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 正覺의因行 원인이 되는 행.
(1) 光明徧照
爾時에 光明이 過千世界하야 徧照東方十千世界하고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시니
彼一 一世界中에 皆有百億閻浮提와 乃至百億色究竟天이라 其中所有가 悉皆明現하니
爾時에 光明이 過千世界하야, 그때 광명이 천 세계를 지나
徧照東方十千世界하고, 동쪽으로 10천세계=만세계를 두루 비추고 [10배로 증광했습니다]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시니, 남서북방과 사유상하도 또한 그와 같이 하니
彼一一世界中에, 그 낱낱의 세계 안에 있는 皆有百億閻浮提와, 백억의 염부제로부터
乃至百億色究竟天이라. 백억의 색구경천에 이르기까지 其中所有가, 그 안에 있는 것들이
悉皆明現하니, 모두 환히 나타났는데
(2) 世尊坐座
彼一一閻浮提中에 悉見如來가 坐蓮華藏師子之座어시든 十佛刹微塵數菩薩의 所共圍遶라
悉以佛神力故로 十方各有一大菩薩이 一一各與十佛刹微塵數諸菩薩로 俱하야 來詣佛所하시니
其大菩薩은 謂文殊師利等이며 所從來國은 謂金色世界等이며 本所事佛은 謂不動智如來等이니라
彼一一閻浮提中에, 그 낱낱의 염부제 안에 悉見如來가, 여래께서 坐蓮華藏師子之座어시든, 연화장 사자좌에 앉으시어
十佛刹微塵數菩薩의 所共圍遶라. 10 불찰미진수의 보살들로 에워쌓여 계셨으니
悉以佛神力故로, 모두가 부처님의 위신력 때문이었다.
十方各有一大菩薩이, 시방에 각각 있는 한 큰 보살이
一一各與十佛刹微塵數諸菩薩로 俱하야, 저마다 각각 10 불찰미진수의 보살들을 거느리고
來詣佛所하시니, 부처님 처소에 나아갔으니 其大菩薩은, 그 大보살은 謂文殊師利等이며, 이른바 문수사리 등이요
所從來國은, 떠나온 국토는 謂金色世界等이며, 이른바 금색세계 등이며
本所事佛은, 본래 섬기는 부처님은 謂不動智如來等이니라. 이른바 부동지 여래 등이니라.
(3)文殊菩薩의 偈頌
爾時에 一切處文殊師利菩薩이 各於佛所에 同時發聲하사 說此頌言하사대
그때 모든 곳의 문수사리보살이 각자 부처님 처소에서 동시에 한 목소리로 이러한 게송을 설하여 말했습니다.
① 慈悲濟衆
1發起大悲心하사 救護諸衆生하야 永出人天衆하시니 如是業應作이어다
發起大悲心(발기대비심)하사, 대자비심을 일으키고 救護諸衆生(구호제중생)하야, 모든 중생을 구호하여
永出人天衆(영출인천중)하시니, 人天의 무리에서 영원히 벗어나게 하시니
如是業應作(여시업응작)이어다. 이와 같은 업을 마땅히 지을 바로다.
[[慈悲濟衆.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하다]]
[[如是業應作 이와 같은 업을 응당히 지어라 - 어여삐 여기는 마음을 내는 것이 불자가 지어야 할 업이다]]
②修智慧業 지혜 업을 닦는 것=짓는 것
2意常信樂佛하사 其心不退轉하야 親近諸如來하시니 如是業應作이어다
3志樂佛功德하사 其心永不退하야 住於淸凉慧하시니 如是業應作이어다
4一切威儀中에 常念佛功德하사 晝夜無暫斷하시니 如是業應作이어다
5觀無邊三世하고 學彼佛功德하사대 常無厭倦心하시니 如是業應作이어다
2.意常信樂佛(의상신락불)하사, 뜻으로 항상 부처님을 信樂=믿고 좋아하여 또는 즐겨하여
其心不退轉(기심불퇴전)하야, 그 마음이 퇴전치 않으며
親近諸如來(친근제여래)하시니, 모든 여래를 친근하는 如是業應作(여시업응작)이어다. 그러한 업을 마땅히 지으라
[[應作 반드시 지으라.]] [[업은 身口意 三業으로 짓는다]]
3.志樂佛功德(지락불공덕)하사, 의지로 부처님 공덕을 좋아하여 [意常信樂佛=意常信樂佛 비슷한 뜻]
其心永不退(기심영불퇴)하야, 그 마음이 영원히 퇴전치 않으며 [[志樂 마음에 즐겨한다]]
住於淸凉慧(주어청량혜)하시니, 청량한 지혜에 머무는 如是業應作이어다. 그러한 업을 마땅히 지으라
[청량한 지혜= 막힘이 없는, 툭 터진 지혜]
[[화엄경에서의 여래, 부처님, 세존은 우리 각자 또는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을 일컬음]]
4.一切威儀中(일체위의중)에 常念佛功德(상념불공덕)하사, 일체의 위의를 갖추어 늘 부처님 공덕 회상하기를
[[一切威儀= 行住坐臥]]
晝夜無暫斷(주야무잠단)하시니, 밤낮으로 잠시도 그치지 않는 如是業應作이어다. 그러한 업을 마땅히 지으라
[주야로ㆍ자나 깨나 行主坐臥語默動靜(행주좌와어묵동정)에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는 그 공덕 끊어지지 않는다.]
[[진여, 견성을 잘 챙겨라는 뜻. 진여의 생명은 어떤 한 순간도 떠나 있을 수가 없는데 우리는 깜박깜박 진여를 등지고 살고 있습니다.]]
[[진여(眞如)= 여여·여실·여. 변화하지 않는 존재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을 말한다. 진여라는 개념은 대승불교가 일어나기 이전부터 사용되었지만 대승불교가 흥기하면서 반야사상 계통의 경전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원효는 ≪대승기신론소 大乘起信論疏≫에서 이언진여에 대한 몇 가지 점을 밝히고 있다.
① 진여는 전체성·보편성·영원성을 지닌 대총상(大總相)이며, ② 진여는 참된 이해를 낳게 하는 원리원칙으로서의 법(法)이고, ③ 진여는 열반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되며, ④ 일심을 그 체(體)로 하고 있고, ⑤ 불생불멸(不生不滅)로서 시간성을 초월하고 있으며, ⑥ 망념(妄念)을 떠나 있기 때문에 말로써 설명될 수 있는 것도, 문자와 개념으로 알릴 수 있는 것도, 분석적 사변이 닿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하였다.]]
5.觀無邊三世(관무변삼세)하고, 무변의 삼세를 관하고 學彼佛功德(학피불공덕)하사대, 저 부처님 공덕을 배우기를
常無厭倦心(상무염권심)하시니, 항상 싫증이나 권태없이 하는 如是業應作이어다. 그러한 업을 마땅히 지으라
[과거ㆍ현재ㆍ미래가 삼세지만, 과거 속에 과거현재미래ㆍ현재 속에 과거현재미래ㆍ미래 속에 과거현재미래. 그래서 九世十世互相卽(구세십세호상즉). 九世와 十世가 서로서로 연결돼 있어서 無邊三世입니다.]
[[學彼佛功德 진여자성, 진여를 부처로 아는 그 인식, 그 노력이 바로 佛功德을 배우는 것입니다]]
③ 身의 實相
6觀身如實相하사 一切皆寂滅하야 離我無我着하시니 如是業應作이어다
6.觀身如實相(관신여실상)하사, 몸의 여실한 모습이
一切皆寂滅(일체개적멸)하야, 일체가 다 적멸함을 觀=관하여 [[寂滅한 것이 實相입니다.]]
離我無我着(이아무아착)하시니, 나와 나에 대한 집착을 여의는
如是業應作이어다. 그러한 업을 마땅히 지으라 [離我= 我를 떠나니까 我着이 없어요.]
[[몸의 如實한 모습; 현재 이대로가 여실한 모습이고, 나인 것이 이대로 있어주면 좋겠는데, 사실 이것이 텅 빈, 무상한 것이고 시시각각 순간순간 變滅해 가고 있는 것이라서 一切皆寂滅이라 寂滅= 텅 비어 없는 것이다]]
[[離我無我着. 我 내가 固定不變하는 것으로 생각해도 잘못된 것이고 또 無我, 我가 없다고 해도, 我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나니까, 그것에 집착하는 것 또한 잘못된 것으로, 我와 無我에 대한 집착을 떠난 것이 中道. 참나를 이야기하는 한 편 무아인 것을 또 잊어서는 안되고, 무아이면서 또 이렇게 활발발하게 살아있는 참나를 내세우는= 중도!]]
① 衆生平等
7.等觀衆生心하고 不起諸分別하사 入於眞實境하시니 如是業應作이어다
7.等觀衆生心(등관중생심)하고, 중생의 마음을 평등히 관하여
不起諸分別(불기제분별)하사, 온갖 분별 일으키지 않고.
[중생심, 여러 가지지만, 자비심만 있으면 각양각색의 중생들이 각각의 마음을 일으키더라도 좋다 나쁘다는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왜냐? 중생을 평등하게 관찰하니까요.]
入於眞實境(입어진실경)하시니, 진실한 경계에 들어가는 如是業應作이어다. 그러한 업을 마땅히 지을지어다.
② 大用
8悉擧無邊界하고 普飮一切海가 此神通智力이시니 如是業應作이어다
9思惟諸國土의 色與非色相하사 一切悉能知하시니 如是業應作이어다
10十方國土塵을 一塵爲一佛하야 悉能知其數하시니 如是業應作이어다
8.悉擧無邊界(실거무변계)하고, 가이없는 세계를 다 번쩍 들고 [[擧 들 거]]
普飮一切海(보음일체해)가, 모든 바다를 다 마셔버리는
此神通智力(차신통지력)이시니, 그 신통의 지혜력을 얻도록
如是業應作이어다. 그러한 업을 마땅히 지으라
[眼皮蓋盡三千界(안피개진삼천계)라는 禪句= 눈꺼풀이 삼천대천세계를 다 덮는다. 저의 작은 눈으로 여러분 100명을 한꺼번에 다 덮고 또 삼천을 바라보면 이 작은 눈으로 온 삼천을 다 덮어요. 이 눈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다 덮어서, 내 마음에 다 들어와서, 아무리 넓고 넓은 하늘도 내 눈 속에 다 들어오는 것이지요.
無邊한 세계를 다 든다고 하는 것과 普飮一切海도 실제로 물을 마시듯이 마시는 것이 아닌, 우리 한 마음속에 다 포함된, 그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 神通並妙用이여 運水及搬柴(신통병묘용운수급반시)라.=물 길어오고 땔나무 해오는 일이다. 일상의 아주 평범한, 너무나도 쉽고, 해도 하는 것 같지 않는 그런 마음 씀과 행 그대로가 신통이지 그것 외에 달리 다른 신통은 없는 것이지요. 있다한들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9.思惟諸國土(사유제국토)의 色與非色相(색여비색상)하사, 모든 국토의 색과 더불어 색상 아님을 사유하여
[모든 국토의 색과 비 색상= 유형ㆍ무형.]
一切悉能知(일체실능지)하시니, 일체를 다 알 수 있는 如是業應作이어다. 그러한 업을 마땅히 지으라
10.十方國土塵(시방국토진)을, 시방에 국토의 먼지=티끌들을, 一塵爲一佛(일진위일불)하야, 한 먼지를 한 부처님 삼아도
悉能知其數(실능지기수)하시니, 그 수효를 다 능히 알수 있는 如是業應作이어다. 그러한 업을 마땅히 지으라.
[[一塵爲一佛하야 悉能知其數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먼지 하나라도 우주의 원리가 다 내재돼 있는, 생명, 비생명, 유상, 무상, 물질과 비물질까지도 전부 똑같이 우주의 원리가 그 속에 다 내재돼있다 → 一切處文殊師利菩薩]
六, 世尊威德
(1) 光明徧照
爾時에 光明이 過十千世界하야 徧照東方百千世界하고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시니
彼一一世界中에 皆有百億閻浮提와 乃至百億色究竟天이라 其中所有가 悉皆明現하니
爾時에, 그 때에 光明이 過十千世界(과십천세계)하야, 10천세계=만세계를 지나서
徧照東方百千世界(변조동방백세계)하고, 동쪽으로 100천세계=10만세계를 두루 비추고
南西北方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시니, 남 서 북 방과 사유상하도 역시 그와 같으니
彼一一世界中에 皆有百億閻浮提와, 그 낱낱의 세계안에 있는 백억 염부제로 부터
乃至百億色究竟天이라. 백억 색구경천에 이르기까지. 其中所有(기중소유)가, 그 안에 있는 바가
悉皆明現(실개명현)하니. 모두 다 환하게 나타났다.
(2) 世尊坐座
彼一一閻浮提中에 悉見如來가 坐蓮華藏師子之座어시든 十佛刹微塵數菩薩의 所共圍遶라
悉以佛神力故로 十方各有一大菩薩이 一一各與十佛刹微塵數諸菩薩로 俱하야 來詣佛所하시니
彼一一閻浮提中(피일일염부제중)에 悉見如來(실견여래)가,그 낱낱의 염부제 안을 모두 보니 여래께서
坐蓮華藏師子之座(좌연화장사자지좌)어시든, 연화장 사자좌에 앉으시어
十佛刹微塵數菩薩(십불찰미진수보살)의 所共圍遶(소공위요)라. 10불찰 미진 수 보살들로 에워싸여 계셨으니.
悉以佛神力故(실이불신력고)로, 모두가 부처님의 위신력 때문이었다. [[悉以佛神力故, 우주의 원리로써]]
十方各有一大菩薩(시방각유일대보살)이, 시방에 각각있는 한 대보살이
一一各與十佛刹微塵數諸菩薩로 俱(구)하야 來詣佛所(내예불소)하시니,
저마다 각각 10불찰 미진 수 보살들을 거느리고 부처님처소에 나아 갔으니
其大菩薩은, 그 대보살은 謂文殊師利等(위문수사리등)이며, 이른바 문수사리 등이며
所從來國(소종래국)은, 떠나온 국토는 謂金色世界等(위금색세계등)이며, 이른바 금색세계 등이며
本所事佛(본소사불)은, 본래 섬기는 부처님은 謂不動智如來等(위부동지여래등)이니라. 이른바 부동지 여래 등이시었다.
[한결같이 大菩薩= 우두머리 보살은 문수사리, 불 국토는 金色世界. 섬기는 부처님은 不動智如來.]
[법성게의 舊來不動名爲佛(구래부동명위불)의 不動과 똑 같은 의미입니다]
(3) 文殊菩薩의 偈頌
爾時에 一切處文殊師利菩薩이 各於佛所에 同時發聲하사 說此頌言하사대
爾時에 一切處文殊師利菩薩(일체처문수사리보살)이 그때 모든 곳의 문수사리보살이
各於佛所(각어불소)에서, 각자 부처님 처소에서
同時發聲(동시발성)하사 說此頌言(설차송언)하사대 동시에 한 목소리로 이러한 게송을 설했다.
[一切處文殊師利라.
임제록에, 역사적으로 신심 지극하기로 소문난 무착선사가 오대산을 향해서 일보 일배를 하면서 문수보살을 친견하러 가는데, 임제스님이 오대산에 無 문수= 문수가 없다. 그 문수를 찾아가는 당신이야말로 그 문수이다.
문수보살을 찾아가는 그 당사자가 바로 진정한 문수라고 했습니다]
① 法身
1若以威德色種族으로 而見人中調御師인댄 是爲病眼顚倒見이라 彼不能知最勝法이로다
2如來色形諸相等을 一切世間莫能測이라 億那由劫共思量하야도 色相威德轉無邊이로다
3如來非以相爲體라 但是無相寂滅法이로다 身相威儀悉具足하시니 世間隨樂皆得見이로다
4佛法微妙難可量이라 一切言說莫能及이니 非是和合非不合일새 體性寂滅無諸相이로다
5佛身無生超戲論하사 非是蘊聚差別法이라 得自在力決定見하시니 所行無畏離言道로다
1.若以威德色種族(약이위덕색종족)으로 만약 위덕이나 모습 종족으로
而見人中調御師(이견인중조어사)인댄, 인중의 조어사를 보려한다면
[威德= 석가모니부처님을 한번만 봐도 누구든지 감화를 받는. 그리고 色= 32상과 80종호.
種族= 비록 小國이지만 대대로 왕족, 석가 족의 출신이다. 즉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로서의 부처님입니다.
만약 그런 역사적인 사실로서의 부처님을 見=본다면 人中調御師= 사람을 잘 다루는 사람.
調御師= 본래는 말몰이 꾼. 말을 잘 다루는 사람. 야생마를 조련시키는 것은 보통 솜씨로 되는 것이 아니니까, 그런 정도로 사람을 잘 다스리고ㆍ제도하고ㆍ관리하고ㆍ감동을 주는 사람이 調御師입니다.]
是爲病眼顚倒見(시위병안전도견)이라. 그것은 병든 눈이요 전도된 소견이라
彼不能知最勝法(피불능지최승법)이로다. 그는 능히 최승법을 알 수 없으리라.
[역사적인 석가모니가 있음으로 해서, 역사적인 부처님보다 더 위대한 진짜 살아있는 부처를 우리 각자가 만나게 되었지만 그 석가모니라고 하는 역사적인 인물에 한정해서 부처님을 이해한다면, 그것은 병든 눈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대승불교가 부처님을 보는 관점인데요. 그것을 경전 상에서는 見佛(견불)이라 합니다.
통현장자가 화엄론에 부처님을 보는 안목의 차이를 열 가지로 나열 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부처님 할 때 물론 석가모니부처님을 포함한 우리들 자신, 우리의 마음= 불성 그리고 이 우주 삼라만상이 삼라만상으로 존재하게 하는 그 본성=원리=개개자성. 꽃은 꽃대로의 자성ㆍ사람은 사람대로의 자성. 그것은 크게는 동일하면서 꽃의 경우는 꽃의 어떤 인연과 본성에 의해서 꽃으로 표현 되고, 나는 나의 마음에 의해서 나로 이렇게 표현 되고, 모든 사람들은 그 사람의 마음으로 그렇게 표현 되고, 모든 식물ㆍ동물이 전부 그렇게 표현 되지만 그 근본 성품. 본성자리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마치 바다의 물은 하나지만 바람에 의해서 물결이 크고 작고ㆍ또 높고 낮은것이 전부 다른 각양각색입니다.
그 바람이란? 業風(업풍)= 업의 바람= 인연의 바람, 세상만사가 전부 업과 인연의 바람에 의해서 달리 나타나는 겁니다. 현상이 이렇게 전부 달리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 근본 성품은 하나라는 겁니다. 사람의 성품ㆍ동물의 성품ㆍ식물의 성품, 그 근본자리는 동일합니다. 물이 온갖 물결을 만들어 내지만, 물이라고 하는 사실에 있어서는 하나인 그것을 부처라고 하는= 最勝法입니다. 대승불교의 가장 궁극적인 안목으로서의 부처님을 이야기할 때는 바로 그 점을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기 역사적인 부처님을 부처님이라고 하면 병든 눈이라 했습니다]
[[種族 석가족이라고 하는 왕족이죠. 色은 32상, 80종호 →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면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신화엄경론 제 6권
5.부처님을 보는 차별을 밝힘
무릇 불신(佛身)의 성(性)과 상(相)은 일체라서 차이가 없지만, 근기가 천차만별이라 그 근기에 따라 저마다 다르다. 정(情)이 있으면 상(相)이 현격하고, 견(見)이 끊어지면 체(體)가 동등하다. 신(身)이 서면 그림자가 생기고, 정이 남아 있으면 부처님이 다르다. 부처님께서 정을 말미암아 응하면, 바로 그 때문에 진(眞)을 어긴다. 마음이 다하고 정이 없어지면 지혜의 몸[智身]에 저절로 부합하기 때문에 연(緣)에 따른 작위가 없어서 움직이든 고요하든 다 참[眞]이니, 이렇게 상응하는 것을 비로자나부처님이라고 이름붙인다.
비로자나라는 것은 온갖 광명이 두루 비춘다는 뜻으로서 법신의 자비와 지혜로 상(相)의 교광(敎光:가르침의 광명)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근기를 대할 때 정에 따라 색(色)을 나타내고 있으니, 정이 어긋나면 상(相)이 다르고 견(見)이 다르면 부처님도 달라진다. 그러나 체(體)와 용(用)을 통해 혼연일체로 거두어들이면 본래가 비로자나의 단일한 지혜의 몸[智身]이니, 다만 참[眞]으로 돌아가 거짓[?]을 버릴지언정 거짓에 걸려서 참을 없애지는 말라.
부처님을 보는 차별을 대략 열 가지 문으로 세워 처음 믿는 자로 하여금 지말(枝末)을 돌이켜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련다.
첫째 인간계에서 부처님을 보는 것은 단지 32상(相)만이 있고, 둘째 온갖 천상계에서 부처님을 보는 것은 단지 80종호(種好)만이 있으며, 셋째 온갖 용(龍)이 부처님을 보는 것은 어떤 자는 인간이 보는 것과 같지만, 어떤 자는 단지 대용왕(大龍王)이 되는 것을 보며, 그 밖의 축생도 마찬가지다. 넷째 모든 선인(仙人)이 부처님을 보는 것은 단지 선인으로만 보며, 다섯째 그 밖의 외도들은 부처님을 자기와 똑같은 종류로 본다. 여섯째 8부(部)의 신들은 부처님이 자기와 함께 왕이 되는 것을 보며, 일곱째 소승인이 부처님을 보는 것은 대성문이 되는 것이며, 여덟째 연각인이 부처님을 보는 것은 역시 연각이 되는 것이며, 아홉째 권교의 보살이 부처님을 보는 것은 다만 삼천대천세계의 주재자가 되어서 복과 지혜가 삼천대천세계에 충만한 것이며, 열째 일승교의 보살이 부처님을 보는 것은 십불찰미진수 연화장세계해에서 법계의 주재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십불찰미진수 연화장세계라고 말한 것은 다함 없음을 밝힌 것이니, 일체의 찰토(刹土)를 몽땅 다스리기 때문이며, 복과지혜가 일체의 찰토에 충만해서 상의 바다[相海]가 겹겹이 겹치면서 다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상 열 가지 부처님을 보는 것의 차별은 발심할 때 믿고 좋아하는[信樂] 것의 차별성에서 비롯된 것이니, 이 믿고 좋아하는 힘 때문에 부처님을 보는 것이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알라. 발심한 자가 광대한 마음을 발하고 광대한 가르침을 믿고, 광대한 여원을 발하고 광대한 행(行)을 행하고 광대한 지혜에 들어서서 다함 없는 중생을 이롭게 하고 성취시키면, 조속히 보리행의 염원을 성취하고 아룰러 복과 지혜가 다 원만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지 못하면, 끝내 궁극적으로는 대보리를 성취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수고롭기만 하고 공(功)은 적을 것이니, 어찌 곧바로 일체지(一切智) 속으로 가는 것만 하겠는가?]]
2. 如來色形諸相等(여래색형제상등)을, 진정한 여래의 색, 형상, 여러 상호 등은
一切世間莫能測(일체세간막능측)이라. 일체 세간은 헤아릴 수 없어서
億那由劫共思量(억나유겁공사량)하야도, 억 나유타 겁을 함께 생각한 양보다
色相威德轉無邊(색상위덕전무변)이로다. 색상과 위덕이 더욱 가이 없네
[우리의 마음자리는 아무리 궁구하고 궁구해도 바닥이 없고, 끝이 없다고 보면 한 80%는 이해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3.如來非以相爲體(여래비이상위체)라. 여래는 상으로 체를 삼은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타난 현상으로 부처님, 여래의 본체를 삼는 것이 아니다.]
但是無相寂滅法(단시무상적멸법)이로다. 다만 상없는 적멸법이시지만
[형상이 있으되 형상을 초월한 적멸한 법이다. 물이라는 형상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身相威儀悉具足(신상위의실구족)하시니, 신상과 위의를 다 구족하시니
世間 隨樂皆得見(세간수락개득견)이로다. 세간이 바라는 대로 다 보도다
[相을 우선시 하지도 않고 또 相을 아예 부정하는 것도 물론 아닌, 중도= 相을 부정하지도 않으면서 또한 相을 부정하기도 하는, 非相과 相을, 相과 非相을 함께 수용하는 그것이 中道(중도)입니다.
그러니까 無相寂滅法이면서도 身相과 威儀가 悉具足,다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반야심경에서 관자재보살은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전부 眼耳鼻舌身意라고 하면서 관세음보살은 가장 화려하게 치장한 분입니다.
無眼耳鼻舌身意라면서 왜 그렇게 화려하게 장엄을 했느냐? 그것이 中道적인 안목으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無相寂滅法이지만 身相과 威儀를 悉具足이라. 관세음보살은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이라지만 당신은 형상을 그렇게 중요시 여깁니다. 역시 또 한편 無眼耳鼻舌身意. 없음과 있음을 융통자재하게 이해하고, 수용하고 활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매사가 다 그렇게 불상,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이 羅列幻化供具(나열환화공구)라. 환영과 같은 공양구를 나열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사실은 환화, 환영ㆍ허망ㆍ물거품ㆍ그림자와 같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익히 알고, 공양을 올려야 된다는 것이지요.
부처님께 올리는 마지 밥 김을 맡으면 안 된다고 해서 마스크를 쓰고 뜨지만, 그 위로 파리도 맡고, 온갖 것 다 맡는데 그것은 어쩌란 말입니까? 그러나 신심 있는 불자로서는 그러한 마음으로 마지 밥을 떠야 됩니다. 우리 어릴 때 그걸 앞으로 들고 가면 큰일 났어요. 옆으로 들고 가야됩니다. 내가 맡으면 안 되니까요. 그리곤 부처님 앞에 공손히 놓는 그러한 자세, 幻化供養具라는 사실을 여실히 알면서 또한 온 정성을 다해 바치는, 이것이 바른 자세, 中道적 자세ㆍ中道적 안목입니다.
建立水月道場(건립수월도량). 물에 비친 달그림자와 같은 허망한 도량을 건립하라. 열심히 건립하면서도 항상 허망한 줄 알아야 됩니다. 물에 비친 달그림자인줄 알고 열심히 도량을 건립해야 됩니다.
世間은, 세상 사람들은 자기 좋아하는 것을 따라 모두 얻어 본다. 부처님ㆍ관세음보살ㆍ별의별 작은 부처ㆍ큰 부처. 다 각각 다르지요. 나라마다 솜씨마다 절마다 다 다른 그것이 世間은 자기 좋아하는 바대로 다 얻어 본다.
사실은 無相寂滅法, 상이 없는 적멸한 도리인데, 그 적멸한 도리에서 모든 상을 갖추고 우리가 좋아하는 대로 다 본다. 그러니까 여기에 무엇에든지 걸리지 않아야 됩니다. 본래 無相이라고 마구잡이로 해도 병이고, 너무 상에 집착해서 형식에 치중해도 병입니다.]
4. 佛法微妙難可量(불법미묘난가량)이라. 불법은 미묘하여 헤아리기 어렵고
一切言說莫能及(일체언설막능급)이니, 일체의 말로는 미칠 수 없으며
非是和合非不合(비시화합비불합)일새. 화합도 불합도 아닌
[독립된 것도 아니고, 뭉쳐진 것도 아니고, 따로따로 된 것도 아니고, 함께 된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100여명 대중이 함께 있을 때만 함께 있고, 각자일 때는 각자라야 됩니다. 이 100명이 항상 같이 몰려다니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몰려다닐 수도 없을뿐아니라, 다녀서도 안 되고요. 모든 존재가 흩어질 때는 흩어져야 되고, 모일 때는 모여져야 되는, 그것을 잘 살펴서 적절하게 조화롭게ㆍ모양새 좋게, 화합할 땐 화합하고 독립할 땐 독립하는 것입니다]
體性이 寂滅하여 無諸相(체성적멸무제상)이로다. 체성이 적멸하여 모든 상이 없는 것이로다
[體性은 화합도 불 화합도 아니지만, 적멸해서 모든 일에 상이 없는= 無諸相이라.
항상 적멸을 바탕에다 두고 이해해야 되는 것이 불법입니다. 공에서 와서, 空이라고 하는 바탕위에 한바탕 멋지게 연극을 하다가 무대 뒤로 사라지는= 공으로 돌아가는 그것이 인생이다.= 體性寂滅無諸相이라.]
5.無生超戲論(불신무생초희론)하사, 부처님 몸은 남이 없고 희론을 초월하여
非是蘊聚差別法(비시온취차별법)이라. 온취의 차별법이 아니라서
[오온육취= 蘊聚= 이 육신 덩어리, 그리고 모든 각각 존재들도 蘊聚에 포함됩니다. 蘊聚가 안으로는 우리 육신 內四大(내사대) 밖으로는外四大(외사대)가 있듯이, 어떤 존재들도 여기에 해당되는 차별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得自在力決定見(득자재력결정견)하시니, 자재한 힘 얻어야 결정코 보는 것이며
所行無畏離言道(소행무외이언도)로다. 행에 두려움 없음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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