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初品中摩訶薩埵釋論 第九 卷第五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경량 엮음 참조

10. 초품 중 보살의 공덕을 풀이함 11

 

▶經. 於大衆中(어대중중) 得無所畏(득무소외)
▷經. 대중 가운데서 두려움 없는=無所畏을 얻다.


▶論. 大德故(대덕고) 堅實功德智慧故(견실공덕지혜고) 得最上辯陁羅尼故(득상변다라니고) 於大衆中得無所畏(어대중중득무소외) 如偈說(여게설)
▷論. 큰 위덕을 지닌 까닭이며, 견실한 공덕과 지혜를 얻은 까닭이며, 최상의 변재다라니를 얻은 까닭에 대중 가운데에서 두려움 없음을 얻었으니, 마치 다음의 게송에서 설한 바와 같으니라.

()= 일체중생 화합할 수 있게 하는 마음을 뜻하는 것으로 자비희사(慈悲喜捨)의 다른 말입니다.-마하반야바라밀다경


內心智德薄(내심지덕박) 外善以美言(외선이미언)
마음 속의 지혜와 덕이 얇으나, 밖으로 좋은 말만으로 꾸미면
譬如竹無內(비여죽무내) 但示有其外(단시유기외)
마치 대나무의 속이 비어있듯이, 단지 겉 모양만 보일 뿐이네. 

 

內心智德厚(내심지덕후) 外善以法言(외선이법언)
마음 속의 지혜와 덕이 두텁고, 밖으로 법다운 말로써 다듬으면
譬如妙金剛(비여묘금강) 中外力具足(중외력구족)
마치 묘한 금강과 같아서, 안과 밖의 힘을 구족하였네. 


復次(부차) 無畏法成就故(무외법성취고) 端正貴族(단정귀족) 大力持戒(대력지계) 禪定智慧(선정지혜) 語議等皆成就(어의등개성취) 是故無所畏(시고무소외) 

또한 두려움 없는 법을 성취하였으므로 단정한 귀족으로서의 큰 힘이 있으며, 지계ㆍ선정ㆍ지혜ㆍ말재주 등을 비롯한 모든 것을 성취하게 되었으므로 두려움이 없으며,

 

以是故(이시고) 於大衆中無所畏(어대중중무소외) 如偈說(여게설)
그런 까닭에 대중 가운데서도 두려움이 없으니, 마치 게송에서 설하신 바와 같으니라.


少德無智慧(소덕무지혜) 不應處高座(불응처고좌)
덕이 적고 지혜 없거든,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如豺見師子(여시견사자) 竄伏不敢出(찬복불감출) 豺 승냥이 시, 竄 숨을 찬
이리가 사자를 본 것 같이, 숨어서 감히 나오지 못하듯 하라.


大智無所畏(대지무소외) 應處師子座(응처사자좌)
지혜가 크고 두려움이 없거든, 마땅히 사자좌에 앉으라.
譬如師子吼(비여사자후) 衆獸皆怖畏(중수개포외)
비유하면 마치 사자후에 뭇 짐승들이 모두 두려워함과 같으리.


無量無邊(무량무변) 智慧福德力集(지혜복덕력집) 故無所畏(고무소외) 如偈說(여게설)
무량무변한 지혜와 복덕의 힘을 모으게 된 까닭에 두려움이 없으니, 마치 게송의 말씀과 같으니라.

 
若人滅衆惡(약인멸중악) 乃至無小罪(내지무소죄)
만약 어떤 사람이 모든 악을 멸하고, 조그마한 죄조차 없다면
如是大德人(여시대덕인) 無願而不滿(무원이불만)
이와 같은 대덕을 지닌 사람은, 소원하여 채우지 못할 것 없으리라.

 
是人大智慧(시인대지혜) 世界中無惱(세계중무뇌)
이러한 사람은 크게 지혜로워서, 세계 가운데에서 번뇌가 없나니
是故如此人(시고여차인) 生死涅槃一(생사열반일)
그러한 까닭에 이와 같은 사람에게 생사와 열반은 하나가 되리. 


復次(부차) 獨得菩薩無所畏故(독득보살무소외고) 如’毘那婆那王經中’說(여’비나파나왕경’중설) 菩薩獨得(보살독득) 四無所畏(사무소외) 如先說(여선설)
또한 보살만이 얻는 두려움 없는 까닭이니, 마치 '비나파나왕경'에서는 '보살만이 네 가지 두려움 없음=四無所畏을 얻는다'고 한 것과 같으니, 이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으니라.

 

▶經.  無數億劫說法巧出(무수억겁설법교출)
▷經. 헤아릴 수 없는 억의 겁 동안 교묘하고 뛰어나게 법을 설하다.


▶論. 不放逸等諸善根(불방일등제선근) 自身好修(자신호수) 是諸菩薩(시제보살) 非一世(비일세) 二 三 四世(이 삼 사세) 乃至無量阿僧祇劫(내지무량아승기겁) 集功德智慧(집공덕지혜) 如偈說(여게설)
▷論. 게으르지 않은=不放逸 등의 모든 선근을 스스로 닦기를 좋아하는 이러한 보살들은 한 생도 아니고 둘ㆍ셋ㆍ네 생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모든 공덕과 지혜를 모았으니, 마치 게송의 말씀과 같으니라.


爲衆生故發大心(위중생고발대심) 若有不敬生慢者(약유불경생만자)
중생을 위하여 큰 보리심을 낸 이에게 공손치 않거나 교만을 낸다면
其罪甚大不可說(기죄심대불가설) 何況而復加惡心(하황이부가악심) 
그 죄는 매우 커서 말할 수 없거늘, 하물며 악한 마음으로 가하는 일이랴. 


復次(부차) 是菩薩無數無量劫中(시보살무수무량겁중) 修身 修戒(수신 수계) 修心 修慧(수심 수혜) 生滅 縛解(생멸 박해) 逆順中(역순중) 自了了知諸法實相(자료료지제법실상)
또한 이 보살은 셀 수 없고 한량없는 겁 동안에 몸을 닦고 계를 닦았으며, 마음을 닦고 지혜를 닦아 생멸의 속박을 풀고 거슬리고 순종하는 가운데 스스로가 실상을 명료히 알게됨에


有三種解(유삼종해) 聞解 義解 得解(문해 의해 득해) 
세 가지의 이해를 얻게 되었으니, 듣고 이해하는=聞解ㆍ그 뜻을 이해하는=義解ㆍ그러함을 깨달아 아는=得解이라. 

 

種種說法門中(종종설법문중) 無所罣㝵(무소괘애) 皆得說法方便(개득설법방편) 智慧波羅蜜(지혜바라밀)
갖가지로 법문을 연설하되 걸림과 거리낌이 없으며, 모두 설법의 방편과 지혜바라밀을 얻었으니, 


是諸菩薩所說(시제보살소설) 如聖人說(여성인설) 皆應信受(개응신수) 如偈說(여게설)
이러한 보살들이 설하는 바는 성인의 말씀과 다를 바 없어, 모두 믿고 받아 지녀야 하나니, 게송의 말씀과 같으니라.

 
有慧無多聞(유혜무다문) 是不知實相(시불지실상)
지혜만 있고 많이 듣지 못하면, 이는 실상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譬如大闇中(비여대암중) 有目無所見(유목무소견)
마치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눈은 있으되 보지 못함과 같도다 


聞無智慧(다문무지혜) 亦不知實義(역불지실의)
들은 것이 많건만 지혜가 없다면, 역시 실상의 이치를 알지 못하니
譬如大明中(비여대명중) 有燈而無目(유등이무목)
마치 매우 밝은 광명 가운데, 등불까지 있으되 눈이 없음과 같다. 


多聞利智慧(다문이지혜) 是所說應受(시소설응수)
들은 것 많고 지혜도 예리하다면, 그의 말은 받아들여야 하지만
無慧亦無明(무혜역무명) 是名人身牛(시명인신우)
들은 것 없고 지혜도 없다면, 이를 사람 중의 소라 부른다. (소가 사람노릇하고 있다고 말하리라.)


問曰(문왈) 應言無數億劫巧說法(응언무수억겁교설법) 復何以言’出’(부하이언’출’)?
묻나니, '무수한 억 겁 동안 교묘히 능히 설법했다'고 말해도 좋거늘 어째서 또한 뛰어났다=出하다고 하는 것입니까?


答曰(답왈) 於無智人中(어무지인중) 及弟子中說法易(급제자중설법이) 若多聞利智(약다문이지) 善論議人中說法難(선론의인중설법난)
답하나니, 지혜 없는 사람이나 제자들에게 설법하기는 쉽거니와 지식이 많고 지혜가 날카로워 토론을 잘 하는 사람들에게 설법하기는 어려우니,


若小智法師(약소지법사) 是中退縮(시중퇴축) 若大學多聞問難中大膽欣豫(약대학다문문난중대담흔예) 一切衆中有大威德(일체중중유대위덕) 如’天會經’中偈說(여’천회경’중게설)
만약 지혜가 적은 법사는 이런 경우에 물러나 움츠리거니와, 많이 배우고 견문이 많은 이는 어려운 질문에도 담대하고 흔쾌해서 일체의 대중 가운데 큰 위덕 있음이 마치 '천회경'의 게송의 말씀과 같으니라.


面目齒光明(면두치광명) 普照於大會(보조어대회)
얼굴과 눈과 치아의 광명이 대회에 두루 밝게 비치니,
映奪諸天光(앙탈제천광) 種種皆不現(종종개불현)
그 광영이 모든 하늘 광명을 무색케 하여, 어떠한 빛도 나타나지 못하게 하네. 


以是故(이시고)  名爲’無數億劫巧說法中能得出’(명위’무수억겁교설법중능득출’)

그러므로 ‘헤아릴 수 없는 억겁 동안 법을 설함에 교묘히 뛰어났다’고 하는 것이니라.

 

大智度論卷第五終(대지도론 제 권 끝)

 

*부처님의 삼불능(三不能)---<대승기신론>, <대지도론> 등에서 부처님의 세 가지 불능(不能)을 말하고 있다. 부처님 같이 위대한 분도 할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는 말이다.
1. 정업(正業)은 능히 면(免)할 수 없다(不能免正業衆生).
2. 인연 없는 중생은 능히 제도할 수 없다(不能度無緣衆生).
3. 중생계를 능히 다할 수 없다(不能盡衆生界).
첫 번째 '不能免正業衆生(불능면정업중생)'에서 정업(定業)은 과거에 자기가 지은 업(業-인/因)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현세에서 받게 되는 과보를 말한다. 따라서 정업은 곧 숙명이다. 반드시 과보를 불러오는 업이므로, 정업(定業)은 부처님도 소멸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不能度無緣衆生(불능도무연중생)’은 부처님께서 비록 모든 중생의 성질을 꿰뚫어 과거ㆍ현재ㆍ미래 중생들의 숙업(宿業)을 남김없이 아시지만, 부처님과 인연이 없는 중생은 제도하실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같은 사람이라도 목갈리나 존자가 제도해야 할 제자가 있고, 사리푸트라 존자가 제도해야 할 제자가 있으며, 부처님께서 직접 제도해야 할 제자가 있다. 모두가 전생에서부터의 인연에 따라 그렇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能盡衆生界(불능진중생계)’은 부처님일지라도 세간의 일체 중생을 한꺼번에 다 제도하실 수는 없다는 말이다. 중생계는 한량없고 다함이 없어서 그것을 한 부처님께서 일시에 다 제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주의 중생계가 무한하고 중생의 업이 무한한 만큼, 그런 세계를 일시에 교화해 낼 수는 없다.
이상의 삼불능이 의미하는 바는 자신의 숙업을 정화하지 않는 중생, 선(善)을 추구하는 의지가 없는 중생은 교화해서 인도할 인연이 없으므로 부처님께서도 관여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삼불능’은 부처님 자신의 불가능이라기보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고 행하려는 사람들의 불가능이라 할 수 있다.-작성자 아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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