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廻向(회향)의 果位(과위)

菩薩摩訶薩이 住此廻向에 得十種無盡藏하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得見佛無盡藏이니 於一毛孔에 見阿僧祗諸佛이 出興世故며 得入法無盡藏이니 

以佛智力으로 觀一切法이 悉入一法故며 得憶持無盡藏이니 

受持一切佛所說法하야 無忘失故며 得決定慧無盡藏이니

善知一切佛所說法秘密方便故며 得解義趣無盡藏이니 善知諸法理趣分齊故며 得無邊悟解無盡藏이니 

以如虛空智로 通達三世一切法故며 得福德無盡藏이니 充滿一切諸衆生意하야 不可盡故며 得勇猛智覺無盡藏이니 

悉能除滅一切衆生의 愚癡翳故며 得決定辯才無盡藏이니 

演說一切佛平等法하야 令諸衆生으로 悉解了故며 得十力無畏無盡藏이니 具

足一切菩薩所行하야 以離垢繒으로 而繫其頂하야 至無障碍一切智故라

是爲十이니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一切善根廻向時에 得此十種無盡藏이니라

 

[廻向의 果位= 第五無盡功德藏廻向을 수행하게 되면 오르게 되는 열 가지의 과위.] 

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은 住此廻向(주차회향)에이 회향(무진공덕장 회향)에 머물러 

得十種無盡藏(득십종무진장)하나니, 열 가지 무진장을 얻게 되는데,

何等(하등)이 爲十(위십)고? 무엇이 그 열 가지인가 하면,

所謂得見佛無盡藏(소위득견불무진장)이다 소위 부처님 뵙는 무진장을 얻는 것이니 

[절에 있는 부처님만 부처님인 줄 알았는데, 신심을 자꾸 증장시키다 보면 가는 곳마다 부처님이 눈에 들어옵니다. 불상만 부처님도, 역사적인 부처님도, 우주에 변만해 있는 佛身充滿於法界의 법신불도 이해가 되는, 見佛無盡藏이고,

그리고 두두 물물이 청정법신바로지불이라는 데까지 눈을 뜨게 되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것이 견불무진장에서 얻는 것입니다.]

於一毛孔(어일모공)에, 하나의 모공에서  阿僧祗諸佛(견아승지제불)이, 아승지의 부처님이

出興世故(출흥세고)며세상에 출흥하심을 見= 보기 때문이요

[부처님이 깨달으신 법의 세계에 들어가는 무진장을 얻음이니,]

[곳곳에 산천초목이 부처님이라는 것을 넘어서, 한 모공ㆍ모공마다 阿僧祗諸佛이 세상에 출현하신 것을 보게 되는 그것이 見佛無盡藏입니다. 그야말로 부처님을 무진장 보는 것이 우리의 지혜가 여기까지 계합하기는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만, 언젠가 이것도 가능한 일입니다.]

[於一毛孔 見阿僧祗諸佛 出興世故는 것은 마음의 성품이 본래 없고 크고 작다는 계교가 소진함으로써 몸이 지혜의 그림자가 되고 국토도 또한 마찬가지인데, 지혜가 청정하매 그림자가 밝아져서 大小가 서로 들어가는 것이 인다라망 경계의 비유와 같다는 것이 이에 해당됨을 밝힌 것이다.]

得入法無盡藏이다 법에 들어가는 무진장을 얻는 것이니 

以佛智力(이불지력)으로부처님의 지혜력으로 [佛智力= 깨달음의 지혜의 힘]

觀一切法(관일체법)이 悉入一法故(실입일법고)며, 일체의 법이 한 법에 다 들어가는 것을 관찰하기 때문이며,

[일체법이 한 법속에 다 들어있다는 뜻입니다. 

한 방울의 바닷물 맛을 보면 온 드넓은 바닷물 맛을 다 안다는 것이지요.  

그와 같이 이치에 밝은 사람들은 인생사ㆍ세상사 그냥 앉아서 환하게 다 압니다.

왜냐? 이치는 하나니까요. 그래서 일체법이 한 법에 들어감을 본다는 것입니다.]  

[“부처의 智力으로 일체법이 一法에 들어감을 관한다”고 설한 것은 萬境(온갖 경계) 비록 많긴 하지만 모두 一心으로 일어나는 것이니, 마음이 없어지면 경계도 소멸하여 만경이 비어버리는 것이 마치 깨끗한 속의 온갖 그림자 같아서 물이 없어지면 그림자도 소멸함을 밝힌 것이다. 이것은 有를 타파해서 無를 성취한다는 설을 기준으로 것이며, 경계로써 지혜의 生起를 기준으로 것이라서 지혜가 비어 있고 경계가 환상〔幻〕 같은 것이다. 그리하여 수많은 환상이 서로 들어가는 것이 하나의 虛를 여의지 않아서 幻이 虛와 다르지 않고 허가 환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환과 허가 둘이 아니라서 동일하든 다른 것이든 모두 비어 있는 것이니, 이는 지혜의 幻虛自在無碍門으로써 설함을 기준으로 것이다. 이는 모두가 법의 정황을 빌려서 설한 것인데, 실답게 아는 바는 오직 사념이 없는 자라야 지혜로 회통하는 것이며, 지혜로 회통한 자라야 비로소 있으면서도 참〔眞〕이라서 마음과 경계에 미혹함이 없으며, 이에 대원력으로 지혜를 따라 幻으로 낳음으로써 중생의 수효와 동등한 몸으로 응하는 대로 교화하기 때문에 명칭이 무진공덕장이다.]

得憶持無盡藏(득억지무진장)이니기억해 간직하는 무진장을 얻는 것이니 

受持一切佛所說法(수지일체불소설법)하야, 부처님 설하신 모든 법을 수지하여

無忘失故(무망실고)며, 잊지 않기 때문이며, [憶持無盡藏을 얻어서 無忘失하게 된다.]

 

得決定慧無盡藏(득결정혜무진장)이니, 결정지혜의 무진장을 얻는 것이니

[決定확실한, 분명한, 아주 결정적인 요지부동의 변할 수 없는 慧無盡藏을 얻어서,] 

善知一切佛所說法秘密方便故(선지일체불소설법비밀방편고)며, 부처님들이 설법하시는 비밀한 방편을 잘 알기 때문이며,

 

得解義趣(득해의취)無盡藏이니뜻과 취지를 이해하는 무진장을 얻는 것이니 [義趣= 이치를, 義趣를 아는 무진장이다.] 

善知諸法(선지제법)의 理趣分齊故(이취분제고), 모든 법의 이치와 취지와 분계= 한계를 善知= 잘 알기 때문이며,

[각 이치의 한계를 환하게 잘 알려면 각 의취를 이해하는 무진장을 얻어야 그것이 가능하다.]

 

得無邊悟解無盡藏(득무변오해무진장)이니, 끝없이 깨달아 이해하는 무진장을 얻는 것이니 

以如虛空智(이여허공지)로허공같은 지혜로 

通達三世一切法故(통달삼세일체법고)며삼세의 일체법에 통달하기 때문이며,

 

得福德無盡藏(득복덕무진장)이니, 복덕의 무진장을 얻는 것이니

充滿一切諸衆生意(충만일체제중생의)하야, 일체중생의 뜻을 다 충족시켜도 

不可盡故(불가진고)며다하지 않기 때문이며,

  

得勇猛智覺無盡藏(득용맹지각무진장)이니, 용맹한 지혜로 깨닫게 하는 무진장을 얻는 것이니 

悉能除滅一切衆生(실능제멸일체중생)의 愚癡翳(우치예)故며, 일체중생의 어리석음의 장막을 다 걷어 없애기 때문이며,

 

得決定辯才無盡藏(득결정변재무진장)이니, 결정변재의 무진장을 얻는 것이니

演說一切佛平等法(연설일체불평등법)하야, 모든 부처님들의 평등한 법을 연설하여

令諸衆生(영제중생)으로, 중생들이 悉解了故(실해료고)며다 알게 하기 때문이며,

[음식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음식을 담는 그릇도 중요합니다. 그릇을 잘 쓰면 그 음식의 가치보다 훨씬 빛나게 할 수가 있는 경우가 많듯이 辯才도 그런 역할을 합니다.] 

 

得十力無畏無盡藏(득십력무외무진장)이니, 십력과 무소외(4무소외)의 무진장을 얻는 것이니

[부처님을 10력 존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具足一切菩薩所行(구족일체보살소행)하야, 보살이 행할 바를 구족하여 

以離 垢繒(이리구증)으로때 벗은 비단띠를  而繫其頂(이계기정)하야이마에 묶고서 

[비단 띠를 이마에 두른다는 것은 부처님의 법을 물려받는 관정의식과 같은 것으로, 부처님의 법을 그대로 고스란히 물려받아서 실행하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至無障碍一切智故(지무장애일체지고)라. 장애없는 일체지에 도달하기 때문이라.

[無障碍= 장애 없는 일체지혜에 이르는 연고라. 일체지혜= 평등과 차별을 다 아는 지혜,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는 모든 존재의 차별한 내면은 평등한 것입니다. 여자도, 남자도, 승도, 속도 아닌, 그 평등한 실체, 그것이 진여불성임을 확인하는 것이 見性입니다. 見性을 넘어서 用性, 우리는 성품을 쓰고 있는, 그 양면을 다 아는 그런 지혜가 一切智입니다.]

 

是爲十이니이것이 그 열 가지이니  佛子야 불자들이여, 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以一切善根(일일체선근)으로 모든 선근으로 廻向時(회향시)에회향할 때 

得此十種無盡藏(득차십종무진장)이니라. 이 열 가지 무진장을 얻게 됩니다."

 

(16) 金剛幢菩薩(금강당보살)의 偈頌(게송)

    가. 廻向(회향)할 善根(선근)

爾時에 金剛幢菩薩이 承佛神力하사 普觀十方하고 而說頌言하사대

菩薩成就深心力하야 普於諸法得自在하고 以其勸請隨喜福으로 無碍方便善廻向이로다

 

爾時에 金剛幢菩薩이 承佛神力하사, 普觀十方하고, 而說頌言하사대,  

이때 금강당보살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했다.

菩薩成就深心力(보살성취심심력)하야, 보살은 깊은 마음의 힘 성취하고

普於諸法(보어제법)에 得自在(득자재)하고, 널리 모든 법에 자재함을 얻어서

[깊은 마음의 힘이 있어야 제법에 자재한 힘을 얻습니다.]

以其勸請隨喜福(이기권청수희복)으로, 설법을 청하고 따라 기뻐한 복덕의 [자기는 배우거나 들으려 하지 않고 가르치려고만 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심리이지만, 勸請= 알려고 자꾸 묻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無碍方便善廻向(무애방편선회향)이로다. 막힘없는 방편으로 잘 회향하네. [그것이 바로 선근회향입니다]

 

  나. 菩提(보리)에 廻向(회향)

三世所有諸如來가 嚴淨佛刹遍世間하사 所有功德靡不具하시니 廻向淨刹亦如是로다

三世所有諸佛法을 菩薩皆悉諦思惟하고 以心攝取無有餘하야 如是莊嚴諸佛刹이로다

盡於三世所有劫토록 讚一佛刹諸功德이라도 三世諸劫猶可盡이어니와 佛刹功德無窮盡이로다

如是一切諸佛刹을 菩薩悉見無有餘하야 總以莊嚴一佛土하고 一切佛土悉如是로다

有諸佛子心淸淨하야 悉從如來法化生이라 一切功德莊嚴心이 一切佛刹皆充滿이로다

彼諸菩薩悉具足 無量相好莊嚴身하며 辯才演說遍世間하니 譬如大海無窮盡이로다

菩薩安住諸三昧하야 一切所行皆具足하고 其心淸淨無與等하야 光明普照十方界하니

如是無餘諸佛刹에 此諸菩薩皆充滿이라 未曾憶念聲聞乘하며 亦復不求緣覺道로다

 

三世所有諸如來(삼세소유제여래)가,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모든 부처님= 여래,

嚴淨佛刹遍世間(엄정불차편세간)하사, 세계를 청정하게  세간을 장엄 하시고

[자신의 인격을 자꾸 향상시키고따라서 내 주변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 그것이 嚴淨佛刹遍世間입니다.]

所有功德靡不具(소유공덕미불구)하시니, 빠짐없이 갖추신 공덕으로 [있는바 공덕 갖추지 아니함이 없으시니,]

廻向淨刹亦如是(회향정찰역여시)로다. 회향(공덕)으로써 세상을 청정하게 함도 또한 이와 같다.

 

三世所有諸佛法(삼세소유제불법)을 삼세의 모든 불법 

菩薩(보살)이 皆悉諦思惟(개실체사유)하고, 보살은 다 살펴 사유하고 [ 살필 체]

以心攝取無有餘(이심섭취무유여)하야, 마음으로 남김없이 (불법을) 섭취하여(다 알고 이해하여)

如是莊嚴諸佛刹(여시장엄제불찰)이로다. 모든 부처님 세계를 그렇게 장엄하네.

[三世所有諸佛法을 菩薩들이 깊이 사유해서 모든 불법을 남김없이 내 마음에 다 攝取= 다 거둬들여서 그것으로써 

세상= 諸佛刹을 장엄한다. 불법으로 세상을 장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盡於三世所有劫(진어삼세소유겁)토록, 삼세의 겁이 다하도록

一佛刹諸功德(찬일불찰제공덕)이라도, 한 부처님 세계의 공덕을 찬탄한다면 

[한 佛刹의 모든 공덕을 찬탄할지라도,]

三世諸劫 猶可盡(삼세제겁 유가진)이어니와, 삼세의 모든 겁은 다할지언정

佛刹功德(불찰공덕)은 無窮盡(무궁진)이로다. 부처님 세계의 공덕은 다하지 않네.

[器世間(기세간)이 얼마나 고맙고 좋은 것이고,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깨닫는 내용입니다. 이 지구에 몸담고 살면서 거기에 대한 공덕= 佛刹功德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 지구가 없다면 우리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如是一切諸佛刹(여시일체제불찰)을, 이러한 모든 부처님 세계를

菩薩이 悉見無有餘(실견무유여)하야, 보살은 남김없이 다 보고서

以莊嚴一佛土(총이장엄일불토)하고, 그 모든 것으로 한 불토를 장엄하고

一切佛土(일체불토)도 悉如是(실여시)로다. 또 모든 불토도 역시 그렇게 하네.     

[내 주변을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좀 더 발전해서 이웃과 사회전체를 살기 좋은 불토로 만드는 것입니다] 

 

有諸佛子心淸淨(유제불자심청정)하야, 어떤 불자들은 마음이 청정하니

悉從如來法化生(실종여래법화생)이라. 여래의 법에서 화생하여

[금강경의 依法出生分= 법에 의해서 출생하다사실 우리 모두가 지금 여래의 법으로부터 화생= 다시 태어난 겁니다.]

一切功德(일체공덕)으로 莊嚴心(장엄심)이, 일체공덕을 마음에 장엄하고

一切佛刹(일체불찰)에 皆充滿(개충만)이로다. 모든 부처님 세계를 가득 채우네.

 

彼諸菩薩悉具足(피제보살실구족) 저 보살들은 모든 것을 구족하여 

無量相好莊嚴身(무량상호장엄신)하며, 한량없는 상호로 몸을 장엄하고

[수술한 것처럼 당장에 고쳐지는 것은 아니지만, 상호도 자꾸 바뀌어서 자비로워지고, 선량해지는 것이지요. 

전해 오는 이야기에, 어떤 관상가가 어떤 사미를 보고는, 이 아이는 얼마 안 있다가 송장을 치를 아이니 집으로 얼른 보내라고 해서, 그 아이가 집으로 가는 도중에, 비가 와서 물에 떠내려 가는 개미 수 천 마리를,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건져준 겁니다. 그리고는 아이가 다시 돌아왔는데, 그 관상가가 보고는 '이 아이는 아주 길상이고 복덕 상이라 오래살 상이라고' 엊그저께는 금방 죽을 아이라고 했다가, 오늘은 왜 그렇게 다른 말을 하느냐 하니까

개미의 생명을 살려준 것이, 저절로 그 아이의 상호를 달라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 無量相好를 具足해서 몸을 장엄한다는 것도 그런 의미입니다.]

辯才演說遍世間(변재연설편세간)하니, 변재로 세간에 두루 연설하니

譬如大海無窮盡(비여대해무궁진)이로다. 마치 큰 바다가 끝이 없는 것 같네.

 

菩薩安住諸三昧(보살안주제삼매)하야, 보살은 모든 삼매에 안주하여

一切所行(일체소행)을 皆具足(개구족)하고, 일체의 행할 바를 다 갖추고

其心淸淨無與等(기심청정무여등)하야, 그 마음 청정하기 대등할 이 없으니

光明普照十方界(광명보조시방계)하니, 광명을 시방세계에 두루 비추네.

[三昧, 마음이 안정이 되면 明鏡止水가 되어서, 일체소행을 다 갖추게 됩니다. 明鏡止水가 되면, 물밑에는 고기가 다니고,

하늘에는 구름이 지나가고, 새가 지나가는 것 등이 환하게 비치는 一切所行皆具足, 평정심을 동요하지 않고 오래 유지하면 저절로 그런 행이 갖춰지는 것이 其心淸淨= 아주 뛰어난 마음입니다.]

 

如是無餘諸佛刹(여시무여제불찰)에, 이렇듯 남김없는 모든 부처님 세계에

此諸菩薩皆充滿(차제보살개충만)이라이 모든 보살들이 충만한데

未曾憶念聲聞乘(미증억념성문승)하며, 성문승을 생각해본 적 없고

亦復不求緣覺道(역부불구연각도)로다. 또한 연각도를 구해본 적도 없네.

[보살이 이 세상에 充滿한 것은 6바라밀을 실천하는 사람들이지만 聲聞乘은 자신만을 위해 4성제ㆍ8정도만 닦는 겁니다.

緣覺道는 인연의 이치, 12인연의 이치를 깨닫는 것입니다. 인과도 緣覺道에 해당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세상을 바로 세우는 데는 인연의 도리, 인과의 법칙이 참 좋은 이치이지만, 자기 안녕만을 도모하는 소승불교입니다.]

 

. 衆生(중생)에게 廻向(회향)

菩薩如是心淸淨하야 善根廻向諸群生하고 普欲令其成正道하야 具足了知諸佛法이로다

 

菩薩이 如是心淸淨(여시심청정)하야, 보살은 이렇게 마음이 청정하거니와

善根廻向諸群生(선근회향제군생)하고, 선근을 중생들에게 회향하여

普欲令其成正道(보욕영기성정도)하야, 그들로 하여금 바른 도를 이루어

具足了知諸佛法(구족요지제불법)이로다. 모든 불법을 구족히 알게 하네.

 

   라. 利益(이익)

十方所有衆魔怨을 菩薩威力悉摧破하니 勇猛智慧無能勝하야 決定修行究竟法이로다

菩薩以此大願力으로 所有廻向無有碍하야 入於無盡功德藏하니 去來現在常無盡이로다

 

十方所有衆 魔怨(시방소유중마원), 시방에 있는 모든 마군 원수

[시방에 있는 온갖 魔ㆍ怨= 부정적이고 장애되는 요소들, 몸이 아파서 장애되기도 하고마음에 상처를 받아서 장애되기도 하고, 주변의 환경 때문에 뜻하지 않게 장애되는 것들이 많더라도]

菩薩威力(보살위력)으로 悉摧破(실최파)하니, 보살은 위력으로 다 꺽어버리고

[菩薩의 威力! 보살의 위력이 원력, 굳건한 願力으로써 부정적인 문제들, 상황들, 다 꺾어버리고]

勇猛智慧無能勝(용맹지혜무능승)하야, 용맹한 지혜 당할 자 없으니

決定修行究竟法(결정수행구경법)이로다. 결정코 구경의 법 닦아 행하네.

[究竟法 제일가는 법ㆍ화엄 법ㆍ최고 대승불법보살대승불교를 수행한다.]  

 

菩薩이 以此大願力(이차대원력)으로, 보살은 그 대원의 힘으로

所有廻向無有碍(소유회향무유애)하야, 지닌 것들을 거침없이(걸림없이) 회향하고 

[마음이 약하고 원력이 부족하면 주저하게 되고, 주저하다 보면 이것저것 핑계꺼리가 많이 생깁니다.]

入於無盡功德藏(입어무진공덕장)하니, 다함이 없는 공덕장에 들어갔으니

去來現在常無盡(거래현재상무진)이로다. 삼세에 항상 다함이 없네. [항상 無盡功德藏입니다.]

 

   마. 菩提(보리)의 離相(이상)

菩薩善觀諸行法하야 了達其性不自在하니 旣知諸法性如是일새 不妄取業及果報로다

無有色法無色法하며 亦無有想無無想이라 有法無法皆悉無하니 了知一切無所得이로다

一切諸法因緣生이라 體性非有亦非無니 而於因緣及所起에 畢竟於中無取着이로다

一切衆生語言處가 於中畢竟無所得이라 了知名相皆分別하야 明解諸法悉無我로다

如衆生性本寂滅하야 如是了知一切法하니 三世所攝無有餘라 刹及諸業皆平等이로다

以如是智而廻向에 隨其悟解福業生이나 此諸福相亦如解하니 豈復於中有可得가

如是廻向心無垢하야 永不稱量諸法性하며 了達其性皆非性하야 不住世間亦不出이로다

 

[菩提의 離相(보리이상) 相을 떠난다는 것은 무엇이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입장, 중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菩薩이 善觀諸行法(선관제행법)하야, 보살은 모든 행법= 행하는 법을 잘 관찰하여

了達其性(요달기성)이 不自在(부자재)하니, 그 성품 자재하지 못함을 깨달아 알고

知諸法性如是(기지제법성여시)일새. 모든 법의 성품이 이와 같음을 이미 알아

不妄取業及果報(불망취업급과보)로다. 망령되게 업과 과보를 취하지 않네.

[이것은 성품과 현상에서 업과 업의 과보는 현상이 되는 관계를 말하는 내용입니다.] 

 

無有色法無色法(무유색법무색법)하며, 색법도 없고 무색법도 없으며

亦無有想無無想(역무유상무무상)이라. 또한 상=생각이 있음도 없고 무상도 없으며

有法(유법)과 無法(무법)이 皆悉無(개실무)하니, 있다는 법도 없다는 법도 다 없어서

了知一切無所得(요지일체무소득)이로다. 일체가 얻을 것 없는 줄을 분명히 아네.

[중도적인 입장에서 이미 현상은 이렇게 엄연히 존재하지만 有法도 無法도 없는 無差別의 입장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一切諸法因緣生(일체제법인연생)이라, 일체의 모든 법이 인연을 생긴 것이라

體性(체성)이 非有亦非無(비유역비무)니, 체성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아서

[인연의 이치는 불교의 중요한 점으로 지구상에 최초의 생명체가 인연으로 생겼고, 그 인연이라는 것은 늘 변화=진화하는 것이니까 처음에는 미생물이었다가 차츰차츰 진화해서 오늘날 이렇게 사람과 온갖 천지만물들이 된 것입니다.

一切法이 인연으로 생긴 겁니다. 그것의 體性이 非有亦非無니, 본체의 성품은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없는 것도 아니다. 인연으로 생겼기 때문에 그 본성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인연으로 생겼기 때문에 인연 따라 연기연멸, 인연이 다 하면 흩어지는 그것이 정해진 이치입니다.]

而於因緣及所起(이어인연급소기)에, 인연이나 인연으로 일어난 것에

畢竟於中無取着(필경어중무취착)이로다. 결코 그 가운데 집착함이 없네.

[인연과 그 인연으로 인해서 일어난 가운데서 필경에는 취착= 취할 것이 없더라. 

그래서 3공을 설명할 때, 인연으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공인 것은 緣起(연기)空과 그 보다 차원이 낮은 分析空은 하나ㆍ하나 떼어 놓고 보면, 예를 들어 이 “마이크를 형성하고 있는 각 부품을 다 분해 해버리면 마이크라는 실체는 없다는 것으로, 그것은 세속적인 분석방법입니다.

그리고 緣起空은 緣覺, 緣覺乘(연각승)의 이치로써 해석하고, 불교적인 안목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卽空(즉공), 반야심경은 緣起空도 아니고, 分析空도 아닌, 보살의 空입니다.

보살의 공은 卽空= 그대로 空입니다.

그냥 그대로 空이지, 그것을 분석을 해서 실체가 없는 것이거나, 또 모든 것은 인연으로, 인연화합으로 됐기 때문에 결국은 인연이 흩어지면 결국 공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닌, 반야심경은 色卽是空, 卽空= 그대로 공입니다.

반야심경을 分析空, 緣起空으로 표현하면 잘못 설명하는 것입니다. 

色卽是空 空卽是色! 卽空, 보살의 안목으로 보면 그냥 그대로 공으로 보는 겁니다.]

 

一切衆生語言處(일체중생어언처)가모든 중생의 언어가 있는 곳(일체 중생들의 말이)

於中(어중)에 畢竟無所得(필경무소득)이라. 그 안에는 결국 얻을 것이 없으니

了知名相皆分別(요지명상개분별)하야, 이름이라는 상이 다 분별임을 깨닫고

[이름이니 형상이니 하는 전부가 분별망상으로 얼기설기 엮어서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明解諸法悉無我(명해제법실무아)로다. 제법이 무아임을 분명히 명해= 밝게 아네.

[諸法이 다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없음을 밝게 앎이로다.]

 

如衆生性本寂滅(여중생성본적멸)하야, 중생의 성품이 본시 적멸한 것과 같이 

如是 了知一切法(여시 요지일체법)하니, 그렇게 일체법을 요지하니 

三世所攝無有餘(삼세소섭무유여)라. 삼세에 섭렵한 것들이 아무것도 없어서

[그러한 이치로써 3세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다 해서]

刹及諸業皆平等(찰급제업개평등)이로다. 세계와 업이 다 평등하네.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이 세계와 우리의 업이 다 평등하다.]  

 

以如是智而廻向(이여시지이회향)에, 이러한 지혜로 회향하면

隨其悟解(수기오해)하야 福業生(복업생)이나, 悟解= 깨달음의 이해에 따라 복업이 생기거니와

此諸福相(차제복상)은 亦如解(역여시)하니, 이 모든 복업의 상 또한 이해와 같거늘

豈復於中(기복어중)에 有可得(유가득)가? 어찌 또 그 안에 얻을 것이 있으리오. [ 어찌 기]

[悟解= 이해한다는 것, 복이라는 것, 지혜라고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얻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복도ㆍ이해도, 또 거기에 따르는 모든 것들 다 얻을 것이 없다.]

 

如是廻向心無垢(여시회향심무구)하야, 이렇게 회향하는 마음에 때가 없으니

永不稱量(영불칭량諸法性(제법성)하며 모든 법의 성품을 영원히 헤아리지 않고 

了達其性皆非性(요달기성개비성)하야, 그 성품이 성품 아닌 줄 알아서

不住世間亦不出(불주세간역불출)이로다. 세간에 머물지도 떠나지도 않네.

[세간에 머물지도 아니하고또한 벗어나지도 않는다.- 중도의 입장] 

[복도, 깨달아 앎도, 회향도 전부 중도적으로 이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 있고, 분명히 있되 또 없는 면도 있고, 분명히 없되 또한 있는 면도 있는, 그 양면을 같이 이해해야 된다. 우리 육신에서부터 마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사실은 다 그렇게 존재합니다.

우리가 공부한다고 목을 매고 공부하지만, 공부하는 것의 실체를 찾아보고 분석해보고 낱낱이 쪼개봐도 있는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을 너무나도 크게 지배하고 있어서, 아주 감동하고 깨달음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는 것을 보면 또 너무나도 확실하게, 결정적으로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또 분석해보면 실체는 없고요.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중도성인 겁니다. 존재의 중도성을 내면으로 깔고 있으면서 또 천변만화성을 또한 함께 가지고 있는, 그것입니다.]

 

   바. 衆生(중생)의 離相(이상)

一切所行衆善業을 悉以廻向諸群生호대 莫不了達其眞性하야 所分別皆除遣이로다

所有一切虛妄見을 悉皆棄捨無有餘하며 離諸熱惱恒淸凉하야 住於解脫無碍地로다

 

 [離相= 상을 떠난다는 것이 전부 중도를 뜻하는 것입니다.]

一切所行衆善業(일체소행중선업)을, 행한 바 소행의 모든 선업으로 

悉以廻向諸群生(실이회향제군생)호대모든 중생에게 회향하여 

莫不了達其眞性(막불요달기진성)하야, 진실한 성품 요달치 못함이 없고

[회향하지만 그 참다운 성품을 다 了達해야 됩니다.]

所分別皆 除遣(소분별개 제견)이로다. 지닌 분별을 다 없애버렸네.

[있는 바 차별심ㆍ분별심을 다 날려 보낸다그렇게 알면 집착할 것도애착할 것도 없고잘 했느니ㆍ못했느니 할 것도 없는 가운데서 보살행을 열심히 발휘하는 것입니다.] 

 

所有一切虛妄見(소유일체허망견)을, 지닌 바 일체의 허망한 견해를 

悉皆棄捨無有餘(실개기사무유여)하며, 모두 남김없이 다 버리고

離諸熱惱恒淸凉(이제열뇌항청량)하야, 온갖 熱惱= 뜨거운 번뇌를 여의니 늘 청량하여

住於解脫無碍地(주어해탈무애지)로다. 해탈의 걸림없는 경지에 머무네.

 

   사. 成德(성덕)의 離相(이상)

菩薩不壞一切法하며 亦不滅壞諸法性하고 解了諸法猶如?하야 悉於一切無所着이로다

了知三世諸衆生이 悉從因緣和合起하며 亦知心樂及習氣하야 未曾滅壞一切法이로다

了達業性非是業호대 而亦不違諸法相하며 又亦不壞業果報하야 說諸法性從緣起로다

了知衆生無有生하며 亦無衆生可流轉하니 無實衆生而可說이로대 但依世俗假宣示로다

 

 1. 菩薩이 不壞一切法(불괴일체법)하며, 보살은 일체법= 현상을 무너뜨리지 않고(부정하지 않고) 

亦不滅壞諸法性(역불멸괴제법성)하고, 법의 성품도 부수지 않으며 

[法性圓融無二相 과 은 “법의 성품”이 아니라 “법과 성품”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저도 그것이 아주 고민이었는데, 조선 500년의 최고 천재, 설잠 김시습 선생의 법성게 해석을 보니까 아주 똑 떨어지게 과 을 나눠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때부터는 法은 현상법= 눈에 보이는 것이고, 性은 그 현상의 내면에 깔려있는 본성을 말하는 것이다.

1의 一切法은 현상이고, 法性 그 내면에 깔려있는 실상을 法性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현상도 부정하지 않고, 또 法性= 법의 성품도 부정하지 아니하고,]

解了諸法 猶如響(해료제법 유여향)하야, 모든 법이 메아리 같음을 깨달아 

悉於一切無所着(실어일체무소착)이로다. 일체의 모든 것에 집착함이 없네.

 

了知三世諸衆生(요지삼세제중생)이삼세의 모든 중생이 

悉從因緣和合起(실종인연화합기)하며, 다 인연에서 화합하여 일어난 줄 알고

亦知心樂及習氣(역지심락급습기)하야, 또 마음으로 즐기는 것과 습관도 알아서 [習氣= 익숙하게 익힌 것] 

未曾滅壞一切法(미증멸괴일체법)이로다. (그것을 알아서) 일찍이 일체 법을 부정하지 않는도다.

[일체법을 滅壞= 부셔 소멸시킨 적이 없네.]

 

了達業性非是業(요달업성비시업)호대, 업의 성품이 그 업이 아닌 줄 알고

而亦(역이) 不違(불위諸法相(제법상)하며, 또한 모든 법의 상에 거스르지도 않으며 

又亦不壞業果報(우역불괴업과보)하야, 또한 업의 과보도 부수지 않아서

[法相을 어기지 아니하며, 또한 업 과보를 不壞= 부정하지 아니해서]

說諸法性從緣起(설제법성종연기)로다. 법의 성품이 인연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설하네.

 

了知衆生無有生(요지중생무유생)하며,  중생이 생기지도 않고 (중생은 중생이 없으며)

亦無衆生 可流轉(역무중생 가류전)하니, 또한 흘러 돌 중생도 없어서 

[또한 중생 가히 流轉함도 없음을 了知하나니,]

無實衆生而可說(무실중생이가설)이로대, 실로 중생이라 할 것이 없으되

[실로 중생이 가히 이야기할 거리가 없어요. 왜냐하면 了知衆生無有生이니까. 중생은 중생이 있지 아니하며, 또한 중생이 가히 流轉함도 없음을 了知했기 때문에 실로 중생은 가히 이야기할 거리가 없어요.

중생이, 중생이 아니라 중생이 본래 공한 것이고, 중생이, 중생이 아니라 본래 부처러고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중생이, 중생을 중생으로 보는 것은 가관이고, 空한 것으로 보는 것은 공관이고, 부처로 보는 것은 중도관이다. 

空觀ㆍ假觀ㆍ中道觀이 모든 존재들을 보는 세 가지 견해입니다.

但依世俗假宣示(단의세속가선시)로다. 다만 세속에 의지해 굳이 펼쳐 보이네.

[다만 세속을 의지해서 → 세속적인 관점에 의지해서 거짓으로 宣示= 펼쳐 보이는 일이다.

“중생ㆍ중생”하는 것은 우리들 상식에 맞추어서 이야기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불교를 알기 전과 또 안다고 하여도 그것이 아직은 마음에 계합이 덜 되어서 俗諦= 세속적인 관점에 의해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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