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歎信行品 第四十五之餘 卷六十七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 三藏法師 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잡법사 구마라집 소역. 

45. 탄신행품을 풀이함② 4

 

般若波羅蜜是眞智慧,其力甚大;魔事虛誑。是菩薩雖未得具足般若波羅蜜,得其氣分故,魔不能壞。是事因緣故,舍利弗白佛:“誰力故魔不能破?”

반야바라밀은 진실한 지혜이라  힘이 아주 크지만, 마사(魔事)는 허광된 것이 아주 작으니, 비록 이 보살이 아직 반야바라밀을 완전히 갖추지 못하였을지라도  기분(氣分)을 얻고 있기 때문에 악마가 파괴할 수는 없는 인연인 까닭에 사리불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기를 “누구의  때문에 악마가 파괴할  없습니까?”라고 하였으며, 

 

佛答:“佛力故。”如惡人中魔爲大,善人中佛爲大;縛人中魔爲大,解人中佛爲大;留難人中魔爲大,通達人中佛爲大。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부처님의 불력(佛力) 때문이다.”고 하셨으니, 마치 나쁜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악마를  이로 삼고, 착한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부처님을  이로 삼으며, 속박된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악마를  이로 삼지만, 해탈한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부처님을  이로 삼으며, 장애가 있는 유난(留難)의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악마를  이로 삼고 통달한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부처님을  이로 삼는 것과 같다.


初說“佛力”者,釋迦文佛;後說“十方現在佛”,是餘佛:阿閦、阿彌陁等。如惡賊,餘惡相助;諸佛法亦如是,常爲一切衆生故,有發意者,便爲作護。所以者何?般若波羅蜜是十方諸佛母,人欲沮壞,不得不護。

처음에 설명한 ‘부처님의 불력(佛力)’이라 함은 석가모니부처님이요, 

나중에 설명한 ‘부처님의 불력(佛力)’은 시방에 현재 계신 부처님이며, 

 밖의 부처님은 아촉불(阿閦佛)과 아미타불(阿彌陀佛) 등이다.

마치 나쁜 도둑은  밖의 나쁜 악상(惡相)을 돕는 것과 같이, 모든 부처님의법 또한 그와 같아서 항상 일체 중생들을 위하여 뜻을  이가 있으면  그들을 수호하나니,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은 바로 시방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무너뜨리려 한다 보호하지 않을  없기 때문이다.

 

應當知其有書、讀乃至正憶念者,皆是十方佛力,是諸留難力大故。舍利弗言:“若有書持乃至修行,皆是諸佛所護。”佛可其言。

그러므로  어떤 이가 서사하 읽으며, 나아가 바르게 기억한다면, 이 모두는 시방 부처님의 불력(佛力)이라고 알아야 하며, 여러 장애의 유난(留難)의 힘이 크기 때문에 사리불 존자가 말하기를 “만약 어떤 이가 서사하여 지니고 나아가 수행한다면, 이 모두는 모든 부처님의호를 받는다.”고 한 것이며, 부처님께서는 그의 말을 옳다고 하신 것이다.


舍利弗復說:“世尊!書、持等善男子、善女人,十方現在諸佛皆以佛眼見知念耶?”佛可言:“如是!先惡魔來欲破壞,佛及十方諸佛守護,不令沮壞;今以佛眼見是善男子、善女人,知是人功德難有。”

사리불 존자가 다시 여쭈기를 “세존이시여, 서사하여 지니는 모든 선남자ㆍ선여인을 현재 시방에 계신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두가 불안(佛眼)으로써 보시고 아시고 생각하시는지요?”라고 하였으며, 

부처님께서는 그의 말을 옳다고, “그러하느니라. 먼저 악마가 와서 파괴하려 하여도 부처님과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수호하시어 파괴되지 않게 하시며, 지금은 불안(佛眼)으로써  선남자ㆍ선여인을 보시고  사람의 공덕은 있기 어려운 것임을 아시느니라.”고 하셨으며, 


未破魔網而能行是般若波羅蜜大事;是故十方佛以佛眼見知念是人。

그는 아직 악마의 그물을 파괴하지 못하였으나, 이 반야바라밀의 대사(大事)를 능히 해 낼 수 있 때문에 시방의 부처님께서 불안(佛眼)으로써  사람을 보시고 아시며 생각해 주시는 것이다.


問曰:爲以天眼見?以佛眼見?若以天眼見,云何此中說佛眼?若以佛眼見,衆生虛誑,云何以佛眼見?

묻나니, 천안(天眼)으로써 보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불안(佛眼)으로써 보시는 것입니까? 

만약 천안(天眼)으로 보신다면 어찌하여 여기에서는 불안을 말씀하시는 것이며,

만약 불안으로써 보신다면 중생은 거짓이거늘 어떻게 불안으로 보시는 것입니까?


答曰:天眼有二種:一者、佛眼所攝,二者、不攝。佛眼所不攝者,見現在衆生,有限有量;佛眼所攝者,見三世衆生,無限無量。法眼入佛眼中,但見諸法,不見衆生;慧眼入佛眼中,不見法,但見畢竟空。

답하나니, 천안(天眼)에는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불안(佛眼)에 포섭되는 것이요, 둘째는 불안(佛眼)에 포섭되지 않는 것이다. 

포섭되지 않은 것으로 현재의 중생을 보는 것은 한계가 있고 수량이 있지만, 불안에 포섭되는 것으로세의 중생을 본다 한계도 없고 수량도 없으니, 

법안(法眼)이 불안(佛眼)에 들어가면 다만 모든 법안만을 볼 뿐, 중생은 보지 못하지만,

혜안(慧眼)이 불안(佛眼) 안에 들어가면 법(法)은 보지 못하고 다만 필경공(畢竟空)만을  뿐이다.

 

問曰:佛眼所攝天眼,爲實?爲虛妄?若虛妄,佛不應以虛妄見!若實者,衆生空,現在衆生尚不實,何況未來、過去?

묻나니, 불안(佛眼)에 포섭되는 천안(天眼)은 진실한 것입니까? 허망한 것입니까? 

만약 허망하다면 부처님께서는 허망한 것을 보지 않으셔야 하고, 만약 진실하다면 중생은 공(空)한 것이라 현재의 중생조차도 오히려 진실하지 않거늘 하물며 미래와 과거이겠습니까?


答曰:佛眼所攝皆是實。衆生於涅槃是虛妄,非於世界所見是虛妄;若人於衆生取定相故,說言虛妄,非爲世諦故說虛妄。以是故,佛眼所攝天眼見衆生。

답하나니, 불안(佛眼)에 포섭된 것이라면 모두가 진실한 것이다. 중생에게 열반은 허망한 것이로되, 세계에 대한 견해로는 허망한 것이 아니니, 만약 사람이 중생에 대하여 일정한 정상(定相) 취한다면 허망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세속의 이치인 세제(世諦)가 아니므로 허망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며, 그러므로 불안(佛眼)에 포섭되는 천안(天眼)으로는 중생을 본 것이다.

 

問曰:若爾者,何以不以佛眼所攝慧眼見衆生?

묻나니, 만약 그러하다면 무엇 때문에 불안(佛眼)에 포섭되는 혜안(慧眼)으로는 중생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까?

 

答曰:慧眼無相利故。慧眼常以空、無相、無作共相應,不中觀衆生。何以故?五衆和合,假名衆生。譬如小兒,可以小杖鞭之,不可與大杖。此中讚菩薩行般若波羅蜜,爲世諦故說,非第一義諦。

답하나니, 혜안은 무상(無相)이고 예리하기 때문이며, 혜안은 언제나 공한 무상 무작과 함께 상응(相應)하므로 중생을 보는 알맞지 않으니, 왜냐하면중(五衆)이 화합하며 임시의 가명(假名)으로 중생이라 하기 때문이니, 

비유하자면, 마치 어린아이에게는 작은 매로써 때려야 하고  매로써 때리지 않는 것과 같이,  가운데서 보살이 행하는 반야바라밀을 찬탄하는 것은 세속의 이치인 세제(世諦)일 뿐, 첫째가는 제일의(第一義)는 아닌 것이다.

 

問曰:未來世未有,念知尚難,何況眼見?

묻나니, 미래세(未來世)는 아직 있지 않은 것이므로 기억하고 알 수 조차 오히려 어렵거늘, 하물며 눈으로 보는 것이겠습니까?

 

答曰:如過去法,雖滅、無所有,而心心數法中念力故,能憶過去事,盡其宿命;聖人亦如是,有聖智力,雖未起而能知、能見。

답하나니, 과거의 법은 비록 소멸하여 있는 바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일지라 마음과 마음에 속한 심수법으로 기억하는 힘의 염력(念力) 때문에 과거의 일을 기억하고,  전생의 숙명(宿命) 전부 다   있는 것과 같이, 성인 또한 그와 같아서 거룩한 지혜의 힘이 있으므로 비록 아직 생기지 않았을지라도  수도 있고  수도 있는 것이다.


復次,是般若中,三世無分別,未來、過去、現在不異。若見現在,過去未來亦應見;若不見過去未來,亦應不見現在。

또한  반야 가운데에서는세(三世)를 분별함이 없으므로 미래와 과거와 현재는 다르지 않는 것이며, 만약 현재를 본다면 과거와 미래도 역시 보아야 하며, 만약 과거와 미래를 보지 못한다면 현재 역시도 보지 못해야 하는 것이다.


問曰:北方末法衆生漏結未盡,是罪惡人,佛何以故見知念?

묻나니, 북방(北方)의 말법(末法) 중생들은 번뇌가 아직 다하지 못한 누결미진(漏結未盡)이며, 죄악이 있는 사람들이거늘 부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보시고 아시며 기억하시는 것입니까?


答曰:佛大悲相,愛徹骨髓;是菩薩能發無上道心,爲衆生故。佛觀是法末後熾盛,我涅槃後,是人佐助佛法故,是以念知。

답하나니, 부처님께서는 대비(大悲)로 사랑하심이 골수에 사무치나니, 이 보살은 위없는 무상도의 마음을 일으켜 중생을 위하는 때문이며, 부처님께서는  법이 말후(末後)에 한창 치성(熾盛)할 때에 당신께서 열반하실 것이며, 그 뒤에도  사람은 부처님의 불법을 도울 것이라는 것을 관찰하셨기 때문에 기억하시고 아시는 것이다.


復次,北方末後人生於邊地惡世,三毒熾盛,刀兵劫中,賢聖希少;是人自不知諸罪福業因緣,但從人聞、若讀經,便能信樂、供養,疾近無上道不久,是事爲難!若佛在世,作阿鞞跋致,信行般若波羅蜜,不足爲難。如是等種種無量因緣故,佛應見念知。

또한 북방 말세의 사람들은 변두리 땅의 나쁜 세상에 태어났으며, 삼독(三毒)이 왕성하며, 무기와 폭력으로 얼룩진 도병겁(刀兵劫)의 동안에 태어났으므로 성현들이 아주 적으니, 

 사람 스스로는 모든 죄와 복의 업인연을 모르지만, 다만 사람들로부터 반야의 경전을 듣기만 하여  믿고 좋아하면서 공양하여 위없는 무상도에 오래지 않아까워질 것이니, 이러함은 몹시 어려운 일이지만,

그러나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아비발치(阿鞞跋致, 불퇴전)가 되어서 반야바라밀을 믿고 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지 못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갖가지의 무량한 인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당연히 보시고 기억하시고 아시는 것이다.


是人信解相大,故能供養般若波羅蜜。供養具華香等,如先說。是供養故,得大果報;如毀呰者,受大苦惱。

 사람은 믿고 이해하는 신해(信解)의 상(相)이 크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에 공양할  있나니, 공양 거리와 꽃ㆍ향 등에 대해서는 앞의 설명과 같다. 이러한 공양 때문에 대과보(大果報)를 얻으나, 반대로 헐뜯는 이는 대고뇌(大苦惱)를 받게 되는 것이다.


大果報者,如須陁洹,終不墮三惡道。是菩薩一心信解、供養般若波羅蜜。

‘대과보(大果報)’라 함이란, 마치 수다원과를 얻은 이는 끝내악도(三惡道)에 떨어지지 않는 것과 같이, 이 보살이 일심으로 반야바라밀을 믿고 이해하하는 신해(信解)하면서 공양하는  또한 그와 같으며, 


亦如是愛念諸佛故,常行念佛三昧故,終不離諸佛;乃至到阿鞞跋致地,敎化衆生,離諸佛無咎。如小兒不離其母,恐墮諸難故。

모든 부처님을 애경하고 염해서 항상 염불삼매(念佛三昧)를 행하기 때문에, 끝내 모든 부처님을 여의지 않으며, 아비발치(불퇴전)에 이르러 중생들을 교화하면서 모든 부처님을 여의게 되는 것에는 허물이 없나니,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를 여의지 않는 것은 모든 재난에 떨어질까 두렵기 때문인 것과 같다.


常深愛念善法故,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終不離六波羅蜜等。得如是等今世、後世大果報。

그는 항상 착한 선법을 사랑하고 염하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끝내 육바라밀 등을 여의지 않으므로 이와 같은 등의 금세와 후세의 대과보를 얻는 것이다.

 

▶經. “舍利弗!是深般若波羅蜜,佛般涅槃後,當至南方國土,是中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當書是深般若波羅蜜,當受持、讀、誦、思惟、說、正憶念、修行。

▷경. “사리불아,  깊은 반야바라밀은 부처님께서 열반한 뒤에는 남방(南方)의 국토에 이를 것이니,  있는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 등은 반드시  깊은 반야바라밀을 서사(書寫)할 것이요,  받아 지니는 수지(受持)하고 읽고 외우는 독송(讀誦)하고, 사유(思惟)하고 해설하고 바르게 정억념(正憶念)하면서 수행할 것이니라.

 

以是善根因緣故,終不墮惡道中,受天上、人中樂;增益六波羅蜜,供養、恭敬、尊重、讚歎諸佛;漸以聲聞、辟支佛、佛乘而得涅槃。

이러한 선근의 인연 때문에 끝내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과 인간의 쾌락을 누리며, 육바라밀은 더욱 늘어나며,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면서 점차로 성문승(聲聞乘)ㆍ벽지불승(辟支佛乘)ㆍ불승(佛乘)으로써 열반을 얻게 될 것이니라.

 

舍利弗!是深般若波羅蜜,從南方當轉至西方所在處,是中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當書是深般若波羅蜜,當受持、讀、誦、思惟、說、正憶念、修行。

사리불아,  깊은 반야바라밀은 남방으로부터 옮아가서 서방(西方)에 이를 것이니, 그곳에 살고 있는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 등은 반드시  깊은 반야바라밀을 서사(書寫)할 것이요, 또 받아 지니는 수지(受持)하고, 읽고 외우는 독송(讀誦)하고, 사유(思惟)하고 해설하고 바르게 정억념(正憶念)하면서 수행할 것이니라.


以是善根因緣故,終不墮惡道中,受天上、人中樂;增益六波羅蜜,供養、恭敬、尊重、讚歎諸佛;漸以聲聞、辟支佛、佛乘而得涅槃。

이러한 선근의 인연 때문에 끝내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과 인간 안의 쾌락을 누리며, 육바라밀은 더욱 늘어나고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면서 점차로 성문승ㆍ벽지불승ㆍ불승으로써 열반을 얻을 것이니라.


舍利弗!是深般若波羅蜜,從西方當轉至北方所在處,是中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當書是深般若波羅蜜,當受持、讀、誦、思惟、說、正憶念、修行。

사리불아,  깊은 반야바라밀은 서방으로부터 옮아가 북방(北方)에 이를 것이니, 그곳에 살고 있는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 등은 반드시  깊은 반야바라밀을 서사(書寫)할 것이요, 또 받아 지니는 수지(受持)하고 읽고 외우는 독송(讀誦)하고, 사유(思惟)하고 해설하고 바르 정억념(正憶念)하면서 수행할 것이니라.


以是善根因緣故,終不墮惡道中,受天上、人中樂;增益六波羅蜜,供養、恭敬、尊重、讚歎諸佛;漸以聲聞、辟支佛、佛乘而得涅槃。

이러한 선근의 인연 때문에 끝내 악도 가운데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과 인간의 쾌락을 누리며,바라밀은 더욱 늘어나고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면서 점차로 성문승ㆍ벽지불승ㆍ불승으로써 열반을 얻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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