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힐의 몰생(沒生)
爾時舍利弗問維摩詰(이시사리불문유마힐) 汝於何沒而來生此(여어하몰이래생차)?
그때 사리불이 유마힐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디에서 沒=죽어서 이 세계로 와서 태어났습니까?'
Then Sariputra asked Vimalakirti, Where did you pass away to be reborn here?
[爾時舍利弗問維摩詰(이시사리불문유마힐), 다른 번역본에서는 어느 것이나 이 앞에 사리불이, 부처님께 유마힐이 어느 부처님 나라에서 이곳으로 왔는가를 묻고, 부처님께서는 “그대가 스스로 유마힐에게 물어보라”고 한 문장이 있으나 나집 역본(譯本)에는 없다.]
維摩詰言(유마힐언) 汝所得法有沒生乎(여소득법유물생호)?
유마힐이 말하였다. '그대가 얻은 법은 죽고 태어남이 있습니까?'
Vimalakirti said, Does the Dharma which you attained have birth and death?
舍利弗言(사리불언) 無沒生也(무몰생야)
사리불이 말하였다. '죽고 태어남이 없습니다.'
Sariputra said, There is no death or birth.
若諸法無沒生相(약제법무몰생상) 云何問言(운하문언)
汝於何沒而來生此(여어하몰이래생차)?
(유마힐이 말하였다.) '만약 모든 법에 죽고 태어남이 없다면, 그대는 어찌해서 나에게 ‘당신은 어디에서 죽어서 이곳에 태어났느냐?’고 묻습니까?'
If all Dharmas do not have the signs of death or birth, then why do you ask: Were did you pass away to be reborn here?
於意云何(어의운하)? 譬如幻師(비여환사) 幻作男女(환작남여) 寧沒生耶(영몰생야)?
그대 생각은 어떻습니까? 비유하자면, 幻師=마술사가 허깨비 남자와 여인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죽고 태어날 수 있는 것입니까?
What is your point of view? It is as if an illusionist were to conjure an illusion of a male and female. Are they subject to death and birth?
舍利弗言(사리불언) 無沒生也(무몰생야)
사리불이 말하였다. '죽고 태어남이 없습니다.'
Sariputra replied, There is no death or birth.
[유마힐의 죽고 태어남의 문제는 모든 존재의 문제이다. 생사(生死) 생멸(生滅) 생몰(生沒) 거래(去來)등으로 표현하는 말이 모두 같은 것이다. 쉽게 반야심경을 이끌어 설명하면 유마거사나 부처님이나 우리들이나 삼라만상이나 모든 존재는 일체가 근본이 공성(空性)이다. 생멸 거래가 환영처럼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근본은 모두 공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공성의 자리에서 존재를 관찰한 말이다. 마치 마술로 사람의 눈을 속여서 생멸 거래가 있는 듯이 보이게 하지만 실은 생멸 거래가 없는 것과 같다.]
汝豈不聞佛說諸法如幻相乎(여기불문불설제법여환상호)?
그대는 부처님께서 제법은 如幻相=환영과 같다고 설하신 것을 듣지 못햇습니까?
Have you not heard the Buddha say that all Dharmas are like illusions?
答曰(답왈) 如是(여시)! (사리불이) 답하였다. '그렇게 들었습니다'
Answers, Yes,
若一切法如幻相者(약일체법여환상자) 云何問言(운하문언)
汝於何沒而來生此(여어하몰이래생차)?
(유마힐이 말하였다.) 만약 일체법이 환상(환영)과 같은 것이라면, 어째서 ‘그대는 어디에서 죽어서 여기에 태어났습니까?’라고 묻습니까?
if all dharmas are like illusions, then why do you ask, Where did you die to be reborn here?
舍利弗(사리불) 沒者爲虛誑法(몰자위허광법) 敗壞之相(패괴지상)
사리불이여, 沒=죽는다(없어진다)는 것은 허망하고 거짓된 법이 무너져 부서지는 모습이며,
Sariputra, death is a deceiving Dharma, an appearance of what’s defective and vanquishing;
生者爲虛誑法(생자위허광법) 相續之相(상속지상)
생한다고 하는 것은 그 허망하고 거짓된 법이 계속해서 존속하는 모습입니다.
life is a deceiving Dharma, an appearance of continuity.
[虛誑法(허광법), 나집은 “허광(虛誑)의 법(法),” 현장은 ‘행(行)’이라고 번역하였다. 즉 전변하는 것으로서의 유위(有爲)를 뜻한다.]
菩薩雖沒(보살수몰) 不盡善本(불진선본) 雖生不長諸惡(수생불장제악)
보살은 비록 죽으나, 선의 근본=善本이 다하지 않으며, 비록 태어나도 온갖 악이 증장되지는 않습니다.
Even though a bodhisattva passes away, he does not exhaust the virtuous roots. Although bodhisattva is living, he does not grow the various evil.
[금강경에도 “일체 유위의 법은 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이슬과 같고 번갯불과 같다. 반드시 이렇게 보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꿈과 환영과 물거품이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며 어디에서 생겼다가 어디에서 사라지는가 하는 문제를 문제시하여 따지고 파고들지는 않듯이 일체 존재를 그렇게 관찰하여야 한다.]
◎묘희국(妙喜國)
是時佛告舍利弗(시시불고사리불) 有國名妙喜(유국명묘희) 佛號無動(불호무동)
그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묘희국이라고 하는 나라가 있으니, 부처님의 호는 무동이라,
Then the Buddha said to Sariputra, There is a country named Manifest Joy (Abhirati), and whose Buddha is Akshobhya.
[묘희국(妙喜國, Abhirti), 이 세계의 부처님은 무동불(無動佛, Akobhya)이다. 이 무동불은 아촉불의 의역이다. 여기서는 표제가 아촉불로 되어 있으나, 본문 중에서는 무동불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지겸의 본문은 아촉불로 되어 있다.]
是維摩詰於彼國沒(시유마힐어피국몰) 而來生此(이래생차)
유마힐은 그 나라에서 죽어서 이곳에 와서 태어난 것이니라.
It is the land where Vimalakirti has passed away before coming to be reborn here.
舍利弗言(사리불언) 未曾有也(미증유야)
사리불이 말하였다. '미증유한 일입니다.
Sariputra said, This is unprecedented,
世尊(세존) 是人乃能捨淸淨土(시인내능사청정토) 而來樂此多怒害處(이래락차다원해처)
세존이시여, 이 분이 청정한 국토를 버리고 이같이 성냄과 해침이 많은 곳을 즐겨 찾아온 것입니다.'
World Honoured One, that a person can renounce the pure land, and take joy in coming to this place with great wrath and harmfulness.
[유마거사를 포함하여 일체 존재는 본래로 죽고 태어남이 없으며 가고 옴이 없지만, 없는 가운데서 또한 죽음이 있고 태어남이 있고 가고 옴이 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일체 존재의 이치다. 만물이 참으로 공한 가운데 미묘하게 존재하는 이치이기도 하다. 부처님은 유마거사가 과거에 묘희국에서 죽어서 이 땅에 태어났다고 하였다. 이로부터 묘희국과 무동여래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품의 이름을 견아축불품(見阿閦佛品)이라고 하는데 아축이란 번역하면 곧 무동(無動) 또는 부동(不動)이며, 동방의 부처님이라고 알려져 있다.
유마거사는 보살의 안목에서 사정없이 이치만을 이야기를 하였고, 부처님은 사리불의 근기에 맞춰서 ‘유마힐이 묘희라고 하는 나라에서 없어져서 이곳에 와서 태어났다’고 하셨다.]
維摩詰語舍利弗(유마힐어사리불) 於意云何(어의운하)?
日光出時與冥合乎(일광출시여명합호)?
유마힐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햇빛이 날 때 어둠과 함께 할 수 있습니까?'
Vimalakirti said to Sariputra, What do you think? When the light of the sun appears, does it join with the darkness together?
答曰(답왈) 不也(불야) 日光出時(일광출시) 卽無衆冥(즉무중명)
사리불이 답하였다. '아닙니다. 햇빛이 날 때는 모든 어둠이 없어집니다.'
He answers, No, as soon as the light of the sun comes out, the darkness disappears.
維摩詰言(유마힐언) 夫日何故行閻浮提(부일하고행염부제)?
유마힐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태양이 무슨 까닭으로 이 염부제(Jambudvīpa)에 뜨는 것인가요?'
Vimalakirti said, Why does the sun shine on Jambudvipa?
答曰(답왈) 欲以明照(용이명조) 爲之除冥(위지제명)
사리불이 답하였다. '밝게 비추어서 어둠을 없애기 위함입니다.'
He replied, It is to dispel the darkness with light.
維摩詰言(유마힐언) 菩薩如是(보살여시) 雖生不淨佛土(수생부정불토)
爲化衆生故(위화중생고)
유마힐이 말하였다. '보살도 그와 같아서 비록 청정하지 못한 불국토에 태어났다 하여도 그것은 이 세상의 중생을 교화하기 위함이지
Vimalakirti said, Likewise, a bodhisattva, although born in an impure Buddha-land, for persuading living beings, does not join and unite with the darkness of ignorance,
不與愚闇而共合也(불여우암이공합야) 但滅衆生煩惱闇耳(단멸중생번뇌암이)
결코 무명의 어리석음과 함께하지 않고, 다만 중생의 번뇌의 어둠을 없앨 뿐입니다.'
but extinguishes the darkness of afflictions in living beings.
[보살이 이 세상에서 중생들을 교화해야하는 이유를 잘 설명하였다. 연꽃이 진흙에 물들지 않듯이, 보살은 이 번뇌 많고 고통 많고 어려움이 많은 사바세계에 태어났지만, 이 사바세계의 고통에 절대 물들지 않는다. 젖지 않는다. 불교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은 중생들의 번뇌의 어둠을 소멸하고 밝은 지혜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불교를 지혜와 자비의 종교라고 한 것이다.]
[우리들 스스로는 불법을 깊이 믿는다고 여기고 있지만, 실지로는 신뢰할 수 없습니다. 미신 부분이 많고 올바른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컨대 공(空)을 말해보면 진정으로 공을 증득해야 합니다. 실제 체험이 있어야만 비로소 올바른 믿음이 됩니다. 이 정도로도 아직은 안 되고 깊이 믿어야 합니다. 예컨대 선종 조사는 말하기를, ‘큰 깨달음은 서른여섯 번이고 작은 깨달음의 경지는 무수히 많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설사 깊이 믿어 10신(十信)ㆍ10주(十住)ㆍ10행(十行)ㆍ10회향(十回向)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여전히 견고하지 않아서 수행자는 여전히 퇴전(退轉)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견지(見地)가 편차가 나고 공덕이 원만하지 못하기 때문에 퇴전을 부를 수 있습니다. 제8지 보살 이상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불퇴전하고 깊은 믿음이 견고하기가 마치 금강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학 중의 불토 우주관을 한 번 이야기하겠습니다. 이것은 불학의 기본 상식으로 한 부처님의 국토에는 3천 개의 대천(大千)세계가 있고 1만억 개의 4천하(四天下)가 있습니다. 1개의 태양계가 1개의 천하입니다. 1천 개의 태양계가 1개의 소천(小千)세계입니다. 1천 개의 소천세계가 1개의 중천(中千)세계입니다. 1천 개의 중천세계가 1개의 대천세계입니다. 이 숫자의 큼은 현대의 천문학의 연구와 약속이나 한 듯이 들어맞습니다. 과학연구에 의하면 전체 우주 속에는 알 수 없고 셀 수 없을 정도의 태양계가 있다고 보는데, 부처님은 2,3천 년 전에 이미 이와 같은 우주관을 제시했습니다.
불교경전에서 말하는 3계는 모두 28층의 천이 있습니다. 저층인 욕계(欲界)에서부터 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에 도달합니다. 태양계의 안과 밖, 위와 아래가 욕계입니다. 욕계의 온갖 중생은 양성(兩性) 음욕의 생각이 있기 때문에 생명이 있습니다. 사람은 욕계의 중간에 있으며, 착한 일을 하거나 수행을 하여 천상에 오르더라도 여전히 욕계천에 있습니다. 그곳에도 역시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의 5욕(五欲)이 있을 것이며, 마찬가지로 색욕과 식욕이 있고 수명은 인간세상보다 길고 복보는 큽니다. 생존 환경도 우리보다 좋습니다. 우리가 사원에서 보는 4대천왕은 바로 욕계천의 호법천신입니다. 욕계천에는 33천이 있는데, 그중의 천주(天主)는 제석천(帝釋天) 석제환인(釋帝桓因)이라고 합니다. 중국인이 말하는 옥황대제(玉皇大帝)입니다.
욕계천의 위는 색계천인데, 과학적으로 볼 수 있는 천체가 아닙니다. 가장 높은 천상계는 유정천(有頂天)입니다. 그곳에서 돌덩이를 하나 떨어뜨리면 65,535년이 지나야 지구에 도달합니다. 유정천의 천주는 대자재천(大自在天)인데, 흰옷을 입고 있고 눈이 세 개로서 대보살이 화생한 것입니다. 3천대천세계의 주(主)가 됩니다. 석가모니불이 교화하는 ‘대범천 천주’는 이름이 ‘시기(尸棄)’입니다. 다른 이름으로 번역된 것도 있습니다. 색계천에는 많은 범천왕(梵天王)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문에 ‘1만의 범천왕들’이라고 말합니다.
만약 일생동안 욕망을 억제하고 계율을 수지하면서 수행했으나 깨닫지 못한다면, 그 과보는 욕계천에 왕생하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 하물며 욕계천의 물질적 환경의 욕망은 더욱 크니 천인으로 태어나서 다시 계율을 파괴하면 더욱 엄중해 질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천인 경계는 잘 연구해야 합니다. 현실을 모르고 이상만 높아서는 안 됩니다. 툭하면 『금강경』 이야기하고 성공연기(性空緣起)를 말하는데, 사실 불법은 3세인과에 세워집니다. 조금 닦으면 왕생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여전히 욕계천에 떨어집니다. 사람 몸으로 다시 올지도 모릅니다.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 96종의 외도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세계에는 1,2백 개의 종교가 있는데, 모두 수도를 말합니다만 기껏해야 색계천의 불환과(不還果)에 도달해서 이 욕계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 모릅니다. 이 정도 되기도 이미 어렵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수행이 다른 천인 경계에 이르더라도 여전히 생사윤회 속에 있습니다.-홍남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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