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初品中 檀波羅蜜 法施之餘’ 卷第十二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임 경량 엮음 참조
20. 초품 중 단바라밀의 법시(法施)의 나머지를 풀이함② 7
問曰, 何以識無我?
一切人 各於自身中生計我 不於他身中生我,
若自身中無我 而妄見爲我者, 他身中無我 亦應於他身 而妄見爲我。
묻나니, 어떻게 '나'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까?
모든 사람은 제각각 스스로의 몸에서 '나'라는 실상이 있다고 헤아리나,
다른 이의 몸에 '나'가 있다는 생각을 내지 않나니,
만약 자신의 몸에 '나'가 없으나, 망령된 견해로 '나'라 여기는 것이라면,
타인의 몸에 '나'가 없다고 하는 것 역시도 妄見(망견)=헛되이 보는 견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復次 若內無我 色 識念念生滅, 云何分別知 是色 靑黃赤白?
또한, 만일 6입(六入)의 그 어디에도 '나'가 없으나 색과 의식이 생각생각 사이에 생멸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빛이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흰 것을 분별해 알수 있는 것입니까?
復次 若無我 今現在人識 漸漸生滅 身命斷時亦盡 諸行罪福 誰隨誰受?
誰受苦樂? 誰解脫者? 如是種種因緣故 知有我。
또한, 만약 '나'라는 실체가 없는 것이라면, 지금 살아있는 사람의 의식이 점점 생멸을 거듭하다가 목숨이 다할 때에 역시 다하게 될것이니, 그렇다면 모든 행위의 죄와 복은 누구를 따르는 것이며 누가 받는 것입니까?
누가 괴로움을 받으며? 누가 즐거움을 받으며? 누가 해탈을 얻는 것입니까?
이러한 갖가지 인연에 때문에 '나'가 있음을 알수 있는 것입니다.
答曰, 此俱有難! 若於他身生計我者 復當言, '何以不自身中生計我'?
답하나니, 여기에는 양쪽 모두에 모순(어려움)이 있는 물음이라.
만약 타인의 몸에 대하여 '나'라는 계교를 낸다면 마땅히 '어찌하여 스스로의 몸에 대하여 '나'라는 계교를 내지 않는가'라고 뒤집어 말해야 하리라.
復次 五衆因緣生故 空無我, 從無明因緣 生二十身見, 是我見自於五陰相續生。
以從此五衆緣生故 卽計此五衆爲我 不在他身 以其習故。
또한 5중(衆, 오온)의 인연화합으로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공하여 '나'가 없거니와
(전생의 번뇌인) 무명의 인연으로 스무 가지 신견(身見)이 생기게 됨에 '나'라는 아견(我見)이라 하는 것으로, 원래는 5음(陰, 오온)을 따라 상속되어 (생각에 의해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렇게 5음(오온)의 인연에서 생겼난 것이기 때문에 곧 이 5음(오온)을 나라고 계교하게 되나니, 타인의 몸에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은 (무의식으로 갈무리된 버릇과 기억에서 비롯된) 습관 때문이니라.
신견(身見)= 오온(五蘊)이 일시적으로 화합한 신체를 영원히 존재하는 주체인 ‘나’로 생각하고, ‘나’에 따른 모든 것을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것.
견(見, dṛṣṭi, darśana, view)= 심려(審慮: 심사숙고)하고 결탁(決度: 확인 판단)하는 것, 또는 심려와 결탁을 통해 형성된 견해(見解: 일반 사전적인 뜻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자기의 의견이나 생각), 의견(意見), 주장(主張)을 말한다.
즉, 견(見)의 본질적 성질은 심려(審慮: 심사숙고)와 결탁(決度: 확인 판단)이며, 음역하여 날라사낭(捺喇捨囊) 또는 달리슬치(達利瑟致)라고도 한다.
부파불교와 대승불교 모두 견(見)이 혜(慧), 즉 반야(般若) 또는 지혜(智慧), 즉 판단작용 또는 식별력의 일종이라고 본다. 견(見)은 바른 견해나 주장인 정견(正見)과 진리에 어긋나는 잘못된 견해나 주장인 부정견(不正見) · 악견(惡見) 또는 사견(邪見)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지만, 불교에서는 5견(五見)의 경우처럼 흔히 후자의 부정견(不正見) · 악견(惡見) 또는 사견(邪見)을 가리키는데 사용된다.
견의 분류에는 2견 · 4견 · 5견 · 7견 · 8견 · 10견 · 62견 등이 있으며, 대표적인 분류로는 8견(八見)을 들 수 있다.
《구사론》에 따르면, 견은 유신견(有身見) · 변집견(邊執見) · 사견(邪見) · 계금취(戒禁取) · 견취(見取)의 5염오견(五染汚見: 5종의 그릇된 견해) 또는 5견(五見)과 세간정견(世間正見) · 유학정견(有學正見) · 무학정견(無學正見)의 3정견(三正見: 3종의 바른 견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을 통칭하여 8견(八見)이라 한다.
여기서 특기할 사항은 《구사론》에 따르면 8정도의 정견(正見: 바른 견해)이 세간정견 · 유학정견 ·무학정견의 3가지로 세분되어 정의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세간정견은 유루혜에 속하고 유학정견 · 무학정견은 무루혜에 속하며, 무루혜의 일부라도 성취하면 성자가 된다고 한다.
유신견(有身見)=신견(身見)은 소의신(所依身), 즉 5온(五蘊)의 화합체 또는 5취온(五取蘊)을 실유(實有)라고 집착하는 견해이다. 즉, 5온의 화합체 또는 5취온을 실재하는 '나[我]' 또는 '나의 것[我所]'이라고 집착하는 견해이다.
음역하여 살가야견(薩迦耶見: 살가야는 satkāya의 음역이고 견은 dṛṣṭi의 의역임), 살가야달리슬치(薩迦耶達利瑟致: 살가야는 satkāya의 음역이고 달리슬치는 dṛṣṭi의 음역임), 삽가야견(颯迦耶見) 또는 삽가사견(薩迦邪見)이라고도 한다. 또한 의역하여 허위신견(虛偽身見), 위신견(偽身見), 괴신견(壞身見) 또는 이전신견(移轉身見)이라고도 한다. 신사결(身邪結) 또는 신견결(身見結)이라고도 한다.-불교겔러리
復次 若有神者 可有彼我。汝神有無未了 而問彼我.
其猶人問兔角 答似馬角。馬角若實有 可以證兔角, 馬角猶尚未了 而欲以證兔角。
또한 정신(精神 Puruṣa 또는 Ātman)이 있다면 '너'와 '나'가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대는 아직 정신(精神)이 있고 없음을 분명히 알지 못하면서 나에게 묻는 것이라.
이것은 마치 토끼의 뿔을 묻는데 말의 뿔 같다고 대답하는 것과 같으니,
말의 뿔이 실제로 있는 것이라면 그로써 토끼의 뿔도 있음을 증명할 수 있겠지만
말의 뿔조차 아직 명료히 증명하지 못하면서 토끼의 뿔을 증명하려 하는 것이니라.
復次 自於身生我故 便自謂有神。汝言'神遍', 亦應計他身爲我。
以是故 不應言 '自身中生計我心 於他身不生 故知有神'
또한 스스로의 몸에 대하여 '나'라는 소견을 내는 까닭에 정신(精神)이 있다고 하니,
그대가 말하기를 '정신(精神)이 두루하다'고 한다면, 역시 타인의 몸도 나의 몸이라고 계교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몸에 대하여는 '나'라고 계교하는 생각을 내나, 타인의 몸에서는 생기지 않는 것이므로 정신(精神)이 있음을 아는 것이다'고 말해서는 안되는 것이니라.
復次 有人於他物中 我心生, 如外道坐禪人 用地一切入觀時 見地則是我 我則是 地水火風空 亦如是。顚倒故 於他身中 亦計我。
또한 어떤 사람이 남의 물건에서 '나'라는 생각을 내나니, 마치 어떤 외도가 좌선에 들어 일체의 지대(地大)를 보는 관법에 들어갔을 때, 땅이 나요, 내가 땅이 되는 것과 같으니, 수대(水大)와 화대(火大) 풍대(風大) 공대(空大)에 대해서도 그러하나니, 그렇게 전도된 까닭에 남의 몸에 대해서 내 것이라는 생각을 내게 되는 것이니라.
復次 有時於他身生我 如有一人 受使遠行 獨宿空舍。夜中 有鬼擔一死人來著其前 復有一鬼逐來 瞋罵前鬼, '是死人是我物 汝何以擔來?' 先鬼言, '是我物 我自持來'
또한 어떤 때는 남의 몸을 내 것이라는 생각을 내기도 하나니,
마치 어떤 사람이 남의 심부름으로 먼 곳으로 가다가, 혼자 빈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밤중에 귀신이 송장 하나를 메고 와서 그의 앞에 던졌다. 이내 뒤를 이어 다른 귀신 하나가 따라와서 앞의 귀신을 꾸짖되 '이 시체는 나의 것인데 어찌하여 네가 메고 왔느냐' 하니,
앞의 귀신이 대꾸하기를 '이것은 나의 것이므로 내가 가지고 온 것이다' 하였다.
後鬼言, '是死人實我擔來' 二鬼各捉一手爭之。
前鬼言, '此有人可問' 後鬼卽問, '是死人誰擔來?'
是人思惟, '此二鬼力大 若實語亦當死, 若妄語亦當死 俱不免死 何爲妄語?' 語言,'前鬼擔來'
그러니 나중의 귀신이 말하기를 '이 시체는 실로 내가 메고 온 것이다' 하여, 마침내 두 귀신은 제각기 시체의 팔 하나씩을 잡고 다투다가 먼저 귀신이 제의하기를, '여기 인간이 하나 있으니, 그에게 물어보자.'
나중에 온 귀신이 즉시 묻기를, '이 시체는 누가 메고 왔는가?'
그 사람은 생각하기를, ‘이 두 귀신은 힘이 세어서, 사실대로 말하면 내가 죽음을 당할 것이요, 거짓으로 말하여도 죽음을 당할 것이니, 어차피 죽음을 면하지 못할 터이니, 거짓말을 해서 무엇하랴!'
그리고는 말하기를, '앞의 귀신이 메고 온 것이다.'
後鬼大瞋 捉人手拔出著地 前鬼取死人 一臂拊之卽著。
如是兩臂 兩腳 頭 脅 擧身皆易。於是二鬼 共食所易人身 拭口而去。脅 겨드랑이 협, 拭 닦을 식
이 말에 나중의 귀신은 화가 나서 그 사람의 팔을 뽑아 땅에 던져버리니, 먼저 귀신은 시체의 팔 하나를 뽑아다가 그에게 붙여 주었다.
이와 같이, 두 팔ㆍ두 다리ㆍ머리ㆍ허리 등 온몸이 모두 바뀌어버렸다.
여기에서 두 귀신은 함께 바뀌어버린 사람의 몸을 다 먹고는 입을 닦으면서 어디론가 가버리는 것이었다.
其人思惟, ‘我人母生身 眼見二鬼食盡 今我此身 盡是他肉。
我今定有身耶? 爲無身耶? 若以爲有 盡是他身, 若以爲無 今現有身'
如是思惟 其心迷悶 譬如狂人。明朝尋路而去 到前國土 見有佛塔衆僧 不論餘事 但問己身 爲有爲無?
이 사람이 생각하기를, ‘나는 부모가 낳아 주신 몸을 눈앞에서 몽땅 두 귀신에게 먹혀 버리고, 지금 나의 이 몸은 남의 몸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몸이 있는 것인가? 몸이 없는 것인가? 몸이 있다고 하자니 이것은 모두 남의 몸일 것이고, 없다고 하자니 지금 이렇게 몸이 있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하니, 그 마음이 번민하고 걱정하기를 마치 미친 사람과 같았다.
다음날 아침에 날이 밝아오자 길을 찾아 가다가 한 국토 앞에 다다르니, 그 곳의 불탑에 승려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자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몸이 있는가, 없는가’만을 물었다.
諸比丘問, '汝是何人?' 答言, '我亦不自知 是人 非人?' 卽爲衆僧 廣說上事。
비구들이 '그대는 누구이신가?'라고 물으니,
그는 '나 역시 스스로 사람인지 사람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는 승려들에게 지난 밤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諸比丘言, '此人自知無我 易可得度'
而語之言, '汝身從本已來 恒自無我 非適今也。
但以 四大和合故 計爲我身 如汝本身 與今無異'
諸比丘度之爲道 斷諸煩惱 卽得阿羅漢。
그러자 비구들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無我(무아)의 도리를 잘 알아서 제도하기 쉬울 것이오'라고 서로 상의한 뒤 그에게 말하기를, '그대의 몸은 본래부터 항상 나가 없었으니, 이는 새로운 사실이 아니며, 다만 사대(四大)가 화합하였기 때문에 ‘내 몸’이라는 계교를 내었을 뿐이다. 그러니 그대 본래의 몸과 지금의 것은 다름이 없는 것이니라.'
비구들이 그를 제도하여 주니, 그는 도를 닦아 번뇌를 끊고 곧 아라한(阿羅漢)을 이루게 되었다.
是爲有時 他身亦計爲我。不可以 有彼此故謂有我。
이러함으로 어떤 때에는 타인의 몸을 '나의 몸'이라 헤아리 수도 있는 것이니, 너와 나가 있음에 내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라.
復次 是我實性 決定不可得。若常相 非常相 自在相 不自在相 作相 不作相 色相 非色相 如是等種種 皆不可得。
또한 이 나의 실상(實相)과 자성(自性)은 결정코 얻을 수 없으니, 항상한 모습ㆍ항상치 않은 모습ㆍ자재한 모습ㆍ자재치 않은 모습ㆍ짓는 모습ㆍ짓지 않는 모습ㆍ물질의 모습ㆍ물질 아닌 모습 등의 이러한 갖가지 모습 또한 모두 얻을 수 없는 것이니라.
若有相則有法, 無相則無法, 我今無相 則知無我。
若我是常 不應有殺罪. 何以故, 身可殺 非常故, 我不可殺 常故。
만일 형상=실상(實相)이 있다면 법(法)이 있는 것이며, 형상(실상)이 없다면 법도 없는 것이라.
나는 이제 형상이 없는=無相(무상)이니 곧 無我(무아)를 알게 되는 것이니라.
만일 '나'가 항상한 것이라면 살생의 죄가 없어야 하나니, 왜냐하면 몸을 죽일 수 있으면 항상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며, 나=정신(精神)을 죽일 수 없다면 곧 항상한 것이기 때문이니라.
'대지도론(大智度論)'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2권 9 (1) | 2023.10.28 |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2권 8 (0) | 2023.10.27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2권 6 (1) | 2023.10.26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2권 5 (1) | 2023.10.25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2권 4 (1) | 2023.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