열반이라고 가르치지요. 그러나 대승불교에서는 雖見非見如盲覩라. 비록 보아도 본 것이 아닌, 마치 눈 먼 사람이 보는 것과 같다= 如盲覩. 봉사가 아무리 본들 보는 것이 아니지요.]
分別取相不見佛(분별취상불견불)이요, 분별로 모양을 취하면 부처를 못 볼 것이요
畢竟離着乃能見(필경이착내능견)이니라. 필경에는 집착을 떠나야 이내 볼 수 있으리라
[畢竟에 집착을 떠나야 → 유ㆍ무. 있다ㆍ없다. 이것이다ㆍ저것이다. 너다ㆍ나다. 옳다ㆍ그르다 하는 모든 것을 떠난 입장에서 다시 그것을 수용했을 때, 원만한 삶이 펼쳐지는 것이지요. 畢竟필경에는 집착을 떠나야만 능히 본다. 인생은 왼쪽 언덕이나 오른쪽 언덕에도 집착하지 않고, 이 쪽 언덕도 구경 잘하고 저쪽 언덕도 구경 잘하는, 우리의 삶이 그와 같이 진행 되어야 한다 즉 중도를 설명을 합니다.]
9.衆生隨業種種別(중생수업종종별)을, 중생이 업에 따라 갖가지로 다르고
十方內外難盡見(시방내외난진견)이니, 시방의 안팎을 다 보기 어려운데
[=業力難思議 大悲無障碍(대비무장애)입니다.]
佛身無碍遍十方(불신무애변시방)을, 부처님 몸 걸림없어 시방에 두루함을
不可盡見亦如是(불가진견역여시)니라. 다 보지 못하는 것도 이와 같도다
[佛身無碍遍十方을 不可盡見亦如是니라. 가히 다 보지 못함도 또한 이와 같다. 중생이 업을 따르는 업의 경계나ㆍ부처님의 그 경계나 여기서는 같다는 뜻, 중생 업을 다 볼 수 없듯이 부처님 몸도 다 볼 수 없는 입장을 같다고 했습니다]
10. 譬如空中無量刹(비여공중무량찰)이, 비유컨대 허공의 한량없는 세계가
無來無去遍十方(무래무거변시방)호대, 옴도 없고 감도 없이 시방에 두루하되
生成滅壞無所依(생성멸괴무소의)하야, 생성과 멸괴가 의지한 곳 없듯이
佛遍虛空亦如是(불변허공역여시)니라. 부처님이 허공에 두루하심도 이와 같도다
[무조건 중생 업과 佛身하고 같다는 것이 아니라, 중생 업을 다 볼 수 없듯이 부처님 몸도 다 볼 수 없는 그 입장이 같다]
[生成滅壞無所依하야 佛徧虛空亦如是 세계와 부처님의 어떤 범위와 이것이 같다는 뜻으로, 그 한 부분만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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