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初品中 住王舍城釋論 第五卷 第三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경량 엮음 참조

 

5. 초품 왕사성(王舍城) 머무시다를 풀이함-3


婆藪之子 名曰廣車(바수지자 명왈광거) 嗣位爲王(사위위왕)

後亦厭世法(후역염세법) 而復不能出家(이부불능출가) 嗣 이을 사

바수에게는 광거(Vipularatha)라 이름하는 아들이 있었으니,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되었으나, 역시 세상 법을 싫어했으나 출가하지 못하고 

 

如是思惟(여시사유) ‘我父先王出家(아부선왕출가) 生入地中(생입지중)

이렇게 사유하였으니, ‘내 아버지이신 선왕(바수)께서 출가했다가 산 채로 땅에 묻혔으니, 

 

若治天下 復作大罪(약치천하 부작대죄) 我今當何以自處(아금당하이자처)?

만약 내가 천하를 다스리다가는 또한 큰 죄를 짓게 되리라. 그렇다면 나 스스로는 어떻게 하여야만 좋을까?

 

如是思惟時 聞空中聲言(여시사유시 문공중성언)

이와 같이 사유를 하고 있는데 문득 공중에서 소리가 들렸으니,

 

汝若行見難値希有處(여약행견난치희유처) 汝應是中作舍住(여응시중작사주)

'만약 그대가 길을 떠나 만나기 어렵고 보기 드문 곳=稀有處를 보게 되거든 그대는 거기에다 집을 짓고 머물러 살거라.'

 

作是語已 便不復聞聲(작시어이 편불부문성)

이 말을 마치고는 다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未經幾時 王出田獵(미경기시 왕출전렵) 見有一鹿 走疾如風(견유일록 주질여풍)

獵 사냥 렵, 개 이름 작. 鹿 사슴 록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사슴 한 마리가 질풍 같이 달리는 것을 보게 되어,

 

王便逐之 而不可及(왕편축지 이불가급) 遂逐不止(수축불지)

百官侍從無能及者(백관시종무능급자) 遂 드디어 수, 따를 수. 逐 쫓을 축, 

왕은 곧 그를 뒤쫓았으나 미칠 수가 없었으므로 더 이상 쫓기를 그만 두었으니, 백관과 시종들도 따라올 수 있는 자가 없었다.

 

轉前見有五山(전전견유오산) 周帀峻固(주잡준고) 其地平正(기지평정)

生草細軟(생초세연) 峻 높을 준

그때 문득 앞을 보니, 그곳은 다섯 산으로 험준하고 견고하게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으며, 땅은 평평하고 반듯하며 부드러운 풀이 자라고 있었다. 

 

好華遍地 種種林木(호화편지 종종림목) 華果茂盛(화과무성)

溫泉 涼池皆悉淸淨(온천 량지개실청정) 其地莊嚴(기지장엄) 

아름다운 좋은 꽃들이 주변에 두루하였으며, 갖가지 나무로 이루어진 숲과 꽃과 열매가 무성하였으며, 온천과 목욕할 수 있는 연못이 모두 청정하게 그 땅을 장엄하고 있었으며, 

 

處處有散天華(처처유산천화) 天香 聞天伎樂(천향 문천기악)

곳곳에 하늘의 꽃과 하늘의 향기가 가득하였고 하늘의 풍악이 들려왔다.

  

爾時 乾闥婆 (이시 건달바) 伎適見王來(기적견왕래) 各自還去(각자환거)

伎 재주 기, 

이때 건달바의 광대들은 우연히 왕이 오는 것을 보자 제각기 자기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是處希有 未曾所見(시처희유 미증소견) 今我正當在 是中作舍住(금아정당재 시중작사주)'

‘이곳은 희유하며 아직 본 적이 없는 곳이로다. 내 이제 이곳에 자리를 잡고 여기에 집을 짓고 살아야겠다.’

 

如是思惟已 群臣百官 尋迹而到(여시사유이 군신백관 심역이도)
이러한 사유를 끝내자, 여러 신하들과 백관들이 (왕의) 자취를 좇아 그곳에 이르렀으니, 

王告諸臣(왕고제신) '我前所聞 空中聲言(아전소문 공중성언)

‘汝行若見 希有難値之處(여행약견 희유난치지처) 汝應是中作舍住(여응시중작사주)'

왕이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전에 공중의 말하는 소리를 들은 바에 의하면 ‘네가 가다가 만나기 어렵고 보기 드문 곳을 보거든 거기에다 집을 짓고 살라’ 하였으니, 

 

我今見 此希有之處(아금견 차희유지처) 我應是中作舍住(아응시중작사주)

내가 이제 이 보기 드문 곳을 발견하였으니, 나는 마땅히 여기에 집을 짓고 살고자 하노라.'

 

卽捨本城 於此山中住(즉사본성 어차산중주)

그리고는 곧 본래 살던 성을 버리고 이 산에 살게 되었으니, 

 

是王初始在是中住 從是已後次第止住(시왕초시재시중주 종시이후차제지주)

이 왕이 최초로 여기에서 살기 시작한 것으로, 이로부터 사람들이 뒤를 이어 차례로 살기 시작하였는데 

 

是王元起造立宮舍(시왕원기조립궁사) 故名王舍城(고명왕사성)

왕이 처음으로 궁전을 만들어 세웠던 까닭에 왕사성(Rājagṛha)이라 불리는 것이니라.

略說王舍城本起竟(약설왕사성본기경) 이제 왕사성의 생겨난 근원=本起를 간략히 설명해 마치노라.


◎ 耆闍崛山中의 해석

▶經 耆闍崛山中(기사궁산중)
▶經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經 “耆闍”名鷲('기사'명취) “崛”名頭('굴'명두)

▶經 기사(gṛdhra)는 鷲=독수리을 말하고, 굴(kūṭa)은 頭=머리를 말하는 것이니,


問曰(문왈) 何以名鷲頭山(하이명취두산)?
묻나니, 어째서 취두산이라 이름하는 것인가?


答曰(답왈) 是山頂似鷲(시산정사취) 王舍城人 見其似鷲故(왕사성인 견기사취고)

共傳言鷲頭山(공전언취두산) 因名之爲鷲頭山(인명지위취두산) 鷲 독수리 취

답하나니, 이 산의 정상이 독수리의 머리를 닮아, 왕사성 사람들이 새매와 같음을 보고 서로 전하여 말하기를 취두산이라 하였기에, 그로 인하여 취두산이라 불리게 되었느니라.

 

復次 王舍城南屍陁林中(부차 왕사성남시타림중) 多諸死人(다제사인)

諸鷲常來噉之(제취상래담지) 還在山頭(환재산두) 時人遂名鷲頭山(시인축명취두산)

또한 왕사성 남쪽의 시타림(Śītavana)에는 시체가 많았는데, 온갖 독수리들이 항상 와서 쪼아 먹고는 다시 산 정상으로 돌아가 머물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취두산이라 부르게 되었고도 하느니라.

 

시타림(屍陀林, Śītavana)= 시타림(屍陀林), 서다림(逝多林), 한림(寒林) 등으로 일컬어짐. 양민 이상의 상위 계급은 화장을 하지만, 천민들은 시체를 그냥 갖다 버리는데, 천민들이 이 산 주변 숲의 서늘한 기운이 있는 곳을 시체 버리는 곳으로 사용하여, 그렇게 천민들이 시체를 갖다 버리는 장소라 하여 한림(寒林)이라 하였으며, 또한 시체들로 인해 두려움으로 머리털에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므로 한림이라 칭하였으며, 인적이 드물었기 때문에 부처님이 이곳을 좋은 수행처라고 생각하고 여기에서 수행을 하셨습니다.  

 

是山於五山中 最高大(시산어오산중 최고대) 多好林水 聖人住處(다호림수 성인주처)

이 산은 다섯 산 가운데서 가장 높고 크며, 산중에는 좋은 숲이 많고 물이 많아 성인이 머무시기에 좋은 만한 곳이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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