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名;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또는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陁大道)'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번역

송나라 급남(及南편찬(編纂), 송나라 계환(戒環해석개운조사 능엄경 참조

 

於是阿難及諸大衆,聞佛如來無上慈誨祇夜、伽陁,雜糅精瑩妙理淸徹,心目開明歎未曾有。

이에 아난 존자와 대중들이 불여래(佛如來)의 위 없이 자비로운 가르침의 기야(祇夜) 가타(伽陀)  어울려 있으면서도 정밀하고 묘하게 밝아서 묘한 이치가 맑게 사무처서, 마음과 눈이 환하게 열려서 이전에 들어 본적이 없는 미증유(未曾有)의 법문을 감탄하였다.

 

阿難合掌頂禮白佛:“我今聞佛無遮大悲,性淨妙常眞實法句,心猶未達六解一亡舒結倫次。

惟垂大慈再愍斯會及與將來,施以法音洗滌沈垢。”

아난 존자가 합장하고 머리를 대어 예를 올리는 정례(頂禮)를 올리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지금 부처님께서 차별 없는 무차대비(無遮大悲)로 설하여 주신 '성품이 맑고 묘하며 항상한 성정묘상(性淨妙常)'이라는 진실한 법구(法句)를 들었으나, 마음에는 아직도 여섯(六)이 풀리면 하나(一)까지 없어진다는, 매듭을 푸는 차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디 큰사랑을 내리시어  법회의 대중과 미래중생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다시 한번 법음(法音, 법문)을 베푸셔서 깊게 잠긴 찌든 번뇌의 때를 깨끗이 씻어주소서!”

ㅡ무차대비(無遮大悲)는 널리 제도하는 것을, 

'성정묘상(性淨妙常)'은 거짓됨과 진실이 불이(不二)한 본성(本性), 

'찌든 번뇌의 때'는 미세하게 맺힌 의혹을 말한다. 

 

卽時,如來於師子座,整涅槃僧、斂僧伽梨,覽七寶机,引手於机,取劫波羅天所奉花巾,

於大衆前綰成一結,示阿難言:“此名何等?”

그러자 여래께서 사자좌(師子座)에서 열반증(涅槃僧, 하의 내복)을 정돈하시고 승가리(僧伽梨, 겉옷 상의)를 거두어 여미시고,

손으로보궤(七寶机,  칠보책상)을 끌어당기시고는, 겁바라천(劫波羅天, 야마천)이 바친 꽃수건인 화건(華巾)을 잡으시고, 대중 앞에서 하나의 매듭을 만들어 아난 존자에게 보이시며 말씀하셨다.

“이것이 무엇인가?”

ㅡ겁바라(劫波羅)는 시분(時分)의 야마천(夜摩天),

'얽을 관(綰)'이란 잡아 매어서 매듭을 짓는 것이고, 화건(華巾)은 하나의 성품을,

매듭은 허망한 행동, 즉 6 가지의 허망함을 비유한 것으로, 곧 망령된 행동이 업(業)을 맺는 것이라는 비유이다. 

 

阿難大衆俱白佛言:“此名爲結。”

於是如來綰疊花巾又成一結,重問阿難:“此名何等?”

阿難大衆又白佛言:“此亦名結。”

如是倫次綰疊花巾摠成六結,一一結成,皆取手中所成之結持問阿難此名何等?

阿難大衆亦復如是,次第酬佛此名爲結。

아난 존자와 대중이 함께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것은 매듭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여래께서 첩화건(疊華巾)에 다시 또 한 개의 매듭을 맺으시고는 다시 아난에게 물으셨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아난과 대중들이 함께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그것도 매듭입니다.”

이와 같이 차례로 첩화건을 매어 모두 6 개의 매듭을 만드셨는데, 하나의 매듭을 만드실 때마다 화건으로 만든 매듭을 손에 들고 아난 존자에게 ‘이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으셨으며, 

아난 존자와 대중도 그와 같이 차례로 ‘그것은 매듭입니다’라고 부처님께 답하였다.

 

佛告阿難:“我初綰巾,汝名爲結,此疊花巾先實一條,第二第三云何汝曹復名爲結?”

부처님께서 아난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처음 화건을 맺었을 때 네가 매듭이라고 하였으니, 이 첩화건은 본래 하나의 가닥일 뿐이었거늘, 두 번째도 세 번째에도 너희들은 다시 매듭이라고 하는 것인가?”

 

阿難白佛言:“世尊!此寶疊花緝績成巾,雖本一體,如我思惟:‘如來一綰得一結名,若百綰成終名百結,

何況此巾秖有六結,終不至七亦不停五。’云何如來秖許初時,第二第三不名爲結?”

아난 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보배 꽃 실로 짠 보첩화(寶疊華)는 비록 본래는 하나이나, 저의 생각으로는 여래께서 한 번 맺으셨으면 한 매듭이라고 하며, 만약 백 번 맺으실지라도 백 매듭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수건에는 단지 여섯의 매듭인 육결(六結) 뿐이라서, 결국 일곱의 매듭도 되지 못하고, 다섯의 매듭에도 머물지 않았습니다,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다만 처음 하나인 초시(初時)만을 인정하시고,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매듭으로 인정하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佛告阿難:“此寶花巾,汝知此巾元止一條,我六綰時名有六結,汝審觀察,巾體是同因結有異。於意云何,初綰結成名爲第一,如是乃至第六結生,吾今欲將第六結名成第一不?”

부처님께서 아난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알다시피 이 보화건(꽃 수건)은 원래는 하나였으나, 내가 여섯 번 매듭을 맺었을 때에 여섯 매듭의 육결(六結)이라고 하였다.

너는 자세히 살펴보아라. 수건 자체는 같은 것이지만, 매듭으로 인하여 달라진 것이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처음 맺은 매듭을 첫 번째라 하였고, 이렇게 여섯 번째 매듭까지 생겼으니, 내가 지금 여섯 번째 매듭을 첫 번째라고 할 수 있겠는가?”

 

“不也,世尊!六結若存,斯第六名終非第一,縱我歷生盡其明辯,如何令是六結亂名。”

아난 존자가 답하기를, 

“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여섯 번째 매듭이 있으면 이는 여섯 번째 매듭이지 첫 번째 매듭이 될 수 없습니다.

비록 제가 여러 생을 두고 끝까지 분별하여 밝히고자 할지라도 어떻게 이 여섯 번째 매듭으로 하여금 혼란스럽게 이름할 수 없겠습니다?”

 

佛言:“六結不同,循顧本因一巾所造,令其雜亂終不得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여섯 개의 매듭이 같은 것은 아니나 근본 원인을 따져보면, 한 수건에서 만들어진 것이니, 그것을 뒤섞어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끝내 성립될 수 없느니라.

 

則汝六根亦復如是,畢竟同中生畢竟異。”

곧 육근(六根)도 이와 같아서, 필경(畢竟)에는 같은 가운대 필경(畢竟)에 다른 것들이 생긴 것이니라.”

 

佛告阿難:“汝必嫌此六結不成,願樂一成,復云何得?”

부처님께서 아난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 여섯 매듭이 하나로 되어있지 않는 것을 싫어하여 반드시 하나이기를 원한다면, 다시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阿難言:“此結若存,是非鋒起於中自生,此結非彼彼結非此,如來今日若摠解除,

結若不生則無彼此,尚不名一,六云何成?”

아난 존자가 말씀드렸다.

“이 매듭이 만약 그대로 있게 되면 시비(是非)가 무성하게 일어날 것으로, 그 가운데에서 자연히, ‘이 매듭은 저 매듭이 아니다’ ‘저 매듭은 이 매듭이 아니다’라고 하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여래께서 오늘 만약 모든 매듭을 풀어서 매듭이 생기지 않게 하신다면,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는 분별이 모두 없어져서, 오히려 하나라고 이름할 것까지도 없을 것인데, 어찌 여섯 개의 매듭이 성립 되겠습니까?”

ㅡ'하나'는 근본 업식을 말한 것으로, 무명의 훈습으로 생긴 식(識)이다.

'여섯 개의 매듭, 육결(六結)'은 육근으로, 

'기신론(起信論)'에서 말한 바와 같이 '생멸인연은 중생심(衆生心)에 의해서 의식이 변한 것이다'한 것과 같이 아뢰야식에 의해서 무명이 생겨 불각(不覺)이 일어나서 볼 수도 있고 나타낼 수도 있으며, 경계에 집착할 수도 있도 있는 생각이 상속되므로 '의식(意識)'이라 이름 한 것이지만, 그 의식에는 또 다른 5 가지 이름이 있으니 ①업식(業識), 무명의 힘으로 불각심이 움직이는 것이고,②전식(轉識), 움직여진 마음에 의해서 상(相)을 보는 것.③현식(現識), 일체의 경계를 나타내는 것이 마치 맑은 거울에 모든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것이고, ④지식(智識), 물들고 깨끗함을 분별하는 것이고, ⑤상속식(相續識), 생각이 상응하여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집착하여 취함이 더욱 깊어져서 자아(自我)와 아소(我所)를 헤아리는 허망한 집착으로 사물을 따라 반연(반攀緣)하고 육진(六塵)을 분별하는 것을 의식(意識) 또는 분지식(分支識) 또는 분별사식(分別事識)이라 한다.무명의 훈습으로 일어나는 식에 비록 5 가지의 이름이 있으나, 하나의 생각일 뿐인 것으로, 여섯이 사라지면 구생혹과 분별혹의 두 가지 아집(我執)이 사라질 것이고, 하나가 없어지면 구생혹과 분별혹, 2 가지의 법집(法執)도 사라질 것이다.

 

佛言:“六解一亡亦復如是。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섯이 풀리면 하나까지 없어지는 이치도 이와 같으니라.

ㅡ육결(六結)이 다 풀리면 일진(一眞)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여섯 매듭을 통하여 본성을 알 수가 있다. 부처님은 망심(妄心)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하여 진심(眞心)을 설명하였지만, 실은 망심을 떠나서 진심을 말할 수 없다.

망상은 가짜이고 변한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변하지 않는 상주진심을 설명하지만, 진심이 없으면 망상이 일어나지 않고, 망상이 없으면 상주진심을 찾을 수가 없다.

마치 거울에 비친 물상과 거울의 허명한 성질은 하나가 없으면 나머지도 없는 것과 같은 것으로, 오온도 마찬가지이다. 오온(색수상행식)을 통하여 '나'라는 것을 알 수가 있지만, 만약 '내'가 없으면 오온은 분해되어 흩어져서 없어져 버린다.

따라서 변하지 않는 나와 변하는 오온은 다른 것 같으면서도 같은 놈이고, 또한 같은 것 갖지만 다른 놈이다.

우리는 오온과 근진식을 통하여 '아. 진심이 있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다. ㅡ향적법진

 

由汝無始心性狂亂,知見妄發發妄不息,勞見發塵如勞目睛,則有狂花於湛精明,無因亂起一切世閒山河、大地、生死、涅槃,皆卽狂勞顚倒花相。”

네가 시작이 없는 무시로부터 심성(心性)이 어지럽게 날뛰는 광란(狂亂)한 까닭에, 알고 보는 지견(知見)이 허망하게 일어나고, 그렇게 생겨난 허망함이 끊어지지 않아서, 보는 견(見, 주체, 작용)이 피로하여져서 티끌번뇌의 진상(塵相)이 생기는 것이 마치 눈이 피로하여지면 곧 허공에서 어지러운 헛꽃의 광화(狂華)가 생기는 것과 같으니,

맑고 밝은 담정명(湛精明)한 것에 까닭 없이 일체 세간의 산과 강과 대지와 생사와 열반이 어지럽게 일어났으니,

이것은 모두가 곧 광란(狂亂)에 의한 피로로 인하여 생긴 전도된 광화상(狂花相)이니라.”

ㅡ앞에서는 맺히게 된 혹업(惑業)을 밝히셨고, 여기에서는 맺히게 하는 광망(狂妄)한 마음을 밝혔다.

첫째, 심성광란(心性狂亂) 허망한 경계를 맺는 것이 마치 피로한 눈이 광화를 보는 것과 같이 마음이 착각을 일으켜서 무명(無明)이 생기는 불각(不覺)이고, 

둘째, 지견망발(知見妄發) 전식(轉識)과 현식(現識)으로, 무명으로 인하여 견분(見分)이 생기고, 

셋째, 노견발진(勞見發塵) 상분(相分)이 생긴 것으로, 육진(六塵)을 분별하여서 맺어지는 것을 보여준 것이지 맺어지게 하는 광심을 밝힌 것이 아니다.

즉, 무시심성광란(無始心性狂亂)은 무명으로 인한 불각(不覺)이고, 

지견이 허망하게 일어나는 지견말발(知見妄發)은 전식(轉識)과 현식(現識)이고, 

허망함이 끊어지지 않는 발망불식(發妄不息)은 지식(智識)과 상속식(相續識)이고, 

보는 견(見, 주체, 작용)이 피로하여지는 여노목정(如勞目睛)은, 보는 견이 피로하여지면 분지식(分支識, 의식)이고, 

매듭이란 곧 속박(束縛)한다는 뜻과 같은 것으로 눈이 색(色)에 맺어진 것도 아니며, 색이 눈에 맺어진 것도 아닌, 탐애(貪愛)를 매듭이라 한 것이다.

허공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눈에 이상이 있는 것과 같이, 대상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대상을 보는 마음이 허물이다. 세상이 달리 보이면 얼른 자기 마음을 살펴보고 점검해야 된다. 대상은 그대로인데 내 마음이 대상을 다르게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진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미혹하는 순서는 근본으로부터 아뢰야식 → 무명 → 삼세(三細) → 육진(六麤)이고,

깨닫는 순서는 거친 추(鹿)에서 미세한 세(細)로 들어가야 한다.

육근(주관)이 사라지면 육진(객관)도 소멸한다. 원인인 육근이 소멸되면 마음의 더러움도 사라지고 모든 허망이 사라져 없어지면 허망한 것이 어디에 기댈 수 있겠는가? 오직 참(眞)만 남는다.
봄여름 가을이 지나야 겨울이 오는 것과 같이, 매듭, 육근(六根)은 차례차례 풀어야 한다.  

①아공(我空) 안공(人空), 인무아(人無我)

②법공(法空), 법해탈(法解脫), 법무아(法無我)

③구공(俱空)

④무생법인(無生法忍) 순이다.

육근을 푸는 방법은 동(動) → 정(靜) → 문(聞) → 각(覺) → 공(空) →멸(滅)의 순서이다.

소리가 날 때 마음이 소리에 끌려가는 것이 동결(動結)이고,

소리가 그친 후 마음이 고요함에 끌려가는 것이 정결(靜結)이고,

소리가 있든 없든 마음이 소리를 아는 놈에 끌려가는 것이 문결(聞結)이며, 여기까지 해결하면 아공(我空)을 얻는다.

그리고 내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에 끌려가는 것이 각결(覺結)이고,

그 자리가 텅 비었다는 것에 끌려가는 것이 공결(空結)이며, 여기까지 해결하면 법공(法空)을 얻는다.

그 후 아공과 법공을 다 제거했다고 하는 것에 끌려가는 것이 멸결(滅結)이며, 여기까지 해결하면 구공(具空)을 얻는다.

따라서 아공(我空)을 얻고 법공(法空)을 얻은 후 구공(具空)까지 생기지 않아야 바른 깨달음을 얻으며, 마음에 깨달았다는 어떠한 흔적조차도 남아있지 않아야 비로소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 것이다.ㅡ향적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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