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등 지음
三藏法師 玄奘 奉 詔譯 현장(玄奘) 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제 8권 6
有義一切皆通二斷,論說預流果已斷一切一分有支,無全斷者故。若無明支唯見所斷,寧說預流無全斷者?若愛、取支唯修所斷,寧說彼已斷一切支一分?
호법의 정의로써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일체 모두가 두 가지의 단멸에 통한다는 것이다.
논서, '유가사지론' 제10권에서 말하기를 “예류과는 이미 일체에서 일부분의 지분인 유지(有支)을 단멸하였으나, 전부 단멸한 이는 없다”고 한 까닭이니,
만약 무명의 지분은 오직 견도에서 단멸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면, 어째서 예류과에서는 전부 단멸한 자가 없다고 말하겠는가?
만약 애(愛)ㆍ취(取)의 지분이 오직 수도에서 단멸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면, 어째서 '유가사지론' 제10권에서 이미 모든 지분의 일부분을 단멸했다고 말하겠는가?
又說全界一切煩惱皆能結生,往惡趣行唯分別起煩惱能發。不言潤生唯修所斷,諸感後有行皆見所斷發,
또한 삼계의 일체 번뇌 모두는 능히 다음 생(生)을 받는다고 '유가사지론' 59권에서 말하였으며,
악취(惡趣)에서 왕래하는 행(行)은 오직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번뇌만을 능히 일으킨다고 '유가사지론' 59권에서 말하였다.
생을 촉진하는 윤생(潤生)은 오직 수도에서 단멸될 뿐이며, 모든 미래세의 존재를 초감하는 행 모두가 견도에서 단멸되는 것으로써 일으킨다고는 말하지 않았으니,
ㅡ모든 성스러운 가르침 중에서 태어남을 촉진하는 윤생(潤生) 미혹은 오직 수도에서 단멸되는 수소단(修所斷)일 뿐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삼계의 번뇌가 능히 다음 생을 받게하는 결생(結生)하는 것기 때문이며,
역시 모든 미래세의 존재인 후유(後有)를 초감하는 행(行)을 모두 견도에서 단멸되는 견소단(見所斷)으로써 일으킨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오직 악취(惡趣)의 행만이 분별의 미혹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견소단(見所斷, darśana-prahātavya)은 무루혜(無漏慧)에 의한 4제(諦)의 관찰인 견도(見道)에 의해 끊어지는 법(法)들을 말하며, 여기서의 법은 번뇌(煩惱)인 유루법(有漏法)들과 이것들과 상응하여 함께 발생하는 불상응행법(不相應行法)들을 말한다.
수소단(修所斷, bhāvanā-heya)은 선정(禪定)을 통한 반복된 관찰, 즉 4제(諦)를 관찰하고 나서 그 후 오랜 시간 동안 자주자주 도(道)를 수습하는 것인 수도(修道)에 의해 끊어지는 법(法)으로, 여기서의 법은 번뇌(煩惱)인 유루법(有漏法)들과 이것들과 상응하여 함께 발생하는 불상응행법(不相應行法)들을 말한다. 수도소단(修道所斷), 수단(修斷) 또는 수혹(修惑)이라고도 한다.-위키
由此故知無明、愛、取三支亦通見、修所斷。
이것에 의거하여 무명(無明)ㆍ애(愛)ㆍ취(取)의 세 지분은 역시 견도에서 단멸되는 견소단(見所斷)과 수도에서 단멸되는 수소단(修所斷)에 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然無明支正發行者,唯見所斷,助者不定,愛、取二支正潤生者唯修所斷,助者不定。
그러나 무명(無明)의 지분에 있어서 진정으로 행(行), 즉 총보업(總報業)을 일으키는 것은 오직 견도에서 단멸되는 견소단(見所斷)일 뿐이며, 일정하지 않은 도움이며,
애(愛)ㆍ취(取)의 두 지분에 있어서 진정으로 생(生)을 촉진하는 것은 오직 수도에서 단멸되는 수소단(修所斷)일 뿐이며, 일정하지 않은 도움이다.
又染污法自性應斷,對治起時彼永斷故,一切有漏不染污法非性應斷,不違道故。
然有二義說之爲斷。一離縛故,謂斷緣彼雜彼煩惱,二不生故,謂斷彼依令永不起。
또한 염오법(染污法)은 자성이 마땅히 단멸되어야 하는 것이니, 다스리는 무루지혜의 법인 무루명법(無漏明法)이 일어날 때에는 그것이 영원히 단멸되기 때문이며,
모든 유루의 불염오법(不染污法)은 자성이 마땅히 단멸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니, 도(道)를 거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가지 뜻이 있으니, 그것을 단멸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하나는 계박을 떠나는 이박(離縛)하는 것이기 때문이니, 그것을 반연하여 그것에 잡란되는 번뇌를 끊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불생(不生)이기 때문이니, 그것의 의지처를 단멸해서 영원히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
ㅡ모든 단멸(斷)의 뜻을 자세하게 해설한다.
依離、縛斷說有漏善、無覆無記唯修所斷,依不生斷說諸惡趣無想定等唯見所斷。
계박을 떠나는 단멸에 의거해서 유루선(有漏善)ㆍ무부무기(無覆無記)는 오직 수도에서 단멸될 뿐이니,
불생(不生)단멸에 의거해서 모든 악취와 무상정(無想定) 등은 오직 견도에서 단멸될 뿐이라고 '유가사지론' 제57권에서 말하였다.
說十二支通二斷者,於前諸斷如應當知。
유가사지론 등에서 십이지(十二支)가 두 가지 단멸됨에 통한다고 말한 것은, 앞의 여러 가지 단멸에 상응하는 것에 맞추어 알아야 하는 것으로,
ㅡ무명ㆍ애(愛)ㆍ취(取)는 자성단(自性斷)이고,
행(行)과 유(有)의 일부분은 세 가지 단멸에 공통되며,
식(識) 등의 일곱 가지는 오직 이계단(離繫斷)과 불생단(不生斷)이니, 잡염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十樂、捨俱,受不與受共相應故,老死位中多分無樂及容捨故,十一苦俱非受俱故。
수(受)와 노사(老死)의 지분을 제외한 열 가지 지분은 낙수(樂受)ㆍ사수(捨受)와 함께하나니,
수(受)의 지분은 느낌(受)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고,
노사(老死)의 단계에서는 대부분 낙수와 객(客), 육식(六識)의 사수(捨受)가 없기 때문이며,
앞의 열 가지에서 노사의 지분을 첨가한 11 가지는 고수(苦受)와 함께하나니, 수(受)의 지분은 함께하지 않기 때문이다.
ㅡ 삼수(三受)와 함께함을 판별한, 제십삼삼수구문(第十三三受俱門).
十一少分壞苦所攝,
11 가지 지분의 일부분은 자기가 사랑하던 것이 없어질 때에 느끼는 괴로움인 괴고(壞苦)에 포섭되며,
ㅡ12 가지 지분 중에 공통적으로 고고(苦苦)와 행고(行苦)의 속성이 있기 때문에, 지금 그것을 제외하여서 ‘일부분인 소분(少分)’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老死位中多無樂受,依樂立壞故不說之。十二少分苦苦所攝,一切支中有苦受故。
十二全分行苦所攝,諸有漏法皆行苦故。依捨受說十一少分,除老死支如壞苦說。
實義如是,諸聖教中隨彼相增所說不定。
노사(老死)의 단계에서는 대부분 낙수(樂受)가 없으니, 낙수에 의거해서 괴고를 건립하기 때문에 그것을 말하지 않는 것이며,
12 가지 지분의 일부분은 신체적으로 배고프거나, 병이 나거나, 춥고 덥거나, 힘든 노동을 할 때에 느끼는 괴로움인 고고(苦苦)에 포섭되나니, 모든 지분 중에는 고수(苦受)가 있기 때문이며,
12 가지 지분의 전부는 생멸 변화에 의해서 느끼는 고통인 행고(行苦)에 포섭되나니, 모든 유루법은 다 생멸 변화의 괴로움이기 때문이며,
사수(捨受)에 의거해서 말한다면, 11 가지 지분의 일부분으로, 노사(老死) 지분은 제외하는 것으로 괴고에서 말한 바와 같다.
진실한 의미로써 말한다면 이상과 같으나, 여러 성교(聖教)에서는 그 상(相)의 증성함을 따라 설하는 것이 일정하지 않은 것이다.
ㅡ열두 가지 지분 중에서 세 가지 괴로움인 삼고(三苦)를 판별한, 제십사삼고분별문(第十四三苦分別門).
皆苦諦攝,取薀性故。五亦集諦攝,業、煩惱性故。
모두 고제(苦諦)에 포함되나니,취온(取蘊)의 성품이기 때문이며,
행(行)ㆍ유(有)ㆍ무명ㆍ애(愛)ㆍ취(取)의 5 가지는 역시 집제(集諦)에 포섭되나니, 업과 번뇌의 성품이기 때문이며,
ㅡ4성제(聖諦)에 포섭되는 관계를 판별한, 제십오사제문(第十五四諦門)으로,
다섯 가지가 집제(集諦)에 포섭된다는 것은, 행(行)ㆍ유(有)는 업의 속성이고,
무명ㆍ애(愛)ㆍ취(取)는 번뇌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諸支相望增上定有,餘之三緣有無不定。契經依定唯說有一。
모든 지분이 서로 배대하여서 증상연은 반드시 있으나,
나머지 삼연(三緣)은 있고 없음이 일정하지 않으니, 경전에서는 결정적인 것에 의거해서 오직 하나만이 있다고 말씀하였다.
ㅡ'연기경(緣起經)' 하권에서 오직 하나의 증상연(增上緣)만이 있다고 말씀한 것은 결정적으로 있는 것에 대해서 말한 것으로, 나머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님을 회통하는 것이다.
愛望於取,有望於生,有因緣義。
애(愛) 지분을 취(取)에 배대하고, 유(有) 지분을 생(生) 지분에 배대한 것은 인연(因緣)의 뜻이 있으며,
ㅡ애(愛)가 증성한 것을 취(取)라고 이름하는 것으로, 애(愛) 종자가 취(取)를 생겨나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식(識) 등의 다섯 가지 지분을 바꾸어 유(有)라고 이름하고, 생겨난 현행을 생이라 이름하므로,
따라서 애를 취에 배대하고, 유를 생에 배대하여서 인연의 뜻이 있게 되는 것이다.
若說識支是業種者,行望於識亦作因緣。餘支相望無因緣義。
만약 식(識)의 지분은 업종자라고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4권에서 말한 때문이라고 한다면, 행(行)을 식(識)에 배대하여도 역시 인연이 되나, 나머지 지분을 서로 배대하는 것에는 인연의 뜻이 없다.
ㅡ4연(緣)을 판별한, 세십육사연문(第十六四緣門).
而'集論'說無明望行有因緣者,依無明時業習氣說,無明俱故假說無明,實是行種。
그러나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4에서 무명을 행(行)에 배대하여 인연이 있다고 말한 것은, 무명 시기(時)의 업습기(業習氣)에 의거한 것이며,
무명과 함께하기 때문에 가정적으로 무명이라고 말한 것으로, 실제로는 행의 종자인 행종(行種)인 것이다.
ㅡ'대승아비달마집론' 제4권의 내용을 회통한 것으로, 무명을 행(行)에 배대하여 인연의 뜻이 있다고 말한 것은, 무명과 동시(同時)의 의지의 업인 사업(思業)에 의거한 것으로, 진정한 무명은 아니다.
'瑜伽論'說諸支相望無因緣者,依現愛、取唯業有說。
'유가사지론' 제 10권에서 모든 지분을 서로 배대하여 인연이 없다고 말한 것은,
현행의 애(愛)ㆍ취(取) 및 오직 업(業)이 있는 것에 의거해서 말한 것이다.
ㅡ'유가사지론' 제10권의 내용을 회통한 것으로, 세 가지의 삼연(三緣)이 있다고 말하고, 모든 지분을 서로 배대하여 인연이 없다고 한 것은 현행의 애(愛)ㆍ취(取)에 의거한 것으로, 종자에 의거한 것이 아니며,
또한 업종자의 존재인 유(有)에 의거해서 말한 것으로, 식(識) 등의 다섯 가지의 종자에 의거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인연이 있다고 말하지 않아도 위배되는 것은 아니라고 회통하는 것이다.
無明望行,愛望於取,生望老死,有餘二緣。有望於生,受望於愛,無等無閒,有所緣緣。
무명(無明)을 행(行)에 배대하고, 애(愛)를 취(取)에 배대하며, 생(生)을 노사(老死)에 배대해서는 그 나머지 두 가지 연(緣)인, 등무간연(等無間緣)과 소연연(所緣緣)이 있으니,
유(有)를 생(生)에 배대하고, 수(受)를 애(愛)에 배대하면 등무간연은 없으나, 소연연은 있으며,
ㅡ유(有)ㆍ수(受)의 지분은 종자이기 때문에, 종자를 현행에 배대하면 등무간연이 아닌 것이다.
餘支相望,二俱非有。此中且依鄰近順次不相雜亂實緣起說。異此相望爲緣不定,諸聰慧者如理應思。
나머지 지분을 서로 배대하면, 등무간연(等無間緣)과 소연연(所緣緣)의 두 가지 모두가 없으니,
이 가운데에서는 또한 가까이하는 근(近), 순서가 있는 순차(順次), 서로 잡란하지 않는 참다운 연기(緣起)에 의거해서 말하는 것이며,
이것에 다르게 서로 배대해서는 연(緣)이 되는 것이 일정하지 않으니, 총명하고 지혜가 있는 사람은 모두 바른 이치에 맞게 생각해야 하리라.
惑、業、苦三攝十二者,無明、愛、取是惑所攝。行、有一分是業所攝,七、有一分是苦所攝。
혹(惑)ㆍ업(業)ㆍ고(苦)의 세 가지에 12지(支)를 포섭시키는 것을 말한다면,
무명(無明)ㆍ애(愛)ㆍ취(取)는 혹(惑, 미혹)에 포함되며,
행(行)과 유(有)의 일부분은 업(業)에 포함되며,
식(識) 등 다섯 가지와 생(生)ㆍ노사(老死)의 지분의 7 가지와 유(有)의 일부분은 고(苦, 괴로움)에 포함된다.
ㅡ미혹ㆍ업ㆍ괴로움과 12지(支)의 포섭관계를 판별한, 제십칠혹업고섭지문(第十七惑業苦攝支門).
有處說業全攝有者,應知彼依業有說故。有處說識業所攝者,彼說業種爲識支故。
'유가사지론' 제56권과 '십지경론(十地經論)' 제8권 등에서 유(有)를 업(業)에 모두 포섭시킨다고 말한 것은,
그것은 업의 존재에 의거해서만 말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마땅히 알아야 하며,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4권에서 식(識)도 업(業)에 포함된다고 말한 것은, 업종자를 식의 지분으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惑業所招獨名苦者,唯苦諦攝爲生厭故。由惑業苦卽十二支,故此能令生死相續。
혹(惑, 미혹)과 업(業)에 초감된 것만을 독립적으로 고(苦, 괴로움)라고 이름한 것은, 오직 고제(苦諦)에만 포함되므로 혐오를 일으키기 때문이며,
혹(惑)ㆍ업(業)ㆍ고(苦)는 12 가지 지분에 의거하기 때문에, 이것이 능히 생사(生死)를 상속하게 하는 것이다.
ㅡ생사(生死)의 상속(相續)에 관한 네 번째 해설로써, 분단생사(分段生死)와 불사의변이생사(不思議變易生死)에 관하여 설명한다.
復次,生死相續由內因緣,不待外緣,故唯有識。因謂有漏、無漏二業正感生死,故說爲因。緣謂煩惱、所知二障助感生死,故說爲緣。
또한 생사(生死)를 상속하는 것은, 내부의 인(因, 원인)과 연(緣)에 의한 것으로서 외부의 연을 기다리지 않으므로, 오직 식(識)만이 있으며,
인(因, 원인)이란, 유루와 무루의 두 가지 업을 말하는 것이니, 진정으로 생사를 초감하기 때문에 인(因, 원인)이라 하는 것이며,
연(緣)이라는 것은 번뇌장과 소지장을 말하는 것으로, 도와서 생사를 초감하기 때문에 연(緣)이라 하는 것이다.
所以者何?生死有二:一分段生死。謂諸有漏善、不善業,由煩惱障緣助勢力,所感三界麤異熟果。
身命短長隨因緣力,有定齊限,故名分段。
▷묻습니다; 어찌하여 그러한 것입니까?
▷답한다; 생사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분단생사(分段生死)로써, 모든 유루의 선ㆍ불선의 업이 번뇌를 돕는 연의 세력에 의해서 초감한, 삼계의 구체적인 상인 추이숙과(麤異熟果)를 말하는 것이니, 몸(身)과 목숨에 장단(長短)이 있으며, 인(因, 원인)과 연(緣)의 세력을 따라 결정적인 제한(際限)이 있기 때문에 분단(分段)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ㅡ생사(生死)의 체(體)를 나타낸다.
二不思議變易生死。謂諸無漏有分別業,由所知障緣助勢力,所感殊勝細異熟果,由悲願力改轉身命,無定齊限,故名變易。無漏定願正所資感,妙用難測,名不思議。
둘째는 부사의변역생사(不思議變易生死)이니, 모든 무루의 유분별의 업이 소지장(所知障)의 연이 돕는 세력에 의해서 초감한, 뛰어나고 미세한 수승세이숙과(殊勝細異熟果)를 말하는 것이니,
자비와 원력의 힘에 의거해서, 몸(身)과 목숨을 전환하여 결정적인 제한이 없기 때문에 변역(變易)이라고 이름하며,
무루의 선정과 원력에서 진정으로 의지하고 초감되어서 승묘한 작용이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에 부사의(不思議)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或名意成身,隨意願成故,如契經說,如取爲緣,有漏業因續後有者而生三有,如是無明習地爲緣,無漏業因有阿羅漢、獨覺、已得自在菩薩,生三種意成身。
혹은 의성신(意成身)이라고 이름하나니, 의지의 원력, 즉 대비심(大悲心)을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경전에서 말씀하기를 “취(取)의 지분을 연(緣)으로 하고 유루의 업을 인(因, 원인)으로 하여서 미래세의 유(有)를 상속한 자가 삼계에 태어나며,
이와 같은 무명습지(無明習地)를 연(緣)으로 하고 무루의 업인 유분별(有分別)의 후득지(後得智)를 인(因, 원인)으로 하며, 대승으로 전향한 아라한과 독각 및 8지(地) 이상으로 이미 자재를 얻은 보살의 세 가지 의생신(意生身)을 일으킨다”고 '승만경(勝鬘經)'에서 말하고 있다.
무명습지(無明習地)는 견혹(見惑)ㆍ사혹(思惑)ㆍ무명의 번뇌를 다섯 가지로 분류한 5주지번뇌(五住地煩惱)로써, 견일처주지(見一處住地)ㆍ애욕주지(愛欲住地)ㆍ색애주지(色愛住地)ㆍ유애주지(有愛住地)ㆍ무명주지(無明住地)의 하나이며, 이것은 곧 소지장(所知障)으로서 법집(法執)에 포함된다.
亦名變化身,無漏定力轉令異本,如變化故。如有論說,聲聞無學永盡後有,云何能證無上菩提?依變化身證無上覺,非業報身,故不違理。
역시 변화신(變化身)이라고도 이름하나니, 무루의 선정의 힘으로써 전환하여 근본, 즉 분단신(分段身)과 다르게 함에 있어서 변화와 같기 때문이며, '현양성교론' 제16권에서 말한 것과 같다.
성문의 무학은 영원히 미래세의 존재인 후유(後有)를 다하나니,
어떻게 능히 최상의 깨달음인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증득한다고 하는 것인가?
변화신에 의거해서 최상의 깨달음인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증득하며, 업보신(業報身)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므로, 따라서 바른 논리에 위배되지 않는 것이다.
若所知障助無漏業能感生死,二乘定性應不永入無餘涅槃,如諸異生拘煩惱故。
만약 법집에 의해 생기하는, 소지장(所知障)이 무루의 업을 도와서 능히 생사를 초감한다고 말하는 2승의 결정적인 종성인 정성(定姓)은 영원히 무여의열반에 들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 모든 범부가 번뇌에 얽매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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