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初品中 欲住六神通釋論 第四十三 卷二十八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43. 초품 중 육신통에 머무르고자 함[欲住六神通]의 뜻 을 풀이함 1
▶ 經.“菩薩摩訶薩 欲住六神通 當學般若波羅蜜!”
▷ 經. 보살마하살이 육신통(六神通)에 머무르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 論. 問曰; 如「讚菩薩品」中言 “諸菩薩皆得五神通” 今何以言 “欲住六神通”?
▷ 論. 묻나니, 찬보살품(讚菩薩品)에서 “모든 보살은 모두가 오신통(五神通)을 얻는다”고 하셨는데, 이제 무엇 때문에 “육신통(六神通)에 머무르고자 한다면”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오신통(五神通)=누진통(漏盡通)을 제외한 5신통을 말한다.
원하는 곳에 몸을 드러내는 신족통(神足通, ṛddhi-prātihārya)ㆍ미래를 보는 천안통(天眼通, divya-cakṣus )ㆍ범부가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 천이통(天耳通, divya-śrotra-abhijñā)ㆍ남의 마음을 읽는 타심통(他心通, parijaya-jñāna)ㆍ나와 남의 과거를 읽는 숙명통(宿命通, purvenivāsa-jñāna).
答曰; 五通是菩薩所得 今欲住六神通 是佛所得, 若菩薩得六神通 可如來難!
답하나니, 오신통은 바로 보살이 얻는 것이요 지금 “육신통에 머무르고자 한다면”이라고 한 것은 바로 부처님께서 얻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설령 보살이 육신통을 얻는다 하여도 여래와 같다고 하기에는 곤란한 것이다.
問曰; 「往生品」中說 “菩薩住六神通 至諸佛國”, 云何言 “菩薩皆得五通”?
묻나니, 왕생품(往生品)에서 “보살이 육신통에 머물러서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 이르른다”고 하셨는데 어찌하여 “보살은 모두가 오신통을 얻는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答曰; 第六漏盡神通 有二種, 一者漏 習俱盡, 二者 漏盡而習不盡。
習不盡 故言 “皆得五通”, 漏盡 故言“住六神通”。
답하나니, 여섯 번째의 번뇌가 다한 누진신통(漏盡神通)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번뇌의 누(漏)와 번뇌에서 베어나는 습기의 습(習)이 모두 다한 것이요,
둘째는 번뇌는 다하였으나 습기가 다하지 않은 습불진(習不盡)이기 때문에 “모두가 오신통을 얻는다”고 하는 것이며, 번뇌가 다한 누진(漏盡)이라면 “육신통에 머무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問曰; 若菩薩漏盡 云何復生?云何受生?
一切受生皆由愛相續故有 譬如米雖得良田 時澤 終不能生。
諸聖人愛糠已脫故 雖有有漏業生因緣 不應得生。糠 쌀 겨 강
묻나니, 만약 보살이 번뇌가 다한 누진(漏盡)이라면,
어찌하여 다시 태어나는 것이며?
어찌하여 다시 생을 받는 수생(受生)을 하는 것입니까?
일체의 생을 받는 것은 모두가 애욕(愛)이 상속되는 때문으로, 비유하자면, 좋은 볍씨를 좋은 논에 뿌렸을지라도 시(時)에 맞추어 물을 대어 주어 촉촉하게 하지 않으면 거둘 수 없게 되는 것과 같이,
모든 성인은 애욕의 껍질을 이미 벗겨 내었기 때문에 비록 유루(有漏)의 업으로 태어날 인연이 있다 하여도 태어날 수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答曰; 先已說, “菩薩入法位 住阿鞞跋致地 末後肉身盡 得法性生身"
雖斷諸煩惱 有煩惱習因緣故 受法性生身 非三界生也。
답하나니, 먼저 이미 “보살이 법위에 들어가면 아비발치의 지위에 머무르게 되며 마지막의 육신을 다하여 법의 성품으로 태어나는 법성생신(法性生身, 법성신)을 얻는다”고 말하였다.
비록 모든 번뇌가 끊어졌다 하여도 번뇌의 습기가 남아 있는 인연 때문에 법성생신을 받아 태어나되 삼계(三界)에서의 생(生)은 아닌 것이다.
問曰; 阿羅漢煩惱已盡 習亦未盡, 何以不生?
묻나니, 아라한도 번뇌를 이미 다하였지만 습기가 아직도 다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법성생신을 받아 태어나되 삼계(三界)에서의 생(生)을 받지 않게 태어나지 않는 것입니까?
答曰; 阿羅漢無大慈悲 無本誓願 度一切衆生, 又以實際作證 已離生死故。
답하나니, 아라한은 대자비(大慈悲)가 없어서 온갖 중생을 제도하려는 본원(誓願)이 없었으며, 또한 제법의 실상인 실제(實際)를 증득하여 밝히고는 생사(生死)를 이미 나고 여의었기 때문이며,
復次 先已答“有二種漏盡” 此中不說 菩薩得漏盡通, 自言, “欲得六神通者 當學般若波羅蜜" 六神通義 如後品中佛所說, 上「讚菩薩品」 亦已說菩薩五神通義。
또한 앞에서 이미 두 가지의 번뇌가 다한 누진(漏盡)이 있다고 대답한 중에서 보살이 “누진통(漏盡通)을 얻는다”고 말씀하지도 않았으며,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육신통을 얻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하셨으니,
육신통에 대한 뜻은 후품(後品)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으며, 앞의 보살품(菩薩品)에서도 찬탄하였고 또한 이미 보살의 오신통에 대한 뜻을 설명하였다.
問曰; 神通有何次第?
묻나니, 신통에는 어떠한 차례가 있는 것입니까?
答曰; 菩薩離五欲 得諸禪 有慈悲故 爲衆生取神通 現諸希有奇特之事 令衆生心淸淨。何以故?若無希有事 不能令多衆生得度。
답하나니, 보살이 5욕(欲)을 여의고 모든 선(禪)을 얻었으며, 자비가 있기 때문에 중생을 위하여 신통을 취하여 모든 희유하고 기특한 일을 나타내 보이어 중생들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나니, 왜냐하면 만일 희유한 일들이 없으면 많은 중생들을 제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菩薩摩訶薩作是念已 繫心身中虛空 滅麤重色相 常取空輕相 發大欲精進心 智慧籌量 心力能擧身未?籌量已 自知心力大能擧其身, 譬如學趠 常壞色麤重相 常修輕空相 是時便能飛。
보살마하살은 이러한 생각을 한 뒤에 마음과 몸을 허공에 매어 두고, 거칠고 무거운 물질의 모습을 소멸시키어서 항상 비고 가벼운 공경상(空輕相)을 취하나니,
크게 정진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지혜로 헤아릴 수 있는 마음의 힘을 지니게 되어 능히 몸을 들어 올릴 수 있게 되는 것이며, 아직 헤아리기 전에도 벌써 스스로 마음의 힘이 커지면서 그 몸을 들어 올릴 수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마치 뜀뛰기를 배울 때에는 항상 물질의 거칠거나 무거운 추중상(麤重相)을 무너뜨리면서 언제나 가볍고 텅 빈 경중상(輕空相)을 닦게 되면 곧 쉽게 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二者 亦能變化諸物 令地作水 水作地 風作火 火作風 如是諸大皆令轉易, 令金作瓦礫 瓦礫作金 如是諸物各能令化。
둘째는 역시 모든 물건을 변화시키는 것이니, 땅이 물이 되게 하고, 물을 땅이 되게 하며, 바람을 불이 되게 하고, 불을 바람이 되게 하는 것이라. 이와 같이 모든 사대(四大)를 바뀌게 하는 것이니, 금을 기와나 조약돌이 되게 하고, 기와나 조약돌을 금이 되게 하는 등의 모든 물건을 각각 바뀌게 하는 것이다.
變地爲水相 常修念水令多 不復憶念地相 是時地相如念卽作水。如是等諸物皆能變化。
땅이 변하여 물의 모양이 되게 함에 있어서는 항상 닦으면서 물을 생각하고 땅의 모양을 기억하지 않게 되면, 땅의 모양은 생각과 같이 곧 물이 되는 것이니, 이와 같이 모든 물건을 모두 변화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問曰; 若爾 與一切入有何等異?
묻나니, 만약 그러하다면 일체처에 들어가게 되는, 일체입(一切入)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答曰; 一切入是神通初道。先已一切入 背捨 勝處柔伏其心 然後易入神通。
답하나니, 일체입이란 바로 신통의 첫걸음이니, 먼저 이미 일체입으로 여덟가지 등지고 버려야 할 배사(背捨, 8배사)와 전도된 생각 등의 모든 번뇌의 적을 이겨내는 승처(勝處, 8승처)로 그 마음을 부드럽게 조복한 뒤에는 신통에 들어가기 쉬우니,
8배사(八背捨, 8가지 등지고 버리는 일), 8유무(八惟無, 8가지 꼭 [해야 할] 없애는 일), 8유무(八惟務, 8가지 꼭 해야 할 일)라고도 한다. 8해탈은;
①내유색상관외색해탈(內有色想觀外色解脫)
②내무색상관외색해탈(內無色想觀外色解脫)
③정해탈신작증구족주(淨解脫身作證具足住)
④공무변처해탈(空無邊處解脫)
⑤식무변처해탈(識無邊處解脫)
⑥무소유처해탈(無所有處解脫)
⑦비상비비상처해탈(非想非非想處解脫)
⑧멸수상정해탈(滅受想定解脫)
8해탈은 유루의 해탈로서, 처음의 3가지는 유루의 색계 선정인 4선에 해당하고, 다음 4가지는 유루의 무색계 선정인 4무색정에 해당하여, 마지막 1가지는 유루의 가장 뛰어난 선정인 멸진정에 해당한다.
즉, 8해탈은 유루의 선정인 4선 · 4무색정 · 멸진정을 통칭하는 낱말인 9차제정(九次第定)과 사실상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8해탈과 9차제정의 차이는 9차제정이 선정 그 자체라면 8해탈은 선정을 통해 벗어나는 것, 즉, 선정의 선한 작용이다.
한편, 8해탈의 첫 번째와 두 번째 해탈이 각각 둘로 세분되고 세 번째 해탈이 넷으로 세분되어, 처음의 3가지 해탈이 총 8가지로 나뉘는 것이 8승처(八勝處)이다.- 위키
復次 一切入中 一身自見地變爲水 餘人不見。神通則不然 自見實是水 他人亦見實水。
또한 일체입 중에서 그 한 몸은 땅이 변하여 물이 되는 것을 스스로 보나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지만, 신통은 곧 그렇지 않아서 자신이 실제로 물을 봄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도 역시 실제로 물을 보게 되는 것이다.
問曰; 一切入亦是大定 何以不能令 是實水己身 他人皆見?
묻나니, 일체입 또한 큰 정(定)인데 무엇 때문에 이것이 실제의 물임을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보게 할 수 없는 것입니까?
答曰; 一切入觀處 廣但能令一切是水相 而不能令實是水。神通不能遍一切 而能令地轉爲水 便是實水。以是故 二定力各別;
답하나니, 일체입은 관하는 처소가 광대하여 다만 일체의 것이 물의 모양이 되게 할 수 있을 뿐 실제로 그것이 물이 되게 할 수는 없지만, 신통은 온갖 것에 두루 하지 못하나 땅이 바뀌어 물이 되게 하면서 실제로 그것이 물이 되게 하나니, 이 때문에 일체입(一切入)과 신통(神通)의 두 정(定)의 힘을 각각 구별하는 것이다.
問曰; 二定變化事 爲實爲虛?若實 云何石作金 地作水?若虛 云何聖人 而行不實?
묻나니, 일체입(一切入)과 신통(神通)의 두 정(定)에 있어서 변화는 진실입니까? 거짓입니까?
만약 진실이라면 어떻게 돌이 금이 되고 땅이 물이 되며,
만약 거짓이라면 어떻게 성인이면서 진실하지 않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까?
答曰; 皆實 聖人無虛也 三毒已拔故。以一切法 各各無定相故 可轉地或作水相, 如酥 膠 蠟是地類 得火則消爲水 則成濕相。水得寒則結成冰 而爲堅相。石汁作金 金敗爲銅 或還爲石。酥 연유 소, 膠 갖풀 교, 화할 교,,蠟 밀 랍
답하나니, 모두가 진실이요 거짓됨이 없으니, 삼독(三毒)을 이미 뽑아내었기 때문이다.
일체법에는 고정된 상이 없는 무정상(無定相)이기 때문에 땅이 바뀌어 혹은 물의 모양이 될 수 있는 것이니, 마치 연유(蘇)와 아교(膠)와 밀랍(蠟, 양초)이 이 단단한 지대(地大)의 종류이나 불을 만나게 되면 녹아 물이 되어서 축축한 습상(濕相)이 되는 것과 같으며, 물이 추위를 만나면 얼음이 되면서 단단한 모양의 견상(堅相)으로 되고, 돌 속의 즙(汁)이 금이 되며, 금이 부서져서 동(銅)이 되거나 다시 돌이 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衆生亦如是 惡可爲善 善可爲惡。以是故 知一切法無定相故 用神通力變化 實而不誑, 若本各各定相 則不可變。
중생 역시 그와 같아서 악인이 선인이 될 수도 있고, 선인이 악인이 될 수도 있나니, 이 때문에 일체법은 무정상(無定相)이며, 그러므로 신통의 힘으로써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며, 이는 진실이요 거짓이 아니니,
만약 본래부터 각각 일정한 모양으로 정해져 있는 정상(定相)이라면 변화 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三者 諸賢聖神通 於六塵中 隨意自在 見好能生厭想 見醜能生樂想 亦能離好醜想行捨心。是名三種神通。此自在神通 唯佛具足。
셋째는 모든 성현들의 신통은 6진(塵) 가운데서 뜻을 따라 마음대로 자유로운 것으로, 좋은 것을 보면 싫은 생각을 낼 수도 있고 추한 것을 보고도 즐겁다는 생각을 낼 수도 있으며, 또한 곱거나 추하다는 생각을 여의고 버리는 마음의 사심(捨心)을 지을 수도 있으니, 이러함을 세 가지의 신통이라 하며 이 자재한 신통은 오직 부처님만이 두루 갖추신 것이다.
菩薩得是神通 遊諸佛國 於諸異國語言不同 及在遠微細衆生不聞故 求天耳通。常憶念種種多衆大聲 取相修行, 常修習故 耳得色界四大造淸淨色, 得已 便得遠聞 於天人音聲麤細 遠近 通達無㝵。
보살이 이러한 신통을 얻어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노닐 수 있게 되면, 여러 다른 나라의 언어가 같지 않고, 그리고 멀리 있으면 미세한 중생들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까닭에 천이통(天耳通)을 구하게 되나니,
항상 많은 대중들의 소리를 구하여 그 상(相)을 취하여 수행하며, 언제나 닦아 익히기 때문에 귀가 색계(色界)의 4대(大)로 만들어진 청정한 물질(色)을 얻게 되나니, 그것을 얻은 뒤에는 곧 거칠고 미세하고 멀고 가까운 하늘과 사람들의 음성을 멀리서도 들을 수 있게 되어 걸리고 막힘이 없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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