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 往生品 第四之中 卷三十九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4. 왕생품(往生品)을 풀이함② 2
▶經. “舍利弗!有菩薩摩訶薩行六波羅蜜,常懃精進,利益衆生,從一佛國至一佛國,斷衆生三惡道"
▷경.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육바라밀을 행하면서 항상 부지런히 정진하여 중생을 이익되게 하며, 하나의 불국토(佛國土)에서부터 또 다른 하나의 불국토(佛國土)에 이르러서 중생들의 삼악도(三惡道)를 끊어 주느니라.
▶論. 釋曰:是菩薩住六神通,到十方世界,遮上、中、下三種不善道。
▷논. 해석한다; 이 보살은 육신통(六神通)에 머무르면서 시방의 세계에 이르러서 상(上) 중(中) 하(下), 세 가지의 불선도(不善道)를 막아 주는 것이다.
▶經. “舍利弗!有菩薩摩訶薩住六波羅蜜,以檀爲首,安樂一切衆生:須飮食與飮食,衣服、臥具、瓔珞、花香、房舍、燈燭,隨其所須皆給與之"
▷경.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육바라밀에 머물러, 단(檀, 보시바라밀)으로 우두머리를 삼아 일체 중생을 안락하게 하나니, 음식을 구하면 음식을 주고 의복ㆍ침구ㆍ영락ㆍ꽃ㆍ향ㆍ방사ㆍ등촉 등, 그 구하는 바에 따라 모두 베풀어 주느니라.
▶論. 釋曰:菩薩有二種:一者、能令衆生離苦,二者、能與樂。復有二種:一者、憐愍三惡道衆生,二者、憐愍人。是菩薩與衆生樂,憐愍人故,隨所須皆與之。
▷논. 해석한다; 보살에게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중생으로 하여금 괴로움을 여의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삼악도의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것이고, 둘째는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는 것이다.
이 보살은 중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나,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에 그들이 바라는 바에 따라 모두 베풀어 주는 것이다.
▶經. “舍利弗!有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變身如佛,爲地獄中衆生說法,爲畜生、餓鬼中衆生說法"
▷경.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몸을 부처님과 같이 변화하여 지옥의 중생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축생과 아귀의 중생들을 위하여 설법하느니라.
▶論. 問曰:是菩薩何以故變作佛身,似不尊重佛?
▷논. 묻나니, 이 보살은 무엇 때문에 부처님의 몸으로 변화하는 것입니까? 이는 마치 부처님을 존중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答曰:有衆生見佛身得度者,或有見轉輪聖王等餘身得度者,以是故變身作佛。復次,世閒稱佛名字是大悲、是世尊。若以佛身入地獄者,則閻羅王諸鬼神不遮碍 是我所尊者師,云何可遮!
답하나니, 어떤 중생은 부처님의 몸인 불신(佛身)을 보고 제도되기도 하고, 혹 어떤 이는 전륜성왕 등의 그 밖의 다른 몸을 보고서 제도되기도 하기 때문에 몸을 부처님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또한 세간에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서 “대비(大悲)”라 하기도 하고 “세존(世尊)”이라 하기도 하나니, 만약 부처님의 몸으로써 지옥에 들어가고자 하면 곧 염라왕(閻羅王)과 모든 귀신들도 막지 않고 “이 분은 바로 존경해야 할 스승이시다.”라고 하니, 어떻게 막고자 하겠는가?
問曰:若地獄中火燒,常有苦痛,心常散亂,不得受法,云何可化?
묻나니, 만약 지옥 안이면 불이 활활 타고, 항상 고통이 있으므로, 마음이 언제나 산란하여서 가르침을 받을 수가 없을 것인데 어떻게 교화할 수 있는 것입니까?
答曰:是菩薩以不可思議神通力,破鑊滅火,禁制獄卒,放光照之,衆生心樂,乃爲說法,聞則受持。
답하나니, 이 보살은 불가사의한 신통의 힘으로써 가마를 깨뜨리고 불을 끄며 옥졸(獄卒)을 제지시키고 광명을 놓아서 그들을 비추어 중생들의 마음이 안락하여지게 한 후에야 설법을 하므로, 듣고는 곧 받아 지니는 것이다.
問曰:若爾者,地獄衆生有得道者不?
묻나니, 만약 그러하다면 지옥의 중생들도 도를 얻게 되는 것입니까?
答曰:雖不得道,種得道善根因緣。所以者何?以重罪故,不應得道。畜生道中當分別:或得者,或不得者。如阿那婆達多龍王、沙竭龍王等得菩薩道。鬼神道中,如夜叉、密迹金剛、鬼子母等,有得見道,是大菩薩。
답하나니, 비록 도는 얻지 못할지라도 도를 얻을 선근의 인연은 심게 되는 것이니, 왜냐하면, 중한 죄가 있기 때문에 도는 얻지 못하는 것이다.
축생도(畜生道)에서는 당연히 분별 되나니, 혹은 얻는 이도 있고 혹은 얻지 못하는 이도 있으니, 마치 아나바달다용왕(阿那婆達多龍王, Anavatapta)과 사갈용왕(沙竭龍王, Sāgara) 등은 보살의 도를 얻은 것과 같으며,
귀신도(鬼神道)에서도 마치 야차(夜叉)와 밀적금강(密迹金剛)과 귀자모(鬼子母, Hāraiti)와 같은 이들은 견도(見道)를 얻었으니, 이들은 모두가 큰 대보살(大菩薩)들이다.
귀자모(鬼子母, Hāraiti)= 가리저(訶利底)라 음사하며, 애자모(愛子母)ㆍ공덕천(功德天)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본래 남의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야차녀로서 뒤에 부처님의 교화를 받아 불법과 어린아이를 보호하고 양육하는 신이 되었다.
▶經. “舍利弗!有菩薩摩訶薩行六波羅蜜時,變身如佛,遍至十方如恒河沙等諸佛世界,爲衆生說法;亦供養諸佛及淨佛世界,聞諸佛說法;觀採十方淨妙國土相而已,自起殊勝世界。其中菩薩摩訶薩皆是一生補處"
▷경.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육바라밀을 행할 때 몸을 부처님같이 변화하여 두루 시방의 항하 강의 모래수같이 많은 불세계(佛世界)에 이르러서 중생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또한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며,
나아가 부처님의 세계를 청정하게 하고 모든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며,
시방의 깨끗하고 묘한 국토상(國土相)을 관찰하고는 스스로 수승한 세계를 일으키나니, 그 보살마하살들은 모두가 일생보처(一生補處)이니라.
▶論. 釋曰:是菩薩遍爲六道說法,以佛身爲十方衆生說法。若衆生聞弟子敎者,不能信受;若聞佛獨尊自在者說法,信受其語。
▷논. 해석한다; 이 보살은 두루 육도(六道)를 위하여 법을 설하되, 부처님의 몸으로써 시방의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하는 것이며, 만약 중생들이 제자의 가르침을 들으면 믿고 받들지 않으나, 홀로 높고 자재하신 부처님의 설법을 듣게되면 그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는 신수(信受)하는 것이라.
是菩薩二事因緣故,供養諸佛、莊嚴世界:聞莊嚴世界法,到十方佛國取淸淨世界相。行業因緣,轉復殊勝,光明亦多。所以者何?此國土中皆一生補處菩薩。
이 보살은 두 가지의 인연 때문에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세계를 장엄하나니,
세계를 장엄하는 법을 듣고 시방의 부처님의 나라에 이르러서 청정한 세계상(世界相)을 취하니, 행업(行業)의 인연은 더욱 더 수승하여지고 광명 또한 많아지나니, 왜냐하면, 이 국토 안의 모두는 일생보처의 보살이기 때문이다.
問曰:若先己說“兜率天上一生補處菩薩”,今云何說“他方世界菩薩皆一生補處”?
묻나니, 먼저 이미 도솔천의 일생보처 보살을 말씀하셨는데, 이제는 어찌하여 다른 세계인 타방세계(他方世界)의 보살 모두가 일생보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答曰:兜率天上一生補處者,是三千世界常法;餘處不定。所謂第一淸淨者,轉身成佛故。
답하나니, 도솔천의 일생보처라 함이란, 이 삼천세계의 보편한 상법(常法)이나, 그 밖의 다른 곳은 일정하게 정해져 있지 않으니, 이른바 제일 청정한 이는 몸을 바꾸어 부처님의 도를 이룰 수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經. “舍利弗!有菩薩摩訶薩行六波羅蜜時,成就三十二相,諸根淨利。諸根淨利故,衆人愛敬;以愛敬故,漸以三乘法而度脫之。如是,舍利弗!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應學身淸淨、口淸淨"
▷경.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육바라밀을 행할 때 32상호(相好)을 성취하여서, 모든 제근(諸根, 몸의 육근과 마음의 오근)이 청정하고 영리하며, 제근(諸根)이 청정하고 영리하기 때문에 뭇 사람들이 사랑하고 공경하나니, 사랑하고 공경하기 때문에 점점 삼승(三乘)의 법으로써 그들을 제도하여서 해탈시키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몸의 청정인 신청정(身淸淨)과 입의 청정인 구청정(口淸淨)을 배워야 하느니라.
▶論. 釋曰:是菩薩欲令衆生眼見其身得度故,以三十二相莊嚴身。“諸根淨利”者,眼等諸根明利,出過餘人;信、慧根諸心數根等,利淨第一。見者歎其希有:“我無此事!”愛敬是菩薩,信受其語,世世具足道法,以三乘道入涅槃。
▷논. 해석한다; 중생들의 눈으로 이 보살들의 그러한 몸을 보게 되면 제도되기 때문에 32상호로써 몸을 장엄하는 것이며, 제근(諸根)이 청정하고 영리하다는 것이란, 눈 등의 제근(諸根)이 밝고 날카로워서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며, 신근(信根)ㆍ혜근(慧根)의 모든 마음에 속하는 제근(諸根) 등이 날카롭고 청정하기가 으뜸이니,
보는 이는 그 희유(希有)함을 찬탄하면서 “나에게는 이런 일이 없구나.”라고 하면서 이 보살을 사랑하고 공경하며, 그의 말을 믿고 받아 들여서 세세마다 도법(道法)을 두루 갖추어 삼승(三乘)의 도로써 열반에 들게 되는 것다.
是三十二相、眼等諸根,皆從身口業因緣淸淨得,以是故,佛說:“菩薩應當淨身口業"
이 32상호와 눈 등의 제근(諸根) 모두는 신업(身業)ㆍ구업(口業)의 인연이 청정함으로부터 얻게 되는 것이니, 이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보살은 마땅히 신업과 구업을 청정하게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經. “舍利弗!有菩薩摩訶薩行六波羅蜜時得諸根淨,以是淨根而不自高,亦不下他"
▷경.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육바라밀을 행할 때, 모든 제근(諸根)이 청정하여 짐을 얻나니, 이 청정한 근으로써 스스로 높은 체 하지도 않으며, 또한 다른 이를 얕보지 않느니라.
▶論. 釋曰:是菩薩常深淨行六波羅蜜故,得眼等諸根淨利,人皆愛敬;慧等諸心數法根,淨利無比,爲度衆生故。
▷논. 해석한다; 이 보살은 항상 깊고 청정하게 육바라밀을 행하기 때문에 눈 등의 제근(諸根)이 청정하고 영리함을 얻게 된 것이니, 사람들이 모두 사랑하고 공경하며, 지혜 등의 모든 마음에 속하는 심수법(心數法)의 근도 청정하면서 영리하여 견줄 이가 없나니, 이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이다.
世閒常法,若得殊異,心則自高,輕諸餘人,作是念:“汝無此事,我獨有此!”以是因緣故,還失佛道。如經中說:“菩薩輕餘菩薩,念念一劫,遠於佛道;經爾所劫,更修佛道。”以是故而不自高,亦不下他。
세간에서 통상적인 상법(常法)이라 함이란, 만약 특이함을 얻게 되면 마음으로 스스로 뽐내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면서 생각하기를 “너에게는 이러함이 없고 나 홀로만이 이러함이 있을 뿐이다.”고 하나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도리어 부처님의 불도(佛道)를 상실하게 되나니,
마치 경에서 “보살이 다른 보살을 업신여긴다면 생각생각마다 1겁(劫)씩 부처님의 불도(佛道)와는 멀어지게 되며, 그러한 많은 겁을 지나고서야 다시 부처님의 도를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고 한 것과 같기 때문에 스스로 높은 체하지도 않고 또한 남을 낮추어 보지도 않는 것이다.
▶經. “舍利弗!有菩薩摩訶薩從初發心住檀波羅蜜、尸羅波羅蜜,乃至阿鞞跋致地,終不墮惡道"
▷경. 사리불아, 어떤 보살마하살은 처음의 초발심(初發心)에서부터 단(檀, 보시)바라밀과 시라(尸羅, 지계)바라밀 내지 아비발치(阿鞞跋致, 불퇴전)의 지위에 머물러 끝내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論. 釋曰:是菩薩從初已來,性畏惡道,所作功德,願不墜墮。“乃至阿鞞跋致地”者,以未到中閒,畏墮惡道故作願。菩薩作是念:“若我墮三惡道者,自不能度,何能度人?又受三惡道苦惱時,以瞋惱故,結使增長,還起惡業,復受苦報;如是無窮,何時當得修行佛道?”
▷논. 해석한다; 이 보살은 처음부터 성품이 악도를 두려워하여서, 공덕을 지어 악도에 떨어지지 않기를 원하는 것이다.
아비발치(불퇴전)의 지위에 이르기까지라 함이란, 아직 도달하기 전의 그 중간에 악도에 떨어지게 될 것을 두려워하므로 원을 세우게 되나니,
보살은 생각하기를 “만약 내가 삼악도에 떨어진다면 나 자신도 제도할 수 없는 것이거늘, 어찌 사람들을 제도할 수 있으랴. 또한 삼악도의 고뇌를 받을 때에는 성냄의 번뇌 때문에 그 결사(結使)가 더욱 자라게 되어서 도리어 악업(惡業)을 일으키게 되어서 다시 고통의 과보를 받게 될 것이니, 이렇게 끝없이 되풀이 한다면 언제 불도를 수행할 수 있으랴”라고 하는 것이다.
問曰:若持戒果報不墮惡道者,何以復說布施?
묻나니, 만일 계율을 지닌 지계(持戒)의 과보로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다시 보시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答曰:持戒是不墮惡道根本,布施亦能不墮。復次,菩薩持戒,雖不墮惡道中,生人中貧窮,不能自利,又不益人;以是故行布施。餘波羅蜜,各有其事。
답하나니, 지계(持戒)가 바로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 근본이며 보시 또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또 보살은 지계(持戒)를 지녀서 비록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인간으로 태어나면 빈궁한 이가 되어 자신을 이롭게 할 수도 없고 또 남도 이익되게 하지 못하나니, 이러한 때문에 보시를 행하는 것이며, 그 밖의 바라밀도 저마다의 일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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