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初品摠說如是我聞釋論第二卷第二
龍樹菩薩造 용수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임 경량 엮음 참조
4. 초품 중 바가바(婆伽婆)를 풀이함(大智度初品中婆伽婆釋論第四)-4
◎鞞侈遮羅那三般那(비치차라나삼반야, Vidyācaraṇasaṁpanna, 삼명三明, 명행족明行足)
復名 鞞侈遮羅那三般那(부명 비치차라나삼반야) 秦言 明行具足(진언 명행구족)
云何名明行具足(운하명명행구족)?
또한 비치차라나삼반나(명행구족, Vidyācaraṇasaṁpanna)라고도 하나니, 중국의 진=秦나라 말로는 명행구족이라 하니, 어찌하여 명행구족이라 하는가?
(또, “비치차라나삼반나(Vidyācaraṇasaṁpanna)”라 부르니, 중국말로 하게 되면 “삼명으로 자세히 살펴서 일체중생을 흡족하게 한다(明行足).”는 뜻입니다.)
비치차라나삼반나(鞞侈遮羅那三般那, Vidyācaraṇasaṁpanna)= 명행족(明行足, perfected in knowledge and conduct) 또는 명행구족(明行具足)
宿命 天眼 漏盡 名爲三明(숙명 천안 누진 명위삼명)
숙명(pūrva-nivāsābhijñā, 생사를 아는 능력)과 천안(dvyacakṣu)과 누진(āsrava-kṣayābhijñā. 모든 번뇌의 소멸을 아는 능력)을 삼명이라 이름하나니라.
(숙명명(宿命明) 천안명(天眼明) 누진명(漏盡明)을 “삼명(三明)”이라고 부릅니다.)
問曰(문왈) 神通 明有何等異(신통 명유하등이)?
묻나니, 신통과 명=明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答曰(답왈) 直知過去宿命事(직지과거 숙명사) 是名通(시명통)
답하나니, 과거 전생의 일만을 바로 아는 것을 신통이라 하고,
(과거에 어떠한 중생의 모습을 하고 어떠한 일을 벌였는지를 곧바로 아는 지혜를 “신통(神通)”이라 하고)
知過去因緣行業 是名明(지과거인연행업 시명명)
과거의 인연과 행업까지 아는 것을 명이라 하느니라.
(어느 중생의 과거의 인연과 업(業)에 의한 현생을 그대로 자세히 살펴서 낱낱이 아는 지혜를 “명(明)”이라 부릅니다.)
直知死此生彼 是名通(직지사차생피 시명통)
여기에 죽어서 저기에 태어나는 것만을 바로 아는 것을 신통이라 하고,
(중생이 죽어 다음 생에 다른 곳에서 어떻게 태어나는 가를 곧바로 아는 것은 “신통(神通)”이라 하고)
知行因緣 際會不失 是名明(지행인연 제회부실 시명명)
행의 인연은 이어지고 만나서=際會하여 어긋나지 않음을 아는 것을 명이라 하느니라.
(자세히 살핀 인연이 계속되어 태어날 때마다 되풀이되고 어긋나지 않음을 낱낱이 아는 지혜를 “명(明)”이라 부릅니다.)
直盡結使(직진결사) 不知更生不生(불지갱생불생) 是名通(시명통)
번뇌=結使가 다하였지만, 다시 생겨날지 아닐지 모르는 것을 신통이라 하고
(올곧게 정진하여 오개(五蓋)에 덮힌 거친 마음에 묶인=結과 탐진치(貪瞋癡) 삼독의 부림을 당하는 버릇(使) 다하게 되어, 어떠한 삿된 견해도 지니지 않게 되어 다시 태어나거나 태어나지 않게 되는 것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을 “신통(神通)”이라 하고,)
若知漏盡 更不復生 是名明(약지누진 갱불부생 시명명)
번뇌가 다하여 다시는 생겨나지 않을 것을 똑똑히 아는 것을 명이라 하니,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는 삿된 견해에서 비롯된 사량(思量)과 분별(分別)로 펼쳐지게 되는 무의식속에 새겨져 있는 모든 불선업의 버릇 배어나오는 유루(有漏) 다하게 되면 다시는 육신의 몸 받지 않게 되는 것임을 아는 것을 “명(明)”이라 합니다.)
是三明(시삼명) 大阿羅漢 大辟支佛所得(대아라한 대벽지불소득)
이것이 삼명이니, 이러한 삼명은 큰 아라한이나 큰 벽지불들이 얻는 것이니라.
問曰(문왈) 若爾者(약이자) 與佛有何等異(여불유하등이)?
묻나니, 만약 그렇다면 부처님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答曰(답왈) 彼雖得三明(피수득삼명) 明不滿足(명부만족)
佛悉滿足 是爲異(불실만족 시위이)
답하나니, 그들은 비록 3명을 얻었으나 명이 만족하지 못하거니와 부처님은 모두가 만족하시니 이것이 다른 점이니라.
(대력아라한과 대벽지불이 비록 삼명(三明)을 얻게 되었을지라도 삼명(三明)을 통해 일체중생을 화합할 수 있게 하는 믿음과 지혜가 두루 갖춰진 것이 아니며 부처님께서는 삼명(三明)을 통해 일체중생을 화합할 수 있게 하는 믿음과 지혜가 두루 갖추셨으니 이러함이 서로 다른 것입니다.)
問曰(문왈) 云何不滿(운하불만)? 云何滿(운하만)?
묻나니, 무엇을 만족하다 하고, 무엇을 만족하지 못하다는 것입니까?
答曰(답왈) 諸阿羅漢 辟支佛 宿命智(제아라한 벽지불 숙명지)
知自身及他人 亦不能遍(지자신급타인 역부능편)
답하나니, 모든 아라한과 벽지불의 숙명지는 자기의 일과 다른 이의 일을 알지만 두루하지 못하니,
(모든 아라한과 벽지불은 숙명통 지혜로는 스스로의 본생(本生)과 다른 사람들의 본생(本生)에 대해서 알지만 두루 알지 못하거니와,)
有阿羅漢(유아라한) 知一世 或二世 三世(지일세 혹이세 삼세)
十 百 千 萬劫(십 백 천 만겁) 乃至八萬劫(내지팔만겁)
어떤 아라한은 한 세상ㆍ두 세상ㆍ세 세상, 혹은 십ㆍ백ㆍ천ㆍ만 겁 내지 8만 겁을 알지만
(어떤 아라한은 한 생 두 생 세 생 십 백 천 만 겁(劫)을 비롯하여 팔만사천 겁(劫)을 알 수 있으나)
過是以往不能復知(과시이왕 부능부지) 是故不滿(시고불만)
天眼明未來世 亦如是(천안명미래세 역여시)
이를 지나면 더 알지를 못하나니, 그러므로 천안명에 만족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이며,(그러므로 천안명이 완전하지 못한 것이다.) 천안명으로 미래의 세상을 볼 수 있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니라.
佛一念中 生住滅時(불일념중 생주멸시) 諸結使分 生時如是(제결사분 생시여시)
住時如是 滅時如是(주시여시 멸시여시)
하지만 부처님은 한 생각 동안에 生住滅=나고 머무르고 멸하는 때와 諸結使=모든 번뇌의 습기=分이 생겨날 때와 모든 결사가 이처럼 나고 머물고 멸하는 때를 아시며,
苦法忍 苦法智中(고법인 고법지중) 所斷結使 悉覺了(소단결사 실각료)
이와 같은 고법인과 고법지를 통해서 끊어야 할 번뇌를 모두 분명히 아시니,
고법인(苦法忍, duḥkhe`nvaya-jñāna-kṣāntiḥ)= 고제를 관찰해 얻는 지혜인 고법지의 직전에 얻는 마음을 말하며, 고류지인(苦類智忍)이라고도 한다.
고법지(苦法智, duḥkhe`nvaya-jñāna)= 색계ㆍ무색계의 고제를 관찰해 얻는 지혜를 말하며, 고류지(苦類智)라고도 한다.
知如是結使解脫(지여시결사해탈) 得爾所有爲法解脫(득이소유위법해탈)
이와 같이 해서 結=속박과 使=집착에서 해탈할 때에 거기에 맞는 유위법의 해탈을 얻으며,
(이와 같이 결사(結使)에 대해서 명료하게 깨닫고 알게 되면 오개(五蓋)에 덮힌 거친 마음에 묶이게 되어(結) 탐진치(貪瞋癡) 삼독에 부림을 당하는 버릇(使)으로부터 해탈하게 되고, 그렇게 생주멸(生住滅)이라는 유위법(有爲法)으로부터 해탈하여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터득할 수 있게 되며,)
得爾所無爲法解脫(득이소무위법해탈)
거기에 맞는 무위법의 해탈 내지 도비인을 얻는다.
(그렇게 생주멸(生住滅)이 없는 무위법(無爲法)을 통해 해탈하게 되면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터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나아가 도비인(道比忍)이라는 견제도(見諦道)의 15심(心)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도비인(道比忍)= 도류지인(道類智忍)이라고도 하며, 색계ㆍ무색계의 도제를 관찰해 얻는 지혜인 도비지(道比智, mārga-anvaya- jñāna)를 얻기 직전에 나타나는 마음으로, 욕계의 도제(道諦)를 관찰한 뒤 다시 위의 두 세계(색계ㆍ무색계)의 도제를 관찰해 명확히 인정하고 알아채는 마음을 말한다.
乃至道比 忍見諦道 十五心中(내지도비 인견제도 오십심중)
諸聲聞 辟支佛 所不覺知(제성문 벽지불 소불각지) 時少疾故(시소질고)
이는 견제도(견도)의 15심 가운데 있는 성문이나 벽지불들은 깨달아 알지 못하는 바이니, 시간이 짧고 빠르기 때문이니라.
(모든 성문과 벽지불은 무상정등정각에 대해서 알지 못하므로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터득 할 때에 조금 빠르게 열반을 향해 나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견제도(見諦道, darśana-mārga)= 4제(諦)를 관찰하는 단계를 말하며, 번뇌가 끊어진 성자의 경지를 처음으로 발견하는 단계로 견도(見道)라고도 한다.
15심(心)= 견도(見道)의 지위에 들어서 일으키는 무루의 법인과 법지인 8인(忍)ㆍ8지(智) 가운데 도비지(道比智, mārga-anvaya- jñāna) 이전의 15심을 가리킨다.
고제(苦諦)= 무상(無常) 고(苦) 공(空) 무아(無我), 집제(集諦)= 인(因) 집(集) 생(生) 연(緣), 멸제(滅諦)= 멸(滅) 정(淨) 묘(妙) 리(離), 도제(道諦)= 도(道) 여(如) 행(行) 달(達) 등이 16심(心)이고, 제일 마지막인 달(達)은 마지막 아라한의 경지라 빼놓은 것으로 견제도(見諦道)란 사지(四地)인 아비발치지(阿鞞跋致地)로 보살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터득하여 인연화합에 의해 펼쳐지게 되는 모든 현상과 작용에 대해 어긋남 없이 “공(空)”하게 자리하고 있는(法位) 반야바라밀과 어우러지게 되는 것.
如是知過去 衆生因緣漏盡(여시지과거 중생인연누지) 未來 現在亦如是(미래 현재역여시)
是故名佛明行具足(시고명불명행구족)
이와 같이 과거 중생의 인연과 漏盡=번뇌가 다하였음을 알며, 미래와 현재에 대해서도 역시 그와 같으니, 그러므로 부처님을 명행구족이라 하는 것이며,
行名身口業(생명신구업) 唯佛身 口業具足(유불신 구업구족) 餘皆有失(여개유실)
是名明行具足(시명명행구족)
행=行은 身業=몸으로 짓는 업과 口業=입으로 짓게 되는 업을 뜻하는 말이나 오직 부처님만이 신업과 구업을 구족하시었으나, 나머지는 모두가 잃었기에 명행구족이라 하는 것이니라.
(자세히 살펴야 하는 것을 “(業)과 (業)”이라고 부르거니와, 오직 부처님께서만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을 통해 일체중생을 화합할 수 있게 하는 믿음과 지혜를 두루 갖추셨을 뿐, 그 밖의 사람들은 어긋남이 있는 이러한 까닭에 부처님을 “삼명으로 자세히 살펴서 일체중생을 흡족하게 하는=明行足"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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