㉗ 菩薩의 十種佛業 보살의 열가지 불업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佛業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隨時開導가 是佛業이니 令正修行故며 夢中令見이
불자 보살마하살 유십종불업 하등 위십 소위수시개도 시불업 영정수행고 몽중영견
是佛業이니 覺昔善根故며 爲他演說所未聞經이 是佛業이니 令生智斷疑故며 爲悔纏所纏者하야 說出離法이
시불업 각석선근고 위타연설소미문경 시불업 영생지단의고 위회전소전자 설출리법
是爲佛業이니 令離疑心故며 若有衆生이 起慳悋心과 乃至惡慧心과 二乘心과 損害心과 疑惑心과 散動心과 憍慢心하면
시위불업 영리의심고 약유중생 기간린심 내지악혜심 이승심 손해심 의혹심 산동심 교만심
爲現如來衆相莊嚴身이 是佛業이니 生長過去善根故며 於正法難遇時에 廣爲說法하야 令其聞已하고 得陀羅尼智와
위현여래중상장엄신 시불업 생장과거선근고 어정법난우시 광위설법 영기문이 득다라니지
神通智하야 普能利益無量衆生이 是佛業이니 勝解淸淨故며 若有魔事起어든 能以方便으로 現虛空界等聲하야
신통지 보능이익무량중생 시불업 승해청정고 약유마사기 능이방편 현허공계등성
說不損惱他法하야 以爲對治하야 令其開悟하면 衆魔가 聞已에 威光歇滅이 是佛業이니 志樂殊勝하야 威德大故며
설불손뇌타법 이위대치 영기개오 중마 문이 위광헐멸 시불업 지락수승 위덕대고
其心無間하야 常自守護하야 不令證入二乘正位하며 若有衆生이 根性未熟이면 終不爲說解脫境界가 是佛業이니
기심무간 상자수호 불령증입이승정위 약유중생 근성미숙 종불위설해탈경계 시불업
本願所作故며 生死結漏를 一切皆離하고 修菩薩行호대 相續不斷하야 以大悲心으로 攝取衆生하야 令其起行하야
본원소작고 생사결루 일체개이 수보살행 상속부단 이대비심 섭취중생 영기기행
究竟解脫이 是佛業이니 不斷修行菩薩行故며 菩薩摩訶薩이 了達自身과 及以衆生이 本來寂滅하야 不驚不怖호대
구경해탈 시불업 부단수행보살행고 보살마하살 요달자신 급이중생 본래적멸 불경불포
而勤修福智하야 無有厭足하며 雖知一切法이 無有造作이나 而亦不捨諸法自相하며 雖於諸境界에 永離貪欲이나
이근수복지 무유염족 수지일체법 무유조작 이역불사제법자상 수어제경계 영리탐욕
而常樂瞻奉諸佛色身하며 雖知不由他하고 悟入於法이나 而種種方便으로 求一切智하며 雖知諸國土가 皆如虛空이나
이상락첨봉제불색신 수지불유타 오입어법 이종종방편 구일체지 수지제국토 개여허공
而常樂莊嚴一切佛刹하며 雖恒觀察無人無我나 而敎化衆生하야 無有疲厭하며 雖於法界에 本來不動이나 而以神通
이상락장엄 일체불찰 수항관찰 무인무아 이교화중생 무유피염 수어법계 본래부동 이이신통
智力으로 現衆變化하며 雖已成就一切智智나 而修菩薩行하야 無有休息하며 雖知諸法이 不可言說이나 而轉淨法輪하야
지력 연중변화 수이성취 일체지지 이수보살행 무유휴식 수지제법 불가언설 이전정법륜
令衆心喜하며 雖能示現諸佛神力이나 而不厭捨菩薩之身하며 雖現入於大般涅槃이나 而一切處에 示現受生하야
영중심희 수능시현제불신력 이불염사보살지신 수현입어대반열반 이일체처 시현수생
能作如是權實雙行法이 是佛業이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得不由他敎無上無師廣大業이니라
능작여시 권실쌍행법 시불업 시위십 약제보살 안주기중 즉득불유타교 무상무사 광대업
질문 177 '何等이 爲佛業이며'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佛業하니 何等이 爲十고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부처업=佛業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所謂 隨時開導가 是佛業이니 令正修行故며 導 이끌 도, 인도할 도, 開導개도=깨우쳐 인도함
이른바 때를 따라 가르치고 인도함=開導가 부처님의 업이니, 바른 수행을 하게 하는 연고이며
부처님의 행위, 곧 부처님의 업의 길을 열 가지로 밝혔다. 먼저 올바른 수행으로 장소를 따르고 시간을 따라 사람들을 잘 가르치는 것이다. 올바른 수행이란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며 공양 공경하고 존중 찬탄하는 일이다.
夢中令見이 是佛業이니 覺昔善根故며
꿈 속에서 보게 하니 이것이 부처업이니, 지난 날의 선근을 깨닫는 연고며,
爲他演說 所未聞經이 是佛業이니 令生智 斷疑故며 疑 의심할 의,
아직 듣지 못한 경을 남에게 연설하니 이것이 부처업이니, 지혜가 생겨 의심을 끊게 하려는 연고며,
모든 사람들에게 그동안 듣지 못하던 화엄경을 연설하여 다 듣게 하고 읽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업이다. 만약 화엄경을 잘 들으면 초기불교의 이론과 보살대승불교의 이론이 극명하게 다른 점을 잘 알아서 지혜는 자라고 의심은 없어질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부처님의 업 중에서 가장 수승한 업이리라.
爲悔纏所纏者하야 說出離法이 是爲佛業이니 令離疑心故며 悔 뉘우칠 회, 纏 얽힐 전, 얽을 전,
후회함에 얽힌 이에게 벗어나는 법을 설함이 부처님의 업이니, 의심을 여의게 하는 연고이며,
실로 지나간 일은 단 일분도 되돌릴 수 없다. 후회한들 무엇 하겠는가. 후회함에 얽힌 이에게 벗어나는 법을 설하여 후회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업이다.
若有衆生이 起慳悋心과 乃至惡慧心과 어떤 중생이 인색한 마음이나 나아가 나쁜 지혜의 마음, 慳 아낄 간, 悋 아낄 린
二乘心과 損害心과 疑惑心과 散動心과 이승(성문, 독각)의 마음, 해치려는 마음, 의혹하는 마음, 산란한 마음,
憍慢心하면 爲現如來衆相 莊嚴身이 是佛業이니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면, 그를 위해 여래의 여러 가지 상호로 장엄한 몸을 나타내나니, 이것이 부처업이요,
生長 過去善根故며 과거의 선근을 길러내는 연고며,
중생은 모양을 보고 마음을 낸다. 그래서 사바세계중생들을 상을 보아야 마음이 움직인다고 하여 상견중생(相見衆生)이라 한다.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정법으로 감동을 주려면 먼저 그 모습과 태도를 잘 갖추어야 하는 그 또한 부처님의 업이다.
於正法 難遇時에 廣爲說法하야 令其聞已하고 得陀羅尼智와 神通智하야 遇 만날 우,
정법을 만나기 어려울 때에 법을 널리 설하여 그들이 듣고서 다라니(총지)의 지혜와 신통의 지혜를 얻게 하고
普能利益 無量衆生이 是佛業이니 勝解淸淨故며
널리 무량한 중생을 이익케 하니, 이것이 부처업이요, 수승한 이해(지혜)가 청정한 연고며,
若有魔事 起어든 能以方便으로 現 虛空界等聲하야 說 不損惱他法하야
만일 어떤 마사(마의 장난)가 일어나거든, 능히 방편으로 허공계와 같은 큰 소리를 내어, 남을 해치지 않는 법을 설하여,
以爲對治하야 令其開悟하면 衆魔가 聞已에 威光歇滅이 是佛業이니
그들을 다스려서 깨닫게 하면 모든 마구니들이 듣고서 그 위엄과 빛이 소멸하니, 이것이 부처님의 업이요
對 대답할 대, 대할 대, 治 다스릴 치, 歇 쉴 헐, 志 뜻 지,
志樂殊勝하야 威德大故며 뜻을 세운 즐거움이 수승하고 위덕이 크기 때문이며,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하여 좋은 일에는 그 일을 방해하는 마가 따르기도 한다.
其心無間하야 常自守護하야 不令證入 二乘正位하며 證入증입= 깨달아 들어감
그 마음을 빈틈 없이(간단함이 없이) 항상 스스로 수호하여 이승의 가르침에 증입하지 않게 하고,
若有衆生이 根性未熟이면 終不爲說 解脫境界가 是佛業이니 熟 익을 숙
만약 중생의 근성이 아직 미숙하였다면 결코 해탈의 경계를 설하지 않으니, 이것이 부처의 업이요,
本願所作故며 본래의 서원을 행하는 연고며,
부처님의 본래의 서원을 짓는 것이 또한 부처님의 업이다. 본래의 서원이란 가장 수승한 보살대승의 가르침을 널리 펴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근기가 각각 다르다보니 여러 가지 차별한 가르침이 난무하니, 법을 널리 설하여 바르게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부처님의 업을 짓는 것이다. 보살대승의 수많은 법 중에서 육바라밀과 사무량심을 중생들에게 널리 펴고 보현보살의 10대 행원을 실천하는 것이다.
生死結漏를 一切皆離하고 修菩薩行호대 相續不斷하야 以大悲心으로 攝取衆生하야
생사의 결박된 번뇌를 모두 여의고, 보살행 닦기를 끊임없이 지속하며, 대비심으로 중생을 거두어
令其起行하야 究竟解脫이 是佛業이니 不斷修行 菩薩行故며
그들로 하여금 보살행을 일으켜서 구경에 해탈케 함이 부처의 업이요, 보살행을 닦아 끊지 않는 연고며,
부처님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업을 하는 이가 곧 부처님이다.
菩薩摩訶薩이 了達自身과 及以衆生이 本來寂滅하야 不驚不怖호대 驚 놀랄 경, 怖 두려워할 포
보살마하살은 자신과 중생들이 본래 적멸함을 분명히 알기에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며,
而勤修福智하야 無有厭足하며 그러나 복덕과 지혜를 흡족함이 없이 힘써 닦으며,
자기 자신이나 모든 중생들의 본질은 텅 비어 적멸하다는 사실을 잘 알더라도 적멸한 가운데서 부지런히 복덕과 지혜를 쉼 없이 닦는 것이 부처님의 업이다.
雖知一切法이 無有造作이나 而亦不捨 諸法自相하며
비록 일체법이 지음이 없음을 알지만, 그러나 모든 법의 제 모양을 버리지도 않으며,
雖於諸境界에 永離貪欲이나 而常樂瞻奉 諸佛色身하며 瞻 볼 첨,奉 받들 봉
비록 모든 경계에 탐욕을 영원히 여의었지만, 그러나 모든 부처님의 색신을 우러러 뵙기를 항상 좋아하며,
雖知不由他하고 悟入於法이나 而種種方便으로 求一切智하며
비록 다른 이를 연유치 않고 법에 깨달아 들어감을 알지만, 그러나 갖가지 방편으로 일체지를 구하며,
실로 궁극적 깨달음은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으며, 어느 누구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고 다만 스스로 깨달을 뿐이다.
雖知諸國土가 皆如虛空이나 而常樂莊嚴 一切佛刹하며
비록 모든 국토가 다 허공과 같음을 알지만, 그러나 늘 모든 불국토 장엄하기를 좋아하며,
보살은 비록 모든 국토가 텅 비어 허공과 같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한편 일체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하기를 즐긴다. 이것이 부처님의 업이며 또한 중도행이다.
雖恒觀察 無人無我나 而敎化衆生하야 無有疲厭하며
비록 남(타인)도 없고 나도 없음을 항상 관찰하지만, 그러나 중생 교화하기를 고달파하지 않으며,
雖於法界에 本來不動이나 而以神通智力으로 現衆變化하며
비록 법계는 본래 부동하지만, 그러나 신통과 지혜력으로 여러 가지 변화를 나타내며,
雖已成就 一切智智나 而修菩薩行하야 無有休息하며
비록 이미 일체지지를 성취했지만, 그러나 보살행을 닦기를 쉬지 않으며,
雖知諸法이 不可言說이나 而轉淨法輪하야 令衆心喜하며
비록 모든 법이 말로 할 수 없음을 알지만, 그러나 청정한 법륜을 굴려 대중의 마음을 기쁘게 하며,
雖能示現 諸佛神力이나 而不厭捨 菩薩之身하며
비록 능히 제불의 신력을 나타내보이지만, 그러나 보살의 몸을 싫어하여 버리지 않으며,
불교의 궁극적 목표는 보살로서 중생을 받들자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교수행의 길은 이와 같이 부처님의 경지에서 다시 보살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雖現入 於大般涅槃이나 而一切處에 示現受生하야
비록 대열반에 들어감을 나타내 보이지만, 그러나 일체처에 태어남을 보여서
能作如是 權實雙行法이 是佛業이라 是爲十이니
능히 이와 같이 방편과 실상을 함께 행하는 법을 짓는 것이 부처의 업이라, 이것이 열이니,
이것이 보살로서 방편과 진실을 함께 행=權實雙行하는 보살의 부처님의 업이다.
權實雙行, 權과 實= 방편과 진실을 쌍으로 행할 줄 아는 것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得 不由他敎 無上無師 廣大業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그 안에 안주하면, 곧 남의 가르침에 연유치 않는, 스승이 없는 위없이 광대한 업을 얻느니라.
㉘ 菩薩의 十種慢業 보살의 열가지 교만한 업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慢業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於師僧父母와 沙門婆羅門이 住於正道하야 向正道者인
불자 보살마하살 유십종만업 하등 위십 소위어사승 부코 사문 바라문 주어정도 향정도자
尊重福田所에 而不恭敬이 是慢業이요 或有法師가 獲最勝法하야 乘於大乘하야 知出要道하고 得陀羅尼하야
존중복덕소 이불공경 시만업 옥유법사 획최승법 승어대승 지출요도 득다라니
演說契經廣大之法호대 無有休息이어든 而於其所에 起高慢心하며 及於所說法에 不生恭敬이 是慢業이요 於衆會中에
연설계경광대지법 무유휴식 이어기소 고기만심 급어소설법 불생공경 시만업 어중회중
聞說妙法하고 不肯歎美하야 令人信受가 是慢業이요 好起過慢하야 自高陵物하야 不見己失하며 不知自短이 是慢業이요
물설묘법 불긍탄미 영인신수 시만업 오기과만 자고릉물 불견기실 불지자단 시만업
好起過過慢하야 見有德人하고 應讚不讚하며 見他讚歎하고 不生歡喜가 是慢業이요 見有法師가 爲人說法에
호기과과만 견유덕인 응찬불찬 견타찬탄 불생환희 시만업 견유법사 위인설법
知是法是律이며 是眞實이며 是佛語로대 爲嫌其人일새 亦嫌其法하야 自起誹謗하고 亦令他謗이 是慢業이요
지시법시율 시진실 시불어 위혐기인 역혐기법 자기비방 역영타방 시만업
自求高座하며 自稱法師하야 應受供給이요 不應執事라하야 見有耆舊와 久修行人호대 不起逢迎하며 不肯承事가
자구고좌 자칭법사 응수공급 불응집사 견유기구 구수행인 불기봉영 불긍승사
是慢業이요 見有德人하고 顰蹙不喜하며 言辭麤獷하야 伺其過失이 是慢業이요 見有聰慧知法之人하고 不肯親近하야
시만업 견유덕인 빈척불희 언사추광 사기과실 시만업 견유총혜지법지인 불긍친근
恭敬供養하며 不肯諮問何等爲善이며 何等不善이며 何等應作이며 何等不應作이며 作何等業하면 於長夜中에 而
공경공양 불긍자문 하등위선 하등불선 하등응작 하등불응작 작사등업 어장야중 이
得種種利益安樂고하야 愚癡頑很과 我慢所呑으로 終不能見出要之道가 是慢業이요 復有衆生이 慢心所覆로 諸佛出世에
득종종 이익안락 우치완흔 아만소탐 종불능견 출요지도 시만업 부유중생 만심소부 제불출세
不能親近하야 恭敬供養하며 親善不起하고 舊善消滅하며 不應說而說하고 不應諍而諍하면 未來에 必墮險難深坑하야
부능친근 공경공양 친선불기 구선소멸 불응설이설 불을쟁이쟁 미래 필타험난심갱
於百千劫에 尙不値佛이어든 何況聞法가 但以曾發菩提心故로 終自醒悟가 是慢業이니 是爲十이니라
어백천겁 상불치불 하황문법 단이증발보리심고 종자성오 시만업 시위십
질문 178 '何等이 爲慢業이며'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慢業하니 何等이 爲十고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교만한 업=慢業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所謂 於師 僧 父母와 沙門 婆羅門이 住於正道하야 이른바 스승이나 스님, 부모나 사문, 바라문이 정도에 머물어,
向正道者인 尊重福田所에 而不恭敬이 是慢業이요
정도에 향하는 이들의 존중한 복밭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 교만한 업이요,
일곱 가지 교만= 칠만(七慢)이란 (1) 만(慢)= 자기보다 못한 이에 대하여 우월감을 품고 높은 체 하는 것이며, (2) 과만(過慢)= 자격이 같은 이에게 대하여 우월감을 품고 높은 체 하는 것이며, (3) 만과만(慢過慢)= 자기보다 나은 이에 대하여 우월감을 품고 높은 체 하는 것이며, (4) 아만(我慢)= 자기의 능력을 믿고, 다른 이를 업신여기는 것이며, (5) 증상만(增上慢)= 자기를 가치 이상으로 보는 것이며, (6) 비열만(卑劣慢)= 겸손하면서도 일종의 자만심을 가지는 것이며, (7) 사만(邪慢)= 덕이 없는 이가 스스로 덕이 있는 줄로 잘못 알고, 삼보(三寶)를 경만하며 높은 체 하는 것이다.
만(慢, 산 māna, 영어: arrogance)은 자기보다 못한[劣] 이에 대하여 자기가 더 낫다[勝]고 생각하거나 혹은 자기와 같은[等] 이에 대하여 자기와 같다[等]고 생각하는 것에 연유하여, 지금 오만(傲慢)하고 이미 오만하였고 앞으로도 오만한 마음으로 높은 체 뽐내거나 자신을 높이는 고거심(高舉心)을 내고 자부[恃 믿을 시, 자부할 시: 自負, 스스로 자신이 그렇다고 믿음][4하여 다른 이를 업신여기는[篾] 것이다.
《구사론》에 따르면, 만(慢)은 자기보다 열등한 이에 대해 자기가 뛰어나다고 생각하게 하고 자기와 동등한 이에 대해 동등하다고 생각하게 하여, 즉 남과 나를 비교하여 뛰어남과 열등함의 차별을 짓는 생각을 일으키게 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잘난 체[高舉] 하게 하는 마음작용이다.
만(慢)은 비록 자기가 다른 이보다 뛰어나거나 혹은 다른 이와 동등한 것이 사실이기는 한데, 그 사실을 그냥 사실로서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굳이 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여 '내가 뛰어나다' 또는 '내가 그와 동등하다' 등의 경멸(輕蔑)하거나 자부(自負)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점에서 '자신을 높인다[高舉]'는 뜻이 이루어지므로 만(慢)이라고 한다.
或有法師가 獲最勝法하야 乘於大乘하야 知出要道하고 得陀羅尼하야
혹 어떤 법사가 최승의 법을 얻어서, 대승에 올라 벗어나는 중요한 길=出要道를 알고 다라니(총지)를 얻어서
演說契經 廣大之法호대 無有休息이어든 而於其所에 起高慢心하며
경전의 광대한 법을 쉬지 않고 연설하더라도, 그에게 크게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거나,
經(경)= sūtra. 한역에서는 소달라(蘇怛羅)·소달람(素怛纜)·수다라(修多羅)·수타라(修吒羅) 등으로 음사하고, 의역으로는 경전(經典)·계경(契經)·정경(正經)·관경(貫經) 등으로 번역한다
수다라(修多羅)= 수트라의 음역. 수트라는 본래 실이나 끈을 의미하며, 선(線), 규칙, 경구(警句), 강요서, 경전 등을 뜻함. 고래로부터 인도에서는 종교와 철학 및 학문의 기본적인 내용을 간단한 문장으로 정리해 놓은 것을 수트라, 곧 경(經)이라 불렀다. 이에 따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리해 놓은 것도 경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인도에서는 그러한 경을 야자수 잎사귀 등에 적어서 실로 꿴 다음 바구리에 담아 놓았는데, 그처럼 실로 꿴 경을 한데 모아 놓았다는 뜻에서 경장(經藏)이라고 한다. 수투로(修妬路), 소다라(蘇多羅), 계경(契經), 성교(聖敎), 정경(正經), 법본(法本), 경(經). 다라(多羅). ⇒ 경장(經藏).
及於所說法에 不生恭敬이 是慢業이요 그가 설하는 법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 교만한 업이며,
보살법사가 수승한 법을 얻어서 대승을 의지하여 벗어나는 중요한 길을 알며, 다라니를 얻고 경전의 광대한 법을 연설하여 쉬지 아니하는데 그에게 교만한 마음을 내거나 그가 설하는 법을 공경치 아니한다면 그것은 교만한 업이 된다.
於衆會中에 聞說妙法하고 不 肯歎美하야 肯 즐길 긍, 歎 탄식할 탄
대중이 모인 중회에서 묘법 설하는 것을 듣고도 찬탄하지 않고
令人信受가 是慢業이요 사람들에게 신수하게 하지 않는 것이 교만한 업이며,
好起過慢하야 自高陵物하야 不見己失하며 陵 큰 언덕 릉
남보다 잘난 체하는 교만=過慢을 일으켜 자기를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며 ,자기의 허물은 보지 않고
不知自短이 是慢業이요 자기의 그릇됨은 알지 못하는것이 교만한 업이며,
好起 過過慢하야 見有德人하고 應讚 不讚하며
과만(過慢)을 더 지나가는 교만= 過過慢을 잘 일으켜, 덕이 있는 이를 보고 찬탄해야 할 것을 찬탄하지 않고,
見他讚歎하고 不生歡喜가 是慢業이요 남이 찬탄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 것이 교만한 업이며,
見有法師가 爲人說法에 知 是法是律이며 是眞實이며
어떤 법사가 사람들에게 법을 설하는 것을 보고, 그것이 옳은 법이고 바른 계율이고 진실하며
是佛語로대 부처님 말씀임을 알면서도
爲嫌其人일새 亦嫌其法하야 自起誹謗하고 亦令他謗이 是慢業이요
그 사람을 미워하고 그의 법도 미워하며, 스스로 비방하고 남도 비방하게 하는 것이 교만한 업이며,
대승보살불교가 크게 일어날 무렵 성문법과 독각법만을 주장하는 이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비방과 미움을 받았는지를 짐작할만한 내용이다. 물론 지금도 그와 같은 경우는 얼마든지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 모두가 교만한 업의 소치이다.
自求高座하며 自稱法師하야 應受供給이요 스스로 높은 자리를 찾아 자칭 법사라 하여 마땅히 공양을 받아야 하며
不應執事라하야 見有耆舊와 久修行人호대 不起逢迎하며 逢 만날 봉, 迎 맞을 영, 耆 늙은이 기, 舊 옛 구,
손수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고, 나이 많은 오랫도안 수행한 사람(큰 스님)을 보고도 일어나서 맞아 영접하지도 않고
不肯承事가 是慢業이요 받들어 섬기려 하지도 않는 것이 교만한 업이며,
見有德人하고 顰蹙不喜하며 덕 있는 이를 보고는 얼굴을 찌푸리는=빈축하여 기뻐하지 않고 顰 찡그릴 빈, 蹙 쭈그러질 척,
言辭麤獷하야 伺其過失이 是慢業이요 말이 거칠고 사나우며, 그의 허물만 찾는 것이 교만한 업이며,
麤 거칠 추, 獷 사나울 광, 伺 엿볼 사
질투와 시기심을 참지 못하여 그와 같은 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見 有聰慧 知法之人하고 不肯親近하야 恭敬供養하며
총명하고 지혜가 있어 법을 아는 사람을 보고도 친근하여 공양하려 하지 않으며,
不肯諮問 何等爲善이며 何等不善이며 何等應作이며 何等不應作이며 諮 물을 자
어떤 것이 선이고 어떤 것이 불선(악)이며, 어떤 것이 해야 할 일이고 어떤 것이 해서는 안 될 일이며,
作何等業하면 於長夜中에 而得種種 利益安樂고하야
무슨 업을 지어야 오랫 동안 갖가지 이익과 안락을 얻는지'를 不肯諮問= 자문하려 하지도 아니하며,
愚癡頑很과 我慢所呑으로 終不能見 出要之道가 是慢業이요 頑 완고할 완, 很 매우 흔, 呑 삼킬 탄, 안중에 두지 않을 탄
어리석고 사납고 아만(我慢)에 싸여, 끝내 벗어나는 길=출요도를 볼 수 없는 것이 교만한 업이며,
가까이 훌륭한 법사와 법회가 있는 것을 알면서 가서 법을 듣지 않는 것은 모두가 교만한 업 때문이다.
復有衆生이 慢心所覆로 諸佛出世에 不能親近하야 恭敬供養하며
또 어떤 중생은 교만한 마음으로 덮여 부처님이 세상에 나신=諸佛出世에도 친근하여 공경 공양하지 못하며,
親善不起하고 舊善消滅하며 새로운 선은 일으키지 않고 예전의 선은 소멸되며,
不應說而說하고 不應諍而諍하면 말하면 안 될 것을 말하고 다투면 안 될 것을 다투니,
未來에 必墮 險難深坑하야 미래에 반드시 험난하고 깊은 구덩이에 빠져서 墮 떨어질 타,險 험할 험, 坑 구덩이 갱,
於百千劫에 尙不値佛이어든 何況聞法가 백천 겁 동안 부처님 만나지도 못하거늘 하물며 어찌 법을 들을 수 있겠는가?
但以曾發菩提心故로 終自醒悟가 是慢業이니 是爲十이니라 醒 깰 성,
다만 일찍이 보리심을 내었으므로 마침내 스스로 깨달음이 교만한 업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교만한 마음에 사로잡혀 있으면 손해가 많게 된다. 부처님이나 선지식이 계셔도 친견하지 않으며 법을 들으려 하지 않고, 설사 자신이 다소 선하다하더라도 더 이상의 선은 생기지 않고 앞서 닦은 선행도 소멸하게 된다. 또 말하지 않을 것을 말하게 되고, 다투지 않을 것을 다투게 되는 모두가 잘난체하는 교만 때문이다. 수행자로서 특별히 경계해야할 것이 교만한 마음이다.
㉙ 菩薩의 十種智業 보살의 열가지 지혜의 업
若諸菩薩이 離此慢業하면 則得十種智業하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信解業報하야 不壞因果가 是智業이요
약제보살 이차만업 즉득십종 지업 하등 위십 소위 신해업보 불괴인과 시지업
不捨菩提心하고 常念諸佛이 是智業이요 近善知識하야 恭敬供養하며 其心尊重하야 終無厭怠가 是智業이요
불사보리심 상념제불 시지업 근선지식 공경공양 기심존중 종무염태 시지업
樂法樂義하야 無有厭足하며 遠離邪念하고 勤修正念이 是智業이요 於一切衆生에 離於我慢하며 於諸菩薩에
낙설낙의 무유염족 원리사념 근수정념 시지업 어일체중생 이어아만 어제보살
起如來想하며 愛重正法을 如惜己身하며 尊奉如來를 如護己命하며 於修行者에 生諸佛想이 是智業이요 身語意業이
기여래상 애중정법 여석기신 존봉여래 여호기명 어수행자 생제불상 시지업 신어의업
無諸不善하야 讚美賢聖하며 隨順菩提가 是智業이요 不壞緣起하고 離諸邪見하며 破暗得明하야 照一切法이 是智業이요
무제불선 찬미현성 수순보리 시지업 불괴연기 이제사견 파암득명 조일체법 시지업
十種廻向으로 隨順修行하며 於諸波羅蜜에 起慈母想하며 於善巧方便에 起慈父想하야 以深淨心으로 入菩提舍가
십종회향 수순수행 어제바라밀 기자모상 어선교방편 기자부상 이심정심 입보리사
是智業이요 施戒多聞과 止觀福慧의 如是一切助道之法을 常勤積集하야 無有厭倦이 是智業이요 若有一業이
시지업 시계다문 지관복혜 여시일체조도지법 상근적집 무유염권 시지업 약유일업
爲佛所讚하야 能破衆魔煩惱鬪諍하며 能離一切障蓋纏縛하며 能敎化調伏一切衆生하며 能隨順智慧하야 攝取正法하며
위불소찬 능파중마 번뇌투쟁 능리일체 장개전박 능교화조복 일체중생 능수순지혜 섭위정법
能嚴淨佛刹하며 能發起通明이면 皆勤修習하야 無有懈退가 是智業이라 是爲十이니
능엄정불찰 능발기통명 개근수습 무유해퇴 시지업 시위십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得如來의 一切善巧方便인 無上大智業이니라
약제보살 안주기중 즉득여래 일체선교 방편 무상대지업
질문 179 '何等이 爲智業이며'
若諸菩薩이 離此慢業하면 則得十種智業하나니 何等이 爲十고
만일 보살들이 이 교만한 업을 여의면 열 가지 지혜의 업=智業을 얻을 것이니, 무엇이 열인가?
所謂 信解業報하야 不壞因果가 是智業이요
이른바 업과 과보를 믿고 이해하여 원인과 결과를 무너뜨리지 않음이 지혜의 업이며,
앞서 밝힌 교만한 업을 여의면 반대로 지혜의 업을 얻게 된다. 만약 지혜가 있다면, 모든 일의 업에 따른 과보를 깊이 믿고 소상하게 알며 인과의 법칙을 잘 따른다. 세존은 연기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하지 않던가. 연기의 이치는 곧 과보와 인과와 인연의 이치이다. 이와 같은 이치를 잘 알고 실천하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그래서 대만의 성엄법사(聖嚴法師, 1930-2009)는 108자재어(自在語) 책에서 “성공의 삼박자는 인연에 순응하여, 인연을 파악하고, 인연을 창조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실로 만고의 진리며 큰 교훈이다.
不捨菩提心하고 常念諸佛이 是智業이요 보리심을 버리지 않고 늘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이 지혜업이며,
보리심은 육바라밀과 사무량심을 닦는 마음이고, 또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는 마음이다. 간단하게 표현하면 남을 먼저 이롭게 하는 이타심(利他心)이다. 이타심이 있는 사람은 곧 지혜의 업이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近善知識하야 恭敬供養하며 其心尊重하야 終無厭怠가 是智業이요
선지식을 친근하여 공경하고 공양하며 마음으로 존중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지혜업이며,
지혜로운 이는 모든 사람과 일체 사건과 온갖 자연의 변화까지 선지식으로 여겨서 존중하고 의미를 찾아 깨달음을 얻는다.
樂法樂義하야 無有厭足하며 遠離邪念하고 勤修正念이 是智業이요
법을 좋아하고 이치를 좋아하여 싫어할 줄 모르며, 삿된 생각을 멀리 여의고 바른 생각을 힘써 닦음이 지혜의 업이며,
於一切衆生에 離於我慢하며 일체중생에게서 교만한 마음을 여의고
於諸菩薩에 起如來想하며 모든 보살을 여래라는 생각을 내며
愛重正法을 如惜己身하며 정법을 사랑하고 존중하기를 내 몸 아끼듯이 하고
尊奉如來를 如護己命하며 여래를 받들기를 내 목숨 지키듯이 하며
於修行者에 生諸佛想이 是智業이요 수행하는 이들을 부처님이라는 생각을 내는 것이 지혜업이며,
身語意業이 無諸不善하야 讚美賢聖하며 신어의 업에 아무런 불선이 없고, 성현을 찬미하며
隨順菩提가 是智業이요 보리에 수순하는 것이 지혜업이며,
不壞緣起하고 離諸邪見하며 연기를 무너뜨리지 않고 모든 삿된 소견=邪見을 멀리하며
破暗得明하야 照一切法이 是智業이요 어둠을 깨뜨리고 밝음을 얻어서 일체법을 비추니, 이것이 지혜업이며,
邪見이란 연기와 인과와 인연의 이치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연기와 인과와 인연의 이치를 모르는 것이 어둠이며, 연기와 인과와 인연의 이치를 아는 것이 밝음이다. 연기와 인과와 인연의 이치로 일체 법을 밝게 비추는 것이 지혜의 업이다.
十種廻向으로 隨順修行하며 열 가지 회향에 수순하여 수행하며,
於諸波羅蜜에 起慈母想하며 모든 바라밀을 자애로운 어머니라 생각하고
於善巧方便에 起慈父想하야 선교한 방편을 자비로운 아버지라 생각하여
以深淨心으로 入菩提舍가 是智業이요 깊고 청정한 마음으로 보리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 지혜업이며,
十種廻向(십종회향); 一者 救護一切衆生호대 離衆生相廻向이요 二者는 不壞廻向이요 三者는 等一切諸佛廻向이요
四者는 至一切處廻向이요 五者는 無盡功德藏廻向이요 六者는 入一切平等善根廻向이요
七者는 等隨順一切衆生廻向이요 八者는 眞如相廻向이요 九者는 無縛無着解脫廻向이요 十者는 入法界無量廻向이라
施 戒 多聞과 止觀 福慧의 如是一切助道之法을
보시와 지계(계율)과, 많이 듣는=多聞(공부), 그침=止과, 관=觀하며, 복과 지혜=福慧의 이러한 모든 조도법을
常勤積集하야 無有厭倦이 是智業이요 항상 부지헌히 힘써 모으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지혜업이며,
若有一業이 爲佛所讚하야 能破 衆魔 煩惱鬪諍하며
만일 한 가지 업이라도 부처님이 칭찬하시면 능히 모든 마구니 번뇌와 싸워 능히 쳐부수고,
能離 一切障蓋 纏縛하며 能敎化調伏 一切衆生하며
능히 일체 장애의 가리움=障蓋와 결박과 얽힘=纏縛을 여의고, 능히 일체중생을 교화하고 조복시키며,
能隨順智慧하야 攝取正法하며 능히 지혜에 수순하여 바른 법을 거두어 가지며,
能嚴淨佛刹하며 능히 부처님 세계를 깨끗이 장엄하며,
能發起通明이면 皆勤修習하야 無有懈退가 是智業이라
능히 육신통과 세가지 밝음을 일으키어, 힘써 닦아 익히기를 게으르지 않고 물러가지 않음이 지혜의 업이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得 如來의 一切善巧方便인 無上大智業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이 그 안에 안주하면 곧 여래의 모든 선교방편과 더없이 큰 지혜업을 얻느니라.
보살은 어떤 한 가지 업을 짓더라도 그것이 부처님의 찬탄하는 바가 된다. 그것은 마와 번뇌와 투쟁을 깨뜨리며, 일체 장애와 덮음과 결박과 얽힘을 여의며, 일체중생을 교화하고 조복시키는 일이 되므로 지혜의 업이 된다. 이와 같이 보살은 무엇을 하더라도 일체 일이 지혜의 업이 된다. 반대로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는 일마다 악업이 되고 덕을 손상시키고 복을 손상시키는 업을 짓게되니, 잘 살펴야 할 일이다.
三明(삼명)= 3달(三達), 3증법(三證法), three knowledges, tri-vidya(산), ti-vijjā(팔)은 붓다나 아라한이 가지는 숙명지명(宿命智明)·천안지명(天眼智明)·누진지명(漏盡智明)을 말한다. 지명(智明)이란 vindati(√vij, to know)에서 파생된 명사로 ‘꿰뚫어 앎’이라는 의미다. 각각 전생을 보고, 내생을 보고, 현생에서 번뇌를 모두 끊을 수 있는 지혜이다. 삼명은 천안지·숙명지·누진지라고 부르며, 숙명통(宿命通)·천안통(天眼通)·누진통(漏盡通)이라고도 한다.
① 천안지명: 자기나 다른 사람의 미래 세상에 대한 일을 분명하게 아는 지혜를 말한다.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가는 것을 본다.
② 숙명지명: 자기나 다른 사람의 지난 생의 일생이 어떠한 것인가를 모두 다 아는 지혜를 말한다. 한 생, 두 생, …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할 수 있다.
③ 누진지명: 번뇌를 끊고 생사의 속박을 벗어나 열반의 이치를 깨달아 얻는[證得] 지혜를 말한다. 번뇌가 멸진하여 번뇌가 없는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지금 여기에서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문다.
불교에서는 세 번째 누진지가 가장 중요시 된다. 불교는 괴로움의 소멸을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최고의 신통은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능력으로 괴로움에서 벗어난 상태에 이르게 하는 누진지이다.
초기 불교 경전에 의하면 삼명(三明)으로 붓다는 정각을 성취하였다. 순차적으로 세 가지 지명을 증득하고 정각을 이루는데, 초야에 자신의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인 숙명지를, 중야에 중생의 생사를 볼 수 있는 천안지를, 후야에 번뇌의 소멸을 이룰 수 있는 누진지를 성취하여 성불하였다. 삼명은 사선(四禪)에 의하여 발생한다. 사선을 순차적으로 증득한 뒤, 마지막 제4선에서 삼명을 성취하게 된다. 사선은 선정(禪定)·삼매(三昧)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선에 의해 맑아진 마음 상태에서 세 가지 지혜를 얻고 성불하게 되는 것이다.
브라만교에서 삼명은 오로지 최상위 계급인 브라만 계급에게만 알려지는 것으로 비밀스러운 것이다. 반면에 불교에서의 삼명은 바르게 수행하는 자라면 누구든지 성취할 수 있는 것으로 개방적이다. 브라만교에서 삼명을 갖춘 브라만은 범천(梵天)에 태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붓다는 삼명 브라만들이 다섯 가지 욕망에 물들고 애착이 굳어져서 그 허물을 보지 못하고 그것을 벗어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신라의 승려 원측(圓測)은 그의 저서인 『인왕경소(仁王經疏)』에서 숙명지를 전생을 아는 지혜로, 천안지를 내생을 아는 지혜로, 누진지를 열반을 아는 지혜로 주석하고 있다.
삼명에 다시 3가지 신통을 합하여 육신통(六神通)이라고 한다. 육신통은 신족통(神足通)·천안통(天眼通)·천이통(天耳通)·타심통(他心通)·숙명통(宿命通)·누진통(漏盡通)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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