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無盡方便品 第六十七 卷八十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67. 무진방편품(無盡方便品) 풀이함 3

 

又復觀如是因緣法,過於二乘,得一切種智。若有人於佛道退者,皆不得是甚深觀故;若得是觀則不退。何以故?深入畢竟空中,則不見聲聞、辟支佛地;不見故,則不於是中住。

또한 이와 같이 인연법을 관하면 승을 뛰어넘어서 일체종지를 얻나니, 만약 어떤 사람이 부처님의 불도에서 물러난다면, 그러한 이 모두는  매우 깊은 심심관(甚深觀)을 얻지 못한 때문이니, 만약  관을 얻으면 물러나지 않나니,

왜냐하면 필경공 가운데에 깊이 들어가면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를 보지 않으며, 보지  때문에 그러함 가운데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復次,能如是觀因緣法者,不見有一法定自在無因緣而生;一切法不自在,皆屬因緣生。有人雖見一切法從因緣生,謂爲從邪因緣生。邪因緣者,微塵、世性等。是故說:“不見法無因緣生,亦不見法從常因緣微塵、世性生。”如虛空常,常故則無生,虛空亦不與物作因,以是故,無有法從常因緣生。

또한 이와 같이 인연법을 관하면, 어떠한 정해진 일법(一法)도 인연 없이 자유롭게 생기는 것을 보지 않나니, 일체법은 자재하지 않은 것으로, 모두 인연생(因緣生)에 속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비록 일체법이 인연으로부터 생긴다고 보기는 하나 삿된 인연의 사인연(邪因緣)으로부터 생긴다고 여기기도 하나니, 삿된 인연의 사인연(邪因緣)이라 함은 작은 티끌의 미진(微塵)과 세간의 성품인 세성(世性) 등이니,

이 때문에 말하기를 “인연없이 생기는 어떠한 법도 보지 못하고, 또한 항상하다는 상인연(常因緣)과 작은 티끌의 미진(微塵)과 세간의 성품으로부터 생기는 어떤 법도 보지 못하는 것이니,

마치 허공이 항상 있는 것과 같이, 항상 있기 때문에 무생(無生)이며, 허공 또한 사물의 인(因)이 되지도 않나니,

이러함으로 항상하다는 상인연(常因緣)으로부터 생기는 어떤 법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復次,菩薩如是觀一切法屬因緣生,不自在;不自在故無我,乃至無知者、見者。

爾時,菩薩安住畢竟空十二因緣中,不見一切色等法若有、若無等,亦不見般若,亦不見用是法行般若;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亦如是。是名菩薩無所得般若波羅蜜。得是無所得般若,於一切法中便得無所障㝵般若。

또한 보살은 이와 같이 “일체법은 인연생(因緣生)에 속하므로 자재하지도 않고, 자재하지 않기 때문에 무아(無我)이며, 나아가 아는 지자(知者)ㆍ보는 견자(見者)ㆍ짓는 작자(作者) 없다”고 관하는 것이다.

그때 보살은 필경공 가운데 편히 머물러 12인연 가운데에 일체의 물질 등의 색법(色法)이 ‘있다, 없다’는 등으로 보지도 않으며, 또한 반야도 보지 않으며, 또한 이러한 법으로써 반야를 행한다고도 보지 않나니,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또한 그와 같으니, 이를 바로 ‘보살의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반야(無所得般若)’라 한다.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반야(無所得般若) 얻으면 일체 가운데에서  장애가 없는 무장애반야(無障㝵般若)를 얻게 되느니라.

 

爾時,諸魔極大愁毒。何以故?以是菩薩深入十二因緣畢竟空中,不著有、無、非有非無等六十二諸邪見魔網,我今無有法可得菩薩便。譬如捕魚人見一魚深入大水,鉤網所不及,則絕望憂愁。亦如新喪父母。

그 때에 모든 악마는 몹시 크게 근심하고 괴로워하나니, 왜냐하면  보살은 12인연의 필경공 가운데에 깊이 들어가서 ‘있다, 없다는 유무(有無)’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비유비무(非有非無)’ 등의 62종의 모든 삿된견의 악마의 그물에 걸려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는 이제 보살에게서 편(便, 틈)을 얻을  있는 어떠한 법도 없구나.”고 하나니, 비유하자면, 마치 고기잡이가  마리의 고기가  속으로 깊이 들어가 버리는 것을 보고, 갈고리나 그물로써는 잡을  없으므로 절망하면서 근심하는 것과 같으며, 또한 새로 부모의 상(喪)을 당하는 것과도 같으며, 

 

復次,菩薩能如是行無所得般若波羅蜜,則能具足檀波羅蜜等。何以故?行如是法,諸煩惱障般若法皆折薄,諸魔人民不能得便故,諸波羅蜜得具足;

先來雖行六波羅蜜,未能得如是具足。須菩提問:“世尊!菩薩云何能行如是般若波羅蜜,能具足檀波羅蜜等諸波羅蜜?”

또한 보살이 이와 같이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 반야바라밀을 행한다면  단바라밀(檀波羅蜜)을 두루 갖출  있으니, 왜냐하면 이와 같은 법을 행하면 모든 번뇌장(煩惱障)을 반야의 법으로 꺾어서 얇게 하므로 모든 악마의 백성들로서는 그의 편(便, 기회)를 얻을  없기 때문이니, 모든 바라밀이 두루 갖춰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비록 6바라밀을 행하였을지라도 아직 이와 같이 구족하지 못하였으므로, 

수보리 존자가 여쭈기를 “세존이시여, 보살이 어떻게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있으며, 단바라밀 등의 모든 바라밀을 두루 갖출  있습니까?”라고 하였으며, 

 

佛答:若菩薩所有布施,皆迴向薩婆若者。有二種人:軟根、利根。

軟根者,少多布施,皆取相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利根者,破是取相,而戲論空法,信力轉薄,不用薩婆若,但求諸法實相。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보살은 그의 모든 보시를 모두 살바야에 회향해야 하느니라”고 하셨으니, 

여기에  종류 사람이 있으니, 근기가 연약한 연근자(軟根者)와 근기가 예리한 이근자(利根者)이다. 

근기가 연약한 연근자(軟根者) 많건 적건 간에 모든 상(相) 취하면서 보시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이요, 

근기가 예리한 이근자(利根者) 이러한 상을 취하는 취상(取相) 깨뜨리면서도 공법(空法)에 대하여 쓸모없는 론을 펴며, 믿는 신력이 점차 얇아져서 살바야를 이용하지 않고, 다만 법의 실상(實相)만을 구하는 이이다.

 

是二種人皆不能具足檀波羅蜜:一者以信力多、慧力少,二者以慧力多、信力少故。

佛今說:“信力、慧力等故,能迴向薩婆若。”

念薩婆若者,是信力;如薩婆若迴向者,是智力。乃至般若波羅蜜亦如是。

  종류의 사람 모두는 단바라밀을 두루 갖출  없나니, 

첫째의 연근자(軟根者)는 믿는 신력(信力) 많으나 지혜의 혜력(慧力) 적으며, 

둘째의 이근자(利根者)는 지혜의 혜력(慧力) 많으나, 믿는 신력(信力)이 적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제 “믿는 신력(信力) 지혜의 혜력(慧力) 같기 때문에 살바야에 회향할  있다”고 말씀하셨으며,

‘살바야를 생각한다는 염살바야(念薩婆若)’라 함이란, 바로 믿는 신력(信力)이요, 

‘살바야와 같이 회향한다는 여살바야회향(如薩婆若迴向)’이라 함이란, 바로 지혜의 지력(智力)이다. 

나아가 반야바라밀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

 

大智度論 釋六度相攝品 第六十八 卷八十 

68. 육도상섭품(六度相攝品)을 풀이함① 1

 

▶經. 須菩提白佛言:“世尊!云何菩薩摩訶薩住檀波羅蜜取尸羅波羅蜜?”

▷경.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단바라밀(檀波羅蜜, 보시)에 머무르면서 시라바라밀(尸羅波羅蜜, 지계)을 취하는 것인지요?”

 

佛告須菩提:“菩薩摩訶薩布施時,持是布施迴向薩婆若,於衆生中住慈身口意業。是爲菩薩住檀波羅蜜取尸羅波羅蜜”

“世尊!云何菩薩住檀波羅蜜取羼提波羅蜜?”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보시할 때,  보시를 살바야에 회향하고, 중생들에 대하여 인자한 자(慈)의 신업(身業)ㆍ구업(口業)ㆍ의업(意業)에 머무르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단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시라바라밀을 취하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이 단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찬제바라밀(羼提波羅蜜, 인욕)을 취하는 것인지요?”

 

佛告須菩提:“菩薩布施時,受者嗔恚罵辱、惡言加之,是時菩薩忍辱,不生瞋心。是爲菩薩住檀波羅蜜取羼提波羅蜜”

“世尊!云何菩薩住檀波羅蜜取毘梨耶波羅蜜?”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보시를  때, 받는 수자(受者) 화를 내고 욕하고 꾸짖고 거친 말을 할 때에도 보살은 욕됨을 참으면서 화를 내지 않나니, 이것이 바로 단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찬제바라밀을 취하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이 단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비리야바라밀(毘梨耶波羅蜜, 정진)을 취하는 것인지요?”

 

佛言:“菩薩布施時,受者瞋恚罵辱、惡言加之,菩薩增益布施,心作是念:‘我應當施,不應有所惜。’卽時生身精進、心精進。是爲菩薩住檀波羅蜜取毘梨耶波羅蜜。”

“世尊!云何菩薩摩訶薩住檀波羅蜜取禪波羅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보시를  때, 받는 수자(受者) 화를 내고 욕하고 꾸짖고 거친 말을여도, 보살의 보시할 마음이 더욱 더하여지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마땅히 보시하면서 아끼는 것이 없어야 한다’고 하면서, 즉시 몸의 신정진(身精進)과 마음의 심정진(心精進)을 내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의 단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비리야바라밀을 취하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단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선바라밀(禪波羅蜜)을 취하는 것인지요?”

 

佛言:“菩薩布施時,迴向薩婆若,不趣聲聞、辟支佛地,但一心念薩婆若。是爲菩薩住檀波羅蜜取禪波羅蜜。”

“世尊!云何菩薩摩訶薩住檀波羅蜜取般若波羅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보시를  때, 살바야에 회향하고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에 나아가지 않으면서 다만 일심으로 살바야만을 생각할 뿐이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단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선바라밀을 취하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단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취하는 것인지요?”

 

佛言:“菩薩布施時,知布施空如幻,不見爲衆生布施有益、無益。是爲菩薩住檀波羅蜜取般若波羅蜜”

須菩提白佛言:“世尊!云何菩薩摩訶薩住尸羅波羅蜜取檀波羅蜜、羼提波羅蜜、毘梨耶波羅蜜、禪波羅蜜、般若波羅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보시를  때, 보시는 공하여 마치 허깨비와 같음을 알면서 중생들을 위한 보시에 이익이 있고 없음을 보지 않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단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반야바라밀을 취하는 것이니라.”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단바라밀과 찬제바라밀과 비리야바라밀과 선바라밀과 반야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佛告須菩提:“菩薩摩訶薩住尸羅波羅蜜中,身口意生布施福德,助阿耨多羅三藐三菩提;持是功德,不取聲聞、辟支佛地。

住尸羅波羅蜜中,不奪他命、不劫奪他物、不行邪婬,不妄語、不兩舌、不惡口、不綺語,不貪嫉、不瞋恚、不邪見。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몸과 입과 뜻의 신구의(身口意)로 보시의 복덕을 내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돕고,  공덕을 지니어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를 취하지 않으며, 

시라바라밀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다른 이의 생명을 빼앗지 않는 불탈타명(不奪他命), 남의 물건을 겁탈하지 않는 불겁탈타물(不劫奪他物), 삿된 음행을 행하지 않는 불행사음(不行邪婬), 거짓말을 하지 않는 불망어(不妄語), 이간질을 하지 않는 불양설(不妄語), 거친 말을 하지 않는 불악구(不惡口), 꾸미는 말을 하지 않는 불기어(不綺語), 탐내거나 시새우지 않는 불탐질(不貪嫉), 성을 내지도 않는 불진에(不瞋恚), 삿된 소견을 지니지 않는 불사견(不邪見)이니라.

 

所有布施,飢者與食,渴者與飮,須乘與乘,須衣與衣,須香與香,須瓔珞與瓔珞,塗香、臥具、房舍、燈燭、資生所須,盡給與之。持是布施,與衆生共之,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如是迴向,不墮聲聞、辟支佛地。

須菩提!是爲菩薩摩訶薩住尸羅波羅蜜取檀波羅蜜。”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보시하되 배고픈 이에게는 밥을 주고, 목마른 이에게는 마실 것을 주며,  것을 구하면  것을 주고, 의복을 구하면 의복을 주며, 향을 구하면 향을 주고, 영락을 구하면 영락을 주며, 바르는 도향(塗香)ㆍ침구ㆍ방사ㆍ등촉과 살림에 필요한 것은 모두  주느니라.

이러한 보시를 지니어 중생들과 함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나니, 이와 같이 회향한다면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수보리야,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단바라밀을 취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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