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枝末不覺(지말불각)의 六麤(육추)
以有境界緣故(이유경계연고) 復生六種相(부생육종상) 云何爲六(운하위육)
경계의 연이 있기 때문에 다시 여섯 가지의 모양을 내나니, 무엇이 그 여섯인가?
[세(細)라고 하는 이유는 아리야식이 아주 미세하여 범부와 이승(二乘)으로서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추(麤)는 그 작용이 거칠어 관심을 기울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麤 거칠 추
* 元曉 : 以有境界緣故 生六種相라고 한 것은 앞의 현식이 나타낸 경계에 의하기 때문에 칠식 가운데 여섯 가지 추상을 일으킨 것이니 이것은 '능가경'에서 말한 “경계의 바람에 의해 움직여서 칠식의 물결이 전전한다.”는 뜻을 풀이한 것이다.-물처럼바람처럼]
一者(일자) 智相(지상) 依於境界(의어경계) 心起分別愛與不愛故(심기분별애여불애고)
첫째는 지상이니, 경계상에 의지하여 마음이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음의 분별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지상(智相)= 육추(六麤)의 첫 번째. 지(智)는 지혜의 뜻이지만 여기서는 안다, 판단한다는 정도의 세속적 지혜이다. 대상의 존재물에 대하여 호오(好惡)를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지상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경계상이 확립되어 있다. 지상은 이 경계상이 외계의 사물(事物)이라고 망상하여 그에 대하여 ‘애(愛)와 불애(不愛)’를 분별하는 것이다.
[元曉 : 처음 한 가지 상(智相)은 제 칠식이고, 다음 네 가지는 생기식(生起識)에 있으며, 나중 한 가지상(業繫苦相)은 저것들이 낸 과보이다. 처음에 지상이라고 한 것은 제 칠식이다. 비로소 혜수(慧數)가 있어서 이것이 아(我)와 진(塵)을 분별하기 때문에 지상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갖추어 말한다면 본식을 반연하여 아(我)라고 계탁하고 본식이 나타낸 경계를 반연하여 아소(我所)라고 계탁하지만, 이제 이 가운데서는 추상에 의하여 나타내기 때문에 依於境界 心起라고 하였다. … 이제 칠식은 바로 안으로 향하여 아와 아소를 계탁하지만 마음 밖에 경계가 있음을 계탁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도리어 저 식을 반연한다고 말하였다.
* 지운 : (원효스님의 해설을 빌어) 경계상이 진여에 영향을 주어 지상(智相)으로 나타난다. 지상은 말나식(末那識)이라고 하며, 자아의식이다. 지상은 아리야식의 업식와 전식을 나라고 생각하고, 경계상을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효스님은 경계상을 경계상과 현식으로 나누어 경계상을 떠올리는 것을 현식, 떠올려지는 것을 경계상이라고 보았으며, 지상은 이 현식도 나라고 본다고 하였다. 유식에서는 말나식을 잠재의식이라고 보고 아리야식을 무의식이라고 보지만, 아비달마에서는 합하여 잠재의식이라고 본다.]
[지상(智相)을 밝히다. 제7식 말라식이며 유부무기 입니다. 하나의 점이 점점 진해져서 형상을 이루고 완벽한 형상을 이루게 됩니다. 이런 완벽한 형상을 이루게 된 상태가 경계상입니다. 그것이 투영되는 것이 제7식입니다. 여기서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분별하는 마음이 생겨서 물들어 있는 상태가 됩니다. 우리의 분별심은 모두 물든 유부의 상태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내가 세세생생 살아오면서 쌓았던 업이 좋아하면 좋아한대로 물들어 저장되고, 싫어하면 싫어한대로 물들어 저장되어서 이 생에 좋아하는 쪽으로 부딪히면 좋아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싫어하는 쪽으로 부딪히면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킵니다. 우리가 똑같은 사람을 보고 다른 마음을 일으키는 것도 이러한 것은 상대방 때문이 아니라 자기 속의 업 때문에 일어납니다. 자신의 업의 작용에 의해 다른 사람을 보고 마음에 들거나 이야기를 해보고 마음에 들기도 합니다. 부처님 공부를 하고 수행하자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내는 것은 그에 대한 요소가 있는 것입니다. 전생에 공부했던 흔적이 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라식을 넘으면 색수상행식 오온이 나옵니다. 오온은 불교에서 중요한 내용입니다. 색(色)은 루파이며, 변할 가능성이 있 는 것을 보고 변하지 못하도록 집착하는 것입니다. 무지, 아집, 즉 근본적인 집착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지 만 변하지 않는다고 착각합니다. 여기서 변하지 못하도록 집착하게 하는 것이 아집이며 색입니다. 수(受)는 뒤바뀌려는 느낌, 감수작용입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변하지 않는다고 착각해서 변하면 불안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집에서 일어나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변화를 못 보기 때문에 죽지 않는다고, 늙지 않는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죽을 날이 멀었다고 생각하고 공부를 하지 않지만, 내가 내일 죽는다고 가정해보시면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오온에서 불 안과 공포는 근본적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견성해서 진여를 본 순간 없어집니다. 진여를 보면 우리는 변화 속에 있음을 압니다. 하지만 아집에 휘둘리면 자기 자신은 변하지 않는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대상을 보면 변하고 있기 때문에 근본 적으로 불안한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 주변에 있는 것들을 갖다 붙힙니다. 변하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자신과 주변을 하나로 만들어서, 대상도 변하지 않는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이 자기화입니다. 모든 세포가 자기복제이듯이 우리 생각도 자기복제를 끝없이 합니다. 생각하고 분 별하고 판단하면서 정신적으로 복제를 합니다. 자기화하는 과정에서 내가 갖고 있는 업만큼 육신을 만들어 냅니다. 나의 형 상이 바로 내 업의 형상입니다. 만약 다음 생애에 잘 생겨지려면 선업을 쌓아야 하고 악업을 줄여야 합니다.
상(想)은 뒤 바뀌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으로 표상작용입 니다. B는 B, A는 A인데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상은 samjna(상즌냐)로 이 말은 합쳐서 판단하다, 하나로 판단하다는 뜻입니다. sam이 ‘하나로’ jna가 ‘판단하다’는 뜻입니다. 나 와 대상이 분리되어 있던 것을 하나로 합쳐서 판단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상, 행, 식 이런 것들의 끝없는 작용이 우리의 분별, 생각을 만들어냅니다.
행(行)은 상스카라로 이것은 ‘하나로 만들어진’이란 뜻입니 다. 상은 ‘하나로’, 스카라는 ‘만들다’는 뜻입니다. 행은 하나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일으킨 뒤에 실제로 행동을 일으켜 하나로 만드는 것입니다. 행위작용입니다. 결합생성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존재를 유위법(有爲法)이라고 하셨습니다. 위(爲)는 서로 다른 B와 A를 하나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상(想)은 하나로 만들려고 생각하는 것이고 행(行)은 움직여 하나로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로 만들어진 것이 우리의 의식으로 나타납니다.
식(識)은 뷔즌야나(Vijnana)로 Vi는 ‘다르게’라는 뜻이고 jnana는 ‘알다’는 뜻입니다. 식은 변화의 전후법을 다르게 인식 하는 것으로 분별작용입니다. A법과 B법이 한몸이 됨으로써 이 전의 구조와 차이를 보이게 되는데 B를 중심으로 A를 끌어붙입 니다. 이것이 ‘떠올라버림’이 되고 ‘나’가 됩니다. ‘나’를 중심으 로 끌어모으는 것을 오취온이라고 합니다. 취는 끌어모으려는 힘입니다. 그래서 이 몸이 업만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색수상 행식의 덩어리를 오취온이라고 합니다. 식이 분화되어 6식, 7 식, 8식으로 나눈 것입니다.- 통섭불교]
[여섯 가지의 거친 번뇌, 즉 육추(六麤)의 지말불각(枝末不覺)에 대한 설명으로,
첫 번째에 속하는 지상(智相)은 대상의 존재에 대하여 호오(好惡)를 분별하는 것이다. 지(智)는 분별지(分別智)로서 본론에서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분별한다’고 설하고 있다. 지상(智相)은 이성적(理性的) 지혜가 아니라 호오(好惡)를 결정하는 실천적인 판단, 즉 분별지(分別智)에 불과하다.
원효는 이 지상을 유식설(唯識說)의 제7식 말나식(第七末那識)에 적용하고 있다-전종식]
[말나식(末那識, 산스크리트어: manas의 意, manas-vijñāna 의식)은 유식유가행파를 비롯한 대승불교에서 마음을 이루고 있다고 보는 8식(八識: 8가지의 식) 가운데 하나로 제7식(第七識), 제7말나식(第七末那識) 또는 말나(末那)라고도 한다. 말나는 산스크리트어 마나스(manas: 意) 또는 마나스 비즈냐나(manas-vijñāna: 意識)를 음역한 것으로 의(意)라고도 의역된다. 제6식(第六識)인 의식(意識, mano-vijñāna)과 구별하기 위해서 의역인 의(意)라고 하지 않고 음역을 사용하여 말나(末那)라고 하는데, 《유가사지론》 · 《현양성교론》 등의 유식유가행파의 초기 논서와 진제삼장의 번역에서는 의(意)가 사용되고 있기도 한다.
유식유가행파의 교학에 따르면 말나식은 제8 아뢰야식을 소의(所衣)로 하여 성립된 식이며 또한 제6 의식(第六意識: 6번째 식)의 성립에 있어서 소의가 되는 식으로, 본질적인 성질은 끊임없는 사량(思量)이다. 말나식은 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를 이끌어 내어 현행하게 함으로써 현재적인 인식이 이루어지게 하고 생각과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말나식은 아뢰야식과 6식(六識: 6가지 식) 사이에서 매개 역할을 하여 끊임없이 6식이 일어나게 하는 작용을 하는 마음이다.
말나식의 본질적인 성질인 사량(思量)은 부정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긍정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전의(轉依: 질적 전환)를 득하지 못한 상태 즉 번뇌에 물들어 있는 상태의 염오식(染汚識)으로서의 말나식에서 사량은 오염된 자아의식 즉 자기중심주의로 나타나고, 반면 전의를 득한 상태 즉 번뇌가 정화된 상태의 청정식(淸淨識)으로서의 말나식에서 사량은 나와 남을 평등하게 보는 평등심(平等心)과 대자비심(大慈悲心)으로 나타난다.
전의를 득하지 못한 상태 즉 아직 번뇌에 물들어 있는 상태의 염오식으로서의 말나식의 3성의 관점에서의 성질은 유부무기(有覆無記)로, 아뢰야식의 견분(見分: 의식작용)을 끊임없이 자신의 내적 자아[自內我]라고 생각하고 집착하는 오염된 자아의식으로 작용한다. 구체적으로는, 염오식으로서의 말나식은 항상 아치(我痴) · 아견(我見) · 아만(我慢) · 아애(我愛)의 4번뇌 즉 4가지의 근본적인 번뇌성의 마음작용과 함께 일어나며, 이들 4번뇌 외에도 함께 일어나는 마음작용으로는 변행심소에 속한 5가지 마음작용 모두와 별경심소에 속한 혜(慧) 그리고 대수번뇌심소에 속한 8가지 마음작용이 있다. 이들과 4번뇌를 합하면 총 18가지의 마음작용이 염오식으로서의 말나식과 상응하여 언제나 함께 일어난다.
반면, 전의를 득한 상태의 말나식은 평등성지(平等性智, samatā-jñāna)로 질적 전환이 되어 차별심을 떠나서 나와 남을 평등하게 보고 대자비심을 일으킨다. 유식유가행파의 수행론에 따르면, 5위 중 제3위인 통달위에서 평등성지의 일부분이 증득되고 제5위인 구경위에서 불과(佛果)를 증득할 때 즉 성불(成佛)할 때 그 전체가 증득된다.-위키백과]
二者(이자) 相續相(상속상) 依於智故(의어지고) 生其苦樂(생기고락)
覺心起念相應不斷故(각심기념상응부단고)
둘째는 상속상이니, 지상에 의지하기 때문에 괴롭고 즐거음=苦樂을 느끼는 마음을 내어 생각(망념)을 일으켜 서로 상응하여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상속상(相續相)=앞의 지상을 바탕으로 애(愛)의 대상에 대하여서는 락수(樂受)를, 불애의 대상에 대하여서는 고수(苦受)를 일으켜, 이 인식을 지속적으로 일으키는 것이다.
[元曉 : 상속상이라는 것은 생기식(生起識)이요 식온(識薀)이다. 이것은 추분별이므로 모든 법을 두루 계탁하여 길이 상속하게 된다. 그리고 능히 애취(愛取)를 일으켜서 과거의 모든 행위를 인지(引持)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며, 윤생(潤生)을 얻게 한다. 이런 뜻으로 상속상이라고 한 것인데 이는 앞서 말한 상속심과는 다르다.
依於智란 것은 앞의 지상이 바탕이 되어 생기기 때문이다. 의지하는 바는 세상(細相)인지라 오직 사수일 뿐이나 능의(能依 ; 상속상-상속상이 지상에 의지하므로 상속상은 능의이고 지상은 소의이다)는 추상인지라 고락을 함께 일으키니 그 때문에 生其苦樂覺이라고 말한 것이다. 또한 소의인 지상은 안으로 반연하며 머물며 바깥 경계에는 계탁하지 않으므로 잠자는 것 같지만, 이 상속식은 안팎으로 두루 계탁하여 각관(覺觀)하여 마치 깨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覺心起念고 말한 것이니, 망념을 일으킨다는 것은 곧 법집분별(法執分別)이다.
* 心起念相應不斷故(심기념상응부단고) : 마음에 망념이 일어나 그 망념들이 서로 응하여 끊어지지 않음. 이는 경계(境界)가 실재라고 생각하여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내기 때문이다.]
[둘째는 상속상(相續相)이니 지상(智相)에 의지하기 때문에 고락(苦樂)을 느끼는 마음을 내어 생각을 일으켜 상응하여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제6식, 의식)” 우리는 분별, 생각을 끝없이 일으킵니다. 상속하지 않는 순간 우리의 육체는 죽은 것입니다. 끝없이 일어나는 이것을 의식이라고 합니다.]
[상속상은 ‘지(智)에 의하기 때문에 고락을 아는 마음(각심覺心)이 생긴다’고 설하고 있으므로 이는 분별지(分別智)를 기초로 하여 좋아하는(애愛) 대상에 대하여는 즐거움을 일으키고 좋아하지 않는(불애不愛) 대상에 대하여는 고통을 일으키는 그러한 인식을 지속적으로 일으키므로, 이를 상속상이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호오의 분별이나 고락의 수용(受容)은 그 각심(覺心) 즉 ‘알고 있는 마음’이 먼저 있으며, 대상의 명확한 인식은 그 뒤에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속담은 대상을 확실히 인식하기 전에 경험으로 축적된 경계심이 먼저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한적한 밤길을 홀로 거닐 때, 인식 대상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축적된 경험에 의하여 두려움(고수苦受)을 느끼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상속상의 작용 때문이다. 우리들의 인식은 먼저 대상을 확실히 인식한 뒤에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이미 경험에 의하여 주관적으로 자기가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인식의 형태가 지속되어 온 것이다. 이와 같이 상속상은 인식되는 고락을 수용하여 이를 상속시키는 것으로서, 이를 ‘마음이 염(念)을 일으켜 상응하여 끊어지지 않는다’고 설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염(念)은 망념을 말하는 것이지만 기억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으며, 경험이 기억의 마음에 축적되는 것을 말하여 상속상이라 일컫는다.
이 상속상에 대하여 원효와 법장 모두가 상당한 혼선을 빚고 있는 것 같다. 원효는 이를 제7말라식으로 해석하고 있고, 법장도 여기서 7식이라는 말은 쓰고 있지 않지만, 뒤에 나오는 의식자 즉차 상속식(相續識)이라는 기신론의 의식(意識)부분에서 진체(眞體)의 오역으로 말미암아 나오는, 상속식을 인용하여 이를 나와 내 것을 분별하는 집취상 등으로 해석하고 있다.]
三者(삼자) 執取相(집취상) 依於相續(의어상속) 緣念境界(연념경계)
住持苦樂(주지고락) 心起著故(심기착고)
셋째는 집취상이니, 상속상에 의지하여 경계를 반연하여 생각하고,
애착을 일으켜 괴로움과 즐거움에 빠져 마음에 집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위의 상속상에 의해 일으킨 고와 락에 집착심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는 좋아하는 것을 가지려 하는 것(貪)과 싫어하는 것을 버리려 하는 것(瞋)을 모두 포함한다.
* 著(착) : 着과 같음.
* 元曉 : 집취상(執取相)이라는 것은 곧 수온(受蘊)이니 식온에 의해 어기고 따르는 것을 분별하여 고락(苦樂)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依於相續 내지 住持苦樂이라고 한다.]
[집취상(執取相)을 밝히다. 상속상에 의지하여 경계를 반연하여 생각하고 고락에 머물러서 마음에 집착을 일으키기 때문이 다.(수受)” 이것은 느낌에 대한 설명으로 집취상은 느낌(수)을 모으는 것입니다. 애욕을 일으키는 첫 출발이 느낌(수)입니다. 색수상행식은 마음 작용의 근본 바탕을 설명한 것입니다. 우리는 느낌이 좋은 것은 계속 하려 하고 느낌이 안 좋은 것은 밀어내려고 하는, 이것이 애욕입니다. 애욕은 느낌(수)로부터 출발하여 모으려고 합니다. 수 다음에 취가 옵니다. 취는 좋으니까 모아서 내 곁에 두려고 하는 것입니다. ]
[집취상(執取相)은 앞에서 설명한 호오와 고락의 인식에 대하여, 즐거움의 대상은 지속시키려 집착하고, 고통의 대상은 피하려고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본문에서 ‘경계를 연염(緣念)한다’고 하는 것은 경계를 연으로 하여 망념을 일으켜 대상을 기억해 내는 것을 말한다. 원효는 이를 오온(五蘊)가운데 수온(受蘊)에 해당 시키고 있다. 고락을 유지시켜서 떼어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四者(사자) 計名字相(계명자상) 依於妄執(의어망집)
分別假名言相故(분별가명언상고)
넷째는 계명자상(計名字相)이니, 허망한 집착에 의지하여 거짓 이름과 언설의 모양을 분별하기 때문이다.
계명자상(計名字相)=앞의 고락의 경계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이름과 말을 붙여 분별하고 그릇되게 헤아리는 것을 말한다.
[위의 집취(執取)에 의해 일으킨 것을 진실로 믿고 거기에 시비(是非), 장단(長短), 호오(好惡), 미추(美醜) 등등의 이름을 짓고 분별하는 것.
* 元曉 : 계명자상(計名字相)이라는 것은 곧 상온(想蘊)이니, 앞의 수온에 의해 어기고 따르는 명언(名言)의 상을 분별하기 때문에 依於妄執 내지 名言相故라고 말한 것이다.]
[계명자상(計名字相)을 밝히다. 허망한 집착에 의지하여 가짜 명칭과 언설의 모양을 분별하기 때문이다.(상)” 수에 의해 이름과 모양을 만드는 것이 계명자상입니다. 어떤 느낌이 생기면 느낌에 의해서 이름도 만들고 모양도 만드는데 이것이 상입니다.]
[계명자상(計名字相)은 받는 즐거움과 괴로움에 대하여 즐거움에는 집착을 일으키고, 괴로움에는 혐오를 일으키나, 그와 같은 경계에 대하여 망집으로 여러 가지의 이름과 말을 적용하고 이를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망집에 의하여 헛된 명자어구(名字語句)를 붙여 더욱 조잡한 아집을 일으켜 ‘이것이 산이다’ ‘저것이 강이다’라고 이름을 붙여 집착한다. 그러나 그렇게 집착해 보아도, 그렇게 이름 붙여진 산이나 강이 하나도 동일한 산과 강은 있을 수 없으며, 천차만별의 산과 강이 집착에 의하여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것에 불과한 것으로서, 그 이름 자체가 그 산과 강의 실상(實相)을 나타내는 것이 아님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산과 강’이라는 동일한 개념을 모든 산과 강에 적용할 뿐만 아니라 그 ‘산이나 강’ 이라는 이름과 개념이 그 산이나 강의 실체가 아닌 것이며, 단지 가명(假名)이기 때문에, 이를 본문에서 ‘망집(妄執)에 의하여 헛된 이름과 말의 상(相)을 분별한다’라고 설하고 있는 것이다. 원효는 이를 상온(想蘊)에 해당시키고 있다.]
五者(오자) 起業相(기업상) 依於名字(의어명자) 尋名取著(심명취착) 造種種業故(조종종업고)
다섯째는 기업상이니 계명자상에 의지하여 이름을 따라 가면서 집착하여 여러 가지의 업을 짓기 때문이다.
기업상(起業相)=대상에 대하여 일상적인 행위를 일으키는 것으로, 계명자상이 의업(意業)임에 대하여 기업상은 신업과 구업이다. 이 업의 근저에는 번뇌가 있다 번뇌에 의해서 없을 일으키는 것이다.
[위의 계명자상(計名字相)에서 지어진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고 한정시켜 행위를 하여서 업을 일으키는 것.
* 元曉 : 기업상(起業相)은 곧 行蘊이니 상온이 취한 바의 명상(名相)에 의해 사수(思數)를 일으켜 선과 악을 만들기 때문에 依於名字 내지 造種種業故라고 말한 것이다.]
[기업상(起業相), 계명자상에 의지하여 이름을 따라 가면서 집착하여 여러 가지의 업을 짓기 때문이다.(행) 업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내 속에 있는 것들이 움직이고 활동하기 시작 하는 것입니다.]
[기업상(起業相)은 경계 대상에 대하여 일상적인 행위를 일으키는 것이다. 계명자상(計名字相)이 의업(意業)인 것에 대하여, 기업상은 신구(身口)의 두 업을 말한다. ‘명자(名字)에 의하여 이름을 찾고, 취착하여 여러가지 업을 만든다’라고 본문은 설명한다. ‘尋名取著=이름을 찾는다’는 것은 말로 표현된 대상을 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여러 가지 업(業)을 만든다’고 한 것은 말(口業)과 몸(身業)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六者(육자) 業繫苦相(업계고상) 依於業受報(의어업수보) 不自在故(부자재고)
여섯째는 업계고상으로, 업에 의한 괴로움에 얽매이 는 상이니,
기업상에 의지하여 과보를 받아 자재하지 못하기 때 문이다.
업계고상(業繫苦相)= 앞의 선악의 업에 의하여 계박(繫縛)되어 고락의 과보를 받는 것이지만, 특히 고(苦)를 받기 때문에 고상이라 한다.
[위의 기업상(起業相)에서 일으킨 행위 때문에 마음과 몸이 속박되어 자유롭지 못한 것.
* 元曉 : 업계고상(業繫苦相)이라는 것은 앞의 행온이 만든 업에 의해 삼유(三有 : 三界)와 육취(六趣)의 고통의 과보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依業受報 不自在故라고 한 것이다.]
[업계고상(業繫苦相),업에 의한 괴로움에 얽매이는 상이니, 기업상에 의지하여 과보를 받아 자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색) 각자의 모양이 만들어지는 것이 색입니다. 자기의 모양을 끝도 없이 만들어냅니다.
이와 같은 3세와 6추의 설명은 아뢰야식과 말라식, 의식, 오온에 대한 것입니다.]
[업계고상(業繫苦相)은 기업상(起業相)에서 업을 일으키면 그것을 원인으로 하는 여러 가지 고통스러운 결과가 나타난다. 그러한 업의 결과는 우리를 고통 속에 속박하여, 마음은 자유를 얻을 수 없게 된다.]
當知(당지) 無明能生一切染法(무명능생일체염법)
以一切染法皆是不覺相故(이일체염법개시불각상고)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무명이 능히 모든 염법을 내나니, 왜냐하면 모든 염법은 불각의 모양=不覺相이기 때문이다.
[근본불각과 지말불각을 총결하다. 무명이 모든 염법을 내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염법은 불각(不覺)의 모양이기 때문이다.” 12연기에서 무명이 일어나는 첫 움직임입 니다. 허공에 한 생각 일어나는 무명이 모든 것을 내는데 이것 이 12연기의 첫 회전입니다. 근본불각과 지말불각을 나누어서 설명했지만 근본적으로 무명으로 총결됩니다. 무지, 아집에 대해 알면 부처고 이것을 모르면 중생입니다. 우리는 무지하기 때문에 끝없는 아집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것이 나(중생)입니다. 중생이나 부처가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바로 일심(一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존재하는 그대로 부처 세상입니다. 어두운 곳에 불을 켜면 밝아집니다. 밝음과 어두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같은 것입니다. 불이 있으면 밝았다가 불이 없으면 어두운것 뿐입니다. 그래서 관점에 따라 이 세상은 부처세계이기도 하고 지옥이기도 합니다. 있는 것은 그냥 그대로 존재 합니다. 이왕이면 부처세계에서 사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진리를 알면 우리가 걷는 한 발자국이 그 의미가 달라지고, 그 자체가 거룩해지고 어마어마해집니다. 무명을 깨트리고 거룩한 생각을 하는 순간 이 세상은 바뀌어집니다.]
[이상에서 삼세 육추를 설명하였으나, 결론적으로 이는 모두 염법(染法)의 상(相)이며, 이 염법의 원인을 근본무명에서 찾고 있다. 따라서 인간만사는 이 삼세 육추에서 벗어나지 못하므로 결국 근본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이점을 ‘무명은 능히 일체의 염법을 낳는다. 일체의 염법은 모두 이 불각의 상이기 때문’이라고 설하고 있다]
* 不覺
不覺 | 根本 不覺 | ||||
枝末 不覺 | 三 細 |
無明業相 | 무명으로 인해 마음이 동요함 | 아리야식 | |
能見相 | 인식 작용이 있게 됨. | ||||
境界相 | 인식 작용 때문에 경계가 있음. | ||||
六 麤 |
智相 | 애증, 염정, 선악의 분별 | 말나식 | ||
相續相 | 분별지에 따라 괴롭고 즐거운 느낌이 상속 | 識 | |||
執取相 | 경계에 애착을 일으킴. | 受 | |||
計名字相 | 개념이나 관념을 만들어 분별함. | 想 | |||
起業相 | 계명자상에 의해 의미부여, 한정시켜 행위 | 行 | |||
業繫苦相 | 업 때문에 제한이 있고 고를 받음. | 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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