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 擧失顯得 하열함을 들어서 수승함을 나타내다
(1) 如來境界의 不見人 여래의 경계와 보살의 경계를 보지 못하는 성문들
于時에 上首諸大聲聞인 舍利弗과 大目犍連과 摩訶迦葉과 離婆多와 須菩提와 阿㝹樓馱와 難陀와 劫賓那와 우시 상수제대성문 사리불 대목건련 마하가섭 이바다 수보리 아누루타 난타 겁빈나 迦旃延과 富樓那等의 諸大聲聞이 在逝多林호대 가전연 부루나등 제대성문 재서다림 |
于時에 上首諸大聲聞인 舍利弗과 그 때에 모든 큰 성문들의 상수인 사리불,
大目犍連과 摩訶迦葉과 離婆多와 須菩提와 대목건련,마하가섭, 이바다, 수보리와,
犍 불깐 소 건, 迦 부처 이름 가, 葉 잎 엽, 땅 이름 섭, 婆 할미 파,㝹 토끼 새끼 누, 馱 짐 실을 태, 짐 실을 타,
賓 손 빈, 물리칠 빈, 旃 기 전, 延 끌 연, 덮개 연,
阿㝹樓馱와 難陀와 劫賓那와 迦旃延과 富樓那等의 諸大聲聞이 在逝多林호대
아누루타, 난타, 겁빈나, 가전연, 부루나 등의모든 큰 성문들이 서다림에 있었으나,
하열한 성문들의 근기를 들어서 수승한 보살들의 근기를 나타내는 부분이다. 화엄경은 대승보살불교를 선양하는 가르침이므로 소승성문들을 등장시킴으로 대승보살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소승성문들이란 세존의 10대제자들이 그 대표다. 이들을 여기에 등장시켜 성문들은 비록 10대제자라 하더라도 부처님이나 보살들의 경지를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다고 함으로 후기에 발달한 대승불교와 소승불교, 내지 초기근본불교와의 차이점을 확실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서다림(逝多林)= 범어 Jetavana. 舊稱(구칭)은 祇陀林, 祇洹林. 逝多태자가 소유한 숲이었으므로 逝多林이라 함. 수달장자가 사서 절을 지어 부처님께 바쳤다. 곧 기원정사를 말하는 것. 서다(逝多)→범어 Jetr. 또는 Jeta. 또는 誓多라 하며, 舊稱은 祇陀라 함. 중인도 사위국 바사익왕의 태자의 이름. 번역하여 戰勝. 바사익왕이 이웃 나라와 싸워 이긴 날 태어났으므로 戰勝이라 이름함.
급고독원(給孤獨園)= 기수급고독원의 약칭, 급고독장자가 祇陀태자의 원림을 사서 부처님께 공양하였기 때문에 급고독원이라 함.
급고독(給孤獨)= 범어 anathapindada. 阿那陀擯茶陀라 음역. 본 이름은 須達이며, 善施라 번역함. 祇陀태자에게 그 園林을 사서 기원정사를 지어 부처님께 바친 사람.
(2) 如來의 境界 여래의 경계
皆悉不見如來神力과 如來嚴好와 如來境界와 如來遊戲와 如來神變과 如來尊勝과 如來妙行과 如來威德과 개실불견 여래신력 여래엄호 여래경계 여래유희 여래신변 여래존승 여래묘행 여래위덕 如來住持와 如來淨刹하나니라 여래주지 여래정찰 |
皆悉不見 如來神力과 如來嚴好와 그러나 모두 여래의 신통한 힘과 여래의 잘생긴 모습=嚴好과
如來境界와 如來遊戲와 如來神變과 여래의 경계와 여래의 유희와 여래의 신통변화=神力와
如來尊勝과 如來妙行과 如來威德과 여래의 높으심=尊勝과 여래의 묘한 행=妙行과 여래의 위덕과
如來住持와 如來淨刹하나니라 여래의 머물러 지니심=住持과 여래의 청정한 세계=淨剎들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3) 菩薩의 境界 보살의 경계
亦復不見不可思議菩薩境界와 菩薩大會와 菩薩普入과 菩薩普至와 菩薩普詣와 菩薩神變과 菩薩遊戲와 菩薩眷屬과 역부불견 불가사의 보살경계 보살대회 보살보입 보살보지 보상보예 보살신변 보살유희 보살권속 菩薩方所와 菩薩莊嚴師子座와 菩薩宮殿과 菩薩住處와 菩薩所入三昧自在와 菩薩觀察과 菩薩頻申과 菩薩勇猛과 보살방소 보살장엄 사자좌 보살궁전 보살주처 보살소입 삼매자재 보살관찰 보살빈신 보살용맹 菩薩供養과 菩薩受記와 菩薩成熟과 菩薩勇健과 菩薩法身淸淨과 菩薩智身圓滿과 菩薩願身示現과 菩薩色身成就와 보살공양 보살수기 보살성숙 보살용건 보살법신청정 보살지신원만 보살원신시현 보살색신성취 菩薩諸相具足淸淨과 菩薩常光衆色莊嚴과 菩薩放大光網과 菩薩起變化雲과 菩薩身徧十方과 菩薩諸行圓滿하나니라 보살제상 구족청정 보살상광 중색장엄 보살방대광망 보살기변화운 보살신변시방 보살제행원만 |
亦復不見 不可思議 菩薩境界와 菩薩大會와 菩薩普入과 菩薩普至와
또 불가사의한 보살의 경계와 보살의 대회, 보살의 두루 들어감=普入, 보살의 두루 이르름=普至와,
菩薩普詣와 菩薩神變과 菩薩遊戲와 菩薩眷屬과 菩薩方所와
보살의 두루 널리 나아감=普詣, 보살의 신통변화=神變, 보살의 유희=遊戲, 보살의 권속, 보살의 방소와,
菩薩莊嚴師子座와 菩薩宮殿과 菩薩住處와 菩薩所入三昧自在와
보살의 장엄사자좌, 보살의 궁전, 보살의 계신 곳=住處, 보살이 들어간 삼매의 자재함과,
菩薩觀察과 菩薩頻申과 菩薩勇猛과 菩薩供養과 菩薩受記와
보살의 관찰, 보살의 기운 뻗음=頻申, 보살의 용맹, 보살의 공양, 보살의 수기 받음과,
菩薩成熟과 菩薩勇健과 菩薩法身淸淨과 菩薩智身圓滿과
보살의 성숙함, 보살의 용건함, 보살의 청정한 법신, 보살의 지혜의 몸이 원만함과
菩薩願身示現과 菩薩色身成就와 菩薩諸相 具足淸淨과
보살의 원하는 몸=願身으로 시현, 보살의 육신(색신)을 성취함, 보살의 모든 모습이 구족히 청정함과
菩薩 常光衆色莊嚴과 菩薩 放大光網과 菩薩 起變化雲과
보살의 항상 있는 광명이 여러 빛으로 장엄함, 보살이 놓는 큰 광명의 그물, 보살이 일으키는 변화하는 구름과
菩薩身 徧十方과 菩薩諸行圓滿하나니라
보살의 몸이 시방에 두루함, 보살의 제행이 원만함을 보지 못했느니라.
(4) 不見의 因由 여래의 경계와 보살의 경계를 보지 못하는 이유
① 過去의 因緣 과거의 인연
如是等事를 一切聲聞諸大弟子가 皆悉不見하니 何以故오 以善根不同故며 本不修習見佛自在善根故며 여시등사 일체성문 제대제자 실견불견 하이고 이선근 부동고 본불수습 견불자재 선근고 本不讚說十方世界一切佛刹淸淨功德故며 本不稱歎諸佛世尊種種神變故며 本不於生死流轉之中에 본불찬설 시방세계 일체불찰 청정공덕고 본불칭탄 제불세존 종종신변고 본불어생사유전지중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故며 本不令他로 住菩提心故며 本不能令如來種性으로 不斷絶故며 本不攝受諸衆生故며 발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고 본불영타 주보시심고 본불능영 여래종서 부단절고 본불섭수 제중생고 本不勸他하야 修習菩薩波羅蜜故며 本在生死流轉之時에 不勸衆生하야 求於最勝大智眼故며 本不修習生一切智諸善根故며 본불권타 수습보살 바라밀고 본재생사 유전지시 불권중생 구어최슫 대지안고 본불수습 생일체지 제선근고 本不成就如來出世諸善根故며 本不得嚴淨佛刹神通智故며 本不得諸菩薩眼所知境故며 本不求超出世間不共菩提諸善根故며 본불성취 여래출세 제선근고 본불득엄정 불찰신통지고 본불득 제보살안소지경고 본불구 초출세간 불공보리제선근고 本不發一切菩薩諸大願故며 本不從如來加被之所生故며 本不知諸法如幻하고 菩薩如夢故며 本不得諸大菩薩의 廣大歡喜故니 본불발 일체보살 제대원고 본불종 여래가피지소생고 본불지제법여환 보살여몽고 본불득제대보살 광대환희고 如是가 皆是普賢菩薩智眼境界라 不與一切二乘所共일새 以是因緣으로 諸大聲聞이 不能見하며 不能知하며 不能聞하며 여시 개시보현보살 지안경계 불여일체 이승소공 이시인연 제대성문 불능견 불능지 불능문 不能入하며 不能得하며 不能念하며 不能觀察하며 不能籌量하며 不能思惟하며 不能分別하나니 불능입 불능득 불능염 불능관찰 불능주량 불능사유 불능분별 是故로 雖在逝多林中이나 不見如來諸大神變이니라 시고 수재서다림중 불견여래 제대신변 |
如是等事를 一切 聲聞諸大弟子가 皆悉不見하니
이러한 일들을 일체의 성문들과 모든 대제자들이 다 보지 못하나니,
何以故오 以善根 不同故며 왜냐하면, 선근이 같지 않기 때문이요,
큰 성문제자들이 여래의 경계와 보살의 경계를 보지 못하는 이유를 과거의 인연과 현재의 인연을 들어서 밝혔다.
청량스님은 소(疏)에서, “제3 여래의 경계를 보지 못하는 이유란 모두가 근본을 폐해버리고 자취만을 쫒아가기 때문이니, 일불승의 인과를 나타냄으로 깊고 깊음을 함께하지 못한 것이다. 모든 후학들을 독려하여 원인의 종자를 익히게 한 것이다.
글 가운데 둘이니 먼저는 묻고 뒤의 ‘선근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이하는 해석이다. 묻는 뜻을 말하면, ‘몸은 기원정사에 있고 눈은 세존의 법회를 대면하고 있으나, 그러나 신통과 변화를 보지 못한다.’ 그 까닭을 무엇인가. 뜻을 해석하여 말하되, ‘저 부처님이나 보살의 경계는 수승하여 숙세의 인연과 현세의 인연이 모두 다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해와 달이 하늘에서 빛나는데 맹인은 보지 못하는 격이며, 우레 소리가 땅을 진동해도 귀가 어두운 사람은 듣지 못하는 격이다. 도가 계합하면 이웃이지만 몸이 가까이 있는 것은 아닌 까닭이다. 보살은 먼 곳에서부터 이르러 왔으나 성문들은 법회 가운데 있어도 알지 못한 것이다. 경문이 스스로 널리 해석하였다.”라고 하였다.
本不修習 見佛自在 善根故며 본래부터 부처님을 뵙는 자재한 선근을 닦아 익히지 않았기 때문이며,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을 부처님으로 보아 그들의 불성 속에 본래 갖춘 6바라밀과 사섭법과 사무량심등의 선근을 닦아 드러내지 않는다면 어찌 진정한 불법을 아는 사람이라 하겠는가.
本不讚說 十方世界一切佛刹 淸淨功德故며 본래부터 시방세계 모든 불국토의 청정한 공덕을 찬탄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시방세계 모든 불국토의 청정한 공덕, 즉 온 세상을 아름답게, 긍정적으로 보는 안목이 없다면 어찌 불법을 알 수 있겠는가.
本不稱歎 諸佛世尊 種種神變故며 본래부터 제불세존의 갖가지 신통과 변화을 칭탄(칭찬)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모든 제불세존과 아울러 일체중생들의 진여불성과 본래 열반의 공덕을 찬탄하지 않는다면 무슨 불법을 아는 사람이라 하겠는가.
本不於生死流轉之中에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故며
또한 본래부터 생사에서 헤매는 가운데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지 않은 때문이며,
본래 보리심이란 생사에 헤매면서 내는 것이다. 중생들의 생사고락을 버리고 무슨 보리심을 발할 것인가.
本不令他로 住菩提心故며 본래부터 다른 이들을 보리심에 머물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보리심은 곧 이타심이다. 자신 스스로도 이타심이 없는데 어찌 다른 사람을 가르쳐서 이타심에 머물게 할 수 있겠는가.
本不能令 如來種性으로 不斷絶故며 본래부터 여래의 종성을 단절되지 않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여래의 종자를 끊어지지 않게 하려면 여래를 잘 알아야 한다. 여래의 경계를 모르는데 어찌 여래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
本不攝受 諸衆生故며 본래부터 모든 중생을 거두어 들임=攝受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자기 자신 한 몸 거두기도 바쁜데 어찌 다른 중생들을 거두어 줄 마음이 있겠는가.
本不勸他하야 修習菩薩波羅蜜故며
본래부터 다른 이를 권하여 보살의 바라밀다를 닦아 익히도록 하지 못한 때문이며,
만약 스스로도 보살의 바라밀을 모른다면 어찌 다른 사람에게 권하여 보살의 바라밀을 닦게 할 수 있겠는가.
本在 生死流轉之時에 不勸衆生하야 求於最勝大智眼故며
본래 생사유전에 처해 있을 때 중생들에게 최승의 큰 지혜안을 구하도록 권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생사의 바다에서 헤맬 때에야 비로소 큰 지혜의 뜨게 된다. 생사라면 원수 보듯이 하는 이들이 어찌 가장 수승하고 큰 지혜의 눈을 구할 수 있겠는가. 다른 중생들에게 권하는 일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本不修習 生 一切智 諸善根故며 본래부터 온작 지헤를 내는 모든 선근을닦아 익히지 못했기 때문이며,
本不成就 如來出世 諸善根故며 본래부터 여래의 출세간의 모든 선근을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本不得嚴淨 佛刹神通智故며 본래부터 부처님 세계를 장엄하는 신통과 지혜를 얻지 못한 때문이며,
本不得 諸菩薩眼 所知境故며 본래부터 모든 보살의 눈으로 아는 경계를 얻지 못한 때문이며,
本不求 超出世間 不共菩提 諸善根故며 본래부터 세간을 초월하여 함께 하지 않는 보리의 선근을 구하지 못한 때문이며,
本不發 一切菩薩 諸大願故며 본래부터 모든 보살의 큰 서원을 내지 않은 때문이며,
석가세존은 80고령에도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다른 중생들에게 가르치려고 그토록 노력하였건만 소승 아라한들은 다른 중생들을 가르치려는 보살의 마음이 없어서 대승보살들로부터 이와 같은 비판을 듣는가.
本不從 如來加被之所生故며 본래부터 여래의 가피로부터 태어나지 아니한 때문이며,
本不知 諸法如幻하고 菩薩如夢故며 본래부터 모든 법이 환상과 같고, 보살이 꿈같음을 알지 못한 때문이며,
本不得 諸大菩薩의 廣大歡喜故니 본래부터 여러 대 보살의 광대한 환희를 얻지 못한 때문이며,
如是가 皆是 普賢菩薩 智眼境界라 不與一切 二乘所共일새
이와 같은 것이 모두 보현보살의 지혜안의 경계로서 모든 이승들과 함께 할 바가 못되기에
以是因緣으로 諸大聲聞이 不能見하며 不能知하며 不能聞하며 不能入하며
이러한 인연으로 모든 대성문들이 능히 보지 못하고, 능히 알지 못하고, 능히 듣지 못하고, 들어가지 못하고,
不能得하며 不能念하며 不能觀察하며 不能籌量하며 不能思惟하며 籌 산대 주, 살 주
능히 얻지 못하고, 능히 생각하지 못하고, 능히 관찰하지 못하고, 능히 헤아리지 못하고, 능히 사유하지 못하고,
不能分別하나니 능히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니,
是故로 雖在逝多林中이나 不見 如來諸大神變이니라
이런 까닭에 비록 서다림 중에 있으면서도 여래의 여러 가지 큰 신통변화를 보지 못한 것이니라.
다른 이를 먼저 이롭게 하고, 불쌍한 중생들을 먼저 돌보려는 대승보살들의 길은 이와 같이 다르다는 것을 구체적인 10대 제자들의 이름과 구체적인 행위들을 낱낱이 들어가면서 밝혔다.
대만의 증엄(證嚴,1937년 5월 4일 생)스님은 불교의 밥을 먹고 불자들의 돈으로 기독교 교회를 지어주고, 성당을 세워주고, 회교사원까지 지어주지 않았던가. 진정한 대승보살은 이와 같은 사람이다.
또 증엄스님은 보천삼무(普天三無)라는 기치를 내걸고 자비행을 실천하고 있다.
“천하에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없기를.
천하에 내가 믿지 않는 사람이 없기를.
천하에 내가 용서하지 않는 사람이 없기를.
마음의 번뇌와 원망, 근심을 버리고 만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허공 가득 다함이 없기를.”
위와 같은 말씀을 몸소 실천하여, 사랑으로 세상을 윤택하게 가꾸며 살아가는 분이다. 이것이 대승보살불교의 본보기다.
② 現在의 因緣 현재의 인연
復次諸大聲聞이 無如是善根故며 無如是智眼故며 無如是三昧故며 無如是解脫故며 無如是神通故며 無如是威德故며 부차제대성문 무여시선근고 무여시지안고 무여시삼매고 무여시해탈고 무여시신통고 무여시위덕고 無如是勢力故며 無如是自在故며 無如是住處故며 無如是境界故라 是故로 於此에 不能知하며 不能見하며 不能入하며 무여시세력고 무여시자재고 무여시주처고 무여시경계고 시고 어차 불능지 불능견 불능입 不能證하며 不能住하며 不能解하며 不能觀察하며 不能忍受하며 不能趣向하며 不能遊履하며 又亦不能廣爲他人하야 불능증 불능주 불능해 불능관찰 불능인수 불능취향 불능유리 우역불능광위타인 開闡解說하며 稱揚示現하며 引導勸進하야 令其趣向하며 令其修習하며 令其安住하며 令其證入이니 何以故오 諸大弟子가 개천해설 칭양시현 인도권진 영기취향 영기수습 영기안주 영기증입 하이고 제대제자 依聲聞乘하야 而出離故로 成就聲聞道하며 滿足聲聞行하며 安住聲聞果하며 於無有諦에 得決定智하며 常住實際하며 의성문승 이출리고 성취성문도 만족성문행 안주성문과 어무유제 득결정지 상주실제 究竟寂靜하며 遠離大悲하며 捨於衆生하며 住於自事일새 於彼智慧에 不能積集하며 不能修行하며 不能安住하며 구경적정 원리대비 사어중생 주어자사 어피지혜 불능적집 불능수행 불능안주 不能願求하며 不能成就하며 不能淸淨하며 不能趣入하며 不能通達하며 不能知見하며 不能證得이라 불능원구 불능성취 불능청정 불능취입 불능통달 불능지견 불능증득 是故로 雖在逝多林中하야 對於如來나 不見如是廣大神變이니라 시고 수재서다림중 대어여래 불견여시 광대신변 |
復次 諸大聲聞이 無如是善根故며 無如是智眼故며 無如是三昧故며 無如是解脫故며 無如是神通故며
또 여러 큰 성문들에게는 그러한 선근이 없고, 그러한 지혜안이 없고, 그러한 삼매가 없고, 그러한 해탈이 없고,
無如是威德故며 無如是勢力故며 無如是自在故며 無如是住處故며
그러한 신통이 없고, 그러한 위덕이 없고, 그러한 세력이 없고, 그러한 자재함이 없고, 그러한 머물 곳=住處가 없고,
無如是境界故라 그러한 경계가 없기 때문이라
앞에는 소승 아라한들이 대승보살도를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까닭의 과거인연을 밝혔고, 여기는 현재의 인연을 밝혔다.
是故로 於此에 不能知하며 不能見하며 不能入하며 不能證하며 不能住하며
그러므로 그것을 능히 알지 못하고, 능히 보지 못하고, 능히 들어가지 못하고, 능히 증득하지 못하고, 능히 머물지 못하고,
不能解하며 不能觀察하며 不能忍受하며 不能趣向하며 不能遊履하며 遊 놀 유, 履 밟을 리, 신 리
능히 이해하지 못하고, 능히 관찰하지 못하고, 능히 참아내지 못하고, 능히 나아가지 못하고, 능히 노닐지 못하며,
又亦 不能廣爲他人하야 開闡解說하며 稱揚示現하며 闡 열 천, 밝힐 천
또한 널리 다른 이들을 위하여 천명=열어 보이고, 해설하거나, 칭양= 찬탄해 보이거나,
引導勸進하야 令其趣向하며 令其修習하며 令其安住하며
정진하도록 권해 인도하거나, 취향= 향하여 나아가게 하거나, 修習=닦아 익히게 하거나, 안주하게 하거나,
令其證入이니 證入=증득하여 들어가게 하지 못하는 것이니,
何以故오 諸大弟子가 依聲聞乘하야 而出離故로 成就 聲聞道하며 滿足聲聞行하며
왜냐하면 모든 큰 제자들이 성문승에 의지해 출리=벗어났으므로, 성문의 도를 성취하고, 성문의 행을 만족히 하고,
安住聲聞果하며 於無有諦에 得決定智하며 常住實際하며 究竟寂靜하며
성문의 과보=果에 안주하고, 있다 없다=有無의 경계에서 결정한 지혜를 얻고, 항상 실제에 머물러 적정에 구경하고,
遠離大悲하며 捨於衆生하며 住於自事일새 대비를 멀리 떠나 중생을 버리고 자기 일에만 머물기에
성문승과 성문도와 성문행과 성문과의 특징에 대해서 분명하게 밝혔다. ‘없다 있다’하는 진리는 고정된 것이 아니어서 있음이 없음이고 없음이 있음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반야심경에 색이 즉시 공이고 공이 즉시 색이라고 하였다. 또 실제에 항상 머무른다는 것은 진여자성에만 머물고 진여자성에 머문 채 진여자성의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뜻이다. 견성(見性), 즉 참 성품만을 보고 그 참 성품에 항상 주저앉아 있다는 뜻이다. 또 끝까지 고요하다는 것은 열반을 증득하여 그 열반에 안주하고 더 이상 중생을 위한 대자대비의 활동이 없는, 자신의 안녕만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소승수행자들의 특징이다. 그래서 대승보살들의 비판을 막을 수 없었다.
유마경에서 일개의 유마거사라는 세속인에게 세존의 가장 큰 10대 제자들이 자신들의 수행에 대해서 사정없이 비난을 받은 적이 있어서 그가 병석에 있을 때 위문을 가라는 부처님의 명령을 한 사람도 받들지 못하고 결국 문수보살이 앞장을 서서 가게 된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於彼智慧에 不能積集하며 不能修行하며 不能安住하며
그러한 지혜는 능히 積集= 쌓아 모을 수 없고, 능히 수행=닦아 행할 수 없고, 능히 안주할 수 없고,
不能願求하며 不能成就하며 不能淸淨하며 不能趣入하며
능히 願求=원하여 구할 수 없고, 능히 성취할 수 없고, 능히 청정케 할 수 없고, 능히 趣入=취하여 들어 갈 수 없고,
不能通達하며 不能知見하며 不能證得이라
능히 통달할 수 없고, 능히 知見=알고 볼 수 없으며, 능히 증득할 수 없는 것이라
한마디로 불법은 지혜다. 자비의 실천도 지혜가 완전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지혜나 보살의 지혜에 대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밝혔다.
是故로 雖在 逝多林中하야 對於如來나 不見如是 廣大神變이니라
그러므로 비록 수다림에서 여래를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그와 같은 큰 신통변화=神變을 보지 못한 것이니라.
앞에서 먼저 밝혔듯이 10대 제자들을 위시하여 5백 명의 성문들은 비록 이 법회가 이뤄지고 있는 서다림에서 부처님과 또 무수한 보살들과 함께 있고, 여래를 대면하고 있으면서도 이와 같은 부처님의 큰 신통변화와 보살들의 신통변화를 전혀 보지 못한 것이다.
“그때 상수(上首)의 모든 대성문인 사리불” 이하 “이 같은 광대한 신변(神變)을 보지 못한다”에 이르기까지 50행의 경문은 이상의 성문이 이 같은 선근의 종자가 없기 때문에 여래가 서다림에 거처하면서 신변으로 장엄한 광대한 불찰과 보살 대중의 바다를 숙세(宿世)의 선근이 없어서 모두 다 보지 못함을 밝힌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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