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名;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또는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 반랄밀제) 번역, 송나라 급남(及南) 편찬(編纂), 송나라 계환(戒環) 해석
수능엄경(首楞嚴經 Surangama Sutra) 1권 4
▷ 4. 어두운 곳에 감추어진 장암(藏暗)이 마음이다.
阿難白佛言:“世尊!我今又作如是思惟:‘是衆生身,府藏在中竅穴居外,有藏則暗有竅則明”
今我對佛,開眼見明名爲見外,閉眼見暗名爲見內,是義云何?”
아난 존자가 부처님께 말씁드리기를,
“세존이시어, 제가 다시 생각해 보니, 중생의 몸을 보면 5장(藏)ㆍ6부(腑)는 몸속에 들어있고,
규혈(竅穴, 구멍)들은 밖에 있으므로,
마음이 부장(腑藏)에 있는 것이라면 어두우나, 구멍에 있는 것이라면 밝은 것이 되겠습니다.
지금 제가 부처님을 마주하여서 눈을 뜨고 그 밝음을 보는 것을 몸 밖을 보는 견외(見外)라 하고,
눈을 감고 어둠을 보는 것은 몸속을 보는 견내(見內)라고 한다면, 이러한 뜻은 어떻습니까.”
ㅡ아난 존자의 네 번째 주장으로, 눈을 뜨면 밝은 밖을 보는 개안견명(開眼見明)이고, 눈을 감으면 어두운 몸속을 보는 폐안견암(閉眼見暗)으로, 마음은 어두운 몸 속에 있는, 장암(藏暗)하는 것이라 하였다.
▷ 장암(藏暗)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파(破)하다.
佛告阿難:“汝當閉眼見暗之時,此暗境界爲與眼對?爲不對眼?若與眼對,暗在眼前云何成內?若成內者,居暗室中無日月燈,此室暗中皆汝焦府?若不對者,云何成見?若離外見內對所成,合眼見暗名爲身中,開眼見明何不見面?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눈을 감고 어둠을 볼 때, 그 어두운 경계가 눈과 상대하여 마주 하는가?
눈과 상대하여 마주하지 않는가?
만약 눈과 상대하여 마주한다면, 어둠이 눈앞에 있는 것으로, 어떻게 몸속이 성립될 수 있겠으며?
만약 눈앞의 어두움으로 몸속이 성립된다고 한다면, 해와 달과 등불도 없는 암실(暗室)에 있을 때, 그 방안의 어둠은 온통 너의 내장인 초부(焦腑)이겠구나!
만약 어둠이 눈과 마주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보는 것이 성립될 수 있겠는가!
만약 바깥을 보는 것을 떠나서 안을 마주하는 것이 성립된다고 한다면,
눈을 감고 어둠을 보는 것을 몸속을 보는 것이라 할 것이며,
눈을 뜨고 밝음을 볼 때에는 어찌하여 스스로의 얼굴을 못 보는 것인가?
ㅡ눈 앞의 경계를 밖을 보는 것이라 하고, 몸 속(身內)의 경계를 안을 마주하는 것이라고 하였으니, 앞에서는 눈을 마주하는 것으로써 맊이라 하여서 안이 성립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지금 비록 밖으로 보는 것을 떠나고 안을 마주하는 것이 이루어진다고 할지라도 이는 곧 눈이 되돌아 보는 것이다. 또 눈을 감았을 때, 몸 속을 되돌아 볼 수 있다면 눈을 떴을 때에는 마땅히 자신의 얼굴을 보아야 할 것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若不見面,內對不成。見面若成,此了知心及與眼根乃在虛空,何成在內?
若在虛空,自非汝體。卽應如來今見汝面亦是汝身,汝眼已知身合非覺,必汝執言身眼兩覺應有二知,
卽汝一身應成兩佛。是故應知汝言:‘見暗名見內者。’無有是處。”
만약 스스로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면, 안을 마주하여 본다는 말도 성립되지 않으리라!
스스로의 얼굴을 보는 것이 성립된다면, 이 분별하여 아는 마음은 눈과 함께 허공에 있어야 할 것이거늘,
어떻게 몸 속을 보는 것이 성립될 수 있겠는가!
만약 허공에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 자체로써 네 몸이 될 수 없을 것이며,
이 여래가 지금 네 얼굴을 보는 것도, 마땅히 네 몸을 보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하다면 허공에 있는 네 눈이 이미 알아차렸을지라도, 몸은 아직 깨닫지 못해야 할 것이나,
네가 끝까지 고집하여 몸과 눈, 둘 다 알아차린다고 한다면, 당연히 두 개의 아는 작용이 있어야 할 것이니,
네 한 사람이 마땅히 두 부처를 이뤄야 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어둠을 보는 것으로 몸속을 본다는 네 말은 옳지 않은 것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ㅡ돌이켜 보는 이치가 없음을 반복하여 밝힌 것으로, 너의 눈은 이미 알고 있을지라도 몸은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이미 허공에 있으므로 자연히 너의 몸이 아닐 것이거늘, 만약 둘 다 지견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두 몸이 되는 것이다.
*눈을 감고 보는 어두움도 하나의 경계일 뿐이다.
▷5. 합하는 곳을 따라 마음이 있는 수합(隨合)하는 것이다.
阿難言:“我常聞佛開示四衆:‘由心生故,種種法生;由法生故,種種心生。’
我今思惟,卽思惟體實我心性,隨所合處心則隨有,亦非內、外、中閒三處。”
아난 존자가 말씀드리기를,
“부처님께서 사부대중(四部大衆)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여러 가지의 종종법(種種法)이 생기고,
법이 생긴 까닭에 여러 가지 마음의 종종심(種種心)이 생긴다’고 하시는 것을 제가 항상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 이 말씀을 사유(思惟)하였으며, 이 사유하는 자체가 바로 저의 심성(心性)으로,
저의 육근과 경계(육경, 대상)가 합하는 곳을 따라서 마음도 있는 것이므로,
안이나 밖이나 중간의 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ㅡ아뢰야식의 한 생각이 망령되면, 이 것이 변하여 몸(身)과 세계(器界)가 생겨 나는 것이니, 마음이 생김으로 인하여 법이 생기고, 또 경계의 바람이 움직이면, 의식의 물결이 일어나나니, 이는 법이 생김으로 인하여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마음과 법이 서로 생겨나면 경계를 따라 생각하는 것이 곧 마음의 본체인 것이니, 그래서 마음과 법이 어울리는 곳이 마음이 있다고 한 것이다.
ㅡ아난 존자의 다섯 번째의 주장으로 마음은 경계(대상)를 따라 합하는 곳에서 생기는, 수합(隨合)하는 것으로,
마음은 육근(六根) ㅡ 육경(六境, 육진六塵) ㅡ 육식(六識)이 합할 때 생기는 것인데, 아난 존자는 눈이 경계를 보고 안식(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마음이라고 하였다.
육근(六根) ㅡ 육경(六境, 육진六塵) ㅡ 육식(六識)에서, 육식은 경계를 따라 일어나는 반연심으로, 좋은 것을 보고 좋아하고, 나쁜 것을 보고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일어나고 멸하는 것과 같이, 육진경계를 따라 변하고 생주이멸하는 것으로써 상주진심이 아니다.
마음이 눈을 뜨면 밝은 밖을 보는 개안견명(開眼見明)이고, 눈을 감으면 어두운 몸속을 보는 폐안견암(閉眼見暗)이거나, 그 중간에 있는 것이 아닌, 주관(육근)과 객관(육경 대상)이 합칠 때 떠오르는 생각의 육식(六識)을 마음이라고 한 것이다.
ㅡ여기에서의 법은, 해당 사물에 대한 앎의 해(解), 인식, 요해, 요별, 지식을 낳게 하는 뜻으로, 사물과 사물 사이에 작용하는 법칙적 관계를 뜻한다.
▷수합(隨合)하는 것이 아님을 밝히시다.
佛告阿難:“汝今說言,‘由法生故種種心生,隨所合處心隨有’者,是心無體則無所合。
若無有體而能合者,則十九界因七塵合。是義不然!若有體者,如汝以手自挃其體,汝所知心爲復內出?
爲從外入?若復內出還見身中;若從外來先合見面。’”
부처님께서 아난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법(法, 여기에서의 법은 대상, 사물, 경계)이 생겨나는 까닭에 여러 가지 마음의 종종심(種種心)이 생기는 것으로, 그 육근과 육경이 합하는 곳을 따라 마음도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마음의 자체가 없는 무체(無體)라면 합할 수 없을 것이며,
만약 없는 것일지라도 합할 수 있다고 한다면, 19계(界)가 7진(塵, 경境)을 따라 합한다는 말이되는 것이니,
그러한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니라.
만약 자체가 있는 유체(有體)라면, 손으로 네 몸을 찔러 보아라. 그 아는 마음이 안에서 나오는 것인가?
밖에서 들어오는 것인가?
안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몸의 안속을 보아야 할 것이고,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라면 마땅히 얼굴을 보아야 할 것이다.”
ㅡ생각하는 그 자체를 마음이라고 한 것은 다만 쓸데없는 생각이므로 그 본체가 있고 없음을 힐난하신 것이다. 가령 마음의 본체가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한갓 이름만 있는 것이니, 어는 곳을 따라 어울린다고 하겠는가? 십구계(界)나 칠진(塵, 경境)과 같아서 다만 헛된 이름일 뿐이다. '만약 본체가 있다고 한다면, 어는 곳에 있겠는가?'라고 물으시면서 몸을 찔러서 징험하게 하여서 마음의 본체가 사실은 없는 것임을 밝히셨다.
ㅡ19계(界)가 아닌, 육근(六根) ㅡ 육경(六境, 육진六塵) ㅡ 육식(六識)의 18계이고,
7진(塵)이 아닌 6진(塵, 육경)인 것이다.
阿難言:“見是其眼,心知非眼,爲見非義。”
아난 존자가 말씀드리기를,
“보는 것은 눈이지만, 마음으로 아는 것은 눈이 아닌데, 마음이 본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ㅡ아난 존자의 해명으로, 마음은 다만 능히 알기만 하는 것이므로 본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는 보는 것은 마음에 있는 것으로, 눈만으로는 본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 까닭이다.
佛言:“若眼能見,汝在室中門能見不?則諸已死尚有眼存應皆見物。若見物者,云何名死?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눈만으로 능히 보는 것이라 한다면, 네가 방안에 있을 때, 문(門)으로 능히 볼 수 있는가?
그러하다면, 이미 죽은 사람도 아직 눈을 가지고 있으므로, 모든 물건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니,
만약 물체를 볼 수 있다면 어찌 죽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ㅡ문은 볼 수 있는 것은 마음에 있음을 비유하였고, 죽은 것은 눈만으로는 보지 못한다는 것을 밝히신 것이다.
▷합하는 곳을 따라 마음이 있음을 자세히 밝힘.
阿難!又汝覺了能知之心若必有體,爲復一體?爲有多體?今在汝身,爲復遍體? 爲不遍體?
아난아, 또한, 만약 너의 깨달아 아는 마음이 분명한 체(體)가 있는 것이라면,
그 체는 하나인 일체(一體)인가? 여럿의 다체(多體)인가?
지금 네 몸에 두루 한 편체(遍體)인가?
두루 하지 않은 불편체(不遍體)인가?
若一體者,則汝以手挃一肢時,四肢應覺,若咸覺者,挃應無在。若挃有所,則汝一體自不能成。
만약 그 체가 하나인 일체(一體)이라면, 네가 손으로 한쪽 팔을 찔렀을 때,
너의 4지(四支)가 다 같이 그것을 느껴야 할 것이고,
만약 너의 사지가 모두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면, 마땅히 찌른 곳이 따로 없을 것이며,
그러나 찌른 곳이 따로 있다면, 체가 하나란 뜻은 저절로 성립될 수 없을 것이다.
ㅡ한 개의 몸이 아님을 밝힌 것으로, 있는 곳이 없다는 무재(無在)는 정해진 곳이 없음은 말한 것이다.
若多體者,則成多人。何體爲汝?
만약 체가 여럿의 다체(多體)라면, 여러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거늘, 어느 체를 '너'라고 할 수 있겠는가?
若遍體者,同前所挃。
만약 네 몸에 두루 한 편체(遍體)라고 한다면, 앞에서와 같이 한쪽 팔을 찔렀을 때, 몸 전체가 다 느껴야 할 것이며,
若不遍者,當汝觸頭,亦觸其足,頭有所覺,足應無知。
今汝不然,是故應知,隨所合處心則隨有,無有是處。”
만약 네 몸에 두루 하지 않은 불편체(不遍體)라면, 너는 머리를 부딪치고, 또 발도 부딪쳤을 때, 머리가 느낌이 있어야 할 것이만, 발은 당연히 아무 느낌도 없어야 할 것이나,
이와 같지 않으므로, 그 합하는 곳을 따라서 마음이 따라 있다는 네 말은 옳지 않은 것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법(法), 불교에서의 법의 뜻은 매우 복잡하게 여러 가지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교설(敎說)이나 성전(聖典)의 교법(敎法),
최고의 진리나 깨달음의 내용,
일체의 현실 존재로 하여금 현재의 상태로 존재하게 하고 있는 법칙과 기준의 법칙(法則),
인간이 실천하여 생활해야 할 도리 · 도(道) 또는 규정으로서의 도리(道理),
존재, 실체: 객관적으로 독립된 실체 또는 존재,
법(법칙)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는 유형 · 무형, 심적 · 물적의 일체 존재(存在, 현상), 즉 의식의 대상이 되는 일체법(一切法)으로도 사용되는데, 이와 같이 법을 일체의 존재 또는 모든 존재라고 보는 견해는 불교 독자의 것이며, 법에 관한 다방면의 연구가 불교의 중요한 과제이다. 특히, 원시불교에 이은 부파불교의 시대에서는 모든 존재(일체법)를 분석하여 고집멸도의 사성제를 뚜렷히 밝히는 작업이 크게 일어났으며, 이러한 분석법은 후대의 대승불교의 유가유식파의 유식론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위키.
‘법(法)’은 인연가화합(因緣假和合)으로 상주의 실체가 없는 것이나, 자성을 지키고 알게 하는 궤지(軌持), 즉 자성을 보존하고 본보기로 하여서 그 사물에 대한 요해심(了解心)을 내게 하는 것을 말하며,
자아(我)와 법(法), 그 둘은 모두 갖가지의 모습들로 바뀌어 생겨나는(轉) 것이다. -성유식론(成唯識論) 제1 권 1
*18계(十八界)에서 계(界, dhātu, dhātu, 영어: realm)는 법(法)의 종류(種類, gotra) 또는 종족(種族)의 뜻이다.
18계는 하나의 산(山)에 금(金) · 은(銀) · 동(銅) · 철(鐵) 등의 다양한 광물이 있는 것과 같이, 한 사람의 몸(所依身소의신)에 18종의 법(法)인 실체 또는 요소가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각 사람의 인생의 흐름, 즉 5온의 상속(相續)에서도 이들 18종 법(法)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6근(六根): 주관의 작용 기관
안계(眼界): 시각 기관, 즉 눈
이계(耳界): 청각 기관, 즉 귀
비계(鼻界): 후각 기관, 즉 코
설계(舌界): 미각 기관, 즉 혀
신계(身界): 촉각 기관, 즉 몸
의계(意界): 마음(6식, 심왕, 심법)의 작용 기관, 즉 의근(意根)
6경(六境): 객관
색계(色界): 시각 기관의 지각 대상, 즉 색깔이나 형태(모양과 크기)를 가진 물질 일반, 즉 소리 · 냄새 · 맛 · 감촉을 제외한 모든 물질적 성질
성계(聲界): 청각 기관의 지각 대상, 즉 소리
향계(香界): 후각 기관의 지각 대상, 즉 냄새
미계(味界): 미각 기관의 지각 대상, 즉 맛
촉계(觸界): 촉각 기관의 지각 대상, 즉 감촉
법계(法界): 마음작용 및 마음작용의 대상
마음작용으로는 탐욕 · 성냄 · 어리석음 · 탐욕 없음 · 성냄지 않음 등이 있으며, 마음작용의 대상에는 특히 무위법(열반 · 진여 · 법성 등)이 포함되며, 무위법을 제외하면 마음작용의 대상은 대체로 개념(또는 비물질적 사물)이라 할 수 있다.
6식(六識): 마음(6식, 심왕, 심법), 주관
안식계(眼識界): 색깔과 형태를 대상으로 하는 마음, 즉 시각
이식계(耳識界): 소리를 대상으로 하는 마음, 즉 청각
비식계(鼻識界): 냄새를 대상으로 하는 마음, 즉 후각
설식계(舌識界): 맛을 대상으로 하는 마음, 즉 미각
신식계(身識界): 감촉을 대상으로 하는 마음, 즉 촉각
의식계(意識界): 법계(法界, 전5식의 대상을 제외한 기타)를 대상으로 하는 마음, 즉 제6식 또는 제6 의식 ㅡ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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