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初品中摩訶薩埵釋論 第九 卷第五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경량 엮음 참조

10. 초품 중 보살의 공덕을 풀이함 5

 

  等忍 2

云何名'法等忍'(운하명'법등인')?

무엇을 법의 등과 인이라 하는가? 

 

善法不善法(선법불선법) 有漏無漏(유루무루) 有爲無爲等法(유위무위등법) 如是諸法入不二入法門(여시제법입불이입법문) 入實法相門(입실법상문) 如是入竟(여시입경)

곧 착한 법과 착하지 못한 법, 유루의 법과 무루의 법, 유위의 법과 무위의 법 등과 같은 모든 법에 대해서 불이(원융)의 법문에 들고, 실다운 법상의 문에 드는 것이다. 

불이(不二)= 용수(龍樹, Nagarjuna)이 주장하였으며, 분별을 떠난, 언어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절대 경지,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며, 선과 악이 둘이 아니며, 유와 무가 둘이 아니며, 공과 색이 둘이 아니며, 생사와 열반이 서로 의존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실체가 없는 공(空)으로 서로 다르지 않다는 의미이다. '화엄경의 원융(圓融)사상은 모든 현상이 각각의 속성을 잃지 않으면서 서로 걸림 없이 원만하게 하나로 융합돼 있는 모습을 말한다. 즉 서로 통하여 아무 차별이 없고, 원만해 서로 막히는 데가 없는 이것이 곧 불이(不二), 상즉(相卽)을 가리킨다. 
어리석은 중생이 가지는 분별심은 천국과 지옥, 상층과 하층, 남과 여, 흑과 백, 이와 같이 세상을 둘, 혹은 그 이상으로 나눠 분별하려고 한다. 이러한 잘못된 착각을 바로 잡으려 하는 인식이 바로 불이사상이다. 내 민족과 다른 민족, 인간과 짐승, 좌와 우, 남과 북은 물론이고, 모든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행과 불행, 만족과 불만족, 좋은 것과 싫은 것,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나와 너의 구분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이 이 세상에 갈등을 부추기는 번뇌의 출발점이다.- 아미산

 

是中深入諸法實相時(시중심입제법실상시) 心忍直入(심인직입) 無諍無㝵(무쟁무애) 是名法等忍(시명법등인) 如偈說(여게설);
이러함을 통해 제법의 실상에 깊이 들 때에 마음으로 확인=忍하여 다툼이 없는=無諍ㆍ걸림이 없는=無礙에 든다면 이를 법의 '등인'이라 하나니 마치 게송의 말씀과 같으니라. 

 

諸法不生不滅(제법불생불멸) 非不生非不滅(비불생비불멸)

제법은 생겨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멸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亦不生滅非不生滅(역불생멸비불생멸) 亦非不生滅(역비불생멸) 非非不生滅(비비불생멸)
생멸하지도 않으면서 생멸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생멸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생멸하지 않는 것이 아닌 것도 아니다. 


已得解脫丹注云(이득해탈단주운) 於邪見得離故言解脫也(어사견득리고언해탈야)

(제법의 실상을 터득하였으므로)이미 해탈을 얻어 단주(거란대장경)에 말하기를 ‘삿된 소견을 여의게 되는 까닭에 해탈이라 한다’ 하였느리라. 

 

空 非空丹注云(공 비공단주운) 於空不取故言非也(어공불취고언비야)

공과 비공(공과 함께하되, 공이 항상 한 것도 무상한 것도 아닌 비공), 단주(거란대장경)에 말하기를 ‘공에도 집착하지 않는 까닭에 비라 한다’ 하였으니, 

(비가 항상 한 것도 무상한 것도 아니라는 뜻임을 모르므로 ‘공(空)함을 취하려 들지 않는 까닭에 비(非’라고 말한다.'고 거란대장경에서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마하반야바라밀다경)

 

是等悉捨(시등실사) 滅諸戲論(멸제희론) 言語道斷(언어도단) 深入佛法(심입불법) 心通無㝵(심통무애) 不動不退(부동불퇴) 名無生忍(명부생인) 是助佛道初門(시조불도초문) 以是故說'已得等忍'(이시고설 '이득등인')
이러한 모든 희론을 버리고 없애어,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불법에 깊이 들어가서 마음에 걸림이 없으며, 흔들리거나 물러남이 없는 것을 '무생인'이라 하나니, 이는 불도를 돕는 첫 문인 까닭에 ‘이미 등과 인을 얻었다’는 것이니라.

무생인(無生忍)은 삼지(三地)인 팔인지(八人地)에서 터득하는 것.-마하반야바라밀다경

 

●得無㝵陁羅尼

▶經. 得無㝵陁羅尼(득무애다라니)
▷經. 걸림 없는 다라니=無㝵陁羅尼를 얻다. 

▶ 論. 問曰(문왈) 前已說(전이설) 諸菩薩得陁羅尼(제보살득다라니) 今何以復說(금하이부설) '得無㝵陁羅尼'(득무애다라니)?
論. 묻나니, 앞에서 이미 모든 보살이 다라니를 얻었다 하였는데, 어찌하여 이제 다시 걸림 없는 다라니를 얻었다 하는 것입니까?

 

答曰(답왈) 無㝵陁羅尼最大故(무애다라니최대고) 如一切三昧中(여일체삼매중) 三昧王三昧最大(삼매왕삼매최대) 如人中之王(여인중지왕) 如諸解脫中(여제해탈중) 無㝵解脫(무애해탈)

답하나니, 걸림 없는 다라니가 가장 크기 때문이니, 마치 모든 삼매 가운데서 삼매의 왕이 가장 크고, 모든 인간 가운데서 왕이 가장 크고, 모든 해탈 가운데서 걸림 없는 해탈이 가장 큰 것과 같으니라.

 

大丹注云(대단주운) 得佛得道時所得也(득불득도시소득야) 如是一切諸陁羅尼中(여시일체제다라니중) 無㝵陁羅尼大(무애다라니대) 以是故重說(이시고중설)
단주에 말하기를 ‘부처를 이루고 도를 얻을 때에 얻어지는 것이다’ 하였으니, 이와 같이 모든 다라니 가운데 걸림 없는 다라니가 가장 크므로 거듭 말하는 것이니라. 

復次(부차) 先說諸菩薩得陁羅尼(선설제보살득다라니) 不知是何等陁羅尼(불지시하등다라니)?

또한 앞에서는 모든 보살들이 다라니를 얻었다고는 하였으나 이것이 어떤 다라니인지는 모르며, 

 

有小陁羅尼(유소다라니) 如轉輪聖王(여전륜성왕) 仙人等所得(선인등소득) 聞持陁羅尼(문지다라니) 分別衆生陁羅尼(분별중생다라니) 歸命救護不捨陁羅尼(귀명구호불사다라니) 

작은 다라니들이 있으니, 전륜성왕이나 선인 등이 얻는 '문지다라니'ㆍ'분별중생다라니'ㆍ'귀명구호불사다라니' 등이며, 

 

如是等小陁羅尼(여시등소다라니) 餘人亦有(여인역유) 是無㝵陁羅尼(시무애다라니) 外道聲聞辟支佛(외도성문벽지불) 新學菩薩皆悉不得(신학보살개실부득)

이러한 작은 다라니는 다른 사람들도 얻지만, 이 걸림 없는 다라니만은 외도ㆍ성문ㆍ벽지불ㆍ새로 배움에 든=新學 보살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唯無量福德智慧大力(유부량복덕지혜대력) 諸菩薩獨有是陁羅尼(제보살독유시다라니) 以是故別說(이시고별설)
오직 한량없는 복덕과 지혜를 갖춘 대력 보살들만이 이 다라니를 얻을 수 있는 것이므로 달리 말하는 것이니라. 


復次(부차) 是菩薩輩(시보살배) 自利已具足(자리이구족) 但欲益彼(단욕익피) 說法教化無盡(설법교화무진) 以無㝵陁羅尼爲根本(이무애다라니위근본) 以是故(이시고) 諸菩薩常行無㝵陁羅尼(제보살상행무애다라니)
또한 이 보살들은 스스로를 이롭게 함=自利가 이미 갖추어졌으므로, 오로지 남에게 이득을 주고자 해서 끝없이 법을 설하고 교화하며 걸림 없는 다라니로써 근본을 삼는 것이니, 그러함으로 보살들은 항상 걸림 없는 다라니를 행한다고 하는 것이니라. 

 

●五通 1
▶經. 悉是五通(실시오통)
經. 모두가 5통을 얻었다.

▶論. 如意天眼天耳(여의천안천이) 他心智自識宿命(타심지자식숙명)

▷論. 여의통ㆍ천안통ㆍ천이통ㆍ타심지ㆍ스스로의 숙명에 대해 스스로 찾아서 헤아려 알 수 있는=自識宿命을 말하는 것이다.

 

云何如意(운하여의)? 如意有三種(여의유삼종) 能到 轉變 聖如意(능도 전변 성여의)
무엇을 '여의'라고 하는가? 여의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능도'와 '전변'과 '성여의'이며, 

能到有四種(능도유사종) 一者(일자) 身能飛行 如鳥無㝵(신능비행 여조무애)
二者(이자) 移遠令近 不往而到(이원영근 불왕이도)

능히 뜻대로 이르고자 하는 곳에 이르게 되는=能到에 네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몸이 능히 날아다니되 새와 같이 걸림이 없는 것이요, 둘째는 먼 곳을 가깝게 만들어 가지 않고도 이르는 것이요, 

 

三者(삼자) 此沒彼出(차몰피출) 四者(사자) 一念能至(일념능지)
셋째는 여기에서 사라져서 저기에서 나오는 것이요, 넷째는 한 생각으로 이르고자 하는 곳에 능히 이르는 것이며, 

轉變者(전변자) 大能作小(대능작소) 小能作大(소능작대) 一能作多(일능작다) 多能作一(다능작일) 種種諸物皆能轉變(종종제물개능전변)

다르게 바꾸는=轉變이라 함은 큰 것을 작게 만들고 작은 것을 크게 만들며, 하나를 많게 만들고 많은 것을 하나로 만드는 등 갖가지 물건을 능히 바꾸어 변화시키는 것으로,

 

外道輩轉變(외도배전변) 極久不過七日(극구불과칠일) 諸佛及弟子轉變(제불급제자전변) 自在 無有久近(자재 무유구근)
외도 무리들의 바꾸어 변하는=轉變은 오래 갈 수 있는 것이 7일을 지나지 못하나니, 부처님이나 제자들의 전변은 자재롭고 오래 유지되는 것으로 멀고 가까움이 없느니라. 

 

聖如意者(성여의자) 外六塵中(외육진중) 不可愛不淨物(불가애불정물) 能觀令淨(능관영정) 可愛淨物(아애정물) 能觀令不淨(능관영부정) 是聖如意法(시성여의법) 唯佛獨有(유불독유)

'성여의'라 함은 밖의 6진에 대해 사랑스럽지 못하고 부정한 물건을 관하여 정화시키고, 사랑스럽고 깨끗한 물건을 관하여 부정하게 만드니, 이 성인의 뜻대로 되는 현상과 작용=聖如意法은 부처님만이 가지신 것이니라.

 6진(塵)= 6근의 대상인 6경, 곧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

 

是如意通(시여의통) 從修四如意足生(종수사여의족생) 是如意足通等(시여의족통등) 色緣故次第生(색연고차제생) 不可一時得(불가일시득)
이러한 '여의통'은 4여의족을 닦음으로부터 생기며, 이 여의족통 등은 색의 반연인 까닭에 차례차례 생길지언정 일시에 생기는 것이 아니니라.

四如意足(사여의족)= 신족(四神足)이라고도 하며, ‘자유자재한 힘을 얻기 위한 네 가지 기반’이라는 뜻이다. 적극적인 의욕으로 선정을 닦아 자유자재한 힘을 성취하는 욕여의족(欲如意足), 정진으로 선정을 닦아 자유자재한 힘을 성취하는 정진여의족(精進如意足), 마음을 가다듬고 선정을 닦아 자유자재한 힘을 성취하는 심여의족(心如意足), 사유하고 관찰하는 선정을 닦아 자유자재한 힘을 성취하는 사유여의족(思惟如意足)을 말한다.

 

天眼通者(천안통자) 於眼得(어안득) 色界四大造淸淨色(색계사대조청정색) 是名天眼(시명천안)

'천안통'이라 함은 눈에 있어서 색계의 4대로 지어진 청정한 색을 얻으니, 이를 천안이라 하며,

 

天眼所見(천안소견) 自地及下地六道中(자지급하지육도중) 衆生諸物(중생제물) 若近若遠(약근약원) 若覆若細諸色(약부약세제색) 無不能照(무불능조)

천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의 경지=地(지위) 및 아래의 경지에 있는 6도 중생들로서, 모든 사물의 멀고 가까움, 거칠고 미세함 등 모든 모양=色을 비추어 보지 못함이 없느니라.


見天眼有二種(견천안유이종) 一者 從報得(일자 종보득) 二者 從修得(이자 종수득)

천안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과보에 따라 얻는 것이요, 둘째는 수행에 따라 얻는 것이라.

 

是五通中天眼(시오통중천안) 從修得 非報得(종수극 비보득) 何以故(하이고) 常憶念種種光明得故(상억념종종광명득고)

이 5신통=五通 가운데 천안은 수행으로 얻을 뿐 과보로 얻지는 않으니, 왜냐하면 항상 갖가지 광명을 바르게 억념(사유)해서 얻기 때문이니라.


復次 有人言(부차 유인언) '是諸菩薩輩(시제보살배) 得無生法忍力故(득무생법인력고) 六道中不攝(육도중불섭) 但爲教化衆生故(단위교화중생고) 以法身現(이법신현) 於十方三界中(어시방삼계중) 未得法身菩薩(미득법신보살) 或修得 或報得(혹수득 혹보득)'

또한 어떤 사람은 '이 보살들은 무생법인의 힘을 얻는 까닭에 6도에 속하지 않지만, 다만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까닭에 법신으로써 시방에 현현하며, 삼계 가운데에서 아직 법신을 얻지 못한 보살은 혹은 닦아서 얻기도 하고 혹은 과보로 얻기도 한다.' 고 말하느니라.

법성생신(法性生身)= 인연화합에 의한 모든 현상과 작용의 맨 처음 본바탕인 청정(淸淨)함이라는 한결같은 몸으로 태어나는 것. 유위(有爲)의 오중(五衆)인 색온(色蘊)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식온(識蘊)이 청정하게 무위(無爲)의 오중인 계중(戒衆) 정중(定衆) 혜중(慧衆) 해탈중(解脫衆) 해탈지견중(解脫知見衆)으로 바뀌게 되는 것으로, 다른 말로 의생신(意生身)이라 부르며 오종(五種)의 의생신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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