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名;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또는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번역

송나라 급남(及南편찬(編纂), 송나라 계환(戒環해석개운조사 능엄경 참조

수능엄경(首楞嚴經) 6 7

 

▷관세음(觀世音)보살의 이근원통(耳根圓通) 선택

我今白世尊,佛ㄷ出娑婆界,此方眞教體,淸淨在音聞,欲取三摩提,實以聞中入。

제가 지짐 세존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오시니, 이곳에서의 참된 가르침인 진교(眞教)의 실체는 청정함이 소리를 듣는 음문(音聞)에 있는 것으로, 

삼마지(三摩提)를 취하고자 한다면, 실로 듣는 것으로부터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ㅡ부처님의 가르침은 곳을 따라 같지 않아서, 혹 불광명(佛光明)으로 불사를 일으키기도 하였고, 혹은 불보리수(佛菩提樹)로써, 혹은 원림대각(園林臺閣)으로써, 혹은 허공(虛空)으로써, 혹은 적정(寂靜)으로 불교(佛敎)를 폈으며, 또한 향적국(香積國)에서는 향기만으로 가르침을 펼치셨으나, 여기에서는 듣는 문(聞)을 바탕으로 하였다.

듣는 것으로부터 들어가는 문중입(聞中入)은 중생은 의혹의 장애가 무겁기 때문에 듣는 것으로 훈습해서 들어가는, 즉 듣는 것을 버리고 듣는 주인공을 돌이키는 것이다.

귀로 법문을 듣는 것이 문(聞), 들은 법문을 사유하는 것이 사(思), 사유한 후에 법문에 따라 수행하는 것이 수(修)이다. 이렇게 문사수(聞思修) 공부를 통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다.


離苦得解脫,良哉觀世音,於恒沙劫中,入微塵佛國,得大自在力,無畏施衆生。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게 하나니, 훌륭하여라 관세음이여!

항하강의 모래와 같이 많은 겁 가운데 미진(微塵)과 같이 많은 불국토에 들어가서

크고 자재한 신력을 얻어, 두려움이 없는 무외(無畏)를 중생들에게 베푸나니,

ㅡ어항사겁중(於恒沙劫中) 입미진불국(入微塵佛國)은 32응신(三十二應身)을, 

득대자재력(得大自在力)은 사불사의(四不思義)를

무외시중생(無畏施衆生)는 십사무외(十四無畏)를 찬탄한 것이다. 


妙音觀世音,梵音海潮音,救世悉安寧,出世獲常住。

묘음(妙音)과 관세음(觀世音)과 범음(梵音)과 해조음(海潮音)으로 세상을 구제하여 모두를 편안케 하며,

세상을 벗어나 상주(常住)함을 얻게 하는구나!

ㅡ법을 설함에 막힘이 없는 것이 묘음(妙音)이고,

소리를 따라 고통을 구넌하는 것이 관세음(觀世音)이며, 이 둘은 덕(德)을 따른 이름을 찬탄한 것이고,

소리의 성품에 집착함이 없는 것이 범음(梵音)이고,

응(應)함에 때를 놓치지 않는 것이 해조음(海潮音)이며, 이는 이름을 따른 실상(實)을 찬탄한 것이다. 


我今啓如來,如觀音所說,譬如人靜居,十方俱擊鼓,十處一時聞,此則圓眞實。

제가 지금 여래께 말씀드리나니, 관음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아서,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조용하게 있는데 시방에서 한꺼번에 불을 울린다면, 열 곳의 소리를 동시에 듣게 되는 것과 같나니,

이것이 곧 원만한 것으로써 원진실(圓眞實)이라 생각합니다. 

ㅡ이근(耳根, 귀)는 한꺼번에 사방에서 나는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으므로 원진실(圓眞實)이라서 수행의 방편으로 이근(耳根)이 가장 적합한 것이다.


目非觀障外,口鼻亦復然,身以合方知,心念紛無緖,

눈은 담장 밖의 것을 보지 못하고, 입과 코 또한 그와 같으며,

몸은 감촉이 합해져야 비로소 느끼고, 심념(心念)은 어지러워서 실마리가 없습니다.   


隔垣聽音響,遐邇俱可聞,五根所不齊是則通眞實。

담장으로 가리워졌어도 듣는 성품은 멀고 가까운 것 모두를 다 들을 수 있으니,

오근(五根)은 모두 능하지 못하나, 이것만이 원만하게 통하는 참된 진실의 통진실(通眞實)니다.

ㅡ귀는 어떤 조건에서도 막힘없이 들을 수 있으므로 통진실(通眞實)이다. 


音聲性動靜,聞中爲有無,無聲號無聞,非實聞無性,

소리의 성품인 성성(聲性)은 움직이고 고요해서 듣는 중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니,

소리가 없으면, 들음이 없다고는 할지라도, 실로 듣는 성품의 문성(聞性)이 없는 것이 아니며,


聲無旣無滅,聲有亦非生,生滅二圓離,是則常眞實。

(문성聞性)은 소리가 없을지라도 없어진 것이 아니고, 소리가 있을지라도 다시 생긴 것이 아니라서

생기고 없어지는 생멸을 둘다 여읜 것이니, 이것이 곧 항상하고 참된 성품인 상진실(常眞實) 이라 생각합니다.

ㅡ동(動)과 정(靜), 유(有)와 무(無)는 모두 성진()에 속한다.

이근(耳根)은 이러함과 관계없이 듣는 문성(聞性)은 항상 있는 것으로, 생멸을 따르는 것이 아니므로 상진실(常眞實)인 것이다.

 

이근(耳根, 귀)은 ①원진실(圓眞實), ②통진실(通眞實), ③상진실(常眞實)이다

 

縱令在夢想,不爲不思無,覺觀出思惟,身心不能及。

비록 꿈 속에 있어서 생각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없는 것이 아니며, 

깨닫고 보는 각관(覺觀)하는 주인공이 사유(思惟)에서 벗어나서 몸(안비설신)이나 마음(意根)으로는 미칠 수가 없으며, 

ㅡ오근(五根)은 대상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그 있고 없음이 항상하지 않지만, 오직 귀(耳根)만은 사방에서 두드리는 소리를 다 들을 수 있고, 담장이 가리워도 들을 수 있고, 꿈에서도 방아찧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그 각관(覺觀)이 다른 오근보다 우세한 것이다. 

 

*각관출사유(覺觀出思惟)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①수행할 때의 각관(覺觀)은 느끼고 아는 것으로 심사(尋伺)와 같은 말로 사용된 것으로, 각(覺, 심尋)은 개괄적으로 사유하는 마음작용이고, 관(觀, 사伺)은 세밀하게 고찰하는 마음작용이며, 모두 분별성이 있으므로 선정에 방해가 되는 요소이다.

②수행하지 않을 때에도 항상 있는 인식하고 식별하는 능력을 말한다.

각관(覺觀)의 각(覺)은 정(靜)이고 공적(空寂)이며, 관(觀)은 명(明)이고 조(照)이고 영지(靈知)이다.

따라서 듣는 성품은 적이상조(寂而常照)하여 나머지 오근(五根)으로는 미칠 수가 없다. ㅡ향적법진

 

今此娑婆國,聲論得宣明,衆生迷本聞,循聲故流轉。

지금 이 사바세계는 말로써 논해야만 밝힐 수 있으며,

중생들이 본래의 듣는 성품을 미혹하여서 소리만을 따라가므로 유전(流轉)하는 것입니다.

ㅡ'말로써 논한다'는 것은 말로 논란하는 것을 따라 본래의 듣는 자성을 밝혀서 성진(聲塵)만을 쫓아 혼미하게 된 것이다. 


阿難縱强記,不免落邪思,豈非隨所淪,旋流獲無妄。

아난이 비록 많이 외워서 아는 지식 뛰어날지라도 사특한 생각에 떨어짐을 면치 못함이

어찌 빠짐을 따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유전함을 돌이켜야만 허망한 것이 없어질 것입니다.

ㅡ대상 경계인 소리를 따라가지 않고, 관심을 안으로 돌려서, 소리를 듣는 자가 누구인가를 돌이켜보면, 대상 경계인 소리가 허망한 것임을 알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듣는 성품인 문성(聞性)을 바로 보는 것으로 이근원통의 공부방법이다.   

 

阿難汝諦聽,我承佛威力,宣說金剛王,如幻不思議,佛母眞三昧。

아난아! 너는 자세히 듣거라.

나는 이제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서, 금강왕의 환술과 같이 불사의한

부처님의 불모(佛母)이신 진실한삼매(眞三昧)를 너를 위하여 말하고자 하느니라.

ㅡ진삼매(眞三昧)는 듣는 문훈습(聞薰習)으로 닦은 능엄삼매를 말하며, 모든 부처님께서 이 삼매를 좇아 나오셨으므로 불모(佛母)라 하였다.금강왕(金剛王)은 간단하고, 여환(如幻)은 쉬움을, 불사의(不思議)는 빠른 것을,불모진삼매(佛母眞三昧)는 중요한 것임을 뜻한다. 

 

汝聞諸如來,一切秘密門,欲漏不先除,畜聞成過悞 將聞持佛佛,何不自聞聞?

네가 비록 모든 여래의 일체 비밀 법문을 들었다고는 하나, 

욕애로 새는 욕루(欲漏)를 먼저 제거하지 못하였으므로, 

많이 듣는 지식의 다문(多聞)만 쌓여서 그릇된 허물이 되었으니, 

들음만으로 부처님의 불법을 지니기만 하면서 어찌하여 스스로 듣는 것을 듣지 못하는 것인가?

ㅡ불불(佛佛)은 부처님의 법인 불법(佛法)이고, 문문(聞聞)은 스스로의 듣는 성품을 듣는 것이다. 

아난 존자는 모든 비밀장(秘密藏)을 잘 지키고 보호하면서 다문만 쌓고 듣는 성품을 능히 돌이켜 깨닫지 못하고,

욕루(欲漏)가 있어서 마등가의 유혹에 빠진 것을 꾸짖은 것이다. 

그러므로 듣고(聞) 생각하고(思) 닦는(修)로부터 삼마지에 들어가는 사람은 듣는 자성을 돌이켜 듣는 것에 힘써야 하는 것이다.

 

聞非自然生,因聲有名字,旋聞與聲脫,能脫欲誰名?一根旣返源,六根成解脫。

들음(聞)이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소리(聲)로 인하여 (귀라는) 그 이름이 있게 된 것이라.

듣는 것을 돌이켜 소리에서 벗어나면 해탈한 주인공을 무엇이라 이름 하는가?

하나의 감각기관인 일근(一根)이 본원으로 돌아가면, 6 개의 감각기관인 육근(六根)이 모두 해탈을 이루리라.

ㅡ문(聞)은 이근(耳根)이고, 소리(聲)은 귀에 대한 대상 경계인 이경(耳境)으로, 귀는 대상 경계로 인하여 있는 것,

즉 문성(聞性)→이근(耳根)→이경(耳境, 소리)→이식(耳識)의 조건으로 생긴다.  

모두가 허망한 대상의 망진(妄塵)이므로 마땅히 돌이켜 벗어나서 벗어날 것이 없게 되어야 참된 근원으로 돌아 가는 것이다.  

 

見聞如幻翳,三界若空花,聞復翳根除,塵銷覺圓淨。

보고 듣는 견문(見聞)이 환망(幻妄)으로 가려진 것과 같으며, 삼계가 허공의 꽃과 같으니,

들음이 회복되면 가려진 감각기관이 없어지고 

허망한 대상 물질인 망진(妄塵)이 소멸되면, 깨달음의 각(覺)이 청정하여지리라

ㅡ견문여환예(見聞如幻翳), 예(翳)는 눈이 흐리다 또는 침침하다는 뜻으로, 눈병 난 자가 보는 견해에 비유한 것이며, 환예에서 벗어나면 실상을 본다. 

 

*각(覺), 즉 심(尋)으로 파악한 의미라는 뜻으로, 견의와 문의에 응하여 자연히 저절로 생각(思)이 구성(搆)되어 파악한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심(尋)의 마음작용이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사(思)와 상응하여 저절로 대강 그린(搆) 것을 말한다.ㅡ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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