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如響忍 여향인(메아리 같은 인)
修行如是行하면 出生廣大解하야 巧知諸法性이나 於法心無着이로다
一切諸世間에 種種諸音聲이 非內亦非外라 了知悉如響이니
如聞種種響하고 心不生分別하야 菩薩聞音聲에 其心亦如是로다
瞻仰諸如來하며 及聽說法音과 演契經無量에 雖聞無所着이로다
如響無來處하야 所聞聲亦然호대 而能分別法하야 與法無乖謬로다
善了諸音聲하야 於聲不分別하야 知聲悉空寂이나 普出淸淨音이로다
了法不在言하야 善入無言際로다 而能示言說하야 如響遍世間이로다
了知言語道하고 具足音聲分하야 知聲性空寂이나 以世言音說이로다
如世所有音하야 示同分別法하니 其音悉周遍하야 開悟諸群生이로다
菩薩獲此忍에 淨音化世間하야 善巧說三世호대 於世無所着이로다
修行 如是行하면, 이러한 행을 수행하여 出生 廣大解하야, 광대한 이해를 낳아서
巧知 諸法性이나, 모든 법의 성품을 잘 아나 巧 공교할 교, 아름다울 교
於法 心無着이로다. 법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음이로다.
一切諸世間에, 일체의 모든 세간의 種種 諸音聲이, 갖가지 모든 음성들이
非內 亦非外라. 안도 아니고 또한 밖도 아니어서 了知 悉如響이니, 모두 메아리 같음을 잘 아네
如聞 種種響하고, 갖가지 메아리를 들어도 心不生 分別하야, 마음은 분별을 낳지 않듯이
菩薩 聞音聲에, 보살이 음성을 듣는 其心 亦如是로다. 그 마음 또한 이와 같도다.
瞻仰 諸如來하며, 모든 여래를 우러러 보며 瞻仰첨앙, 及聽說法音과, 설하시는 법음을 듣고서
演契 經無量에, 말씀에 계합하여 무량겁 지내되 演 흐를 연, 펼 연, 契 맺을 계,
雖聞 無所着이로다. 비록 (경을 설함을) 들었어도 집착함이 없네
如響 無來處하야, 메아리가 온 곳이 없듯이 所聞聲 亦然호대, 듣는 바 소리도 또한 그러하나니
[메아리와 소리는 조금 다르지요? 소리는 1차의 소리이고, 메아리는 2차 소리, 즉 소리의 소리입니다]
而能 分別法하야, 이렇게 능히 법을 분별하여
與法無乖謬로다. 법에 어긋나거나 잘못됨이 없음이로다. 乖 어그러질 괴, 謬 그릇될 류,
善了 諸音聲하야, 모든 음성을 잘 알아서 於聲 不分別하야, 소리를 분별하지 않고
知聲 悉空寂이나, 소리가 다 공적한 줄 알지만 普出 淸淨音이로다. 청정한 음성(진리의 소리)을 두루 내도다.
了法 不在言하야, 법은 말에 있지 않음을 잘 알고 善入 無言際로다. 말이 없는 경계에 잘 들어갔지만
而能示 言說하야, 그래도 능히 언설을 보여서 如響 遍世間이로다. 메아리처럼 세간에 두루하네
[법은 말에 있지 아니함을 알아서, 말이 없는 경계에 잘 들어 가서 능히 언설을 보여서, 메아리와 같이 세간에 두루 하도다. → 言語가 卽是道다.]
了知 言語道하고, 언어의 길을 요지하여 具足 音聲分하야, 음성의 지분을 구족하고
知 聲性空寂이나, 소리의 성품이 공적한 줄 알되 以世 言音說이로다. 세간의 언어로 말함이로다.
如 世所有音하야, 세간에 있는 음성이 示 同分別法이나, 분별법과 같음을 보이지만
其音 悉周遍하야, 그 음성을 두루 펼쳐 開悟 諸群生이로다. 온갖 중생들을 깨우치네
菩薩이 獲此忍에, 보살이 이 인을 얻고서 獲 얻을 획,
淨音 化世間이라. 청정음(법문의 소리)으로 세간을 교화하여
善巧說 三世호대, 삼세를 선교히 설하되 於世無所着이로다. 세간에 집착함이 없네
8. 如影忍 여영인(그림자 같은 인)
爲欲利世間하야 專意求菩提호대 而常入法性하야 於彼無分別이로다
普觀諸世間이 寂滅無體性호대 而恒爲饒益하야 修行意不動이로다
不住於世間하며 不離於世間하야 於世無所依하니 依處不可得이로다
了知世間性하야 於性無染着하니 雖不依世間이나 化世令超度로다
世間所有法에 悉知其自性하야 了法無有二호대 無二亦無着이로다
心不離世間하며 亦不住世間호대 非於世間外에 修行一切智로다
譬如水中影이 非內亦非外ㄴ달하야 菩薩求菩提에 了世非世間하야
不於世住出하니 以世不可說이며 亦不在內外나 如影現世間이로다
入此甚深義에 離垢悉明徹이나 不捨本誓心하고 普照世間燈이로다
世間無邊際에 智入悉齊等하야 普化諸群生하야 令其捨衆着이로다
爲欲 利世間하야, 세간을 이롭게 하고자 專意 求菩提호대, 오롯한 뜻으로 보리를 구하고 專意전의
而常入 法性하야, 항상 법의 성품에 들어가되 於彼 無分別이로다. 그러한 것들에 분별함이 없고
普觀 諸世間이, 모든 세간은 공적하여 寂滅 無體性호대, 적멸하여 체성이 없다는 것을 普觀=널리 보지만
而恒 爲饒益하야, 항상 유익하게 하고자 饒益요익= 자비로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넉넉하게 이익을 줌
修行意 不動이로다. 수행의 뜻은 흔들리지 않네
[미혹하고 어리석은 중생들은 이치를 몰라서 고생이 너무 심하니까, 이치를 일러줘서 깨닫게 하고 중생들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열심히 수행하고 설법하는 것입니다.]
不住 於世間하며, 세간에 머물지도 않고 不離 於世間하야, 세간을 떠나지도 않고
於世 無所依하니, 세간에 의지함도 없으며 依處 不可得이로다. 의지할 곳도 얻으려 하지않네
了知 世間性하야, 세간의 성품을 요지하여 於性 無染着하니, 그 성품에 물들지 않고(염착함이 없으니)
雖不依 世間이나, 비록 세간에 의지하지도 않지만 化世 令超度로다. 세간을 교화해 초월하게 하네 超度초도
[於性에 無染着, 모르니까 속아서 집착하는 것입니다]
世間 所有法에, 세간에 있는 모든 법의 悉知 其自性하야, 그 자성을 다 알고
了法 無有二호대, 법에 둘이 없음을 잘 알되 無二 亦無着이로다. 둘 없음에도 또한 집착함이 없네
[자성(自性, svabhāva, sva-laksana, svalakṣaṇa, 영어: intrinsic nature, essential nature, essence)은 다른 어떤 것과도 관계하지 않는 자기만의 특성이다. 즉, 어떤 법(法)의 본질적 성질, 본성을 그 법(法)의 자성이라고 하며, 간단히 성(性)이라고도 하며 또한 다른 말로 체(體) 또는 실체(實體)라고도 하며 또한 체성(體性)이라고도 한다. 어떤 법(法)의 자성은 해당 법을 다른 법과 구별되게 하는 결정적 요소이다.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와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에서는 흔히 자상(自相)이라고도 하며 또한 체상(體相)이라고도 한다.
어떤 법(法)의 본질적 성질을 자성(自性), 자상(自相) 또는 성(性) 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그 법(法)이 이 본질적 성질을 바탕으로 다른 법(法)에 대해 일으키는 본래의 작용(作用), 즉 본질적 작용을 업(業) 또는 용(用)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업(業)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작용'의 뜻이 있다. 예를 들어,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주요 논서인 안혜의 '대승광오온론'의 제1권 그리고 호법 등의 '성유식론'의 제5권부터 제7권까지에서는 여러 마음작용(심소법)들에 대해 정의하고 설명하고 있는데, 각각의 마음작용(심소법)을 정의할 때 해당 마음작용의 본질적 성질인 성(性)과 본질적 작용인 업(業)을 밝힘으로써 해당 마음작용을 정의하고 있다. 본질적 성질인 性과 본질적 작용인 業 또는 用은 동전의 앞면 · 뒷면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질적 성질[性]을 다른 말로는 성능(性能)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성은 성질 즉 본질적 성질을 뜻하고 능은 기능 또는 능력 즉 본질적 기능 또는 본질적 능력을 뜻한다. 한편, 성능의 일반 사전적인 의미는 '어떤 물건이 지닌 성질과 능력 또는 기능'이다.
한편, 본질적 성질과 본질적 작용을 합하여 불교 용어로 체용(體用)이라고도 하는데, 그 의미를 확대하여, 즉 체(體)와 용(用)을 개별 법의 본질적 성질과 본질적 작용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체(體)를 일체 만법의 본성으로, 용(用)을 본성이 일체의 만법 즉 차별적 현상을 구체화시켜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체상(體相)을 이러한 뜻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즉, 체(體)를 본질로, 상(相)을 본질이 구체화된 모습 즉 차별적 현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자성(自性) 또는 자상(自相)에 대하여, 공상(共相, sāmānya lakṣaṇa, 영어: common nature)은 여러 가지 법(法: 개별 존재)에서 공통으로 존재하는 특성이다. 예를 들어, 가을의 산이 빨갛고 불이 빨갛고 옷이 빨갛다고 할 때의 공통의 빨강을 가리켜 공상(共相)이라고 하고, 파랑 혹은 노랑 등과 구별되는 빨강 그 자체를 가리켜 자상(自相)이라고 한다.
자상(自相)에는 처자상(處自相)과 사자상(事自相)의 구별이 있다.]
心不離 世間하며, 마음은 세간을 떠나 있지 않고 亦不住 世間호대, 또한 세간에 머물지도 않으며
非 於世間 外에 修行一切智로다. 세간 밖에서 일체지를 수행하는 것도 아니로다.
[몸을 가지고 있는 한, 존재의 원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으니까, 세간 밖에서는 수행할 수도, 중생을 제도 할 수도 없다.]
譬如水中影이, 마치 물 속의 그림자가 非內 亦非外ㄴ달하야, 안에도 밖에도 있지 않듯이
菩薩 求菩提에, 보살도 보리를 구해서 了世 非世間하야, 세간이 세간 아님을 잘 알아
不於世住出하니, 세간에 머물지도 벗어나지도 않으니 以世 不可說이며, 세간의 말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亦不在 內外나, 또한 안에도 밖에도 있지 않으니 如影 現世間이로다. 그림자가 세간에 나타나듯 하네
[世間(세간)= loka, 줄여서 세(世), 깨지고 부서지게 될 것이라는 뜻이 있다. 보통 세간이라고 할 때에는 세간에 속한 것도 포함하며 세상의 사물과 번뇌에 얽매어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존재의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세친의 '불성론 佛性論'에 의하면 '세'에는 부정되고 없애버려야 할 것(對治), 옮겨가는 것(不靜住), 진리에 어긋난 거짓(虛妄) 등의 3가지 뜻이 있다고 한다. 세간(世間)은 무위이자 무루인 출세간(出世間)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유루 · 무루의 유위의 세계를 말한다. 교학적으로 출세간은 무위의 세계를, 세간은 유위의 세계를 말한다. 실천적인 면에서, 출세간은 무루를, 세간은 유루를 말한다. 세간은 2종세간(二種世間) · 3종세간(三種世間) · 5종세간(五種世間) 등으로 분류하며, 천태종에서는 오음세간(五陰世間)·중생세간(衆生世間)·국토세간(國土世間)으로 삼종세간을 구분한다.]
入 此甚深義에, 이 깊고 깊은 이치에 들어가
離垢 悉明徹이나, 때를 벗고 뜻을 명철히 하였으니 明徹명철=사리가 분명하고 투철함
不捨 本誓心하고, 본래 서원의 마음 버리지 않고 誓 맹세할 서
普照 世間燈이로다. 세간을 두루 비추는 지혜의 등불이라
世間 無邊際에, 세간은 끝이 없건만
智入 悉齊等하야, 지혜로 들어가 다 평등히 하고 齊 가지런할 제, 조화할 제,
普化 諸群生하야, 모든 중생을 널리 교화하여 令其 捨衆着이로다. 온갖 집착을 버리게 하네
9. 如化忍 여화인(변화와 같은 인)
觀察甚深法하야 利益群生衆하고 從此入於智하야 修行一切道로다
菩薩觀諸法하야 諦了悉如化나 而行如化行하야 畢竟永不捨로다
隨順化自性하야 修習菩提道에 一切法如化라 菩薩行亦然이로다
一切諸世間과 及以無量業이 平等悉如化하야 畢竟住寂滅이로다
三世所有佛이 一切亦如化나 本願修諸行하야 變化成如來로다
佛以大慈悲로 度脫化衆生이나 度脫亦如化라 化力爲說法이로다
知世皆如化하야 不分別世間하니 化事種種殊가 皆由業差別이로다
修習菩提行하야 莊嚴於化藏하니 無量善莊嚴이 如業作世間이로다
化法離分別하고 亦不分別法이라 此二俱寂滅하니 菩薩行如是로다
化海了於智하고 化性印世間하니 化非生滅法이라 智慧亦如是로다.
觀察甚深法하야, 깊고 깊은 심오한 법을 관찰하여 利益 群生衆하고, 모든 중생 이익케 하고
從此入 於智하야, 이로 인하여 지혜에 들어가 修行 一切道로다. 일체의 도를 수행하네
菩薩 觀諸法하야, 보살은 모든 법 관찰하여
諦了 悉如化나, 모두가 변화와 같음을 꿰뚫어 알지만 諦 살필 체, 살필 제, 了 마칠 료, 밝을 료
而行 如化行하야, 변화 같은 행을 행하기를 畢竟 永不捨로다. 필경에 영원히 버리지 않네 畢竟필경
隨順 化自性하야, 변화의 자성에 수순하여 修習 菩提道에, 보리도를 닦아 익히지만
一切法 如化라. 일체법이 변화와 같고 菩薩行 亦然이로다. 보살행도 역시 그러하네
一切 諸世間과, 일체의 모든 세간과 及以 無量業이, 그리고 한량없는 업이
平等 悉如化하야, 다같이 평등하여 변화와 같아서 畢竟에 住寂滅이로다. 필경에는 적멸에 머무네
三世 所有佛이,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一切 亦如化나, 모두 다 변화와 같거니와
本願은 修諸行하야, 본래의 원으로 행을 닦아 變化 成如來로다. 변화하여 여래를 이룸이로다
佛 以大慈悲로, 부처님은 대자비로 度脫 化衆生이나, 중생을 교화하여 도탈케 하시나
度脫 亦如化라. 도탈시키는 일도 변화와 같은지라 化力 爲說法이로다 변화의 힘으로 위하여 법을 설하시며
知世 皆如化하야, 세간이 다 변화와 같은 줄 알기에 不分別 世間하니, 세간을 분별하지 않지만
化事 種種殊라. 변화하는 일이 갖가지로 다른 것은 殊 죽일 수, 다를 수
皆由 業差別이로다. 업의 차별함에 연유한 것이로다
修習 菩提行하야, 보리의 행을 닦아 익히고 莊嚴 於化藏하니, 변화의 창고를 가꾸어 장엄하되
無量善 莊嚴이, 한량없는 좋은 장엄이 如業 作世間이로다. 업과 같이 세간을 지음이로다
化法 離分別하고, 변화의 법은 분별을 여의고 亦分別 不法이라. 또한 법을 분별하지도 않아서
此二가 俱寂滅하니 이 두 가지 모두 적멸하거니와 菩薩이 行如是로다. 보살이 이와 같음을 행함이로다.
化海 了於智하고, 변화의 바다로 지혜를 잘 알고 化性이 印世間하니, 변화의 성품으로 세간을 인가하되
[印世間= 변화성의 실상을 잘 깨달은 지혜로 세상을 관조하여 세간의 변화성(무상)을 잘 이해함을 의미]
化 非生滅法이라. 변화는 생멸법이 아니거니와 智慧 亦如是로다. 지혜 또한 역시 그러하도다
[인(印)= 표장(標章), 도장의 의미. 어떤 표지(標識)로 나타내 보이는 부호나 그림, 다른 것과 구별하여 알게 하는 데 필요한 표시나 특징. 표치(標幟).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내용을 법인(法印)이라 하며, 선가(禪家)에서는, 많은 인가(印可)의 생략으로서 사용된다. 사제(師弟)의 심경(心境)이 서로 맞는 것 등을 의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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