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初品中  大慈大悲義 第四十二 卷二十七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42. 초품 중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뜻을 풀이함 4

 

問曰; 般若波羅蜜 是菩薩第一道 一相 所謂無相, 何以說 是種種道?

묻나니, 반야바라밀이란 바로 보살의 으뜸가는 도(道)이고 일상(一相)이어서, 이른바 무상(無相)이거늘, 무엇 때문에 이렇게 갖가지의 도(道)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答曰; 是道皆入一道中 所謂諸法實相。初學有種種別 後皆同一 無有差別,

譬如劫盡燒時 一切所有 皆同虛空。

답하나니, 이러한 도(道)들 모두는 일도(一道)에 들어 가게 되는 것이니, 이른바 제법의 실상(實相)이라. 처음 배울 때에는 갖가지의 구별이 있지만 나중에는 모두가 동일하여 차별이 없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마치 겁(劫)이 다하여 불에 탈 때에는 온갖 존재하는 것 모두가 허공 속으로 다 사라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復次 爲引導衆生故 菩薩分別說是種種道, 所謂世閒道 出世閒道等。

또한 보살은 중생을 인도하기 위하여 분별하여서 이렇게 갖가지의 도를 말하는 것이니, 이른바 세간도(世閒道)와 출세간도(出世閒道)이다.

 

問曰; 云何菩薩 住一相無相中 而分別是世閒道 是出世閒道?

묻나니, 어찌하여 보살이 일상(一相)이요 무상(無相)인 가운데 머무르면서 “이것이 세간도(世閒道)이고, 이것은 출세간도(出世閒道)이라고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까?

 

答曰; 世閒名 但從顚倒憶想 虛誑二法生 如幻 如夢 如轉火輪. 凡夫人强以爲世閒, 是世閒 皆從虛妄中來 今亦虛妄本亦虛妄 其實無生無作 但從內外六情 六塵和合因緣生 隨凡夫所著故 爲說世閒, 是世閒種種邪見羅網 如亂系相著 常往來生死中。如是知世閒。

답하나니, 세간(世間)이라는 이름은 다만 뒤바뀌어 전도(顚倒)된 생각과 허망하고 거짓된 두 가지의 법에서 생기는 것이니, 그 실체가 없음이 마치 환(幻 māya)과 같고 마치 꿈과 같으며, 마치 불수레바퀴= 화륜(火輪)를 돌리는 것과 같으나,

범부는 억지로 세간이라 여기지만, 이 세간은 모두가 허망한 가운데서부터 있게 된 것이라. 지금도 역시 허망하고 본래도 역시 허망한 것이니, 

그것은 실로 낢이 없는 무생(無生)이며, 지음도 없는 무작(無作)이나, 다만 안과 밖의 육정(六情)과 육진(六塵, 안이비설신의)이 화합한 인연(因緣)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일 뿐인데, 범부가 집착하는 바를 따르는 까닭에 세간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세간이라는 갖가지 삿된 소견의 그물= 사견라망(邪見羅網, 인다라망)은 마치 실이 엉켜서 서로 달라붙은 것과 같아서, 항상 생사(生死) 가운데에서 왕래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것이 세간(世間)이라고 아는 것이다. 

 

何等是出世閒道?如實知世閒 卽是出世閒道。所以者何, 智者求世閒 出世閒 二事不可得, 若不可得 當知假名 爲世閒 出世閒。但爲破世閒故 說出世閒。

如實여실= 1. 사실과 꼭 같음 2.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뜻으로, 우주 만유의 본체인 평등하고 차별이 없는 절대의 진리를 이르는 말

어떠한 것이 출세간도(出世間道)인가! 세간을 여실(如實)히 아는 것이 곧 출세간의 도(道)이니,

왜냐하면, 지혜로운 이는 세간과 출세간을 구하여도 두 가지 모두를 얻을 수 없는 것임을 때문이다.

만약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임시로 붙인 가명(假名)으로서 세간ㆍ출세간이라 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으로, 다만 세간이라는 것을 깨뜨리기 위하여 출세간을 설명할 뿐인 것이다.

 

世閒相卽是出世閒 更無所復有。所以者何, 世閒相不可得 是出世閒,

是世閒相常空 世閒法定相不可得故。如是行者不得世閒 亦不著出世閒。

세간상(世閒相)이 바로 출세간(出世閒)이며, 더 더욱 어디에도 있는 것이 아니니, 왜냐하면, 세간이라는 세간상(世閒相)을 얻을 수 없는 것이 출세간이요, 이 세간상은 항상 공한 것으로, 세간법의 정해진 상(相)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 이와 같이 수행하는 이는 세간을 얻지 않으며(분별하지 않으며) 또한 출세간에 집착하지 않는다.

 

若不得世閒 亦不著出世閒 愛慢破故 不共世閒諍。

何以故, 行者知世閒空 無所有 虛誑故 不作憶想分別。

만약 세간을 얻고자 하지 않고(분별하지 않고) 또한 출세간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애(愛)와 만(慢)이 파괴되기 때문에 세간과 함께 다투지 않게 되나니,

왜냐하면 수행하는 이는 오래전에 세간이란 공한 것이라서 무소유(無所有)이고 허망하게 거짓된 것임을 알고 있으므로 생각하여 분별을 짓지 않기 때문이다.

 

世閒名五衆 五衆相 假令十方諸佛求之亦不可得, 無來處 無住處 亦無去處。

若不得五衆 來住去相 卽是出世閒。

세간을 5중(衆, 오온)이라 하는데, 오중의 상(相)이란, 가령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그것을 구하신다 하여도 역시 얻을 수 없는 것이며, 오는 곳도 없고, 머무르는 곳도 없으며, 또한 가는 곳도 없는 것이다.

만약 오중의 오고 머무르고 가는 상(相)을 얻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출세간이다.(세간을 벗어나는 것이다)

 

行者爾時觀是世閒 出世閒 實不可見, 不見世閒與出世閒合 亦不見出世閒與世閒合,

離世閒亦不見出世閒 離出世閒亦不見世閒。如是則不生二識 所謂世閒 出世閒。

若捨世閒 不受出世閒 是名出世閒。

수행하는 이는 그 때에 이 세간과 출세간을 관찰하나 실로 볼 수가 없나니, 세간이 출세간과 합하는 것도 볼 수 없고, 또한 출세간이 세간과 합하는 것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세간을 여의고서는 출세간 역시도 볼 수 없고, 출세간을 여의고서는 세간 또한 볼 수 없는 것이라.

이러함이 (분별하지 않음이) 바로 두 가지의 알음알이= 이식(二識), 즉 세간과 출세간이 생기지 않는 것이니,

만약 세간을 버리고도 출세간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면, 이것을 출세간(出世間)이라 하는 것이다.

 

若菩薩能如是知 則能爲衆生 分別世閒出世閒道 有漏無漏 一切諸道 亦如是入一相 是名“道種慧”。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능히 여실히 알게 되면 곧 중생을 위하여 세간과 출세간의 도(道)를 분별할 수 있게 되나니, 유루(有漏)ㆍ무루(無漏)의 온갖 길들 역시 이와 같은 것으로, 일상(一相)에 들어가는 것이라.

이러함을 도종혜(道種慧, 도종지)라 하는 것이다.

 

▶經. “欲以道種慧具足一切智 當習行般若波羅蜜!

欲以一切智具足一切種智 當習行般若波羅蜜!”

▷ 經. 도종혜(道種慧)로써 일체지(一切智)를 구족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익히고 행하여야 하며,

일체지로써 일체종지(一切種智)를 구족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익히고 행하여야 한다.

 

▶ 論. 問曰; 一切智 一切種智, 有何差別?

▷論. 묻나니, 일체지(一切智)와 일체종지(一切種智)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 것입니까?

 

答曰; 有人言, 無差別, 或時言一切智, 或時言一切種智。

有人言, 摠相是一切智 別相是一切種智。因是一切智 果是一切種智。

略說一切智 廣說一切種智。

답하나니,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차별이 없는 것이니, 때로는 일체지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일체종지라 하기도 한다”고 하며,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전체의 총상(總相)이 바로 일체지요, 개별적인 별상(別相)이 바로 일체종지이며,

직접적인 인(因)이 바로 일체지요 결과의 과(果)가 바로 일체종지이니, 간략하게 설하면 일체지요 자세히 설하면 일체종지이다”라고 하며, 

 

一切智者 摠破一切法中無明闇, 一切種智者 觀種種法門破諸無明。

일체지(一切智)라 함이란, 일체법 중의 무명(無明)의 어두움을 모두 깨뜨리는 것이고,

일체종지(一切種智)라 함이란, 갖가지의 법문(法門)을 관하여서 일체의 무명을 깨뜨리는 것이다.

 

무명(無明) 또는 치(癡, avidyā, moha, mūdha, ignorance, delusion)=  무명은 무지를 뜻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는 일체 사물에 대한 도리를 밝게 알지 못한다는 뜻이나 진리에 대한 무지로 통용되고 있다.
12연기(緣起)의 첫머리에 나오는 무명은 ‘나’가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요 ‘나’를 범부이게끔 하는 근원이며, 모든 번뇌의 근본이요 일체 악업(惡業)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 '본업경 本業經'에서는 “무명은 일체법(一切法)을 밝게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고,

'대승의장 大乘義章'에서는 “진리를 요달하지 못하는 것을 무명이라고 한다. 무명은 어리석고 어두운 마음이다. 그 본체에는 지혜도 밝음도 없다.”고 하였다.
'구사론'에서는 “무명의 모습은 사제(四諦)와 삼보(三寶) 및 업(業)의 원인과 결과를 모르는 데 있다.”고 하였으며,

'유식론 唯識論'에서는 “무명은 모든 사물과 이치에 대하여 미혹되고 어리석은 것을 본성으로 삼고, 능히 지혜를 결박하여 일체를 잡되고 물들게 하는 것으로서 그 업을 삼는다.”고 하였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이 채택하고 있는 것은 '기신론 起信論'의 무명에 대한 해설이며,
'기신론'에서는 무명을 두 가지로 나누었는데,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최초의 한 생각을 근본 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그 근본 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게 또는 거칠게 일어나는 모든 허망한 생각들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고 하였다.
무명은 인간의 괴로움을 설명하는 근본 교설로 채택되었고, 2종무명·5종무명·15종무명 등으로 무명을 세분하여 해석하였다.
그러나 석가모니 당시부터 무명은 원래 실체가 없는 것으로 설명되었고, 선종에서는 독자적인 개체로서가 아니라 세계의 본성을 뜻하는 법성(法性)과의 일체로 파악되었다.
무명법성일체설에서 볼 때 법성과 무명은 마치 얼음과 물의 관계와 같다. 무명이라는 얼음의 본성은 원래가 물이다. 얼음이라고 하지만 물의 성품을 벗어 버리지 못한다. 사람의 심성은 본래 얼음이 아니나 법성의 물이 얼어서 얼음이 된 것일 뿐, 어느덧 홀연히 생겨난 무명은 곧 근본 깨달음인 본각(本覺)의 법성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이 무명법성일체설은 우리 나라 선종에서도 뿌리를 내려 무심선(無心禪)을 정립하기에 이르렀고, 번뇌와 고통을 피하려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생활하라는 실천적 규범을 낳기도 하였다.
신라의 원효(元曉)는 '대승기신론소'에서 일심(一心)을 설명하면서, 일심 이외에 별다른 법이 없으나 무명으로 말미암아 일심을 미하게 되어 갖가지 번뇌를 일으키고 육도(六道)를 윤회하게 된다고 하였다.
원효는 이 무명을 잠재적인 충동력이라고 보았다. 곧 이 충동력 때문에 어리석은 마음이 동요하게 되지만, 무명 자체는 아직 주관과 객관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라고 하였다. 즉, 무명은 일심을 동요하게 하는 원초적인 힘으로 파악하였고, 이 무명의 충동력이 계속해서 일심의 바다에 물결을 일으키게 될 때 고통스러운 결과를 낳게 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무명은 모든 고통스러운 결과의 가장 원초적인 원인이 되며, 이 무명을 없앨 때 일심의 원천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다움

 

一切智 譬如說四諦, 一切種智 譬如說四諦義。

일체지라 함이란 사제(四諦)를 비유하여 말하는 것과 같고

일체종지라 함은 사제(四諦)의 뜻을 말하는 것과 같으며,

 

一切智者 如說苦諦, 一切種智者 如說八苦相。

일체지라 함은 고제(苦諦)를 말하는 것과 같고

일체종지라 함은 여덟 가지 고통인 팔고(八苦, 생노병사, 애별리고, 원증회고, 구불득고, 오음성고)의 상(相)을 말하는 것과 같으며,

 

一切智者 如說生苦, 一切種智者 如說種種衆生處處受生。

일체지라 함은 마치 낢의 괴로움인 생고(生苦)를 말하는 것과 같고

일체종지라 함은 갖가지의 중생들이 곳곳에서 생을 받아 태어 나는 수생(受生)을 말하는 것과 같으며, 

 

復次, 一切法名眼色 乃至意法 是諸阿羅漢 辟支佛 亦能摠相 知無常苦空無我等,

知是十二入故 名爲一切智。

또한 일체법(一切法)은 눈으로 보는 색경(色境)에서 알게 되는 의법(意法)에 이르기까지를 말하며,

모든 아라한과 벽지불은 역시 전체의 상인 총상(總相)을 이해하여 무상(無常) 고(苦) 공(空) 무아(無我)임을 아나니, 이러한 십이입(十二入)을 알기 때문에 일체지라 한다.

 

십이입(十二入, 십이처十二處, dvādaśāyatana)= 『구사론』에 따르면 '처(處, āyatana)'는 마음[心]과 심리현상[心所]이 생겨나는 문 또는 마음과 심리현상을 발생·성장시켜 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십이처는 고정불변의 인식 주체를 대신하여 실질적으로 인간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12 영역을 의미한다.

『구사론』에서는 십이처의 가르침이란 붓다가 물질 현상[色]을 불변의 자아[我]로 착각하는 부류의 중생을 위해 설한 것이라 보기도 한다. 즉 십이처는 우리의 자아의식을 오근(五根: 눈·귀· 코·혀·몸 등의 5가지 인식능력)과 오경(五境: 오근 각각에 대응하는 색깔[형태], 소리, 냄새, 맛, 감촉 등의 5가지 인식대상)의 10종류의 물질현상으로 해체하는데 초점이 있다.
우리의 인식을 구성하는 영역은 우선 인식능력인 근(根, indriya)과 그것의 작용대상인 경(境, viṣaya)으로 대별된다. 근에는 시각능력인 눈[眼], 청각능력인 귀[耳], 후각능력인 코[鼻], 미각능력인 혀[舌], 촉각능력인 몸[身] 등의 오근에 사유능력[意, manas]을 더한 6종류, 즉 육근(六根)이 있다. 경 역시 육근 각각에 대응하여 눈의 작용대상인 색깔·형태[色], 귀의 작용대상인 소리[聲], 코의 작용대상인 냄새[香], 혀의 작용대상인 맛[味], 몸의 작용대상인 감촉[觸]의 오경에 사유대상[法, dharma]을 더한 6종류, 즉 육경(六境)이 있다.
『구사론』은 이상의 6가지 인식능력과 그 각각에 대응하는 6가지 인식대상 각각의 결합[觸]을 통해 시각[眼識], 청각[耳識], 후각[鼻識], 미각[舌識], 촉각[身識], 사유[意識] 등 6종류의 인식, 즉 육식(六識)이 매 찰나(刹那) 생겨날 뿐임을 지적하였다. 이리하여 십이처의 설법이 불변의 인식주체를 부정하는 무아설과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다움

 

聲聞 辟支佛 不能盡別相 知一衆生生處好醜 事業多少, 未來現在世亦如是 何況一切衆生

성문이나 벽지불조차도 오히려 일체법의 개별적인 별상(別相)인, 한 중생의 태어나는 곳과 곱고 추함과 업의 많고 적음을 알지 못하며, 미래와 현세 역시 그와 같이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일체 중생들이겠는가! 

 

如一閻浮提中金名字 不能知 何況三千大千世界 於一物中種種名字.

若天語 若龍語 如是等 種種語言名金 不能知 何況能知 金因緣生處 好惡 貴賤。

마치 한 염부제(閻浮提) 안의 금(金)이라는 말과 글자조차도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삼천대천세계의 하나의 물건의 갖가지 이름에 대해서나, 또는 하늘의 말이나 용의 말 등의 갖가지의 말이겠는가!

금이라고 부르는 것조차도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금에 대한 인연과 나는 곳과 좋은 점과 나쁜 점과 귀하고 천함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因而得福 因而得罪 因而得道. 如是現事不能知 何況心心數法 所謂禪定 智慧等諸法.

佛盡知諸法 摠相別相故 名爲一切種智。

그 금으로로 인하여 복을 얻기도 하고, 그로 인하여 죄를 짓기도 하며, 그로 인하여 도를 얻기도 한다는 이러한 현재의 일조차도 오히려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마음(心)과 그 마음에 속한 심수법(心數法), 즉 선정과 지혜 등의 제법이겠는가!

부처님께서는 제법의 총상(總相)과 별상(別相)을 모두 다 아시기 때문에 일체종지(一切種智)라 하는 것이니, 

 

復次 後品中佛自說, “一切智是聲聞 辟支佛事 道智是諸菩薩事 一切種智是佛事"

聲聞 辟支佛 但有摠一切智 無有一切種智。

또한 후품(後品)에서 부처님께서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일체지는 바로 성문과 벽지불의 것이요, 도지(道智, 번뇌가 없는 지혜)는 바로 모든 보살들의 것이며, 일체종지(一切種智)는 바로 부처님의 것이다”고 하셨으니,

성문이나 벽지불은 다만 총상(總相)으로서의 일체지가 있을 뿐, 일체종지는 없으며, 

 

復次 聲聞 辟支佛 雖於別相 有分而不能盡知 故摠相受名, 佛一切智 一切種智 皆是眞實。聲聞 辟支佛 但有名字一切智, 譬如晝燈 但有燈名 無有燈用。

또한 성문이나 벽지불은 비록 별상(別相)을 안다하여도 그 앎에 한계가 있어서 모두를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전체의 총상(總相)으로 받아 들이게 되나,

부처님의 일체지와 일체종지는 모두가 진실한 것이며,

성문이나 벽지불에게는 다만 이름이 있을 뿐이니, 성문의 일체지를 비유하자면 마치 낮에 켠 등불과도 같아서 이름만 있을 뿐 그 등불의 효능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如聲聞 辟支佛 若有人問難 或時不能悉答 不能斷疑, 如佛三問舍利弗 而不能答。

若有一切智 云何不能答?以是故 但有一切智名 勝於凡夫 無有實也。

성문이나 벽지불에게 만약 어떤 사람이 어려운 질문을 하게 되면 때로는 모두 대답하지 못하여 의심을 끊어 줄 수 없기도 하나니, 마치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세 번을 물었는데도 대답하지 못한 것과 같은 것이다.

만약 일체지가 있다면 어찌하여 대답하지 못하겠는가!

그러므로 다만 일체지라는 이름만이 있을 뿐인 것이라. 범부보다는 우승하나 실하지 못한 것이다.

 

是中云何學人(시중운하학인)? 云何數法人(운하수법인)? 爾時 舍利弗默然(이시 사리불묵연)

부처님께서 사리불 존자에 '무엇이 학인이고 무엇이 수법인인가?'라고 세 번을 물으셨지만, 사리불은 침묵하고 있었다.- 대지도론(大智度論) 제3권 17

 

是故佛是實一切智 一切種智。有如是無量名字 或時名佛爲一切智人, 或時名爲一切種智人。如是等略說一切智 一切種智種種差別。

이러한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바로 진실한 일체지(一切智)요 일체종지(一切種智)이시니,

이에 대한 무량한 이름이 있으니, 때로는 부처님을 일컬어 일체지를 지닌 일체지인(一切智人)이라고 하며, 때로는 일체종지를 지닌 일체종지인(一切種智人)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등으로 일체지(一切智)와 일체종지(一切種智)의 갖가지 차별을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