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初品中 ‘十方諸菩薩來’釋論 第十五 之餘卷第十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임 경량 엮음 참조
15. 초품 중 ‘시방의 보살들이 모여 오심’을 풀이함 15
▶經. 諸出家 在家菩薩 及諸童男童女 頭面禮 釋迦牟尼佛足 各以供養具 供養恭敬 尊重讚歎 釋迦牟尼佛。
是諸出家 在家菩薩 及諸童男童女 各各以善根 福德力故 得供養釋迦牟尼佛 多陁阿伽度 阿羅呵 三藐三佛陁。
▷經. 모든 출가ㆍ재가의 보살들과 동남ㆍ동녀들은 머리와 얼굴을 석가모니부처님의 발에 대어 예를 올리고, 제각기의 공양구로써 석가모니부처님께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였다.
이 출가ㆍ재가의 보살들 및 동남ㆍ동녀들은 제각기 선근과 복덕의 힘 때문에 다타아가도(多陀阿伽度, tathāgata, 여래如來)ㆍ아라하阿羅呵, Arhat, 응공應供)ㆍ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 samyaksaṃbuddha, 정변지正遍知)이신 석가모니부처님께 공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論. 如說偈;
▷論. 게송으로 풀이하리라.
諸聖所來道 佛亦如是來, 實相及所去 佛亦爾無異.
모든 성인들 오셨던 길로, 부처님도 그렇게 오셨으며,
진실한 모습=實相(실상)이 가는 곳으로, 부처님께서도 가심이 다름이 없으시네.
諸聖如實語 佛亦如實說, 以是故名佛 多陀阿伽度。
모든 성인들은 한결같이=如實(여실)한 실상(實相)말씀하셨고, 부처님도 그러하셨으니
그러므로 불(佛 buddha)이라 이르고, 다타아가도(多陀阿伽度, tathāgata, 여래如來)라 부르네.
①여래(如來, tathāgata, thus gone, thus come), 다타아가타(多陀阿伽陀) · 여시래(如是來)
忍鎧心堅固 精進弓力強, 智慧箭勁利 破憍慢諸賊。
인욕의 갑옷으로 마음을 굳건히 굳히어, 정진의 활줄을 힘껏 당기시니,
지혜의 날카로운 화살은 교만의 도적을 깨트리시네.
應受天世人 一切諸供養, 以是故名佛 以為阿羅訶。
하늘과 세상 사람 모두의 공양을 받으심에 과분함이 없으시나니
그러므로 불(佛 buddha)이라 이르고, 아라하(阿羅呵, Arhat, 응공應供)라 부르네.
②응공(應供, arhat, worthy one) 또는 아라한(阿羅漢) · 아라가(阿羅呵) · 아라하(阿羅呵) · 살적(殺賊) · 불생(不生) · 응수공양(應受供養)
正知苦實相 亦實知苦集, 知苦滅實相 亦知苦滅道。
괴로움=苦(고)의 실상을 바르게 아시고, 또한 苦(고)와 집(集)의 원인도 바르게 아시며
苦(고)가 멸(滅)한 실상을 아셨으며, 苦(고) 없애는 길=滅道(멸도)를 다 아시니
4제(四諦) 4성제(聖諦)
고제(苦諦)=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의 무더기, 즉 몸(色) · 느낌(受) · 생각(想) · 의지(行) · 인식(識)을 5온(蘊), 이 5온에 집착이 번성하므로 괴로움이고, 5온은 집착을 일으키는 근원이므로 괴로움이며, 또 5온에 집착하므로 괴로움이라는 것.
집제(集諦)=괴로움이 발생하는 원인을 밝혀준다. 집(集)이란 ‘발생’이라는 뜻으로, 괴로움은 원인과 조건이 성숙하고 결합해서 일어나는데, 그 원인은 갈애(渴愛), 즉 목이 말라 애타게 물을 찾듯이 몹시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애욕이다..
멸제(滅諦)= 5온의 작용에서 집착이 소멸되고, 또 그 5온에 집착하지 않아 갈애가 소멸된 상태이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등의 번뇌가 소멸된 열반의 경지이다.
도제(道諦)=괴로움을 소멸시키는 여덟 가지 바른 길, 즉 8정도.-다움
真正解四諦 定實不可變,是故十方中,號三藐三佛
참으로 바르게 네가지 진리=사제(四諦)를 이해하시어, 결정코 진실함에 변함이 없으시니
그러므로 시방의 세계에서 삼먁삼불(三藐三佛, samyaksaṃbuddha, 정변지正遍知)라 불리시네.
③정등각(正等覺, samyak-saṃbuddha, perfectly self-enlightened), 또는 정변지(正遍知) ·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 · 정각자(正覺者) · 정등각자(正等覺者) · 무상정등각자(無上正等覺者)
得微妙三明 清淨行亦具, 是故號世尊 鞞闍遮羅那。
미묘한 삼명(三明)을 얻으시고, 청정한 행도 갖추셨으니
그러므로 세존(世尊)이라 불리우며, 비사차라나(鞞闍遮羅那, vidyā carana sajpanna, 명행족明行足)라 하네.
④명행족(明行足, vidyā-carana-sajpanna, perfected in knowledge and conduct), 비사차라나(鞞闍遮羅那)
解知一切法 自得妙道去, 或時方便說 愍念一切故。
일체법(一切法)을 이해하여 아시고, 스스로가 묘한 길을 얻어 가시고
때로는 방편으로 말씀하시니,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이시라.
滅除老病死 令到安隱處, 以是故名佛 以為修伽陀。
늙고 병들어 죽는 고통 제하여 없애시고, 평온한 곳에 이르게 하시니
그러므로 불(佛 buddha)이라 이르고, 수가타(修伽陀, 선서善逝 sugata)라 부르네.
⑤선서(善逝, sugata, well gone) 또는 수가타(修伽陀) · 호거(好去) · 호설(好說)
知世所從來 亦知世滅道, 以是故名佛 為路迦鞞陀。
세상이 비롯된 도리를 아시고, 세상이 멸하는 도리도 아시니
그러므로 불(佛 buddha)이라 이르고, 노가비타(路迦鞞陀, loka vid, 세간해世間解, 노가비路迦憊)라 하네.
⑥세간해(世間解, loka-vid, knower of the world) 또는 노가비(路迦憊) · 지세간(知世間)
禪戒智等眼 無及況出上, 以是故名佛 為阿耨多羅。
선정ㆍ계행ㆍ지혜ㆍ평등의 불안(佛眼)으로, 견줄 이 없이 우뚝 뛰어나시니
그러므로 불(佛 buddha)이라 이르고, 아뇩다라(阿耨多羅, anuttara, 무상사無上士)라 하네.
⑦무상사(無上士, anuttara, unsurpassed) 또는 아뇩다라(阿耨多羅) · 무상(無上) · 무답(無答)
大悲度眾生 軟善教調御, 以是故名佛 富樓沙曇藐。
큰 자비로 중생을 제도하시고, 부드럽게 교화하고 길들이시니
그러므로 불(佛 buddha)이라 이르고, 부루사담막(富樓沙曇藐, Purusa damya sārathi, 조어장부調御丈夫)이라 하네.
⑧조어장부(調御丈夫, purusa-damya-sārathi, leader of persons to be tamed) 또는 부루사담먁바라제(富樓沙曇藐婆羅提) · 가화장부조어사(可化丈夫調御師)
智慧無煩惱 說最上解脫, 以是故名佛 提婆摩菟舍。
지혜롭고 번뇌 없으시며, 최상의 해탈을 말씀하시니
그러므로 불(佛 buddha)이라 이르고, 제바마면사(提婆摩菟舍, Śāstā deva manusyānāṃ, 천인사天人師)라 하네.
제바마면사(提婆摩菟舍)= śāstā deva-manuṣyāṇām 가운데 deva-manuṣya의 음사어인 듯합니다.
⑨천인사(天人師, śāstā deva-manusyānāṃ, teacher of the gods and humans) 또는 사다제바마누사남(舍多提婆魔㝹舍喃) · 천인교사(天人教師)
三世動不動 盡及不盡法, 道樹下悉知 是故名為佛。
삼세(三世)가 요동하고 요동치 않음과, 다함과 다하지 않는 법을
보리수 아래에서 모두 아시니, 그러므로 불(佛 buddha, 불세존佛世尊 buddha bhagavat)이라 하네.
⑩불세존(佛世尊, buddha, bhagavat, the Blessed One or fortunate one) 또는 불(佛, 산스크리트어: buddha) · 불타(佛陀, buddha) · 지자(知者, buddha) · 아는 자[知者, buddha] 또는 세존(世尊, 산스크리트어: bhagavat) · 바가바(婆伽婆, bhagavat) · 박가범(薄伽梵, bhagavat)
▶經. 南方度如恒河沙等 諸佛世界 其土最在邊 世界名離一切憂, 佛號無憂德, 菩薩名離憂。
▷經. 남쪽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를 지나, 그 땅의 가장 끝에 있는 세계를 ‘일체의 근심을 여읜 곳=離一切憂(이일체우)라 하니, 부처님의 명호가 무우덕(無憂德)이시며, 보살의 이름을 이우(離憂, vigataśoka)라 하며,
西方度如恒河沙等 諸佛世界 其世界最在邊 世界名滅惡, 佛號寶山, 菩薩名儀意。
北方度如恒河沙等 諸佛世界 其世界最在邊 世界名勝, 佛號勝王, 菩薩名得勝。
서쪽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를 지나, 그 땅의 가장 끝에 있는 세계를 ‘악을 멸한 곳=滅惡(멸악)’이라 하니, 부처님의 명호는 보산(寶山, ratnārcis)이시며, 보살의 이름은 의의(儀義, Cāritramati)라 하며,
북쪽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를 지나, 그 땅의 가장 끝에 있는 세계를 ‘뛰어난 곳=勝(승)’이라 하니, 부처님의 명호가 승왕(勝王, Jayendra)이시며, 보살의 이름은 득승(得勝, Jayadatta)이라 하며,
下方度如恒河沙等 諸佛世界 其世界最在邊 世界名, 佛號善德 菩薩名華上。
上方度如恒河沙等 諸佛世界 其世界最在邊 世界名喜, 佛號喜德 菩薩名得喜。
如是一切 皆如東方。
아랫쪽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를 지나, 가장 끝에 있는 세계를 선(善)이라 하니, 부처님의 명호가 선덕(善德)이시며, 보살의 이름은 화상(華上, Padmottara)라 하며,
윗쪽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를 지나, 그 세계의 가장 끝에 있는 세계를 희(喜, Nandā)라 하니, 부처님의 명호가 희덕(喜德, Nandaśrī)이시며, 보살의 이름은 득희(得喜, Nandadatta)라 하나니,
이와 같이 그 나머지 일체의 모두가 동쪽과 같으니라.
▶論. 問曰, 如佛法中 實無諸方名, 何以故 諸五衆, 十二入, 十八界中所不攝, 四法藏中亦無。
說方是實法因緣 求亦不可得, 今何以故 此中說 十方諸佛 十方菩薩來?
▷論. 묻나니, 불법에는 실로 방위의 명칭이 없으니, 왜냐하면 방위란 오온=五衆(오중)ㆍ12입(入)ㆍ18계(界)에 속하지 않으며, 네 가지의 법장=四法藏(사법장)에서도 또한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법에서는 방위가 진실로 있다고 하지만, 이는 인연에 의한 것으로 구하고자 하여도 얻을 수 없거늘, 지금 어찌하여 여기에서 ‘시방의 부처님들과 시방의 보살들이 왔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네 가지 법장=四法藏 :일승리(一乘理) 일승교(一乘敎) 일승인(一乘因) 일승과(一乘果)
答曰, 隨世俗法 所傳故說'方', 求'方'實不可得。
답하나니, 세속에서 전하여 내려오는 법을 따르기 때문에 방위라 말하였으나, 방위란 구하여도 실로 얻을 수 없는 것이니라.
問曰, 何以言無方? 汝四法藏中不說, 我六法藏中說。
汝衆 入 界中不攝, 我陁羅驃中攝。是'方'法, 常相故 有相故 亦有亦常。
如經中說, '日出處是東方, 日沒處是西方, 日行處是南方, 日不行處是北方'
묻나니, 어째서 방위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그대의 네 가지 법장=四法藏(사법장)에서는 말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우리의 여섯 법장=六法藏(육법장)에서는 말하고 있으며,
그대들의 오온(五蘊, 衆중)ㆍ12입(入)ㆍ18계(界)에는 속하지 않지만 우리들의 타라표(陀羅驃, Dravya. 6법장 가운데 하나, 실체實體, 실상實相)에서는 속한다고 하며,
이 방위의 법은 항상한 상을 실상으로 삼은 까닭에 존재하는 상이 있는=有(유)이며 항상한=常(상)이기도 하나니,
마치 경에서 말씀하시는 것과 같이,
'해가 뜨는 곳이 동쪽이요, 해가 지는 곳이 서쪽이며, 해가 지나가는 곳이 남쪽이요, 해가 가지 않는 곳이 북쪽이라 한다.'
六法藏(육법장)=승론파(勝論波)의 6구의(句義). 6구의란 실(實, Dravya)ㆍ덕(德, guṇa)ㆍ업(業, karman)ㆍ동(同, sāmānya)ㆍ이(異, viśeṣa)ㆍ화합(和合, samavāya)을 말한다.
日有三分合, 若前合, 若今合, 若後合。隨方日分 初合是東方 南方 西方亦如是。
日不行處是無分。彼閒, 此閒, 彼此是'方相', 若無'方', 無彼 此 彼此 是'方相', 而非'方'。
해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 방향과 짝을 이루나니, 해가 뜨기 전, 떠 있는 상태, 해가 지는 것으로,
해가 떠 있는 방위(방향)에 따라 나누니, 처음에 합하여 짝을 이루는 곳이 동쪽이며, 그 다음은 남쪽 그리고 서쪽도 이와 같으니라.'
해가 지나가지 않는 곳은 구분할 수 없으니, 저쪽의 사이, 이쪽의 사이, 이쪽과 저쪽의 사이로 나누며,
만약 방위가 없다고 한다면, 저쪽, 이쪽, 저쪽과 이쪽이라는 방위(방향)의 모습이 없다는 것일 뿐, 방위가 없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答曰, 不然! 須彌山在四域之中 日繞須彌 照四天下,
鬱怛羅越日中 是弗婆提日出 於弗婆提人是東方
弗婆提日中 是閻浮提日出 於閻浮提人是東方。
是實無初, 何以故 一切方皆東方, 皆南方, 皆西方 皆北方。
汝言'日出處是東方, 日行處是南方, 日沒處是西方, 日不行處是北方', 是事不然.
復次 有處日不合 是爲非'方', 無'方相'故。域 지경 역
답하나니, 그렇지 않다. 수미산은 네 곳=四域(사역)의 가운데에 있으니, 해가 수미산을 돌면서 네 천하를 비춘다.
곧 울다라월(鬱怛羅越, uttarakuru)이 한낮(정오)이면 불바제(弗婆提, Pūrvavideha)에서는 해가 뜨는 시각이니, 불바제 사람에게는 울다라월이 동쪽이 되며,
불바제가 한낮(정오)이면 염부제에는 해가 뜨는 시각이라, 염부제의 사람에게는 불바제가 동쪽이 되니,
이는 실로 시작이 없는 것이니, 왜냐하면 일체의 방위(방향)가 모두 동쪽, 남쪽, 서쪽, 북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
그대가 말하기를 '해가 뜨는 곳이 동쪽이요 해가 지는 곳이 서쪽이며, 해가 지나가는 곳이 남쪽이요 해가 가지 않는 곳이 북쪽이다' 한 것은 옳지 못하다.
또한 어떤 곳에는 해가 가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는 방위가 아니니, 방위의 모습이 없기 때문이니라.
(또한, 어느 곳이든지 해와 동서남북을 정(定)해놓고 짝을 이루는 것은 아니나니 이러함으로 방향에 실상(實相)이 있다는 것은 옳지 않은 것으로 방위의 그 어디에도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없기 때문입니다.)
問曰, 我說一國中'方相', 汝以四國爲難 以是故 東方非無初。
묻나니, 저는 한 나라에 있어서 방위의 모습을 말하였는데, 그대는 사천하=四國(사국)으로써 힐난할 뿐이다. 그러므로 동쪽이 처음인 것으로 처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答曰, 若一國中 日與東方合是爲有邊, 有邊故無常 無常故是不遍。以是故,'方'但有名 而無實。
답하나니, 만약 어느 한 나라에서 해가 떠서 짝을 이루는 곳을 동쪽이라 하면, 끝이 있는 것이며, 끝이 있다면 무상(無常)한 것이니, 무상한 까닭에 두루하지 못하게 되므로, 방위란 다만 이름만 있을 뿐 실상이 없는 것이니라.
'대지도론(大智度論)'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0권 12 (1) | 2023.10.08 |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0권 11 (1) | 2023.10.07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0권 9 (0) | 2023.10.05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0권 8 (1) | 2023.10.04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0권 7 (1) | 2023.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