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摩訶薩品 第十三 卷四十五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13. 마하살품(摩詞薩品)을 풀이함 3
14. 단견품(斷見品)을 풀이함 1
“大快心”者,雖有牢固心,未是大快;如馬雖有大力,而未大快。
於衆生中得二種等心故,不生欲染心;若有偏愛,則爲是賊,破我等心。
마음이 크게 트여서 흔쾌한 마음의 대쾌심(大快心)이라 함이란, 비록 견고한 마음이 있을지라도 아직 크게 흔쾌하지 못함이, 마치 말이 비록 큰 힘이 있다 하여도 아직 크게 빠르지 못한 것과 같이,
중생들에 대하여 두 가지의 동등한 등심(等心)을 얻었기 때문에 음욕의 마음을 내지 않으나,
만약 치우친 사랑이 있으면, 이것이 도둑이 되어서 나의 동등한 등심(等心)을 깨뜨리게 되는 것이다.
爲佛道之本;常行慈悲心故,無有瞋心;常觀諸法因緣和合生,無有自性故,則無癡心;
愛念衆生過於赤子故,無有惱心;不捨衆生,貴佛道故,不生聲聞、辟支佛心。
부처님 불도의 근본을 위하여 항상 자비로운 마음을 행하기 때문에 성내는 진심(瞋心)이 없으며,
언제나 제법은 인연 화합으로 생기는 것이라 자성(自性)이 없다고 관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마음이 없으며,
중생을 사랑하는 것이 마치 갓난아이(赤子)보다 더하기 때문에 괴롭히는 마음이 없으며,
중생을 버리지 않으면서 부처님의 불도를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다.
問曰:若心牢固如金剛,卽是不動,今何以更說“不動心”?
묻나니, 만약 마음이 견고하기가 마치 금강과 같다면, 곧 그것이 동요하지 않는 부동(不動)인데
무엇 때문에 지금 부동심(不動心)을 다시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答曰:或時雖復牢固,心猶有增減;如樹雖牢固,猶可動搖。
動有二種:一者、外因緣動,如先說;二者、內因緣動,諸邪見、疑等。
若常憶念一切智慧佛道,我當得是果報,故心不動。
답하나니, 때로는 아무리 견고하다 할지라도 마음에는 여전히 더하거나 덜함의 증감(增減)이 있나니,
마치 나무가 아무리 견고하다 하여도 여전히 움직이고 흔들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동요되는 동(動)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바깥의 인연으로 동요되는 것으로, 앞에서 말한 것과 같으며,
둘째는 안의 인연으로 동요되는 것이니, 모든 삿된 견해와 의심 등으로 인하는 것이다.
만약 항상 일체지혜와 부처님의 불도를 기억한다면 마음이 동요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이 과보를 얻어야 된다.”고 하는 것이며,
復次,菩薩應種種因緣利益衆生,飮食乃至佛樂以利衆生;
常不捨衆生,欲令離苦,是名安樂心;亦不念有是心。
또한 보살은 마땅히 갖가지 인연으로 중생을 이롭게 해야 하나니,
음식 내지는 부처님의 즐거움인 불락(佛樂)으로 이익되게 하고, 항상 중생을 버리지 않으며, 고통을 여의도록 해주어야 하나니, 이러함을 안락한 마음의 안락심(安樂心)이라고 하나니, 이러한 마음조차도 내지 않으며,
復次,菩薩樂法名爲上首。“法”者,不破壞諸法相。不破壞諸法相者 無法可著 無法可受故 所謂不可得。
是不可得空,卽是涅槃,常信、受、忍,是名爲“欲法”、“喜法”。常行三解脫門,名爲“樂法”。
또 보살이 불법을 좋아하는 불락(樂法)하므로 우두머리인 상수(上首)라 하며,
법(法)이라 함이란, 제법의 상(相)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며,
제법의 상(相)을 무너뜨리지 않는다는 것이란, 집착 할 만한 법이 없고, 받을 만한 법이 없기 때문이니, 이른바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인 것이다.
이 불가득공(不可得空)이 곧 열반이니, 항상 믿고 받아 지니며 인정하므로, 이를 법을 원하는 욕법(欲法)이라 하고,
법에 기뻐하는 희법(喜法)하며, 항상 공 무상 무작의 삼해탈문(三解脫門)을 행하므로, 이를 낙법(樂法)이라 하며,
復次,菩薩住是十八空中,不隨十八意行故,不起罪業。住四念處乃至十八不共法,滅諸煩惱、集諸善法故,能爲上首。
또한 보살은 이 18공(十八空) 안에 머무르면서 십팔공을 취하여 분별하는 의행(意行)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죄업(罪業)을 일으키지 않으며,
사념처 내지 18불공법에 머무르면서 모든 번뇌를 없애고 모든 착한 선법을 쌓기 때문에 상수(上首)가 될 수 있으며,
신행(身行)이라 함이란,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것이니, 왜냐하면, 숨을 쉬는 식(息)은 몸에 속한 때문이요,
구행(口行)이라 함이란, 거친 생각의 각(覺)과 세밀한 생각의 관(觀)이니, 왜냐하면, 먼저 각(覺)과 관(觀)이 있은 후에 말을 하기 때문이다.
의행(意行)이라 함이란, 느낌의 수(受)와 생각의 상(想)이니, 왜냐하면, 괴로움과 즐거움을 느끼고 모양을 취하면서 마음이 발동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뜻을 지어감의 의행(意行)이라 한다.- 대지도론(大智度論) 제36권 4
復次,菩薩入金剛三昧等心,受快樂,厭於世樂,增長善根智慧方便故,於大聖衆而爲上首。若能爲大者作上首,何況小者!是故名爲“摩訶薩”。
또한 보살이 금강삼매(金剛三昧)에 들어가 동등한 마음의 등심(等心)으로 쾌락하여져서 세간의 즐거움을 싫어하며, 선근을 더욱 자라게 하고 지혜와 방편으로 큰 성인 대중 가운데에서 상수(上首)가 되나니,
만약 큰 이렇게 큰 대성인 가운데에서 우두머리(上首)가 될 수 있다면,
하물며 작은 소자(小者)들 가운데에서 겠는가. 이 때문에 마하살이라 하는 것이다.
14. 단견품(斷見品)을 풀이함 1
▶經. 爾時,慧命舍利弗白佛言:“世尊!我亦欲說所以爲摩訶薩!”
佛告舍利弗:“便說!”
▷경. 그 때에 혜명 사리불 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저 또한 마하살(摩詞薩)이 되는 까닭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시기를, “말해 보아라.”
舍利弗言:“我見、衆生見、壽見、命見、生見、養育見、衆數見、人見、作見、使作見、起見、使起見、受見、使受見、知者見、見者見,斷見、常見,有見、無見,陰見、入見、界見,諦見、因緣見,四念處見乃至十八不共法見,佛道見,成就衆生見、淨佛世界見,佛見,轉法輪見。爲斷如是諸見故而爲說法,是名摩訶薩。”
사리불 존자가 말씀드리기를,
“오중(五衆, 오온) 가운데서 나(我)와 내 것의 아소(我所)라는 마음이 일어나는 아견(我見)과
인연화합으로 있는 내가 실재한다는 중생견(衆生見),
목숨의 명근(命根)을 성취(유지)하기 때문에 살아 있다는 수견(壽見, 수자견),
생명이 있다는 명견(命見, 명자견),
능히 온갖 일을 일으킴이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낳은 것과 같은 생견(生見, 생자),
젖을 먹이고 옷을 입혀 주고 밥을 먹여 준 인연으로 자라게 되는 양육견(養育見),
오중(五衆, 오온)ㆍ12입(入)ㆍ18계(界) 등의 제법의 인연들은 셀 수 있는 중법(衆法)인 까닭에 중수견(衆數見, 중수),
사람의 법을 행한다는 인견(人見),
손과 발로 능히 짓는 바가 있다는 작견(作見, 작자),
다른 이를 부려서 짓게 하는 사작견(使作見, 사작자),
후세의 죄와 복의 업(業)을 짓기 때문에 인연화합을 일으키는 기견(起見),
다른 이로 하여금 후세의 죄와 복의 업을 일으키게 하므로 인연화합을 일으키게 하는 사기견(使起見),
후생의 몸이 죄와 복의 과보를 받는 다는 수견(受見),
다른 이로 하여금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게 하기 때문에 받게 하는 사수견(使受見)
오식(五識)으로 알아차리는 지자견(知者見)
눈으로 색(色)을 보는 견자견(見者見)과
세간(世間)과 자아(自我)는 사후(死後)에 완전히 소멸된다는 단견(斷見),
세간(世間)과 자아(自我)는 사후(死後)에도 없어지지 않고 상주 한다는 상견(常見)
안근(眼根)으로 보이는 대상, 즉 6경(六境) 가운데 색경(色境), 12처(十二處) 가운데 색처(色處), 18계(十八界) 가운데 색계(色界)의 봄이 있다는 유견(有見),
유견법을 제외한 모든 봄이 없다는 무견(無見),
음견(陰見)ㆍ입견(入見)ㆍ계견(界見)과 진리에 대한 견해의 제견(諦見),
인연에 대한 인연견(因緣見)과 사념처에 대한 견해 내지 18불공법에 대한 견해,
부처님의 불도에 대한 불도견(佛道見)중생을 성취시킨다는 성취중생견(成就衆生見),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는 것에 대한 정불세계견(淨佛世界見)
부처님에 대한 견해의 불견(佛見)ㆍ법륜을 굴리는 것에 대한 전법륜견(轉法輪見) 등
이와 같은 모든 견해를 끊게 하기 위하여 법을 설하는 이를 마하살(摩訶薩)이라 합니다.”
견(見,dṛṣṭi, darśana, diṭṭhi, view)은 심려(審慮: 심사숙고)하고 결탁(決度: 확인 판단)하는 것, 또는 심려와 결탁을 통해 형성된 견해(見解: 일반 사전적인 뜻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자기의 의견이나 생각), 의견(意見), 주장(主張)을 말한다. 즉, 견(見)의 본질적 성질은 심려(審慮: 심사숙고)와 결탁(決度: 확인 판단)이다.음역하여 날라사낭(捺喇捨囊) 또는 달리슬치(達利瑟致)라고도 한다. - 위키
須菩提語舍利弗言:“何因緣故色見是妄見?何因緣故受、想、行、識乃至轉法輪見是名妄見?”
수보리 존자가 사리불 존자에게 묻기를,
“무슨 인연 때문에 물질에 대한 견해의 색견(色見)은 허망한 견해이며,
무슨 인연 때문에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 내지 법륜을 굴리는 전법륜견(轉法輪見)이 허망한 견해라 하는지요?”
舍利弗語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無方便故,於色生見,用有所得故;於受、想、行、識乃至轉法輪生見,用有所得故。是中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以方便力斷諸見故而爲說法,用無所得故。”
사리불 존자가 수보리 존자에게 말하기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방편이 없는 무방편(無方便)인까닭에 물질(色)에 대하여 견해를 일으키나니,
얻을 바가 있다는 유소득(有所得)으로써 하기 때문입니다.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 내지 법륜을 굴리는 전법륜(轉法輪)에 대하여 견해를 일으키나니,
얻을 바가 있다는 유소득(有所得)으로써 하기 때문입니다.
이 가운데에서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방편의 힘으로써 모든 견해를 끊게 하기 위하여 그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게 되나니, 이는 얻을 바가 없는 무소득(無所得)으로써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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