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초품(初品) 여시아문일시(如是我聞一時) 풀이함 -5

如'中論'中偈說(여'중론'중게설) 마치 중론 있는 게송 말씀과 같으니,

若有所不空(약유소불공) 應當有所空(응당유소공)

만약 공하지 않은 바가 있다면, 의당 공한 바가 있으려니와
不空尚不得(불공상불득) 何況得於空(하황득어공)
공하지 않은 바도 없거늘, 어찌 하물며 공함을 얻으랴.

(만약 “공(空)”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당연히 무언가 정(定)해진 “공(空)”함도 있어야 하겠거니와
“공(空)”하지 않음을 오히려 얻지도 못하면서, 어찌 “공(空)”한 것을 얻으랴!)


凡人見不空(범인견불공) 亦復見於空(역부견어공)

보통 사람=凡人들은 공하지 않음을 보고, 또한 다시 공함도 보지만
不見見無見(불경경무견) 是實名涅槃(시실명열반)
보는 것이 곧 보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진실로 열반임을 보지 못하니라. 

(세간에 사는 사람들 “공(空)”하지 않다는 견해 지녔을지라도 “공(空)”하다는 견해도 지니고 있거니와
“공(空)”하지 않다는 견해나 “공(空)”하다는 견해나
견해의 그 어디에도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없음이 실상(實相)으로 “열반(涅槃)”이라 부른다.)


非二安隱門(비이안은문) 能破諸邪見(능파제사견)

불이의 안온 법문이, 모든 사견을 깨뜨리나니
諸佛所行處(제불소행처) 是名無我法(시명무아법)
부처님들께서 행하시는 경지라야, 무아의 법이라 이름 하는니라.
(두 모습이 아니어서 시름걱정 사라져 편안함 누릴 수 있게 하는 열반문에 이르게 되면, 능히 모든 삿된 견해를 깨뜨리게 되고, 모든 부처님께서 그러함에 대해 자세히 살피시어, 이러함을 “무아(無我)라는 현상과 작용”이라고 부른다.)


'聞'의 설명


略說'我'義竟(약설'아'의경) '聞'者 今當說('문'자 금당설)
'나'라는 것의 정의를 간략히 설명해 마치고, 이제 ‘聞=듣는다’(śrutam) 함을 설명하리라.

 

問曰(문왈) 聞者 云何聞(문자 운하문)? 用耳根聞耶(용이근문야)?

묻나니, 듣는다는 것은 어떻게 듣는가? 귀=耳根으로 듣는가? 

 

用耳識聞(용이식문)? 用意識聞耶(용의식문야)?

귀의 의식=耳識(vijñāna. 식별작용)으로 듣는가?  뜻의 의식=意識으로 듣는가? 

 

若耳根聞 耳根無覺知故(약이근문 이근무각지고) 不應聞(불응문)

만일 耳根=귀로 듣는다면, 귀는 감각이 없기 때문에 듣지 못하는 것이며, 

(만약 이근(耳根)을 이용하여 들었다고 한다면 이근(耳根)은 깨닫거나 알 수가 없는 까닭에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若耳識聞 耳識一念故(약이식문 이식일념고) 不能分別 不應聞(불능분별 불응문)

만일 귀의 의식으로 듣는다면, 귀의 의식은 한 생각 뿐이기 때문에 분별치 못하니 또한 듣지 못함이며, 

(만약 이식(耳識)을 이용하여 들었다고 한다면 이식(耳識)이란 한 생각으로 분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若意識聞 意識亦不能聞(약의식문 의식역부능문)

만일 뜻의 의식으로 듣는다면, 뜻의 의식 또한 듣지 못하는 것이니, 

(만약 의식(意識)으로 들었다고 한다면 의식(意識)으로는 결코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何以故 先五識識五塵(하이고 성오식식오진) 然後意識識(영후의식식)

왜냐하면 전 5식=前五識이 5진(색 성 향 미 촉 법)을 안 뒤에야 뜻의 의식이 알기 때문이며, 

(왜냐하면전오식()인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통해 오진(五塵)인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을 스스로 찾아서 헤아려 아는 식()이 있게 되는 것이고그런 다음에야 의식(意識)을 통해 스스로 찾아서 헤아려 알게 되는 것이거니와,) 

 

5식(識)=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

‘식(識)’의 원래 의미는 ‘나누어(vi-) 안다(j~na)’는 것으로 분별, 즉 분석적으로 아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한다. 분별하는 이원적(二元的) 앎이란 말이다. 일반적 의미는 상황을 ‘인식하다’, ‘요별(了別)하다’, ‘판단하다’는 의미이며, 요별한다는 것은 어떤 것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앎과 동시에 그것을 식별할 줄 안다는 말이다. 
‘식(識)’의 넓은 의미는 대상을 감각, 지각, 사고, 기억, 상상하는 마음활동 일반을 의미한다. 
불교에서는 식이 ‘알음알이’란 뜻이 있어 무명(無明)의 영역이다. 그래서 “분별하면 식(識)이고 분별하지 않으면 지혜이며, 식(識)은 더러움에 의지하고 지혜는 깨끗함에 의지한다고 말한다.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 제5식까지는 단순한 감각기관에 불과하다. 식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스스로 그 느낌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 5개의 식을 모두 합쳐 전5식(前五識)이라고 한다.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 전5식은 단순히 색깔이 보인다, 소리가 들린다, 냄새가 난다, (무슨)맛이 있다, (뭐가)닿았다, 등만 느낄 뿐이다. 
즉, 전5식은 스스로 분별하고 의식할 능력은 없고, 색깔이 노랗다, 소리가 좋다, 냄새가 독하다, 맛이 좋다, 촉감이 좋다, 등으로 느낌을 분간하는 것은 제6 의식이 인식을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전5식은 제6식인 의식의 도움이 없으면 자기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즉 전5식은 제6식의 도움을 받아 제기능을 발휘한다.-아미산

 

5진(塵)=5식의 대상인 색․성․향․미․촉

 

意識不能識 現在五塵(의식부능식 현재오진) 唯識過去 未來五塵(유식과거 미래오진)

若意識能識 現在五塵者(약의식능식 현재오진자)

盲聾人亦應識聲色(맹롱인역응식성색) 聾 귀머거리 롱

뜻의 의식은 현재의 5진을 알지 못하고, 오직 과거와 미래의 5진만을 아나니, 만일 뜻의 의식이 현재의 5진을 알 수 있다면 소경이나 벙어리도 빛과 소리를 알아야 할 것이니라. 

(의식(意識)이 오진(五塵)인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을 스스로 찾아서 헤아려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스스로 찾아서 헤아려 아는 식(識)은 과거와 미래의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만 스스로 찾아서 헤아려 알 수 있을 뿐입니다. 만약 의식(意識)이 능히 현재의 오진(五塵)인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을 스스로 찾아서 헤아려 알 수 있다고 한다면, 장님과 귀머거리도 스스로 찾아서 헤아려 아는 식(識)을 통해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고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何以故 意識不破故(하이고 의식불파고)
왜냐하면 뜻의 의식이 파괴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答曰(답왈) 非耳根能聞聲 亦非耳識(비이근능문성 역비이식) 亦非意識(역비의식)

답하나니, 귀로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요, 귀의 의식이나 뜻의 의식으로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니, 

(이근(耳根)으로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거니와 이식(耳識)으로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닐뿐더러 의식(意識)으로 듣는 것도 아닙니다.)

能聞聲事(능문성사) 從多因緣和合故 得聞聲(종다인연화합고 득문성)

不得言一法能聞聲(불득언일법능문성)

여러 인연이 화합함으로써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니, 한 법이 소리를 듣는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이렇게 소리를 듣게 됨에는 많은 인연의 화합 때문에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으로, 한 가지 현상과 작용(法)만으로 능히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何以故 耳根無覺故(하이고 이근무각고) 不應聞聲(불응문성)

왜냐하면 耳根=귀는 감각이 없기 때문에 소리를 듣지 못하고, 

 

識無色無對無處故(식무색무대무처고) 亦不應聞聲(역불응문성)

식은 무색ㆍ무대ㆍ무처인 까닭에 역시 소리를 듣지 못하고, 

(스스로 찾아서 헤아려 아는 식(識)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도 없고=無色, 마주할 수도 없으며=無對, 머무는 곳도 없는=無處, 까닭에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 아니며,) 

 

聲無覺亦無根故(성무각역무근고) 不能知聲(불능지성)
소리 자체는 감각이 없고, 無根=감관도 없기 때문에 소리를 알지 못하나,


爾時 耳根不破(이시 이근불파) 聲至可聞處(성지가문처) 意欲聞(의욕문)

情 塵 意和合故耳識生(정 진 의 화합고 이식생)

하지만 귀가 망가지지 않았고, 소리가 들을 수 있는 곳에 이르렀으며, 뜻으로 듣고자 한다면 정과 진=聲塵과 뜻=意識이 화합하였기 때문에 이식이 생기며, 

(정(情)과 성진(聲塵) 그리고 의식(意識)이 화합하게 된 까닭에 이식(耳識)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며,) 

 

情 塵 意=근(根)․경(境)․식(識)

 

隨耳識 卽生意識(수이식 즉생의식) 能分別種種因緣得聞聲(능분별 종종인연 득문성)

以是故 不應作是難(이시고 불응작시난) 誰聞聲(수문성)? 

이식이 생기기만 하면 의식이 갖가지 인연을 분별하여 소리를 듣게 된다.
이런 까닭에 '누가 소리를 듣는가?'라며 힐난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식(耳識)을 따라 곧바로 의식(意識)이 생겨나게 되어서 능히 여러 가지 인연으로 만들어지게 되는 소리를 듣고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佛法中 亦無有一法(불법중 역무유일법) 能作 能見 能知(능작능견능지)

불법에도 어느 한 법이 짓거나 보거나 아는 일이 없나니, 

(비록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일지라도불법(佛法)에서는 능히 지을 수 있고, 능히 볼 수 있으며, 능히 알 수 있는 무언가 정()해진 단 한 가지의 현상과 작용()도 없는 것이라고 되어있습니다.)

 

如說偈(여설게) 마치 게송의 말씀과 같으니,

有業亦有果(유업역유과) 無作業果者(무작업과자)

업도 있고 과도 있지만, 업과 과를 짓는 이가 없으니,
此第一甚深(차제일심심) 是法佛能見(시법불능견)
이는 가장 높고 심히 깊어, 이 법은 부처님만이 아시니라.
(업()을 지은 것이 있으므로 과가 있게 되는 것으로()을 지은 것이 없으면 과도 없는 것이며여기에서 제일로 여기는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깊이 이해할 수 있어야 불도(佛道)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게 하는 참된 가르침()을 부처님께서는 말씀해주셨습니다.)


雖空亦不斷(수공역부단) 相續亦不常(상속역불상)

공하지만 단절됨=斷은 아니요, 상속하지만 항상함=常도 아니다.
罪福亦不失(죄복역부실) 如是法佛說(여시법불설)
죄와 복 또한 잃지 않으니, 이런 법을 부처님이 말씀하셨느니라.

(비록 ()”한 것일지라도 끊어지지 않으며, 인연이 쉼 없이 이어질지라도 항상 한 것도 아니며죄업과 복업(福業)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이와 같은 가르침()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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