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三慧品 第七十之餘 卷八十四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70. 삼혜품(三慧品)을 풀이함 ② 2
須菩提白佛言:“世尊!若以名字相故說諸法令衆生解;世尊!一切法無名無相,云何以名相示衆生欲令解?”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름의 명자상(名字相)으로써 제법을 설명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알게 한다고 하셨는데,
세존이시여, 일체법은 이름도 없는 무명(無名)이고, 무상(無相)이거늘 어떻게 이름의 명자상(名字相)을 중생에게 보여서 알게 하는지요?”
佛告須菩提:“隨世俗法有名相,實無著處。
須菩提!如凡夫說若,著名、隨相;須菩提!諸佛及弟子不著名、不隨相。
須菩提!若名著名、相著相,空亦應著空,無相亦應著無相,無作亦應著無作,實際應著實際,法性應著法性,無爲性應著無爲性。
須菩提!是一切法但有名相,是法不住名相中。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但名相中住,應行般若波羅蜜,是名相中亦不應著!”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세속의 법에 따라 이름의 명자상(名字相)이 있는 것일 뿐이니, 진실로 집착해야 곳은 없느니라.
수보리야, 범부들은 괴로움의 고(苦)를 말하면, 듣고서 그 이름에 집착하여 상(相)을 따르지만,
수보리야, 모든 부처님과 그 제자들은 이름에 집착하지도 않고, 상(相)을 따르지도 않느니라.
수보리야, 만약 이름은 이름에 집착하는 명착명(名著名)이고, 모양은 모양에 집착하는 상착상(相著相)이라면, 공(空)에서도 공함에 집착하는 착공(著空)하여야 하고, 무상에서도 당연히 착무상(著無相)하여야 하며, 무작(無作)에서도 응당 착무작(著無作)하여야 하며, 실제(實際)에서도 착실제(著實際)하여야 하며, 법성(法性)에서도 착법성(著法性)하여야 하고 무위성(無爲性)과 무위성(無爲性)에도 집착해야 하리라.
수보리야, 이 일체법은 다만 이름의 명상(名相)이 있을 뿐, 이 법은 이름의 명상(名相)에 머무르지 않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다만 이름의 명상(名相) 가운데에 머물러 반야바라밀을 행하여야 하나, 이 이름의 명상(名相)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世尊!若一切有爲法但名相者,菩薩摩訶薩爲誰故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受種種勤苦
菩薩行道時,布施、持戒、行忍辱、勤精進、入禪定、修智慧,行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四念處乃至八聖道分,行空行、無相行、無作行、佛十力乃至具足大慈悲?”
“세존이시여, 만약 일체 유위법이 다만 이름의 명상(名相)일 뿐이라면, 보살마하살은 누구를 위하여 아뇩다라삼막삼보리의 마음을 일으켜서 가지가지로 수고로운 근고(勤苦)를 하는지요?
보살이 도를 행할 때, 보시하고 계율을 지니며, 인욕을 행하고 부지런히 정진하며, 선정에 들어가고 지혜를 닦으며, 사선ㆍ사무량심ㆍ사무색정ㆍ사념처 내지는 팔성도분을 행하며, 공(空)을 행하고 무상(無相)을 행하고 무작(無作)을 행하며, 부처님의 십력을 행하며, 나아가 대자대비를 두루 갖추는지요?”
佛言:“如須菩提所說,若一切有爲法但名相者,菩薩摩訶薩爲誰故行菩薩道?
須菩提!若有爲法但名相等,是名相、名相相空。以是故,菩薩摩訶薩行菩薩道得一切種智;得一切種智已,轉法輪;轉法輪已,以三乘法度脫衆生。是名相,亦無生、無滅、無住異。”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가 말한 것과 같이, 만약 일체의 유위법이 다만 이름의 명상(名相)일 뿐이라면 보살마하살은 누구를 위하여 보살의 도를 행하겠는가?
수보리야, 만일 유위법이 다만 이름의 명상(名相)일 뿐이라면, 이 이름의 명상(名相)은 이름의 명상(名相)의 상(相)까지도 공(空)한 것이니,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은 보살도를 행하여 일체종지를 얻고, 일체종지를 얻은 뒤에는 법륜을 굴리며, 법륜을 굴린 뒤에는 삼승(三乘)의 법으로써 중생을 제도하여 벗어나게 하되, 이러한 이름의 명상(名相) 또한 생기거나 소멸함이 없으며, 머무르거나 달라지지 않느니라.”
爾時,須菩提白佛言:“世尊!世尊說一切種智?”
佛告須菩提:“我說一切種智。”
그 때에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일체종지(一切種智)를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일체종지(一切種智)를 말하는 것이니라.”
須菩提言:“佛說一切智、說道種智、說一切種智,是三種智有何差別?”
佛告須菩提:“薩婆若是一切聲聞、辟支佛智,道種智是菩薩摩訶薩智,一切種智是諸佛智。”
수보리 존자가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일체지(一切智)를 말씀하시고 도종지(道種智)를 말씀하시며 일체종지(一切種智)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 지혜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살바야(薩婆若, 일체지)는 곧 일체 성문과 벽지불의 지혜요, 도종지(道種智)는 보살마하살의 지혜이며, 일체종지(一切種智)는 모든 부처님의 지혜이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何因緣故,薩婆若是聲聞、辟支佛智?”
佛告須菩提:“一切名所謂內外法,是聲聞、辟支佛能知,不能用一切道、一切種智。”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살바야(일체지)가 성문과 벽지불의 지혜가 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온갖 것의 일체(一切)란 안팎의 내외법(內外法, 12입)을 말하느니라.
이 성문과 벽지불은 능히 알면서도 일체도(一切道)와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이용하지 못하느니라.”
須菩提言:“世尊!何因緣故,道種智是諸菩薩摩訶薩智?”
佛告須菩提:“一切道,菩薩摩訶薩應知:若聲聞道、辟支佛道、菩薩道,應具足知;亦應用是道度衆生,亦不作實際證。”
수보리 존자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도종지(道種智)가 모든 보살마하살의 지혜가 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체도(一切道)를 보살마하살은 알아야 하고, 성문도와 벽지불도와 보살도를 다 갖추어 알아야 하며, 또한 이러한 도(道)를 이용하여 중생을 제도하면서도, 실제(實際)를 증득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如佛說菩薩摩訶薩應具足諸道,不應以是道實際作證耶?”
佛告須菩提:“是菩薩未淨佛土、未成就衆生,是時不應實際作證。”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보살마하살이 마땅히 모든 도(道)를 두루 갖추고서도 이 도(道)로써 실제(實際)를 증득하지 않아야 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이 보살은 아직 부처님의 불토(佛土)를 청정하게 하지 못하였고, 아직 중생을 성취시키지 못하였으므로, 이러한 때에는 실제(實際)를 증득하지 않아야 되느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菩薩住道中,應實際作證?” 佛言:“不也!”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도(道) 가운데에 머무르며 실제(實際)를 증득해야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니라.”
“世尊!住非道中,實際作證?” 佛言:“不也!”
“세존이시여, 도가 아닌 비도(非道) 가운데에 머무르며 실제(實際)를 증득해야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니라.”
“世尊!住道非道,實際作證?” 佛言:“不也!”
“세존이시여, 도와 도 아닌 도비도(道非道) 가운데에 머무르며 실제(實際)를 증득해야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니라.”
“世尊!住非道亦非非道,實際作證?” 佛言:“不也!”
“세존이시여, 도가 아닌, 비도(非道) 혹은 도가 아닌 것도 아닌 비비도(非非道) 가운데에 머무르며 실제(實際)를 증득해야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니라.”
“世尊!菩薩摩訶薩住何處,應實際作證?”
佛告須菩提:“於汝意云何?汝住道中,受諸法故,漏盡得解脫不?”
須菩提言:“不也!世尊!”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어느 곳에 머무르며 실제(實際)를 증득해야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도(道) 가운데 머무르면서 제법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번뇌가 다하여 해탈을 얻을 수 있겠는가?”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리기를,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汝住非道,漏盡得解脫不?” “不也!世尊!”
“그대는 도가 아닌 비도(非道) 가운데에 머무르면, 번뇌가 다하여 해탈을 얻을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汝住道非道,漏盡得解脫不?” “不也!世尊!”
“그대는 도와 도가 아닌 도비도(道非道) 가운데에 머무르면 번뇌가 다하여 해탈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汝住非道亦非非道,漏盡得解脫不?”
“不也!世尊!我無所住,不受諸法,漏盡心得解脫。”
“그대는 도가 아닌 비도(非道) 또는 도가 아닌 것도 아닌 비비도(非非道) 가운데에 머무르면 번뇌가 다하여 해탈을 얻을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머무르는 곳이 없는 무소주(無所住)이고, 제법을 받아들이지 않는 불수제법(不受諸法)이며, 번뇌가 다한 누진심(漏盡心)으로 해탈을 얻습니다.”
佛告須菩提:“菩薩摩訶薩亦如是,無所住,應實際作證。”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도 이와 같아서 머무르는 데가 없는 무소주(無所住)로서 실제(實際)를 증득해야 하느니라.”
須菩提言:“世尊!云何爲一切種智相?”
佛言:“一相故名一切種智,所謂一切法寂滅相。復次,諸法行類、相貌、名字顯示說,佛如實知。以是故名一切種智。”
수보리 존자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일체종지의 상(相)이라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한 모양의 일상(一相)이기 때문에 일체종지라 하나니, 일체법이 고요히 사라진 적멸상(寂滅相)이니라.
또 제법의 행(行)과 유(類, 종류)와 모습의 상모(相貌)과 명자(名字, 이름)을 드러내어 보이면서 설명하되, 부처님은 여실(如實)하게 아시기 때문에 일체종지라 하느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一切智、道種智、一切種智,是三智結斷有差別、有盡、有餘不?”
佛言:“煩惱斷無差別;諸佛煩惱習一切悉斷,聲聞、辟支佛煩惱習不悉斷。”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일체지와 도종지와 일체종지의 이 세 가지 삼지(三智)는 변뇌의 결(結)이 끊어짐에 차별이 있어서 다하는 것도 있고 남는 것도 있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번뇌가 끊어짐에는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부처님은 번뇌의 습기(習氣)가 남김없이 끊어졌지만, 성문과 벽지불은 번뇌의 습기가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느니라.”
“世尊!是諸人不得無爲法得斷煩惱耶?” 佛言:“不也!”
“세존이시여, 이 모든 사람은 무위법(無爲法)을 얻지 못하고서도 번뇌를 끊을 수 있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니라.”
“世尊!無爲法中可得差別不?” 佛言:“不也!”
“세존이시여, 무위법 가운데서 차별을 얻을 수 있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니라.”
“世尊!若無爲法中不可得差別,何以故說是人煩惱習斷、是人煩惱習不斷?”
佛告須菩提:“習非煩惱。是聲聞、辟支佛身口有似婬欲、瞋恚、愚癡相,凡夫愚人爲之得罪。是三毒習,諸佛無有。”
“세존이시여, 무위법 가운데서 차별을 얻을 수 없다면, 무엇 때문에 ‘이 사람은 번뇌의 습기(習氣)가 끊어졌고, 이 사람은 번뇌의 습기(習氣)가 끊어지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습기(習氣)는 번뇌(煩惱)가 아니니라.
저 성문과 벽지불의 몸과 입에는 음욕(婬欲)ㆍ진에(瞋恚)ㆍ어리석음의 우치(愚癡)의 상(相)과 흡사한 것이 있으며, 범부와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 때문에 죄를 짓게 되나니, 이것이 바로 삼독(三毒)의 습기이지만, 모든 부처님께는 그러한 것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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