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論釋薩陁波崙品 第八十八之餘卷 第九十七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88. 살타파륜품을 풀이함 ② 2
▶論. 問曰:薩陁波崙何以忘,不問空中聲?
▷논. 묻나니, 살타파륜은 어찌하여 공중에서 나는 소리인 공중성(空中聲)에게 잊고서 묻지 않았던 것입니까?
答曰:薩陁波崙大歡喜覆心故忘;如人大憂愁、大歡喜,以此二事故忘。
답하나니, 살타파륜은 너무도 기쁜 마음으로 가려졌었기 때문에 잊어버린 것이니,
마치 사람이 큰 근심이 있거나 큰 기쁜 일이 있으면, 이 두 가지 때문에 다른 일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問曰:空中聲已滅,何以住此七日,不更求問處?
묻나니, 공중의 소리인 공중성(空中聲)은 이미 사라져 없거늘, 무엇 때문에 그 곳에서 7일 동안 머물면서 다시 물을 수 있는 문처(問處)를 구하지 않았던 것입니까?
答曰:如本於空閑處一心求般若故,空中有聲;今亦欲一心如本,冀更聞聲,斷其所疑。
復次,薩陁波崙於世樂已捨,深入佛道,愛樂情至;空中聲告,少爲開示,竟未斷疑,其聲便滅。如小兒得少美味,著是味故,更復啼泣,而欲得之;薩陁波崙亦如是,得般若波羅蜜因緣味,不能通達,不知那去,是故住而啼泣。
답하나니, 본래는 비고 고요한 공한처(空閑處)에 있으면서 일심으로 반야를 구한 까닭에 공중에서 소리인 공중성(空中聲)이 있게 되었던 것과 같이, 지금도 일심으로 바라기를, 처음과 같이 다시 그 음성을 듣고 의심되는 것을 끊고자 한 것이다.
또 살타파륜은 세간의 즐거움을 이미 버리고 부처님의 불도에 깊이 들어가서 좋아하는 애락정(愛樂情)이 지극하였기에 공중성(空中聲)으로 인하여 조금은 열리게 되었으나, 아직 의심을 완전히 끊지 못하였데 그 소리가 곧 사라져버린 것이니,
마치 어린아이가 맛있는 음식의 맛을 보면 그 맛에 탐착하는 까닭에 더욱 더 울고 보채면서 그 음식을 얻으려고 하는 것과 같이,
살타파륜도 반야바라밀의 인연의 맛을 얻기는 하였으나 통달할 수도 없었고, 또한 어디로 가야할지도 몰랐기 때문에 그곳에 서서 슬피 운 것이다.
問曰:何以乃至七日,佛身乃現?
묻나니, 무엇 때문에 7일이 되어서야 부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까?
答曰:譬如人大渴故,乃知水美。若二日、三日,精進欲未深;若過七日,恐其憂愁妨心,不任求道。是故七日憂愁。如譬喩,經中說。
답하나니, 비유하자면, 마치 사람이 몹시 목이 마를 때에야 비로소 물의 참맛을 알게 되듯이, 2일ㆍ3일로써는 정진과 서원이 아직 깊지 못하나, 만약 7일이 지난 뒤에는 그 근심이 마음을 가로막아서 도를 구하지 못하게 될까 염려한 것이다.
그 때문에 7일 동안이나 근심한 것이니, 이 비유는 경에서의 설명과 같은 것이다.
問曰:薩陁波崙何以愁憂乃爾,如喪愛子?
묻나니, 살타파륜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도 근심한 것이 마치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것과 같았던 것입니까?
答曰:般若波羅蜜於諸法中第一實,是十方諸佛眞實法寶;薩陁波崙得少氣味,未具足故憂愁。
如喪愛子,念其長大,多所成辦,冀得其力;菩薩亦如是,念增益般若波羅蜜力,得阿鞞跋致已,成就佛事。
답하나니, 반야바라밀은 제법 가운데서 제일 진실인 제일실(第一實)로써,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진실한 법보(法寶)이니,
살타파륜은 약간의 기미(氣味)를 얻었기는 하였으나 아직 완전히 갖추지 못한 까닭에 근심한 것이니,
마치 사랑하던 아들을 잃은 후에, 그 아들이 자라나서 이룩할 일도 많을 것이며 그의 힘을 얻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이,
보살도 이와 같아서, 반야바라밀의 힘이 더욱 늘어나면 아비발치(阿鞞跋致, 불퇴전)를 얻게 될 것이고, 그러한 뒤에는 불사(佛事)를 성취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如子於父,孝行終身,無有異心;般若波羅蜜於菩薩亦如是,若能得入,乃至成佛,終不遠離。
如父見子,心卽歡悅;菩薩雖得種種諸法,不如見般若波羅蜜之歡喜。如子假爲其名;般若波羅蜜亦如是,空無定實,但有假名。如是等,是摠相因緣。
마치 아들이 아버지에게 효행을 하면서 죽을 때까지 다른 마음이 없었던 것과 같이,
보살이 반야바라밀에 대한 것도 이와 같아서, 만약 그 안에 들어가게 되면 부처님이 되기까지 끝내 멀리 여의지 않게 되는 것이,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보면 그 마음이 곧 기뻐지는 것과 같은 것이니,
보살이 비록 갖가지의 제법을 얻는다 할지라도 반야바라밀을 보면서 기뻐하는 것보다는 못하며,
마치 아들에게 그의 이름을 임시로 붙여 주는 것과 같이,
반야바라밀도 공하여 일정한 실체가 없으나 다만 임시로 붙인 가명만이 있을 뿐인 것이니,
이와 같은 등은 바로 전체의 총상(總相)의 인연인 것이다.
父雖愛子,不能以頭目與之;菩薩爲般若波羅蜜故,無量世中,以頭目髓腦施與衆生。
子之於父,或不能報恩,若能報恩,正可現世小利,衣食歡樂等;菩薩於般若波羅蜜中,無所不得,乃至一切智慧,何況菩薩力勢、世閒富樂!
子之報父,恩極一世;般若之益,至無量世,乃至成佛。
子之於父,或好、或惡;般若波羅蜜無諸不可。子但是假名,虛誑不實之法;般若波羅蜜眞實聖法,無有虛誑。
아버지는 비록 아들을 사랑할지라도 그의 머리와 눈을 아들에게 줄 수 없지만,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위하여 무량한 세상 동안 머리나 눈ㆍ골수ㆍ뇌를 중생들에게 베풀었으며,
아들이 아버지에게 혹 은혜를 보답하지 못하기도 하나, 설령 은혜를 갚는다 하여도 이 세상에서의 조그마한 옷과 밥과 환락(歡樂) 등으로 이롭게 하는 것일 뿐이지만,
보살은 반야바라밀 가운데에서 일체지혜에 이르기까지 얻지 못하는 것이 없거늘, 하물며 보살의 세력으로 세간의 부(富)와 낙(樂)을 얻지 못함이 있겠는가?
아들이 아버지의 은혜를 갚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한 세상의 일세(一世)로 끝날 뿐이지만,
반야의 이익은 무량한 세세에 이르러서 이에 성불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며,
아들이 아버지를 혹은 좋아하기도 하고 혹은 싫어하기도 하지만, 반야바라밀에서는 그러한 일들이 있을 수 없으며,
아들은 다만 임시로 붙인 가명일 뿐이라서 허광(虛誑)된 것이요 진실한 실법이 아니지만,
반야바라밀은 진실한 성인의 법으로서 거짓이란 없는 무유허광(無有虛誑)인 것이다.
子之報恩,雖得現世小樂,而有憂愁苦惱無量之苦;般若波羅蜜但得歡喜實樂,乃至佛樂。
子但能以供養利益於父,不能免其生、老、病、死;般若波羅蜜令菩薩畢竟淸淨,無復老、病、死、患。
子但能令父得世樂自在;般若波羅蜜能令菩薩於一切世閒爲天人主。
如是等,種種因緣譬喩差別相。世人皆知喪子憂愁故,以此爲喩。
아들이 은혜를 갚아서 비록 이 현세의 조그마한 즐거움은 얻게 될지라도 근심과 고뇌의 무량한 고통이 있지만,
반야바라밀은 다만 기쁨과 진실한 즐거움만을 얻으면서 이에 부처님의 즐거움인 불락(佛樂)에 이르게 되며,
아들은 다만 공양만으로 아버지를 이롭게 할 뿐, 나고(生)ㆍ늙고(老)ㆍ병들고(病)ㆍ죽는(死) 것은 면하게 하지 못하지만,
반야바라밀은 보살로 하여금 마침내 청정하여져서 다시는 나고(生)ㆍ늙고(老)ㆍ병들고(病)ㆍ죽는(死) 따위의 우환이 없게 하며,
아들은 다만 아버지에게 세간의 욕락에 자재(自在)함을 얻게 할 뿐이지만,
반야바라밀은 보살로 하여금 일체 세간에서 천상과 인간의 주인이 되게 하나니,
이와 같은 등의 갖가지 인연과 비유의 차별상(差別相)이 있으며,
세인(世人)들 모두는 아들을 잃는 그 근심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로써 비유를 삼은 것이다.
問曰:空中佛現,是何等佛?先何以但有音聲而今現身?佛旣現身,何以不卽度,方遣至曇無竭所?
묻나니, 공중에서 부처님이 나타나셨다는데 그 분은 어떤 부처님이십니까?
앞에서는 음성만 있었을 뿐인데, 지금은 무엇 때문에 몸을 나타내신 것입니까?
기왕에 부처님께서 몸을 나타내셨다면, 무엇 때문에 곧 바로 제도하지 않으시고 담무갈에게로 보낸신 것입니까?
答曰:有人言:非眞佛,但是像現耳 或諸佛遣化,或大菩薩現作。
以先善根福德未成就故,但聞聲;今七日七夜一心念佛,功德成就故,得見佛身。
답하나니, 어떤 분은 “참 부처님이신 진불(眞佛)이 아닌 것으로, 다만 형상만을 나타나게 한 것일 뿐이다”고 말하며,
혹은 모든 부처님께서는 변화한 화불(化佛)을 보내기도 하고, 혹은 대 보살이 나타나게 하기도 하는 것이다.
앞에서는 선근과 복덕이 아직 성취되지 못한 까닭으로 다만 소리만을 들었을 뿐이나,
이제는 밤낮으로 이레 동안을 일심으로 부처님을 생각하여, 그 공덕이 이루어진 까닭에 부처님의 몸을 뵐 수 있었던 것이다.
佛所以不卽度者,以其與曇無竭世世因緣,應當從彼度故。有人應從舍利弗度,假使諸佛現身,不能令悟。
佛讚言善哉者,以薩陁波崙至意求知去處、聞般若因緣故,佛現身而讚善哉。
부처님께서 바로 제도하시지 않으시는 까닭은 그와 담무갈과는 여러 세상 동안의 인연 때문에 마땅히 그에게서 제도되어야 한 때문이니,
어떤 사람이 사리불로부터 제도되어야 한다면 설령 모든 부처님이 몸을 나타내실지라도 그를 깨치게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며,
부처님께서 “훌륭하다”고 찬탄하신 것은, 살타파륜이 지극한 마음으로 구하면서 가야할 곳과 반야를 들을 인연을 알고자 한 때문에 부처님께서 몸을 나타내시어서 “장하도다”라고 칭찬하신 것이다.
過去諸佛行菩薩道時,求此般若,亦如是種種勤苦;以初發心,先罪厚重,福德未集故。佛安慰其心:“汝求般若波羅蜜,雖勤苦,莫懈怠,莫生退沒心!一切衆生行異,因時皆苦,受果時樂。當思惟諸佛無量功德果報,以自勸勉。”
如是安慰已,作是言:“汝從是東行,去此五百由旬,有城名衆香,乃至不久當聞般若波羅蜜。”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보살도를 행하실 때, 이 반야를 구하면서 역시 이러한 고생을 겪으셨던 것이니,
처음 초발심할 때에는 우선 죄가 두텁고 무거우며, 아지 복덕을 쌓지 못한 까닭에 부처님께서 그의 마음을 위로 하시면서 “그대는 반야바라밀을 구하느라고 비록 고생이 될지라도 게으르지도 말고 물러나거나 위축되는 마음을 내지 말라.
일체 중생들이 다른 수행의 인(因)을 지을 때에는 모두가 고통을 받지만, 과(果)를 받을 때에는 즐거우니,
마땅히 모든 부처님의 무량한 공덕과 과보를 생각하면서 스스로 힘써야 하느니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위로한 뒤에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이로부터 동쪽으로 향하여 가되 여기서 5백 유순을 가면 성이 있는데 이름은 중향(衆香)이며, 나아가 오래지 않아서 반야바라밀을 들을 것이다”라고 하셨던 것이다.
問曰:衆香城在何處?
묻나니, 중향성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答曰:過去佛滅度後,但有遺法,是法不周遍閻浮提,衆生有聞法因緣處則到。
爾時,衆香國土豐樂,多出七寶故,以七寶作城。時薩陁波崙雖同在閻浮提,而在無佛法、無七寶處生,但傳聞佛名、般若波羅蜜是佛道。是人先世廣集福德,煩惱輕微故,聞卽信樂,厭惡世樂,捨其親屬,到空林中住,欲至有佛法國土。
音聲示語者,恐其異去,不得到曇無竭菩薩所,是故語之;次後佛爲現身,示其去處。
답하나니, 과거의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 남기신 교법이 있기는 하나, 이 법은 염부제(閻浮提)에 두루하지 못한 것이므로 중생들이 법을 들을 인연이 있는 곳이면, 곧 그곳에 이르는 것이다.
이 때에 중향성의 국토는 풍요하고 안락하면서 7보(寶)가 많이 나왔기 때문에 7보로써 성이 이루어져 있으며,
이 때에 살타파륜은 비록 염부제에 같이 있었기는 하나 부처님의 불법이 없고 7보도 없는 곳에 태어난 것이며, 다만 부처님이라는 이름과 반야바라밀이 부처님의 불도(佛道)라는 것을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이 사람은 전생에 복덕을 널리 쌓았고 번뇌가 경미한 까닭에 그러한 말을 듣고는 곧 믿고 좋아하면서 악한 악세의 욕락을 싫어하여 그의 친족들을 버리고는 빈 숲속에 머무르면서 부처님의 불법이 있는 국토에 이르고자 한 것이니,
음성으로 말씀을 내보이신 것은 그가 다른 곳으로 가면서 담무갈보살에게 이르지 못할 것을 염려한 때문이요,
그 다음에 부처님이 그를 위하여 몸을 나타내어서 그가 나아 갈 곳을 지시하신 것이다.
問曰:薩陁波崙因緣已具聞於上,今曇無竭因緣爲云何?
묻나니, 살타파륜에 대한 인연은 이미 위에서 자세하게 들었습니다. 이제 담무갈에 대한 인연은 어떻씁니까?
答曰:“鬱伽陁”,秦言“盛”;“達磨”,秦言“法”。
此菩薩在衆香城中,爲衆生隨意說法,令衆生廣種善根,故號“法盛”。
其國無王,此中人民皆無吾我,如鬱單越人,唯以曇無竭菩薩爲主。其國難到,薩陁波崙不惜身命,又得諸佛菩薩接助能到。大菩薩爲度衆生故,生如是國中;衆生無所乏短,其心調柔,易可得度故。
답하나니, 울가타(鬱伽陀, udgata)는 진(秦)나라 말로 흥성하다는 성(盛)이요,
달마(達磨, dharma)는 진나라 말로 법(法)이다.
이 보살은 중향성에 있으면서 중생들을 위하여 그들의 뜻에 따라 법을 설하여서 중생들로 하여금 선근을 널리 심게 하였으므로 ‘법을 흥성시킨 법성(法盛)’이라 불렀으며,
그 나라에는 아직 왕이 없었고, 그 곳에 있는 백성들은 모두는 '나'라는 오아(吾我)가 없었던 것이 마치 울단월(鬱單越, 북구로주 北拘盧洲, 다른 세계보다 복력이 뛰어난 승처 勝處) 사람들과 같았으니, 오직 담무갈보살만을 왕으로 삼고 있었다.
비록 그 나라에 도달하기 어렵다 하지만, 살타파륜은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았으며,
또한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도움을 받았으므로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 보살은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이러한 나라에 태어나는 것이며,
그 곳에 있는 중생들은 모자란 것이 없고 그 마음이 조복되어 유연하기 때문에 제도되기 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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