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懺悔)

자기의 잘못 또는 죄를 깊이 뉘우치며, 아만심을 버리고 용서를 비는 것으로,

참회의 () 범어의 크샤마(kṣam), 懺摩참마) 음역으로용서를 빈다’, ‘뉘우친다’, ‘()’이라는 뜻이며,

         회() 크샤마의 의역으로 한자의 뉘우칠 () 합쳐진 합성어로,

범어(인도)에서는 오늘날까지미안하다’는 말을 크샤먀탐(kṣamyatâm:내가 범한 죄를 참고 견디어 달라. 용서하세요)이라고 한다. 또한 참회를 데사나(desāna:고백하는 )라고 하며, 자발적으로 자기의 모든 허물을 동료 비구들 앞에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뉘우치다라는 뜻이 중복이 말이지만, 개별적 의미는 조금 차이가 있다.

참은 과거로부터 지어온 잘못과 현재 생활하면서 지은 모든 허물을 뉘우친다는 뜻이며,

회는 앞으로 닥쳐올 잘못을 미리 예방하기 위해 다시 죄업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뉘우침의 행위로 나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깨끗하게 비우는 데에 참회의 참뜻이 있으며, 불교에서는 먼저 참회한 자신의 원을 세우라고 가르칠 정도로 참회를 중요시 하고 있다.

 

또 참회에는 초기 원시 불교부터 내려온 두가지의 포살(布薩) 자자(自恣) 있으며, 참회를 갖추어야 5가지 조건이 있는데, 이를 참회의 5연이라 한다.

 5연이란 시방의 불보살을 영접하고, 참회의 주문을 암송하고, 자기의 죄명을 고백하고, 서원을 세우고,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증명을 받는 것이다. 대승불교에서는 소승의 참회 5 외에 도량을 청정하게 장엄하고, 향을 땅에 뿌리며, () 설치하는 등의 방법을 추가하기도 한다.

또 소승불교에서 참회는 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②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③ 합장하면서, ④ 죄명을 말하고, ⑤ 대비구의 발에 절하는 참회의 5법을 갖추어야 한다.

 

포살이란 비구들이 보름과 그믐에 대중스님이 모여 계율, 계본(戒本) 다시 숙지하면서 그것을 지켰는지 지켰는지 대중앞에 고백하는 전통적인 의식이나, 스님 뿐만 아니라 재가 신도 또한 법회나 육재일에 포살의식을 통해 계를 지켰는지 스스로 반성하기도 한다.

 

하나는 자자(自恣)의식이다.

안거(安居:승려들이 모여 3개월 동안 함께 수행함) 끝나는 마지막 날에 함께 수행하던 스님들이 모여 안거 기간동안 보고 듣고 생각한 등을 각자가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의식으로 포살이 스스로의 고백에서 이루어지는 참회라면, 자자는 타인으로부터 지적을 받아서 참회하는 것으로, 이러한 의식은 허심탄회하게 자신이 범한 잘못을 서로 견책하고 격려하여 정화하는 의미에서 채택되어진 것이다.

이때 () 범한 비구들은 대중 속에서 죄를 고백하여 참회를 얻는 것으로, 참회를 받고 훈계하는 대비구에게 요구되는 5개항은;

때에 따라서 말할 , 진실성을 지닐 , 부드럽게 말할 , 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말할 , 자비심을 지니고 말할 등이다.

 

원시불교의 참회가 계율과 밀착된 참회임은 포살 계본을 읽어간다는 점을 보아 틀림이 없지만, 특히 소승율장(小乘律藏) 살펴보면 더욱 명백해진다.  살생·도둑질·사음·거짓말의 사중죄(四重罪) 범한 비구는 참회가 허락되지 않을 아니라 교단에서 추방되었다. 밖의 중죄는 대중 앞에서 참회함으로써, 경죄는 사람 앞에 참회함으로써 용서를 받는다.

이것이 후기 소승불교에서는 커다란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포살이나 자자라는 참회법이 비구 자신의 수행이나 교단 통제의 체계화를 꾀하는 데는 중요한 구실을 하였으며, 교단에서 가장 중요한 법식으로 행해졌다는 사실은 특히 주목되는 점이다.

원시불교에서 대승불교로 변화하면서 참회하는 방법에도 변화가 생겼으며, 참회에 대한 원시불교와 대승불교의 견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원시불교에서는 의식을 이용해 자발적이되 규율적, 형식적 절차로 대중 앞에서 언어로 외형화된 반면 대승불교에서의 참회는 개인의 자발적이고 동기적인 절차를 거쳐 대중 앞이 아닌 제불보살 앞에서 언어가 아닌 마음으로 내면화되었다. 대승불교에서의 참회는 자발적이고 진실한 동기와 진정한 마음 자세가 매우 중요하게 요구된다. 전시효과와 같은 자기 포장이 아닌 진정한 교감의 참회여야 자신의 죄업을 소멸시킬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죄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용서를 청하는 겸허한 마음 자세가 바탕이 되어져야 한다. 대승불교의 참회는 불보살님께 향하는 거짓없는 마음의 표시인 동시에 자비를 베푸는 불보살님의 마음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승불교의 참회 일반적으로 자기의 죄를 인정하는 자가 시방삼세(十方三世) 부처에게 귀의하고 참회하여 섭수(攝受)됨으로써 죄의 공포로부터 해탈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것은 불멸 (佛滅後:부처의 열반 이후) 세월이 흐름에 따라 계율이 교단 내에서 상당한 시비를 일으키게 되는데, 부처님 당시처럼 대비구가 많지 않은 데서 비롯된 시대적 사조 또한 하나의 이유가 되고 있다.

 

수행이나 교단의 통제에 커다란 구실을 하였던 원시불교의 참회는 대승불교에 와서 의미가 크게 확대되고 상당한 깊이를 더하게 되었다. 『대승본생심지관경(大乘本生心地觀經)』에서는 참회의 이익을 가지로 나타내고 있다.

“만약 능히 ()답게 참회하면 번뇌가 잠시 사이에 제거된다.

     참회는 능히 번뇌의 땔감을 태우고,

     참회는 능히 천상(天上) 태어나게 하며,

    참회는 능히 사선(四禪:항상 즐거움만 있는 四禪天에 태어남) () 얻고,

    참회는 마니보주(摩尼寶珠:재앙을 없애는 원하는 바를 이루어 주는 보배구슬) 내리게 하며,

    참회는 능히 금강(金剛) 수명을 늘리고,

    참회는 능히 상락궁(常樂宮) 들게 하며,

    참회는 능히 보리(菩提) 꽃을 피우며,

    참회는 능히 삼계(三界) 감옥을 벗어나며,

    참회는 능히 () 대원경지(大圓鏡智:원만하고 분명한 지혜) 보게 하며,

    참회는 능히 보소(寶所:열반의 경지) 이르게 한다.

중에서 번뇌의 땔감을 태우고 천상에 태어나게 한다는 것은 소승의 뜻과 크게 다를 없으 소승의 구경지(究竟地) 사선을 얻게 된다고 것이나, 삼계를 벗어나고 금강의 수명을 늘리며, 상락궁, 보리의 , 부처의 대원경지 등을 설하고 있는 것은 참회가 단순한 죄업의 소멸이라는 뜻이 아니라, 참회 자체가 수행의 구경지요, 열반의 상락궁이라는 궁극의 과보(果報)임을 설한 것이다.

 

대승불교의 발전과 함께 참회법도 여러 가지 형식이 갖추어지고 교리적으로도 체계화되어 갔다. 유형별로 보아 현재 다소나마 유통되는 것으로는 이종참회(二種懺悔) · 삼종참회 · 삼품참회(三品懺悔) · 육근참회(六根懺悔) 있으며, 종파별이나 출가별·재가별에 따라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에 의하여 실천되었다.

우리 나라 참회의 기본 근거가 것은 이종참회와 삼종참회이다.

이종참회는 이참(理懺) 사참(事懺)으로

사참은 ‘수사분별참회(隨事分別懺悔)라고도 한다. 일을 따라서 분별하여 참회하는 방법으로, 몸으로는 부처에게 예배 드리고 입으로는 찬탄의 게송(偈頌) 외우며, 마음으로는 성스러운 모습을 그리면서 과거와 현재에 지은 죄업을 참회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참회라고하며 사참을 뜻한다.

사참은 다시 작법참회(作法懺悔) 취생참회(取生懺悔) 나눌 있으며

작법참회는 불경 등에 규정되어 있는 방법에 따라 잘못을 고백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하는 참회법이다.

취생참회는 관상참회(觀相懺悔)라고도 하는데, () 들어 참회를 생각하면서 부처님을 관찰하면, 부처나 보살이 와서 정수리를 만져주며 수기(授記) 줌으로써 참회를 성취하는 것으로, 삼매(三昧) 관법(觀法) 깊은 관계가 있다.

 

신라의 원효는 그의 『대승육정참회(大乘六情懺悔)』에서 법계(法界) 진실한 모습을 없는 중생이 부처님의 자비에 의지하여 참회하는 것을 사참이라고 보았다. 사참을 통해서 오역죄(五逆罪) 십악(十惡) 등을 참회하기 전에 반드시 부처님 전에서 깊이 부끄럽게 생각하고 보리심(菩提心) 일으켜야 하며, 한번 참회를 시작하면 성심으로 하여야 함을 밝히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빈번하게 이용되고 있는 「예불대참회문(禮佛大懺悔文)」에도 스스로 보리심을 발하여 위없는 도를 깨닫겠다는 맹세를 삼보(三寶) 귀의하고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서 예배를 하며, 마지막으로 참회의 공덕을 깨달음과 중생에게로 회향(廻向)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밖에도 부처나 보살의 명호를 부르면서 행하는 미타참법(彌陀懺法)ㆍ관음참법(觀音懺法) 쉽게 행할 있는 참회법으로서 사참에 속한다.

 

이참은 모든 법의 실상을 관찰하여 진리의 참모습을 관찰하여 참회를 얻는 것으로서, 관찰실상참회(觀察實相懺悔)라고도 한다. 신구의 삼업을 통해 기도나 예불로 하는 사참(事懺) 대비된다. 이는 과거와 현재에 지은 모든 죄업들이 마음에서 일어난 것일 마음 밖의 것은 하나도 없다고 보는 유식학(唯識學) 주장에, 자심(自心) 본래 공적(空寂) 줄을 알면 모든 죄상(罪相) 또한 공적에 불과하다는 반야사상이 합치되어 자심(自心) 본래 공적(空寂) 것임을 알게 되면 모든 죄상 또한 공적에 불과하다는 참법(懺法)이다.

이와 같이, 유식과 반야의 입장에서 죄업의 실상을 관찰하여 죄를 멸하는 것을 이참이라고 한다. 이참은 무생참회(無生懺悔) 또는 관무생참회(觀無生懺悔)라고도 한다. 마음을 바로 하고 단정히 앉아 생멸(生滅) 없는 실상을 관하여 죄의 본체가 무생임을 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라의 원효(元曉) 『대승육정참회(大乘六情懺悔)』에서 죄업의 본성은 무성(無性)이라 정의하고, 죄업이 본래 무성임을 체득하면 바로 참회를 이룬다고 하였다.

특히 그는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에서 “모든 죄장(罪障) 망상으로부터 생기므로, 모든 () 파하고 진실관(眞實觀) 들면 모든 죄가 일시에 없어진다.”고 하여 이참을 선종의 해탈방법인 돈오(頓悟) 입장으로까지 승화시켰다.

, 『대승육정참회』에서는 방일에 빠져 올바로 참회하지 않으면 허물이 됨을 상기시키면서, 형식적인 생각으로만 참회하지 말고 깊이 부끄러워할 것과 실상을 성의를 다해서 사유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원효는 생사와 인생이라는 꿈에서 깨어나는 여몽관(如夢觀) 닦아서 여몽삼매(如夢三昧) 이룰 올바른 이참이 이루어지고 무생법인(無生法忍) 얻게 된다고 하였다.

 

삼종참회는 작법(作法)·취상(取相)·무생(無生) 참회이다.

작법참회는 경과 논에 규정되어 있는 작법에 따라 죄의 잘못됨을 고백하고 다시는 짓지 않겠다고 하는 참회법이다.

취상참회는 관상참회(觀相懺悔)라고도 하는데, 선정에 들어 참회를 생각하면서 부처를 (觀:지극히 생각함)하면 불보살이 와서 정수리를 만져주며 수기(授記) 줌으로써 참회를 성취하는 것이다.

무생참회는 마음을 바르게 하고 단정하게 앉아 무생무멸(無生無滅) 실상(實相) 관하여 죄의 본성이 무생임을 깨닫는 것이다.

가운데 앞의 둘은 사참에 속하고 무생참회는 이참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참회는 상당한 이성과 사려를 필요로 하는 것이며, 법식 또한 쉬운 것이 아니므로 부처의 명호를 부르면서 참회하는 쉬운 방법이 나오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으로 미타참법(彌陀懺法)·관음참법(觀音懺法) 등이 있는데, 현재 우리 나라에서는 이것이 널리 유통되고 있다.

이것은 불보살이 인행시(因行時:부처가 되기 위해 원을 세우고 수행할 ) 세운 ()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불보살의 이름을 일념(一念)으로 외우면 모든 죄업이 남김 없이 소멸되고 청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 특히 많이 행하여진 참회법은 점찰참법(占察懺法)·법화삼매참법(法華三昧懺法)·대승육정참회(大乘六情懺悔)이다.

점찰참법은 윷가지 모양의 간자(簡子) 10개에 살생·도둑질 가지 죄목을 써서 그것을 허공에 던져 나타나는 죄목을 보고 전생을 참회하는 것으로, 일찍이 신라의 원광법사(圓光法師) 의하여 보급, 전승되었다. 점찰법은 통일신라시대의 고승 진표(眞表) 의하여 널리 보급되었는데, 진표는 몸이 부서지는 맹렬한 참회를 행한 점찰법에 의한 참회불교의 체계를 정립하였고, 그의 뒤를 이은 영심(永深) 심지(心地) 등도 참회불교에 의한 해탈을 추구하였다.

법화삼매참법은 『법화경』 『관보현보살행법경 觀普賢菩薩行法經』을 근거로 하여 참회하는 불교의식이다. 삼칠일(三七日) 동안을 기한으로 정하여 『법화경』을 독송하면서 죄업을 참회하고 실상중도(實相中道) 도리를 관조하는 수행법이다. 참회하는 방법은 먼저 6() 5() 하여 아침·낮·해질녘·초저녁·밤중·새벽의 여섯 시기에 참회·권청(勸請)·수희(隨喜)·회향(廻向)·발원(發願)하는 다섯 가지 수행법을 닦는다.

삼매(三昧) 드는 방법으로 신개차(身開遮)·구설묵(口說默)·의지관(意止觀) 가지가 있다.

첫째, 몸으로는 다니고 앉는 가지를 열어 행하고, 머물고 눕는 가지는 차단한다.

둘째, 입으로는 대승경전을 외우고 수행과 관련이 없는 말은 하지 않는다.

셋째, 뜻에 속하는 것으로는 유상행(有相行) 무상행(無相行) 있다. 유상행은 앉으나 서나 다니거나 일심으로 『법화경』을 외우고 밤낮 6시에 6()으로 지은 죄업을 참회하는 것이다. 무상행은 『법화경』 안락행품(安樂行品) 의하여 깊고 묘한 선정(禪定) 들어가 6정근(情根) 관하며 실상삼제(實相三諦) 정공(正空) 달하는 삼매를 말한다.

이와 같은 법화삼매참법은 우리 나라 중국의 천태종(天台宗) 중심으로 하여 널리 행하여졌다. 특히, 고려 중기의 요세(了世) 참법의 실천으로 천태종의 중흥을 도모하였고, 뒤를 이은 백련사(白蓮社) 국사들과 수많은 고승들이 참법에 의지하여 삼매를 이루었다.

요세는 참의(懺儀) 닦음에 있어 육신이 허락하는 하루에도 53불에게 예배하기를 12번씩 하였으며, 남해산(南海山) 기슭에 80 칸에 달하는 보현도량(普賢道場) 짓고, 지의() 지은 『법화삼매참의』에 따라서 왕생정토(往生淨土) 구하는 법화삼매를 닦았던 것이다.

대승육정참회는 신라의 원효(元曉) 대승의 사상을 요약하여 설파한 참회법이다. 중생이 눈·귀·코·혀·몸·뜻의 6정으로 여러 가지 번뇌를 만들어서 괴로워하지만, 근본무명(根本無明) 버리고 죄업의 () 없음을 관찰하면 합리적인 생활을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참회는 처음 수행하려고 발심한 초발심보살(初發心菩薩) 위하여 만든 것이다. 그는 참회를 중생의 생활과 살아 있는 동작 하나하나에서 찾아야 하며, 참회가 모든 부처와의 합일을 향한 수행임을 밝히고 있다. , 참회의 대전제로서 육도(六道:죽어서 윤회하는 여섯 종류의 세계) 중생을 위하고, 모든 부처에게 귀명(歸命)하여야 하며, 중생에 대한 동체대비심(同體大悲心) 가져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귀명하여야 부처는 인격적이고 외형적인 부처보다는 내면적이고 실상적인 삼신불(三身佛:法身·報身·化身의 셋으로 佛身을 나눈 ) 귀명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을 부처의 세계라 보았고, 참회자는 결코 일심의 불국토(佛國土)에서 떠난 일이 없었지만 무명이 일심(一心:있는 그대로의 진실된 모습. 眞如) 가려서 여러 가지 죄업을 짓게 되는 것이며, 일심을 회복하여 가질 참회를 마치게 되고 불국토에서 모든 부처와 함께 살아가게 된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참회의 방법으로 먼저 사참을 제시하였다. , 부처의 자비에 의지하여 지성껏 참회하되 이미 지은 죄는 깊이 뉘우치고 아직 짓지 않은 죄는 앞으로도 짓지 않을 것을 맹세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죄의 본성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있다. 특히, 생사의 꿈을 깨는 노력을 참회라고 원효는 참회와 해탈, 참회와 본각(本覺) 일치시키고 있다.

결론적으로 원효는 인생이라는 속에서 꿈이 꿈이라는 것을 관하는 여몽관(如夢觀) 닦아 여몽삼매(如夢三昧) 이룰 , 모든 죄업은 사라지고 궁극적인 목적인 무생법인(無生法忍:나고 죽음이 없는 진리의 세계) 얻게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원효는 대승육정참회를 통하여 죄업이 본래 무생임을 깊이 깨닫고 철저하게 일심의 원천으로 돌아가 본각과 합일할 진정한 참회가 이루어진다고 설파함으로써, 이전의 소극적인 참회를 적극적인 참회로 바꾸어놓았다.

 

참회는 진정한 자기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고 참된 자신 , 불성으로 되돌아 가려는 신심과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나라는 상을 버리고 용서를 청하는 하심으로 참회를 한다면 나와 남의 경계를 벗어나 좋고 싫음의 분별이 없는 마음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나라는 상을 버린 진정한 참회는 해탈로 가는 방편이기 때문이다.

부처님 또한 참회할 때의 태도를 강조하셨다.

부처님 당시 어느 신도가 있었다. 어느 그는 자신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 참회를 하였으나 자신이 저지른 죄악의 미세한 공포가 떠나지 않아 부처님께 찾아와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아무리 작은 먼지 같은 죄업이라도 반드시 참회해야 죄업이 사라지며 진실되게 참회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죄업을 소멸시키는 참회문을 가르쳐 주셨다.

我昔所造 罪惡業(아석소조 외악업) 옛부터 내가 지은 모든 악업은

皆有無始 貪瞋癡(개유무시 탐진치) 모두가 ,,치로 말미암아

從身口意 之所生(종신구의 지소생) 몸과 입과 뜻으로 지었기에

一切我今 皆懺悔(일체아금 개참회) 모든 것을 이제 저는 참회합니다.

살바 못자모디 사다야 사바하

 

또한 경에서 이르시되 “전(前心) 작악(作惡) 구름이 해를 가린 것과 같고, 후심(後心) 기선(起善) 밝은 불이 어둠을 파함과 같으니라. 하시었으니, 죄는 본래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라 마음이 멸함을 따라 반드시 없어질 것이며, 업은 본래 무명인지라 자성[본래의 밝은 마음자리] 혜광을 따라 반드시 없어지나니, 죄고에 신음하는 사람들이여! 어찌 문에 들지 아니하리오.

그러나 죄업의 근본은 . . 치라 아무리 참회를 한다 할지라도 후일에 또다시 악을 범하고 보면, 죄도 또한 멸할 날이 없으며 또는 악도에 떨어질 중죄를 지은 사람이 일시적 참회로써 약간의 복을 짓는다 할지라도 원래의 . . 치를 그대로 면, 복은 복대로 받고 죄는 죄대로 남아 있게 되나니, 비하건대 가운데 끓는 물을 냉하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 위에다가 약간의 냉수만 갖다 붓고, 밑에서 타는 불을 그대로 , 불의 힘은 강하고 냉수의 힘은 약하여 어느 때든지 물이 냉해지지 아니함과 같으니라.

세상에 전과[지나간 ] 뉘우치는 사람은 많으나 후과를 범하지 않는 사람은 적으며, 일시적 참회심으로써 한두 가지의 복을 짓는 사람은 있으나, 심중의 . . 치는 그대로 두나니 어찌 죄업이 청정하기를 바리리오.

사람이 영원히 죄악을 벗어나고자 할진대 마땅히 이참과 사참을 쌍수(雙修)하여 밖으로 모든 선업을 계속 수행하는 동시에 안으로 자신의 . . 치를 제거할지니라.

이같이 한즉, 밑에서 타는 불도 꺼버림과 같아서, 아무리 천겁에 쌓이고 쌓인 죄업일지라도 청정해 지느니라.

또는 공부하는 사람 성심으로 참회 수도하여 적적 성성한 자성 깨쳐 마음의 자유를 얻으, 천업(정해진 ) 임의로 하고 생사를 자유로 하여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고, 미워할 것도 없고 사랑할 것도 없어서 삼계, 육도가 평등일미요, 동정역순이 무비 삼매라, 이러한 사람은 천만 죄고가 더운 물에 얼음 녹듯 하고, 고도 고가 아니요. 죄도 죄가 아니며, 항상 자성의 혜광이 발하여 진대지[ 세계] 도량이요,

진대지가 정토라 내외 중간에 털끝만한 죄상(죄의 형상) 찾아볼 없나니

이것이 이른바 불조의 참회요, 대승의 참회라 지경에 이르러야 죄업을 마쳤다 하리라.

 

[한국민족 대백과] [다움백과] 참고하였습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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