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稱揚品 第六十五 卷七十八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65. 칭양품(稱揚品)을 풀이함 ②3
復次,有菩薩未得無生法忍、未入菩薩位,行般若波羅蜜力故,常思惟籌量,求諸法實相,能信解、忍,通一切法無生相、空、虛誑、不堅固。有如是等相諸菩薩摩訶薩,佛稱名讚歎。
虛誑、不實、不堅固者,皆是無常、苦、無我門。一切法空者,卽是空門。一切法無生者,卽是諸法實相,滅諸觀。
또한 어떤 보살은 아직 무생법인을 얻지도 못하고 아직 보살의 지위에 들지 못하였으나, 반야바라밀을 행한 힘 때문에 항상 사유하고 헤아리면서 제법의 실상(實相)을 구하며, 일체법은 나는 생상(生相)도 없고 공(空)하고 거짓된 허광(虛誑)이요 견고하지 않음을 믿고 이해하면서 통달하였나니,
이러한 등의 상(相)이 있는 모든 보살마하살을 부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찬탄하시는 것이며,
거짓된 허광(虛誑)이요, 진실하지 않고, 견고하지 않다는 것 모두는 무상하고ㆍ괴로운 고(苦)ㆍ무아(無我)의 문(門)이며,
일체법이 공한 것은 곧 공문(空門)이요, 일체법의 생함이 없는 무생(無生)은 곧 제법의 실상(實相)이라서 모든 관문(觀門)이 멸(滅)하는 것이다.
復次,虛誑、不實、不堅固,卽是無作解脫門;一切法空,卽是空解脫門;一切法無生,卽是無相解脫門。如是等三種差別。是人出柔順法忍、未得無生法忍,出凡夫法、未入聖法,而能信受聖法,似得聖法人,是故希有。如佛所稱譽 阿鞞跋致菩薩,能斷二地、得受記;是人爲佛所稱譽,亦如是。如是相人,雖未得無生法忍,智慧力故,爲諸佛稱名讚歎。
또한 거짓이요 진실하지 않고 견고하지 않는 것이 곧 무작해탈문(無作解脫門)이요,
일체법이 공한 것이 곧 공해탈문(空解脫門)이며,
일체법이 무생(無生)인 것이 곧 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이니, 이와 같은 등의 세 가지 차별이 있다.
이 사람은 유순법인(柔順法忍)에서 나와 아직 무생법인을 얻지 못하였고, 범부의 법에서 나와 아직 성인의 법에 들지 못하였지만, 성인의 법을 믿고 받는 신수(信受)하고, 성인의 법을 얻은 이를 닮았기 때문에 희유하다고 하며, 부처님의 칭찬을 받는 것이다.
아비발치(阿鞞跋致) 보살은 두 지위의 이지(二地)를 끊고 수기를 받으므로, 이 사람이 부처님의 칭찬을 받는 것 또한 그와 같으며, 이러한 상(相)을 지닌 사람은 비록 아직 무생법인을 얻지 못하였을지라도 지혜의 힘 때문에 모든 부처님께서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칭찬하시는 것이다.
무엇을 유순법인(柔順法忍)이라고 하는가?
보살이 응해서 나아가야 할 법에 수순하여 태어나 법을 관찰하고, 행을 평등하게 세워 거슬려 어지럽게 하지 않는 것이다.
가령 제법에 유순하게 응한다면 마땅히 건너야 할 것을 건너고, 지성(志性)이 청정하여 평등을 좇아 닦으며 부지런히 정진하여 순순히 들어가 성취하게 되는 것이 유순법인이다. - 석가모니 붓다의 말씀
今以信根力勝故,佛亦稱名讚歎。何者是?所謂:
“復次,須菩提!若菩薩摩訶薩聞是深般若,其心明利、不疑不悔,作是念:‘是事如佛所說’”
여기에서는 신근(信根)의 힘이 뛰어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역시 이름을 부르면서 찬탄하시나니, 어떠한 이인가?
이른바 “다시 수보리야, 만약 보살마하살이 이 깊은 반야를 듣고 그의 마음이 밝아지고 예리하여지며, 의심하지 않고 뉘우치지 않으면서 생각하기를 ‘이러함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다’고 한다”고 하는 이이다.
問曰:是菩薩已信解般若波羅蜜,何以更從阿閦佛及諸菩薩邊聞?
묻나니, 이 보살은 이미 반야바라밀을 믿고 이해하는 신해(信解)하거늘, 무엇 때문에 다시 아촉부처님과 모든 보살 곁에서 듣는 것입니까?
答曰:是人聞阿閦佛作菩薩時所行淸淨;是人聞已,欲效阿閦佛所行。是故佛說:“此人於是得信力、於彼得智慧力故,當住阿鞞跋致地。”是人未得無生忍法,以智慧力故,得如阿鞞跋致,爲諸佛所讚;有信力故,得如阿鞞跋致,爲諸佛所讚。若但聞般若,得如是利益,何況信受、如所說行,漸住一切種智中!
답하나니, 이러한 사람은 아촉부처님이 보살이셨을 때 행한 것이 청정하였다는 말을 들었으며, 듣고 나서는 아촉부처님이 행한 것을 본받고자 한 때문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은 여기에서 믿음의 힘인 신력(信力)을 얻고 그곳에서는 지혜의 힘인 지혜력(智慧力)을 얻었나니, 그 때문에 아비발치에 머무르느니라”고 하셨으며,
이러한 사람은 아직 무생법인은 얻지 못하였을지라도 지혜력(智慧力) 때문에 아비발치와 같음을 얻어서 모든 부처님의 칭찬을 받으며, 신력(信力)이 있기 때문에 아비발치와 같음을 얻어서 모든 부처님의 칭찬을 받는 것이다.
다만 반야바라밀을 듣기만 하여도 이러한 이익이 있거늘, 하물며 믿고 받아 말씀하신 대로 행하면서 점차로 일체종지 안에 머무르는 것이겠는가!
須菩提問佛:“一切法空相無所得,云何菩薩住薩婆若?”
佛言:“如中住。”如者卽是空。菩薩住是畢竟空中,名爲住薩婆若。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기를 “일체법은 공한 공상(空相)이라서 얻을 것이 없는 불가득이거늘 어떻게 보살이 살바야에 머무르는지요?”라고 하였으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如) 가운데에 머무른다”고 하셨으니,
여(如)란 곧 공(空)이니, 보살은 이 필경공(畢竟空) 가운데에 머무는 것을 살바야에 머무른다고 하는 것이다.
此中須菩提問佛:“除如,更無法可得,誰住如中?”乃至“無有是處”,如經廣說。
여기에서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기를 “여(如)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머무를 수 있는 법이 없거늘,
그 누가 여(如) 가운데에 머무르는지요? 나아가 그러한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고 하나니,
경에서 상세히 말씀하신 바와 같다.
佛可須菩提所語說,如亦空因緣,所謂:“是如,生、滅、住異不可得,若法無三相,卽是畢竟空,云何可住?若住此中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而說法,無有是處!”
부처님께서는 수보리 존자의 말이 옳다고 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여(如) 또한 공한 공인연(空因緣)이니 이른바 이 여(如) ㆍ나고(生)ㆍ머무르고(住)ㆍ달라지고(異)ㆍ없어지는(滅)을 얻을 수 없나니,
만약 법에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의 세 가지의 삼상(三相)이 없다면 곧 필경공(畢竟空)이거늘 어떻게 머무르겠는가?
만약 이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법을 설하는 것은 있을 수조차 없다”고 하신 것이다.
釋提桓因欲取般若一定相,聞佛共須菩提說無相亦不可得,是故白佛言:“希有!世尊!是般若甚深,是菩薩所爲甚難,欲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何以故?是如畢竟空,除如更無 菩薩住是如中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亦無定法名爲佛,說法者所度衆生亦不離如,亦無拔出處涅槃,諸法常住如相故。
菩薩聞是事,心不疑悔,是事爲難!雖信一切法畢竟空,而欲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精進、不休不息,是爲難。”
석제환인은 반야의 일정한 정상(定相)을 취하고자 하면서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와 함께 “모양이 없는 무상(無相) 그것도 얻을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을 듣고는,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희유합니다, 세존이시여. 이 반야는 매우 깊습니다. 이 보살이 행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심난(甚深)한 것이오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여(如)는 필경공이라서 여(如)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며,
보살이 이 여(如) 가운데 머무르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도 역시 부처님이라고 할 정해진 정법(定法)도 없으며, 설법하는 설법자와 제도할 중생도 역시 여(如)를 여의지 않으며, 또한 구제하여 열반에 처하게 하는 것도 없으니,
제법은 항상 머무르는 상주(常住)하는 것이며, 여여한 여상(如相)이기 때문입니다.
보살이 이러함을 듣고도 마음으로 의심하거나 후회하지 않으므로, 이러함이 매우 어렵다고 하는 것이오며, 일체법이 필경공이라는 것을 믿고 있을지라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고자 정진하면서 쉬지도 않고 그치지도 않으니, 이것은 어려운 일입니다”고 하였다.
須菩提語帝釋:“若諸法畢竟空、無所有,疑從何生?何有難事?”
수보리 존자가 제석에게 말하기를 “만약 제법이 필경공이라서 아무것도 없는 무소유(無所有)라면, 어디에서 의심이 생기는 것이며? 무슨 어려운 일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帝釋心歡喜,作是念:“須菩提實是樂說空法;須菩提有所解說,皆說空事。雖說色等餘事,其義皆趣向空;若有難問,不能作㝵,空亦空故。”若人難空,須菩提先已破空,於有無中都無所㝵;譬如仰射空中。
제석이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생각하기를 ‘수보리 존자는 실로 공법(空法)을 즐겨 말하는구나!
수보리 존자는 해설하는 것마다 모두 공(空)한 일이라 하며, 비록 물질 등 그 밖의 다른 일을 말할지라도 그 이치 모두가 공(空)을 향해 나아가고 있구나!
설령 어려운 질문의 난문(難問)을 하여도 막히게 할 수 없나니, 공(空) 그것 또한 공(空)하기 때문에 설령 누군가 공(空)을 힐난하여도 수보리 존자는 이미 공마저도 깨뜨려버린 파공(破空)하여서, 있다, 없다는 가운데에서 도무지 막힘이 없으니, 마치 공중을 쳐다보며 활을 쏘는 것과 같구나!’라고 하였다.
虛空卽是畢竟空,箭是須菩提智慧。所說,如箭於空無㝵,勢盡自墮,非爲空盡;須菩提說法因緣事辦故便止,非爲法盡。若有人雖有利箭,射壁不能過人;雖有利智慧,邪見著有,則㝵而不能通。是故須菩提說無障無㝵法。
허공은 필경공이요, 화살은 수보리 존자의 지혜이며, 수보리 존자가 하는 말은 마치 화살이 공중에서 걸림이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화살의 힘이 다하여 스스로 떨어지는 것이요 허공이 다하여 떨어지는 것이 아니며, 수보리 존자는 설법할 인연이 다하였기 때문에 그치는 것이요 법이 다하여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 비록 날카로운 화살이 있어서 벽을 향하여 쏘아도 벽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사람에게 비록 예리한 지혜가 있을지라도 삿된 사견으로 있다는 유(有)에 집착하면 막혀서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니,
때문에 수보리가 “막힘도 없고 걸림도 없는 무장무애법(無障無礙法)을 말한다”고 하는 것이다.
大智度論 釋囑累品 第六十六 卷七十八
66. 촉루품(囑累品)을 풀이함 1
▶經. 爾時,釋提桓因白佛言:“世尊!我如是說、如是答,爲隨順法不?爲正答不?”
佛告釋提桓因言:“憍尸迦!汝所說、所答,實皆隨順。”
▷경. 그때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와 같이 말하고 이와 같이 대답한 것이 법에 수순하여 바르게 대답한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그대가 말하는 것과 대답하는 것은 실로 제법에 수순하였느니라.”
釋提桓因言:“希有!世尊!須菩提所樂說皆爲空、爲無相、無作,爲四念處乃至爲阿耨多羅三藐三菩提。”
석제환인이 말씀드렸다.
“희유한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 존자께서 원하는 대로 자유자재하게 말하는 요설(樂說)하는 것은 모두가 바로 공(空)이고 무상(無相)ㆍ무작(無作)이며, 4념처(念處)가 되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됩니다.”
佛告釋提桓因:“須菩提比丘行空時,檀波羅蜜不可得,何況行檀波羅蜜者!
乃至般若波羅蜜不可得,何況行般若波羅蜜者!四念處不可得,何況修四念處者!
乃至八聖道分不可得,何況修八聖道分者!禪解脫三昧定不可得,何況修禪解脫三昧定者!
佛十力不可得,何況修佛十力者!四無所畏不可得,何況能生四無所畏者!
四無㝵智不可得,何況能生四無㝵智者!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수보리 비구가 공(空)을 수행할 때에는 단바라밀(檀波羅蜜)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단바라밀을 행하는 사람이겠는가?
나아가 반야바라밀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사람이겠는가?
사념처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사념처를 닦는 사람이겠는가?
나아가 8성도분(聖道分)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8성도분을 닦는 사람이겠는가?
선(禪)ㆍ해탈(解脫)ㆍ삼매정(三昧定)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선ㆍ해탈ㆍ삼매정을 닦는 사람이겠는가?
부처님의 십력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부처님의 십력을 닦는 사람이겠는가?
사무소외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사무소외를 내는 사람이겠는가?
사무애지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사무애지를 내는 사람이겠는가?
大慈、大悲不可得,何況行大慈、大悲者!十八不共法不可得,何況生十八不共法者!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可得,何況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一切智不可得,何況得一切智者!如來不可得,何況當作如來者!無生法不可得,何況無生法作證者!三十二相不可得,何況得三十二相者!八十隨形好不可得,何況得八十隨形好者!何以故?憍尸迦!須菩提比丘一切法離行、一切法無所得行、一切法空行、一切法無相行、一切法無作行。
대자대비(大慈大悲)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대자대비를 수행하는 사람이겠는가?
18불공법(不共法)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18불공법을 내는 사람이겠는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사람이겠는가?
일체지(一切智)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일체지를 얻는 사람이겠는가?
여래(如來)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여래가 되는 사람이겠는가?
생함이 없는 무생법([無生法)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무생법을 증득하는 사람이겠는가?
32상(相)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32상을 얻는 사람이겠는가?
80수형호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80수형호를 얻는 사람이겠는가?
왜냐하면 교시가야, 수보리 비구에게는 일체법이 여의는 이행(離行)이요
일체법이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행(無所得行)이며, 일체법이 공의 공행(空行)이요,
일체법이 모양이 없는 무상행(無相行)이며, 일체법이 지음이 없는 무작행(無作行)이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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