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6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6. 제1권에서 화엄경의 특징을 열 가지로 나눈 것에서 여섯 번째 항목의 가르침을 설하는 시기의 구분을 밝힘이란,
처음으로 깨달은 마음의 각심(覺心)을 증득하면, 도(道)의 근원이 허적(虛寂)하고 지혜가 삼세에 뚜렷해서, 처음과 같이 함께 멸진하는 것이니, 그러하다면 만상(萬象)을 회통하고, 유(有)와 무(無)가 가지런하며, 가고 옴의 거래(去來)가 융화되고, 옛과 지금의 고금(古今)에 인(印)치게 되면서 오직 신(神)만이 활달하고, 진(眞)에 응하는 것이 담백하여지는 때문에 정(情)이 없어지면서 지혜가 서고, 상념이 끊어지면서 자비하게 되며,
원만한 음성이 멀리까지 퍼지면서 근기를 따라 이익을 얻게 되는 것이, 마치 비가 골고루 내려서 온갖 화초를 다 적시는 것과 같고,
마치 빈 골짜기에서 소리를 내자마자 메아리가 따라서 소리를 내는 것과 같이,
모든 근기가 이익을 얻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지혜에 맡겨 무심(無心)한 까닭에 찰나도 사이(際)가 없거늘 어찌 옛과 지금의 고금(古今)이 있을 수 있겠는가!
간략히 방편(權)과 실제(實)에 의거해서 가르침이 일어난 전후의 시기를 열 가지로 나눠 세운다면,
첫째, 역사경(力士經)에서 설한 바와 같이 부처님께서 처음 성도하신 후의 초7일(初七日) 동안 사유한 뒤에 녹야원에서 법을 설하신 것이고,
둘째, 대품경에서 설한 바와 같이 부처님께서 처음 녹야원에서 4제(四諦)의 법륜을 굴리시니, 무량한 중생들이 성문의 마음을 발하였으며, 나아가 독각의 마음과 대보리심도 발한 등의 일이며,
셋째, 법화경에서 설한 바와 같이 3ㆍ7일 만에 녹야원에 나아가서 법을 설하신 것이고,
넷째, 사분율(四分律)과 살바다론(薩婆多論)에서 설하는 바와 같이 6ㆍ7일 만에 법을 설하신 것이며,
다섯째, 흥기행경(興起行經)과 출요경(出曜經)에서 설한 바와 같이 7ㆍ7일 만에 법을 설하신 것이며,
여섯째, 오분율(五分律)에서 설하는 바와 같이 8ㆍ7일 만에 법을 설하신 것이며,
여덟째, 십이유행경(十二遊行經)에서 설한 바와 같이 1년간 법을 설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며,
아홉째, 현 당나라의 현장 법사가 여래의 성도를 판명한 것에 의거하자면, 분명히 초7일(初七日)이 지난 후에야 화엄경을 설하셨다는 것이며,
열째, 나 이통현은 지금 이 화엄법계의 문(門)을 의지할 뿐, 앞에서 설한 것은 의지하지 않으니,
즉 화엄경에서 설하는 바와 같이 법계본지(法界本智)의 성품이 스스로 체(體)와 용(用)이고, 이(理)와 사(事)인 대자비의 근본실제인 본실(本實)을 종지로 삼고 있을 뿐, 정견(情見)에 따라 시기를 구분한 설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옛과 지금의 고금(古今)이라는 소견이 멸진해서 항상 법륜을 굴리면서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이니, 이는 법이 본래 그러한 법여시(法如是)인 것이다.
이상으로 위에서 설한 것은 모두가 근기에 따라 그들 스스로의 시기의 구분을 본 것으로, 여래께서는 이와 같이 부동(不同)한 것이 아니며, 여래의 근본법의 본법(本法)과 지체(智體)에 시간이 없는 무시(無時)라는 것을 믿고 이해하도록 한 것이 바로 여래께서 법을 설하신 때의 여래설법시(如來說法時)이며,
정(情)이 없어지고 마음이 멸진해서 지혜에 맡겨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 바로 여래께서 성불해서 법률을 굴리는 정법륜시(轉法輪時)인 것이다.
혹이라도 정(情)으로 견해를 세워서 “여래는 이러한 때에 세상에 출현해서 이러한 때에 법을 설했다”고 말한다면,
이는 모두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정견(情見)이 될 뿐인 것이다.
이와 같이 화엄경의 교문(敎門)은 비롯함이 없고 마침도 없는 무시무종(貿始無終])으로 그 문(門)을 삼나니,
정견(情見)을 좇아 억지로 시기를 구분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 화엄경은 곧 때가 없는 것이 때가 되는 무시지시(無時之時)인, 일체시(一切時)에 설한 것이니,
법화경에서 “내가 성불한 이래로 무량한 아승기겁을 거쳐 왔다”고 한 것은, 본래 양(量)도 없음을 말한 것이거늘,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법을 설한 때를 삼고자 하겠는가!
모두가 여래의 한 지혜가 작용한 일지용(一智用)이며, 하나의 원만한 음성의 일원음(一圓音)인 것이며,
일찰나시(一剎那時)이니, 이는 때 없는 때의 무시지시(無時之時)를 설법한 때의 설법시(說法時)로 삼은 때문이다.
7.제1권에서 화엄경의 특징을 열 가지로 나눈 것에서의 일곱 번째 정토의 방편과 실제를 밝힘이란,
무릇 지혜가득차서 도도(滔滔)한 지해(智海)는 너무나 망망해서 그 끝을 찾을 수 없고, 滔 물 넘칠 도
깊고 깊은 진원(眞源)도 워낙 넓고 커서 그 바닥을 찾기가 힘드나니,
비로자나의 법계는 체(體)의 상(相)이 모래알과 같은 많은 세계의 진사(塵沙)를 총괄하고,
방광(方廣)의 허령(虛靈)한 문은 청정함과 더러움이 무극(無極)에서 서로 사무치건만,
다만 스스로 닦은 업의 작용에 따라 보는 경계가 같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결국 성인의 교설을 틀리게 해석한 것으로 그 근기에 따라 일정하지 않은 것이다.
혹 어떤 경우는 방편으로 정토를 다른 국토와 분리해서, 더러운 경계는 사바세계를 가리키고 있으며,
혹 어떤 경우는 이 곳을 교화의 의식으로 삼아서, 위로 나아가면서 실다운 과보로 삼고 있으므로,
문수는 그 지위가 동방(東方)의 국토에 거처하면서 금색세계로서 오는 것이며,
관음의 몸은 서방(西方)에 거처하면서 극락묘토(極樂妙土)에 이르러는 것이다.
이와 같이 권의(權儀, 방편의 방법)이 저마다 다르니, 계몽이 필요한 자가 실답게 믿고 싶어도 의지할 곳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지금 모든 문(門)을 간략히 회통해서, 처음 수행하는 자가 의탁할 수 있도록 대략 열 가지의 지침을 정하겠으니,
첫째는 아미타경(阿彌陀經)의 정토이고,
둘째는 무량수관경(無量壽觀經)의 정토이고,
셋째는 유마경의 정토이고,
넷째는 열반경에서 가리키는 정토이고,
일곱째는 법화경의 세 번 변한 삼변정토(三變淨土)이며,
여덟째는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가리키는 정토이며,
아홉째는 유심(唯心)의 정토이고,
열째는 비로자나께서 거처하시는 정토인 것이다.
*첫째, 아미타경의 정토라는 것은, 법공(法空)의 실다운 이치인 실리(實理)를 믿지 못하고 한 푼의 상(相)을 취하는 범부를 위한 것으로, 즉 억념(憶念, 생각)을 집중시켜 상념을 이동시키지 않게끔 정성을 다하는 까닭에 그 마음이 부분적으로 청정해지면서 정토에 태어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방편(權)으로 실제(實)가 아니다.
*둘째, 무량수관경의 정토라는 것은, 법공의 실다운 이치를 한 푼도 믿지 못하는 중생 중에서 묘한 색상(色相)을 즐기는 자를 위한 것이니, 심상(心想, 마음의 상념)으로 그 색상을 생각하게 함으로써 상(想)이 성취되어 불국토에 태어나는 것이니, 이 역시 방편(權)으로 실제(實)가 아니다.
*셋째, 유마경의 정토라는 것은, 부처님께서 발가락으로 대지를 누르고 그 신력(神力)을 더함으로써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은 실제의 보토인 실보토(實報土)이지만 자세한 것을 모두 진술하지는 못하고 있으므로, 따라서 실제이긴 하지만 자세하지 않는 것이다.
*넷째, 범망경의 정토란, 하나의 큰 화왕(華王)에서 천 송이의 꽃이 있고, 그 하나하나의 꽃 위에 백억의 화신불이 있어서, 백억 사천하의 중생을 교화한다고 설하고 있는데, 그러나 그 천 송이의 천화(千華)와 화왕(華王)은 3승(三乘) 보살의 지견(知見)이 아직 드넓지 못한 것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과보의 경계를 부분적으로 보이고 있을 뿐, 원만함을 성취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 역시 방편(權)으로 실제(實)가 아니다.
*다섯째, 마혜수라천의 정토란, 여래가 보현화좌(寶蓮華座)에 앉아서 등정각을 이룬 것은 실다운 과보의 실보(實報)가 되고,
이 염부제 마갈제국(摩竭提國) 보리도량에서 정각을 이룬 것은 화신(化身)인 것이다.
이것은 청정과 오염이 여전히 없어지지 않은 3승(三乘)의 권교(權教)의 보살을 위해 설한 것으로, 이 염부제와 6천(天, 욕계 6천) 등은 욕계(欲界)의 유루(有漏)이고, 저 상계(上界, 색계)의 마혜수라천은 무루(無漏)라고 말한 때문에 마음에 청정과 오염의 분별이 있는 것으로 아직 피차(彼此)가 없어지지 않은 것이니, 이는 방편(權)으로 실제(實)가 아닌 것이다.
*여섯째, 열반경에서 가리키는 정토란, 여래께서 실다운 과보의 정토는 32항하사 불국토를 지난 서방에 있다고 말한 것은 한푼이라도 펑정과 오염의 분별이 없어지지 않은 3승(三乘)의 권교(權教)를 위해서 말한 것이니, 이 삼천대천세계가 모두 예토(穢土)라서 방편으로 여래의 과보 경계의 정토가 서방에 있다고 미룬 것이니, 이는 방편이지 실제가 아니다.
*일곱째, 법화경의 세 번 변한 삼변정토(三變淨土)란, 청정과 오염의 분별이 아직 없어지지 않은 3승 권교의 보살을 위한 것으러, 모든 천인(天人)을 다른 국토에 이동시킨 것이니, 이는 실제(實)가 아닌 방편(權)인 것이다.
*여덟째,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가리키는 정토란, 오염과 청정의 분별이 없어지지 않은 3승의 권교 보살을 인도해서, 이 국토가 더러움(穢)에 즉해 있으나 항상 청정한 즉예항정(卽穢恒淨)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으로, 모든 대중이 믿고 있기는 하지만 능히 스스로 보지는 못하고 있으니, 이것은 방편(權)이 아닌 실제(實)이기는 하지만, 단지 믿을 뿐 보지는 못하는 신이미견(信而未見)인 것이다.
*아홉째, 유심의 정토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으니, 스스로 자기 마음의 당체(當體)가 무심(無心)이라는 것을 증득하여서 성품이 오직 참 지혜일 뿐이라서 청정과 오염을 생각지 않으며,
참(眞)에 부합하고 성품에 맡긴 칭진임성(稱眞任性)하여서 마음에 걸림이 없는 무애(恚癡)이며, 무탐(無貪)하고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는 무진애(無瞋癡)이며, 대자비와 지혜에 맡겨서 중생을 안락하게 하는 것이 실다운 실정토(實淨土)인 것이다.
그리하여 스스로 청정한 까닭에 중생을 교화하여서 타인도 역시 청정하게 하는 영타역정(令他亦淨)이므로
유마경에서 “그 마음이 청정하면 곧 불국토가 청정하니, 정토에 태어나고 싶다면 반드시 그 마음을 청정하게 하라”고 설한 것이다.
*열째, 비로자나부처님이 거처하는 정토란, 즉 십불찰미진수 연화장불국토는 청정과 오염의 일체를 내포해서 청정함도 없고 더러움도 없으며, 상계(上界)나 하계(下界)라는 것도 없으며, 피차(彼此)나 자타(自他)의 상(相)도 없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그 낱낱의 불국토가 다 법계에 충만해서 서로 장애나 간격이 없는 것이다.
간단하게 십불찰미진수(十佛剎微塵數) 불국토라고 말한 것은 다함이 없는 불국토가 하나의 먼지인 일진(一塵)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알게 하는 것이니, 즉 크다거나 작다는 것의 대소(大小)가 없어서, 그러한 한계를 세우지 않는 까닭에 법을 계(界)로 삼아서, 그 끝을 한정하지 않는, 불한변제(不限邊際)인 것이다.
따라서 상해(相海)가 순수하기도 하고 섞이기도 하면서 색상(色像)이 겹겹이 중중(重重)으로 겹치면서 다 함이 없는 것이니,
이는 바로 실다운 과보의 실보(實報)로서, 방편으로 거두는 것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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