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出到品 第二十一 卷五十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21. 출도품(出到品) 풀이함 2

 

若人欲使夢出,是人爲欲使無相法出;若人欲使幻、焰、響、影、化出,是人爲欲使無相法出。何以故?須菩提!夢相不出三界,亦不住薩婆若;幻、焰、響、影、化相亦不出三界,亦不住薩婆若。

만약 사람이 꿈을 나타내고자 한다면,  사람은 없는 무상법(無相法)을 나타내려는 것이 되고, 

만약 사람이 허깨비 환(幻)ㆍ아지랑이 염(焰)ㆍ메아리 향(響)ㆍ그림자 영(影)ㆍ변화한 화(化)를 나타내고자 한다면,  사람은 무상법(無相法) 나타내려는 것이 되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꿈의 몽상(夢相) 삼계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한 살바야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허깨비 환(幻)ㆍ아지랑이 염(焰)ㆍ메아리 향(響)ㆍ그림자 영(影)ㆍ변화한 화(化) 상(相) 삼계에 나오지도 않는 불출삼계(不出三界)이고 또한 살바야에도 머무르지 않는 불주살바야(不住薩婆若)이기 때문이니라.

 

須菩提!若人欲使檀波羅蜜出,是人爲欲使無相法出;若人欲使尸羅波羅蜜、羼提波羅蜜、毘梨耶波羅蜜、禪波羅蜜、般若波羅蜜出,是人爲欲使無相法出。

수보리야, 만약 사람이 단(壇, 보시)바라밀을 나타내고자 한다면,  사람은 무상법(無相法)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되며, 만약 사람이 시라(尸羅, 지계)바라밀ㆍ찬제(羼提, 인욕)바라밀ㆍ비리야(毘梨耶, 정진)바라밀ㆍ선(禪)바라밀ㆍ반야(般若)바라밀을 나타내고자 한다면  사람은 무상법(無相法)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되느니라.

 

何以故?檀波羅蜜相,不出三界,亦不住薩婆若;尸羅波羅蜜乃至般若波羅蜜不出三界,亦不住薩婆若。所以者何?檀波羅蜜、檀波羅蜜相空,尸羅波羅蜜、羼提波羅蜜、毘梨耶波羅蜜、禪波羅蜜,般若波羅蜜、般若波羅蜜相空故。

왜냐하면 단바라밀상(檀波羅蜜相)은 삼계에 나오지도 않는 불출삼계(不出三界)이고 또한 살바야에도 머무르지 않는 불주살바야(不住薩婆若)이며, 

시라바라밀 내지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의 상(相) 불출삼계(不出三界)이고 불주살바야(不住薩婆若)이 때문이니라.냐하면, 단바라밀은 단바라밀상공(檀波羅蜜相空)이고, 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바라밀 내지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도 상공(相空)인 까닭이니라.

 

若人欲使內空出乃至無法有法空出,是人爲欲使無相法出。何以故?須菩提!內空相乃至無法有法空相,不出三界,亦不住薩婆若。所以者何?內空、內空性空,乃至無法有法空、無法有法空性空故。

만약 사람이 내공(內空)을 나타내고자 하고, 나아가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까지의 십팔공(十八空)을 나타내고자 한다면,  사람은 무상법(無相法)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되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내공상(內空相) 내지 무법유법공상(無法有法空相)은 불출삼계(不出三界)이고 불주살바야(不住薩婆若)이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내공은 내공의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이고 나아가 무법유법공까지도 성품이 공한 무법유법성공(無法有法性空)인까닭이니라.

 

若人欲使四念處出,是人爲欲使無相法出。何以故?四念處性不出三界,亦不住薩婆若。所以者何?四念處、四念處性空故。

만약 사람이 4념처(四念處)를 나타내고자 한다면  사람은 무상법(無相法)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되느니라. 왜냐하면념처의 성품은 불출삼계(不出三界)이고 불주살바야(不住薩婆若)이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념처는념처의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인 까닭이니라.

 

若人欲使四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分、八聖道分出,是人爲欲使無相法出。何以故?八聖道分性,不出三界,亦不住薩婆若。所以者何?八聖道分、八聖道分性空故。乃至十八不共法亦如是。

만약 사람이 사정근(四正勤) 사여의족(四如意足) 오근(五根) 오력(五力) 칠각분(七覺分) 팔성도분(八聖道分, 팔정도) 나타내고자  한다면  사람은 무상법(無相法)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되느니라. 

왜냐하면성도분의 성품은 불출삼계(不出三界)이고 불주살바야(不住薩婆若)이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성도분은성도분의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인 까닭이며, 나아가 18불공법(不共法)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須菩提!若人欲使阿羅漢出生處,是人爲欲使無相法出;若人欲使辟支佛出生處,是人爲欲使無相法出;若人欲使多陁阿伽度、阿羅訶、三藐三佛陁出生處,是人爲欲使無相法出。

수보리야, 만약 사람이 아라한이 나는 출생처(出生處)를 나타내고자 한다면  사람은 무상법(無相法)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되고,

만약 사람이 벽지불이 나는 출생처(出生處)를 나타내고자 한다면  사람은 무상법(無相法)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되며, 

만일 사람이 다타아가도(多陀阿伽度)ㆍ아라하(阿羅訶)ㆍ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의 출생처(出生處)를 나타내고자 한다면,  사람은 무상법(無相法)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되느니라.

 

何以故?須菩提!阿羅漢性、辟支佛性、佛性不出三界,亦不住薩婆若。所以者何?阿羅漢、阿羅漢性空,辟支佛、辟支佛性空,佛、佛性空故。

왜냐하면 수보리야, 아라한의 성품과 벽지불의 성품과 부처님의 성품은 불출삼계(不出三界)이고 불주살바야(不住薩婆若)이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아라한은 아라한의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이고, 벽지불은 벽지불의 성품이 성공(性空)이며, 부처님은 부처님의 성품이 성공(性空)인 까닭이니라.

 

若人欲使須陁洹果、斯陁含果、阿那含果、阿羅漢果、辟支佛道、佛道、一切種智出,是人爲欲使無相法出。

만약 사람이 수다원과(須陀洹果)ㆍ사다함과(斯陀含果)ㆍ아나함과(阿那含果)ㆍ아라한과(阿羅漢果)ㆍ벽지불(辟支佛)의 도(道)ㆍ부처님의 도(道)ㆍ일체종지(一切種智)를 나타내고자 한다면  사람은 무상법(無相法)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니라.

 

如上說,若人欲使名字、假名、施設、相、但有語言出,是人爲欲使無相法出。何以故?名字空,不出三界,亦不住薩婆若。所以者何?名字相,名字相空故,乃至施設亦如是。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만약 어떤 사람이 명자(名字, 이름)과 임시의 가명(假名)과 시설(施設)된 상(相) 단지 말의 어언(語言)이 있을 뿐이나, 이를 나타내고자 한다면,  사람은 무상법(無相法)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명자공(名字空) 불출삼계(不出三界)이고 불주살바야(不住薩婆若)이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명자상(名字相) 명자상이 공(空)한 까닭이니, 나아가 시설(施設) 또한 그러하느니라.

 

若人欲使不生不滅法、不垢不淨、無作法出,是人爲欲使無相法出。何以故?不生乃至無作法性不出三界,亦不住薩婆若。所以者何?不生性乃至無作性,性空故。

만약 사람이 불생불멸법(不生不滅法)과 불구불정무작법(不垢不淨無作法)을 나타내고자 한다면  사람은 무상법(無相法)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되느니라. 

왜냐하면 불생(不生)에서부터 나아가 무작법(無作法) 불출삼계(不出三界)이고 불주살바야(不住薩婆若)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불생의 성품에서 무작의 성품에 이르기까지는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인 까닭이니라.

 

須菩提!以是因緣故,摩訶衍從三界中出,至薩婆若中住,不動法故。

수보리야, 이러한 인연으로 마하연은 삼계로부터 나와서 살바야에 이르러 머무르나니, 움직이지 않는 부동법(不動法)이기 때문이니라.

 

▶論. 問曰:佛已知須菩提所問,今何以更稱而答?

▷논. 묻나니, 부처님께서는 이미 수보리의 묻는 바를 알고 계셨거늘, 무엇 때문에 다시 드러내어 말씀하신 것입니까?

 

答曰:是『摩訶般若波羅蜜』有十萬偈,三百二十萬言,與『四阿含』等,此非一坐說盡。又上須菩提所問,已答二事,異時異日故稱第三問而答。

답하나니, 이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密經)'은 10만의 게송에 320만의 말씀이 있으니, 장아함(長阿含), 중아함(中阿含), 잡아함(雜阿含), 증일아함(增一阿含)의 아함(四阿含)과 같아서 한 자리에 앉아서  말씀할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에서 수보리가 물은 바에 대하여 두 가지는 이미 답하셨지만, 때가 다르고 날이 다른 까닭에  번째의 질문을 드러내어 대답해 주신 것이다.

 

復次,有人言:聲聞法中無有不可思議事,不得一日一坐中說盡。佛有無碍解脫,菩薩有不可思議三昧,能令多時作少時、少時作多時,亦能以大色入小、小色作大。又如六十小劫說『法華經』,人謂從旦至食。

또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성문법 가운데에는 불가사의한 일이 없으니, 하루에  자리에 앉아서  설명할 수도 없지만, 부처님께는 무애해탈(無礙解脫)하셨고, 보살들에게는 불가사의한 삼매가 있으므로 길고 많은 시간을 잠깐이 되게도 하고, 잠깐 동안을 시간이 되게 하기도 하며, 또한  물건을 작은 데에 넣을 수도 있고, 작은 물질을 크게 만들 수도 있다.”고 하며, 또한 마치 60소겁(小劫) 동안 '법화경(法華經)'을 설하심에도 사람들은 “아침을 먹을 때까지 였다.”고 말한 것과 같다.

 

問曰:色有形可見,時無形但有名,云何得以近爲遠、以遠爲近?

묻나니, 물질(色)은 형상이 있어서   있지만, 시간은 형상이 없고 단지 이름만 있을 뿐이거늘 어떻게 가까운 것으로  것을 삼고  것으로 가까운 것을 삼을  있는 것입니까?

 

答曰:以是故說“以不可思議神通力”。如人夢中,夢有所見,自以爲覺;夢中復夢,如是展轉,故是一夜。以是故,更稱其問而答。“是乘何處出,至何處住”者?佛答:“是乘從三界中出,至薩婆若中住。”

답하나니, 그 때문에 “불가사의한 신통의 힘”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마치 꿈을 꾸는 사람이 꿈에서는 자신이 깨어 있다고 여기며, 꿈속에서 다시 꿈을 꾸면서 점차 하룻밤이 되는 것과 같으니,

 때문에 다시  질문을 드러내어 대답하신 것이니,  “이 탈것의 승(乘)은 어느 곳에서 나와서 어느 곳에 이르러 머무르는지요?”라고 하자 부처님께서는 “이 탈것의 승(乘)은 삼계에서 나와 살바야에 이르러 머무른다.”고 하신 것이다.

 

問曰:是乘爲是佛法?爲是菩薩法?若是佛法,云何從三界出?若是菩薩法,云何薩婆若中住?

묻나니, 이 탈것의 승(乘)은 바로 부처님의법입니까? 아니면 보살법입니까? 

만약 이것이 부처님의법이라면 어떻게 삼계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만일 이것이 보살법이라면 어떻게 살바야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까?

 

答曰:是乘是菩薩法,乃至金剛三昧;是諸功德淸淨,變爲佛法。是乘有大力,能有所去,直以至佛,更無勝處可去,故言“住”。

답하나니, 이 탈것의 승(乘)은 바로 보살법(菩薩法)에서부터 금강삼매(金剛三昧)에 이르기까지이니,  모든 청정한 공덕이 변하여 부처님의법이 되는 것이다. 

 탈것의 승(乘)이야말로  힘이 있고 능히 가는 바가 있어서, 곧장 부처님께 이르게 되며, 거기에서는 다시  나은 곳으로 일이 없기 때문에 “머무를 주(住)”라 하는 것이다.

 

譬如劫盡火燒三千世界,勢力甚大,更無所燒,故便自滅;摩訶衍亦如是,斷一切煩惱,集諸功德,盡其邊際,更無所斷,更無所知,更無所集故,便自歸滅。

비유하자면, 마치 겁(劫)이 다하여 불이 삼천대천세계를 태울 때의 그 심히 크지만, 다시  태울 것이 없기 때문에 저절로 꺼지게 되는 것과 같이, 마하연(摩訶衍) 또한 그와 같아서 일체의 번뇌를 끊고 모든 공덕을 쌓아서 그 끝까지 다하였으므로, 다시는  끊을 것도 없고 다시는  쌓을 것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멸(滅)로 돌아가는것이다.

 

“不二法”者,斷諸菩薩著故說。此中佛自說:“大乘、薩婆若,是二法不一故不合, 不異故不散;六情所知盡虛妄故,無色、無形、無對、一相。”

“둘이 아닌 불이법(不二法)”이란, 모든 보살의 집착을 끊게 하기 위하여 말하는 것이니, 이 가운데에서 부처님께서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대승과 살바야의 이 두 법은 하나가 되지 않기 때문에 불합(不合)이고, 다르지 않은 불이(不異)이기 때문에 흩어지지도 않는 불산(不散)이니, 6정(六情)으로 아는 바 모두는 끝까지 허망한 까닭에 무색(無色), 무형(無形), 무대(無對)이고 일상(一相)이다.”고 하신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