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囑累品 第九十 卷第一百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90. 촉루품(囑累品)을 풀이함 3
問曰:有人重罪,三不善業成就,聽、受、書、持般若,是人云何當得不離諸佛、聞法、親近佛不?
묻나니, 어떤 사람이 세 가지 착하지 못한 삼불선업(三不善業)을 성취하여 중한 중죄를 지었음에도 반야를 듣고(聽) 받아서(受) 써서(書) 지닌다면(持), 이 사람이 어떻게 모든 부처님을 여의지 않으면서 법을 듣고 부처님을 친근히 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答曰:是事先品中已答,所謂聽法者有二種人:一者、但聽而不信受行,二者、聽而信受奉行。
如弟子不聽、不信受行師語,是名不聽;
若以一心聽聞,信受奉行,厭世、愛涅槃,離小乘、樂大乘 作如是聽受,是名眞聽。誦讀亦如是。
답하나니, 이러한 것에 대해서는 앞의 상품 가운데에서 이미 대답한 것이니,
이른바 법을 듣는 청법자(聽法者)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니,
첫째는 다만 듣기만 하고 믿거나 받아 행하지 않는 불신수행(不信受行)하는 이요,
둘째는 듣는 대로 믿고 받들어 행하는 신수봉행(信受奉行)하는 이이다.
제자가 스승의 말을 듣지도 않고 믿고 받아 행하지도 않는다면, 그를 바로 듣지 않는 불청(不聽)이라 하는 것과 같으며,
일심으로 들으면서 믿고 받아 받들어 행함으로써 세간을 싫어하고 열반을 좋아하며, 소승을 여의고 대승을 좋아하여 이와 같이 듣고 지닌다면, 그를 진정으로 듣는 청(聽)이라 하나니,
읽고 외우는 독송(誦讀)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正憶念,隨如佛意,離有無二邊,行於中道。如所聞受持,及其義解、爲他人解說,恭敬、尊重、供養、讚歎、花香等。初始微薄,乃至正憶念、爲他人說,其心轉厚,功德轉多,牢固不動。
바르게 기억하는 정억념(正憶念)이란, 부처님의 뜻 그대로를 따르며, 있다(有)ㆍ없다(無)는 두 가지의 치우친 소견인 이변(二邊)을 여의고 중도(中道)를 행하며, 들은 그대로를 받아서 수지(受持)하고, 그 뜻을 이해하여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해설하며, 공경하고 존중하면서 꽃과 향 등으로 공양하고 찬탄하는 것이니,
처음에는 미미하고 쉬운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나아가 바르게 기억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연설하게 되면, 그의 마음이 한층 더 두터워지고 공덕은 갈수록 많아지며, 견고하여서 부동하게 되는 것이다.
若聞師說、若見經卷、花香等供養 若智者知般若功德供養者,福德重;不知者供養,福德微薄。
福德純厚者,轉身不離見佛、聞法、親近諸佛;福德微薄者,不言轉身得三福報,償衆罪已,久後亦必當得佛。
스승의 설법을 듣거나 경권을 보거나간에 꽃과 향 등으로 공양하나니,
만약 지혜로운 이로서 반야의 공덕을 알고 공양하는 이라면 복덕이 중하겠지만, 모르는 이가 공양하는 것은 복덕이 미미하고 미약하며,
복덕이 순수하고 두터운 이는 몸을 바꾸면 언제나 부처님 뵙기를 여의지 않아서 법을 듣고 모든 부처님을 친근하게 되지만, 복덕이 미미하고 천박한 이는 몸을 바꾸어도 세 가지 복의 과보를 얻는다고 말할 수 없으며, 많은 죄 값을 다 치르고 나서 오랜 뒤에는 그 역시도 반드시 부처님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此中佛摠說福德純厚、微薄,漸漸皆當見十方佛、聞佛所說,漸漸具足六波羅蜜,皆得作佛。
佛以佛眼見般若有如是大利益衆生故,慇懃囑累。
부처님께서는 여기에서 통틀어 말씀하셨으니, “복덕이 순수하고 두터운 이나, 미미하고 천박한 이거나간에 점차로 모두가 시방의 부처님을 뵙고 부처님의 설하심을 들어서, 6바라밀을 점차로 두루 갖추어서 모두가 부처님이 되느니라”고 하신 것이며,
부처님은 불안(佛眼)으로써 반야에 이와 같은 큰 이익이 있어서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것을 보시므로 은근하게 부촉하신 것이다.
問曰:是諸大阿羅漢已證實際,無復憂喜,小喜尚無,何況大歡喜!
묻나니, 이 모든 큰 아라한들은 이미 실제(實際)를 증득하여서, 다시는 근심이나 기쁨이 없으며, 조그마한 기쁨조차도 오히려 없을 것이거늘 하물며 큰 기쁨이겠습니까?
答曰:諸大阿羅漢,雖離三界欲,未得一切智慧故,於諸甚深法中猶疑不了;
是摩訶般若波羅蜜中了了解說,斷除其疑,是故大歡喜。
답하나니, 모든 큰 아라한들은 비록 삼계(三界)의 욕탐을 여의었을지라도, 아직 일체 지혜를 얻지 못한 까닭에 매우 깊은 심심제법(甚深諸法) 가운데에서 의혹이 있어서 명확하게 알지 못하였다가, 이 마하반야바라밀의 분명한 해설로 그 의심이 제거된 것이니, 이 때문에 크게 기뻐한 것이다.
復次,此諸大弟子已證實際。實際者,卽是空、無相、無量,無所分別。佛以此寂滅法,種種分別名字、語言、譬喩廣說,亦不壞法性,又不與世閒相違;諸阿羅漢是法中證故大歡喜。
또한 이러한 여러 큰 제자들은 이미 실제(實際)를 증득한 이들이라서, 실제란 곧 공(空)하고 무상(無相)이고 무량(無量)하며 분별할 것이 없는 것이나,
부처님께서는 이 고요히 사라진 적멸법(寂滅法)으로써 갖가지의 이름과 언어와 비유로써 분별하여 널리 말씀하셨으나, 또한 법성(法性)을 깨뜨리지도 않았으며, 또 세간을 어기지도 않았나니,
모든 아라한들은 이러한 법 가운데에서 깨달았기 때문에 크게 기뻐한 것이다.
佛善說是空、無相、無量、寂滅法,諸餘大衆未悉漏盡,信力深故,亦大歡喜,言:“此法能盡我等生死苦,令得佛道。”如是等無量因緣故,大衆皆歡喜。
부처님께서는 이 공(空), 무상(無相), 무량(無量)하고 고요히 사라진 적멸법(寂滅法)을 말씀하셨으니,
아라한을 제외한 그 밖의 다른 대중들 모두는 아직 번뇌를 다하지 못하였으나, 믿음의 신력(信力)이 깊었기 때문에 역시 크게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이 법은 우리들의 생사(生死)하는 괴로움을 다하게 하여주면서 부처님의 불도를 얻게 하는구나”라고 하였으니, 이와 같은 무량한 인연으로 대중들 모두가 기뻐한 것이다.
問曰:若佛囑累阿難是般若波羅蜜,佛般涅槃後,阿難共大迦葉結集三藏,此中何以不說?
묻나니, 만약 부처님께서 아난 존자에게 이 반야바라밀을 부촉하셨다면,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아난 존자가 대가섭(大迦葉) 존자와 함께 경장, 율장 논장의 삼장(三藏)을 결집(結集)할 때, 그 가운데에서는 어찌하여 설하지 않았던 것입니까?
答曰:摩訶衍甚深難信、難解難行。佛在世時,有諸比丘聞摩訶衍不信、不解故,從坐而去,
何況佛般涅槃後!以是故不說。
답하나니, 마하연(摩訶衍, 대승)은 매우 깊고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려우며 행하기도 어려운 것이니, 부처님께서 세간에 계실 때에도 여러 비구들은 마하연을 들으면, 믿지도 않고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리에서 떠나갔거늘, 하물며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이겠는가! 그러므로 설하지 않은 것이다.
復次,三藏正有三十萬偈,幷爲九百六十萬言。摩訶衍甚多無量無限,如此中「般若波羅蜜品」有二萬二千偈,「大般若品」有十萬偈,諸龍王、阿修羅王、諸天宮中有千億萬偈等。所以者何?此諸天、龍、神壽命長久、識念力强故。今此世人,壽命短促、識念力薄,「小般若波羅蜜品」尚不能讀,何況多者!
또한 삼장에는 정히 30만의 게(偈, 게송)가 있고 아울러 960만의 말씀(言)으로 되어있지만, 마하연은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없이 무한하나니,
이 '반야바라밀품(般若波羅密品)'에도 2만 2천의 게송이 있고, '대반야품(大般若品)'에는 10만의 게송이 있는 것과 같으며,
모든 용왕과 아수라왕과 여러 천상의 궁중에는 천 억만의 게송 등이 있으니, 왜냐하면, 이 모든 하늘과 용과 신은 수명이 길고 기억하는 의식의 식염력(識念力)이 강하기 때문이나,
지금 이 세간 사람들의 수명은 짧고 의식의 기억하는 식염력(識念力)이 미약하여서 이 작은 '소(小) 반야바라밀품' 조차도 오히려 읽을 수 없거늘, 하물며 그 보다 더 많은 것이겠는가?
諸餘大菩薩所知般若波羅蜜無量無限。何以故?佛非但一身所說,無量世中或變化作無數身,是故所說無量。
그 밖의 다른 큰 보살들이 아는 바의 반야바라밀도 분량이 없고 한계도 없으니, 왜냐 하면, 부처님께서는 비단 한 몸만으로 말씀한 것이 아니라, 무량한 세상 동안 혹은 수없는 몸으로 변화신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이므로, 그 하신 말씀이 무량한 것이다.
又有『不可思議解脫經』十萬偈,『諸佛本起經』、『寶雲經』、『大雲經』、『法雲經』各各十萬偈,『法華經』、『華手經』、『大悲經』、『方便經』、『龍王問經』、『阿修羅王問經』等諸大經,無量無邊,如大海中寶,云何可入三藏中?小物應在大中,大物不得入小。若欲問,應言:“小乘何以不在摩訶衍中?”摩訶衍能兼小乘法故,是故不應如汝所問。
또 '불가사의해탈경(不可思議解脫經)'에는 10만의 게송이 있고,
'제불본기경(諸佛本起經)ㆍ보운경(寶雲經)ㆍ대운경(大雲經)ㆍ법운경(法雲經)' 등에도 각각 10만씩의 게송이 있으며,
'법화경(法華經)ㆍ화수경(華手經)ㆍ대비경(大悲經)ㆍ방편경(方便經)ㆍ용왕문경(龍王門經)ㆍ아수라왕문경(阿修羅王問經)' 등의 여러 큰 경전도 무량하고 무변하여서, 마치 큰 바다 속의 보물과 같거늘, 어떻게 삼장 가운데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작은 물건은 큰 것에 들어갈 수 있지만, 큰 물건은 작은 것에 들어갈 수가 없으니, 만약 묻고 싶거든 ‘소승은 어찌하여 마하연 가운데에 있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해야 하리라.
마하연은 소승(小乘)의 법을 겸할 수 있기 때문이므로 그대는 그렇게 묻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復次,有人言:如摩訶迦葉將諸比丘在耆闍崛山中集三藏,佛滅度後,文殊尸利、彌勒諸大菩薩亦將阿難集是摩訶衍。
또한 어떤 분은 말하기를 “마하가섭 존자와 같은 이는 모든 비구들을 데리고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삼장을 결집하였으며,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 문수사리와 미륵 등의 모든 큰 보살들도 역시 아난 존자와 함께 이 마하연을 결집하였다”고 한다.
又阿難知籌量衆生志業大小,是故不於聲聞人中說摩訶衍,說則錯亂,無所成辦。
佛法皆是一種一味,所謂苦盡解脫味。此解脫味有二種:一者、但自爲身,二者、兼爲一切衆生。
雖俱求一解脫門,而有自利、利人之異,是故有大小乘差別。爲是二種人故,佛口所說,以文字語言分爲二種:三藏是聲聞法,摩訶衍是大乘法。
또 아난 존자는 중생들이 뜻하는 지업(志業)의 크고 작음을 헤아려 알았기 때문에 성문들 가운데서 마하연을 설하지 않았던 것이니, 만약 설하였었다면, 어수선하고 산란하여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무소성판(無所成辦)이었을 것이다.
부처님의 불법은 모두가 한 가지의 일종(一種)이요 한 맛의 일미(一味)이니, 이른바 괴로움이 다하면 해탈하는 고진해탈미(苦盡解脫味)인 것이다.
이 해탈하는 해탈미(解脫味)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일체 중생들을 아울러 위하는 것이다.
비록 다 같이 하나의 해탈문을 구한다 할지라도 자신만을 이롭게 하는 것과 남까지 이롭게 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으니, 이러한 까닭으로 대승ㆍ소승의 차별이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두 종류의 사람들을 위하여 부처님의 불구(佛口)로 말씀하신 법을 문자와 언어 두 가지로 나눈 것이니, 삼장은 곧 성문의 법이요, 마하연은 곧 대승의 법인 것이다.
復次,佛在世時,無有三藏名,但有持修多羅比丘、持毘尼比丘、持摩多羅迦比丘。修多羅者,是四『阿鋡』中經名、摩訶衍中經名。修多羅有二分:一者、四阿含中修多羅,二者、摩訶衍經名爲大。修多羅入二分,亦大乘、亦小乘。二百五十戒,如是等,名爲修多羅。毘尼名比丘作罪,佛結戒:應行是、不應行是,作是事得是罪。略說有八十部。
또한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는 삼장이라는 이름이 없었으며,
다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수다라(修多羅, 수트라 sūtra, 계경)를 지니는 비구와,
비니(毘尼, 율장)를 지니는 비구와,
부처님의 가르침과 계율을 정리한 마다라가(摩多羅迦, mātṛkā, 아비담장 阿毘曇藏, Abhidharma-piṭaka)를 지니는 비구가 있었을 뿐이었다.
‘수다라’란 장아함(長阿含), 중아함(中阿含), 잡아함(雜阿含), 증일아함(增一阿含)의 사아함(四阿含) 중의 경명(經名)이요, 마하연(摩訶衍) 중의 경명이며,
수다라는 두 가지로 분류되나니,
첫째는 사아함 중의 수다라요, 둘째는 마하연의 경을 일컬어 대수다라(大修多羅)라 하며,
이 두 가지의 분류에 들어가면서 대승이기도 하고 또한 소승이기도 한 2백 50의 계(戒)가 있으니, 이와 같은 것 등을 수다라라 하며,
‘비니(毘尼)’란 비구가 죄를 지으면 부처님께서 계(戒)를 결성하여, “마땅히 이것은 행해야 하고, 이것은 마땅히 행하지 않아야 하며, 이러한 일을 하면 이러한 죄를 얻는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간략하게 말하자면 80부(部)가 있다.
亦有二分:一者、摩偸羅國毘尼,含阿波陁那、本生,有八十部;二者、罽賓國毘泥,除卻本生、阿波陁那,但取要用作十部。有八十部毘婆沙解釋。是故知『摩訶般若波羅蜜經』等在修多羅經中以經大、事異故別說,是故不在集三藏中。
또한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첫째는 마투라국(摩偸羅國)의 비니로써 아파타나(阿波陀那)와 본생(本生)을 포함한 80부가 있으며,
둘째는 계빈국(罽賓國)의 비니로써 본생과 아파타나를 제외하고, 요긴한 대목만을 추려서 10부로 만든 것이니, 80부 비바사(毘婆沙)의 해석이 있다.
이러한 까닭으로 '마하반야바라밀경' 등은 수다라 가운데에 있으되, 경이 크고 특이한 것으로 보아서 따로 설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집성한 삼장 가운데에는 들지 않는 것이다.
究摩羅耆婆法師,以秦弘始三年歲在辛丑十二月二十日至長安,四年夏,於逍遙園中西門閤上爲姚天王出此釋論,七年十二月二十七日乃訖。其中兼出經本、禪經、戒律、百論、禪法要解,向五十萬言,幷此釋論一百五十萬言。
구마라기바(鳩摩羅耆婆, Kumārajīva, 구마라지바) 법사는 진(秦)나라 홍시(弘始) 3년(401) 신축(辛丑) 12월 20일에 장안(長安)에 이르렀으며,
4년(402) 여름에 소요원(逍遙園)에 있는 서문각(西門閣)에서 요천왕(姚天王)을 위하여 이 석론(釋論)을 펴기 시작하여 7년(405) 12월 27일에야 끝마쳤다.
그 동안 겸하여 경본(經本)ㆍ선경(禪經)ㆍ계율(戒律)ㆍ백론(百論)ㆍ선법요해(禪法要解) 등을 역출한 것이 50만의 말씀에 달하고, 이 석론과 합치면 1백 50만의 말씀이나 된다.
論初品三十四卷,解釋一品,是全論具本;二品已下,法師略之,取其足以開釋文意而已,不復備其廣釋。得此百卷,若盡出之,將十倍於此。
초품(初品)을 논하면서 34권을 하나의 일품(一品)으로 해석하여서 경본(經本)의 전체에 걸쳐 논하였으며,
2품(品) 이하는 법사가 요약하여 그 요긴한 대목만을 취하여서, 그 글의 뜻을 풀이하고 있으니, 그 광대한 해석을 다 갖추어 싣지 못하고 이 100권만을 엮었으니, 만약 빼지 않고 다 펴냈다면 아마 이 해설품의 열배가 되리라.
大智度論卷第一百 終 대지도론 100권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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