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初品中 般若波羅蜜 第二十九 卷第十八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30. 초품 중 반야(般若)의 모습[相]과 뜻[義]을 풀이함 9
問曰, 一切世俗經書 及九十六種出家經中 皆說有諸法實相,
又聲聞法三藏中 亦有諸法實相, 何以不名 爲般若波羅蜜?
而此經中 諸法實相 獨名般若波羅蜜?
묻나니, 일체 세속의 경서(經書)와 96종의 출가 외도인의 경서에서도 제법의 실상(實相)을 모두 설하고 있으며,
성문법의 삼장(三藏)에서도 제법의 실상을 설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그러한 것들을 반야바라밀이라 하지 않고,
이 경(반야바라밀다경)에서 말하는 제법의 실상만을 반야바라밀이라 하는 것입니까?
又聲聞法三藏(성문법삼장)= 성문장의 다른 말은 소승삼장(小乘三藏)으로 부파 논사들의 논서나 주석서보다는 <아함경>이나 <니까야>와 같은 초기경전에 나타난 불설(佛說) 자체를 의미하는 용어이다.
대승경전을 마하연장(摩訶衍藏, Mahayana-pit.aka)이라 한다. 그리고 보살장(菩薩藏:Bodhisattva-pit.aka), 또는 방등경(方等經:Vaipulya sutra)이라고도 한다. 보살장(菩薩藏)이란 대승불교의 교리를 설명한 것이며, 성문장(聲聞藏)이란 소승불교의 교리를 설명한 것이다. 아래는 <불설미증유정법경(佛說未曾有正法經)>에 설해진 내용이다.
“대사(大士-덕망 높은 승려)들은 마땅히 보살장 법문을 충분히 알아야 한다. 단 하나의 법도 이 보살장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없다. 모든 세간의 법과 출세간의 법,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 선법(善法)과 불선법(不善法), 유상법(有相法)과 무상법(無相法), 유루법(有漏法)과 무루법(無漏法) 등이 모두 보살장이기 때문이다. 모든 범부법(凡夫法) ․ 성문법 ․ 연각법, 나아가 모든 불법이 역시 보살장의 관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성문승 ․ 연각승 ․ 모든 불승들이 다 동일하기 때문이니, 비유컨대 이는 마치 큰 나무의 줄기와 가지와 무성한 잎들이 모두 같은 한 그루의 나무인 것과 같다. 보살장(菩薩藏)이 근본이 돼 3승법(乘法)을 낳았지만, 다름이 없고 구별이 없으며, 그 양이 광대해서 가히 헤아릴 수가 없으니, 비유컨대 마치 큰 바다와 같다.-아미산
答曰, 世俗經書中 爲安國全家 身命壽樂故非實。
답하나니, 세속의 경서(經書)는 나라를 평안하게 다스리고 집안을 온전하게 하는 법(가르침)이며, 몸과 목숨을 장수하고 즐겁게 하려는 것이므로 진실하지 않은 것이요,
外道出家 墮邪見法中 心愛著故 是亦非實。
외도(外道)의 출가자들은 삿된 소견에 떨어져서 마음으로 애착하는 까닭에 이것 또한 진실한 것이 아니요,
聲聞法中 雖有四諦 以無常苦空無我 觀諸法實相 以智慧 不具足不利
不能爲一切衆生 不爲得佛法故 雖有實智慧 不名般若波羅蜜。
성문의 법에는 비록 사제(四諦)가 있어 무상(無常) 고(苦) 공(空) 무아(無我)로 제법을 관하나, 지혜가 갖추어지지 못하고 이롭지 못하여 일체 중생을 위하지 못하는 것이며, 불법(佛法)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비록 실제의 지혜가 있으나 반야바라밀이라 하지 못하나니,
如說, '佛入出諸三昧 舍利弗等 乃至不聞其名 何況能知!'
何以故, 諸阿羅漢 辟支佛 初發心時, 無大願 無大慈大悲, 不求一切諸功德, 不供養 一切三世十方佛, 不審諦求 知諸法實相, 但欲求脫 老病死苦故。
전하는 말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들고나시는 모든 삼매는 사리불 등도 그 이름조차 듣지 못하였다고 하거늘, 하물며 어찌 능히 알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모든 아라한과 벽지불들이 처음 불도(佛道)를 구하겠다고 마음을 일으켰을 때 큰 서원이 없었으며, 대자대비도 없었으며, 일체의 모든 공덕을 구하고자 하지도 않았으며, 삼세와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지도 않았으며, 제일의제(第一義諦)를 자세히 살피지도 않았으며, 오직 생ㆍ노ㆍ병ㆍ사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만을 구하였기 때문이니라.
諸菩薩 從初發心 弘大誓願 有大慈悲 求一切諸功德 供養一切三世十方諸佛 有大利智 求諸法實相。
除種種諸觀 所謂 淨觀 不淨觀 常觀 無常觀 樂觀 苦觀 空觀 實觀 我觀 無我觀。
捨如是等 妄見心力諸觀
보살은 처음 발심할 때부터 큰 서원을 세웠으며,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일체 공덕을 구하려 하였으며, 삼세와 시방의 일체 부처님께 공양하였으며, 매우 날카로운 지혜= 大利智(대리지)가 있어 제법의 실상을 구하였으며,
갖가지의 모든 관(觀)을 여의나니, 즉 백골관의 淨觀(정관)ㆍ시체를 관하는 不淨觀(부정관)ㆍ여여함을 관하는 常觀(상관)ㆍ제법은 변하고 또 변하는 것임을 관하는 無常觀(무상관)ㆍ낙관(樂觀)ㆍ고관(苦觀)ㆍ공함을 관하는 空觀(공관)ㆍ제법의 있는 그대로를 관하는 實觀(실관)ㆍ아관(我觀)ㆍ무아관(無我觀) 등과 같은 것을 버렸으며, 삿된 견해=妄見(망견)을 모두 버렸으며,
但觀外緣中實相 非淨 非不淨 非常 非非常 非樂 非苦 非空 非實 非我 非無我。如是等 諸觀 不著不得, 世俗法故 非第一義 周遍淸淨 不破不壞 諸聖人行處 是名般若波羅蜜。
다만 육경(六境)= 外緣(외연) 가운데서 실상을 관하나니, 깨끗함도 더러움도 아니요, 항상함도 무상함도 아니요,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니요, 공(空)함도 진실함도 아니요, 나 있음도 나 없음도 아니라고 하는 등의 이러한 모든 관에 집착하지도 않으니 얻는 바도 없으며, 세속의 법이기 때문에 제일의(第一義, paramārtha)가 아닌 것이며,
주변(周邊)을 청정(淸淨)하게 하여 여러 성인들의 수행하는 바를 깨뜨리지도 않고 무너뜨리지도 않는 것이 반야바라밀이니라.
問曰, 已知般若體相 是無相無得法 行者 云何能得是法?
묻나니, 반야의 본체의 상(相)이 無相(무상)이며, 얻을 수 없는 법(法)임은 이미 알았으나, 어떻게 수행자가 이러한 법(法)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까?
答曰, 佛以方便說法 行者如所說行則得。譬如絕崖嶮道 假梯能上, 又如深水 因船得渡。梯 사다리 제
답하나니, 부처님께서 방편으로 법(가르침)을 말씀하셨으니, 수행자는 말씀하신대로 행하면 증득할 수 있으니, 비유하자면, 가파른 벼랑= 絕崖(절애)의 험한 길을 사다리를 의지하여 오르는 것과 같으며, 또한 깊은 물은 배를 의지하여 건너는 것과 같으니라.
初發心菩薩 若從佛聞 若從弟子聞 若於經中聞 一切法畢竟空 無有決定性 可取可著 第一實法 滅諸戲論。
일체 중생을 구제하고자 처음 발심한 初發心(초발심) 보살이 혹은 부처님께 들었거나 혹은 제자들로부터 들었거나 혹은 경전을 통하여 '일체법(一切法)은 필경(畢竟)에는 공(空)한 것이며, 결정된 성품이 있어서 가히 취할 수 있거나 집착할 것이 없는, 제일의(第一義)라는 진실한 법(法)은 모든 희론을 멸한 것임을 알며,
涅槃相是 最安隱 我欲度脫一切衆生 云何獨取涅槃! 我今福德 智慧 神通力 未具足故 不能引導衆生 當具足是諸因緣 行布施等五波羅蜜, 財施因緣故得大富 法施因緣故得大智慧, 能以此二施 引導貧窮衆生 令入三乘道。
열반의 모습이란 가장 편안하고 안은한 것일지라도 나는 일체중생을 제도하여 건지고자 하거늘 어찌 혼자서 열반을 취할 수 있으랴!
나는 현재 아직 복덕과 지혜와 신통의 힘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중생을 인도하지 못하나, 그러한 모든 인연들을 마땅히 구족하리라' 하고는 보시를 비롯한 다섯 가지 바라밀을 행하나니,
재물보시= 財施(재시)의 인연으로 큰 부자가 되고, 법보시= 法施(법시)의 인연으로 큰 지혜를 얻게 되나니, 이러한 財施(재시)와 法施(법시)의 두 가지 보시로 빈궁한 중생들을 인도하여 능히 삼승(三乘)의 도(道)에 들게 하며,
以持戒因緣故 生人天尊貴 自脫三惡道 亦令衆生免三惡道。
계를 받아 지닌 持戒(지계)의 인연으로 인간이나 하늘의 존귀한 몸으로 태어나서 스스로도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三惡道)를 벗어나고 중생들 또한 삼악도를 면하게 하며,
以忍辱因緣故 障瞋恚毒 得身色端政 威德第一 見者歡喜 敬信心伏 況復說法!
인욕의 인연으로 성냄의 독을 막으며, 몸매= 身色(신색)이 단정하며, 위덕이 으뜸이라 보기만 하여도 기뻐하며, 공경히 믿는 마음으로 조복하거늘, 하물며 법을 설하여주나니 어찌 승복하지 않으리!
以精進因緣故 能破今世後世福德 道法懈怠 得金剛身 不動心, 以是身心 破凡夫憍慢 令得涅槃。
정진의 인연으로 금세와 후세의 복덕과 도법을 방해하는 게으름을 능히 깨뜨리어 금강(金剛)과 같은 몸과 不動(부동)의 마음을 얻으며, 이러한 몸과 마음으로 범부의 교만을 깨뜨리고 열반을 얻게 하며,
以禪定因緣故 破散亂心 離五欲罪樂 能爲衆生 說離欲法。
禪是般若波羅蜜依止處 依是禪 般若波羅蜜自然而生。
如經中說, '比丘一心專定 能觀諸法實相'
선정(禪定)의 인연으로 산란한 마음을 깨뜨리게 되어 오욕(五欲)을 즐기려는 죄업(罪業)을 여의게 되며, 능히 중생을 위하여 오욕(五欲)을 여읠 수 있는 법을 설하여 주나니,
선정(禪定)은 반야바라밀이 의지하는 곳이니, 이 선정에 의지하면 반야바라밀이 스스로 생겨나나니,
마치 경에서 '비구가 일심으로 선정(禪定)에 들어 전일하면 능히 제법의 실상을 관할 수 있다'고 설한 바와 같으니라.
復次 知欲界中 多以慳貪罪業 閉諸善門, 行檀波羅蜜時 破是二事 開諸善門。
欲令常開故 行十善道 尸羅波羅蜜。
또한 욕계에서는 흔히 아끼고 탐내는 慳貪(간탐)의 죄업 때문에 모든 선행의 문이 닫히게 되는 것임을 아나니,
이는 단(檀, 보시)바라밀을 행할 때에 이러한 아끼고 탐내는 두 가지의 일을 깨뜨리고 모든 선행의 문을 열수 있게 되며,
선행의 문이 항상 열려있게 하고자 10선도(十善道)의 시라(尸羅, 지계)바라밀을 행하며,
未得禪定 智慧 未離欲故 破尸羅波羅蜜 以是故行忍辱。知上三事 能開福門。
아직 선정(禪定)의 지혜를 얻지 못하였기에 애욕을 여의지 못하여 시라바라밀(지계바라밀)을 깨뜨리게 되는 까닭에 인욕(忍辱)을 행하나니,
위의 보시, 지계, 인욕의 세 가지를 통한 복덕으로 능히 불도(佛道)가 열리게 되어 열반문에 이르게 되는 것임을 알며,
又知 是福德果報無常 天人中受樂 還復墮苦, 厭是無常福德故 求實相般若波羅蜜。
是云何當得? 必以一心 乃當可得。如貫龍王寶珠 一心觀察 能不觸龍 則得價直閻浮提。
一心禪定 除卻五欲 五蓋 欲得心樂 大用精進 是故次忍辱 說精進波羅蜜。
또한 이러한 복덕의 과보는 무상(無常)한 것이라 인간과 하늘에서 쾌락을 받다가 다시 괴로움에 떨어진다는 것도 알며,
이러한 무상한 복덕을 싫어하는 까닭에 반야바라밀을 통하여 제법의 실상(實相)을 구하나니,
어떻게하여야 이를 얻을 수 있는 것인가?
반드시 일심(一心)으로 하여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니,
마치 용왕(龍王)의 보배 구슬을 꿰어 얻고자 한다면, 일심으로 용을 관찰하여 건드리지 않으면 염부제에서 비할 바가 없는 값진 보배를 얻을 수 있는 것과 같으니,
일심(一心)으로 선정(禪定)을 익혀서 오욕(五欲)과 오개(五蓋)를 제하고 마음의 즐거움을 얻기 위하여 크나큰 정진을 하여야 하나니,
이러한 까닭에 인욕(忍辱)바라밀 다음에 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을 설하는 것이며,
如經中說, '行者端身直坐 繫念在前 專精求定, 正使肌骨枯朽 終不懈退' 是故精進修禪。
경에서 설한 바와 같으니, '수행자가 몸을 단정히 하고 곧게 앉아서 생멸을 거듭하는 생각을 눈앞에 매어두고 전일하게 선정을 구하되 설사 살과 뼈가 마르고(枯고) 썩을(朽후)지라도 끝내 게으르거나 물러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까닭에 정진(精進)을 통하여 선정(禪定)을 닦는 것이니라.
若有財而施 不足爲難, 畏墮惡道 恐失好名 持戒 忍辱亦不爲難. 以是故 上三度中 不說精進。
今爲般若波羅蜜實相 從心求定 是事難故 應須精進。如是行 能得般若波羅蜜。
만약 재물이 있어 보시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며,
또한 惡道(악도)에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 하여서나, 명예를 잃을까 두려워 하여 계를 지키거나 인욕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위의 보시 지계 인욕의 세 바라밀을 말하였으나 정진바라밀을 말하지 않았으니,
지금은 반야바라밀의 실상을 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반드시 정진이 필요한 것이므로 모름지기(須) 응하여(應) 정진을 닦아야 하나니, 이와 같이 수행하면 능히 반야바라밀을 얻을 수 있느니라.
'대지도론(大智度論)'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9권 1 (0) | 2023.12.28 |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8권 11 (1) | 2023.12.27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8권 9 (1) | 2023.12.25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8권 8 (1) | 2023.12.24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8권 7 (0) | 2023.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