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등 지음
三藏法師 玄奘 奉 詔譯 현장(玄奘) 한역 / 김묘주 번역
성유식론(成唯識論) 제4 권 4
若無此識持煩惱種,轉依斷果亦不得成。謂道起時,現行煩惱及彼種子俱非有故。染、淨二心不俱起故。道相應心不持彼種。自性相違如涅槃故。去、來、得等非實有故。餘法持種理不成故。旣無所斷能斷亦無,依誰由誰而立斷果?
만약 이 식(識)이 유루의 종자를 지니지 않는다면, 전의(轉依)라는 단멸증과인 단과(斷果) 역시도 성취될 수 없어야 할 것이니, 무루의 무간도(無間道)가 일어날 때에는 현행의 번뇌와 그 종자가 함께 하지 않기 때문이니, 잡염ㆍ청정의 두 가지 심왕은 함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도와 상응하는 심왕은 그 번뇌의 종자를 지니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 자성이 달라서 마치 열반과 같기 때문이며, 과거ㆍ미래ㆍ불상응행법의 하나인 득(得, prāpti) 등은 실유가 아니기 때문이며, 다른 색법 등이 종자를 지닌다고 말하는 것은 바른 논리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단멸되는 것은 미혹이 없기 때문에 능히 단멸하는 도(道) 또한 없을 것인데, 어떠한 번뇌에 의지하고, 어떠한 도(道)에 의지해서 단멸된 증과의 단과(斷果)를 건립하겠는가?
단멸되는 소단(所斷)의 번뇌도 없고 단멸하는 능단(能斷)의 도(道)도 없기 때문에, 단멸된 증과인 단과(斷果)를 건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若由道力,後惑不生立斷果者,則初道起應成無學。後諸煩惱皆已無,因永不生故。許有此識,一切皆成。唯此能持染淨種故。
만약 도력(道力)에 의해 이후의 미혹이 생겨나지 않는 것에서 단멸된 증과인 단과(斷果)를 건립한다고 말한다면, 곧 처음의 예류향(預流向)의 견도(見道)가 일어날 때에 무학(無學)이 되어야 할 것이고, 이후의 모든 번뇌는 다 이미 없을 것이니, 원인이 영원히 생겨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식(識)이 존재한다고 인정할 때, 일체가 다 성립되는 것이니, 오직 식, 이것만이 능히 잡염ㆍ청정법의 종자를 지니기 때문이다.
10리증(理證)의 제10염정증(染淨證)을 총체적으로 결론지었다.
證此識有理趣無邊,恐厭繁文略述綱要。別有此識教、理顯然。諸有智人應深信受。
이 식(識)이 존재함을 증명하는 논리의 취지가 한없이 많지만, 문장이 번쇄하여지면 염증을 낼까 두려우므로 간략히 요점을 서술하여서, 10리증(理證)을 3단(段)으로 나눈 가운데에서 세 번째로 총체적으로 열 가지 논증을 결론 맺는다.
별도로 이 식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성스러운 가르침과 바른 논리가 경론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으니, 모든 지혜 있는 사람은 마땅히 깊이 믿고 받아 지녀야 하리라.
5교(敎)와 10리증(理證)으로써 제8식의 존재를 증명하는 가운데, 세 번째로 총체적으로 결론 맺는다.
이하는 제2능변인 말나식(末那識)에 관한 해설이다.
如是已說初能變相。第二能變其相云何?頌曰:
이상과 같이 초능변식의 상(相)을 말하였으니, 제2능변식의 상(相)상은 어떠한 것인가?
'삼십송'의 제5ㆍ6ㆍ7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으니;
次第二能變 是識名末那, 依彼轉緣彼 思量爲性相。
다음은 제2능변식(第二能變識)이니, 이 식(識)을 말나식(末那識, 제 7식)이라고 이름하며,
그 아뢰야식(제 8식)에 의지해서 유전하고 그것을 반연하며,
사량하는 것을 자성과 행상(行相)으로 삼는 것이다.
四煩惱常俱 謂我癡我見, 幷我慢我愛 及餘觸等俱。
네 가지 의 사번뇌(四煩惱)와 항상 함께하나니, 곧 아치(我癡)와 아견(我見)과
아울러 아만(我慢)과 아애(我愛)인 것으로, 그 외에는 촉(觸) 등과 함께하는 것이다.
有覆無記攝 隨所生所繫, 阿羅漢滅定 出世道無有。
유부무기(有覆無記)에 포함되며, 태어난 곳을 따라 매이는 것이며,
아라한과 멸진정과 출세도에서는 말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게송들의 뜻을 해설함에 있어서 본 논서 제4권과 제5권에 걸쳐 8단(段) 10의문(義門)으로 설명한다. 자세한 설명은 본 논서 제2권 주83 참조.
3성(三性)은 선(善)과 불선(不善)의 기준에 따라, 즉 도덕 · 윤리 · 업(카르마)의 관점에서 일체법을 분류했을 때의 세 갈래인 선(善, kuśala, 유익함) · 불선(不善, akuśala, 해로움) · 무기(無記, avyākrta, 유익하지도 해롭지도 않음)이다.
무부무기(無覆無記, anivrtāvyākrta)는 '가림의 부(覆) 또는 막음의 장(障)이 없는 무기(無記)'로, 번뇌와 상응하지 않으며 성도(聖道)를 장애하지 않는 무기(無記)를 말한다. 줄여서 무부(無覆)라고도 하며 정무기(淨無記)라고도 한다.
무부무기는 다시 크게 유위무기(有為無記)와 무위무기(無為無記)의 2종으로 나뉜다
①유위무기(有為無記)는 인연의 화합에 의해 생겨난 무부무기이며, 이숙무기(異熟無記) · 위의무기(威儀無記) · 공교무기(工巧無記) · 통과무기(通果無記) · 자성무기(自性無記)의 5종이 있다.
②무위무기(無為無記)는 승의무기(勝義無記)라고도 하며, 인연의 화합에 의해 생겨난 것인 아닌 무위의 무부무기를 말하며, 허공무위(虛空無為)와 비택멸무위(非擇滅無為)의 2가지 무위법이 여기에 해당한다.
論曰:次初異熟能變識,後應辯思量能變識相。是識聖教別名末那。恒審思量勝餘識故。
논하여 말한다. 8단(段) 중에서 제1거체출명문(擧體出名門)
처음의 이숙능변(異熟能變, 제 8식)의 식 다음에 사량능변(思量能變, 제 7식)의 식의 양상을 판별하나니, 성스러운 가르침의 '유가사지론' 제63권에서 이 식을 별도로 말나식으로 이름하였으니, 항상 살펴서 사량하는 것이 다른 식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3능변(三能變), 이숙능변(異熟能變) · 사량능변(思量能變) · 요경능변(了境能變)이라고도 하며, 능변이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는가를 드러내는, 즉 어떠한 핵심적인 작용을 하는가를 드러내는 명칭이며, 유식학에서는 8식을 '능변(能變: 자신을 포함한 갖가지 법을 변화시키고 현행시킴)'의 관점에서 크게 3가지로 구분하였다.
①제8아뢰야식을 초능변 또는 제1능변이라 하며, 이숙(異熟)의 작용을 핵심적인 작용으로 하는, 즉 이숙과(집기)라는 변화가 생기게 하는 식으로, 초능변은 인능변과 과능변의 뜻을 모두 지닌다
②제7말나식을 제2능변(第二能變)은 사량(思量)의 작용을 핵심적인 작용을 통해 평등한 지혜인 평등성지(平等性智) 혹은 4번뇌라는 변화가 생기게 하는 식으로 과능변의 뜻만을 지닌다
③전6식(前六識)을 제3능변(第三能變)은 '대상을 요별, 요경(了境)'하는 작용을 핵심적인 작용으로 하는 식, 즉 전6식은 대상에 대해 인식작용을 하여 대상에 대해 '모름'으로부터 '앎(요별)'이라는 변화가 생기게 하는 식으로, 과능변의 뜻만을 지닌다
유식학에서는 '능변(能變)'을 인능변(因能變)과 과능변(果能變)으로 구분하기도 하며,
인능변(因能變)은 원인(因), 즉 종자를 능변하는 경우다.
과능변(果能變)은 결과(果) 즉 자신을 포함한 현행의 법을 능변하는 경우이다.ㅡ 위키
此名何異第六意識?此持業釋。如藏識名識卽意故。彼依主釋。如眼識等識異意故。
이 명칭이 제6의식과 어떻게 다른가? 이 제7식은 지업석(持業釋)이니, 장식(藏識)이라는 명칭과 같이 식이 곧 의(意)이기 때문이며,
그 제6식은 의주석(依主釋)이니, 안식 등과 같이 식이 의(意)와 다르기 때문이다.
제7식을 의식(意識)이라고 말한 것은 의즉식(意卽識)의 지업석(持業釋)으로서, 예를 들면 장즉식(藏卽識)의 뜻과 같으며,
제6식을 의식이라고 말하는 것은 의(意)에 의지하는 식(識)이라는 의주석(依主釋)으로서, 예를 들면 안식 등이 안근 등에 의지하는 식이라는 뜻과 같다.
지업석(持業釋)은 6합석(合釋)의 하나이며, 6합석은 인도에서 하나의 명사를 해석하는 것에 여섯 가지 방법으로써, 이에 의주석(依主釋)ㆍ지업석(持業釋)ㆍ유재석(有財釋)ㆍ상위석(相違釋)ㆍ인근석(隣近釋)ㆍ대수석(帶數釋)이 있다.
의주석은 예를 들면 산사(山寺)라고 할 때, 산(山)은 의지처인 소의(所依)의 주(主)이고, 사(寺)는 의지하는 능의(能依)의 사물인 경우를 말하며,
지업석은 연석(硯石)이라고 할 때, 연즉석(硯卽石)으로서 연석이 이미 연(硯)의 작용인 업용(業用)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이다.
然諸聖教,恐此濫彼故於第七但立意名。又摽意名爲簡心、識。積集了別,劣餘識故。或欲顯此,與彼意識,爲近所依故,但名意。
그런데 모든 성교(聖教)에서 이 제7식이 그 제6식에 혼동될까 염려한 까닭에, 제7식에 대해서는 다만 의(意)라는 명칭만을 건립하며,
또한 의(意)라는 명칭만을 붙인 것은 심(心, 제8식)과 식(識, 6식)에 구별하기 위한 것이니, 적집하고 요별하는 것이 다른 식보다 열등하기 때문이며,
혹은 이것이 그 의식의 가까운 의지처인 소의(所依)라는 것을 나타내고자 이것을 다만 의(意)라고 이름한 것이다.
초기불교와 아비달마불교까지는 인간의 정신현상을 6식설(識說)과 심의식설(心意識說)의 두 방면으로 설명하였다.
심의식설에서 심(心, citta)은 적집(積集)의 의미이고, 의(意, manas)는 사량(思量)이며, 식(識, vijñāna)은 요별의 의미이다.
유식학에서는 심(心)ㆍ의(意)ㆍ식(識)의 체별(體別)을 주장하고, 심의식설과 8식설을 결합한,
즉 제8식은 심의식(心意識) 중에서 ‘심(心)’으로서 적집(積集)의 뜻이 뛰어나고,
6식(識)은 ‘식(識)’으로서 요별의 뜻이 뛰어나며,
제7식은 적집하고 요별하는 것이 다른 식보다 열등하고, 오직 ‘사량’의 뜻이 뛰어나므로 제7식을 의(意)라고 이름하였다.
말나식에서 말나(末那)의 산스끄리뜨인 manas는 √man(생각하다)에서 파생된 명사로써, 이것은 ‘사량(思量)’으로 번역되듯이, 대상을 명료하게 ―깊고 강하게― 인식하는 마음작용을 가리킨다.
그런데 제6의식을 mano-vijñāna라고 하여 똑같이 manas가 사용되므로, 따라서 제6의식과 구분하여 보통 말나식, 제7식 또는 단지 의(意)라고 부른다.
다음은 제2소의문(所依門)이다.
依彼轉者顯此所依。彼謂卽前初能變識,聖說此識依藏識故。
'삼십송'의 제5게송에서, “그것에 의지해서 유전(流轉)한다”고 말한 것은 이것의 의지처인 소의(所依)를 나타내며, ‘그것’이란 곧 앞에서 말한 초능변식이다.
'유가사지론' 제51권의 성교(聖教)에서는 이 식은 장식(藏識)을 의지한다고 말한 때문이다.
有義。此意以彼識種而爲所依,非彼現識。此無閒斷,不假現識,爲俱有依,方得生故。
난타(難陀)와 최승자(最勝子)의 견해는 다음과 같으니,
이 말나식은 제8식이 집지(執持)하는 종자 중에서 제7식을 생겨나게 하는 종자인 자종(自種)를 의지처인 소의(所依, 인연의因緣依)로 하나, 그것의 현행식은 아닌 것으로,
이것은 상속이 단절됨이 없으므로, 제8식의 현행식을 의지해서 구유의(俱有依)로 삼아서 비로소 생겨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였으며,
有義。此意以彼識種及彼現識,俱爲所依。雖無閒斷,而有轉易,名轉識故。必假現識,爲俱有依,方得生故。
호법(護法)의 견해로는, 이 말나식(제 7식)은 제8식의 종자는 인연의(因緣依)가 되고, 제 8식의 현행식을 구유의(俱有依)로 삼아서, 그 제 8식의 종자와 그 현행식을 모두 의지처로 삼으며,
제 7식은 단절됨이 없지만, 변화의 전이(轉易)가 있어서 전식(轉識)이라 이름하기 때문이며,
반드시 제 8식의 현행식을 의지하여 구유의로 삼아서 비로소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轉謂流轉。顯示此識恒依彼識取所緣故。
'삼십송'의 제5게송에서, ‘전(轉)’이라는 것은 유전(流轉)을 말하며, 이 식은 항상 제8식의 종자와 현행식에 의지하여서 인식대상을 파악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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