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初品摠說如是我聞釋論第二卷第二
龍樹菩薩造 용수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임 경량 엮음 참조
4. 초품 중 바가바(婆伽婆)를 풀이함(大智度初品中婆伽婆釋論第四)-5
◎修伽陁(수가타, Sugata, 호거好去, 호설好說, 선서善逝)
復名修伽陁(부명수가타) “修”秦言“好”('수'진언'호') “伽陁”或言“去”('가타'혹언'거')
或言“說”(혹언'설') 是名“好去” “好說”(시명'호거' '호설')
또한 수가타(Sugata, 선서善逝))라고도 하나니, '수(Su)'는 진나라(중국)에서는 ‘좋은, 훌륭한=好’라 하고, '가타(gata)'는 ‘가다=去,’ 또는 ‘말씀=說’이라고 하며,
好去者(호거자) 於種種諸深三摩提(어종종제심삼마제)
無量諸大智慧中去(무량제대지혜중거)
그러므로 ‘잘 가시고 잘 말하신 분’이라 하나니, ‘잘 간다’고 함은 갖가지 깊은 삼매와 한량없는 모든 큰 지혜로 간다는 뜻이니,
(또, “수가타(修伽陀 Sugata)”라 부르나니, 중국말로 “수(修 Su)”는 “훌륭하다.”라는 말이고 “가타(伽陀 gata)”는 “가다”라는 말이고 다르게 “말씀”이라고도 부르니 이러한 까닭으로 “훌륭하게 가시는 분” “훌륭한 말씀”이라 부릅니다.
“훌륭하게 가신 분”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모든 삼매(三昧)를 통해 불도(佛道)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게 되어 무량한 온갖 반야지혜를 통해 무여열반의 나루터로 건너가시는 것이나니, )
如偈說(여게설) 마치 게송의 말씀과 같으니라.
佛一切智爲大車(불일체지위대거) 八正道行入涅槃(팔정도행입열반)
부처님은 일체지를 큰 수레로 삼고, 8정도를 행하시어 열반에 드심에
是名好去(시명호거) 이것이 ‘잘 간다=好去’는 뜻이로다.
(부처님의 일체지는 반야바라밀이라는 큰 수레로 팔정도(八正道)에 대해 자세히 살펴서 열반에 대해 마음이 반야바라밀과 어우러지게 되어 막힘없이 훤히 꿰뚫어볼 수 있으시니, 이러함으로 “훌륭하게 가시는 분”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好說者 如諸法實相說(호설자 여제법실상설) 不著法愛說(불착법애설)
觀弟子智慧力(관제자지혜력)
‘잘 말씀하심=好說’이라 함은 모든 법을 실상 그대로 말씀하시되, 법애에 집착하지 않으며, 제자들이 지닌 지혜의 힘을 관찰하시어 말씀하시니,
是人正使(시인정사) 一切方便 神通 智力 化之(일체방편 신통 지력 화지)
亦無如之何(역무여지하)
곧 ‘이 사람은 설사 온갖 방편과 신통과 지혜의 힘을 다하여 교화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是人可度 是疾是遲(시인가도 시질시지) 是人應是處度(시인응시처도)
遲 늦을 지
‘이 사람은 제도할 수 있으니 신속하리라,’ ‘이 사람은 더딜 것이다,’ ‘이 사람은 이러한 곳에서 제도해야 되며,’
是人應說布施 或說戒 或說涅槃(시인응설보시 혹설계 혹설열반)
‘이 사람에게는 보시를 말해 주어야 하고,’ ‘이 사람에게는 계행을 말해주어야 하고, 이 사람에게는 열반을 말해 주어야 한다,’
是人應說 五衆 十二因緣(시인응설 오중 십이인연)
四諦等諸 法能入道(사제등 제법능입도)
‘이 사람에게는 5중(오온, 오음)과 12인연(dvādaśahetupratyaya)ㆍ4제(caturāryasatya) 등의 가르침을 말해 주어야 도에 들 것이라고
如是等 種種知弟子智力 而爲說法(여시등 종종지제자지력 이위설법) 是名好說(시명호설)
이와 같이 갖가지로 제자들의 지혜의 힘을 알아서 (그에 맞추어서) 법을 말씀해 주는 것을 ‘잘 말씀하신다=好說’ 라고 하는 것이니라.
◎路迦憊(로가비Lokavit, 지세간知世間, 세간해世間解)
復名路迦憊(부명로가비) “路迦”秦言“世”('로가'진언'세')
“憊”名“知”('비'명'지') 是名知世閒(시명지세간) 憊 고달플 비
또한 노가비(Lokavit)라고도 하나니, '노가(Loka, 세상)'는 진나라(중국) 말로 '세간=世'이라 하고 '비(vit)는 알다=知라 하니, 이는 ‘세간을 아시는 분’이 되느니라.
問曰(문왈) 云何知世閒(운하지세간)? 묻나니, 어떻게 세간을 아시는 것입니까?
答曰(답왈) 知二種世閒(지이종세간) 답하나니, 두 가지의 세간을 아나니,
一 衆生 二 非衆生(일 중생 이 비중생) 첫째는 중생이요 둘째는 비중생이다.
(2종(種)의 세간(世間)에 대해서 아시나니, 첫째는 일체 중생이 사는 세간이요, 둘째는 중생이 사는 세간이 아닌 것입니다.)
及如實相(금여실상 知世閒 世閒因(지세간 세간인)
나아가 실상 그대로의 세간과 세간의 원인을 알며,
(나아가 한결같음=如가 세간의 실상(實相)임을 아시고)
知世閒滅 出世閒道(지세간멸 출세간도) 세간의 멸과 출세간의 도를 아시니,
(세간의 실마리와 세간의 사라져 없어짐과 도(道)를 통해 일체세간으로부터의 벗어남에 대해서도 아시는 것입니다.)
復次 知世閒(부차 지세간) 非如世俗知(비여세속지) 亦非外道知(역비외도지)
‘知世閒=세간을 안다’ 함은 마치 세속의 앎(알음알)이 같은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외도들의 앎(알음알이)도 아니며,
知世閒無常故苦 苦故無我(지세간무상고고 고고무아)
세간은 무상한 까닭에 고=苦이며, 고=苦인 까닭에 무아라고 아는 것이니라.
(세간이 무상(無常)한 까닭에 고(苦)이고 고(苦)인 까닭에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나”라는 모습의 그 어디에도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없다는 것을 아시는 것입니다.)
復次 知世閒相(부차 지세간상) 非有常非無常(비유상비무상)
또한 세간에 대해서 아는 것이란, 세간의 모습은 항상함도 아니고, 무상함도 아니며,
非有邊非無邊(비유변 비무변) 非去非不去(비거비불거)
끝이 있음도 아니고, 끝이 없음=無邊도 아니며, 가는 것도 아니고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니,
如是相 亦不著 淸淨(여시상 역불착 청정) 常不壞相 如虛空(상불괴상 여허공)
是名知世閒(시명지세간)
이러한 모습에도 집착되지 않고 청정하여, 항상 무너지지 않는 모습이 허공과 같다고 아는 것이니, 이것을 ‘세간을 안다’ 고 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은 것이 실상(實相)인 것으로 그 어딘가에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고 하는 그 어떠한 삿된 견해에도 붙들려서는 안되는 것으로, 무너지지 않는 실상(實相)은 청정(淸淨)하며 항상 한 것이 마치 허공과 같은 이러함을 아시므로 “세간에 대해서 낱낱이 아시는 분”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阿耨多羅(아뇩다라anuttara, 무상無上, · 무답無答, 무상사無上士)
復名阿耨多羅(부명아뇩다라) 秦言“無上”(진언'무상')
또한 아뇩다라(아누따라, anuttaraanuttara)는 진나라(중국) 말로는 ‘위없는=無上’이라고도 하느니라.
云何無上(운하무상)? 묻나니, 무엇이 無上=위가 없고 하는 것입니까?
涅槃法無上(열반법무상) 佛自知是涅槃 不從他聞(불자지시열반 부종타문)
亦將導衆生 令至涅槃(역장도중생 령지열반)
답하나니, 열반의 법이 위가 없나니,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이렇게 열반에 대해 아셨으므로 다른 이에게 듣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중생들을 인도하여 열반에 이르게끔 하시는 것이니라.
如諸法中 涅槃無上(여제법중 열반무상) 衆生中 佛亦無上(중생중 불역무상)
모든 법=諸法 가운데서 열반이 위가 없듯이, 중생 가운데서도 부처님보다 위가 없으며,
復次 持戒 禪定 智慧 教化衆生(부차 지계 선정 지혜 교화중생)
一切無有與等者 何況能過(일체무유여등자 하황능과) 故言無上(고언무상)
또한 지계ㆍ선정ㆍ지혜로 중생을 교화하시는데, 그 누구도 견주어 같을 이가 없거늘, 하물며 그를 뛰어넘는 이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위없는 분=無上’이라고 하느니라.
復次 “阿”名“無”(부차 '아'명'무') “耨多羅”名“答”('뇩다라'명'답')
또한 '아(a)'를 ‘없음=無’라 하고 '욕다라(누따라 nuttara)'를 ‘대답하다=答’이라고 하니, ‘대답할 자 없는 분=無答’이시니,
一切外道法 可答可破(일체외도법 가답가파) 非實非淸淨故(비실비청정고)
온갖 외도의 법은 대답할 수 있고 부술 수가 있으니, 진실이 아니요 청정도 아니기 때문이니라.
(일체 외도의 가르침(法)에는 옳다고 하는 정(定)해진 답이 있어 깨뜨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 진실로 청정(淸淨)하지 않은 까닭이거니와,)
佛法不可答 不可破(불법불가답 불가파) 出一切語言道(출일체어언도)
亦實淸淨故 以是故 名無答(역실청정고 이시고 명무답)
하지만 부처님의 법은 대답할 수 없고 부술 수도 없으며, 온갖 언어의 길을 뛰어넘었으니, 진실하고도 청정하기 때문이니, 그러한 까닭에 ‘대답할 자 없는 분’이라 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佛法은 옳다는 정(定)해진 답이 있는 것 아니어서 깨뜨리지 못하는 것이, 도(道)에 대해 일체의 언어를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진실로 청정(淸淨)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그 어디에도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없다고 답하시는 분(無答)”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대지도론(大智度論)'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지도론(大智度論) 제2권 20 (0) | 2023.07.15 |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2권 19 (0) | 2023.07.14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2권 17 (0) | 2023.07.13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2권 16 (0) | 2023.07.12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2권 15 (1) | 2023.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