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六度品第 六十八之餘卷八十一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68. 육도품(六度品) 풀이함 2

 

“世尊!云何菩薩摩訶薩住禪波羅蜜取毘梨耶波羅蜜?”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선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비리야(정진)바라밀을 취하는지요?”

 

佛言:“菩薩住禪波羅蜜,離欲、離惡不善法,有覺有觀,離生喜樂,入初禪,第二、第三、第四禪;是諸禪及支,取相,生種種神通:履水如地,入地如水,如先說。天耳聞二種聲:若天、若人。知他心:若攝心、若亂心,乃至有上心、無上心。憶種種宿命,如先說。以天眼淨過人眼,見衆生乃至如業受報,如先說。

菩薩住是五神通,從一佛世界至一佛世界,親近供養諸佛,種善根,成就衆生,淨佛世界。持是功德與衆生共之,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爲菩薩住禪波羅蜜取毘梨耶波羅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선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욕락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못한 불선법을 여의며, 거친 생각의 유각(有覺)과 세밀한 생각의 유관(有觀)을 여읨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에 들어가고, 제2선ㆍ제3선ㆍ제4선에 들어가며,  모든 선과  선의 갈래인 선지(禪支)의 상(相) 취하면서 갖가지 신통을 내나니, 물(水, 신족통)을 밟는 것이 마치 땅과 같고, 땅속에 들어가는 것이 마치 물에 들어가는 것과 같으니라. 

또한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천이(天耳, 천이통)로써 하늘과 사람의  음성을 들으며, 타심(他心, 타심통)으로 그 사람이 가다듬은 섭심(攝心)인지 혹은 산란한 난심(亂心)인지를 알고, 나아가 위가 있는 유상심(有上心)인지 혹은 위없는 무상심(無上心)인지를 아느니라. 

갖가지의 숙명(宿命, 숙명통)을 기억하는 것도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으며, 천안(天眼, 천안통)이 청정하여 사람의 눈보다 뛰어나므로 중생들이 지었던 업대로  과보를 받고 있는 것까지도 보나니, 그것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으니라. 

보살은  다섯 가지의 오신통(五神通)에 머물러  부처님 세계로부터 다른  부처님 세계에 이르면서 모든 부처님을 가까이 친근하고 공양하여 선근을 심으면서 중생을 성취시키고,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나니, 

 공덕을 지니어 중생들과 함께하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선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비리야(정진)바라밀을 취하는 것이니라.”


“世尊!云何菩薩摩訶薩住禪波羅蜜取般若波羅蜜?”

佛言:“菩薩住禪波羅蜜,不得色,不得受想行識;不得檀波羅蜜、尸羅波羅蜜、羼提波羅蜜、毘梨耶波羅蜜、禪波羅蜜,不得般若波羅蜜;不得四念處,乃至不得一切種智;不得有爲性,不得無爲性。

不得故不作,不作故不生,不生故不滅。何以故?有佛、無佛,是如、法相、法性常住、不生不滅。常一心應薩婆若行。是爲菩薩住禪波羅蜜取般若波羅蜜。”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선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반야바라밀을 취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선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물질(色)을 얻지 않고, 수상행식(受想行識) 얻지 않으며, 단(보시)바라밀과 시라(지계)바라밀과 찬제(인욕)바라밀과 비리야(정진)바라밀과 선바라밀을 얻지 않고 반야바라밀도 얻지 않으며, 사념처를 얻지 않고 일체종지까지도 얻지 않으며, 유위성(有爲性)을 얻지 않고 무위성(無爲性)도 얻지 않느니라. 

얻지 않기 때문에 짓지 않는 불작(不作)이고, 불작이기 때문에 생겨나지 않는 불생(不生)이며, 불생이기 때문에 멸하지 않는 불멸(不滅)이나니, 왜냐 하면 부처님께서 계시거나 계시지 않거나 간에  여(如)ㆍ법상(法相)ㆍ법성(法性)은 항상 머물러 상주(常住)하 것이어서 불생불멸(不生不滅)이 때문이니라. 

언제나 일심으로 살바야에 응하여 행하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선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반야바라밀을 취하는 것이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云何菩薩摩訶薩住般若波羅蜜取檀波羅蜜?”

佛言:“菩薩住般若波羅蜜,內空、內空不可得,外空、外空不可得,內外空、內外空不可得,空空、空空不可得,乃至一切法空、一切法空不可得。菩薩住是十四空中,不得色相若空、若不空,不得受想行識相若空、若不空,不得四念處若空、若不空,乃至不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若空、若不空,不得有爲性、無爲性若空、若不空。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단(보시)바라밀을 취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반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안이비설신의, 내공(內空, 내육입)은 공(空)한것이라 얻을  없고, 색성향미촉법, 외공(外空)의 외공 또한 공한지라 얻을  없으며, 내외공(內外空)은 안팎이  공한지라 얻을  없고, 

공(空)으로써 공(空)을 버린 공공(空空) 또한 공하여서 얻을  없으며, 나아가 일체법공(一切法空)은 일체법이 공하여서 얻을  없는 것이니라. 

보살은    가지 공(空)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색상(色相) 공한 것과 공하지 않은 것도 얻지 못하고, 수상행식(受想行識)의 상(相)이 공한 것과 공하지 않은 것도 얻지 못하며, 사념처의 공한 것과 공하지 않은 것도 얻지 못하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공한 것과 공하지 않은 것도 얻지 못하며, 유위성과 무위성이 공한 것과 공하지 않은 것도 얻지 못하느니라.


是菩薩摩訶薩如是住般若波羅蜜中,有所布施,若飮食、衣服、種種資生之具,觀是布施空。何等空?施者、受者及財物空,不令慳著心生。何以故?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從初發意乃至坐道場,無有妄想分別。

如諸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無慳著心;菩薩摩訶薩亦如是,行般若波羅蜜時,無慳著心。是菩薩所可尊者,般若波羅蜜。是爲菩薩住般若波羅蜜取檀波羅蜜。”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그가 가진 음식과 의복과 갖가지 살림살이를 보시하면서도  보시도 공(空)하다고 관하나니, 어떠한 것이 공(空)한 것인가? 보시하는 시자(施者)이와 받는 수자(受者)와 재물(財物)이 공한 것이므로, 간탐하는 마음을 내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처음 초발의하여서부터 도량에 앉기까지 망상분별이 없기 때문이니라. 

마치 모든 부처님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실 때, 아끼고 집착하는 마음이 없는 것과 같이, 보살마하살도 이와 같아서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아끼고 집착하는 마음이 없느니라.  보살이 존중할 것은 반야바라밀이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반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단(보시)바라밀을 취하는 것이니라.”


“世尊!云何菩薩摩訶薩住般若波羅蜜取尸羅波羅蜜?”

佛言:“菩薩住般若波羅蜜,不生聲聞、辟支佛心。何以故?是菩薩,聲聞、辟支佛地不可得,趣向聲聞、辟支佛心亦不可得。是菩薩摩訶薩從初發意乃至坐道場,於其中閒,自不殺生,不教他殺生,讚不殺生法,歡喜讚歎不殺生者;乃至自不邪見,不教他邪見,讚不邪見法,歡喜讚歎不邪見者。以是持戒無法可取,若聲聞、若辟支佛地,何況餘法!是爲菩薩住般若波羅蜜取尸羅波羅蜜。”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시라(지계)바라밀을 취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반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을 내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보살은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는 얻을  없고, 성문이나 벽지불을 향해 나아가는 마음도 얻을  없기 때문이니라. 

 보살마하살은 처음 초발의하여서부터 도량에 앉기까지  중간에 스스로 살생(殺生)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도 살생하지 않게 하며, 살생하지 않는 법을 칭찬하고 살생하지 않는 이를 기뻐하며 찬탄하고, 나아가 스스로 삿된견을 지니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도 삿된견을 내지 않게 하며, 삿된견이 아닌 법을 칭찬하고 삿된견을 지니지 않는 이를 기뻐하면서 찬탄하느니라. 이러한 계율을 지니기에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로서 취할 만한 어떤 법도 없거늘, 하물며  밖의 다른 법이겠는가? 이것이 바로 보살이 반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시라(지계)바라밀을 취하는 것이니라.”


“世尊!云何菩薩摩訶薩住般若波羅蜜取羼提波羅蜜?”

佛言:“菩薩住般若波羅蜜,隨順法忍生,作是念:‘此法中無有法若起、若滅,若生、若死,若受罵詈、若受惡口,若割、若截,若破、若縛、若打、若殺。’是菩薩從初發意乃至坐道場,若一切衆生來罵詈惡口、刀杖瓦石、割截傷害,心不動,作是念:‘甚可怪!此諸法中無有法受罵詈、惡口、割截、傷害者,而衆生受苦惱!’是爲菩薩住般若波羅蜜取羼提波羅蜜。”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찬제(인욕)바라밀을 취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수순법인(隨順法忍, 10지 중 제6 현전지現前地에서 얻음)이 생기면, 생각하기를 ‘이  가운데에는 어떠한 법도 일어나거나 없어지거나, 태어나거나 죽거나, 욕설을 당하거나 나쁜 말을 듣거나, 베거나 자르거나 파괴하거나, 속박하거나 때리거나 죽이는 것이 없다’고 하느니라. 

 보살이 처음 초발의하여서부터 도량에 앉기까지 일체 중생들이 와서 욕하고 꾸짖고 나쁜 말을 하거나, 칼이나 몽둥이ㆍ기와ㆍ돌로써 베고 때리고 상해할지라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으면서 생각하기를 ‘참으로 괴이하구나.  가운데에는 꾸짖음을 받고 나쁜 말을 들으며 베이고 끊기고 상해받는 법이 없으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어떠한 법도 없거늘, 중생들은 괴로움을 받고 있구나!’ 하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반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찬제(인욕)바라밀을 취하는 것이니라.”


“世尊!云何菩薩摩訶薩住般若波羅蜜取毘梨耶波羅蜜?”

佛言:“菩薩住般若波羅蜜,爲衆生說法,令行檀波羅蜜、尸羅波羅蜜、羼提波羅蜜、毘梨耶波羅蜜、禪波羅蜜、般若波羅蜜,教令行四念處乃至八聖道分,令得須陁洹果、斯陁含、阿那含、阿羅漢果、辟支佛道,令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住有爲性中,不住無爲性中。是爲菩薩住般若波羅蜜取毘梨耶波羅蜜。”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비리야(정진)바라밀을 취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반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중생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여 그들로 하여금 단바라밀과 시라바라밀과 찬제바라밀과 비리야바라밀과 선바라밀과 반야바라밀을 행하게 하고, 그들을 교화하여념처 내지는성도분을 행하게 하며, 수다원과와 사다함과와 아나함과와 아라한과와 벽지불의 도를 얻게 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면서, 유위성(有爲性)에도 머무르지 않고 무위성(無爲性)에도 머무르지 않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반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비리야(정진)바라밀을 취하는 것이니라.”


“世尊!云何菩薩摩訶薩住般若波羅蜜取禪波羅蜜?”

佛言:“菩薩住般若波羅蜜,除諸佛三昧,入餘一切三昧:若聲聞三昧、若辟支佛三昧、若菩薩三昧,皆行、皆入。是菩薩住諸三昧,逆順出入八背捨。何等八?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선바라밀을 취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모든 부처님의 삼매(佛三昧)를 제외하고  밖의 다른 일체 삼매에 들어가나니, 혹은 성문의 삼매 혹은 벽지불의 삼매 혹은 보살의 삼매를 모두 행하고 모두 들어가느니라.

 보살은 모든 삼매에 머무르면서, 초선(初禪)ㆍ제2선ㆍ제4선ㆍ4무색정ㆍ멸진정에 이르는 8단계의 선정관법인 배사(八背捨, 팔해탈)를 역(逆)과 순(順)으로 들고 나나니, 무엇이 여덟인가? 

 

內有色相外觀色,是初背捨;內無色相外觀色,二背捨;淨背捨,身作證,三背捨;過一切色相,滅有對相,不念種種相故,入無量虛空處,四背捨;過一切虛空處,入無邊識處,五背捨;過一切識處,入無所有處,六背捨;過一切無所有處,入非有想非無想處,七背捨;過一切非有想非無想處,入滅受想處,八背捨。

내입(內入, 육입)에도 색이 있고 외입(外入, 육경)에도 색이 있음을 관찰하는 內有色外觀色(내유색외관색)이 첫 번째의 초배사(初背捨)요, 

내입(內入, 육입)에는 색이 없으나 외입(外入, 육경)의 색을 관하는 內無色外觀色(내무색외관색)이 두 번째 이배사(二背捨)이며,

정(淨, 청정)한 배사를 몸으로 증득하는 淨背捨身作證(정배사신작증)이 세 번째 배사이며,

일체의 색상을 대하여 상을 버리고 갖가지의 상에 대한 생각을 버려서, 물질(色)에 대한 마음의 한계를 벗어난 때문에 무량허공처(無量虛空處)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번째의 배사이니라. 

4무색정 중 식무변처정에 의지하여 일체의 허공(공간)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버리는, 무변식처(無邊識處)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다섯 번째의 배사요

일체의 식처(識處)를 지나서 마음의 속박과 한계를 벗어나서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여섯 번째의 배사이며, 

무소유심(無所有心)마저도 버려서 있음과 없음에 대한 마음의 한계를 벗어나서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常處)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일곱 번째의 배사요, 

온갖 비유상비무상처를 지나서 멸진정(滅盡定)에 의지하여 '일체의 마음(心)과 마음작용(心所)'이 소멸되어 적정(寂靜)의 상태인 멸수상처(滅受想處)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여덟 번째의 배사이니라.

 
於是八背捨,逆順出入九次第定。何等九?離諸欲、離諸惡不善法,有覺有觀,離生喜樂,入初禪;乃至過非有想非無想處,入滅受想定。是名九次第定,逆順出入。

이 팔배사와 차제정(九次第定)에 역으로 순으로 나고 들고 하나니, 무엇이 아홉인가?

모든 욕락을 여의고 모든 악하고 착하지 못한 법을 떠나, 거친 생각의 유각(有覺)과 세밀한 생각의 유관(有觀)을 여읨에서 생하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가고, 나아가 비유상비무상처를 지나서 멸수상정(滅受想定)에 들어가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9차제정에 역으로 순으로 들고 난다 하느니라.

 

초선(제1선)에 들면 말이 그치며,
제2선에 들면 생각 일으킴과 추론적 사유가 그치고,
제3선에 들면 희열이 그치며,
제4선에 들면 입출식(入出息)이 그치고, → 4선정을 닦으면 색계18천에 태어난다.
제5선,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면 물질에 대한 인식이 그치며,
제6선, 식무변처(識無邊處)에 들면 공무변처에 대한 인식이 그치고,
제7선,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면 식무변처에 대한 인식이 그치며,
제8선,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면 무소유처에 대한 인식이 그친다.( 4무색선정을 닦으면 무색계4천에 태어남)

-여기까지가 8등지.
8등지에 멸진정을 더한 것이 9차제정으로, 멸진정을 상수멸정(想受滅定) 혹은 멸수상정(滅受想定)이라고도 하며, 이에 들면 인식과 느낌이 그친, 즉 열반에 이른 것이며, 이 수행과정이 9차제정이다.- 오봉정사2032

 

是菩薩依八背捨、九次第定,入師子奮迅三昧。云何名師子奮迅三昧?須菩提!菩薩離欲、惡不善法,有覺有觀,離生喜樂,入初禪;乃至入滅受想定;從滅受想定起,還入非有想非無想處;從非有想非無想處起,乃至還入初禪。

 보살은배사와차제정에 의하여 사자분신삼매(師子奮迅三昧)에 들어가나니, 무엇이 사자분신삼매인가?

수보리야, 보살은 욕락과 악하고 착하지 못한 불선법을 여의며, 거친 생각의 유각(有覺)과 세밀한 생각의 유관(有觀)을 여읨에서 생하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에 들어가고 멸수상정에까지 들어가며, 멸수상정으로부터 일어나 다시 비유상비무상처에 들어가고 비유상비무상처로부터 일어나 도로 다시 초선에 들어가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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