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촉(觸) (산스크리트어: sparśa, 팔리어: phassa, 영어: contact)은 6입연촉(六入緣觸)과 촉연수(觸緣受)의 연기관계에서 한 지분을 이루고 있는데, 6입연촉은 연6입촉(緣六入觸)이라고도 하며 촉연수는 연촉수(緣觸受)라고도 한다. 6입연촉 또는 연6입촉은 6입(六入) 즉 6처(六處) 즉 6근(六根)이 있으므로 촉(觸)이 있다는 뜻이고, 촉연수 또는 연촉수는 촉(觸)이 있으므로 수(受)가 있다는 뜻이며, 또한 이들은 모두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되는 것을 뜻한다.
육근(六根)·육경(六境)·육식(六識)의 화합으로부터 감각과 지각에 의한 인식조건이 성립되는 것을 뜻한다.
《잡아함경》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촉(觸)은 안촉신(眼觸身) · 이촉신(耳觸身) · 비촉신(鼻觸身) · 설촉신(舌觸身) · 신촉신(身觸身) · 의촉신(意觸身)의 6촉신(六觸身)을 말한다.
"6입처를 인연하여 접촉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접촉[觸]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6촉신(觸身)이니, 안촉신(眼觸身)·이촉신(耳觸身)·비촉신(鼻觸身)·설촉신(舌觸身)·신촉신(身觸身)·의촉신(意觸身)이니라."
여기서 신(身, 산스크리트어: kāya)은 이 단어의 일반적 의미인 몸 즉 신체의 뜻의 명사로 사용된 경우가 아니라, 복수 · 집합을 뜻하는 복수형 접미사 '~들'로서 사용된 경우이다. 그리고 촉(觸)은 마음작용들 가운데 하나로 근(根) · 경(境) · 식(識) 3사(三事)의 화합을 말한다.
"觸(촉): (1) 대지법(大地法)의 하나. 대상에 접촉하는 것. 근(根)과 경(境)과 식(識)을 화합시키는 작용. (2) 5경(境)의 하나. 몸에 닿는 대상. 굳은 것(堅)ㆍ축축한 것(濕)ㆍ더운 것(煖)ㆍ흔들리는 것(動)ㆍ매끄러운 것(滑)ㆍ껄끄러운 것(灄)ㆍ무거운 것(重)ㆍ가벼운 것(輕)ㆍ찬 것(冷)ㆍ배고픈 것(飢)ㆍ목마른 것(渴) 등의 11로 나눔. (1)은 인식 주체에게 일어나는 작용인데 비해 (2)는 몸으로 대하는 물질적인 색법(色法)을 말함."
따라서,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나타난 낱말들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6촉신(六觸身): 6가지 촉(觸)들, 6가지 촉(觸)의 집합; 6촉(六觸)은 6근 · 6경 · 6식의 화합들을 말하고, 6촉신(六觸身)은 이러한 화합들의 집합을 총칭한다. 6촉과 6촉신은 사실상 같은 말이며, 6촉은 6촉신의 줄임말이라 할 수 있다.
6근 · 6경 · 6식의 화합의 상태는 6식 즉 인식대상에 대한 6가지 인식 또는 요별 가운데 개별 또는 다수가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안촉신(眼觸身): 안촉(眼觸)들, 안촉(眼觸)의 집합; 안촉(眼觸)은 안근 · 색경 · 안식의 화합을 말한다. 이러한 화합의 상태는 안식 즉 인식대상의 색경(색깔과 크기와 모습)에 대한 인식 또는 요별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 눈으로 대상의 색깔과 크기와 모습을 보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촉신(耳觸身): 이촉(耳觸)들, 이촉(耳觸)의 집합; 이촉(眼觸)은 이근 · 성경 · 이식의 화합을 말한다. 이러한 화합의 상태는 이식 즉 인식대상의 성경(소리)에 대한 인식 또는 요별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 귀로 대상의 소리를 듣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비촉신(鼻觸身): 비촉(鼻觸)들, 비촉(鼻觸)의 집합; 비촉(鼻觸)은 비근 · 향경 · 비식의 화합을 말한다. 이러한 화합의 상태는 비식 즉 인식대상의 향경(냄새)에 대한 인식 또는 요별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 코로 대상의 냄새를 맡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설촉신(舌觸身): 설촉(舌觸)들, 설촉(舌觸)의 집합; 설촉(舌觸)은 설근 · 미경 · 설식의 화합을 말한다. 이러한 화합의 상태는 설식 즉 인식대상의 미경(맛)에 대한 인식 또는 요별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 혀로 대상의 맛을 감별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신촉신(身觸身): 신촉(身觸)들, 신촉(身觸)의 집합; 신촉(身觸)은 신근 · 촉경 · 신식의 화합을 말한다. 이러한 화합의 상태는 신식 즉 인식대상의 촉경(촉감)에 대한 인식 또는 요별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 몸으로 대상의 촉감을 감촉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의촉신(身觸身): 의촉(身觸)들, 의촉(身觸)의 집합; 의촉(身觸)은 의근 · 법경 · 의식의 화합을 말한다. 이러한 화합의 상태는 의식 즉 인식대상의 법경(정신적 측면)에 대한 인식 또는 요별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 의식으로 대상의 정신적 측면을 감지 또는 요별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의식 즉 제6의식은 의근을 통해 단지 법경만을 요별하지 않으며 의근을 통해 5경에 대해서도 요별하는데, 이 경우 의촉은 의근 · 6경 · 의식의 화합을 말하는 것으로, 이러한 화합의 상태는 인식대상에 대한 제6의식의 전체적 · 종합적 인식 또는 요별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 제6의식이 대상을 전체적 · 종합적으로 감지 또는 요별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6입연촉(六入緣觸) 또는 연6입촉(緣六入觸), 즉 6입(六入)이 있으므로 촉(觸)이 있다는 것은 6입 즉 6처 즉 6근의 그릇된 상태가 있기 때문에 촉(觸)의 그릇된 상태가 생겨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진리에 계합하도록 제어되지 못한 상태의 안근 · 이근 · 비근 · 설근 · 신근 · 의근의 6근, 즉 진리에 계합하도록 제어되지 못한 상태의 눈 · 귀 · 코 · 혀 · 몸 · 뜻이 있기 때문에 '그릇된 상태의 근 · 경 · 식 3사화합'이 생겨난다. 특히, 마지막의 의근 또는 뜻은 6식이 과거로 낙사한 것, 즉 과거 경험의 총체를 말한다. 이와 같이 과거의 행위들은 누적이 되어 현재의 6근의 상태를 형성하거나 6근의 작용의 발동근거가 되는데, 현재의 그릇된 상태의 6근은 '그릇된 상태의 3사화합'이 생겨나게 한다. 그리고 '그릇된 상태의 3사화합'은 대상에 대한 현행하는 인식이 대상에 진실한 인식 즉 대상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인식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6입연촉(六入緣觸) 또는 연6입촉(緣六入觸)은 또한 이미 발생한 촉(觸)의 그릇된 상태 즉 '그릇된 상태의 3사화합'이 있다면, 즉 그릇된 상태의 안촉 · 이촉 · 비촉 · 설촉 · 신촉 · 의촉이 이미 발생한 상태라면, 즉 현행하는 인식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가 이미 발생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6입 즉 6처 즉 6근의 그릇된 상태 즉 진리에 계합하도록 제어되지 못한 상태의 6근의 하나 혹은 다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연기경》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촉(觸)은 안촉(眼觸) · 이촉(耳觸) · 비촉(鼻觸) · 설촉(舌觸) · 신촉(身觸) · 의촉(意觸)의 6촉신(六觸身) 즉 6촉(六觸)을 뜻한다.
"6처는 촉(觸)의 연이 된다는 것에서, 무엇이 촉인가.
촉이란 6촉(觸)을 말하니, 첫째는 안촉(眼觸), 둘째는 이촉(耳觸), 셋째는 비촉(鼻觸), 넷째는 설촉(舌觸), 다섯째는 신촉(身觸)여섯째는 의촉(意觸)이다. 이것을 촉이라고 한다."
현대의 해석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촉(觸)은 6입과 명색과 식이 접촉하는 것이다.
(7) 수(受) (산스크리트어: vedanā, 팔리어: vedanā, 영어: sensation, feeling)는 촉연수(觸緣受)와 수연애(受緣愛)의 연기관계에서 한 지분을 이루고 있는데, 촉연수는 연촉수(緣觸受)라고도 하며 수연애는 연수애(緣受愛)라고도 한다. 촉연수 또는 연촉수는 촉(觸)이 있으므로 수(受)가 있다는 뜻이고, 수연애 또는 연수애는 수(受)가 있으므로 애(愛)가 있다는 뜻이며, 또한 이들은 모두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되는 것을 뜻한다.
고락(苦樂)과 불고불락(不苦不樂), 좋고 나쁨을 감수하는 감각이다. 이것은 인식(촉) 후에 생기는 고락 등의 감수이며, 동일물(同一物)을 인식하여도 탐욕자는 즐거움으로 느끼고 성난 사람은 괴로움으로 느끼는 차이가 있다. 그 까닭은 인식 주체로서의 식이 백지와 같은 것이 아니라 과거의 무명과 행에 의하여 탐욕과 진에(瞋恚) 등의 성격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잡아함경》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수(受)는 고수(苦受) · 낙수(樂受) ·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의 3수(三受)를 말한다.
"접촉을 인연하여 느낌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느낌[受]이라고 하는가? 3수(受)를 이르는 말이니, 괴롭다는 느낌·즐겁다는 느낌·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이니라."
부파불교와 대승불교 등 불교 일반에 따르면, 수(受)는 마음작용들 가운데 하나로 촉(觸) 즉 '근경식 3사화합'을 바탕으로 하여 일어난다.
"受(수): Vedanā 정신 작용의 하나. 구사(俱舍)에서는 10대지법(大地法)의 하나. 유식(唯識)에서는 5변행(遍行)의 한. 곧 감각을 말함. 바깥 경계를 마음에 받아들이는 정신 작용. 이에 고수(苦受)ㆍ낙수(樂受)ㆍ사수(捨受)가 있다. ⇒삼수(三受)
촉연수(觸緣受) 또는 연촉수(緣觸受), 즉 촉(觸)이 있으므로 수(受)가 있다는 것은 촉(觸)의 그릇된 상태가 있기 때문에 수(受)의 그릇된 상태가 생겨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현행하는 인식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가 있기 때문에 그릇된 상태의 고수 · 낙수 · 불고불락수의 3수(三受)가 생겨난다는 것을 말한다. 그릇된 상태의 3수는 전도된 상태의 3수를 말하는 것으로 고라고 느껴야 할 대상을 낙 또는 불고불락의 대상이라 여기고, 낙이라고 느껴야 할 대상을 고 또는 불고불락의 대상이라 느끼고, 불고불락이라고 느껴야 할 대상을 고 또는 낙의 대상이라 느끼는 것을 말한다.
촉연수(觸緣受) 또는 연촉수(緣觸受)는 또한 이미 발생한 수(受)의 그릇된 상태 즉 전도된 3수가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촉(觸)의 그릇된 상태 즉 '그릇된 상태의 3사화합', 즉 현행하는 인식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 즉 그릇된 상태의 안촉 · 이촉 · 비촉 · 설촉 · 신촉 · 의촉의 하나 혹은 다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한편,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교학에서 수(受) 즉 3수(三受)는 더욱 세밀하게 탐구되어 심수 · 신수의 2수(二受), 낙수 · 고수 · 희수 · 우수 · 사수의 5수(五受) 또는 5수근(五受根) 등의 여러 가지 분류로 재분류되어 불교의 번뇌론과 수행론과의 관련하에 논의되고 있다. 예를 들어 5수 가운데 낙수와 희수는 색계의 제3정려인 이희묘락지(離喜妙樂地)와 관련되어 논의되고 있다. '이희묘락지'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희수[喜]를 떠나고 묘한 낙수[樂]가 있는 장소'이다.
"이희묘락지(離喜妙樂地). 제2선천의 기쁨을 떠남으로써 묘한 즐거움을 느끼는 색계 제3선천(第三禪天)의 경지."
"이희묘락지(離喜妙樂地). 색계 제3선천. 2선(禪)의 희락을 여의고 마음이 안정되어 묘한 즐거움이 있는 곳."
또한 제4정려인 사념청정지(捨念淸淨地)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염(念)을 버린 청정한 장소'인데 '염을 버린 상태[捨念]'는 3수 또는 5수 가운데 사수(捨受)를 뜻한다.
"사념청정지(捨念淸淨地). 마음이 평온하여 생각이 청정한 색계 제4선천(第四禪天)의 경지."
"사념청정지(捨念淸淨地). 색계 제4선천. 앞의 즐거움을 여의고 청정 평등한 사수(捨受)의 생각에 안주하는 곳."
《연기경》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수(受)는 낙수(樂受) · 고수(苦受) ·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의 3수(三受)를 뜻한다.[97][98]
"촉은 수(受)의 연이 된다는 것에서, 무엇이 수인가.
수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즐거움의 느낌[樂受]ㆍ괴로움의 느낌[苦受)ㆍ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不苦不樂受]을 말한다. 이것을 수라고 한다."
현대의 해석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수(受)는 6입과 명색과 식의 접촉 위에서 생기는 고락 등의 감수작용이다.
(8) 애(愛) (산스크리트어: तण्हा tṛṣṇā, 팔리어: taṇhā, 영어: craving, desire, thirst)는 수연애(受緣愛)와 애연취(愛緣取)의 연기관계에서 한 지분을 이루고 있는데, 수연애는 연수애(緣受愛)라고도 하며 애연취는 연애취(緣愛取)라고도 한다. 수연애 또는 연수애는 수(受)가 있으므로 애(愛)가 있다는 뜻이고, 애연취 또는 연애취는 애(愛)가 있으므로 취(取)가 있다는 뜻이며, 또한 이들은 모두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되는 것을 뜻한다.
괴로움을 피하고 항상 즐거움을 추구하는 근본 욕망이다. 갈애라고도 번역하며, 목마른 자가 물을 찾는 것과 같은 심한 욕구를 가리킨다. 인식에 의해 고락 등의 감수가 생기면 괴로움을 주는 사람이나 물체에 대해서는 미워하고 피하려는 강한 욕구를 낳게 되고,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나 물체에 대해서는 이를 구애(求愛)하려는 강한 열망을 낳는다. 이와 같이 강한 욕구와 열망이 애이다.
《잡아함경》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애(愛)는 욕애(欲愛) · 색애(色愛) · 무색애(無色愛)의 3애(三愛)를 말한다.
"느낌을 인연하여 애욕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애욕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3애(愛)이니, 욕애(欲愛)·색애(色愛)·무색애(無色愛)이니라."
애(愛)는 애착(愛著) · 탐(貪) 또는 집착(執著)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대상에 대한 그릇된 좋아함[欲]을 말하는 것으로 특히 그 대상에 들러붙러 떠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애(愛)의 한자어 문자 그대로의 뜻에는 사랑이라는 뜻이 있으며 12연기설에서 말하는 애(愛)는 기독교 등에서 말하는 사랑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기독교 등에서 말하는 사랑은 불교의 자비(慈悲)에 해당한다.
그리고 불교에서도 애(愛)라는 낱말이 이러한 사랑 또는 자비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愛(애): (1) 애지(愛支). 『구사론』에서는 남녀 16~17세 이후에 애욕이 생기기 시작하나 아직 음욕을 만족함에 이르지 못한 때, 『성유식론(成唯識論)』에서는 다음 생을 받을 인연이 될 탐번뇌(貪煩惱)라 함. 모두 임종시에 일어나는 탐애(貪愛). (2) 남녀의 성욕에 근거하여 서로 사랑하는 연애ㆍ처자애(妻子愛)ㆍ명리애(名利愛) 등. 좋지 못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염오애(染汚愛)라 함. (3) 불ㆍ보살 등이 중생을 구제하려는 것같이 아무 데도 치우치지 아니한 대자비심으로서 순전한 정에서 일어나는 사랑. 이것은 불염오애(不染汚愛). ⇒애지(愛支)"
"愛支(애지): 욕(欲)이라고도 번역. 갈애(渴愛)하는 뜻. 항상 만족함을 구하여 그치지 않는 능동성(能動性). ⇒애(愛)"
부파불교의 5위 75법과 대승불교의 5위 100법의 법체계에 따르면 12연기설의 애(愛) 즉 탐(貪)은 그 성질이 불선(不善)으로, 본질적으로 번뇌이다. 이에 비해 자비의 자(慈)는 무진(無瞋)의 마음작용의 본질적 성질이고, 둘 다 본질적으로 선(善)이다.
"어떤 것이 무진(無瞋)인가. 이는 진심(瞋心)을 대치하는 것이니, 자애로운 마음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무진선근(無瞋善根) 무엇을 성내지 않음[無瞋]이라고 하는가? 성냄을 다스리고 불쌍하게 여기는 것[慈]을 성질로 한다. 중생에 대해서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업은 무탐에서 말한 것과 같다."
"무진(無瞋) 심소는 모든 유정에 대하여 마음에서 훼손하려는 것이 없고 사랑하고 연민히 여기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성냄의 장애를 끊음을 업으로 삼고,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무진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무진의 선근”이라고 말한 바와 같다.
"무진(無瞋, adveṣa) 심소는 성내는 마음을 없애는 능력의 심리작용이다."
비(悲)는 불해(不害)의 마음작용의 본질적 성질로서,
"어떤 것이 불해(不害)인가. 이는 해(害)를 대치하는 것이니, 연민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무엇을 해치지 않음[不害]이라고 하는가?
해침을 다스리고, 중생을 슬퍼함[悲]을 성질로 한다. 중생을 슬퍼하기 때문에 여러 중생들을 해치지 않으니, 이것은 성내지 않음에 속하는 부분이다. 괴롭히지 않음을 업으로 삼는다."
"불해(不害) 심소는 온갖 유정을 괴롭히거나 해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유정을 슬퍼하고 측은하게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해(害)의 장애를 끊음을 업으로 삼고,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불해를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불해로 인하여 그 밝고 지혜로움을 알고..... (나아가 자세히 말함)”라고 말한 바와 같다.
"불해(不害, ahiṁsā) 심소는 남에게 해(害)를 끼치지 않는 심리작용이다. 모든 유정에 대해서 손해와 괴로움을 주지 않는 무진(無瞋) 심소를 체성으로 삼고, 해롭게 함을 다스리고 연민히 여겨 고통을 없애주고자 함을 업으로 삼는다."
불교에서는 탐(貪)으로서의 애(愛: 갈애, 애착, 집착)는 증(憎: 증오, 미워함)과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다고 본다. 즉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애(愛: 갈애, 애착, 집착)가 증(憎: 증오, 미워함)을 낳기도 하며 반대로 증(憎: 증오, 미워함)이 애(愛: 갈애, 애착, 집착)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자비 또는 사랑으로서의 애(愛)에는 이러한 면이 없다.
그리고 12연기설의 12지 가운데 제1지분인 무명(無明)과 제8지분인 애(愛)와 제9지분인 취(取)는 선 · 불선 · 무기의 3성에 따라 살펴보면 그 성질이 본질적으로 불선 또는 번뇌이다. 이에 비해 나머지 지분들은 그 성질이 무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머지 지분들은 선이 될 수도 있고 불선이 될 수도 있다. 즉 바른 상태에 있을 수도 있고 그릇된 상태에 있을 수도 있다. 즉 청정한 상태에 있을 수도 있고 오염된 상태에 있을 수도 있다. 12연기의 유전연기는 이들 지분들이 그릇된 상태로 되는 것에 대해 특히 다루고 있는 것이며, 반면 12연기의 환멸연기는 이들 지분들이 바른 상태로 되는 것에 대해 특히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무명(無明) · 애(愛) · 취(取)는 그 성질이 본질적으로 불선 즉 악이기 때문에 이들이 바른 상태로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다만 이들을 끊음으로써 더 이상 마음이 이들과 계합하지 않는 상태가 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환멸연기에서 이들 3가지 지분은 변형[轉依]의 대상이 아니라 단멸(斷滅) 즉 원리(遠離: 멀리 떠남)의 대상이다.
"[아비달마불교의 교학에 따르면] 모든 번뇌는 실유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 자체를 소멸할 수는 없다. 물론 그것은 유위법이기 때문에 찰나찰나 생겨나는 순간 소멸하지만(無常滅), 이것은 열반을 의미하는 번뇌의 단멸이 아니다. 왜냐하면 소멸하는 순간 동류의 또 다른 번뇌가 상속함으로써 우리들 경험상에 '번뇌'라고 하는 지속된 심리현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번뇌를 끊는다' '번뇌를 끊어라'고 말하지 '번뇌를 소멸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번뇌를 끊는다'고 함은, 마음이 더 이상 번뇌의 온갖 心所와 동시생기(俱生)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더 이상 마음의 상속상에 획득되지 않게 될 때, '번뇌가 단멸(斷滅)되었다'고 한다.
이 때 전자의 수행도를 무간도(無間道)라 하고, 후자의 수행도를 해탈도(解脫道)라고 한다. 예컨대 전자가 도둑을 잡아 문 밖으로 쫓아내는 것이라면 후자는 그것을 확인하고 문을 닫아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불교의 궁극적 지향점인 적정안온의 열반은 바로 이 같은 번뇌의 단멸에서 증득되는 것으로, 그것은 오로지 더 이상 번뇌를 수반하는 일이 없는 지혜의 힘, 무루 간택력(簡擇力)에 의해 가능하기 때문에 '택멸'이라고도 한다.
온갖 번뇌를 비롯한 모든 존재(諸法)의 참다운 관찰만이 중생을 열반으로 이끌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아비달마의 목적이었다. 아비달마 논사들은 오로지 4제에 대한 통찰과 무루 간택력에 따른 예지만이 그들을 번뇌 단멸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이유에서 그들은 번뇌의 단멸을 변지(遍知)라고 하였다.
변지(parijna, 구역 永斷)는 말 뜻대로라면 바로 4제의 진리성에 대해 두루 아는 것이지만, 그 결과 번뇌가 영원히 끊어지기 때문에 번뇌의 단멸을 '변지'라고 일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열반이 그러하듯이 번뇌의 단멸이라는 측면에서 98수면 각각의 끊어짐을 변지라고 할 수 있겠지만, 견소단의 경우 이계(離繫)의 득(得)을 증득하고, 3계 9지의 최후인 비상비비상처 즉 유정지(有頂地)의 5부의 번뇌를 완전히 끊었으며, 자부(自部) · 자품(自品)의 동류인과 타부(他部) · 타품(他品)의 변행인이 되는 번뇌를 멸하였을 때에만, 수소단의 경우 이와 함께 욕·색·무색계의 번뇌를 모두 끊어 그것을 초월한 때에만 변지라고 한다."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나오는 욕애(欲愛) · 색애(色愛) · 무색애(無色愛)는 다음을 뜻한다.
*욕애(欲愛): 욕계의 애, 욕계의 법 즉 욕계의 사물을 애착하여 그 결과 그것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것, 욕계를 떠나지 못하는 것
*색애(色愛): 색계의 애, 색계의 법 즉 색계의 사물을 애착하여 그 결과 그것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것, 색계를 떠나지 못하는 것
*무색애(無色愛): 무색계의 애, 무색계의 법 즉 무색계의 사물을 애착하여 그 결과 그것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것, 무색계를 떠나지 못하는 것
*수연애(受緣愛) 또는 연수애(緣受愛), 즉 수(受)가 있으므로 애(愛)가 있다는 것은 수(受)의 그릇된 상태가 있기 때문에 번뇌 또는 불선인 애(愛)가 생겨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3계의 사물들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상태가 전도된 三受로부터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
수연애(受緣愛) 또는 연수애(緣受愛)는 또한 이미 발생한 애(愛) 즉 3계의 어떤 사물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상태가 있다면,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3계의 각각을 떠나지 못하는 상태가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수(受)의 그릇된 상태 즉 전도된 고수 · 낙수 · 불고불락수의 하나 혹은 다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연기경》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애(愛)는 욕애(欲愛) · 색애(色愛) · 무색애(無色愛)의 3애(三愛)를 뜻한다.
"수는 애(愛)의 연이 된다는 것에서, 무엇이 애인가.
애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욕애(欲愛)ㆍ색애(色愛)ㆍ무색애(無色愛)를 말한다. 이것을 애라고 한다."
현대의 해석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애(愛)는 갈애(渴愛)라고 하여 맹목적인 애념(愛念)을 말한다. 고락 등의 감수작용이 강하면 그만큼 애증(愛憎)의 염(念)도 강해진다. 즉, 쾌락이 크면 그 쾌락을 가지려는 염이 강해지고, 고통이 크면 그 고통을 피하려는 염이 강해진다.
'화엄경 원문과 해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6 십지품(十地品) 현전지 (現前地) 3 (0) | 2022.01.05 |
---|---|
26 십지품(十地品) 현전지 (現前地) 2 (0) | 2022.01.04 |
26 십지품(十地品) 현전지 (現前地) 1 (0) | 2022.01.01 |
26 십지품(十地品) 난승지 (難勝地) 5 (0) | 2021.12.31 |
26 십지품(十地品) 난승지 (難勝地) 4 (0) | 2021.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