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初品中 見一切佛世界義 第五十一之餘 卷三十四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51. 초품 중 모든 부처님 세계를 보다[見一切佛世界]의 뜻을 풀이함 ② 3
問曰:如佛常放丈光、足不到地,衆生何以故不盡敬附?
묻나니, 부처님 같으신 분은 항상 한 길의 광명= 장광(丈光, 약 3m)을 놓으시며, 발이 땅에 닿지도 않으셨으니, 어찌하여 일체의 중생 전부가 다 공경하면서 따르지 않았던 것입니까?
答曰:衆生無量劫中積罪甚重,無明垢深,於佛生疑,謂是幻師,以術誑人;或言:“足不蹈地,生性自爾,如鳥能飛,有何奇特!”
답하나니, 중생은 한량없는 겁 동안 쌓은 죄가 심히 중하고 무명(無明)의 때= 구(垢)가 심히 두터운 탓에 부처님에 대하여 의심을 내면서 “이 사람은 환술쟁이이며, 환술로써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라고 하기도 하고,
혹 어떤 이는 말하기를 “발이 땅을 밟지 않는 것은 타고난 성품이라 그러한 것이니, 마치 새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거늘 무엇이 특이하단 말인가”라고 하기도 하며,
或有衆生罪重因緣故,不見佛相,直謂大威德沙門而已;譬如人重病欲死,名藥美食,皆謂臭穢,是故不盡敬附。
혹 어떤 중생은 죄가 중한 인연 때문에 부처님의 불상(佛相)조차 보지 못하는 탓에 그저 큰 위덕이 있는 사문(沙門)이라고 말할 따름이니, 비유하자면, 마치 사람이 중병이 들어서 죽으려 할 때에는 명약(名藥)이나 좋은 음식도 모두 더러운 악취가 난다고 하는 것과 같나니, 이러한 등의 이유로 중생 모두가 다 공경하거나 따르지 못한 것이다.
“共四天王,乃至阿迦尼咤無量千萬億諸天衆,恭敬圍繞至菩提樹下”者,是諸佛常法。佛爲世尊,至菩提樹下,欲破二種魔:一者結使魔、二者自在天子魔,欲成一切智;是諸天衆,云何不恭敬侍送?
'사천왕에서부터 아가니타천(阿迦尼咤, Akaniṣṭha 색구경천色究竟天)까지의 무량한 천만억의 모든 제천(諸天)들로부터 공경을 받으며, 둘러싸여 보리수 아래에 이르신다' 는 것이란, 바로 모든 부처님께는 통상 있는 법이니,
부처님은 세존(世尊)이시라 보리수 아래에 이르러서 두 종류의 마를 파괴하고자 하셨으니,
첫째는 번뇌의 마인 결사마(結使魔)요,
둘째는 자재천자의 마인 자재천자마(自在天子魔)이며,
그리고 일체지(一切智)를 이루고자 하심이니,
이 모든 하늘들이 어찌 공경하면서 모시고 보내드리지 않았겠는가!
又諸天世世佐助擁護菩薩,乃至出家時,令諸宮人婇女,淳惛而臥,捧馬足踰城出。今日事辦,我等當共侍送至菩提樹下。
또한 모든 하늘들은 세세마다 보살을 돕고 옹호하였으니, 출가하실 때에는 모든 궁인(宮人)과 채녀(婇女)들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하였고, 말이 성벽을 뛰어 넘을 수 있게 하였으니, 오늘날의 일이 이루어 지게 된 것이라, “우리들 모두가 보리수 아래까지 같이 모시고 가야 하는 것이다”고 한 것이었다.
問曰:何以不說剎利、婆羅門等無量人侍送,而但說“諸天”?
묻나니, 무엇 때문에 찰리(刹利)와 바라문(婆羅門) 등의 무량한 사람들이 모시고 보냈다고는 말하지 않고 모든 하늘들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答曰:佛獨於深林中求菩提樹,非是人行處,是故不說。又以人無天眼、他心智故,不知佛當成道,是故不說。
답하나니, 부처님께서는 혼자 깊은 숲 속에서 보리수를 구하셨으며 그곳은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천안(天眼)이나 타심지(他心智)가 없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당연히 도를 이루실 것을 몰랐었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이며,
復次,諸天貴於人,故但說天。復次,諸佛常樂閑靜處,諸天能隱身不現,不妨閑靜,是故但說諸天從。復次,菩薩見五比丘捨菩薩而去,而菩薩獨至樹下,是故作是願。
또한 모든 하늘들은 사람보다 귀한 까닭에 다만 하늘들만 말할 뿐이며,
또한 모든 부처님은 항상 한적하고 고요한 곳을 좋아하시고, 모든 하늘들은 몸을 숨겨 나타나지 않아서 그 고요함을 방해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만 모든 하늘들의 시중만을 말하는 것이며,
또한 보살은 다섯의 비구가 보살을 버리고 떠나가는 것을 보시고는, 혼자 보리수 아래에 이르신 때문에 이러한 서원을 세우신 것이다.
▶經. “‘我當於菩提樹下坐,四天王天乃至阿迦尼咤天,以天衣爲座’者,當學般若波羅蜜!”
▷經. “내가 장차 보리수 아래에 앉을 때 사천왕천에서부터 아가니타천(색구경천)에 이르기까지가 하늘 옷인 천의(天衣)로 자리를 마련하게 하리라”고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論. 問曰:如經說“佛敷草樹下坐而成佛道”,今云何願言“以天衣爲座”?
▷論. 묻나니, 경(經)에서 말씀하신 바로는 부처님께서는 나무 아래에 풀을 깔고 앉으셔서 부처님의 불도(佛道)를 이루셨는데, 어찌하여 지금은 천의(天衣)로 자리를 만들어지기를 원하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答曰:聲聞經中說敷草。摩訶衍經中隨衆生所見或有見敷草樹下,或見敷天綩綖隨其福德多少所見不同。
답하나니, 성문의 경(經)에서는 풀을 깔았다고 설명되어 있으나 마하연(대승)의 경(經)에서는 중생들이 보는 바에 따라 혹 어떤 이는 풀을 나무 아래에 깔았다고 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하늘의 완연(婉綖)을 깔았다고 보기도 하나니, 그 복덕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보는 바가 같지 않은 것이다.
復次,生身佛把草樹下;法性生身佛以天衣爲座,或勝天衣。復次,佛於深林樹下成佛,林中人見,則奉佛草。若貴人見者,當以所貴衣服爲座;但林中無貴人故,時諸龍神天,各以妙衣爲座。
또한 생신(生身, 육신, 응화신)의 부처님은 풀을 나무 아래에 깔았을 것이나 법성생신(法性生身)의 부처님은 천의(天衣)로 자리가 되었으리니, 혹 천의(天衣)가 더 훌륭한 것이기 때문이며,
또한 부처님께서는 깊은 숲 속의 나무 아래에서 성불하신지라 숲 속에 있는 사람이 보았다면 부처님께 풀을 바쳤을 것이요, 만약 귀한 사람이 보았다면 당연히 귀히 여기는 의복으로 자리를 만들었을 것이나, 그 숲 속에는 귀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용과 신과 하늘들이 저마다의 묘한 옷으로써 자리를 만들었을 뿐이다.
四天王衣重二兩;忉利天衣重一兩;夜摩天衣重十八銖;兜率天衣重十二銖;化樂天衣重六銖;他化自在天衣重三銖。色界天衣無重相。
사천왕의 옷은 무게가 두 냥(兩, 75g)이요 도리천(忉利天)의 옷은 무게가 한 냥(37,5g)이며, 야마천(夜摩天)의 옷은 무게가 18수(銖, 18전錢, 67.5g)요 도솔천(兜率天)의 옷은 무게가 12수(銖, 12전錢, 45g)이며, 화락천(化樂天)의 옷은 무게가 6수(銖, 16전錢, 22.5g)요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옷은 무게는 3수(銖, 3전錢, 11.25g) 이며, 색계천(色界天)의 옷은 무게가 없었으며,
냥 (兩)= 약 37.5g, 엽전을 세던 단위이며 한 냥은 10돈임.
1돈(錢) = 약 3.75g. 귀금속이나 철, 한약재 등의 무게, 특히 반지 등의 무게를 잴 때 사용하는 단위로, 푼(分)의 10배, 냥(兩)의 1/10에 해당한다. 즉, 1푼(分)=0.375g, 1돈(錢)=3.75g, 1냥(兩)=37.5g. - 나무위키
欲界天衣從樹邊生,無縷無織;譬如薄冰,光曜明淨,有種種色。色界天衣,純金色光明,不可稱知。如是等寶衣敷座,菩薩坐上,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
욕계천(欲界天)의 옷은 나무 곁에서 생겨난 것이라 직조된 것이 아니어서 올도 없었으니, 마치 얇은 얼음에 광명이 비치면 맑고 깨끗한 갖가지의 빛깔이 있는 것과 같았으며,
색계천의 옷은 순수한 금빛 광명이어서 드러내어 알 수 없는 것이었으니,
이와 같은 등의 보배 옷으로 자리에 깔았으며, 보살이 그 위에 앉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신 것이다.
問曰:何以但說諸天敷衣,不說十方諸大菩薩爲佛敷座?諸菩薩等,佛將成道時,皆爲佛敷座或廣長一由旬,十百千萬億乃至無量由旬;高亦如是。此諸寶座,是菩薩無漏福德生故,是諸天目所不見,何況手觸!
묻나니, 무엇 때문에 모든 하늘들이 깔아드린 옷만을 말씀하시고, 시방의 모든 큰 보살들이 부처님을 위하여 자리를 마련한 것은 말씀하지 않는 것입니까?
모든 보살들도 부처님께서 장차 도를 이루시려 하실 즈음에는 모두 부처님을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셨으니, 혹은 너비와 길이가 1유순이기도 하고, 십ㆍ백ㆍ천ㆍ만ㆍ억 내지 한량없는 유순이기도 했으며, 높이도 역시 그와 같았으며, 이 모든 보배 자리는 이 보살들의 무루(無漏)의 복덕에서 생긴 것이기 때문에, 모든 하늘들의 눈으로도 볼 수 없었거늘 하물며 손으로 만질 수 있었겠습니까?
十方三世諸佛,降魔得道,莊嚴佛事,皆悉照見,譬如明鏡;如是妙座,何以不說?
시방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께서 마(魔)를 항복을 받아 도를 얻으시고, 장엄하시어 불사(佛事)를 하는 등을 모두 다 비추어 보신 것은 마치 맑은 거울과 같았나니, 이와 같은 묘한 자리를 무엇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입니까?
答曰:般若波羅蜜有二種:一者、與聲聞、菩薩、諸天共說,二者、但與十住具足菩薩說。是般若波羅蜜中,應說菩薩爲佛敷座。
답하나니, 반야바라밀에는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성문과 보살과 모든 하늘들을 위하여 설하는 것이요
둘째는 다만 십주(十住)가 구족된 보살만을 위하여 설하는 것이라. 이 반야바라밀에서는 보살들이 부처님을 위하여 자리를 깔아 드린 것만을 설명하느 것이다.
所以者何?諸天知佛恩,不及一生、二生諸大菩薩;如是,菩薩云何不以神通力而供養佛!是中合聲聞說,是故不說。
왜냐하면, 모든 하늘들도 부처님의 은혜를 알지만 일생보처(一生補處)나 이생보처(二生補處)의 모든 큰 보살에게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라. 이러한 보살이시니 어떻게 신통의 힘으로써 부처님님께 공양하지 않았겠는가! 이 반야바라밀에서는 성문과 합하여 설명되었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이다.
▶經. “‘我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行、 住 、坐、臥處,欲使悉爲金剛’者,當學般若波羅蜜!”
▷經.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때에 행(行) 주(住) 좌(坐) 와(臥)하는 곳 모두가 금강(金剛)이 되게 하리라”고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論. 問曰:何以故佛四威儀中,地悉爲金剛?
▷論. 묻나니, 무엇 때문에 부처님의 사위의(四威儀)의 땅을 모두 금강이 되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까?
答曰:有人言:菩薩至菩提樹下時,於此處坐,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爾時菩薩入諸法實相中,無有地能擧是菩薩。所以者何?地皆是衆生虛誑業因緣報故有,是故不能擧。菩薩欲成佛時,實相智慧身,是時坐處變爲金剛。
답하나니,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보살이 보리수 아래에 이르러 그 곳에 앉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셨으니, 그 때의 보살은 제법의 실상(實相)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므로, 그 땅이 보살을 올려놓고 받칠 수가 없었으니, 왜냐하면, 그 땅은 모두 중생의 거짓된 업인연의 과보로 존재하는 것인 까닭이었기 때문에 보살이 성불하고자 할 때의 실상지혜의 몸을 받쳐 올릴 수가 없었던 것이라. 그 때에 앉으신 곳이 변하여 금강이 되었다”고 하며,
有人言:土在金輪上,金輪在金剛上,從金剛際出,如蓮花臺,直上持菩薩坐處,令不陷沒;以是故,此道場坐處名爲金剛。有人言:成佛道已,四種威儀處,悉變成金剛。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대지는 금륜(金輪) 위에 있고 금륜은 금강(金剛) 위에 있으며, 금강과 대지의 경계에서 나오는 것이 마치 연화대(蓮花臺)와 같았으니, 그 위에 보살이 앉으실 곳을 받쳐서 움푹 꺼져들어 감이 없었기 때문에 이 앉으신 곳의 도량(道場)을 금강(金剛)이라 한다”고 하며,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불도(佛道)를 이루시고 나면 네 종류 위의(威儀)의 처소는 모두 변하여 금강이 된다”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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