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 釋顧視品 第三十 卷五十六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30. 고시품(顧視品)을 풀이함 6
▶論. 釋曰:爾時諸天白佛:“我等當守護是菩薩,與我等同事故;
亦以求佛道者,能自捨身樂欲,使一切衆生得樂故。”
▷논. 해석한다; 그 때에 모든 하늘들이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저희들은 이 보살을 수호해야만 하나니, 저희들과 일을 같이하기 때문이요,
또한 부처님의 불도를 구하는 이는 스스로의 몸을 버리고 기꺼이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즐거움을 얻게 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고 하였다.
“因菩薩斷三惡道”者,菩薩雖未離欲,能遮衆生十不善故,
斷三惡道及天人貧,諸災患等。行十善故,開三善道門。
“보살로 인하여 삼악도가 끊어진다.”고 함이란,
비록 보살이 아직 스스로의 탐욕을 여의지 못하였을지라도 중생의 10불선(十不善)을 막아 주기 때문에 삼악도 및 천상과 인간의 빈궁과 모든 재난 등을 끊게 되며,
10선(十善)을 행하는 까닭에 인도, 아수라도, 천도의 삼선도(三善道)의 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或有菩薩見五欲過罪,能離欲得四禪;以本願故,起四無量心;
欲離種種因緣身苦故,起四無色定。爲佛道故,修六波羅蜜乃至一切種智。
是法,亦自行,亦敎人;以是福德道法,於衆生中展轉相敎,常在世閒。
혹 어떤 보살은 오욕의 허물을 보고 탐욕을 여의면서 4선(四禪)을 얻기도 하고,
본래 세운 본원(本願) 때문에 사무량심(四無量心)을 일으키기도 하며,
갖가지 인연으로 몸에 있는 고통을 여의고자 하여 사무색정(四無色定)을 일으키기도 하고,
부처님의 불도를 수행하기 위하여 육바라밀에서 일체종지에 이르기까지 닦기도 하나니,
이러한 법은 스스로가 행하면서 또한 남에게 가르치는 것이며,
이 복덕과 도법(道法)으로써 중생들 가운데 차츰 서로서로를 가르치게 하여 항상 세간에 있게 하는 것이다.
今當說是諸善法果報:生剎利大姓乃至三寶出現於世;如先義中說。
이제, 이 모든 착한 선법의 과보를 설명해야 하는 것으로,
찰리(刹利)의 큰 성바지에 태어나는 것에서 삼보가 세간에 출현함에 이르기까지는,
먼저 그 뜻(義) 가운데에서 설명한 것과 같으며,
今是菩薩結業生身 在因緣中 無有力勢 而能說是善法 令衆生修行 我等云何當不守護?
譬如太子雖小,群臣百官無不奉承。
“지금 이 보살은 번뇌의 업으로 인하여 짓게 되는 결업(結業)으로 생긴 몸이라, 인연(因緣) 가운데에 있는 것이고, 세력이 없는 것이나, 이 착한 선법을 잘 말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수행하게 하나니,
비유하자면, 마치 태자가 비록 어리다 하여도 여러 신하와 백관(白官)들이 받들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佛可諸天,述而成之。“若供養菩薩,卽是供養佛”者,般若是三世佛母;
若爲般若故供養菩薩,則爲供養佛。“不如供養恭敬初發意菩薩”者。
부처님께서는 모든 하늘들이 하는 말이 옳다고 하시면서 그를 도와 이루어 주시나니,
“만약 보살을 공양한다면 곧 부처님을 공양하는 것으로,
반야는 삼세의 부처님의 어머님이신 삼세불모(三世佛母)이시니.
만약, 반야를 위하여 보살을 공양하면, 부처님을 공양하는 것이 된다.”고 하셨으나,
“처음에 뜻을 낸 초발의(初發意) 보살을 공양하고 공경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는 것이다.
問曰:二乘已證實際,是一切衆生福田,何以故不如初發意菩薩?
묻나니, 성문승(聲聞乘)과 연각승(緣覺乘)의 이승(二乘)은 이미 실제(實際)를 증득하였으므로, 그들은 일체 중생들의 복전(福田)이거늘, 무엇 때문에 처음에 뜻을 낸 초발의(初發意) 보살보다 못하다는 것입니까?
答曰:以三事故不如:一者、用薩婆若心行般若,二者、常不離六波羅蜜等諸功德,三者、由是菩薩斷三惡道,出生三乘。依二乘人,不能斷三惡道、出生三乘。
답하나니, 세 가지의 일 때문에 그보다 못하다는 것이니,
첫째는 살바야(薩婆若)의 마음으로써 반야를 행하고,
둘째는 항상 육바라밀 등의 모든 공덕을 여의지 않으며,
셋째는 보살로 말미암아 삼악도가 끊어지고 3승(三乘)이 출생하게 되지만,
이승인(二乘人)에 의해서는 삼악도가 끊어지고, 삼승이 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30. 고시품(顧視品)을 풀이함을 마침.
THE IDIOT BRAIN(바보같은 우리의 뇌) - 작자 DEAN BURNETT, Page 152~153
Many may think what we perceive in our heads is a 100 per cent accurate representation of the world as it is, as it the eye and ears and the rest are essentially passive recording systems, receiving information and passing it on to the brain, which sorts it and organises it and sends it to the relevant places, like a pilot checking the instruments. But that isn’t what’s happening, at all.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머릿속에서 인지하여 100% 정확하게 표현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눈과 귀와 그 나머지의 기관은 본질적으로 수동적인 기록 시스템으로써, 단지 정보를 받아 뇌에 전달하고, 뇌는 그것을 분류하고 조직하여 관련된 신경조직으로 보낼 뿐인 것으로, 마치 비행기 조종사가 계기를 점검하는 것과 같으나, 그러한 것이 발생된 것과는 전혀 정확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Biology is not technology. The actual information that reaches the brain via our senses is not the rich and detailed stream of sights, sounds and sensations that we so often take for granted; in truth, the raw data our senses provides is more like a muddy trickle, and our brain does some quite incredible work to polish it up to give us our comprehensive and lavish world view.
생물학은 과학 기술이 아닙니다. 우리의 감각을 통하여 뇌에 도달된 실제 정보는, 우리가 종종 당연하게 여기는 풍부하고 상세하게 본 시각의 흐름이 아니며, 우리가 듣는 소리 및 느끼는 감각의 흐름또한 다른 것으로, 사실, 우리의 감각이 제공한 그 본래의 정보는 진흙 물의 물방울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뇌는 우리에게 포괄적으로 이해된, 호화로운 세계관(정보)을 제공하고자 다듬고 연마하는 놀라운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우리가 이미 알고 있고 원하는 바 대로 정보를 제공하고자 놀라운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생략~
It is undeniably impressive that the brain can create such a detailed representation of our environment from limited information but errors and mistakes are going to sneak in.
뇌가 제한된 정보로 우리가 처한 환경을 그토록 상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이 놀라운 점이지만, 그 전달된 정보에는 오류와 착각(실수)이 살짝 끼어들어간 것입니다.
The manner in which the brain perceives the world around us, and which arts it deems important enough to warrant attention, is something that illustrates both the awesome power of the human brain, and also its many imperfections.
우리의 뇌가 우리 주변의 세계를 인식하는 습관적인 방식에 있어서, 그것이 주의를 기울일 만큼 중요한 것이라고 정당화해서 생각하게 하는 것은 아주 예술적인 것으로, 그것은 뭔가 우리의 뇌가 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과 함께 그 정당화된 것은 여러 면에 있어서 불완전다는 것을 예시하는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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