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無畏施
恒以無畏施衆生하야 普令一切皆欣慶하고 其心淸淨離染濁하니 彼無等者行斯道로다
意業淸淨極調善하고 離諸戲論無口過하며 威光圓滿衆所欽이니 彼最勝者行斯道로다
恒以無畏로 施衆生(항이무외시중생)하야, 항상 중생에게 무외= 두려움 없음을 베풀어
普令一切皆欣慶(보령일체개흔경)하고, 널리 모두를 기쁘게 하고
其心淸淨離染濁(기심청정이염탁)하니, 그 마음이 청정하여 염탁= 물들고 더러움을 여의니
彼無等者行斯道(피무등자행사도)로다. 저 무등자=더불어 같을 이가 없는 분이 이 도를 행하도다.
意業淸淨極調善(의업청정극조선)하고, 의업=뜻= 마음은 청정하여 極調善= 지극히 조화롭고 선하며
離諸戲論無口過(이제희론무구과)하며, 모든 희론을 떠났으니 말에 허물이 없으며,
威光이 圓滿하야 衆所欽(위광원만중소흠)이니, 위엄의 빛이 원만하여 모두가 欽= 흠모하니
彼最勝者行斯道(피최승자행사도)로다. 저 최승자= 가장 수승한 이가 이 도를 행하도다.
[諸惡莫作(제악막작) 衆善奉行(중선봉행) 自淨其意(자정기의) 是諸佛敎(시제불교)]
(3) 法施
入眞實義到彼岸하고 住功德處心永寂하야 諸佛護念恒不忘하시나니 彼滅有者行斯道로다
遠離於我無惱害하고 恒以大音宣正法호대 十方國土靡不周하니 彼絶譬者行斯道로다
[法施= 법공양. 제가 중국에 갔더니 손가락 두 개정도 넓이에 15센티쯤 되는 재활용 종이에 부처님말씀을 써서 여러 장을 빨랫줄 같은데 쭉~ 달아 놓고 누구든지 하나씩 떼어 가도록 해놔서 아주 감동을 받았고,
또 송광사에 갔다가 보왕삼매론을 들어가는 문 앞 책상위에 쌓아 놓은 것을 보고 ‘바로 저것이다. 저것을 해야 된다.’해서 제가 88년도부터 범어사에서 “일지경= 한 종이 경"이라고 해서 부처님말씀 적어서 나누고 있고, 그리고 여기 범어사는 관광객이 많이 와서 A4용지 넉 장 정도 크기의 아크릴 판에 부처님말씀을 새겨서 많이 걸어놨습니다.
그것이 열반경에 설산동자가 몸을 바쳐서 얻은 부처님말씀을 피를 내서 벽에다 쓴 것을 흉내 낸 것입니다.]
入眞實義到彼岸(입진실의도피안)하고, 진실한 이치에 들어가 피안에 이르고
住功德處心永寂(주공덕처심영적)하야, 공덕처에 머물러 마음이 길이 고요하며
諸佛이 護念하야 恒不忘(제불호념항불망)하시나니, 모든 부처님 마음에 두사 늘 잊지 못하니
彼滅有者行斯道(피멸유자행사도)로다. 저 멸유자= 유, 있음을 멸한 이가 이 도를 행하도다.
[滅有者= 모든 있는 것을 소멸하는 사람ㆍ있는 것을 뛰어넘은 사람. 우리는 전부 있는, 有에 걸려있습니다. 전부 그 있음의 한계를 못 벗어나니까 차별상에 걸려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임제스님이 차별 없는 참 사람을 부르짖는 것이지요.]
遠離於我하야 無惱害(원리어아무뇌해)하고, '나'를 멀리 여의어 번뇌가 없고
我를 遠離= 아상ㆍ아집ㆍ아견 등을 멀리해서 뇌해가 없고,
惱害= 번뇌와 나를 해치는 전부가 아견ㆍ아집ㆍ아상 등으로 부터입니다.
恒以大音으로써 宣正法(항이대음선정법)호대, 항상 큰 음성으로 정법을 펼치며
十方國土에 靡不周(시방국토미불주)하니, 시방의 국토에 두루 하니
彼絶譬者行斯道(피절비자행사도)로다. 저 절비자= 비유할 데 없는 이가 이 도를 행하도다.
(4) 因果가 圓滿함
檀波羅蜜已成滿하야 百福相好所莊嚴이라 衆生見者皆欣悅하나니 彼最勝慧行斯道로다
檀波羅蜜已成滿(단바라밀이성만)하야, 보시바라밀을 만족히 이루어
百福相好가 所莊嚴(백복상호소장엄)이라. 백 가지 복된 상호로 장엄하니
그것이 재시가 됐든 무외시가 됐든 법시가 됐든, 무재칠시가 됐든, 그런 보시가 결국은 百福莊嚴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衆生見者皆欣悅(중생견자개흔열)하나니, 보는 중생이 모두 기뻐하니
彼最勝慧行斯道(피최승혜행사도)로다. 저 최승지혜= 가장 수승한 지혜를 가진이 이 도를 행하도다.
[最勝慧 = 가장 수승한 지혜를 가진 사람. 檀波羅蜜이 이미 成滿했다는 것입니다.]
[최승혜가 檀波羅蜜= 보시바라밀로 가능한 겁니다.
*제가 전에 일본에 가서 서점을 찾다가 못 찾아서 물었는데, 이 사람은 반대 방향으로 가던 중이면서도 한 500미터 이상을 걸어와서, 그 서점을 가르쳐 주고는 그 500미터 다시 가는 겁니다. 감동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수덕사 방장 설정스님이, 옛날에 해인사 원당 암에서 아주 힘들게 살 때, 거기에서 고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아주 친절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암에 걸려서 미국에 가서 쥐도 새도 모르게 거기서 세상 떠나려고 갔는데, 문득 한국 사람을 만났는데 그 때 그 원당 암에서 고시 공부하던 사람을 만난 겁니다.
스님을 보니까 완전히 사색이 됐거든요. 당장에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검사해 보니까 암이 4긴가 5긴가 그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미국에 깔려있는 자기 친구들에게 전부 연락해서 최고 좋은 병원 선택하고, 돈이 모아서 삼성회장이 입원해있는 그 병원에 후송시켜서는 아주 최고 기술진들이 살려내서 지금 건강하게 저렇게 있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탄허스님이 일본을 아주 미워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일본에 갈 인연이 돼서, 그 촌사람이 전철 타려고 표 끊으면서 쪼래기를 표 끊는데 놓고 왔어요. 전철을 타고 한 두 정거장쯤 지나 가서야 알고는 야단 난겁니다. 그 속에 돈도 들어 있고 모든 것이 다 들어있는데... 그래 다시 돌아와서 가니까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겁니다. 거기에 감동해서 그 후부터는 “일본은 정직한 사람들니니까 욕하지 말라.”고.. 이것도 일종의 無財七施중의 하나에 들어갑니다.]
6. 第二 饒益行 持戒바라밀
(1) 攝律儀戒
智地甚深難可入이어늘 能以妙慧善安住하야 其心究竟不動搖하니 彼堅固行行斯道로다
[[삼취정계 三聚淨戒; 섭률의계(攝律儀戒)·섭선법계(攝善法戒)·섭중생계(攝衆生戒)로 나뉜다.
섭율의계= 5계·10계·250계, 348계 등 일정하게 제정된 여러 규율위의(規律威儀) 등을 통한 윤리기준.
섭선법계= 선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총섭하는 선량한 마음을 기준으로 하는 윤리원칙.
섭중생계= 일체의 중생을 제도한다는 대원칙에 따르는 윤리기준이다.
이 계율은 대승불교의 『화엄경』·『범망경(梵網經)』· 『성유식론(成唯識論)』 등에 근거한 것으로, 대승·소승, 출가인과 재가인에 관계없이 모두 다 이 계를 받게 된다. 따라서 5계·10계 등을 받는 것을 별수(別受)라고 하는 데 대해 삼취정계를 받는 것은 총수(總受)라고 한다. 이 계는 스승에게 받는 경우도 있지만, 스스로 불전(佛前)에 나아가서 『성유식론』에 있는 대로 “곧바로 마땅히 떠나야 할[所應] 이법(離法)을 멀리 여의겠습니다. 곧바로 증(證)하여야 될 법을 닦아 증하겠습니다. 곧바로 일체 유정들을 널리 이익되게 하겠습니다.”라고 서원(誓願)하면 곧 계를 받는 것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의 원효(元曉)·의적(義寂)·대현(大賢) 등이 그들의 저술에서 이 계율에 대하여 해설한 바 있는데, 그 가운데 원효의 『범망경보살계본사기(梵網經菩薩戒本私記)』에 가장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원효는 섭률의계와 섭선법계만 있고 섭중생계가 없다면, 오로지 자리행(自利行)만 있는 것이 되어 이승(二乘)에 머무를 뿐이고 섭중생계만 있으면 이타행(利他行)만 있고 자리행이 없게 되는 까닭에, 범부와 다를 바 없는 것이 되어, 보리(菩提)의 싹을 돋아나게 할 수 없다고 하였으며, 삼취정계를 다 갖추면 무상보리(無上菩提)의 열매를 감득할 수 있고, 삼취정계야말로 불사약인 감로(甘露)라고 하였다. 그리고 섭률의계는 단(斷)의 덕목(德目)이고, 섭선법계는 지(智)의 덕목이며, 섭중생계는 은(恩)의 덕목이기 때문에, 이 삼덕의 과(果)를 얻으면 그것이 곧 정각(正覺)을 이루는 길이라고 하였다. 또한, 이 삼취정계를 간직함에 따라 중생과 자기의 내심에 갖추고 있는 불성(佛性)·여래장(如來藏)·본각(本覺)·불과(佛果)를 볼 수 있게 됨을 강조하였다.]]
智地甚深難可入(지지심심난가입)이어늘, 지혜의 경지가 깊고 깊어서 들어가기 심히 어려운데
能以妙慧善安住(능이묘혜선안주)하야, 능히 오묘한 지혜로 잘 안주하여
其心究竟不動搖(기심구경부동요)하니, 그 마음이 구경에 흔들림 없으니
彼堅固行行斯道(피견고행행사도)로다. 저 견고함 행하는 이가 이 도를 행하도다.
(2) 攝善法戒 선법을 행하는 계
法界所有悉能入호대 隨所入處咸究竟하야 神通自在靡不該하니 彼法光明行此道로다
諸無等等大牟尼가 勤修三昧無二相하야 心常在定樂寂靜하니 彼普見者行斯道로다
[諸惡莫作(제악막작) 衆善奉行(중선봉행) 여러 가지 악을 짖지 말고 선을 받들어 행하라.
善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또 고정되게 이야기하면 틀려버리니까, 좀 막연하지만 그냥 善法이라고합니다.]
法界所有悉能入(법계소유실능입)호대, 법계의 모든 곳에 능히 다 들어가고
隨所入處咸究竟(수소입처함구경)하야, 들어간 곳을 따라 모두 구경= 철저히 완성하여
神通自在靡不該(신통자재미불해)하니, 신통의 자재함을 다 갖추었으니
彼法光明行此道(피법광명행차도)로다. 저 法光明= 법에 광명한 이가 이 도(선법)를 행하도다.
諸無等等大牟尼(제무등등대모니)가, 대등할 이 없는 大牟尼= 큰 모니는
勤修三昧無二相(근수삼매무이상)하야, 삼매를 힘써 닦아 두 모양이 없고
心常在定하야 樂寂靜(심상재정락적정)하니, 마음이 항상 선정에 있어 적정을 즐기니
彼普見者行斯道(피보견자행사도)로다. 저 普見者= 널리 보는 이가 이 도를 행하도다.
(3) 攝衆生戒
微細廣大諸國土가 更相涉入各差別이어늘 如其境界悉了知하니 彼智山王行此道로다
微細廣大諸國土(미세광대제국토)가, 미세하고 광대한 모든 국토가
更相涉入各差別(갱상섭입각차별)이어늘, 서로 간에 涉入= 관계해 들어감이 각각 차별한데
如其境界悉了知(여기경계실요지)하니, 그와 같은 경계를 모두 요지하니
彼智山王行此道(피지산왕행차도)로다. 저 지혜산왕이 이 도를 행하도다.[지혜의 산중 가장 큰 산=지혜山王.]
(4) 結 맺는 말.
意常明潔離諸垢하야 於三界中無所着하고 護持衆戒到彼岸하나니 此淨心者行斯道로다
意常明潔離諸垢(의상명결이제구)하야, 뜻은 항상 명결하고 모든 때를 벗어
於三界中無所着(어삼계중무소착)하고, 삼계에 집착함이 없으며
護持衆戒到彼岸(호지중계도피안)하나니, 모든 계를 호지하여 피안에 이르니
此淨心者行斯道(차정심자행사도)로다. 이 정심자가 行斯道= 이 도를 행하도다.
7. 第三 無違逆行 어기거나 거슬림이 없는 행
智慧無邊不可說이라 普遍法界虛空界어늘 善能修學住其中하니 彼金剛慧行斯道로다
三世一切佛境界에 智慧善入悉周遍호대 未嘗暫起疲厭心하니 彼最勝者行斯道로다
善能分別十力法하고 了知一切至處道하야 身業無碍得自在하니 彼功德身行此道로다
十方無量無邊界에 所有一切諸衆生을 我皆救護而不捨하니 彼無畏者行斯道로다
智慧無邊不可說(지혜무변불가설)이라. 지혜가 말할 수 없이 가이 없어서
普遍法界虛空界(보편법계허공계)어늘, 널리 법계와 허공계에 두루한데
善能修學住其中(선능수학주기중)하니, 잘 닦고 배워서 그 안에 머무니
彼金剛慧가 行斯道(피금강혜행사도)로다. 저 金剛慧= 금강지혜가 이 도를 행하도다.
三世一切佛境界(삼세일체불경계)에, 삼세의 모든 부처님 경계에 [모든 깨달은 이의 경계에]
智慧가 善入悉周遍(지혜선입실주변)호대, 지혜로 잘 들어가 두루하되
未嘗暫起疲厭心(미상잠기피염심)하니, 잠시도 피로나 싫증낸 적 없으니
彼最勝者行斯道(피최승자행사도)로다. 저 最勝者= 수승한 이가 이 도를 행하도다.
善能分別十力法(선능분별십력법)하고, 십력법을 잘 분별하고
[十力 중첫째이고 또 제가 역점을 두고 설명하는 것이 處非處智力(처비처지력).
處와 非處= 앉을 곳과 설 곳. 옳은 일과 그른 일, 해야 할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잘 분별해서, 자기 분도 아니고 능력도 아닌데 기웃기웃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봐야 그 분야에서 꼴찌밖에 안되는데, 미련 못 버려서 그렇게 기웃거립니다. 쓸데없이 ‘내가 이것이 부족한데, 이것 좀 배워야 되는데...’하는 경우, 좋은 생각이긴 하지만, 집중적으로 자기가 하는 그 부문, 자기가 어느 정도라도 능력을 갖춘 그 분야에 힘을 쓰는 것이 훨씬 소득이 크고, 나중에 빛을 빨리 보게 됩니다. 處非處智力이라고하는 것을 그렇게 부연설명 할 수도 있습니다.]
了知一切至處道(요지일체지처도)하야, 모든 이르를 길을 분명히 알아
[一切至處 일체에 이르는 곳을 요지한다.→ 중생이 죽어서 업으로 태어나는 곳을 아는 것]
身業無碍得自在(신업무애득자재)하니, 신업이 無碍=거침없고 得自在= 자재하니
彼功德身이 行此道(피공덕신행차도)로다. 저 공덕의 몸이 이 도를 행하도다.
十方無量無邊界(시방무량무변계)에 시방의 무량 무변한 세계에 있는
所有一切諸衆生(소유일체제중생)을, 일체의 모든 중생을
我皆救護而不捨(아개구호이불사)하니, 내가 모두 구호하여 버리지 않겠노라 하니
彼無畏者行斯道(피무외자행사도)로다, 저 無畏者= 두려움 없는 이가 이 도를 행하도다.
[우리는 일체 구류중생은 차지하고, 사람도 차별해서 분별하고, 네 종교ㆍ내 종교 차별하는 것이 아직 중생티를 못 벗어서 그렇지만 이 대승법을 공부하는 사람은 일체중생= 卵生ㆍ胎生ㆍ濕生ㆍ化生 들을 공히 다 사랑으로 거둬들여야 하는데, 하물며 사람으로서 다른 종교 믿고, 다른 사상을 가졌고, 다른 나라에 살고, 인종이 다르다고 해서 차별한다는 것은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태평양 바다처럼 넓은 마음에 본래 있지도 않은 경계를 쳐놓고, 차별하면서 살지만, 그것이 무너져버리면 전부 하나입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닌 不二입니다.]
8. 第四 無屈撓行 굴요함이 없는 행[屈 굽을 굴 撓굽을 요]
於諸佛法勤修習하고 心常精進不懈倦하야 淨治一切諸世間하니 彼大龍王行此道로다
了知衆生根不同과 欲解無量各差別하며 種種諸界皆明達하니 此普入者行斯道로다
十方世界無量刹에 悉往受生無有數호대 未曾一念生疲厭하니 彼歡喜者行斯道로다
普放無量光明網하야 照耀一切諸世間호대 其光所照入法性하니 此善慧者行斯道로다
震動十方諸國土를 無量億數那由他호대 不令衆生有驚怖하니 此利世者所行道로다
於諸佛法勤修習(어제불법근수습)하고, 모든 불법 부지런히 힘써 닦고 익히며
心常精進不懈倦(심상정진불해권)하야, 늘 마음 정진하기에 게으르지 않고
[懈倦 이것 참 어렵지요. 24시간 게으르지 않기가 참 어렵고, 설사 24시간 하루쯤은 용맹정진 했다하더라도 이틀 하기는 또 어렵고, 3일하기는 또 어렵고, 한 달하기는 또 어려운 겁니다. 신심이 한 번 났다가 사그라졌다가, 또 났다가 사그라졌다가, 그런 삶을 꾸준히 쉬지 않고 반복하는 그것이 중요한 겁니다.]
淨治一切諸世間(정치일체제세간)하니, 일체의 모든 세간을 청정히 가꾸니
彼大龍王의 行此道(피대룡왕행차)로다. 저 큰 용왕이 이 도를 행하도다.
[부처님을 혹은 용왕이라도 표현합니다.]
了知衆生根不同(요지중생근부동)과, 중생의 근기가 같지 않고
欲解無量各差別(욕해무량각차별)하며, 욕망과 이해가 한량없이 차별함을 了知= 알며
種種諸界皆明達(종종제계개명달)하니, 갖가지 모든 경계에 다 明達= 밝게 통달하니
此普入者行斯道(차보입자행사도)로다. 이 普入者=널리 들어가는 이가 이 도를 행하도다.
十方世界無量刹(시방세계무량찰)에, 시방세계의 한량없는 세상에
悉往受生無有數(실왕수생무유수)호대, 태어난 무수한 존재들에 다 나아가되
未曾一念生疲厭(미증일념생피염)하니, 한 순간도 피로나 싫증 낸 적 없으니
彼歡喜者行斯道(피환희자행사도)로다. 저 환희하는 이가 이 도를 행하도다.
普放無量光明網(보방무량광명망)하야, 널리 한량없는 광명의 그물을 놓아 [光明= 진리, 바른 이치의 가르침]
照耀一切諸世間(조요일체제세간)호대, 일체의 모든 세간을 비추고
其光所照入法性(기광소조입법성)하니, 그 비친 광명이 법의 성품에 들어가니 → 차별 법이나 공성된 평등법에 다 들어가서 [法性= 법의 성품 또는 법과 성품.
법성게의 첫 구절이 法性圓融無二相에서 어떤 선지식은 ‘법과 성품’으로 해석 했습니다. 법은 현상으로 차별 법이고, 성품은 통일된 ‘하나의 자성’으로 보면 ‘법의 성품’이라 해도 되지만 엄격하게 ‘법과 성품’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此善慧者行斯道(차선혜자행사도)로다. 이 선혜자= 좋은 지혜를 가진 사람가 이 도를 행하도다.
[광명= 진리의 빛으로써 법성을 다 비춰서 들어가는 것은 지혜 있는 사람이 할 일이다.]
震動十方諸國土(진동시방제국토)를 시방의 모든 국토를
無量億數那由他(무량억수나유타)호대, 무량 억 나유타의 수를 震動=진동시키되
[震動= 사람들의 마음의 감동을 표현한 것]
不令衆生有驚怖(불영중생유경포)하니, 중생들이 놀라지거나 두렵지 않게 하니
此利世者所行道(차이세자소행도)로다. 利世者= 세간 이롭게 하는 이가 행하는 길이로다.
9. 第五 離痴亂行 어리석어서 어지러움을 떠난 행
善解一切語言法하야 問難酬對悉究竟하며 聰哲辯慧靡不知하니 此無畏者所行道로다
善解覆仰諸國土하야 分別思惟得究竟하고 悉使住於無盡地하니 此勝慧者所行道로다
善解一切語言法(선해일체어언법)하야, 일체 모든 언어의 법을 잘 이해하여
問難酬對悉究竟(문난수대실구경)하며, 어려운 질문에도 마지막까지 답하며
聰哲辯慧가 靡不知(총철변혜미불지)하니, 총명함과 변재와 지혜로 모르는 것 없으니
此無畏者所行道(차무외자소행도)로다. 이 두려움 없는 이가 행하는 길이로다.
[관광객이 가까이 와서 외국어로 물으면 괜히 두려움부터 생기는 겁니다. 그것이 알량한 자존심이 있어서, 我相을 못 버려서 그런 것이지요. 무의식중에 我相이 다 있어서 그렇습니다.]
善解覆仰諸國土(선해복앙제국토)하야, 엎어지고 우러러 있는 여러 형태의 모든 국토를 잘 이해하고
分別思惟得究竟(분별사유득구경)하고, 분별 사유하여 구경= 철저히 꿰뚫어 앎을 얻어서
悉使住於無盡地(실사주어무진지)하니, 모두를 다함없는 경지에 머물게 하니
此는 勝慧者所行道(차승혜자소행도)로다. 이 지혜 수승한 이가 행하는 길이로다.
10. 第六 善現行
功德無量那由他를 爲求佛道皆修習하야 於其一切到彼岸하니 此無盡行所行道로다
超出世間大論師가 辯才第一師子吼로 普使群生到彼岸하나니 此淨心者所行道로다
功德無量那由他(공덕무량나유타)를, 한량없는 나유타의 공덕을
爲求佛道皆修習(위구불도개수습)하야, 불도를 구하기 위해 다 닦고 익혀서
於其一切到彼岸(어기일체도피안)하니, 그 모든 것이 피안에 이르니
此無盡行所行道(차무진행소행도)로다. 이 무진행=다함이 없는 행을 하는 이가 행하는 길이로다.
[불도를 구하기 위해서 그 많고 많은 공덕을 다 修習, 좋은 일이라면 다 닦는 겁니다. 불교는 공덕 닦는 일 뿐이지요.
신라 때의 양지스님이 장육사 불사를 하면서, 기와 나르고ㆍ흙 나르고ㆍ돌 나르고ㆍ나무 나르고ㆍ재목 나르는 사람들에게 노래 지어준 그것이, 아홉 개 鄕歌중 아주 유명한 향가입니다.
오다 오다 오다= 우리 인생은 지난 생에도 왔고, 금생에도 왔고, 다음 생에도 또 온다
오다 서럽더라= 와보니 苦海요 火宅이라.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어서 와보니까 서럽더라
서럽더라 우리네여= 있는 사람ㆍ없는 사람ㆍ벼슬 높은 사람, 그 苦海 중 우리 모두가 다 같이 별 차이 없더라.
공덕 닦으러 오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공덕 닦고 살자는 것이 인생이다.]
超出世間大論師(초출세간대론사)가, 세간을 초월한 큰 논리의 스승이 [大論師 깨달아서 이론에 아주 밝은]
辯才第一師子吼(변재제일사자후)로, 변재 제일인 사자후로
普使群生到彼岸(보사군생도피안)하나니, 널리 군생을 피안에 이르게 하니
부처님의 가르침= 진리의 가르침을 중생들에게 낱낱이 그 이치를 설해주니, 그 群生= 온갖 중생들이 그 법을 듣고 피안에 이르는 것
此淨心者所行道(차정심자소행도)로다. 이 정심자= 청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행하는 길이로다.
11. 第七 無着行
諸佛灌頂第一法에 已得此法灌其頂하고 心恒安住正法門하니 彼廣大心行此道로다
一切衆生無量別을 了達其心悉周遍하고 決定護持佛法藏하나니 彼如須彌行此道로다
能於一一語言中에 普爲示現無量音하야 令彼衆生隨類解하나니 此無碍見行斯道로다
一切文字語言法에 智皆善入不分別하고 住於眞實境界中하니 此見性者所行道로다
諸佛灌頂第一法(제불관정제일법)에, 부처님들이 관정하신 제일의 법
已得此法灌其頂(이득차법관기정)하고, 그 법을 이미 얻어 관정받고
心恒安住正法門(심항안주정법문)하니, 마음이 항상 정법의 문에 안주하니
[正法! 말세가 될수록 유사한 법들이 너무 많이 횡행하고, 심지어 불교 간판을 걸어놓고 불교와는 전혀 반대의 길을 가는 내용들도 너무 많습니다. 당장에는 이득이 되는 것 같아서 그런 행위를 하지만 결과적으로 손해입니다. 정법을 행해야 결과적으로 이익 되는 것이지, 사법을 행해서 눈앞에서는 조그만 이득이 될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오래가는 이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彼廣大心行此道(피광대심행차도)로다. 저 광대심이 이 도를 행하도다.
[부처님공부, 불교공부를 해서 그 수행이 극에 이르면, 부처님의 代를 잇는 길이 자연스럽게 열리게 되는 그것을 굳이 형식적으로 표현해서, 왕이 태자에게 왕위를 계승할 때 4해의 물을 떠다가 머리에 물을 부어주면서 ‘4해를 다스리라.’는 의미로 의식을 진행하는 관정식(灌頂式. 물댈 관ㆍ이마 정)에 비유했습니다. 말하자면 부처님의 능력과 일을 대신할 정도로 법이 높다는 뜻입니다. 無着行만 되어도 벌써 그런 입장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보살계위를 52위 또는 42위로 이야기 하지만, 사실은 엄격한 차별을 나눌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제 1행과 제 2행의 법의 차이가 어떻게 구별되는지, 또는 10주와 10행이 또 어떻게 구별되는지를 설명 하려면, 住와 行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있지만 정작 그 안에 들어가서 전체적인 내용이 분명히 이것은 10주에만 해당되는 법문이고, 또 이것은 확연히 10행에만 해당되는 내용이라고 칼로 두부모 자르듯이 이야기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이것은 제 공부의 부족이겠지만, 모든 경문의 구절을 그렇게 분명하게 나눠지지가 않습니다. 굳이 나눠서 법의 내용를 다르고 차별하게 볼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원융하기 때문에 圓融門(원융문)ㆍ行布門(항포문)으로 나눌 뿐입니다. 펼치면 52위가 되지만, 그것을 원융하게 통섭을 하면 전부 한 가지 이치로 꿰뚫게 된다는 뜻입니다.]
[[수행의 두 문, 항포문과 원융문;
화엄 교학에서는 불살이 불과를 얻기 위한 수행 계위에 양면이 있음을 차례차레 밞아 올라가는 항포차제 수행과 단박에 깨치는 원융수행의 두 문으로 구분했다
항포문은 항포차제문의 줄인 말로, 항포는 순서대로 밞아 간다는 뜻이고, 행이란 순서대로 하는 것을 말하며, 차제도 차례대로와 같은 뜻으로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의 단계를 지나서 마지막의 등각, 묘각의 52 계위(또는 42계위)를 순차적으로 수행애서 이상경인 불과 이르는 것이 항포문이다
그런데 일승화엄의 특징은 원융수행이라, 따라서 화엄경의 기본은 원융문에 있다고 하겠다. 원융이란 하나 속에 전체가 다 있고 전체 속에 하나가 있는, 상섭이다. 상섭은 원융상섭이라고 하는데 서로설로 전부가 다 포섭되어 있어서 떨어져 있지 않은 것을 말한다
항포문은 차제문이라고도 하고 원융문을 상섭문이라도고 하면, 원융문은 만유가 그 본성에 있어 평등하고 원융하다는 것을 밝힌 화엄종의 교의디다. 각각의 계위가 모든 계위를 아울러 포함하고 있으므로 낮은 계위에서도 이미 궁극의 깨달음은 완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씨앗을 하나 심으면 그 씨앗에서 싹이 나고 다음에 줄기가 나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꽃이 피면 열매를 맺고, 열매를 따는 것이 결집으로 이렇게 차례대로 나가는 것이 차제항포이다
그런데 씨앗으로 있을 때도 씨앗이고, 싹이 날 때도 씨앗이고, 줄기가 날 때도 씨앗이고, 꽃이 필 때도 씨앗이기 때문에 땅에 심었던 씨앗과 마지막 꽃에서 맺혀서 열린 열매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것을 원융이라 하면 또 이것이 차제이기도 하고 상섭이기도 한 것이다. 그 씨앗 하나에 싹도, 줄기도, 잎도, 꽃도, 열매도 다 있는 것이다. 또 싹 속에 줄기, 꽃이 다 있고, 열매 속에 씨앗, 잎, 꽃이 다 있으니 원융이자 항포인 것이다. [작성자 아미산]]]
一切衆生無量別(일체중생무량별)을, 일체중생이 한량없이 차별하거늘
了達其心悉周遍(요달기심실주변)하고, 그 모두의 마음에 두루 요달하여
決定護持佛法藏(결정호지불법장)하나니, 부처님 법장을 결정코 수호케 하니
彼如須彌行此道(피여수미행차도)로다. 저 수미산 같은 이= 가장 높은 이가 이 도를 행하도다.
能於一一語言中(능어일일어언중)에, 능히 낱낱의 언어 속에
普爲示現無量音(보위시현무량음)하야, 한량없는 음성을 나타내 보여
令彼衆生隨類解(영피중생수류해)하나니, 저 중생들을 품류에 따라 이해케 하니
此無碍見이 行斯道(차무애견행사도)로다. 이 걸림없이 보는 이가 이 도를 행하도다.
一切文字語言法(일체문자어언법)에, 모든 문자와 언어의 법에
智皆善入不分別(지개선입불분별)하고, 지혜로 잘 들어가되 분별치 않고
[이것은 받아들이고 저것은 물리치는 것이 아니고]
住於眞實境界中(주어진실경계중)하니, 진실한 경계 속에 머무니
[대승불교에서는 소승불교를 배척하지만, 선불교에서는 교학불교를 배척하고, 비밀불교에서는 현교를 배척하고, 현교에서는 또 비밀불교를 배척하고요. 그런 것들이 중생사회에서는 으레 따라다닙니다만, 그 현교나 밀교나 소승교나 대승교나 선불교나 무슨 불교든지 간에 그 나름대로 중생을 위하는 그 의미는 전부 ‘중생을 위하는 길이다.’고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此見性者所行道(차견성자소행도)로다. 이 견성한 이가 행하는 길이로다.
[견성한 사람ㆍ성품을 본사람ㆍ참 성품ㆍ참마음ㆍ참나ㆍ참사람ㆍ참 생명을 제대로 꿰뚫어 본 사람이 이 도를 행했더라. 그것은 하나의 평등이고, 하나의 원리고, 하나의 근본입니다. 그 근본을 알면 그 나머지 어떤 차별된 현상들은 무엇이든지 용납이 되고, 이리저리 그 쓰임을 다 알게 되고, 해석이 다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근본을 우리가 망각해버리고 다른 것만 쫓아가게 되면 곳곳에 걸립니다.]
'화엄경 원문과 해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1. 십행품(十行品) 16 (0) | 2021.08.28 |
---|---|
21. 십행품(十行品) 15 (0) | 2021.08.27 |
21. 십행품(十行品) 13 (0) | 2021.08.25 |
21. 십행품(十行品) 12 - 진실행(眞實行)-지바라밀 (0) | 2021.08.24 |
21. 십행품(十行品) 10 - 선법행(善法行)-력바라밀 (0) | 2021.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