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經卷第三十四 十迴向品第二十六之一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26. 십지품(十地品) ① ㅡ 5

 

ㅡ방광(放光)으로 청법(請法)을하다.

爾時(이시) 世尊(세존) 從眉間(종미간) 出淸淨光明(출청정광명) 名菩薩力焰明(명보살력염명)

百千阿僧祗光明(백천아승지광명) 以爲眷屬(이위권속) 普照十方一切世界(보조시방일체세계)

靡不周遍(미불주변) 三惡道苦(삼악도고) 皆得休息(개득휴식) 
又照一切如來衆會(우조일체여래중회) 顯現諸佛不思議力(현현제불불사의력)

又照十方一切世界(우조시방일체세계) 一切諸佛所加說法菩薩之身(일체제불소가설법보살지신) 
作是事已(작시사이) 於上虛空中(어상허공중) 成大光明雲網臺而住(성대광명운망대이주)

그때 세존(世尊)께서 미간(眉間)으로부터 청정한 광명(光明)을 놓으셨으니,

그 광명의 이름은 보살력염명(菩薩力焰明, 보살의 힘에서 타오르는 밝은 광명)이었으며,

수 많은 아승지(阿僧祗)의 광명이 권속(眷屬)이 되어 함께하고 있었다.
그 광명은 시방(十方)의 모든 세계를 두루 비추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으며, 

그 광명이 비추이자 지옥·아귀·축생의 삼악도(三惡道)의 괴로움이 모두 잠시 멈추었으며, 
또한 모든 여래의 법회의 중회(衆會)를 비추어 모든 부처님의 불사의(不思議)의 힘(力)을 드러내었으며,

또한 시방의 일체 세계에서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 설법하는 보살들의 몸도 비추었다.
이러한 일들을 마친 뒤,
허공 중에 커다란 광명의 구름이 마치 그물과 같이 펼쳐지면서 이루어진,

대광명운망(大光明雲網)의 대(臺)를 이루어서 머물렀다.

ㅡ薩力焰明(보살력염명): ‘보살의 힘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과 같이 밝은 광명’이라는 뜻으로,

보살의 수행과 위신력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ㅡ'모든 세계를 두루 비추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은, 광명은 부처님의 지혜를 뜻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온 세계에 미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시방세계를 다 밝히는 것이 불교이고ㆍ부처님이시고ㆍ부처님의 광명, 즉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ㅡ광명의 명호(名號)는 보살력염명(菩薩力焰明), 권속(眷屬)은 백청아승지광명(百千阿僧祗光明) 
하는 일은 보조시방일체세계(普照十方一切世界), 삼악도(三惡道)의 고통을 모두 쉬게하고,

일체여래의 대중들을 환하게 비춰서 모든 부처님의 불가의한 힘을 나타내는 등 

 

時(시) 十方諸佛(시방제불) 悉亦如是(실역여시) 從眉間(종미간) 出淸淨光明(출청정광명)

其光(기광) 名號眷屬作業(명호권속작업) 悉同於此(실동어차) 
又亦照此娑婆世界佛及大衆(우역조차사바세계불급대중) 幷金剛藏菩薩身(병금강장보살신)

師子座已(사자좌이) 於上虛空中(어상허공중) 成大光明雲網臺(성대광명운망대)

時(시) 光臺中(광대중) 以諸佛威神力故(이제불위신력고) 而說頌言(이설송언) 

그때,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이와 같이 미간에서 청정한 광명을 내셨으니, 그 광명의 이름과 권속,

그리고 광명이 행하는 작용도 모두 이와 같았다.

또한 그 광명은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의 부처님과 대중과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의 몸과 사자좌(師子座)를 비추었으며,

그런 뒤에 위쪽 허공에 커다란 광명의 구름 그물로 이루어진 대광명운망(大光明雲網)의 대(臺)를 나타내었으니, 

그때 그 광명의 대(臺) 안에서 모든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으로 인하여 게송이 울려 나왔다.

ㅡ娑婆世界(사바세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로서, 인내하며 살아가야 하는 세계라는 뜻도 있습니다.

ㅡ師子座(사자좌): 부처님이나 높은 법을 설하는 이가 앉는 위엄 있는 자리.

이 장면은 금강장보살이 설하려는 십지의 가르침이 한 세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함께 증명하고 지지하는 보편적인 법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佛無等等如虛空(불무등등여허공) 十力無量勝功德(십력무량승공덕)

부처님께서는 견줄 이가 없는 무등등(無等等)하신 분이시며

마치 허공과 같이 광대하시고, 십력(十力)을 비롯한 헤아릴 수 없이 뛰어난 승공덕(勝功德)을 갖추셨습니다.

ㅡ허공의 비유는 부처님의 지혜와 덕이 한정된 범위에 제한되지 않음을 나타냅니다.

 

人間最勝世中上(인간최승세중상) 釋師子法加於彼(석사자법가어피) 

부처님께서는 인간 가운데에서 최승(最勝)으로 가장 뛰어나시며, 세상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시니,

석사자(釋師子,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으로 저들(금강장 보살등)을 가피하시는도다.

 

佛子當承諸佛力(불자당승제불력) 開此法王最勝藏(개차법왕최승장)

불자여, 마땅히 모든 부처님의 불력(佛力)에 의지하시어

이 법왕(法王, 진리의 왕, 부처님)의 가장 뛰어난 보배 창고의 최승장(最勝藏, 십의 가르침)을 열어주소서!

 

諸地廣智勝妙行(제지광지승묘행) 以佛威神分別說(이불위신분별설) 

여러 지위의 제지(諸地)에 걸친 광대한 지혜와 뛰어나고 미묘한 광지승묘행(廣智勝妙行, 십지행)을

부처님의 위신력(佛威神)에 의지하여 단계의 의미와 특징을 분명하게 나누어 설하여 주소서!

ㅡ‘분별하여 설한다’는 것은 각 단계의 의미와 특징을 명료하게 밝혀 준다는 뜻.

 

若爲善逝力所加(약위선서력소가) 當得法寶入其心(당득법보입기심)

만약 선서(善逝)의 힘을 입는다면, 마땅히 법보(法寶)가 그 마음속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지하여 가르침을 듣고 받아들이면,

법의 보배가 단순한 외부 지식으로 머물지 않고 마음속에 깊이 자리할 것입니다.)

ㅡ부처님의 위신력과 금강장보살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신력으로 법을 설한다면

그 법보가 우리들 마음에 전부 들어가서 자리할 것입니다.

 

諸地無垢次第滿(제지무구차제만) 亦具如來十種力(역구여래십종력) 

제지(諸地)가 티 없이 무구(無垢)하여져서 차례로 원만하여지고,

또한 여래의 십종력(十種力, 십력) 역시도 갖추게 될 것입니다.

ㅡ보살의 수행은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차례로 성숙하는 것으로,

각 지위에서 번뇌와 무지가 점차 정화되고 지혜가 깊어져서 마침내 부처님의 지혜와 능력을 성취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雖住海水劫火中(수주해수겁화중) 堪受此法必得聞(감수차법필득문)

비록 바닷물 속이나 겁화(劫火) 가운데 머물게 될지라도,

이 법을 감수(堪受)하여 받아들여서 감당할 만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듣게 될 것입니다.

ㅡ劫火(겁화): 세계가 파괴될 때 일어나는 거대한 불.

ㅡ어떠한 어려움과 장애가 있어도 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은 결국 그 가르침을 듣고 이해할 인연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其有生疑不信者(기유생의불신자) 永不得聞如是義(영부득문여시의) 

그러나 만약 어떤 사람이 의심을 일으켜 불신(不信)한다면, 이와 같은 깊은 뜻을 영원히 듣지 못할 것입니다.

ㅡ앞에서 금강장보살은 가르침을 잘못 이해하는 이들이 의심에 빠질 것을 염려한 것과 같이, 이 게송은 깊은 가르침을 받아들이려면 열린 마음과 신뢰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應說諸地勝智道(응설제지승지도) 入住展轉次修習(입주전전차수습)

從行境界法智生(종행경계법지생) 利益一切衆生故(이익일체중생고) 

마땅히 제지(諸地)에 이르는 뛰어난 지혜의 길인 승지도(勝智道)을 설하시고,

각 지위에 들어가 머물며, 차례차례 전전(展轉)하여 다음 단계로 나아가 수습(修習)하는 수행절차의  

행경계(行境界, 수행의 경계)를 따라 법에 대한 지혜의 법지(法智)가 생겨나는 것을 설해야 하는 것은,

이는 일체의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ㅡ보살의 수행은 각 단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한 지위에 들어가 그 수행을 익히고 성숙시킨 뒤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고, 수행을 통해 깊어진 지혜는 개인의 깨달음에만 머무르지 않고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는 데 쓰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ㅡ설법을 허락하다.

爾時(이시) 金剛藏菩薩(금강장보살) 觀察十方(관찰시방) 欲令大衆(욕령대중)

增淨信故(증정신고) 而說頌曰(이설송왈).

그때,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이 시방(十方)을 두루 살펴보시고,

대중의 청정한 믿음의 정신(淨信)을 더욱 깊게 하고자 게송으로 설하셨다.

 

如來大仙道(여래대선도) 微妙難可知(미묘난가지) 非念離諸念(비념이제념) 求見不可得(구견불가득) 

여래의 위대하고 성스러운 대선도(大仙道)는 미묘하여 알기 어려운 난가지(難可知)라.

그것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닌 비념(非念)이요,

일체의 분별을 떠난 이제념(離諸念)의 것이니, 

그러므로 그것을 찾아 보고자 구하여도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로다.

ㅡ離諸念(이제념): 모든 분별적 생각을 떠난 것으로, 생각을 억지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 붙잡히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無生亦無滅(무생역무멸) 性淨恒寂然(성정항적연) 離垢聰慧人(이구총혜인) 彼智所行處(피지소행처) 

(10지의 이치, 즉 모든 존재의 실상은) 생겨남도 없는 무생(無生)이요,

또한 소멸함도 없는 무멸(無滅)이나, 그 본성(性)은 청정하고 언제나 적정한 항적연(恒寂然)이시니,

이는 번뇌의 때를 벗어난 이구(離垢)의 총명하고 지혜로운 총혜인(聰慧人)이 지혜로 나아가는 소행처(所行處)로다.  

 

自性本空寂(자성본공적) 無二亦無盡(무이역무진) 解脫於諸趣(해탈어제취) 涅槃平等住(열반평등주) 

자성(自性)은 본래 공적(空寂)한 것으로, 둘로 나뉘지 않는 무이(無二)요,

다함 역시도 없는 무진(無盡)이라.

제취(諸趣, 육도)에서 벗어나 해탈(解脫), 열반(涅槃)의 평등한 경지에 머무는도다.

ㅡ自性本空寂(자성본공적): 모든 법의 본성은 고정되고 독립적인 실체가 없이 공하며 고요하다는 뜻.

 

非初非中後(비초비중후) 非言辭所說(비언사소설) 出過於三世(출과어삼세) 其相如虛空(기상여허공) 

비초(非初)라서 처음도 아니요, 비중(非中)이라서 중간도 아니요, 비후(非後)로서 나중도 아닌 것이니, 

언사(言辭)로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과거·현재·미래의 삼세(三世)를 초월한 것으로, 그 모습과 성품(其相)은 마치 허공과 같은 것입니다.

ㅡ과거ㆍ현재ㆍ미래라고 하는 시간성도 초월한 것이요, 
기상(其相, 그 모양)이 허공과 같다는 것은 공간성도 초월했다는 뜻입니다. 

 

寂滅佛所行(적멸불소행) 言說莫能及(언설막능급) 地行亦如是(지행역여시) 難說難可受(난설난가수) 

적멸(寂滅)은 부처님께서 몸소 행하시는 불소행(佛所行)이라,

언설막능급(言說莫能及)하여, 언설로는 그 경지을 온전히 설하여 미칠 수 없는 것이요,

보살의 여러 지위에서 행하는 수행의 지행(地行)도 이와 같아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난설(難說)이요, 받아들여 이해하기도 어려운 난가수(難可受)로다.

 

智起佛境界(지기불경계) 非念離心道(비념이심도) 非蘊界處門(비온계처문) 智知意不及(지지의불급) 

부처님의 불경계(佛境界)로 일으킨 지(智, 지혜)는, 생각할 바가 아닌 비념(非念)이요, 

마음의 작용이 미칠 수 없는 이심도(離心道)요,

온(蘊, 오온) · 계(界, 18계) · 처(處, 12처)의 문(門)도 아니라서 인식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으로,

지혜로는 알 수 있지만, 의(意, 뜻)으로는 미칠 수 없는 것이로다.

ㅡ蘊界= 오온(五蘊)·십팔계(十八界)·십이처(十二處) 

五蘊(오온): 색(色) · 수(受) · 상(想) · 행(行) · 식(識)
十八界(십팔계): 육근(六根)·육경(六境)·육식(六識)
十二處(십이처): 육근(六根)과 육경(六境)

ㅡ심도(心道), 마음의 도는 근본 진여불성을 말하는 것이 아닌, 심의식(心意識)의 심도(心道)로서,
즉 심도(心道)를 떠났다는 것은 심의식(心意識)을 떠났다는 뜻.

如空中鳥跡(여공중조적) 難說難可示(난설난가시) 如是十地義(여시십지의) 心意不能了(심의불능료) 

허공을 나는 새의 발자취의 조적(鳥跡)를 말로 설명하거나 보여 주기가 어려운 것과 같이,

이와 같은 십지의(十地義)도 보통의 마음과 생각의 심경(心意, 심의식 心意識)으로는 깨달아 알 수 없는 것이라.

 

慈悲及願力(자비급원력) 出生入地行(출생입지행) 次第圓滿心(차제원만심) 智行非慮境(지행비려경)

 

자비(慈悲)와 원력(願力)을 바탕으로

(허공을 나는 새의 발자취와 같은 단계들을 이해하기 어렵고 들어가기 어려우니, 자비와 원력을 바탕으로 하여서) 

보살의 십지행(十地行)에 들어가며,

차제(次第, 차례)대로 마음을 원만하게 성숙시켜 나아가는 것이니,

(차례대로 수행하여 마음을 원만하게 하여서 나아가는 것이니)

이러한 지혜 수행의 지행(智行)은 보통의 생각과 사유로 헤아릴 수 있는 경계(境)가 아닌 비려경(非慮境)이로다.

ㅡ지행(智行)은 생각의 경계, 즉 의식의 경계가 아니고 심의식의 경계가 아니다.
보통 사람의 한계는 심의식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선가에서는
懸崖撒手丈夫兒(현애살수장부아)라. 높은 벼랑에 가지를 잡고 매달려서 안 떨어질려고 발버둥 치는것과 같은 한계가 심의식의 경계인데, 거기서 그 가지를 놓아버려야 됩니다. 놓아버리면 그동안의 모든 지행(智行)은 심의식의 삶은 다 부서져, 없어져 버려서 그 심의식의 경계를 초탈하게 됩니다.
그러면 비로소 여기 10지에서 밝히고자 하는 모양도 없고 흔적도 없는 이치를 이해할 수 있는 智行이요 非慮境입니다.ㅡ무비스님

是境界難見(시경계난견) 可知不可說(가지불가설) 佛力故開演(불력고개연) 汝等應敬受(여등응경수) 

이러한 경계(境界)는 깊고 미묘하여 쉽게 알아보기 어려운 난견(難見)이나,

지혜로 깨달아 알 수는 있지만, 말로 그 뜻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는 불가설(不可說)이로다.

그러나 부처님의 위신력(佛力)에 의지하여 그 가르침을 개연(開演)하여 펼쳐 보이고자 하나니,

그대들은 마땅히 공경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시라.

 

如是智入行(여시지입행) 億劫說不盡(억겁설부진) 我今但略說(아금단략설) 眞實義無餘(진실의무여)

이와 같이 지혜로 들어가는 수행의 지입행(智入行)과

그 깊은 뜻은 억겁(億劫)이라는 긴 세월 동안 설명한다 할지라도 다할 수 없는 설부진(說不盡)이라.

그러나 나는 지금 그 가운데 일부를 간략하게나마 약설(略說)하겠지만,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참된 뜻의 진실의(眞實義)를 남김없이 밝히겠노라.

 

一心恭敬待(일심공경대) 我承佛力說(아승불력설) 勝法微妙音(승법미묘음) 譬喩字相應(비유자상응)

모두 일심(一心)으로 공경하며 기다리도록 하시라.

나는 부처님의 불력(佛力)을 받들어 그 가르침을 

가장 수승한 가르침의 승법(勝法)을 미묘음(微妙音)으로

비유(譬喩)와 내용(字)어 서로 상응(相應)하도록 그 깊은 뜻을 드러내어 설하리라.

(비유와 그 비유를 표현하는 자상응(字相應)하여서, 서로 잘 맞아 떨어지게 설하리라.)

 

無量佛神力(무량불신력) 咸來入我身(함래입아신) 此處難宣示(차처난선시) 我今說少分(아금설소분) 

무량하 부처님의 신통한 불신력(佛神力) 모두가 나의 몸에 들어왔으니,

차처(此處, 그러한 이치)는 말로 드러내어 설명하기 어렵지만,

나는 이제 그 가운데 소분(少分, 일부)을 설하리라.

 

ㅡ여래와 보살이 설함을 청함에 있어서의 4 가지.

첫째 여래가 광명을 놓으니 광대(光臺)가 설함을 권한 것,

둘째 해탈월이 세 번 청한 것이며,

셋째 모든 보살들이 모두 함께 청한 것이며,

넷째 모든 부처님들이 전체에 광명을 놓아서 설함을 권하는 것으로  

총체적으로는 여섯 가지의 가지(加持)와 네 가지 사청(四請)과 두 가지의 권하는 이권(二勸)이 있다.

 

ㅡ화엄경의 각 품은 독립된 경전으로 유통되다가 후에 화엄경으로 집성되었는데,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국에서 4세기경 집대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각 품에서 가장 일찍 성립된 것은 십지품(十地品)으로, 그 연대는 AD50~150년경이라고 한다.  

산스크리트 원본이 남아 있는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이다.

십지품은 십지경(十地經)ㆍ십왕경(十住經)의 이름으로 독립된 경전으로 전해 지고 있으며,

십지경은 중관철학을 확립한 용수보살 이전에 이미 성립된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인도에서 대승불교 운동이 일어 났으며 십지경은 그때에 성립된 것으로 보고 있어서,

대승불교의 초기경전이라 할 수 있다 
 

신화엄경론;

어째서 그 명칭을 십지품이라 했는가? 여래의 보광명지(寶光明智)로 지(地)의 체(體)를 성취함을 밝힌 것이니,

가령 경문에서 “이 같은 보살이 이미 여래의 보광명지를 밟았다”는 것은 바로 대원경지(大圓鏡智)가 이에 해당된다.

즉 설한 바의 4지(四智)와 일체종지(一切種智)와 일체지(一切智)의 차별이 이 지혜를 체(體)로 삼음으로써 모든 보살이 비록 10주10행10회향에 오르더라도 이 체를 여의지 않는 것이며, 도력(道力)이 충분하지 않으면 다시 10바라밀을 통해 10重(종)으로 닦아 나가서 그 도력을 원만케 하는 것을 10지라 정하는 것이며, 하나의 바라밀 속에 스스로 10법을 갖추는 것을 10지라 칭하는 것이며,

다시 10바라밀을 통하여 10중(重)으로 닦아 나아가서 그 도력을 원만케 하는 것을 10지라 하는 것이며,
또 하나의 바라밀에 스스로 10법을 갖추고 있는 것을 10지라 칭하는 것이며,
십십(十十) 속에 백(百)을 갖추어서, 백(百)이 십(十)으로 옮겨가지 않기 때문에 10지라 칭하는 것이며,
나아가 십백(十百)과 십천(十千)과 십만(十萬)과 십십만(十十萬)과 십억(十億)과 나아가 십불가설(十不可說)에 이르기까지의 십수(十數)가 일다(一多, 하나와 많음)의 무진함을 내포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10지라 말하는 것이다.
ㅡ이통현(李通玄)장자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25. 십회향품(十廻向品) ②ㅡ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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