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曇無竭品 第八十九 卷第九十九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89. 담무갈품(曇無竭品) 풀이함 3

 

問曰:若無佛,卽是邪見,云何菩薩發心求作佛?

묻나니, 만약 부처님이 없는 무불(無佛)이라면, 그것은  삿된 사견(邪見)인 것이니,  

보살이 어떻게 발심하여 부처님이 되기를 바라겠습니까?


答曰:此中言“無佛”,破著佛想,不言“取無佛想”。若有佛尚不令取,何況取無佛邪見!

又佛常寂滅、無戲論相;若人分別、戲論常寂滅事,是人亦墮邪見。離是有、無二邊,處中道,卽是諸法實相。

諸法實相卽是佛。何以故?得是諸法實相,名爲得佛。

답하나니, 여기에서 ‘부처님이 없다는 무불(無佛)’이라 함이란, 부처님에 대한 애착하는 생각을 파괴하는 것으로,

‘부처님이 없다는 생각의 무불상(無佛想)을 가지라’는 말이 아니다. 

만약 부처님이 있어도 오히려 취하게 하지 않게 하여야 하거늘, 하물며 부처님이 없다는 삿된 소견을 취하게 하는 것이 겠는가?

또한 부처님은 항상 적멸한 상적멸(常寂滅)하여서 희론의 없는 무희론상(無戲論相)이니, 

어떤 사람이 항상 적멸한 상적멸(常寂滅)의 일(事)을 분별하거나 희론을 편다면,  사람 또한 삿된 소견에 떨어지나니, 이러한 ‘있다(有)ㆍ없다(無)’  가지 치우친 소견을 여의고 중도(中道)에 처하는 것이 법의 실상(實相)이요, 제법의 실상(實相)이  부처님이니,

왜냐 하면, 이러한 제법의 실상(實相) 얻으면 부처님이 된, 득불(得佛)하였다고 하기 때문이다.


復次,色等法如相卽是佛,色等法性空是如相,諸佛如亦性空;以是故,不來不去、不生、不滅、法性、實際、空、無染、寂滅、虛空性亦如無來無去 如,乃至虛空性如、佛如,是如一,無二、無三等別異。

此中自說因緣:“何以故?出諸數法,無所有故。”如等法是實,是中無有憶想分別。

取相故有名字,名字中有數。此中自說因緣:“空非實,無所有故。”

또한 물질(色) 등의 법의 여여한 여상(如相)이  부처님이니,

물질(色) 등의 법의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이 바로 여여한 여상(如相)이며, 

모든 부처님의 여여한 불여(佛如) 또한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이니,

이러한 까닭에 오지도 않는 불래(不來)이고, 가지도 않는 불거(不去)이며, 나지도 않는 불생(不生)이고, 없어지지도 않는 불멸(不滅)의 법성(法性)이요,

실제(實際)요, 공(空)이요, 물들지 않는 무염(無染)이요, 고요히 사라진 적멸(寂滅)한 것이며, 

허공의 성품인 허공성(虛空性)도 이와 같아서 오는 곳도 없고 가는 곳도 없는 무래무거(無來無去)의 여(如)이며, 

나아가 허공의 성품인 허공성(虛空性)의 여(如)가 부처님의 불여(佛如)이니, 

 여(如)는 하나이라서, 둘이라거나 셋이라는 등의 차별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연을 말하였으니, “왜냐 하면, 모든 수의 수법(數法)을 벗어나서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이기 때문이니라”고 한 것으로, 

여(如) 등의 법은 바로 진실이니, 이 여(如) 가운데에서는 기억이나 생각이나 분별이 없으나,

상(相)을 취하기 때문에 이름이 있고, 이름 가운데에 수(數)가 있는 것이니,  

여기에서 말하기를 “공은 진실이 아닌 공비실(空非實)이니,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이기 때문이니라”고 한 것이다.


問曰:若是法無所有,云何可見、可聞、有苦有樂、有縛有脫等分別諸異?

묻나니, 만약 이러한 법이 있지 않은 무소유(無所有)라면, 어찌하여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으며, 괴로움이 있고 즐거움이 있으며, 속박이 있고 벗어남이 있다는 등의 차이를 분별하는 것입니까?


答曰:此中曇無竭自種種分別譬喩說,所謂如春末月見焰,乃至是人不分別諸法若來若去。

如焰等中雖無實事,亦能誑人自生苦樂事;諸法亦如是,雖空、無所有,亦能令人得苦、樂、憂、喜事。夢等法亦如是。

답하나니, 여기에서 담무갈 보살 자신이 갖가지로 분별하면서 비유로 설명하고 있으니, 

이른바 “늦은 봄의 마지막 달에 아지랑이를 본다” 내지는 “이 사람은법이 온다거나 간다고 분별하지 않는다”고 것과 같이, 

마치 아지랑이에는 비록 진실함이 없을지라도 사람을 속여서, 스스로 괴롭고 즐거운 고락사(苦樂事) 등 내게 하는 것과 같이,

제법 역시도 이와 같아서 비록 공하여 있지 않은 무소유(無所有)일지라도, 사람들로 하여금 괴로움과 즐거움과 근심과 기쁨 등을 얻게 하나니,  등의 법도 이와 같은 것이다.


復次,佛有二種身:一者、法身,二者、色身。法身是眞佛,色身爲世諦故有。

佛法身相:上種種因緣說諸法實相,是諸法實相亦無來無去,是故說“諸佛無所從來,去亦無所至”。

若人得諸佛法身相,是名近阿耨多羅三藐三菩提,未得一切智故名爲近,以相似故。

 부처님에게는  가지의 몸이 있으니, 첫째는 법신(法身)이요, 둘째는 색신(色身)이니,  

법신(法身)은 바로  부처님이신 진불(眞佛)이요, 색신은 세속의 이치인 세제(世諦) 때문에 있게 된 것이다.

부처님은 법신의 상(相)에서 갖가지의 인연으로법의 실상을 말씀하시지만, 법의 실상 또한 오고 감이 없는 무래무거(無來無去)이니, 이러한 까닭에 “모든 부처님은 어디로부터  곳이 없는 무소종래(無所從來)이고 

가되 이르는 곳이 없는 거역무소지(去亦無所至)이다”고 말하는 것이며,

만약 사람이 모든 부처님의 법신의  상(相) 얻으면, 이를 일컬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워졌다고 하며,

아직 일체지(一切智)를 얻지 못한 때문에 가까워졌다고 하는 것으로, 비슷하여진 때문이다.


般若波羅蜜名諸法實相;若能如是行,是爲行般若波羅蜜眞佛弟子。

眞佛弟子者,得諸法實相名爲佛;得諸法實相差別故,有須陁洹乃至辟支佛、大菩薩;

須陁洹等乃至大菩薩,是名眞佛弟子。

‘반야바라밀’이란법의 실상(實相)을 말하는 것이로, 만약 이와 같이 행할  있으면, 이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며, 그가  진실한 부처님의제자인 진불제자(眞佛弟子)인 것이다.

‘진실한 부처님의 제자인 진불제자(眞佛弟子)’라 함이란,법의 실상을 얻은 이를 부처님이라 하나,

법의 실상과 그 차별을 얻었기 때문에 수다원 내지는 벽지불과 보살이 있는 것이니, 

 수다원에서 보살에 이르기까지를 이름하여 진실한 부처님의 제자인 진불제자(眞佛弟子)라 하는 것이다.


不虛妄食人信施者,布施畜生,雖得百倍果報,而此福有盡有量,不能度衆生生死故,名爲“虛食”。

須陁洹等乃至佛,諸賢聖受人信施;此福果報,乃至涅槃無盡無量,是故說不虛妄食人信施。

‘헛되고 망령되게 남의 신시(信施)를 먹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축생에게 보시하여 비록  배의 과보를 얻는다 할지라도,  복은 다함이 있는 유진(有盡)으로 한량이 있는 것이며, 중생을 생사에서 제도할 수도 없기 때문에 ‘헛되이 먹는 허식(虛食)이다’고 하며,

수다원  내지는 부처님과 모든 성현은 남으로부터 신시(信施)를 받으면, 그 보시로 인하여 얻게되는 복의 과보가 열반에까지 이르면서 다함도 없고 무량하기 때문에 ‘헛되고 망령되이 다른 이의 믿음의 보시인, 신시(信施)를 먹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是人應受一切衆生供養:若須陁洹應受一切凡夫人供養,斯陁含應受凡夫人乃至須陁洹供養,阿那含應受凡夫人及須陁洹、斯陁含供養,阿羅漢應受凡夫人、須陁洹、斯陁含、阿那含供養,辟支佛應受凡夫人及須陁洹乃至阿羅漢供養,近成佛大菩薩應受凡夫人及聲聞、辟支佛供養。

爲世間福田者,如植種良田,成收必多;持戒、禪定、智慧福田,衆生植福,獲果無量。

‘이러한 사람들은 일체 중생들의 공양을 받을 만하다’고  것은, 

만약 수다원이라서 일체 범부인의 공양을 받을 만하다면, 

사다함은 범부와 수다원의 공양을 받을 만한 것이고, 

아나함은 범부인과 수다원과 사다함의 공양을 받을 만한 것이며, 

아라한은 범부인과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의 공양을 받을 만한 것이고, 

벽지불은 범부인과 수다원 내지는 아라한에 이르기까지의 공양을 받을 만하며, 

성불에 가까워진 대 보살은 범부와 성문과 벽지불의 공양을 받을 만한 것이다.

‘세간의 복전(福田)이 된다’고 함이란, 마치 좋은 밭에 씨를 뿌리  수확도 반드시 많은 것과 같이, 지계(持戒)ㆍ선정(禪定)ㆍ지혜(智慧)의 복전은 중생들에게 복을 심어서 그 과보를 얻게 함이 무량한 것이다.


上說“諸佛無來無去”,薩陁波崙及諸聽者意謂:“諸佛尚無,諸法亦應皆滅”,則墮斷滅!是故今說因緣法譬喩。曇無竭示薩陁波崙:“如汝所著,意謂實有者無;爲度衆生故,從因緣和合則有像現。”

위에서 “모든 부처님은 오는 곳도 없고 가는 없다”고 말하였으므로 살타파륜이나 듣는 이들은 생각하기를 ‘모든 부처님조차 오히려 없으므로, 제법도 모두 소멸되어야 하는 것이다’고 하여서, 아주 없다는 단멸(斷滅)에 떨어지게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인연(因緣)의 법으로 비유를 들어 설명하였으니, 

담무갈은 살타파륜에게 교시하기를 “마치 그대가 애착하여 실로 있다고 여기는 것은 없는 것이며, 다만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인연화합으로부터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欲證明此事故說譬喩:“如大海中生寶,不從十方來,滅亦無所去;亦不無因緣而生,以四天下衆生福德因緣故,海生此寶。若劫盡滅時,亦無去處;譬如燈滅,焰無所至。

佛身亦爾,從初發心所種善根功德,皆是佛身相好因緣;佛身亦不自在,皆屬本因緣業果報故生;是因緣雖久住,性是有爲法故,必歸無常,散壞則無身。”

이러함을 증명하고자 비유를 말하였으니, 마치  바다 가운데에 생겨난 보물은 시방에서  것도 아니고, 없어질 때에도 가는 곳이 없으며, 또한 인연없이 생기는 것도 아닌 것이니, 

사천하(四天下) 중생들의 복덕인연으로 바다에 이러한 보물이 생기는 것이요,

만약 겁(劫)이 다하여 없어진다 할지라도 역시 가는 곳이 없으니, 마치 등불이 꺼지면  불꽃이 가는 곳이 없는 것과 같으며, 

부처님의 불신(佛身) 그러하여서, 처음발심할 때부터 심은 선근과 공덕 모두는 부처님 불신 상호(相好)가 되는 인연이며,

부처님의 불신 또한 자재(自在)하지 않은 것이니, 모두가 본래의 인연에 속하고 업의 과보로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며, 

이러한 인연으로 생겨서 비록 오래 머무른다 할지라도,  성품이  유위법(有爲法)이기 때문에 반드시 무상(無常)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흩어져 무너지면  몸이 없게 되는 것이다.


譬如善射之人,仰射虛空,箭去雖遠,必當墮地;諸佛身亦如是,雖相好光明、福德成就、名稱無量、度人無限,亦歸磨滅。

비유하자면, 마치 활을  쏘는 사람이 허공을 향하여 활을 쏘아서 비록  화살이 멀리까지 갈지라도 반드시 땅에 떨어지는 것과 같이, 모든 부처님의 불신 이와 같아서 상호와 광명과 복덕을 성취하여서 명칭(名稱)이 무량하며, 사람들을 제도함이 무한하다 할지라도, 역시 닳아서 없어지는 마멸(磨滅)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問曰:若衆生福德因緣故海生珍寶,何以不近衆生處生,而乃在大海難得之處?

묻나니, 만약 중생의 복덕인연으로 바다에 값진 보물들이 생기는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중생들과 가까운 곳에 생기지 않고 얻기 어려운 대해(大海) 있는 것입니까?


答曰:海中亦有衆生,龍、阿修羅等用是寶。復次,若寶生人中濁世,貪者覆藏,不令人得。若好世時,珍寶自生人閒,無有惜者;如彌勒佛時,珍寶如瓦礫。以懈怠懶墯人惜身,强作願求樂,是故寶在大海不能得;若大心,不惜身命勤求者乃得。

답하나니, 바다 속에도 중생들이 있으니, 용(龍)과 아수라(阿修羅) 등이  보물을 사용하는 것이다.

또한 만약 보물들이 인간의 탁한 탁세(濁世)에 생기게 되면, 탐내는 이들이 감추어 두고 남들은 얻지 못하게  것이며, 

만약 좋은 세상인 호세(好世)일 때에 값진 진보(珍寶)들이 저절로 생긴다면, 인간으로서 아끼는 이가 없을 것이니, 

마치 미륵불(彌勒佛) 때에 진귀한 진보(珍寶)들을 기와조각이나 조약돌과 같이 여긴 것과  같으며,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들은 몸을 아끼면서 억지로 원을 일으켜서 즐겁기만을 바라기 때문에 보물들이  바다에 있어도 얻을  없을 것이지만, 

만약 큰 대심을 지니고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으면서 부지런히 구하는 이라면, 바로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大海水喩十方六道國土,諸珍寶卽是諸佛。如珍寶爲一切衆生故生,而懈怠懶墯者所不能得;諸佛亦如是,雖爲衆生故出世閒,懈怠、小心、貪身著我者不得度。所以者何?諸法皆從衆緣和合生,

衆生有二因緣故得度:一者、內有正見,二者、外有善說法者。諸佛雖善說法,衆生內正見不具故,不能盡度。

 바닷물인 대해수(大海水)는 시방 육도(六道)의 국토에 비유한 것이요, 

모든 값진 보물인 진보(珍寶)들이란,  모든 부처님을 말하는 것이다.

값진 보물인 진보(珍寶)는 일체 중생들을 위하여 생겨났지만, 게으르고 나태한 이들은 얻을  없는 것과 같이,

모든 부처님도 이와 같아서 비록 중생들을 위하여 세간에 출현하셨을지라도 게으르고 마음가짐이 작고 몸만을 탐하면서 나(我)에 집착하는 이라면 제도되지 못하나니, 왜냐하면,법은 모두  인연이 화합하여 생긴 중연화합생(衆緣和合生)이기 때문이다. 

중생은 두 가지의 인연으로 제도되나니, 첫째는 안으로 바른 소견의 정견(正見)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둘째는 밖으로 법을  설해 주는 설법자 있어야 하는 것으로,  

비록 모든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여 주신다 할지라도 중생들이 안으로 바른 정견 갖추지 못한 까닭에 모두  제도되지는 못하는 것이다.


如寶物雖爲衆生出,而有貧窮衆生;諸佛亦如是,雖爲衆生出,而衆生內正見少故,亦不得度。

復有箜篌譬喩:有槽、有頸、有皮、有絃、有棍,有人以手鼓之,衆緣和合而有聲;如聲亦不在衆緣中,離衆緣亦無聲,以因緣和合故有聲可聞。諸佛身亦如是,六波羅蜜及方便力,衆因緣和合邊生;佛身不在六波羅蜜等法中,亦不離六波羅蜜等法。

마치 보물이 비록 중생들을 위하여 생겨났을지라도 빈궁한 중생들이 있는 것과 같이,

모든 부처님도 이와 같아서 비록 중생들을 위하여 출현하셨을라도 중생들이 안으로의 바른견이 적기 때문에 역시 제도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공후(箜篌)의 비유가 있으니, 그것에는 몸체인 조(槽)가 있고, 목의 경(頸)이 있으며, 가죽의 피(皮)가 있고, 줄의 현(絃)이 있으며, 중심 기둥인 주(柱)가 있고, 한데 묶은 혼(棍)이 있어서, 어떤 사람이 손으로 공후를 뜯으면 중인연(衆因緣)이 화합하여서 소리가 있게 된 것이니,

 소리는 여러 가지 인연 가운데에 있지도 않으나, 여러 가지 인연을 여의면 소리 또한 없는 것으로,

인연이 화합한 까닭에 소리가 있어서 들을  있는 것과 같이,

모든 부처님의 불신(佛身) 또한 이와 같아서 6바라밀과 방편력 등의 여러 가지인연(衆因緣)이 화합하여서 불신 생긴 것이나,  불신 6바라밀 등의  가운데에 있지도 않으며, 또한 6바라밀 등의 법을 여읜 것도 아닌 것이다.


如聲不以一因緣,亦非無因緣;佛身亦如是,不從無因緣,亦不從少因緣,諸善法因緣具足故,生諸佛身。如鏡中像,衆因緣和合故有,衆緣離故無;諸佛亦如是,有諸因緣故出現,諸因緣散故滅。

마치 소리(聲)가 하나의 인연으로써 나는 것도 아니요, 또한 인연이 없는 것도 아닌 것과 같이,

부처님의 불신 또한 이와 같아서 인연이 없는 것을 좇지도 않고, 또한 적은 인연을 좇지도 않으며, 모든 착한법의 인연이 완전히 갖추어진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불신 생기는 것이다.

마치 거울 속의 형상이  인연이 화합한 까닭에 생겼다가,  인연을 여읜 까닭에 없어지는 것과 같이,

부처님도 이와 같아서 모든 인연이 있기 때문에 출현하셨다가, 모든 인연이 흩어진 까닭 사라지시는 것이다.


善男子!應如是觀諸佛來去相,一切諸法相亦應如是知。”

曇無竭語薩陁波崙:“善男子!汝能知諸法相不來不去,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退轉,亦必能行般若波羅蜜及方便力。何以故?一切法無障㝵故。”

따라서 “선남자여, 마땅히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의 오고 가는 내거상(來去相)을 관찰해야 하며,

일체법의 상(相) 또한 이와 같다고 알아야 하느니라”고 한 것이다.

담무갈 보살이 살타파륜에게 말하기를 “선남자여, 그대는 제법의 상(相)이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 것임을 알게 되면,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물러나지 않게 될 것이며, 또한 반드시 반야바라밀과 방편력을 행할 수 있게 되느니라.

왜냐 하면, 일체법에서 장애가 없기 때문이니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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