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初品中 善根供養義 第四十六 卷第三十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46. 초품 중 선근공양(善根供養)의 뜻을 풀이함 7
立尸羅者,菩薩於衆生前,讚說戒行:“汝諸衆生,當學持戒!持戒之德,拔三惡趣及人中下賤,令得天、人尊貴,乃至佛道。
시라(尸羅, 지계)바라밀을 세운다 함이란, 보살이 중생들 앞에서 계행(戒行)을 찬양하면서 “그대 모든 중생들은 지계(持戒)를 배워야 하나니, 지계의 덕은 삼악취(三惡趣, 삼악도)와 인간 세계에서의 하천(下賤)함에서 구제하여 줄 뿐만 아니라 천상과 인간의 존귀(尊貴)를 얻게 하며, 불도(佛道)에 이르게까지 하는 것이다.
戒爲一切衆生衆樂根本,譬如大藏出諸珍寶。戒爲大護,能滅衆怖,譬如大軍破賊。戒爲莊嚴,如著瓔珞。戒爲大船,能度生死巨海。
계(戒)는 일체 중생들이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근본이니, 마치 큰 창고에서 온갖 값지고 진귀한 보배를 가지고 나오는 것과 같으며,
계(戒)는 큰 보호가 되어서 많은 두려움을 없애 주나니, 마치 대군이 도적을 적파하는 것과 같으며,
계(戒)는 마치 영락으로 장식하여 장엄하는 것과 같으며,
계(戒)는 생사의 큰 바다를 잘 건너게 하여 주는 큰 배가 되며,
戒爲大乘,能致重寶,至涅槃城。戒爲良藥,能破結病。戒爲善知識,世世隨逐,不相遠離,令心安隱;譬如穿井,已見濕泥,喜慶自歡,無復憂患。
계(戒)는 귀중한 보배를 열반의 성에 이르게 하는 큰 탈것의 대승(大乘)이며,
계(戒)는 번뇌의 병을 깨뜨려 주는 좋은 약이며,
계(戒)는 세세마다 따라다니며 멀리 여의지 않고 마음을 안온하게 하여 주는 선지식(善知識)이니, 비유하자면 우물을 팔 때에 물기 있는 진흙을 보게 되면 기뻐하고 좋아하면서 다시는 더 근심함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戒能成就利益諸行,譬如父母長育衆子。戒爲智梯,能入無漏。戒能驚怖諸結,譬如師子能令群獸懾伏。戒爲一切諸德之根、出家之要。修淨戒者,所願隨意,譬如如意珠應念時得。”如是等種種讚戒之德,令衆生歡喜,發心住尸羅波羅蜜。
계(戒)는 능히 모든 행을 성취시키고 이익되게 함이 마치 부모가 여러 아들들을 양육하여 잘 자라게 하는 것과 같고,
계(戒)는 지혜의 사다리이어서 무루(無漏)에 잘 들어가게 하며,
계(戒)는 능히 모든 번뇌를 놀라게 하고 두렵게 하나니, 마치 사자가 많은 짐승을 조복하여 거느리게 되는 것과 같으며,
계(戒)는 일체의 온갖 덕의 근본이며, 출가한 이의 중요한 의무이니, 청정한 계율을 닦는 이는 소원하는 바를 뜻대로 이루게 되는 것이 마치 여의주(如意珠)가 생각하는 바대로 얻게 하여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고 하나니,
이렇게 갖가지로 계(戒)의 덕을 찬탄함으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기뻐하고 마음으로 시라(尸羅, 지계)바라밀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다.
住羼提者,於衆生前,讚歎忍辱:“忍爲一切出家之力,能伏諸惡,能於衆中現奇特事;忍能守護,令施戒不毀。忍爲大鎧,衆兵不加。忍爲良藥,能除惡毒。忍爲善勝,於生死險道安隱無患。
찬제(羼提, 인욕)바라밀에 머무름이란, 중생들에게 인욕(忍辱)을 찬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해주는 것이니,
“인욕(忍辱)은 일체의 출가한 이들의 힘이 되는 것으로, 모든 악(惡)을 조복하고, 대중 가운데에서 능히 기특한 일을 나타낼 수 있게 하며,
인욕(忍辱)은 수호자로서 보시와 지계가 훼손되지 않게 하며,
인욕(忍辱)은 튼튼한 갑옷이어서 많은 병사들이 해치지 못하게 하고,
인욕(忍辱)은 좋은 약이어서 나쁜 독을 제거시켜 주며,
인욕(忍辱)은 착하고 뛰어난 것이어서 생사의 험한 길에서 안온하면서 근심이 없게 하며,
忍爲大藏,施貧苦人無極大寶。忍爲大舟,能渡生死此岸到涅槃彼岸。忍爲磫𥗫,能瑩明諸德,若人加惡,如豬揩金山,益發其明。求佛道、度衆生之利器,忍爲最妙!” 揩 문지를 개,
인욕(忍辱)은 큰 창고가 되어서 가난으로 극한 고통을 받는 사람에게 끝없이 큰 보배를 베풀어 주고,
인욕(忍辱)은 큰 배가 되어서 생사의 이 언덕= 차안(此岸)을 건너 열반의 저 언덕= 피안(彼岸)에 이르게 하며,
인욕(忍辱)은 숫돌이 되어서 모든 덕이 광채를 내게 하여서 밝게 하여주나니, 만약 어떤 사람이 악을 가하여 오면 마치 돼지가 금산(金山)을 갈아 엎음으로써 더욱더 그 광명이 일어나게 하는 것과 같이, 부처님 도를 구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이익의 그릇이이 되게 하나니, 인욕(忍辱)은 가장 미묘한 것이다.”
行者當作是念:‘我若以瞋報彼,則爲自害!又我先世自有是罪,不得如意,要必當償;若於此人不受,餘亦害我,俱不得免,云何起瞋?’
수행하는 이는 마땅히 다음과 같이 생각하여야 하나니,
‘내가 만약 화를 내어서 상대방에게 보복하면 나 자신을 해치는 것이 될 것이며, 또한 전생에 자신이 이러한 죄를 지었기에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며, 반드시 그 과보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이 사람에게서 받지 않으면 그 밖의 다른 이가 또한 나를 해치고자 하리니, 이러함 모두는 면할 수가 없는 것들이니, 어떻게 화를 낸다는 것인가.’하며,
復次,衆生爲煩惱所牽,起諸惡事,不得自在。譬如人爲非人所持,而罵辱良醫,良醫是時但爲除鬼,不嫌其罵;行者亦如是,衆生加惡向己,不嫌其瞋,但爲除結。
또한 중생은 번뇌에 이끌려서 모든 나쁜 일을 일으키면서도 자유롭지 못하나니,
마치 사람이 사람이 아닌 비인(非人)에게 홀려서 용한 의사를 꾸짖고 욕하는 매욕(罵辱)을 퍼부으나, 의사는 다만 귀신을 없애 줄 뿐 그의 욕설을 미워하지는 않는 것과 같이,
수행하는 이도 역시 그와 같아서, 중생이 자기에게 악을 가하면 그의 성냄을 미워하지 않고 다만 그의 번뇌만을 제거하여 주는 것이다.
復次,行忍之人,視前罵辱者,如父母視嬰孩,見其瞋罵,益加慈念,愛之踰深。又復自念:彼人加惡於我,是業因緣,前世自造,今當受之;若以瞋報,更造後苦,何時解已!若今忍之,永得離苦,是故不應起瞋。
또한 인욕을 행하는 사람은 앞에서와 같이 욕설을 퍼붓는 이를 보면 마치 부모가 젖먹이 아기를 보듯 하면서 그가 화를 내어 욕하는 것을 보고는 더욱더 애틋하게 여김이 깊어져야 하며,
또 다시 생각하기를 “저 사람이 나에게 악을 끼치는 것은 바로 전세에 나 자신이 지은 업의 인연이니, 이제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는 것이라 하며,
만약 같이 화를 내면서 대응한다면 다시 후세의 고통을 만드는 것이 되어서 언제 풀수 있겠는가! 만약 지금 참지 못하면 영영 괴로움을 여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나니, 이 때문에 성을 내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如是種種因緣,訶瞋恚,生慈悲,入衆生忍中。入衆生忍中已,作是念:‘十方諸佛所說法,皆無有我,亦無我所,但諸法和合,假名衆生;如機關木人,雖能動作,內無有主。身亦如是,但皮骨相持,隨心風轉,念念生滅,無常空寂,無有作者,無罵者,亦無受者,本末畢竟空故;但顚倒虛誑故,凡夫心著'
이와 같은 종종의 인연으로 화를 내는 것을 꾸짖고 자비로운 마음을 내어서 중생인(衆生忍)으로 들어가나니,
중생인(衆生忍)에 들어간 뒤에 생각하기를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은 모두 나가 없는 무아(無我)이고 내 것이라는 아소(我所)가 없는 것으로, 다만 제법이 화합하여 임시의 가명으로 중생이라고 부를 뿐이니,
이는 마치 꼭두각시의 목인(木人)과 같은 것이니, 비록 동작을 하고 있으나 그 속에는 주인이 없는 것과 같은 것으로,
중생의 몸 역시 그와 같이 다만 피부와 뼈가 서로 지탱하면서 마음의 바람을 따라 움직이는 것일 뿐이며,
생각생각마다 생멸을 거듭하면서, 무상(無常)하고 공(空)하여 적멸할 뿐인 것이며,
짓는 작자(作者)도 없고 욕하는 매자(罵者)도 없고, 욕을 듣는 수자(受者)도 없는, 처음부터 끝까지 공한 필경공(畢竟空)이나, 다만 전도 되어서 뒤바뀌고 허망할 뿐인데 범부들이 마음으로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며,
如是思惟已,則無衆生;無衆生已,法無所屬,但因緣和合,無有自性。如衆生和合,强名衆生;法亦如是,卽得法忍。得是衆生忍、法忍故,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何況諸餘利益!衆生聞是已,住羼提波羅蜜。
이와 같이 사유하고 나면, 곧 중생이 없는 무중생(無衆生)이며,
무중생(無衆生)이기에 그에 속하는 법도 없으며,
다만 인연(因緣)이 화합했을 뿐이므로 정해진 자성도 없는 것이라.
마치 인연이 화합된 중생을 억지로 중생이라고 이름하는 것과 같이,
법 역시도 그와 같음을 알게 되면 곧 법인(法忍)을 얻게 되며,
이러한 중생인(衆生忍)과 법인(法忍)을 얻게 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나니, 그 밖의 이익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중생들이 이러함을 듣고 나면 찬제바라밀(羼提波羅蜜)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立毘梨耶者,教衆生言:“汝莫懈怠!若能精進,諸善功德悉皆易得;若懈怠者,見木有火而不能得,何況餘事!”是故勸令精進,若人隨方便精進,無願不得。凡得勝法,非無因緣,皆從精進生。
비리야(毘梨耶, 정진) 바라밀을 세우는 것이란, 중생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다.
“그대는 게으르지 말라. 만약 능히 정진하면 모든 착한 공덕을 쉽게 얻을 수 있지만, 만약 게으르게 되면 장작에 불기가 있는 것을 보면서도 불을 얻지 않는 것과 같은니, 하물며 그 밖의 일이겠는가!
이러한 때문에 정진하기를 권하는 것이니, 만약 사람이 방편을 따라 정진하면 원(願)마다 얻지 못할 것이 없으며,
범부가 뛰어난 승법(勝法)을 얻음에 있어서도 인연 없이 되는 것이 아니니, 모두가 정진을 따라 생기는 것이다.
精進有二相:一、能進生諸善法,二、能除諸惡法。
정진에는 두 가지의 상(相)이 있으니,
첫째는 모든 선법(善法)이 능히 생겨나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나쁜 악법(惡法)을 능히 없애는 것이며,
復有三相:一、欲造事,二、精進作,三、不休息。
다시 세 가지 상(相)이 있으니,
첫째는 일을 하고자하는 욕(欲)이요,
둘째는 힘써 정진(精進)을 하는 것이요,
셋째는 쉬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다.
復有四相:已生惡法斷之令滅,未生惡法能令不生,未生善法能令發生,已生善法能令增長。如是等名精進相。
다시 네 가지의 상(相)이 있나니,
이미 생긴 악법(惡法)은 끊어서 소멸시키는 것이요
아직 생기지 않은 악법(惡法)은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며
아직 생기지 않은 선법(善法)은 생겨나게 하는 것이요
이미 생긴 선법(善法)은 더욱 자라게 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것 등을 정진하는 정진상(精進相)이라 하는 것이며,
精進故能助成一切善法。譬如火得風助,其然乃熾;又如世閒勇健之人,能越山渡海。道法精進,乃至能得佛道,何況餘事!衆生聞已,皆立精進波羅蜜。
이렇게 정진하기 때문에 일체의 선법(善法)을 능히 이룰 수 있게 되나니, 마치 불이 바람의 도움을 얻으면 더욱 더 타오르는 것과 같으며,
또한 마치 세간의 용감하고 씩씩한 사람들이 산을 건너고 바다를 잘 건너는 것처럼, 도법(道法)대로 정진하여야 비로소 불도(佛道)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니, 하물며 그 밖의 일들이겠는가!
중생들이 이러함을 듣게 되면 모두가 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을 바르게 세우게 되리라.
復次,菩薩見有 未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爲讚歎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於一切諸法中最爲第一,極爲尊貴,能饒益一切,令得諸法實相不誑之法。有大慈悲,具一切智,金色身相,第一微妙;三十二相,八十隨形好,無量光明;無量戒、定、智慧、解脫、解脫知見;三達無㝵,於一切法無㝵解脫。得如是者,一切衆生中最爲上尊,應受一切世閒供養。
또한 보살이 아직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지 못한 이가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그를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을 찬탄하면서 다음과 같이 찬탄하는 말을 해주나니,
“일체법 가운데에서 가장 제일가는 것이며, 지극히 존귀한 것이요,
능히 일체를 요익하게 하며, 속이지 않는 제법의 실상(實相)을 얻게 하는 것이며,
대자비가 있으면서 일체지(一切智)와 금색의 몸과 가장 미묘한 32상(相好)와 80수형호(隨形好)를 갖추어 무량한 광명을 내게 하며,
무량한 계율ㆍ선정ㆍ지혜ㆍ해탈ㆍ해탈지견을 갖추게 되며
숙명명(宿命明) 천안명(天眼明) 누진명(漏盡明)의 삼달(三達)의 걸림이 없는 무애(無礙)를 갖추게 되며,
일체법에서 막힘이 없는 무애해탈(無㝵解脫)을 얻게 되나니,
이러함을 얻게 되는 이는 일체중생 중에서 가장 으뜸가고 가장 존귀한 이가 되는 것이므로 마땅히 일체 세간의 공양을 받게 되는 것이다.
若人但心念佛,尚得無量無盡福德,何況精進、布施、持戒、供養、承事、禮拜者!
만약 사람이 다만 마음으로 부처님을 염(念)하기만 하여도 오히려 무량하고 끝없는 복덕을 얻게 되는데, 하물며 정진하고 보시하고 계율을 지니고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며 예배하는 이겠는가!
語衆生言:“佛事如是,汝等當發無上道心,懃修精進;行如法者,得之不難!”衆生聞是已,便發無上道心。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이러함을 말해 주면서 “그대들은 마땅히 위없는 무상도(無上道)의 마음을 일으켜서 부지런히 닦고 정진하면서 법(法)대로 행한다면 그것을 얻음에 어렵지 않은 것이다”고 하나니, 중생들이 이러함을 듣고는 곧 위없는 무상도(無上道)의 마음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若發心者,不可但空爾而得,當行檀波羅蜜;行檀波羅蜜,次行尸羅波羅蜜、羼提波羅蜜、禪波羅蜜、般若波羅蜜;行五波羅蜜,則是毘梨耶波羅蜜。
만약 마음을 일으켜 발심(發心)한 이라면, 다만 공(空)한 것이라 얻을 수 것이 아닌 것이며, 마땅히 단(檀, 보시)바라밀을 행해야 하며, 단바라밀을 행한 다음에는 시라(尸羅, 지계)바라밀을 행하고, 찬제(羼提, 인욕)바라밀ㆍ선(禪)바라밀ㆍ반야(般若)바라밀을 행하여야 하나니, 이 다섯 가지 바라밀을 행하게 되는 것이 비리야(毘梨耶, 정진)바라밀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여 주며,
若不發大乘心者,當教辟支佛道;若無辟支佛道者,教行聲聞道;若無聲聞道者,教令離色,受無色定,寂滅安樂;若無無色定者,教令離欲,受色界種種禪定樂;若無禪者,教令修十善道,人、天中受種種樂。
만약 대승(大乘)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마땅히 벽지불의 도(道)로써 가르치고,
만약 벽지불의 도(道)에 대하여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이라면 성문의 도(道)를 행하도록 가르치며,
만일 성문의 도(道)에 대한 마음을 내지 않는다면 색(色, 색온色蘊, 육체, 물질)을 여의고 무색계의 선정인 무색정(無色定)의 고요히 사라진 안락을 받도록 가르치며,
만약 무색정(無色定)에도 마음을 내지 않으면 욕망을 여의고 색계(色界)의 여러가지 선정의 즐거움을 받도록 가르치며,
만약 색계의 선정(禪定)의 즐거움에도 마음을 내지 않으면 십선도(十善道)를 닦을 수 있게끔 가르쳐서 사람과 하늘에서 여러 가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니,
“莫自懈怠,空無所得,貧窮下賤,種種懃苦,甚爲可患!懈怠法者最爲弊惡。破壞今世、後世利益善道" 衆生聞已,集諸善法,懃行精進。
스스로가 게으르면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으며, 가난하고 하천하게 살면서 종종의 힘든 고통을 받게 될 것을 매우 근심하리니! 게으름은 가장 나쁜 몹쓸것이며 금세와 후세의 이익과 선도(善道)를 파괴하는 것이다”고 말하여 주면, 중생들이 듣고 나서 모든 선법(善法)을 쌓아 모으고자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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