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初品中 十喩釋論 第十一卷 第六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임 경량 엮음 참조
11. 초품 중 열 가지 비유=十喩를 풀이함 5
'如影'者 影但可見 而不可捉, 諸法亦如是 眼情等 見聞覺知 實不可得. 如偈說:捉 잡을 착
‘그림자 같다’ 는 것은, 그림자는 단지 볼 수만 있을 뿐 잡을 수가 없으니, 제법도 그와 같아서 눈으로 보고자 하는 뜻을 비롯하여 보게 되고, 귀로 듣고자 하는 뜻을 통해서 듣게 되어 의식을 통해 깨달아 알게 되기는 하나, 실제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라. 마치 게송의 말씀과 같으니라.
是實智慧 四邊叵捉 叵 어려울 파
이 진실한 지혜는 사방 어디에서도 잡을 수 없나니
如大火聚 亦不可觸
마치 큰 불 덩어리와 같아, 감히 만질 수 없는 것처럼
法不可受 亦不應受
일체법은 받아들일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니라.
(그 어딘가에 정해진 실상이 있다는 어떠한 삿된 견해도 지니지 않는 것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復次, 如影 映光則現, 不映則無, 諸結煩惱 遮正見光 則有我相 法相影。遮 막을 차
또한 그림자는 빛이 비추이면 나타나고, 비추이지 않으면 없듯이, 모든 묶인 마음=結과 번뇌가 바른 견해=正見의 빛을 가리면, 곧 '나'라는 모습과 '법'이라는 모습의 그림자가 나타나느니라.
復次, 如影 人去則去 人動則動 人住則住。
또한 그림자는 사람이 가면 곧 가고, 사람이 움직이면 곧 움직이고, 사람이 머무르면 곧 머무르니,
善惡業影亦如是 後世去時亦去 今世住時亦住, 報不斷故 罪福熟時則出. 如偈說;
선업과 악업의 그림자도 그와 같아서, 후세로 갈 때에는 또한 따라 가고, 금생에 머무를 때는 역시 함께 머무르니, 과보가 단절되지 않는 까닭에, 죄업과 복업이 익어지면 곧 나타나게 되는 것이, 마치 게송에서 설함과 같으니라.
空中亦逐去 山石中亦逐 逐 쫓을 축
허공 가운데라도 쫒아 가고, 산중 바위 속이라도 쫒아 가고
地底亦隨去 海水中亦入
땅 밑이라도 쫒아 가고, 바다 속이라도 쫒아 들어가니,
處處常隨逐 業影不相離
가는 곳곳마다 항상 쫒아 따라다니니, 업의 그림자는 서로 함께하여 떨어지지 않네.
以是故說 '諸法如影.
이런 까닭에 ‘제법이 그림자와 같다’고 설하는 것이며,
復次, 如影空無 求實不可得, 一切法亦如是 空無有實
또한 그림자는 공하고 없는 것이어서 실체(실상)를 구하려 하여도 얻을 수 없으니, 일체 제법 또한 그와 같이 공하여 실체(실상)가 없느니라.
問曰, 影空無有實 是事不然!
묻나니, 그림자가 공하여 실체(실상)가 없다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何以故? '阿毘曇'說 '云何名色入? 靑 黃 赤 白 黑 縹 紫 光 明 影等 及身業三種作色 是名可見色入.' 汝云何言無?
縹 옥색 표, 紫 자주빛 자,
왜냐하면 아비담(Abhidharma 논장)에서는 말하기를 '무엇을 색온의 6입=色入이라 하는가? 청ㆍ황ㆍ적ㆍ백ㆍ흑ㆍ옥색ㆍ자주색ㆍ광명ㆍ그림자 등의 신업으로 짓는 세 가지 색=색온이니, 이러한 것을 볼 수 있는 색온의 6입=色入이라 한다'고 하였으나, 그대는 어찌하여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아비담(阿毘曇)= Abhidharma. 그 어의는 ‘법(dharma)에 관하여(abhi)’라는 의미로 아비달마(阿毘達磨)․비담(毘曇)이라 음역하거나 대법(對法)․무비법(無比法)․승법(勝法) 등으로 의역한다. 이 중 무비법․승법은 dharma를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보고 이에 대한 불제자들의 해석을 아비담이라고 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이 말은 불제자들의 아비담에 대한 이해를 묶은 책인 논서를 가리키기도 하는데, 기원전 2세기 부파불교시대부터 만들어진 논서들을 모아 논장(abhidharma- pitaka)이라 부른다. 여기에 원시불교시대에 성립된 경장과 율장을 더해 3장(tri-pitaka)이 된다. 스리랑카 상좌부와 북쪽의 설일체유부에서는 6족론에 『발지론』을 더해 7론을 논장으로 삼았는데, 뒤에 이 7논을 주석한 아비담이 다수 만들어진다. 이렇듯 본래 아비담의 취지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해명하려던 것이었는데, 시대가 지남에 새로운 교리체계로 발전되는 등 그 분석방식이 지나치게 세밀해지면서 오히려 번쇄함을 더하게 된다.
이는 결국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진의를 일탈하게 되며, 이를 계기로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復次, 實有影 有因緣故 因爲樹 緣爲明, 是二事合有影生 云何言無?
또한 실제로 그림자가 있게 된 것은 인연이 있기 때문이니, 원인=因은 나무요 조건=緣은 광명이니, 이 두 가지가 합쳐져서 그림자가 생기거늘 어찌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若無影 餘法因緣有者 亦皆應無!
만약 그림자가 없다고 한다면, 그 밖의 원인과 조건=因緣으로 생긴 모든 것들 또한 모두 없어야 할 것입니다.
復次, 是影色 可見 長短 大小 麤細 曲直 形動影亦動 是事皆可見 以是故應有. 麤 거칠 추, 曲 굽을 곡
또한 이 그림자의 모습=色은 볼 수가 있으니, 길고 짧고, 크고 작고, 거칠고 섬세하고, 굽고 곧음의 형태가 움직이면, 그림자도 움직이니, 이러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까닭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答曰, 影實空無 汝言'阿毘曇(아비담)'中說者 是釋'阿毘曇(아비담)'義人所作 說一種法門 人不體其意 執以爲實.
답하나니, 그림자는 실제로는 '공'하여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대는 아비담(논장) 가운데 설하여진 것을 말하고 있지만, 이는 아비담(논장)의 뜻을 풀이한 사람이 그렇게 정의하여 적어놓은 것으로, 일종의 법문이거늘 사람들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사실이라고 집착하는 것이니라.
如'鞞婆沙(비바사, 비파사)'中說, '微塵至細 不可破 不可燒.' 是則常有! 燒 사를 소,
비파사(Vipaśyin 승관)에서 설하기를 '미진은 지극히 가늘어서 깨뜨릴 수 없고, 태울 수도 없으니, 이는 항상 있는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비바시불(毘婆尸佛)= 비바사(毘婆沙)ㆍ비바시(鞞婆尸)ㆍ비발시(毘鉢尸)ㆍ미발시(微鉢尸)ㆍ유위(惟衛)라고도 쓰며, 승관(勝觀)ㆍ정관(淨觀)ㆍ승견(勝見)ㆍ종종견(種種見)이라 번역하며, 소승경(小乘經)에서 설(說)하는 과거 칠불(七佛)의 첫째이며 장아함경(長阿含經)에는 과거 장엄겁(莊嚴劫), 석존출세(釋尊出世)의 구십일대겁(九十一大劫)전에 인수(人壽) 팔만사천세(八萬四千歲)의 때, 출현(出現)하여, 파파라수하(波波羅樹下)『타설(他說)에는 무우수하(無憂樹下)』에서 성도(成道)하고, 초회(初會)의 설법에서 십육만팔천명, 이회(二會)의 설법에서 십만명, 삼회(三會)의 설법에서 팔만명을 화도(化導)했다고 있다고 하나, 설법에서 화도(化導)한 인원수에 대해서는 이설(異說)이 있다.
비바시불(毘婆尸佛)의 부(父)는 반두(槃頭)이고 찰리의 왕종(王種), 모(母)는 반두바제(槃頭婆提), 성도(城都)의 이름은 반두바제(槃頭婆提)였으며, 자(子)는 방응(方膺)이었다.
비바시불(毘婆尸佛)의 모든 제자중 제일이었던 두제자. 건다(騫茶),제사(提舍)가 있다.
팔리어본 마하방사(Mahavamsa)의 제일권(第一卷)에 연등불(燃燈佛)을 필두로 한 이십사불(二十四佛)중 열아홉번째 부처를 말하며 시기불(尸棄佛),비사부불(毘舍浮佛)과 함께 과거 장엄겁(莊嚴劫) 998위 부처라고 한다.-75서원
'復有三世中法 未來中 出至現在 從現在入過去 無所失' 是則爲常!
또한 말하기를 '3세 가운데 법이 있으니, 미래 가운데에서 나와 현재에 이르고, 현재로부터 과거로 들어가게 되어도 無所失=잃어버리지 않으니, (어긋남이 없으니), 이것이 곧 항상함=常이다'고 하였으며,
又言, '諸有爲法 新新生滅不住' 若爾者 是則爲斷滅相, 何以故 先有今無故。
또한 말하기를 '모든 유위의 법은 새록새록 생멸하여 멈추지 않고 생멸을 거듭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곧 단멸상이니, 왜냐하면 앞에서는 있다가 지금은 없어졌기 때문이다'고 하였으며,
단멸상(斷滅相) ① 인간은 죽음과 동시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극단적인 생각. 따라서 인과를 무시하고 선악 등을 무시하는 것. ② 수행인이 스스로 일체의 번뇌망상.사심잡념을 끊어 멸했다는 생각에 집착하는 것.
如是等種種異說 違背佛語 不可以此爲證。
이와 같은 여러가지의 말씀이 부처님의 말씀과 자못 어긋나고 위배되니, 이러한 것으로 증명을 삼을 수는 없느니라.
影今異於色法 色法生必有 香 味 觸等 影則不爾, 是爲非有。
지금 그림자는 色法=색온의 법과는 다르니, 색온의 현상과 작용인 색법이 생겨 나면, 반드시 냄새와 맛과 촉감 등이 있으나, 그림자는 그렇지 않으니, 이는 곧 존재하지 않음=非有가 되는 것이라.
如甁二根知, 眼根 身根, 影若有 亦應二根知 而無是事。甁 병 병
예컨대 항아리=甁는 二根=안근과 신근의 두 감관으로 아나니, 곧 눈과 몸이다. 그림자가 있는 것이라면 마땅히 두 감관으로 함께 알 수 있어야 하나, 그렇지가 않으니, (그림자라는 눈으로는 볼 수 있을지언정 만질 수 없으니)
以是故 影非有實物 但是誑眼法;
이러한 연유로, 그림자는 실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 눈을 속이는 현상과 작용=법일 뿐이다.
如捉火㷮 疾轉成輪 非實。㷮 타다 남은 조, 疾 병 질,
마치 불붙은 불통을 잡고 돌리는 것과 같으니, 빨리 돌리면 불 바퀴가 만들어지나 그것은 진실한 것이 아닌 것과 같으니,
影非有物, 若影是有物 應可破可滅, 若形不滅 影終不壞 以是故空。
그림자는 존재하는 물건(사물)이 아니니, 만일 그림자가 곧 존재하는 사물이라면 마땅히 깨뜨릴 수 있거나, 없앨 수 있어야 하며, 형체가 없어지지 않는 한 그림자는 끝내 없어지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하므로 '공'한 것이라 하느니라.
復次 影屬形 不自在故空 雖空而心生眼見, 以是故說“諸法如影。
또한 그림자는 형체에 속하여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공하며, 비록 공하지만 마음에 생겨나 눈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법이 그림자 같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如鏡中像'者 如鏡中像 非鏡作 非面作, 非執鏡者作 亦非自然作 亦非無因緣。
‘거울 속의 형상과 같다’고 했는데, 거울 속의 형상은 거울이 지은 것이 아니요, 얼굴이 지은 것도 아니요, 거울을 잡은 이가 지은 것도 아니요, 자연히 지어진 것도 아니요, 또한 인연 없이 된 것도 아니다.
영상(影像)이라고 표현한 것은 언어의 미분화(未分化) 때문입니다. 그림자는 오로지 한 가지 색이나 영상(影像)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마하반야바라밀다경
何以非鏡作? 若面未到 鏡則無像, 以是故非鏡作。
어째서 거울이 지은 것이 아닌가? 이는 만약 얼굴을 거울에 비추기 전에는 형상이 없으니, 그러므로 거울이 지은 것이 아닌 것이며,
何以非面作? 無鏡則無像,
어째서 얼굴이 지은 것이 아닌가? 이는 만약 거울이 없으면 형상이 없기 때문이며,
何以非執鏡者作? 無鏡 無面則無像。
어째서 거울을 잡은 이가 지은 것이 아닌가? 이는 만약 거울과 얼굴이 없으면 곧 형상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며,
何以非自然作? 若未有鏡 未有面 則無像 像待鏡 待面然後有, 以是故非自然作。
어째서 자연히 지어 진것이 아닌가? 이는 만약 거울이 없고 얼굴도 없으면 곧 형상이 없는 것이니, 형상은 거울과 얼굴이 마주하기를 기다린 뒤에야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히 지어 진것이 아니다.
何以非無因緣? 若無因緣應常有, 若常有 若除鏡 除面 亦應自出, 以是故非無因緣。
어째서 인연 없이 이루어진 것도 아닌가? 왜냐하면 인연없이 이루진 것이라면, 항상 형상이 있어야 할 것이요, 항상 있다면 거울이나 얼굴을 없을 때에도 스스로 영상이 있어야 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인연 없이 이루어진 것도 아닌 것이니라.
諸法亦如是 非自作 非彼作 非共作 非無因緣。
제법도 그와 같아서, 스스로 지어 지는 것도 아니요, 남이 짓는 것도 아니요, 함께 지어 내는 것도 아니요, 인연없이 지어 지는 것도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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