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知一切法(지일체법)

菩薩이 如是了達境界하야 知一切法이 因緣爲本하며 見於一切諸佛法身하며 至一切法離染實際하며

解了世間이 皆如變化하며 明達衆生이 唯是一法이라 無有二性하며 不捨業境의 善巧方便하며

於有爲界에 示無爲法호대 而不滅壞有爲之相하며 於無爲界에 示有爲法호대 而不分別無爲之性이니

 

菩薩이 보살은 如是了達境界(여시요달경계)하야, 이러한 경계에 요달하여

知一切法이 因緣爲本(인연위본)하며, 일체법이 인연이 근본이 됨을 알고서

見於一切諸佛法身(견어일체제불법신)하며일체제불의 법신을 만나 보며

至一切法離染實際(지일체법이염실제)하며, 일체법의 염착을 여읜 실제에 이르러

解了世間(해요세간) 皆如變化(개여변화)하며, 세간이 모두 변화와 같음을 알고

明達衆生(명달중생) 唯是一法(유시일법)이라. 중생은 오로지 한 법이요

無有二性(무유이성)하며, 두 성품이 없는 줄 明達= 분명히 알며,

不捨業境(불사업경) 善巧方便(선교방편)하며, 업의 경계에 대한 선교방편을 버리지 않아서 

於有爲界에 示無爲法(시무위법)호대, 유위의 경계에 무위법을 보이되

而不滅壞有爲之相(이불멸괴유위지상)하며, 유위의 상을 무너뜨리지 않고 

於無爲界에 示有爲法(시유위법호)호대, 또 무위의 경계에 유위법을 보이되

而不分別無爲之相(이불분별무위지상)이니라. 무위의 상을 분별하지 않습니다.

[불성을 보는 안목, 그 견해를 中道적이라고 하는 것이지, 불성처럼 어떤 실재하는 무엇을 지칭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견해일 뿐입니다. 무엇을 봐도 중도적으로 보라는 것이지, 佛性처럼 中道가 있는 것 처럼 설명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中道적 견해로 일체만물을 봐야 바르게 보는 것입니다.

물론 佛性도 존재하기 때문에 불성도 중도로 봐야 됩니다. 佛性이 곧 中道라고 알면 그것은 크게 잘못 아는 것입니다.

영명연수선사가 밝혀놓은 중도의 그 뜻이 아주 명료합니다. 羅列幻化供具. 환화와 같은 공양 구를 산더미처럼 나열하되 환화와 같은 줄 알라. 이것이 중도로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입니다.

불사를 지어도 水月道場을 건립하라. 물에 비친 달그림자와 같은 도량을 열심히 건립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中道(中道)는 '치우치지 아니하는 바른 도리'입니다. 부처님은 29세에 출가하여 35세에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의 6년간 그 대부분을 가혹한 고행의 길에 정진하였다. 그러나 그 고행도 부처님에 있어서는 몸을 괴롭게 하는 것뿐으로서 참된 인생 문제의 해결은 되지 않았다. 출가 전의 왕자로서의 물질적인 풍족함만으로는 인간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출가 전의 쾌락도 출가 후의 고행도 모두 한편에 치우친 극단이라 하여 이것을 버리고 고락 양면을 떠난 심신(心身)의 조화를 얻은 중도(中道)에 비로소 진실한 깨달음의 길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의 체험에 의해서 자각하였다. 성도(成道) 후 그때까지 함께 고행을 하였던 5인의 비구(比丘)들에게 가장 먼저 설교한 것이 중도의 이치였다.

중도는 팔정도의 실천을 통해 고와 낙의 양면을 떠나 심신의 조화를 얻는 길을 의미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중도의 여러 가지 설 가운데 원시불교의 중도설, 중관파(中觀派)의 팔부중도설(八不中道說), 천태종의 삼제원융관(三諦圓融觀)에 의한 중도가 널리 채택되었다.

원시불교의 중도설은 불교의 가장 근본 입장이 되고 있다. 중도는 팔정도라고 하는 구체적인 실천에 의해서 지탱되는 준엄한 도이며, 여기서는 나태·번뇌·노여움·어리석음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것에 집착하려고 하는 어떠한 일변도 모두 버려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참다운 진리가 모든 집착이나 분별의 경지를 떠난 무소득(無所得)의 상태에 있음을 밝힌 것이다.

팔부중도는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연기(緣起)의 이법(理法)이 생(生)·멸(滅)·단(斷:끊어짐)·상(常:항상함)·일(一:같음)·이(異:다름)·거(去)·내(來)의 여덟 가지 잘못된 견해(八邪)를 떠난 것임을 파악할 때 참다운 공(空)의 진리를 체득할 수 있고, 팔사가 떨어져 무소득의 바른 견해에 머무르는 것이라 한다.

여기에서 팔부(八不)는 생멸(生滅) 등의 팔사를 부정하는 불생(不生)·불멸(不滅)·부단(不斷)·불상(不常)·불일(不一)·불이(不異)·불거(不去)·불래(不來)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에 의하여 모든 사집(邪執)이 파멸되어 있는 그대로의 실상(實相)의 도리가 나타난다고 한다.

천태종에서는 삼제원융관의 중도에 의하여 모든 존재가 제법실상(諸法實相)임을 밝히고 있다. 삼제는 진제(眞諦)로서의 공(空), 속제(俗諦)인 가(假), 비유비공(非有非空)의 진리인 중(中)의 셋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삼제설은 중국의 지의(智顗)가 처음으로 주창한 뒤 천태종의 근본교설이 되었으며, 그 뒤 우리 나라 천태종의 근본 학설로 정착되었다.

원래 이 삼제설이 주창된 까닭은 제법의 실상이 중도에 있음을 밝히는 데 있으며, 공·가·중이 서로 원융(圓融)한 것을 천명하기 위한 것이다.

삼제 가운데 공제는 진리의 측면에서 이 세상을 본 것으로, 진리의 측면에서 보면 이 세상은 인연따라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공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제는 세속의 측면에서 이 세상을 본 것으로, 이 세상의 고정불변한 듯한 모든 것이 실제는 거짓과 헛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중제는 중도제일의(中道第一義)의 입장에서 실상을 본 것으로, 제법의 실상을 공이나 가의 일면으로 관찰할 것이 아니라 중도의 절대적인 입장에 서서 진리를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삼제의 설은 교학적으로 매우 발전하여 쉽게 파악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속의 입장에 속하는 가(假)의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가의 세계는 무상(無常)하고 괴롭고 부자유스럽고 번뇌가 많은 세계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태를 긍정하고 그 거짓된 모습을 파헤쳐 공임을 깨달을 때 중도가 그곳에서 온전하게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즉, 가의 상태에서 진제의 세계인 공으로 몰입한 뒤 다시 이 세속으로 나올 때 중도의 삶을 살 수 있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공과 가는 서로 진(眞)과 속(俗)이라는 상대적인 상황에 있고, 중은 진과 속을 가장 분명하게 이어주는 것이므로, 삼제는 어느 하나가 빠진 상태에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셋의 관계를 삼제원융(三諦圓融)이라고 한다.

이 삼제원융을 관하는 것을 삼제원융관(三諦圓融觀)이라고 하며, 중생의 일심이 곧 삼제를 모두 포함하고 있음을 관하는 것을 일심삼관(一心三觀)이라고 한다.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는 불교의 계율을 중도에 계합시켜 그 참뜻을 밝혔다.

그는 ≪범망경보살계본사기 梵網經菩薩戒本私記≫에서 “비유비무(非有非無)는 극단을 여읜 중도의 계를 나타낸 말이다. 계의 바탕(體)은 인연을 따라 생긴 것이지만, 인연의 본체를 추구해 들어가면 계의 자성(自性)을 얻을 수 없으므로 비유(非有)이며, 계가 비록 비유라고 하지만 인연을 따라 생겨나 토끼 뿔이 없는 것처럼 아주 없는 것은 아니므로 비무(非無)라 한 것이다.”라고 하여 계를 비유비무의 중도에 입각하여 설명하였다.

이어서 원효는 “만일 계의 업을 말하면 막는다는 데 계의 뜻이 있는 것이며, 그 막아야 할 대상은 곧 죄(罪)이다. 계는 결국 인연을 따라 생기지만 그 인연의 본체를 추구하여 깊이 들여다 보면 절대적인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얻어질 수 있는 실재(實在)의 객관은 없다.”고 하였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계를 중도에 계합시키는 원리를 다음과 같이 전개하였다. “마음자리를 두고 논하자면 뿌리인 자성은 본래 청정한 것이므로 죄가 될 요소가 따라붙을 수 없다. 따라서, 그릇됨을 막는다고 하지만 실은 절대적이고 객관화된 본질적 표준인 죄성(罪性)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죄성은 마음의 근본 바탕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는 이것 속에 계가 중도에 계합하는 이치가 있는 것이다.”

원효가 그의 여러 저술을 통하여 화쟁사상을 펼치고 무애자재한 이론으로 모든 경전을 올바로 풀이할 수 있었던 것도 철두철미하게 중도를 통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破)할 것도 없고 파하지 않을 것도 없으며, 세울 것도 없고 세우지 않을 것도 없으니, 이른바 이치가 없는 것이 지극한 이치요(無理之至理) 그렇지 않는 것이 크게 그렇다(不然之大然).”라고 천명한 ≪금강삼매경론 金剛三昧經論≫의 서문을 비롯한 수많은 글에서, 원효는 원융무애한 절대의 원리에 입각하여 성(性)·상(相)·공(空)·유(有)·일(一)·이(異) 등의 모든 상대적인 개념을 회통시킴으로써 중도의 사상체계를 세웠던 것이다.

고려의 의천(義天) 또한 “진리는 말이나 형상이 없지만 말이나 형상을 여읜 것도 아니다. 말이나 형상을 여의면 뒤집힌 미혹(迷惑)이요, 말과 형상을 집착하면 참으로 미(迷)한 것이다.”, “교학자(敎學者)는 안을 버리고 밖에서 구하며, 습선인(習禪人)은 인연법(因緣法)을 모르고 안으로만 밝혀 편향 집착한다.”고 하여 중도로써 수행할 것과 중도의 중요성을 누누히 밝혀 주고 있다.]

 

 (11) 菩薩知法(보살지법) 衆生廻向(중생회향)

菩薩이 如是觀一切法이 畢竟寂滅하야 成就一切淸淨善根하야 而起救護衆生之心하며

智慧明達一切法海하야 常樂修行離愚癡法하며 已具成就出世功德하야 不更修學世間之法하며

得淨智眼하야 離諸癡翳하야 以善方便으로 修廻向道니라

 

菩薩이 如是一切法(여시관일체법)보살은 이렇게 일체법이

畢竟寂滅(필경적멸)하야, 필경에는 적멸함을 觀= 관찰하고 

成就一切淸淨善根(성취일체청정선근)하야, 일체의 청정한 선근을 성취하여

而起救護衆生之心(이기구호중생지심)하며,  중생을 구호하려는 마음을 일으키며,

智慧明達一切法海(지혜명달일체법해)하야, 지혜가 일체법 바다에 명달하여

常樂修行離愚癡法(상락수행이우치법)하며, 어리석음에서 깨어나는 법을 항상 즐겨 수행하고,   

已具成就出世功德(이구성취출세공덕)하야, 출세간의 공덕을 이미 고루 성취했기에

不更修學世間之法(불갱수학세간지법)하며, 세간의 법을 다시는 배우지 않으며,

得淨智眼(득정지안)하야, 청정한 지혜안을 얻어 離諸癡翳(이제치예)하야, 어리석음의 막을 걷어내고 

以善方便(이선방편)으로 선방편으로 修廻向道(수회향도)니라회향의 도를 닦습니다.

[우리가 깊이 생각 해보면, 모든 존재가 회향의 원리로 짜여 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2) 善根廻向(선근회향)의 利益(이익)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諸善根으로 如是廻向하야 稱可一切諸佛之心하며 嚴淨一切諸佛國土하며 

敎化成就一切衆生하며 具足受持一切佛法하야 作一切衆生의 最上福田하며 爲一切商人의 智慧導師하며

作一切世間의 淸淨日輪하야 一一善根이 充滿法界하며 悉能救護一切衆生하야 皆令淸淨具足一切功德이니라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如是廻向時에 能護持一切佛種하며 能成熟一切衆生하며

能嚴淨一切國土하며 能不壞一切諸業하며 能了知一切諸法하며 能等觀諸法無二하며

能遍往十方世界하며 能了達離欲實際하며 能成就淸淨信解하며 能具足明利諸根하나니

佛子야 是爲菩薩摩訶薩의 第四至一切處廻向이니라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以諸善根(이제선근)으로모든 선근으로

如是廻向(여시회향)하야이렇게 회향하여

稱可一切諸佛之心(칭가일체제불지심)하며, 일체제불의 마음에  들게 하고,

嚴淨一切諸佛國土(엄정일체제불국토)하며, 일체의 불국토를 엄정히 하며,

[부처님마음에 맞고, 또 일체 모든 불국토를 엄정= 이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하는 두 가지입니다.

上求菩提下化衆生(상구보리하화중생) 자신의 인격을 완성하고, 세상을 보다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敎化成就(교화성취) 一切衆生(일체중생)하며, 일체중생을 교화 성숙하고 

具足受持(구족수지) 一切佛法(일체불법)하야, 일체의 불법을 구족히 수지하며, 

作一切衆生(작일체중생)의 最上福田(최상복전)하며, 일체중생에게 최상의 복밭이 되고

爲一切商人(위일체상인) 智慧導師(지혜도사)하며, 모든 상인들의 지혜로운 인도자가 되며,

作一切世間(작일체세간)의 淸淨日輪(청정일륜)하야일체세간에 청정한 태양이 되고

[猶如千日出(유여천일출)이라. 1000개의 태양이 동시에 뜬 듯한 그런 밝음을 지어주며, 선근회향이라는 것이 그런 겁니다. 그러니까 선근회향도 인과의 법칙으로 하면 제일 좋은 선근회향입니다.] 

一一善根(일일선근)이 充滿法界(충만법계)하며, 낱낱의 선근을 법계에 충만히 하여 

悉能救護(실능구호)一切衆生(일체중생)하야, 일체중생을 다 구호하고 [인과를 모르는 중생들을 인과의 이치를 알게 주는 것이 구호하는 겁니다. 밥한 끼 주는 것도 좋은 복이 되지만 그것은 그때뿐 입니다.]  

皆令淸淨具足功德(개령청정구족공덕)이니라. 청정한 공덕을 구족하게 함이니라.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如是廻向時(여시회향시)에이렇게 회향할 때

能護持一切佛種(능호지일체불종)하며, 일체의 불종을 능히 호지하고,

能成熟(능성숙)一切衆生하며, 일체중생을 능히 성숙시키며,

能嚴淨(능엄정)一切國土하며, 일체국토를 능히 엄정히 하고 [인과의 법칙을 알아서 모든 세상이 순리대로 돌아가도록 하는 것, 억울한 사람도 없고, 사기치고 협잡하는 사람도 없는 그것이 一切國土를 청정하게 장엄하는 것입니다.]

能不壞一切諸業(능불괴일체제업)하며, 일체의 업들을 무너뜨리지 않으며

能了知一切諸法(능료지일체제법)하며, 일체의 보든 법을 요지하고

能等觀諸法無二(능등관제법무이)하며, 제법에 둘이 없음을 평등히 관찰하며

能遍往十方世界(능변왕시방세계)하며, 시방세계에 두루 나아가고 [널리 불법을 펴고,]

能了達離欲實際(능요달이욕실제)하며, 애욕을 여읜 실제에 요달하며

[欲을 떠난 實際= 진리의 자리를 了達하며, 實際 진리며 진여 자리, 거기에는 욕심이 없습니다.

歸依法離欲尊(귀의법이욕존) 그 많은 8만4천 법문 가운데 한 마디를 간추리라고 하면 離欲= 욕심 떠나는 것이다.

그것이 歸依法離欲尊입니다. 우리 본성= 참마음 자리는 본래 욕심 없는 離欲實際자리입니다.  

離欲實際! 욕심만 떠난 것이 아니라 탐진치 3독과 8만4천 번뇌를 다 떠난 實際자리가 우리 참마음 자리의 공능입니다.

그것이 온갖 번뇌ㆍ무명으로 뒤덮여서, 잘 발휘를 못해서 그렇지, 그것을 자꾸 갈고닦으면 발휘하게 되는, 그것이 딴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던 것이 차츰차츰 드러나는 겁니다.

그것이 본성입니다. 離欲實際가 본성입니다.]

能成就淸淨信解(능성취청정신해)하며, 청정= 훌륭한 신해를 성취하고

能具足明利諸根(능구족명리제근)하나니, 밝고 예리한 제근을 구족하게 되니

[明利諸根아주 초롱초롱한 眼耳鼻舌身意를 具足하게 된다. 

그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전부 우리 藏識(장식)에 내장이 돼있긴 한데, 흐리멍텅해서 잘 드러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具足明利諸根란 말이 경전에 자주 나옵니다.]

佛子야 是爲菩薩摩訶薩의 불자들이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第四 至一切處廻向이니라.  4 지일체처회향= 모든 곳에 이르는 회향입니다.

 

(13) 第四 廻向(회향)의 果位(과위)

菩薩摩訶薩이 住此廻向時에 得至一切處身業하나니 普能應現一切世界故며

得至一切處語業하나니 於一切世界中에 演說法故며 得至一切處意業하나니 受持一切佛所說法故며

得至一切處神足通하나니 隨衆生心하야 悉往應故며 得至一切處隨證智하나니 普能了達一切法故며

得至一切處總持辯才하나니 隨衆生心하야 令歡喜故며

得至一切處入法界하나니 於一毛孔中에 普入一切世界故며

得至一切處遍入身하나니 於一衆生身에 普入一切衆生身故며

得至一切處普見劫하나니 一一劫中에 常見一切諸如來故며

得至一切處普見念하나니 一一念中에 一切諸佛이 悉現前故라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得至一切處廻向에 能以善根으로 如是廻向이니라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보살마하살이 住此廻向時(주차회향시), 이 회향에 머물 때

1. 得至一切處身業(득지일체처신업)하나니, 일체처에 이르는 신업을 얻으니 

普能應現一切世界故(보능응현일체세계고), 널리 일체세계에 응현= 응해서 나타나기 위해서요,

2. 得至一切處 語業(어업)하나니, 일체처에 이르는 어업을 얻으니

於一切世界中(어일체세계중), 일체세계 안에서 演說法故(연설법고)법을 연설하기 위함이며,

3. 得至一切處 意業(의업)하나니, 일체처에 이르는 의업을 얻으니 

受持一切佛所說法故(수지일체불소설법고), 모든 부처님 설하신 법을 수지하기 위함이요,

4. 得至一切處 神足通(신족통)하나니, 일체처에 이르는 신족통을 얻으니 

隨衆生心(수중생심)하야 悉往應故(실왕응고), 중생의 마음따라 나아가서 응하고자 함이며,

5. 得至一切處 隨證智(수증지)하나니, 일체처에 이르는 수증지= 따라서 증득하는 지혜를 얻으니

[어떤 곳에 가든지, 그곳에 필요한 알맞는 지혜가 隨證지혜입니다.]

普能了達一切法故(보능요달일체법고), 널리 일체법에 요달하기 위함이며,

6. 得至一切處 總持辯才(총지변재)하나니, 일체처에 이르는 총지와 변재를 얻으니

隨衆生心(수중생심)하야 令歡喜故(영환희고), 중생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 위함이며,

7. 得至一切處 入法界(입법계)하나니, 일체처에 이르는 법계에 들어가게 되니 

於一毛孔中(어일모공중), 한 모공 안에 普入一切世界故(보입일체세계고), 일체세계가 들어가기 위해서이며,

[一微塵中含十方의 이치] 

8. 得至一切處 遍入身(변입신)하나니, 일체처에 이르는, 두루 들어가는 몸을 얻으니

於一衆生身(어일중생신)  중생의 몸에

普入一切衆生身故(보입일체중생신고),일체중생의 몸이 들어가기 위함이며,

[한 중생의 몸에서 일체 중생의 몸에 두루 들어간다. 각자가 토해놓은 호흡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각자가 토해 놓은 호흡을 마신 그 힘으로 우리는 살아가는 겁니다. 우리는 전부 뒤섞여있습니다. 피만 섞인 것이 아니라 호흡이 다 섞여 있습니다. 모두 그런 이치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9. 得至一切處 普見劫(보견겁)하나니, 일체처에 이르는 겁을 널리 보는 능력을 얻으니

[위에는 공간에 관해서 우리가 이미 자유자재하게 연관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였고, 이것은 시간에 관한 것입니다]

一一劫中(일일겁중)낱낱의 겁에서  [낱낱 겁 가운데 또는 매 순간.]

常見一切諸如來故(상견일체제여래고), 모든 여래를 항상 뵙기 위함이며,

10. 得至一切處 普見念(보견념)하나니, 일체처에 이르는 널리 보는 생각을 얻으니

一一念中(일일념중)낱낱의 생각마다 一切諸佛(일체제불)모든 부처님이 

悉現前故(실현전고). 앞에 나타나시게 하고자 함이라.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무애 자재한 능력을 얻는 것이 일체 처에 이르는 회향의 결과입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得至一切處 廻向(회향), 일체처에 이르는 회향을 얻어서

能以善根(능이선근)으로 如是廻向(여시회향)이니라. 그 선근으로 이와 같이 회향합니다."

[능히 선근= 이치가 그렇고, 또 그 이치에 맞게 회향하고 있다.

호흡도 회향이요. 먹고 배설하는 것도 회향이요. 배운 것을 가르치는 것도 회향이요. 번 돈을 쓰는 것도 회향이요. 회향 아닌 것이 없습니다. 회향이 안 되면 생명을 유지할 길이 없습니다. 먹기만 하고 배설 안하면 바로 죽음이고, 호흡을 들이마시기만 하고 내뱉지 못하면 바로 죽음이듯이 전부 회향하는 그 이치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치는 이미 이 우주 안에 존재 원리인데, 사실 따지고 보면 거기에 불법을 얹어서 설명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6바라밀ㆍ4섭 법ㆍ4무량 심ㆍ인의예지신도 우리들의 본심! 진여자성 속에 이미 갖추고 있는 것을 불보살들이 

“너희 속에 이미 그렇게 있으니까 조금만 건드려서 발아를 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如來出現 品에 일체중생이 여래의 지혜의 덕성을 다 갖추고 있더라. 다만 모를 뿐이더라는 바로 그 이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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